♥기사♥ 엄 여인의 엽기 살인의 진실

[하이미르]

[사건추적]  “아, 앞이 안 보여!”  嚴여인 엽기 살인의 진실

두 남편·어머니·오빠 눈 찔러… 5억 원대 보험금 노린 악녀인가, 심신미약자의 일탈인가

박종주_월간중앙 차장(jjpark@joongang.co.kr) 

‘엽기적 마약 살인녀’로 비난받으며 쇠고랑을 찬 엄모(29) 씨 사건은 충격적 내용으로 가득하다. 무엇이 이 여인을 입에 담기조차 힘든 연쇄 범죄로 내몰았을까?
남편 둘을 잇따라 희생시키고도 어머니와 오빠에게까지 마수를 뻗친 여인. 그 죄값을 치른 것일까? 딸과 아들을 잇따라 잃기도 한 이 여인의 진실은 도대체 무엇인가?
경찰 수사기록, 피해자 가족, 병원 관계자, 수사 담당자 등을 취재해 엄씨의 행적을 복기해 본다.

지난 4월28일 서울 강남경찰서 강력1팀은 ‘엽기적 패륜범 검거 보고’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가족 등 총 8명을 상대로 중상해(重傷害)·실명·방화 등의 범행을 저지르고, 이를 사고로 위장해 5억6,000여 만 원의 보험금을 타낸 전직 보험설계사 엄모(29) 씨를 검거했다는 것이었다.

경찰이 밝힌 엄씨의 혐의 사실은 보도자료 제목대로 엽기적이면서도 패륜적인 것들로 가득했다. 피의자 엄씨는 첫 남편은 핀으로 찔러, 두번째 남편은 눈에 염산을 붓는 끔찍한 방법으로 각각 실명시켰다. 남편 둘은 모두 병원에서 치료받다 사망했다. 남편에 이어 어머니와 오빠를 대상으로 삼은 부분은 영락없는 패륜 그 자체였다. ‘마약을 살 돈을 마련하기 위해서’라는 범행 동기도 충격적이기는 마찬가지였다.

보험 관련 범죄가 날로 늘고 있지만 남편과 친정 식구를, 그것도 핀으로 눈을 찔러 실명시키면서까지 보험금을 타낸 경우는 전례가 없었다. 대부분의 언론은 피의자가 이미 눈이 먼 상태인 오빠를 약물 주입과 방화로 살해하려 했다는 점까지 지적하면서 사건의 성격을 ‘엽기 패륜범죄’로 규정했다. 한 TV 뉴스의 앵커는 “차마 입에 담기조차 힘든 사건”이라고 말했다. 엄씨를 아예 ‘엽기적 마약 살인녀’로 표현한 인터넷 언론도 있었다.

언론 보도를 통해 사건을 접한 사람들도 격한 감정을 드러냈다. 사건을 알리는 인터넷 기사에는 “그런 여자를 살려두면 주위 사람들이 다 그렇게 당한다. 그때 가서 후회하지 말고 고통 주고 사형시키자” “이 여자는 공개처형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법이 너무 너그럽다”는 등의 댓글이 줄을 이었다.

스물아홉이라는 젊은 나이에 ‘마약 살인녀’ 소리를 들으며 쇠고랑을 찬 엄씨는 어떤 인물인가? 무엇이 그를 입에 담기조차 힘든 범죄의 구렁으로 몰아갔을까?

엄씨는 서울에서 나고 자란 서울 토박이다. 위로 오빠가 있고 아래로 남동생이 있으며, 아버지가 건축업을 한 덕분에 집안 형편은 그런대로 괜찮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내성적 성격인 엄씨는 인문계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거쳐 1997년 10월부터 모 생명보험사의 설계사로 근무했다. 첫 남편 이모 씨와 결혼하면서 1998년 4월 설계사 일을 그만둔 엄씨는 두번째 남편과 결혼한 후 2달 가량 설계사 일을 한 적이 있다.

