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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정의 늪 - 2
교민회관은 시드니 서부지역 불랙타운Black Town에 소재하고 있다.
교민들은 그 곳을 흑석동이란 별명을 지어 즐겨 부르기도 한다. 회관은 아담한 2층 집으로 250평 남짓
되보인다. 이층은 주로 사무실, 회의실 그리고 문화원으로 사용하고 아래는 팡숀룸Function Room으로
교민들의 다양한 행사장으로 사용함은 물론이고 특히 교민들의 웨딩룸으로 많이 사용되었다.
회관 입구 앞에는 한국의 민속촌(Folk Village)을 상징하는 천하대장군 과 지하여장군의 장승이
마치 문지기처럼 우뚝 서서 행인들의 눈길 모으고 있다. 어찌 보면 외국인들에게는 미개국민처럼
보여진다하여 불쾌감을 준다는 교민들도 더러 있다. 그리고 회관 건물 남쪽에는 불랙리버 라고 하는
샛강이 흐르고 있어 자연 경관이 뛰어난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매일 아침 5 ~ 6시 경에는 부지런한 교민들이 너른 회관 앞마당에 모여 각종 운동을 하며 나름대로
체력 단련에 힘을 쏟기도 한다.
나도 그중 한 사람이 되어 이마에 구슬땀이 흐를 정도로 약 1 시간 가량 그들과 함께 어울리곤 했다.
어느 날이었다 40 중반에서 50 초반으로 보이는 미모의 중년부인이 스트레칭도 하고 운동기구에
매달려 좌우를 의식하지 않고 열중하는 모습이 나의 시야에 들어왔다.
호주의 8월은 독재자의 카리스마처럼 싸늘하다. 아직도 시린 바람이 옷소매를 타고 산맥의 줄기처럼
등골을 강타한다. 고뿔(감기)은 때를 놓칠 수 없다고 맹공을 하여 노인들을 때론 저승길로 안내
하기도 한다. 오늘은 웬일인지 기분이 좋은 날이다. 오늘 업무는 오후 3시 이전에 끝내고 귀가
하는 길이 고향 길을 달리는 듯 유쾌했다.
어느 주택가 양지바른 가든에는 봄의 전령 같은 자목련이 활짝 피어 계절은 어김없이 온다는 것을
확증이라도 하는 것 같았다. 나는 집에 도착 하자마자 우체통을 열었다.
햇볕에 반짝이는 하얀 봉투가 미소를 머금고 나를 반긴다. 역시 발신인은 내가 사랑하는 아내였다.
아내와 작별을 하고 호주에 온지도 거의 2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선배 배용식 형은 서울에서 잘 나가는
대한종합 무역상사의 상무이사로 있으면서 호주지부 지사장으로 근무하다가 임기가 끝나면서 호주
영주권을 취득하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 내가 일하고 있는 부동산 중개업 오아시스(Oasis Real Estate)
를 설립 하였다. 호주에서 부동산 사업이 유망하다며 자기회사에 투자하여 함께 일하다가 영주권을
따게 해 주겠다하여 퇴직금 모두를 탈탈 털어 주었다.
그런데 중개사 면허가 있어야 한다며 시험에 응시 하라고 한다. 아뿔사! 용식이 형의 트랩에 빠졌다는
것을 알았을 땐 이미 늦어 빼도 박도 못할 처지에 놓여 있었다.
부로큰broken 영어를 겨우 할 정도의 실력으로 어떻게 시험을 본단 말인가. 신분 변경을 하고 비자
연장을 하여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 주겠다는 것이다. 용식이 형은 절대 그런 사람이 아니었는데
변해도 너무 많이 변해 있었다. 모든 것을 남의 탓으로만 돌리고 철저한 방관자로 나를 대했다.
이런 사정을 모르는 부인 지연은 편지할 때마다 언제 영주권이 나와 우리 세 식구가 한데모여
오순도순 살 수 있느냐? 고 성화를 부린다. 나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귀국할 처지가 못 된다.
죽으나 사나 여기에서 쇼부shove를 내야했다. 어쨌든 오아시스에 근무를 하면서 방법을 찾아야 했다.
