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계의 비틀즈! 21세기의 미술계를 이끄는 주역, 데미안 허스트! "The Physical Impossibility Of Death In The Mind Of Someone Living" - 1991 악명 높은 작품 [살아있는 누군가의 마음에서 불가능한 물리적인 죽음] 에서는 포름알데히드 유리상자 속에 떠 있는 상어를 보여줬다 ![]() Do You Know What I Like About You?, 1994-95 토막난 상어뿐만 아니라 돼지와 양들을 보면 몸에 대한 고귀한 생각들을 가차없이 거둬버린다 ![]() This little piggy went to market, this little piggy stayed at home (1996) 하나의 돼지를 반으로 갈라 놓아 앞면과 뒷면이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상황에 따라 살아있는 돼지 일 수 있고 또 마켓으로 가서 근수로 팔리는 돼지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럼, 삶은 죽음일까? ![]() "Away From The Flock" - 1994 그의 표현 방법은 매우 직접적이고 충격적이며 제목 붙이는 감각도 탁월하다 그는 미디어의 우상이자 유명인사가 되었다 허스트의 작품은 삶이 죽음으로 가는 과정에 대한 고찰이다 미술이 폭력적이 된 것은 세상이 폭력적이기 때문이라는 작가의 말은 굉장히 설득력이 있다 그 설득력이라는 것도 진지한 고뇌가 밑에 깔려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 "Isolated Elements Swimming in the Same Direction for the Purpose of Understanding" - 1994 ![]() ![]() Party Time, 1995 ![]() Spin, 2001 ![]() Lysergic Acid Diethylamide, 2000 ![]() Damien Hirst with dead head [관련 기사] 출처 : 월간 미술 현대미술의 ‘무서운 아이’ 데미언 허스트. 미술을 뛰어 넘어 이 시대 현대미술의 아이콘으로 자리한 그에게는 예술가로서 자신의 존재론적 위상에 예리한 통찰이 숨어 있다. 데미언 허스트의 작품 세계를 통해 그를 해부해 본다 ‘미스터 데스(Mr. Death)’, ‘악마의 자식(devil child)’, ‘무서운 아이(enfant terrible)’, ‘컬트 조각가’, ‘잔혹한 현대작가’…. 최근 미술계뿐 아니라 대중매체의 스타로 떠오른 ‘yBa(young British artists)’의 기수 데미언 허스트(Damien Hirst, 1965∼)에게 붙여진 별명들이다. 그가 무서운 것은 포름알데히드에 절인 동물의 사체가 되뇌는 <죽음의 경고)>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의 빈틈없는 페르소나 만들기 전략과 그 전략의 기분 나쁠 정도로 높은 적중률 때문이기도 하다. 허스트가 만들어 낸 자신의 얼굴은 살아남기를 염원하는 이 시대 많은 젊은 미술가들의 아이디얼 모델이다. 그것은 매우 빠르게 만들어졌지만 그렇게 쉽게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보헤미안의 무거운 자존심도, 가벼움을 자처하는 포스트팝적 냉소도 이제 호소력을 잃었음을 꿰뚫어보는 그의 ‘무서운’ 안광은 그의 상업적 성공을 우연한 행운 정도로 지나쳐 버릴 수만은 없게 한다. 그의 진정한 성공은 당대의 예술가로서 자신의 존재론적 위상에 대한 예리한 통찰에 있다. 그는 예술가의 얼굴을 통해서나 작품을 통해서나 관자의 ‘보고 싶은’충동에 부응하는 것이 스펙터클의 시대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길임을 간파하고 있다. 