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소개
음식이 수놓은 세계사의 27가지 풍경
음식이 실제 외교 현장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역할을 했는지 세계사의 27가지 풍경을 통해 살핀다. 윈스턴 처칠, 이오시프 스탈린, 로널드 레이건, 시진핑, 버락 오바마 등 각국의 정상들이 실제 주요 협상에서 식탁을 어떻게 활용했는지 그 현장을 생생하게 전해준다. 그것을 통해 외교가 어떻게 이뤄지는지, 음식과 식탁이 어떤 대목에서 어떤 맥락으로 외교의 윤활유가 되는지를 현장감 있게 설명해 준다. 또한 상대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상황에 맞지 않은 음식을 내놓는 것이 얼마나 부정적인 역할을 하는지도 역동적으로 묘사한다. 책에 나오는 장면들을 따라가다 보면 외교 현장을 더욱 실감나고 흥미 있게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음식이라는 소재를 통해 세계 외교와 현대 세계사를 알차게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 저자 소개
안문석
1965년 전북 진안에서 출생해 서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영국 요크대학교(University of York)에서 정치학 석사, 영국 워릭대학교(University of Warwick)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KBS 통일부, 정치부, 국제부 기자를 거쳐 정치부 외교안보데스크를 지냈다. 2012년부터 전북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동북아 국제관계, 북한의 대외관계, 미국 외교정책 등에 대해 강의하고 있다. 남북관계의 발전과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통일외교 방안 등에 관심을 갖고 꾸준히 연구하고 있다.
활발한 저술활동을 통해 『북한현대사 산책』 1~5권, 『오기섭 평전』, 『김정은의 고민』, 『외교의 거장들』, 『글로벌정치의 이해』, 『무정 평전』 등 다수의 저서를 펴냈으며, “The Sources of North Korean Conduct”(International Journal, 2020), “문재인 정부와 한미동맹―동맹의 지속성에 대한 고찰”(『한국동북아논총』, 2018) 등 한반도와 국제정치 관련 논문을 국내외 학술지에 지속적으로 발표하고 있다.
📜 목차
프롤로그: 음식은 외교의 윤활유다
1. 달콤한 외교
패전국 프랑스를 승전국 지위로 올려준 카렘의 디저트
미국과 중국 긴장 녹인 녹차 파르페
2. 깊은 풍미의 외교
헨리 8세를 전쟁도 불사하게 만든 파르메산 치즈
치킨 카레로 빅토리아 여왕을 사로잡은 인도 시종
소련에게 진짜 승리를 가져단 준 캐비아
냉전을 데탕트로 이끈 베이징 덕
중국-미국 해빙 촉진한 송아지 고기
중국-영국 앙금을 씻어준 불도장
이란 핵문제 풀어준 이란 빵 라바쉬
한반도에 훈풍 몰고온 옥류관 냉면
3. 스토리가 있는 음식 외교
처칠의 눈물 젖은 빵 피시 앤드 칩스
냉전 해체의 촉매가 된 러시아 마을 와인
이스라엘-요르단 국경 넘나든 도미의 평화 만들기
중국-북한 혈맹 복원시킨 2억 원짜리 마오타이
북한-미국 동등 파트너 상징한 콤비네이션 메뉴
4. 역발상 음식 외교
핫도그도 외교음식이 될 수 있다
북한-미국 파국 막은 타바스코 스파게티
오바마의 햄버거 외교
5. 씁쓸한 외교
키신저를 열 받게 한 비너 슈니첼
‘캐비아 좌파’ 올랑드 조롱한 캐비아 만찬
프랑스의 와인 자존심, 이슬람 율법, 그리고 취소된 오찬
일본 총리에게 내놓은 신발 디저트
6. 독한 맛 외교
중국을 벌벌 떨게 한 스테이크
숭배의 대상이 된 외교 선물 망고
아버지 부시의 재선 막아선 연어 회
러시아의 무법자를 키운 세계 3대 진미 만찬
프랑스 정치와 외교에 깊이 파고든 쿠스쿠스
에필로그: 음식은 사람을 인간적으로 만들어준다
📖 책 속으로
카렘은 요리사 복장도 표준화했다. 그가 만들어서 쓰던 요리사 모자 토크toque는 오늘날 세계 어디서나 요리사 모자로 통용되고 있다. 토크를 만든 이유는 물론 음식에 머리카락이 떨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런가 하면 토크에는 101개의 주름이 있는데, 이는 달걀 요리 법 101가지를 의미하는 것이다. 웬만한 요리는 다 할 수 있다는 요리사의 자부심을 하얀 모자에 담은 것이다. 역시 그가 입기 시작한 두 줄 단추의 흰색 코트도 오늘날 요리사의 전형적인 복장이 되었다. 코스 요리를 만찬 문화에 도입해 정착시킨 인물도 카렘이다. 당시 프랑스식 만찬은 여러 가지 요리를 식탁 위에 올려놓고 먹는 것이었다.
