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학교 수경원 터 안쪽에 남아 있는 흥아유신기념탑(興亞維新記念塔)의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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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세대학교 구내 수경원 터 안쪽의 후미진 공간에 남아 있는 '흥아유신기념탑'의 모습이다. 왼쪽은 양화진외국인묘지에서 사용하던 언더우드(원한경)의 옛 묘지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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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2년 조선총독 미나미 지로(南次郞)의 글씨로 새긴 흥아유신기념탑이다. 뒷면에는 '소화 16년(1941년) 12월 8일'이라는 표시가 남아 있다. 이 기념탑은 적성국가의 것이라고 하여 당시 언더우드 동상을 끌어내리게 한 다음, 그 대좌를 그대로 사용하여 바로 동상이 서 있던 그 자리에 설치했던 내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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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와편의 한면을 활용하여 적어놓은 흥아유신기념탑에 대한 간략한 설명문안이다.
[관련자료]
학원(學園)의 미영색 격멸(米英色 擊滅)
세브란스의전(醫專) 교명변경(校名變更), 연전(延專)의 미인동상제거(米人銅像除去)
<매일신보> 1942년 1월 30일자
총후에 남아 있는 미영(米英)의 색채를 깨끗이 씻어버리고 있는 이때 미, 영의 재정적 원조를 많이 받아왔던 '미션' 계통의 두 전문학교에서 미영색을 일소해버린 낭화!
그 하나는 사립의학전문학교로서 하나밖에 없는 '세브란쓰'의전(世醫專)에서는 이번에 단연 학교명칭을 갈기로 되었다. 동의전에서는 지난 12월 동교 이사회에서 오긍선(吳兢善) 교장을 비롯하여 이사 제씨들이 협의한 결과 '세브란쓰'라는 명칭을 욱의학전문학교(旭醫專)로 고치기로 결정하고 방금 학무당국에 인가신청 중에 있다. 동의전은 지금으로부터 40년전 제중원(濟衆院)이란 이름의 병원이었었는데 30년전부터 '세부란쓰'란 명칭을 붙이어 조선초의 최초 의학전문으로서의 기구를 갖추었던 것이다. '세브란쓰'란 미국사람의 이름인데 그는 창립초부터 전교장 '에비슨(魚丕信)' 박사의 권고에 의하여 다액의 자금을 보내어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동교에 많은 공로와 원조를 주었다. 그는 대정(大正) 원년에 작고하였으나 그뒤에도 여전히 그 아들이 계속적으로 동교를 위하여 자산동결령(資産凍結令)이 있기 전까지 일조를 하여왔다. 그러나 동교에서는 국민교육기관으로써 미국사람의 이름을 본뜬 교명은 도저히 국민적 양심이 허락지 않음으로 글자 그대로 빛나는 욱(旭, 아사히)의전으로 고치기로 된 것이다.
이에 대하여 동교 이영준(李榮俊) 부교장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아직 정식의 허가는 없으나 신청중인 것은 사실입니다. '세부란쓰'란 분은 이 학교기금의 태반을 기부한 분으로 기왕에 공헌이 따랐던 것만은 사실이며 인간적으로 이 학교로서는 영원히 기념할 만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미영격멸의 오늘에 있어서 더욱이 황민교육을 맡은 우리로서는 도저히 이러한 비시국적인 이름을 둘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모름지기 새이름이 말하는대로 반도에 빛나는 학교로써 힘을 다하려 합니다."
또 하나는 신촌정(新村町)에 있는 현희전문학교(延專)에서는 과거 15년 동안 교정에 세워두었던 동교 초대교장 '에취, 지, 언더우드(元斗尤)' 박사의 동상(銅像)을 없애고 미국색을 학원 안에서 몰아내기로 되었는데 이 동상 대신에는 이 자리에다는 큰 돌로다 대동아공영권의 지도를 새여 길이길이 격멸미영을 기념하기로 되었다.
총독휘호(總督揮毫)의 흥아유신기념탑(興亞維新記念塔)
연전(延專) 언더우드 교장(校長) 동상(銅像) 자리에 건립(建立)
<매일신보> 1942년 4월 12일자
아세아인을 위한 아세아건설을 교육의 지표로 삼는 반도학원에 적성국인의 동상을 남겨둠은 부당하다고 지난번 신총정(新村町) 연희전문학교(延專)에서는 교정에 있던 초대교장 미국사람 언더우드의 동상을 제쳐버리고 그 대신 동아공영권 지지(지도?)를 새긴 비석을 세우기로 되었었는데 이번 이것을 고치어 더 적극성을 띄인 그 이름도 흥아유신기념탑(興亞維新記念塔)이라는 드높은 돌탑을 전의 동상 자리에 세우기로 되었다. 이번 세우는 화강암(花岡岩)기념탑은 높이가 15척이나 되는 것으로 특히 남(南, 미나미) 총독이 여기에 '흥아유신기념탑'이라고 건필을 휘둘러 이 학원의 감격을 더욱 높여주기로 되었다.
탑은 석공(石工)의 손으로 벌써 전부 만들어져 총독의 글씨를 받는 대로 바로 세워져 청년학생들의 가슴에 흥아건설전에 분전할 맹세를 굳게 새겨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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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일신보> 1942년 4월 25일자
흥아유신기념탑(興亞維新記念塔)
연전교정(延專校庭)에 동상(銅像) 대신 건립(建立)
<매일신보> 1942년 4월 25일자
24일 오후 영시반 네모진 화강석(花岡石)의 뾰족탑 흥아유신기념탑(興亞維新記念塔)이 학원의 기개를 상징하는 듯 교정의 한 가운데 드높게 세워졌다. 신동아의 지도자를 양성하는 반도학원 안에 개인의 공로는 여하간 적국인의 동상을 두어둘 수는 없다 하여 대현정(大峴町) 연희전문학교(延禧專門學校)에서는 지난번 이사회에서 초대 '언더우드' 교장의 동상을 없애기로 하여 동교 27주년 기념일인 이날을 당해서 이동(伊東) 교장 이하 직원과 학생대표자들이 모인 가운데 지난 11년 동안 서 있던 이 동상을 떼어버리고 그 자리에다 일동이 경건한 마음으로 국민의례를 하고 남(南) 총독의 휘필이 새겨진 흥아유신기념탑을 세웠다. 탑을 둘러싼 면면에는 개인공로자에 대한 섭섭한 정보다는 새 역사 창조의 웅대한 구상을 그리는 생각이 흥아탑의 뾰족한 끝을 우러러 보는 여러 눈과 눈에 샛별같이 빛나고 있었다. (사진은 연전의 흥아유신탑)
(정리 : 이순우, 2010.10.8, http://cafe.daum.net/distorted)
첫댓글 자료 잘 보았습니다. 저희 학교 측의 다른 자료에서는 이 기념탑의 '소화 16년 12월 8일' 은 일본의 미국 진주만 공습일에 맞춘 것이라고 하더군요.
나중에 한 번 가봐야겠습니다. 좋은 자료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좋은자료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