프리즈, 브릿팝, 허스트 매슈 콜링스는 영국의 현대미술이 프랜시스 베이컨에서 허스트로 이어진 상황을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슈트를 차려 입고 비엔날레들을 전전하며 항상 같은 인터뷰를 반복하는 기성 미술가들에 비교하면… 이 솔직하게 비천한 사춘기적 양식은, 비록 잠시뿐이라도, 신선함을 준다.” 1990년대 초부터 yBa로 주목받기 시작한 허스트와 그의 동료들은 영국 미술계에 이런 기후 변화를 가져온 주역들인데, 그런 변화는 허스트가 기획한 <동창전>에서 이미 그 예후가 나타났다. 1988년 여름, 이제 영국 젊은 세대 미술의 산실이 된 골드스미스 컬리지의 학생이었던 허스트는 런던 남동쪽의 버려진 창고에서 친구들과 그룹전을 연다. 그 후 수많은 창고전의 시조가 된 이 전시는 ‘프리즈(Freeze)’라 명명되었는데, 이름과는 달리 결코 얼지 않는 ‘프리즈 제네레이션’이라는 물줄기로 흐르게 된다. 사라 루카스, 게리 흄, 피오나 래이 등 지금은 익숙한 이름들이 포함된 이 전시가 영국과 미국의 유수 딜러들의 눈길을 끌게 됨으로써 영국 현대미술의 지난 10년의 모습이 주조되어 왔으며, 1997년의 <센세이션(sensation)전>을 통해 그 모습은 더 깊게 각인되었다. 사소하고 비천하기까지 한 사물들을 예술의 문맥으로 이동시키는 이들 작업은 보이스나 나우먼, 심지어 뒤샹까지 그 선례로 거론된다. 또한 대중매체와 소비문명의 감각을 체질화하는 점에서 제프 쿤스나 하임 스타인바흐 같은 미국의 포스트팝 작가들이 더 가까운 선배로 일컬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들이 이 모든 선례들과 구분되는 ‘브릿팝(Britpop)’이라는 이름표를 달게 된 것은 모든 양식과 매체, 주제를 가로지르는 다양성과 파격 때문이다. 그들은 매스미디어와 상품의 세계를 거침없이 드나들면서 성·폭력·마약 등에 이르는 주제들을 섭렵해왔다. 그들에게 고급과 저급의 문제는 더 이상 넘어야 할 장벽이 아니었으므로 보이스처럼 심각하거나 나우먼처럼 분석적일 필요도, 워홀처럼 애써 무관심을 가장하거나, 쿤스처럼 마냥 가벼울 필요도 없었다. 그들은 무엇보다 당대적이고 접근하기 쉬운 예술을 지향했으므로 비판의 기능을 잃은 문화적 상대주의자들로 평가될 위험마저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술의 영역을 떠나서는 안 팔린다는 것을 아는 현실주의자들이었다. 기존 제도와 거리를 유지하면서도 너무 멀리 가지는 않는 그들의 전략은 조지 포스트의 말처럼 경영학의 케이스 스터디 감이다. yBa라는 탄탄한 프랜차이즈의 브랜드 네임들이었던 그들에게 예술은 안과 밖의 문제일 뿐이므로 양쪽을 오가는 유연한 기호를 만들어 내는 것만이 과제가 되었다. 그중 허스트가 가장 윗자리에 서게 된 것도 가장 융통성 있는 기호를 만들어 냈기 때문일 것이다. 그가 영국 현대미술을 주물러 온 예술 사냥꾼 찰스 사치와 당대 미술시장을 리드해온 갤러리 화이트 큐브의 주인 제이 조플링의 눈에 띄지 않았다면 오늘의 모습과는 달랐을 것인데, 그가 만들어 낸 기호의 상품성을 그들이 놓칠 리가 없었다. 특히 이미 <현재의 뉴욕 미술(new york art now)전>(1987.9∼1988.4)을 통해 포스트팝을 소개한 사치의 눈이 허스트에 머문 것은 우연이 아니다. 허스트 또한 슈비터즈식의 콜라주에서 방향을 전환하게 한 촉매제로서 그 전시의 영향을 자인한다. 그러나 그는 깨끗한 상품들뿐 아니라 더럽고 악취 나는 담배꽁초 등의 쓰레기로부터 끔찍한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죽은 동물들과 의료도구들에 이르기까지 차용의 폭을 넓히고 무관심과 냉소 이면에 비장함과 숭고함을 감춘 미묘한 감각으로 설치를 마무리함으로써 자신만의 기호들을 만들어 냈다. 