--- p.26
그날 만찬의 실제 하이라이트는 디저트였다. 오렌지 셔벗과 녹차 파르페, 금귤 파이, 망고 푸딩이 화려하게 세트로 차려졌다. 파르페에 첨가된 녹차는 중국에서 공수한 것이었다. 모두 달콤하기 이를 데 없는 것들이다. 달달한 디저트를 고상한 음악과 함께 즐기며 클린턴과 주룽지는 부드러운 관계를 형성해갔다. 음식, 그중에서도 달콤한 디저트를 같이 먹으면서 쓴소리를 하기는 어렵다. 아주 단 초콜릿을 준 사람에게는 달달한 얘기를 해주지 않을 수 없다. 미국과 중국이 역사와 문화, 이념을 달리하고, 경제적 이해관계도 크게 달라 긴장 관계를 이어가는 상황이었지만, 클린턴과 주룽지는 달달한 녹차 파르페를 같이 즐기면서 서로 관계를 개선하자는 희망적인 얘기를 주고받았다.
--- pp.32∼33
덩샤오핑이 영국 여왕을 위해 마련한 만찬의 메인 요리는 불도장佛跳牆이었다. 길 가던 스님이 냄새를 맡고 담을 넘을 수밖에 없었다는 요리다. 샥스핀과 전복, 해삼, 자라, 잉어 부레, 조개, 새우, 사슴 꼬리, 비둘기 알, 메추리 알, 돼지 힘줄, 닭 염통, 오리 염통, 닭고기, 오리고기, 죽순, 구기자, 동충하초, 표고버섯, 용안, 인삼 등 30여 가지의 재료를 중국의 명주 가운데 하나인 소흥주가 담긴 항아리에 넣고 연잎으로 밀봉해 약한 불에 다섯 시간 정도 달여서 만들어낸다.
--- p.103
2007년 이후 11년 만에 다시 남북 정상회담이 열리게 된 만큼 어떤 얘기를 하고 어떤 합의를 이룰 것인가가 가장 중요한 관심사였지만, 남북의 정상이 무엇을 함께 먹을지도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의미와 상징이 있어야 하고 품위와 격식도 갖춰야 했다. 판문점 남측에서 회담이 열리는 만큼 만찬은 남측에서 준비하는 것으로 했다. 김대중 대통령의 고향인 전남 신안 가거도 민어와 해삼초를 이용한 민어해삼 편수(여름철 만두), 노무현 대통령의 고향 경남 김해 봉화마을에서 오리 농법으로 생산한 쌀로 지은 밥, 정주영 현대 회장 방북 당시 소떼를 제공했던 서산 목장에서 나온 한우를 이용한 소고기 숯불구이, 남북을 오가며 음악을 통한 남북한 화해를 지향했던 작곡가 윤이상의 고향 통영 앞바다 문어로 만든 냉채 등이 남북 정상회담 만찬 메뉴로 준비되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자란 부산에서 유명한 흰살 생선 달고기를 이용한 생선구이, 김정은 위원장이 유학한 스위스의 뢰스티를 우리식으로 해석해 만든 감자전, 비무장지대 산나물로 만든 비빔밥도 포함되었다. 여기에 특별히 포함된 것이 평양냉면이다.
--- pp.128∼129
2018년 3월 26일, 베이징 인민대회당 연회장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초청해 만찬을 차렸다. 전통적으로 중국과 북한은 서로를 사회주의 동지 국가로 존중하면서 상대의 정상을 국빈으로 모셔온 만큼 이날 만찬에도 최고의 음식들이 즐비했다. 하지만 이 산해진미들은 술 한 병에 밀려 진가를 전혀 발휘할 수 없었다. 바로 마오타이였다. 마오타이도 그냥 마오타이가 아니었다. 마오타이 중에서도 최고인 ‘아이쭈이 장핑’ 브랜드였다. 1960~1970년대 생산된 것으로, 한 병에 2억 원이 넘는 것이었다. 한 잔에 320만 원쯤 되는 셈이다. 시진핑은 보통 국빈 만찬주로 60만 원 정도 하는 마오타이를 사용하는데, 김정은에게는 아주 특별한 마오타이를 내놓은 것이다.
--- p.1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