영어를 능숙하게 할 수 없으니 하는 일이라곤 집집마다 광고 전단지 뿌리는 일과 집을 비울 때와 이사
올 때 인스펙숀inspection하는 일, 그리고 파일을 만들어 계약서등을 보관 하는 일이다. 주위에 친하게
지내는 사람들과 PR(영주권)비자를 받을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 보아도 나의 케이스는 거의 없다는
결론이다. 그래도 가능한 방법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위장 결혼을 하는 방법이라 했다. 나는 이 방법이라도 할 수 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대개 복덕방들은 토요일에 옥션auction을 하는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주 5일 근무이다 보니 공휴일에 카스토머customer들을 모으는 일이 쉽기 때문이다.
나는 토요일이면 더 분주하다. 옥션을 알리는 피켓을 준비하여야 하고 광고 부로셔를 만들어
참가자들에게 일일이 나누어 주어야 했다. 건물 뒤편에 옥션장으로 사람들을 안내하던 중에 어디선가
본 듯한 곱상한 중년 여성분과 마주쳤다. 순간 운신을 멈추고 그녀의 앞으로 한 발 앞서나가며,
“아 ! 누구시드라 뵌적이 있는데, 한인 회관 운동장!, 맞죠!!” “요즘은 뜸 하셨죠,” 그 녀도 맞장구를 치며,
“그러네요, 요즘은 좀 바빠서 못 나갔어요.” 우리는 전부터 친숙한 사람들처럼 이런저런 말들을
주고받았고 이번 옥션은 값이 적절치 못한 것 같아 다음으로 미루겠다고 했다. 앞으로 다른 매물이
나오면 정보를 주겠노라 하며 연락처와 이름을 서로 건네받고 헤어졌다. 그녀는 자기 이름을 그냥 ‘고’
씨라고만 밝혔다. 여기에 혼자 온 것을 보면 싱글임에 틀림은 없는 것 같은데, 그녀에 대한 호기심 과
관심이 집중적으로 끌려가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 그녀와 거리를 좁히고 모든 것을 알아 낼 수 있을까에 몰입하게 되었다.
그래서 알게 된 것이 그녀는 크로이돈 한인 천주교인 이고 본명 안젤라 고 라는 것 까지 알았다.
사실 나는 한국에서부터 천주교회를 다녔다. 그때 나의 대부가 지지어준 본명이 베드로라 했고,
여기에서 사람들은 피터 정으로 통했다. 그 다음 주일부터 나는 교회를 다니기로 하고 그녀에게
더욱 다가가 시쳇말로 작업을 하기로 마음을 다졌다.
일단 나는 교회 분위기와 주위에 익숙해지기 위해 2주 정도 그냥 나가서 미사만 드리고 돌아왔다.
천주교는 어디를 가나 새 신자를 대하는 분위기는 똑같다. 아무도 따뜻하게 맞아 주는 사람도
없고 싸늘하다. 일단 사무실로 가서 등록하고 구역장을 만나 인사를 나누었다. 잘 부탁한다는
말만 남기고 그냥 돌아왔다. 3주째 되는 날 나는 미사를 마치고 신부님과 인사를 나눈 후에 그 옆에서
천연덕스럽게 나오는 신자들을 탐색하며 안젤라 고의 얼굴을 기억하며 사냥군처럼 서있었다.
드디어 그녀를 찾아냈고 그 순간 그녀의 모습은 수호천사처럼 광채가 났다.
“아 ~ 고 여사님 안녕 하세요. 저 피터 정입니다, 저도 2주 전부터 이 교회에 나오고 있습니다.”
마치 우연인 것처럼 2주전을 강조했다. 안젤라 고는 별로 대수롭지 않다는 듯 “ 네~ 그러세요.
반갑네요.” 하며 마치 먼지를 털어내듯 가벼운 발길로 지나치려 한다. 그렇게 가볍게 보내줄
내가 아니다. 공들인 만큼 나는 집요하게 따라 붙어 그녀를 구내식당까지 함께 들어가 마주 앉아
식사를 하는데 까지 성공을 했다. 교인들은 저마다 오랜만에 만난 교우들과 이야기 꽃을 피우노라
우리의 첫 만남에 대해 의심하거나 관심을 두지 않는 것 같아 홀가분한 기분으로 첫 번째 만남은
골인을 했다.
우리는 차차 헐거운 사이로 발전하고 있었고 마주 앉아 차를 나누는데 별로 어색함이 없었다.