그리하여 1991년 런던에서 열린 최초의 개인전 이후 같은해 파리 개인전, 다음해 뉴욕 개인전, 1993년 베니스 비엔날레 등 각종 국제전, 그리고 1995년의 터너상 등을 통해 그는 베이컨과 호크니를 잇는 영국미술가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으며, 특히 1996년과 2000년 두 번에 걸친 <가고시안전>을 통해 뉴욕에서도 입지를 굳혔다. 이렇게 허스트의 작업이 빠르게 부상한 것은 무엇보다 그것이 고급문화 취향에도, 대중적 센세이셔널리즘에도 두루 부응하는 진지한 예술이자 값나가는 상품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전문미술시장뿐 아니라 대중문화 산업의 역학을 바꾸어 놓았다. 그는 1990년대의 미술은 대중의 공간에 진입하지 않고는 살아남을 수 없음을 간파하고 영화·뮤직비디오·TV 및 잡지광고·출판과 각종 상업도안 등의 사업을 병행한다. 여기에다 ‘약국’이라는 레스토랑을 경영하면서 “좋은 비즈니스가 가장 훌륭한 예술이다”라는 워홀의 경구를 실천한다. 또한 자신의 이름이 대중매체에 빈번이 오르내리는 것을 마다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적극적으로 이용한다. 허스트는 예술가의 페르소나마저 스펙터클이 되어 작업에 환원되는 후기산업사회의 문화생리를 체득한 것이다. 그러나 그는 “나는 예술이 삶이 되기를 바란다”고 하면서도 그 말 끝에 “절대로 그렇게 될 수는 없지만”이라는 단서를 덧붙일 줄 아는 영악한 작가다. 이런 면모들로 인해 허스트는 충격 이상의 것을 탐구하지 않는 기회주의자로, 그의 작품은 베이컨과 팝 및 포스트팝, 개념미술, 미니멀리즘 등을 적당히 섞은 절충주의로 비판의 표적이 되어 온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범주화를 끊임없이 벗어나는 허스트의 기호들은 이런 비난들을 이리저리 비껴 왔다. 그가 만들어 낸 부정(否定)의 기호들은, 적어도 지금까지는, 이것도 저것도 아닌 것에 그치지 않고 오히려 모든 것이 되는 유연한 기호로 기능해 왔다. 그것은 아마도 그의 기호들이 부정 그 자체인 죽음을 지칭하는 것으로 비쳐왔기 때문일 것이다. 죽음의 미즈 엉 센느 허스트의 작품에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한 것은 살충기에 의해 죽어 가는 파리와 소의 머리를 함께 설치한 <백년> 또는 <천년>(1990)과 같은 초기작부터다. 그 후, 통째로 또는 절단된 동물들이 포름알데히드 용액 속에 매달린 유리케이스, 수술도구나 약, 또는 해부모형이 진열된 의료 캐비닛, 시체나 해골의 모형, 에어펌프 위에서 가까스로 균형을 유지하고 있는 탁구공과 비닐풍선, 현란한 색채의 스폿 페인팅과 스핀 페인팅, 그리고 고급문화의 냄새를 풍기는 현학적인 긴 제목이 쓰인 레이블 등이 허스트의 아이콘 목록이 되었는데, 그것들은 결국 ‘죽음’이라는 주제로 수렴된다. 예술을 위해 살육을 감행하는 그의 죽음 강박증은 <살아 있는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육체적 죽음의 불가능성>(1991)이라는 긴 제목의 작품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허스트는 사치로부터 작품을 의뢰받자 자기도 모르는 오스트레일리아의 상어잡이에게 전화를 걸어 죽은 상어를 주문했다. 그는 그것을 포름알데히드가 가득 찬 유리케이스 속에 매달고 모터를 연결하여 움직이게 하여 전시했다. 