모두 합쳐도 7개월이 안 되는 기간이지만, 이 같은 보험설계사 경력은 경찰이 엄씨의 범죄를 ‘보험금을 노린 고의적 범죄’로 단정하는 중요한 근거가 됐다. 경찰은 사건 보도자료에 “피의자는 해박한 보험업무 지식을 악용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적고 있다.

경찰 수사 기록에 나타난 엄씨의 범행 일지

● 2000년 5월 남편에게 수면제를 먹여 정신을 잃게 한 뒤 핀으로 눈 찔러 실명시킴.
● 2001년 6월 같은 수법으로 남편의 얼굴에 끓는 기름을 부어 화상 입힘.
● 2001년 9월 같은 수법으로 남편의 배를 주방용 칼로 찔러 상처 입힘.
● 2002년 2월 같은 수법으로 남편의 배를 찔러 상처를 입힘(남편은 치료 중 사망).
● 2002년 11월 재혼한 남편에게 수면제를 먹인 뒤 핀으로 눈 찔러 실명시킴.
● 2003년 7월 어머니에게 수면제 섞은 주스를 먹인 뒤 양 눈을 주사바늘로 찔러 실명시킴.
● 2003년 11월 오빠에게 수면제 탄 술을 먹인 뒤 양 눈에 염산을 넣어 실명시킴.
● 2004년 4월 입원 중인 오빠의 링거 호스에 이물질을 넣어 살해하려다 미수에 그침.
● 2005년 1월 실명한 오빠에게 수면제 탄 주스를 먹인 뒤 불을 질러 오빠와 남동생에게 화상 입힘.
● 2005년 1월 세 들어 살던 아파트에 불을 질러 집주인을 사망하게 함.
● 2005년 2월 입원 중이던 병원에 석유를 뿌리고 불을 지르려다 미수에 그침(병원의 신고로 경찰에 검거됨).

불행의 출발점 된 ‘22세의 결혼’

▶엄씨가 필로폰에 이어 복용한 ‘러미나’. 감기 치료제이지만 한꺼번에 많은 양을 복용하면 환각작용이 있어 마약류로 지정돼 있다.

엄씨의 진술 등을 근거로 살피면 22세 때 한 첫 결혼은 행복과는 거리가 멀었던 것으로 보인다. 경찰에서 조사받으면서 엄씨는 “아이가 생기는 바람에 할 수 없이 결혼했다” “이혼하고 싶었지만 남편이 응해 주지 않았다” “남편은 어린 나이에 결혼한 나를 무척 힘들게 했다”는 등 첫 남편에 대한 원망을 자주 토로했다고 한다. 이삿짐센터 종업원 등으로 일했던 남편은 한때 서울 강북의 P병원에 입원해 신경정신과 치료를 받기도 했다.

본인의 주장대로라면 ‘불행한 결혼생활’을 이어가던 엄씨에게 어느 날 또 다른 불행이 닥쳤다. 2000년 2월, 세 살 된 딸이 집 계단에서 굴러 떨어져 뇌진탕으로 숨진 것이었다. 엄씨는 경찰에서 “딸은 처음에 병원에 갔을 때는 괜찮다고 했는데 나중에 상태가 갑자기 나빠져 숨졌다”고 말했다.

남편에 대한 원망이 컸던데다 갑작스러운 사고로 딸까지 잃게 되자 적잖은 충격을 받은 피의자 엄씨는 한동안 신경정신과 치료를 받기도 했다. 딸을 화장시킨 뒤로는 불길을 보면 딸의 얼굴이 떠오를 때도 많았다고 한다. 그 고통을 잊기 위해 엄씨가 손을 대기 시작한 것이 바로 마약이었다.

딸이 숨진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무렵 ‘우연히 선이 닿은 브로커’한테서 산 필로폰을 복용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한번 시작한 마약에 빠져들면서 약을 살 돈이 필요해 남편과 가족을 대상으로 죄를 지었다는 것이 엄씨의 진술이었다.

