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박 2일의 가을 야유회 (10월 6일~10월 7일)
43회 전주 동문 이혜정
10월 6일 (월요일)
여섯 대의 빨간 ‘그랜드 관광 버스’가 주차되어 있는 압구정동 현대백화점 주차장은, 출발 30분 전부터 모여들기 시작한 동문들의 왁자한 말 소리, 웃음 소리와 형형색색 차려 입어 아웃도어 전시장 같은 분위기로 여행의 열기가 한층 달아오르고 있었다. 회장 정길자를 필두로 우리 43회 재경 총동창회 임원진은 준비한 물품을 각 차량에 배분하여 싣고, 야유회에 참가한 기수별 인원 파악과 지정된 차량에 승차하도록 안내하는 등,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총 참가 인원은 244명이라는 통계치에 우린 모두 입을 벌렸다.
선배들이 총동창회를 이끌어 갈 때는 대부분 별반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우리 43회가, 총동창회를 주관하게 되면서 새삼스레 역대 총 동창회 임원들의 노고를 알게 되고, 그분들을 능가하는 동창회 운영을 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은 한눈에 알 수 있을 정도로 빈틈이 없다. 5월의 ‘모교 방문’에 이어 10월의 ‘제천 야유회’를 준비하느라 고생한 임원진에게 말할 수 없는 고마움을 느끼며 지정된 2호 차에 올랐다. 2호 차엔, 22회, 34회, 43회가 동승했고 우리 43회는 참가 인원 29명으로 2호 차엔 17명이 버스 뒤편 좌석을 차지하게 되었다. 재경 회장인 임미화와 김진숙, 김예순은 우리 2호 차에 타고, 정길자, 이신자, 양정옥, 문옥금, 한기은, 김미화, 김선, 김영숙, 김계영, 이순영, 유필순 안숙희 등 12명 임원들은 각 차량에 흩어져 안내 및 지휘를 맡게 된 듯하다.
전북 남원이 1차 후보지였으나, 예년에 비해 대선배님들을 고려해서 장거리 여행을 피하고 제천으로 정했다고 한다. 9시, 예정된 시각에 여섯 대의 빨간 버스는, 43회 팀으로 구성된 담임과 부담임의 인솔하에 대당 40여 명의 멋있는 노년 여학생들을 태우고 수학 여행 길에 올랐다.
재작년까지 학교에서 학생들을 인솔하여 제주도 수학 여행을 다녀온 나로서는, 이런 대규모 단체 여행이 전혀 낯설지 않지만, 십대 소년 소녀들을 태우고 떠날 때와는 완전 다른 이질감이 느껴졌다. 임원은 아니어도 우리 43회가 주관하는 여행인 만큼 안전 사고에 대한 책임 의식은 당연한 것이지만, 평균 연령 72~73세의 40여 명의 인생 무게를 생각해 보니 어마어마하여, 이 버스가 과연 1박 2일간 그 하중을 견딜 수 있을지 우려스러워 머리가 띵해 왔다.
여주까지 뻗은 ‘중부내륙 고속국도’ 주변은, 푸르름이 비껴 선 자리에 옅은 황갈색 물이 살짝 스며들고 있는 나무들이 줄을 잇고, 드넓은 벌판의 황금빛 벼들은 따가운 가을 햇살을 피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친구들과 정담을 나누며 가을 속을 달리는 기분은 상쾌하지만, 어느새 침잠해 가는 山野를 바라보며 憂愁에 젖기도 하는 건 어쩔 수 없는 나이 탓이리라.
서울을 떠난 지 2시간 40분 만에, 우리 수학 여행단은 제천 의림지에 당도했다. 여섯 대의 버스에서 쏟아져 나온 여학생들로 제천 의림지는 순식간에 난장으로 변한 듯싶다. 하지만, ‘문화관광 해설자’의 안내를 받으며 질서 있게 움직이는 동문들의 모습은, 과연 전주여고 출신답다는 평을 하게 된다. 의림지 일대의 경관은 그야말로 산자수명(山紫水明)하며, 왕의 별궁인양 나무 한 그루, 난간 하나에도 섬세한 손길이 배어 있어 감탄사와 함께 카메라를 누르지 않을 수 없게 한다.