영원한 삶을 말하는 낭만적인 제목과는 달리 작품에는 매우 차갑고 먼, 심지어 미묘한 웃음까지 머금은 허스트의 시선이 서려 있다. 그는 죽음과 그것에 이르는 고통에 대한 ‘관음증(voyeurism)’에, 두려우면서도 떨쳐 버릴 수 없는 그 강한 충동에 매우 능숙하게 부응함으로써, 관람자와 시선을 공유하고자 한 것이다. 죽음의 장면을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엿볼 수 있게 하는 것인데, 그 잔혹성은 소나 양, 돼지 등을 토막내 전시한 작품들에서 극에 달한다. 특히 소와 송아지의 절단된 사체로 된 <분리된 어머니와 아이>(1993) 또는 황소의 머리에 성인들 이름을 붙인 <12제자>(1994)에 이르면 죽음의 동물농장은 제목과 대비되어 신성모독의 경지에 이른다. 이들 작품에서는 동물이 대역이 되어 인간의 죽음을 연기했던 것인데, 최근 가고시안 전시에서는 인체와 그 부분들이 직접 등장하여 인간의 죽음을 더 가까이에서 이야기한다. 시체해부대에 놓인 <아담과 이브>는 최초 인간의 죽음을 통해 인류의 필멸성을 선언하며, 사지가 유리판에 의해 4등분된 채 안구가 돌출되어 공중을 떠도는 해골은 <죽음은 부적절하다>고 외친다. 그것은 육신으로부터 분리된 시각정보를 계수화하여 시공을 초월한 복제를 감행함으로써 죽음을 초월하려는 신경과학의 야망을 기대하는 듯하다. 인간을 직접 등장시키지 않더라도 일상의 생활공간을 통해 삶의 무상함을 말하는 경우도 있다. 〈죽음과 죽는 과정에 대한 불가해한 공포>에서 먼지 낀 낡은 가구들, 소파를 찌름으로써 거세공포를 일깨우는 톱, 녹물 또는 체액이 흐르는 듯한 유리창, 널린 의학서적 등은 우리 삶에 필연적으로 드리운 죽음의 그림자들이다. 이런 모든 이야기들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유리 케이스 속에 넣어진다. 흰색 또는 검은색 프레임의 육면체는 모더니스트 회화의 그리드처럼 ‘예술’의 경계를 지키는 순수형식의 틀이자 그것을 깨는 불순한 상자다. ‘덧없는 삶을 둘러싸는 조각’을 만들기 위한 장치라는 작가의 설명처럼 그것은 우선, 허스트의 전속화랑 이름이기도 한 ‘화이트 큐브’신화의 증표다. 그러나 그 큐브는 그 속의 것들을 지키는 성전일 뿐 아니라 그것들을 엿보게 하는 진열장이기도 하다. 그것은 ‘보기’를 유도하고 또한 보장한다. 유리로 밀폐된 그 공간은 폐쇄공포증을 떠올리면서 그 속에 담긴 이야기를 더 극적으로 만든다. 또한 연극의 무대처럼 그 장면들을 현실로부터 분리함으로써 그것이 만들어진 것임을 주지시키고, 따라서 관람자로 하여금 그것과의 심리적 거리를 임의로 컨트롤하게 한다. 마치 객석의 관객처럼 관자와 연기자 사이를 왕래하면서 관음증적 충동을 마음놓고 충족하게 하는 것이다. “예술은 리얼하기보다 연극적이다”라는 자신의 말처럼 허스트의 전시공간은 조명과 무대장치 그리고 배우들로 죽음의 스토리를 전개하는 공포 드라마다. 그가 베이컨에게서 이어받은 유전자가 있다면 그것은 무엇보다 틀지은 공간 안에 울리는 ‘죽음의 미즈 엉 센느(mis en sc럑e)’이다. 의학의 사회심리학 허스트의 죽음 이야기는 죽음과 그것에 이르는 고통을 극복하려는 의학과 그것이 내포한 사회심리적 의미로 진전된다. 그는 거의 전문가와 같은 태도로 병리학과 약학, 법의학, 또는 범죄심리학 등에 대한 지식을 탐구하며, 이를 작업에 응용한다. 심지어 최근의 전시에는 <이론들, 가설들, 방법들, 접근들, 가정들, 결과들, 그리고 발견들>이라는 명제를 붙이고 그 카탈로그는 법의학 저널에서 발췌한 글들이 주를 이루는 보고서 형식으로 만들었으며, 미술비평가의 글과 함께 병리학자의 평문을 실었다. 사체 사진을 비롯한 각종 법의학 자료 사진과 작품도판이 나란히 실린 페이지들처럼 그의 작업은 과학과 미술 사이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허스트가 고전적인 의미의 과학자가 아닌 것은 과학의 전통적 가정들의 허구를 끄집어내는 데 있다. 