5년간에 걸친 엽기 범죄의 첫 대상은 ‘어린 신부’를 고생시킨 남편이었다. 엄씨는 딸이 뇌진탕으로 숨진 지 1개월 뒤인 2000년 3월, 남편 앞으로 4개의 보험을 든다. 그리고 2000년 5월 서울 창동의 집에서 남편에게 수면제가 섞인 정신과 치료약을 먹여 정신을 잃게 만들고는 핀으로 눈을 찔러 오른쪽 눈을 실명하게 했다. 이듬해 6월에는 같은 수법으로 정신을 잃게 한 뒤 남편의 얼굴에 끓는 기름을 부어 전치 4주의 화상을 입히기도 했다.

엄씨의 남편에 대한 공격은 그 뒤로도 이어졌다. 2001년 9월부터 모두 세 차례에 걸쳐 남편의 복부를 주방용 칼로 찔러 상처를 입혔다. 남편은 결국 2002년 2월, 한때 정신과 치료를 받은 적이 있던 P병원에서 사망했다. 직접적인 사인은 ‘다발성 장 천공’이었다.

엄씨는 실명 등 남편의 잇따른 상처를 ‘자해’라고 둘러댔다. 이씨가 정신과 치료를 받은 적이 있었기 때문에 가족이나 의료진도 자해라는 엄씨의 주장을 의심하지 않았다고 한다. 엄씨는 남편이 사망한 뒤 보험사로부터 2억8,000여 만 원을 타냈다.

남편 둘 희생시킨 뒤 어머니까지…

엄씨는 남편이 사망한 지 1개월 뒤 임모 씨를 만나 재혼했다. 경찰 수사 기록에는 두번째 남편을 대상으로 범행을 저지른 때가 2002년 11월로 나온다. 엄씨는 첫 남편한테 했던 것과 같은 수법으로 서울 상계동 집에서 두번째 남편의 정신을 잃게 한 뒤 와이셔츠 칼라를 고정하는 핀으로 남편의 오른쪽 눈을 찔러 실명시켰다. 그리고는 남편이 눈에 이물질이 들어가는 바람에 실명한 것처럼 허위 신고해 3,900만 원의 보험금을 타냈다.

두번째 남편 임씨는 서울의 S병원에서 피부 괴사 증세를 치료받다 2003년 2월 사망했다. 키가 180cm가 넘고 검도가 4단일 정도로 건강했던 임씨가 갑자기 병으로 숨지가 유가족은 사인 규명을 위한 부검까지 실시했다. 하지만 이때도 엄씨의 범죄 사실은 드러나지 않았다.

▶엄씨의 두번째 남편 임모 씨가 사망한 S병원의 장례식장.

엄씨는 두번째 남편이 사망하자마자 보험사를 찾아다니며 보험금 수령에 온 신경을 썼다고 한다. 그럼에도 남편의 가족들은 엄씨를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히려 병상의 남편을 정성껏 간호하는 모습을 보고 큰 고마움을 느꼈다는 것이 임씨 유족의 말이다.
경찰의 수사를 통해 그동안 감춰져 있던 진실을 알게 된 임씨 가족은 “이제 와서 돌이켜보면 엄씨의 언행이 모두 거짓말이었다는 이야기 아니냐”면서 “인간의 탈을 쓰고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 있었는지 정말 치가 떨린다”고 말했다.

남편을 잇따라 희생양으로 삼으면서 엄씨의 ‘마약’도 깊어갔다. 엄씨는 경찰에서 2002년 3월께 필로폰 판매책과 연락이 끊겼고, 그 뒤로는 마약을 러미나로 바꾸었다고 진술했다. 정식 명칭이 ‘덱스트로메토르판’(Dextromethorphan)인 러미나는 원래 감기·폐결핵 등에 쓰는 치료제다. 하지만 한꺼번에 많은 양을 복용하면 환각작용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우리나라에서는 2003년부터 마약류로 분류돼 있다.

엄씨를 수사한 김경만 강남경찰서 강력1팀장(경감)은 “본인 진술대로라면 엄씨는 ‘폐쇄적 마약 복용자’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여럿이 어울려 정보를 공유해 가면서 마약을 복용한 것이 아니라 혼자 복용했다는 뜻이다. 이 때문에 엄씨는 중독증은 강하면서도 마약에 대한 정보는 의외로 어두웠던 것으로 드러났다.