의림지는 삼국시대에 만들어진 저수지로 본래의 이름은 임지(林池)였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신라 진흥왕 때의 음악가인 우륵이 만들었다고 하나 확인할 수 없으며, 또 다른 이야기로는 현감인 박의림이 만들었다고도 한다. 조선 세종 때에 충청도 관찰사인 정인지가 고쳐 짓고, 다시 세조 3년(1457) 체찰사가 된 정인지가 크게 보수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뒤 1910년부터 5년간에 걸쳐 3만여 명이 참가하여 보수하였고, 1972년 대홍수로 서쪽 둑이 무너져 이듬해에 보수하였다. 저수지의 둘레는 약 1.8㎞, 면적은 158,677㎡, 수심은 8∼13m이며, 주위에는 순조 7년(1807)에 세워진 영호정과 1948년에 세워진 경호루가 있다.
“의림지는 김제의 벽골제, 밀양의 수산제와 함께 삼국시대의 수리 시설로서, 당시의 농업기술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습니다.”
해설자의 설명이 없어도 우리 전주여고 출신들이라면, 의림지· 벽골제· 수산제를 초등학교 때부터 배우고 외어서 잘 알고 있지만 모범생 기질이 어디로 가랴? 한 마디라도 놓칠까 귀를 쫑긋 …….
이번 여행에 참가한 선배님들 중 최고령자라는, 지팡이 짚은 89세 선배님을 대하니, 아름다운 강가의 풍경 속에서 명창(名唱)인 옛 친구를 우연히 만나고, 무한한 자연에 대비되는 유한한 인생의 서글픔을 노래한 두보의 詩가 떠오른다.
江南逢李龜年(강남봉이구년)
杜甫(두보)
岐王宅裏尋常見(기왕택이심상견) : 기왕의 저택에서 항상 만나고
崔九堂前幾度聞(최구당전기도문) : 최구의 집에서 몇 번이나 들었던가
正是江南好風景(정시강남호풍경) : 이 좋은 강남의 풍경
落花時節又逢君(낙화시절우봉군) : 꽃 지는 시절에 또 그대를 만나네
점심은 제천 ‘황금가든’에서 먹게 되었다. 대연회장 같은 넓은 홀에 244명이 들어앉아 식사하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큰 그릇에 몇 가지 채소를 담고, 초고추장 두 스푼, 참기름 듬뿍, 콩가루 듬뿍, 송어회 적당량을 넣고 비벼 먹으니 맛이 일품이다. 밥과 국이 따라 나왔지만, 이미 반찬과 송어회로 배를 채운 뒤라 한두 숟갈밖에 먹지 않았다. 정길자, 이신자 말을 들으니, 이런 대가족을 수용할 식당은 이곳밖에 없다는 것, 음식 맛도 좋다는 걸 두 번의 사전 답사로 알아냈다는 것이다. 두 번씩이나 이곳 제천까지 사전 답사한 친구들의 노고가 고맙고, 앉아서 편하게 받아먹기만 하는 자신이 염치없고 미안했다. 식사를 마친 선·후배님들도 음식 맛에 대체로 만족스러워하는 듯했다.
우리는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인, 청풍호 유람선을 타기 위해 청풍나루를 향해 이동했다.
일명 충주호라고도 하는 청풍호는, 우리 43회와 이미 조우한 곳으로, 2007년 졸업 35주년 기념으로 미국 여행을 한 우리 43회 동창들이 해단식을 하기 위해 와서 신나게 즐겼던 곳이다. 오덕이와 함께 곧바로 갑판까지 올라가 보니 선배님들이 이미 점령하고 계셨다. 7년 전, 미국 여행자들은 시원한 강바람을 가르며 달리는 유람선 위에서 노래하고 춤추고 패션쇼를 하면서 단양 팔경인 옥순봉, 구담봉의 신비로운 석벽을 감상했었는데~~ 7년이란 세월이 흘렀어도, 갑판에서 조망하는 산천경개는 그 모습 그대로인 것 같다. 저 멀리 산등성이에 자리잡은 ES 콘도도 그대로이고, 청풍대교의 위용도 그대로이다. 멀리 보이는 월악산, 비단같이 아름답다는 바위산과 금수산도 옛 모습 그대로이다. 모든 걸 다시 볼 수 있어서 그저 반갑고 고마울 따름이다.