만나면 부동산 거래에 대한 이야기와 지역별 시세, 그리고 그 외 정보를 주고 받았다. 그녀의
남편은 투자이민으로 들어오긴 했으나 마땅히 할 만한 사업을 찾지 못하다가 어느 친지의 권유로
보석상을 하며 호주에서 생산되는 오팔을 사서 한국에 보내어 세팅을 하여 역수입을 하였는데,
호주의 관광객이 점차로 줄어드는 추세가 되어 재미를 보지 못했고 그 와중에 간암에 걸려 2년여
고생하다가 세상을 하직하였고 슬하에 16세 된 딸이 있다고 했다. 그녀는 가끔 배드민턴 치는것이
취미가 되었다고 말한다. 그래서 나는 부랴부랴 배드민턴 한 세트를 구입하여 그녀와 아침시간에
불랙타운 한인회관 광장에서 같은 취미의 운동을 할 수 있을 만큼 가깝게 지낼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아직은 자세한 나의 소개를 하지 않고 다만 형님의 사업을 돕고 있으며 조만간에 영주권이 해결될
것 이라고만 했다.
호주의 9월은 서서히 봄이 돌아오는 계절이다. 사람들이 이때쯤이면 말하기를 호주는 하루에도 4계가
있다고들 한다. 아침은 아직도 싸늘하고 오전 오후는 봄과 여름 같고 해가 떨어지면 다시 가을에서
겨울이 된다고...
그래서 늘 손가방이나 배낭에 스웨터를 가지고 다니면서 시간 때에 맞추어 기온에 대처한다.
나는 오늘 회사에 출근을 하여 입주자의 파일과 신청자의 서류를 정리하고 있는데, 용식이 형(오아시스 사장)이
들어오면서 오늘 웨스트 라이드에서 옥션 한 건이 들어 왔다며 준비에 만전을 기하라고 한다.
이번 건은 역 이민하는 한국인이 내 놓은 집인데 값이 아주 좋아 낙찰이 될 확률이 높다고 귓뜸을 해준다.
나는 좋은 기회다 싶어, 즉시 안젤라 고 여사에게 전화로 오후 2시에 옥션이 있으니 꼭 참가하라고
일러주며 낙찰 예상가격를 슬며시 흘렸다.
고 여사는 옥션 시간에 맞추어 도착했다. 꽤 많은 고객들이 모여들어 사회자의 혀꼬부라진 목소리를
귀에 담았다. 70만 불부터 시작 하였다. 대 여섯 사람의 경쟁자를 물리치고 고 여사는 82만 불에 낙찰이
되었다. 고 여사는 꿈에 부푼 내 집 마련의 기회를 잡았고, 나에게는 어떤 행운의 기회가 올 것 같은
예감이 먹구름을 헤치고 장밋빛 서광이 비추고 있었다.
지금 한국에서는 김태우 정권이 들어서고 정치 경제가 활기를 띠고 있었다.
반가운 일은 호주 - 한국이 무비자 협정을 체결하여 1년 복수비자를 받을 수 있어 아무 때나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앞으로는 마음먹기에 따라 아내 지연이도 언제든지 상봉의 기회가
마련 된 것이다.
이제 디아스포라Diaspora는 더 이상 없어진 셈이니 마음만은 날아 갈 것 같았다.
고 여사는 낙찰 후 두 달여 기다렸다가 소정의 입주절차가 끝나고 새집으로 이사를 왔다.
위치는 한인회관과 차로 15분 거리인 페어필드란 곳이었다. 우리의 관계는 급진적으로 발전하고 있었다.
그녀는 모든 일을 거의 나에게 의지하고 있었다.
모르는 사람들은 부부관계로 착각하기에 이르렀다. 일이 잘 풀린다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두려운 마음도 없지 않아 있다. 호사다마란 고사성어가 나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안젤라 고, 그녀는 그동안 자기 일을 돌보아 주어 수고가 많았다며 오늘 저녁은 자기가 거하게 쏜다고
시간을 비워달란다. 그녀는 노스시드니North Sydney 쪽에 있는 인터콘티넨탈호텔Intercontinental Hotel
로 가자했다.
나는 쾌히 승낙을 했고 우리는 간단한 저녁 식사를 하고 정해진 곳으로 택시를 불러 타고 갔다.