그는 경찰 조사에서 “러미나를 처음에는 필로폰과 맞먹는 환각효과가 있는 엑스터시인 줄 잘못 알고 먹었다”고 진술했다. 한 통에 10만 원 정도에 팔리는 러미나 두 통을 800만 원이나 주고 구입한 적도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은 엄씨가 마약을 시작하면서 환각성이 강한 필로폰부터 복용한 점도 주목하고 있다. 초기 단계에서부터 환각성이 강한 마약을 복용하다 도중에 ‘공급’이 끊겼다면 환각성이 떨어지는 약부터 배운 사람들보다 훨씬 심각한 금단증세를 경험했으리라는 말이다. 경찰은 이러한 이유에서 엄씨가 갈수록 강한 ‘마약의 유혹’에 시달렸고, 그 결과 범죄의 성격도 엽기성을 더해 갔을 것으로 풀이했다.

엄씨는 2003년 7월 어머니 김모(55) 씨에게 수면제를 탄 주스를 먹여 정신을 잃게 만들었다. 전에 해본 대로 어머니의 양 눈을 주사바늘로 찔러 오른쪽 눈을 실명시키고 왼쪽 눈은 시각장애 3급의 상처를 입혔다. 이번에도 사고로 인한 실명으로 거짓 신고해 6,700만 원의 장해보험금을 받아냈다.

언론 보도를 통해 엄씨의 범죄 사실을 들은 사람들 가운데는 ‘눈을 핀으로 찔러 실명시켰다’는 부분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경우가 많았다. 눈을 바늘로 찌르면 흔히 얘기하는 ‘먹물’이 쏟아지면서 생명이 위험해지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하지만 안과 전문의들은 그 같은 인식은 잘못이라고 말한다.

최웅철 밝을명안과 원장은 “나뭇가지 등에 깊이 찔릴 경우는 망막 안에서 빛을 차단하는 맥락막의 검은 색소가 분출돼 바로 실명하게 된다”면서 “하지만 가는 바늘 등에 찔리면 순간적으로 따끔한 느낌을 받으면서 수정체 손상 등으로 서서히 실명하게 된다”고 말했다.

어머니에 이어 범행 대상이 된 사람은 오빠(31)였다. 오빠에 대한 공격은 첫 남편 때만큼 집요했던 것으로 보인다. 엄씨는 2003년 11월 오빠에게 수면제를 탄 술을 마시게 한 뒤 양 눈에 염산을 넣어 실명시켰다.

오빠에 대한 잇따른 공격, 그리고 방화

오빠는 콧뼈까지 크게 다쳐 서울 강남에 있는 S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았다. 엄씨는 2004년 4월 중순부터 5월 초까지 모두 세 차례에 걸쳐 입원 중인 오빠를 살해하려고 한 혐의도 받고 있다. 경찰은 엄씨가 병 간호를 하는 척하면서 오빠의 링거 호스에 주사기로 이물질을 집어넣어 심장발작을 유도하려다 미수에 그친 사실이 있다고 밝혔다.

2005년에 들어서면서 엄씨의 범행에도 변화가 온다. 바로 방화였다. 엄씨는 두번째 남편이 사망한 뒤로는 경기도 남양주에 있는 아파트에서 친정 식구들과 함께 생활했다. 지난 1월 엄씨는 거듭 목숨을 빼앗으려다 실패한 오빠에게 또 다시 수면제를 섞은 주스를 먹인 뒤 방에 불을 질렀다. 이 불은 119에 신고까지 됐으나 오빠가 바로 끄는 바람에 큰 피해 없이 진화됐다. 하지만 엄씨는 자신도 연기를 많이 마셔 피해자로 비치면서 이번에도 가족들의 의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엄씨는 이때의 방화 이유를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 딸의 모습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진술했다. 하지만 경찰은 “불이 난 직후 (연기가 집 밖으로 빠져나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던 듯) 누나가 집안 창문을 닫는 것을 봤다”는 남동생의 진술 등을 근거로, 당시의 화재를 오빠의 사망 보험금을 노리고 저지른 것으로 보고 있다.