우리의 유람선이 장회나루를 거쳐 다시 청풍나루 쪽으로 선회했을 때,우리를 찾는 다급한 소리를 들었다. 갑판 한 켠에는 오늘 동문의 밤 행사에 선보일 ‘어이춤’ 출연자들이 두 줄로 서 있고, 나머지 백댄서들이 엉거주춤 모여 있었다. 경신이의 지도에 따라 낄낄대며 연습을 하고 있는데, 갑판에서 뛰지 말라는 주의를 들었다. 배가 흔들려 위험하다는 것. 지극히 상식적인 것을 망각하고 춤 연습에 몰입한 우리들이 대체 몇 살이지?
깊어가는 가을강, 푸른 물결과 시원한 바람에 몸을 실으면 매혹적인 호반의 풍광이 연인처럼 따라 다니는 청풍호를 떠나기가 못내 아쉬웠지만, ‘가을을 남기고 떠난 사랑’ 같은 청풍호를 244명의 여학생들은 가슴에 담은 채 발길을 돌려야 했다.
청풍호
정 정민
그 언젠가 갔던 호수
바다처럼 넓어 이해하지 못했다.
이런 호수가 있다는 것이 전설처럼 들렸다.
산굽이를 돌아도 또 물
몇 시간을 가도 또 물이었던 곳
나이 들어
댐을 막아 호수가 되었다는 것을 알고
다시 가려 했으나 기회가 없었다.
하지만 내륙의 바다라는 말
푸른 바람이 일렁인다는 말이
기어이 나로 다시 가게 했다.
유람선 타고 구석을 헤집어 본다면
하루쯤 걸릴까
수많은 사연 안고 있는 호반
어떤 어부의 이야기
젊은 연인들의 만남
모두가 아름다운 것일 텐데
외줄 같은 모노레일의 전율도
느리게 걸어보는 즐거움을 누릴 자드락 길도
물결을 헤치고 나갈 배도 타보지 못했다면
어찌 호수를 보았다 할까
꿈결에라도
이 호수에 살아보고 싶다.
햇살 눈 부신 날 반짝이는 물결
여섯 대의 관광 버스는 오후 다섯 시에 정확히 제천 베니키아 호텔에 도착했다. 호텔의 위치가 정말 끝내준다. 전망대처럼 약간 높은 곳에 있어서 청풍호가 눈 아래 펼쳐지고, 뒤로는 야산이 아늑하게 감싸고 있다. 주변에 산책로가 잘 마련되어 있으니 내일 새벽에 맑은 공기 마시며 산책들 하시라는 당부의 말을 귀담아 듣고, 기수별로 배정받은 방에 흩어져 올라갔다. 역시 244명이 일사불란하게 척척 움직이므로 엉키거나 가벼운 소란 하나 없는 게 신기할 정도이다. 여고 때 익힌 예절과 질서 의식이 수십년이 지난 지금까지 생생히 살아 있다니…….
우리 43회는, 423호에 열 다섯 명, 523호에 열 네 명이 배정되었다. 방이 널찍하고 따뜻해서좋았다. 저녁 식사 후 동문의 밤 행사가 바로 이어지는 관계로, 우리는 화이트& 블랙으로 갈아입고 내려가, ‘어이춤’ 출연자들은 리허설을 하고, 검은 옷의 백댄서들은 열 상자의 포도를 씻어 식탁 위에 나누어 놓았다.
제천시에서 나온 문화홍보 담당 과장께서 제천을 찾아준 우리에게 환영사를 하고 제천 자랑을 하고 수건을 선물로 돌린 후 떠나자, 우리는 저녁 식사를 하고, 바로 ‘동문의 밤’ 행사의 막을 열었다.
호루라기 여사 이신자와 오수의 호밋자루 여사 김미화의 겸손한 태도와 구성진 말솜씨로 진행된 동문의 밤 첫 순서는 김계영의 ‘시 낭송’이었다. 황동규의 ‘즐거운 편지’ 외 두 편을 낭송했는데, 감정을 실어 흐느끼듯 읊은 계영이의 시 낭송을 듣고, 감동하는 동문들이 많았다. 선배님들의 노래와 춤이 이어지고, 합창과 중창도 등장했다. 37회의 ‘one way ticket' 율동과 46회의 ‘손담비의 미쳤어’ 춤이 볼 만했다. 33회 선배 한 분은, 나시티에 반바지 차림으로 머리에 꽃을 꽂고 무대에 올라가 나훈아의 ‘갈무리’를 간드러지게 부르고 내려오더니, 끼 발산이 다 안 되었는지 객석을 누비고 다니며 몸을 꼬고 흔들기를 멈추지 않는가 하면, ‘미쳤어’ 팀에 무단 합류하여 무대를 장악했다.