이 전시의 명제와 같은 제목이 붙은 작품에서, 에어펌프 위를 떠도는 탁구공들은 질서와 무질서의 연속성을 연출하면서 인과론을 위반한다. 그것은 불확정성이나 비선형성을 주목하는 최근의 물리학 담론에 대한 시각적 메타포인 셈이다. 그는 의학에 대해서도 단지 의료기재나 약품을 재료로 차용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것에 내재한 복합적인 의미를 드러내고자 한다. 산부인과와 시체실을 재현한 예들은 병원에서 시작해서 병원에서 끝나는 현대인의 삶을 말한다. 각종 의료장비들로 이루어진 병원이라는 환경은 인간의 생명을 그래픽화한다. 생명은 병원에서 관리됨으로써 자연의 호흡을 잃어버리고 추상화되는 것이다. 의료가 소비행위가 되며, 약도 상품이 될 수 있는 것은 이런 근거에서다. <삼위일체〉(2000)는 약리학·생리학·병리학 등 의학의 각 영역이 맹목적 믿음의 대상이, 그것도 매우 값비싼 토템이 되고 있음을 말한다. 가고시안 화랑의 중앙에 놓였던 캔디 칼라의 해부모형은 거대한 토템 그 자체다. <약국>(1992)은 “모든 약은 탄생과 죽음 사이에 있다”는 자신의 말을 가시화한 것이다. 그는 또한 대량생산되는 각종 알약들을 똑같이 찍어내 올오버로 구성함으로써 <공허〉(2000)란 이름으로 추상화하며, 다양한 약물의 이름이 붙여진 스폿 페인팅들 또한 옵티컬 아트로 만든다. 현대의 약품들은 구체적인 신체와 질병을 떠나 하이퍼리얼한 물신의 영역으로 진입하고 있는 것이다. 제약산업은 이제 병을 극복하기보다 영토를 정복하는 데 바쳐지고 있다. 그것은 <최후의 만찬>(2000)에서와 같이 모든 음식을 대치할 때까지 지속될지도 모른다. <보는 방법>(2000)은 이렇게 생명을 과학적으로 접근하는 시각에 대해 말한다. 실험실의 병리학자는 뉴런과 DNA 등 미시적인 정보의 네트워크로 환원된 생체 현상을 들여다보고 있다. 그가 목표로 하는 질병의 정복은 밀폐된 공간 너머의 바닷가 풍경과는 동떨어진 비현실적인 세계에서 이루어지는 추상화된 생명의 연장일 뿐이다. 그러나 <이전처럼>(2000)의 칼날과 낡은 히터, 기부금을 요구하는 불구의 어린이가 시사하듯이, 실험실은 논리 밖에서 벌어지는 외부세계의 제약과 한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흰색의 비닐 풍선이 수많은 칼끝 위에 아슬아슬하게 떠 있는 <고통의 역사〉(2000)에서처럼, 우리는 항상 베이컨이 말한 ‘현실의 잔인함’에 노출되어 있는 것이다. 그 잔인함은 아마도 성적인 쾌락과 출산이 내포한 폭력성을 통해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날 것이다. <러브 로스트>와 <로스트 러브>(2000)라고 명명한 한 쌍의 작품은 산부인과 진료실을 물고기가 헤엄치는 수조로 만든 것이다. 풀어 놓은 목걸이와 반지는 이것이 성과 출산의 장면임을 암시한다. 진화의 초기 단계에 속하는 물고기는 태아로, 물은 양수로 볼 수 있다. 물고기는 남성기와 다산의 심벌이기도 하지만 자궁을 역겹게 표현하는 ‘fishy vagina’ 라는 말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오색의 열대어가 헤엄치는 쪽은 모성의 기쁨을, 검은색의 물고기가 들어 있는 수조는 출산의 책임과 고통 같은 어두운 측면을 말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둘의 제목이 결국 같은 의미인 것처럼 쾌락과 고통은 같은 동전의 양면일 뿐이다. 인간의 몸, 그것도 정상에서 일탈된 몸을 다루는 의학은 이와 같이 삶의 폭력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현장일 수밖에 없다. 