우선 나이트클럽 민스키바에 둘이 앉았다. 그리고 코냑 2 잔을 주문했다. 한국에서 한참 잘 나가던
호시절에 마셔보곤 여기에 와서는 처음 마셔보는 코냑이었다.
그윽한 향기는 마치 그녀의 품속을 더듬는 듯 짜릿한 기분 그대로였다.
감개무량 하다는 말이 이럴 때 쓰는 듯 했다. 그녀도 내색은 안하지만 감회가 깊은 듯 알 수 없는
미소가 입가에 흐르고 있었다. 사람들은 점점 많아지고 분위기가 입장 할 때보다 한결 업 되었다.
대형 스테레오 확성기에서 요란한 댄스곡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몇몇 용기 있는 사람들이
무도장으로 입성을 하고 몸을 흔들기 시작했다. 그 수가 십여 분도 않되어 곱으로 늘어났다.
우리도 홍조된 얼굴을 마주보고 나는 나가자는 눈짓을 했다. 그녀는 자석처럼 나를 따라 나오고
나는 처음으로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 감미로움은 발을 띠기도 전에 날아갈 것만 같았다. 처음 하는
도둑질에 날 새는 줄 모른다고 벌써 12시 미드나이트가 다 되어버렸다.
안젤라는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비틀거렸다. 순전히 나를 버팀목으로 삼고 버티는 것 같았다.
나는 택시를 잡으려고 밖으로 방향을 잡는데 안젤라는 노~ 노를 연발한다. 리셥션에 방을 예약해
놓았다고 했다. 아니 ! 벌써 작정을 해놓고... 나는 또 트랩에 걸렸구나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아니 내가 무슨 토끼라도 되는가? 사람들은 왜? 나만 보면 덧을 놓고 지랄들이야! 입 속으로 중얼 댔다.
우리는 리셉션에서 키key를 받아들고 리프트를 타고 9층 보튼을 눌렀다.
방에 들어서니 다블베드가 한눈에 잡힌다. 나는 그녀를 침대에 팽개치듯 황급히 눕혀 놓고 밖으로
나가려 하자 안젤라는 내 허리춤을 꽉 잡고 놓아 주지 않는다.
그녀는 먹이감을 잡은 야수와 같았다.
그리고 더 쎄게 잡아채어 침대로 끌어들인다. 그녀는 오래 동안 허기진 늑대처럼 나에게 달려들었고
나는 그녀의 포로가 되어 스토크홈 신드롬Stockholm Syndrome 에 걸려버린 인질 신세가 되어
그녀에게 고분고분 협조하고 있었다. 얼마나 오래 참은 기다림 이었던가. 우리는 서로가
포식자가 되어 서로를 물고 뜯었다.
그 후 나는 얼마동안 그녀를 만나지 않았다. 이제 씨.피.엠.(Critical Paths Method)을 다시 그려야 했다.
나의 신분을 사실대로 말할까? 아니야 그녀가 어찌 나올지 기다려 봐야 할 것 같았다.
거울을 보니 새치가 몰라보게 많아져 있었다. 그러던 중 그녀에게서 전화가 왔다.
변호사 사무실에서 빌Bill이 날라 왔는데 확인해 볼게 있으니 한 번 만나자 한다. 그건 핑계였다.
그녀는 나를 사랑한다고 했다. 그래서 나와 결혼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건 정말 의외의 선전포고와 같았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모든 사실을 털어 놓았다.
나는 피고자가 되어 선고를 기다릴 도리 박에 없었다. 그녀는 드디어 입을 떼었다.
자기가 집을 팔더라도 이혼비용을 마련 할 터이니 본처와 이혼을 하라는 것이다.
자기는 이제 나 없이는 살수가 없다는 것이다. 진짜 고민은 지금부터 시작되었다.
해동에 날씨가 풀리듯 무비자로 관문이 열리더니 관광객과 방문자가 전보다 몇 배가 늘어 공항도
붐비고 면세점. 식당 그리고 복덕방도 덩달아 바빠졌다.
왜냐하면 장기 체류자는 방을 구하기 위해 복덕방을 찾기 때문이다.
나는 처음부터 사장 용식이 형이 마련해준 숙소에서 거처 한다.
나는 요즘 제때 잠을 자지 못 한다.
밀린 업무와 안젤라와 엉킨 실을 어찌 풀어야 할지를 몰라서이다.