엄씨는 오빠와 동생에 대한 일련의 실명·살해미수·화상 등으로 인한 범죄를 사고로 위장 신고해 2억4,000만 원의 보험금을 받아냈다.

엄씨는 마약 구입 자금을 마련하느라 어머니 명의로 돼 있던 문제의 아파트까지 몰래 팔아 버렸다. 집을 비워준 뒤 마땅한 거처가 없어진 엄씨 가족은 한때 자신들의 집에서 파출부로 일했던 강모(46) 씨의 아파트에 세를 들었다. 강씨의 아파트는 같은 남양주에 있었다.

엄씨는 지난 2월1일 이 아파트에도 불을 질렀다. 거실에 놓인 도자기 안에 있던 성냥통에 불을 붙인 뒤 담요를 던져 불을 키운 것이었다. 이 불로 강씨의 남편 김모(51) 씨가 화상을 입고 숨졌다. 강씨와 딸 김모(24) 씨는 화상 등으로 병원에 입원했다.

경찰은 이 화재를 엄씨가 마약 금단증세 상태에서 저지른 방화로 보고 있다. 엄씨는 경찰 조사 결과 지난해 연말 러미나를 구입해 300알이 넘는 약을 하루 수십 알씩 복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엄씨가 마지막으로 약을 복용한 것은 1월10일께라는 것. 그 후로는 약을 구하지 못해 상당한 금단증세에 시달렸고, 그 과정에서 거듭 아파트에 불을 질렀으리라는 것이 경찰의 분석이다.

급기야 집 주인을 숨지게 한 엄씨의 ‘불 지르기’는 5년 동안 이어져 온 범죄 행각을 드러내는 계기도 됐다. 엄씨는 세들어 살던 아파트에 불을 질렀다 자신도 부상당해 서울 대치동에 있는 화상 전문 B병원에 입원했다. 집주인도 이 병원으로 후송돼 치료받던 중 사망했다. 병원 관계자는 “엄씨는 화상은 입지 않았지만 연기를 많이 마셔 호흡곤란 증세를 보였다”고 말했다.

피해자 강씨 가족과 함께 치료받던 엄씨는 지난 2월13일 병원 비상계단에 석유를 뿌리고 불을 지르려다 미수에 그쳤다. 엄씨는 병원 측의 신고를 받고 수사에 들어간 경찰에 의해 3일 뒤 체포돼 구속됐다. 하지만 엄씨는 구속적부심을 통해 바로 풀려났다. “단순히 석유를 뿌리기만 했을 뿐 실제 방화로는 이어지지 않았다”는 것이 석방 이유였다.

경찰은 엄씨의 행적에 석연찮은 점이 많다고 보고 구속적부심으로 풀려난 엄씨의 주변에 대한 조사를 본격적으로 진행했다. 엄씨의 가족과 피해자인 두번째 남편의 가족 등을 접촉한 결과 남편들의 잇따른 실명과 죽음, 어머니와 오빠의 실명, 집안 화재 등 의심가는 구체적 정황이 속속 드러나기 시작했다. 병원 관계자 등에 대한 참고인 조사를 거치면서 상황은 엄씨를 사법처리하는 데 무리가 없을 정도로 무르익어 갔다.

네 살짜리 아들 ‘폐부종’으로 사망

▶서울 대치동에 있는 화상 전문 B병원. 엄씨는 이 병원 계단에 석유를 뿌리고 불을 지르려다 경찰에 체포됐다.

한편 구속적부심에서 풀려난 직후의 엄씨는 가와사키병을 앓는 아들의 병상을 지키고 있었다. 두번째 남편과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은 어머니의 마약 복용 후유증 때문인 듯 임신 6개월 만에 미숙아로 태어났다. 태어날 때부터 허약체질이었던 아들은 심혈관 관계 질병인 가와사키병을 심하게 앓아 서울 동대문의 E병원에 입원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경찰은 한편으로는 엄씨의 과거 행적을 추적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엄씨의 동선(動線)과 아들의 병세를 수시로 확인해야 했다. 합병증으로 폐부종을 앓던 엄씨의 아들은 결국 지난 4월1일 숨지고 말았다. 엄씨는 두번째 피붙이를 떠나 보낸 지 보름 정도 후인 4월19일 강남경찰서 강력팀에 체포됐다.