살해된 시체들의 자료사진들로 가득한 카탈로그가 보여 주는 것처럼 허스트의 호기심은 근래에 범죄심리와 법의학 쪽으로 옮겨 가고 있다. <풍경 속의 인물들〉(2000)은 소름끼치는 범죄영화에 다름아니다. 핏빛으로 쓰인 “stop me b4 i kill again”이라는 연쇄살인범의 글씨는 살인강박증에 대한 공포라기보다 다시 살인을 저지르리라는 엽기적인 경고로 보인다. 그 살인범은 검은 비닐봉지에 담긴 절단된 신체들로 <풍경 속의 인물들>이라는 평범한 제목의 그림을 만들면서 가학의 쾌락에 빠져 있는 것이다. 결국 죽음의 무소부재라는 하나의 주제에 초점을 맞추어 온 허스트의 내레이션은 생각만큼 단순하지 않다. 동물 살육의 희생제의와 스핀페인팅의 낙천적 축제가 공존하며, 바로크적 계시록이 건조한 논리의 그릇인 큐브 속에 담겨 있는 허스트의 작업은 한 가지 플롯을 따라 읽어 내기가 어렵다. 그에게 죽음은 삶을 연장하는 계기이기도 하며, 의학은 차가운 과학인 한편, 구원의 신화이자 불길한 컬트이기도 하다. 그의 표정에서는 절망도, 매혹도, 냉소도 명확하게 읽어 낼 수 없다. 그는 이분법적 환원론에 빠지지 않는 것만이 삶의 모순들에 가장 가까이 가는 길임을 잘 알고 있는 듯하다. 2000년 말에 열린 <가고시안전>에서 허스트의 작품은 오프닝 후 몇 시간 안에 거의 모두가 팔렸다. 그것도 몇십만 달러를 호가하는 가격에 팔렸는데, 이것은 10년 만에 300배 이상이 오른 액수다. 게다가 경매나 개인간의 거래에서는 판매가가 이보다 훨씬 많은 100만달러대로 진입하고 있다고 한다. 요즘 미술시장에서 그의 작품만큼 확실한 투자 대상은 없는 것이다. 이제 죽음마저 값비싼 상품이 된 셈인데, 그것은 어쩌면 투명한 사각의 무대 위에 올려진 ‘데미언 허러 쇼’가 우리 모두의 ‘재앙중독증(catastrophilia)’을 만족시키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는 이 잔혹의 시대를 사는 우리 모두가 보고 있고 보아야 하며 보고자 하는 장면을 ‘볼 수 있게’연출한다. 그러나 허스트가 자신의 작업을 일컬어 “적어도 축복이다” 라고 말한 것처럼 우리도 그 재앙의 땅을 볼 수 있는 것을 축복으로 받아들여야 하는가? 어떤 비평가의 말처럼 그의 <찬가〉(2000)는 단지 ‘자신에 대한 찬가(hymn to him)’가 아닐까? ■ 참고문헌 Damien Hirst, 《I want to spend the rest of my life everywhere, with everyone, one to one, always, forever, now》, Booth-Clibborn Editions, 1997. Damien Hirst, 《Damien Hirst : no sense of absolute corruption》, Gagosian Gallery, 1996(exh. cat.). Damien Hirst, 《Theories, Models, Methods, Approaches, Assumptions, Results and Findings》, Gagosian Gallery, 2000 (exh. cat.). Matthew Collings, 《Blimey! : From Bohemia to Britpop : The London Artworld from Francis Bacon to Damien Hirst》, 21 Publishing Ltd., 1997. Freeze, E.G.A., 1988 (exh. cat.). Norman Rosenthal etc., 《Sensation : Young British Artists from the Saatchi Collection, Thames and Hudson》, Royal Academy of Arts, 1997 (exh. ca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