그래서 잠을 들지 못하고 있는데 심상치 않은 전화벨이 귀청이 떨어지게 울린다.
“여보세요 !” “나~ 지연이 예요, 고생 많지요 ?” “뭔 일이라도 있소”
“나, 호주에 방문으로 좀 다녀오면 안 될까? ”아니 철민(아들)이는 어쩌고?“
”개는 이모네 집에 당분간 있어도 된다고 했어요.“ ” 생각 좀 해봅시다.
요새 내가 무척 바쁜데...“ 아내는 나의 퉁명스런 대답에 화가 났을 거란 생각을 하며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아 ! 이대로 죽어 버릴까 하는 생각까지 해본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던 시간은 흐르고 잠도 설쳐 있는데 창문으로 햇살이 눈부시게 들어오고 있었다.
친구 오기환은 지금 무엇을 하고 지낼까? 호주에 가지 말고 자기와 뭔가 해보자고 극구 말렸던
친구가 아니었던가, 이럴 때 그가 있다면 의논의 대상이 될 텐데...
아니다, 그 친구에게 안부도 물을 겸 내가 먼저 전화를 해보자.
나는 수첩을 꺼내 번호를 눌렀다.
신호 가는 소리가 들린다. 아직 잠이 들깬 목멘 소리가 들린다. “여보세요 !”
“나, 정민식, 여기 호주야.”
“넘 일찍 전화해서 미안해”, “야! 너, 전화 잘했어, 그렇지 않아도 오늘 쯤 전화 하려 했는데..”
그와 나는 건축기사로 함께 일하던 막역지우였다. 지금 김태우 정권에서 100만호 주택건설 정책으로
건축경기가 좋아져 일손이 부족한데 빨리 와서 자기와 함께 사업을 하자는 취지였다. 귀가 솔깃했다.
탈출의 좋은 기회라는 생각을 하며 전화를 끊었다. 하지만 우유부단한 나의 성격에 또 하나의 고민거리가
추가된 셈이다.
세상 일이란 왜 이렇게 꼬이는 걸까? 안될 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다가 뭔가 일이 되려하면
두 마리의 토끼를 쫓아야 하다니...
오늘 저녁에 또 안젤라와 약속이 잡혀있다. 안 보아도 비데오라고, 뻔한 소리를 할 것인데,
무어라 궁색한 변명을 할 까? 아내, 지연이가 온다 하는데, 그에게는 무어라 해야 하나?
안젤라를 버리고 한국으로 역이민을 할까?
풀리지 않는 실타래를 차라리 불 속으로 던져 버릴까? 그건 해결책이 될 수 없었다.
퇴근 후, 안젤라 와 나는 한국인이 뜸한 리버풀 씨즐러 뷔페집에 앉았다. 나는 죄지은 사람처럼 가슴이
두근거렸다. 어느 정도 식사가 끝나갈 무렵 그녀는 입을 열기 시작했다. 당신은 한마디로
위선자라 했다.
처음부터 자기에게 접근한 것을 다 알면서도 속는 척 했다는 것이다. PR비자를 받는데 문제가 없을
것이라 했지만, 지금 당신의 신분으로는 어렵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는 것 까지...
하지만 자기는 처음부터 민식씨가 실치 않았다고 말했다. 그래서 당신을 사랑하게 되었고 콘티넨탈
호텔에서도 용기 없는 당신을 자기가 리드한 것 이며 그때 당신의 적극적인 행동은 당신도 나를 사랑한다는
증거였다고 단정적으로 말한다. 이제 좀 더 솔직해 질 수는 없겠느냐고 꼬집는다.
나는 아무 대꾸도 하지 못했다. 침묵으로 일관 했을 뿐이다.
이제 와서 자기를 버린다면 그 것은 사랑의 배신이며 자기는 죽음으로 모든 것을 끝낼 수도 있다고
일종의 협박조로 어름짱을 놓았다.
그러면서도 우리 두 사람의 행복은 당신의 결심에 달렸다며 호소를 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그렇지만 지연이를 어쩌라고... 애끓는 소리가 가슴 속에서 응어리가 되고 있었다.
아무 말도 못하고 집으로 돌아 왔지만 그녀는 나에게 답할 시간을 주었고 나는 조만간에 수긍이
갈만한 답을 내놓아야 했다.