엄씨는 경찰 조사를 거쳐 4월29일 검찰로 송치됐다. 경찰은 엄씨를 송치하면서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 외에 살인미수(링거 호스에 이물질을 넣어 오빠를 살해하려고 한 혐의), 현주 건조물 방화 치사(셋집에 불을 질러 집 주인을 사망하게 한 혐의) 및 방화치상(자신의 집과 강씨의 집에 불을 질러 오빠와 남동생 및 강씨의 가족에게 부상을 입힌 혐의), 존속중상해(어머니를 실명시킨 혐의), 중상해(두 남편과 오빠를 실명시킨 혐의) 등을 함께 적용했다.

두 남편과 관련된 혐의의 경우, 눈을 찌르는 데 사용한 주사바늘과 복부를 찌른 칼 등 증거물이 확보되지 않아 일단 중상해죄를 적용했다는 것이 경찰의 얘기다. 경찰은 관련 증거가 추가 확보되고 실명으로 인한 상처가 사망의 원인이 된 것이 입증되면 첫 남편을 대상으로 한 범죄의 경우 살인죄 적용도 가능하다는 판단이다.

하지만 범행이 오래 전에 일어난데다 피해자가 모두 사망한 상태여서 살인죄를 적용할 수 있을 정도의 객관적 증거를 찾아내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엄씨에게 마약을 공급한 조직 또는 개인의 정체를 밝혀내고 신병도 확보해야 하는 등 엄씨에 대한 향후 조사에는 적잖은 애로가 예상되고 있다.

경찰이 밝혀낸 혐의사실 대부분이 직접 증거 없이 엄씨의 진술에만 의존하고 있다는 점도 수사진에는 부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엄씨가 재판 과정에서 그간의 진술을 번복해 버리면 공소를 유지해야 할 검찰의 입장이 난처해질 것이라는 말도 그래서 나온다. 경찰도 진술 번복에 대비해 엄씨의 진술 내용을 모두 녹화해 둔 상태다.

이 보다 더 근본적인 변수가 있다. 엄씨가 과연 정상적인 심리상태에서 범죄를 저질렀느냐는 부분이다. 만약 남편과의 갈등에 딸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인해 심신미약(心身微弱) 상태에서 이뤄진 범행이라면, 정상적인 상태에서의 범죄와 같은 잣대로 처벌하기는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엄씨는 경찰 조사 때부터 손을 심하게 떠는 등 마약 금단증세를 보였다. 조사받다 실신해 병원으로 옮겨진 일도 있었다. 엄씨는 검찰로 송치돼 구치소에 수감된 뒤에도 상당히 불안정한 모습을 보인 것으로 전해진다.

보강 수사를 위한 검찰 출두를 거부하는가 하면, 담당 검사 앞에서 조사받으면서 울다 졸립다며 잠을 자는 등 종잡을 수 없는 모습을 자주 연출했다는 것이다.

엄씨에 대한 수사를 지휘하는 최관수 서울중앙지검 검사는 “엄씨는 극도의 조울증과 우울증이 결합돼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지난해 연쇄 살인범 유영철을 수사했던 최 검사는 “겉으로 드러난 것만 놓고 보면 엄씨는 감정 기복이 유영철보다 더 심한 것 같다”고도 했다.

최 검사는 5월9일 엄씨에 대한 정신감정을 의뢰했다. 이에 따라 엄씨는 국립서울병원에 입원해 오는 6월10일까지 한 달 동안에 걸쳐 전문의로부터 약물중독, 정신분열증, 우울증, 성격장애 유무 등을 감정받게 된다. 유영철의 경우처럼 정상으로 판정되면 엄씨에게는 엄한 처벌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정신감정 이후로 미뤄진 ‘법의 심판’

하지만 심신미약 등 정상적이지 않은 상태로 판정되면 얘기는 달라진다. 심신미약 등으로 판정받은 피의자에게는 통상 치료감호 처분이 내려진다. 치료감호 처분은 금고 이상의 범죄를 저지른 알코올이나 마약 중독자 등에 대해 검사가 청구하고 법원이 선고하는 판결의 일종이다. 치료감호소에서 관련 질병을 치료받으면서도 형을 사는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에 피의자한테는 여로 모로 유리한 결정이다.