“울려고 내가왔던가? 웃으려고 왔던가?” 유행가 가사를 읍조리며 무어Moor 팍 호수 주변을 한없이
돌고 돌아도 답은 나오지 않았다.
더 이상 밤 이슬을 맞으며 밖을 서성일 수도 없고 주변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하여 경찰에 신고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그만 집으로 들어왔다.
잠을 청하여도 도무지 잠이 들지를 않는다. 순간 번뜩 생각이 떠올랐다. 그래 내가 죽는 거야,
그녀가 죽기 전에... 결심을 하고 나니 마음이 한결 맑아지고 천당에서 어서 오라고 종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전에도 잠이 오지 않을 때 쎄코날Seconal(수면제)을 먹다가 남은 것들을 여기저기
서랍 에서 찾아냈다. 모두 8개가 나왔다.
어떤 것은 유효기간이 넘은 것도 있었다. 어쩌면 효과가 더 좋을 수도 있겠지? 키친으로 가서 물 한 컵을
가져 왔다. 그리고 모두 한 입에 털어 넣고 물을 마셔 버렸다. 그리고 빈대처럼 침대로 기어 들어갔다.
그리고 밤은 적막했다.
내가 눈을 떴을 때 불빛이 너무 환해 다시 눈을 감았다 떴다. 아!! 여기가 천당인가?
그런데 나의 아내 지연이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가, “여보!! 이게 무슨 짓 이예요?”
아니 저 사람이 나보다 먼저 천당에 왔나?
그리고 그 옆에는 안젤라 고 여사도 나를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녀의 옆에는 배용식 사장님도 와 있었다. 말도 하기 싫다는 듯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아내 지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출입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용식이 형이 그 뒤를 따라 나가며
제수씨! 하고 불렀다.
하지만 그녀는 택시를 타고 쏜살같이 공항으로 달려가서 웨이팅을 신청 하였다가 9:50분 떠나는
아리랑 항공편으로 귀국했다.
누가 호주를 럭키컨트리라 하였을 까?
나는 두 눈에서 눈물이 주르르 흘러 내렸다. 아무도 내 두 볼의 눈물을 닦아주지 않았다.
끝.
글/최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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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아![~](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8.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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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에서 함께하는가 봅니다
제가 작문의 글을 아직 읽어보지 못했지만
마음으로 마중 부터합니다
소금바위 님
여긴 지금 비가 내리고 있답니다
호주에 거주하는 교민입니다.
무료한 시간을 메꾸기위해 졸작을 써 보았습니다.
마중하여 주심 감사합니다. 단편적인 이민사의 애환이랄 까요?
들렸다 가시기 바랍니다.
@소금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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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외국에서의 삶
마음을 내려주신 글
그런데
소금바위 님요
감기는 (고뿔) 이 단어를 어떻게 아시나요
혹시 고향이 강원도이신가요
고뿔이란 강원에서만 쓰는 사투리로 알고 있는데요
에효 두 눈에 흐르는 눈물을 .....
삶의 방에 이렇게 흘러놓으신 그 눈물은 우리들의 마음이 함께 닦아봅니다
우리 동창 한명도 카나다에 이젠 오래전에 정착 하면서 참 애환이 많았지요
소금바위 님요
@양떼목장 양떼목장님 감사합니다. 그래도 졸작을 보아주셨네요.
여러가지의 이민형태가 많지만 이민당국이 요구하는 조건에 미흡하다보니 변칙적인 방법을 쓰는 사람들도
있기 마련이드라구요. 그 단면을 짧은 소설로 엮어 보았습니다. 고뿔이란 말은 울리고향(이북 황해도)에서도
그렇게 쓰드라구요. 좋은 날 되시구요 행복을 빕니다.
이번에는 남자가 화자인 단편 소설 ....
이민자의 애환을 잘 그려주셨네요..
세련된 소설적 기법과 플롯..
시간 보내기에 글쓰는것이 참 좋은 방법이지요.. 창작의욕이 있다면...
잘 읽었습니다.
먼저번 스토리와 유사하지만 다른 방법으로 시도해 보았습니다.
저는 시와 수필은 더러 써 보았지만, 소설은 그동안 어렵게 생각하여 감히 써볼 생각을 못하였지요.
그래서 한 번 시도해본 졸작입니다. 좋게 봐주시니 도전해 볼 의욕이 생기네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