최관수 검사는 “엄씨에 대한 정신감정 결과가 나오면 그것을 토대로 혐의사실 보강 조사의 필요성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엄씨는 희대의 살인마인가, 심신미약으로 인한 일탈자인가? 정확한 판단은 엄씨의 정신 감정 이후에나 가능할 듯하다.

보험사는 몰랐을까

“의사 진단서에 입원 기록까지… 의심할 이유 없었다”

▶서울의 한 병원에 개설된 보험상담 창구. (기사의 특정 사실과 무관함)

엄씨 사건이 공개된 후 적잖은 사람이 “6억 원 가까운 돈을 지급한 보험사들은 엄씨의 범죄를 눈치채지 못했을까” 하는 의문을 제기했다. 일부 인터넷 사이트에는 “보험사 직원도 공범일 가능성이 있다. 그렇지 않고는 어떻게 4, 5번이나 보험금을 탔을까?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 보험사도 공개하라”는 글이 올랐다.

하지만 보험업계 관계자들의 말은 다르다. “보험 관련 범죄가 늘고 있지만 의심 가는 사건의 진상을 다 밝혀내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항변이다. 엄씨에게 보험금을 지급한 한 보험사도 “의사의 진단서가 있었고 입원치료 기록도 명확했기 때문에 사기라고 의심하거나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을 명분이 전혀 없었다”고 해명했다.

엄씨가 보험금을 타낸 곳은 5개 회사로, 모두 이름만 대면 금방 알 수 있는 곳들이다.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보험 지급심사에도 한계가 있다”고 하소연한다.

보험사는 가입자가 질병이나 사고를 당할 경우 약관에 규정된 보험금을 지급해야 한다. 이때 부당한 보험료 청구가 없는지 가려내는 과정이 바로 ‘지급심사’다. 보험사 직원이 불시에 병원에 들이닥쳐 교통사고 환자가 실제로 입원해 있는지 확인하는 것도 지급심사에 해당한다.

보험사들은 대부분 경력 10년 이상의 베테랑 직원들로 의심 가는 보험금 청구를 조사하는 심사팀을 운영한다. 심사만 전문으로 해 주는 회사도 따로 있다. 이들은 의심 가는 청구가 접수되면 의사의 진단서, 경찰 수사 결과 등을 토대로 조사에 들어간다.

경우에 따라서는 현장조사도 실시하지만 현실적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보험 심사를 전문으로 하는 S사의 한 관계자는 “수사권이 없은 상태에서 보험금 지급을 거부할 수 있을 정도로 딱 떨어지는 정황을 찾아내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고 말한다.

회사 이미지를 중시하는 보험사 경영 풍토도 철저한 심사를 가로막는 요인으로 지적된다. 회사가 심사를 이유로 보험금 지급을 미루면 가입자의 항의가 제기되고, 그 경우 회사 이미지가 손상되는 것을 경영주들이 꺼린다는 것이다. S사의 관계자는 “사정이 이렇다 보니 미심쩍은 구석이 있어도 고의성이 짙은 악성만 아니면 보험금을 우선 지급하고 보는 것이 업계의 현실”이라고 귀띔했다. 의심은 가지만 조사상의 한계, 회사 이미지 등을 감안해 보험금을 지급하는 경우를 “리스크를 안고 지급한다”고 부른다는 것이 이 관계자의 말이었다.

엑박 이해해 달라긔.. 2005년도기사..

[미워ㅠ]

어제 그것이알고싶다 보고 나서 자려는데 계속 이 여자얘기 생각나서 무서웠는데...정말 무서워ㅠ

[luvyafellas]

싸이코패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