드디어 43회 크레용팝의 ‘어이춤’ 차례가 왔다. 사회자 김미화는, “40년 젊은 모습으로 돌아가 재롱을 부릴 것이니, 잘 봐 달라.”고 애교를 부렸다. 흰 바지에 흰 티셔츠, 머리에 쓴 빨간 스카프, 흰 고무신에 빨간 양말, 일곱 명 크레용팝 멤버( 고경신, 신민자, 안숙희, 김계영, 임미화, 김미화, 권오덕)들이 무대 앞에 도열하자, 장내는 웃음바다가 되었다. 그도 그럴것이, 손자들이 주렁주렁 달린 60대 할매들이 10대 아이돌 같은 깜찍 발랄한 차림을 하고 춤을 추러 나서니 얼마나 우스울까? 이윽고 음악에 맞춰 춤추는 할매돌들과 ‘나도 한번 잘 살아 보자’에서 “어이!” 하며 팔을 뻗고 ‘닭다리 잡고’에서 한 다리를 받쳐 들고 “삐악삐악”을 열심히 따라 하는 우리 백댄서들! 동작이 안 맞아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참으며 숨가뿐 5분 공연을 하고 나니 박수가 터져 나온다. 내 60 평생 무대 위에서 백댄서 해보기는 처음이다. 이런 ‘어이’없고 잊지 못할 추억을 하나 더 만들어 준 할매돌들에게 감사할 뿐이다.
결국 대상은, 김미화 스스로 ‘주최측의 농간’이라 표현했지만, 우리 43회가 차지하게 되었다.전원이 참가하였고, 발상도 기발했으며, 40년을 극복하고 도전한 열정이 가상하여 대상을 준 것 같다.
이어 행운권 추첨이 있었다. 그 많은 당첨자 중, 우리 기에서는 유일하게 박옥주만 선물을 받았고, 김예순이 준비해 온 선물 ‘이왈종 화백의 60만원 상당의 판화’는 결국 46회 ‘미쳤어’ 팀원의 손에 들어갔다. 인상적인 것은, 오늘과 내일이 생일인 동문, 10월이 생일인 동문들에게 선물을 주고, 동문 간에 시누이-올케인 사람에게도 선물을 준 것이다. 고부간인 사람을 찾았으나 이 자리엔 없는 듯…….
마지막으로 우리 모두는 컨벤션 홀 가장자리로 물러서서 하나의 대형 원을 만들어 손에 손을 잡고 해바라기의 ‘사랑으로’를 제창하였다. 18회에서 48회까지, 30년 나이 차를 가진 다양한 동문들의 모습에서 우리는 우리의 과거와 미래를 한눈에 다 보고 있는 듯하여, 왠지 모를 고독과 관조의 이율배반적인 정서에 이끌리고 있었다. ‘2014년 동문의 밤’은 늦은 시각까지 대부분 자리를 뜨지 않고 행사를 즐기는 동문들의 성숙한 참여 의식과 주최 측의 자상하고 빈틈 없는 배려가 돋보이는 화합의 장이었다.
10월 7일 (화요일)
오늘의 일정은 청풍 문화 재단지와 도담삼봉을 관람하고, 점심 식사 후 고수 동굴을 탐방하는 것이다. 7시에 시간 맞춰 나가니, 신민자 체조 선생님의 지도로 아침 체조가 진행되고 있었다. 임원들 모두 책임감 강하고 타고난 끼와 재주까지 적절하게 발휘하고 있어서, 이번 여행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을 뿐 아니라 잔재미와 유용성까지 더해 주니 동문들 모두 만족스러워할 것 같다.
체조로 몸을 푼 우리는 호텔 산책로를 걸었다. 신선한 아침 공기를 몰고오는 산마루에선 골안개가 피어오르고 이제 막 물들기 시작한 나뭇잎들은 새벽 추위에 푸르스름한 빛을 띠고 있어, 그 색조가 참으로 신비로웠다. 듬성듬성 떨어진 낙엽을 밟으며 언덕에 올라 청풍호를 내려다보니, 그 호수는 어제까지의 세상사들을 모두 심연(深淵)으로 가라앉힌 듯 진한 쪽빛을 띠고 호텔 주변에 내려앉은 가을빛을 창망히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우리는 먼저 ‘청풍 문화재 단지’를 방문했다. 산과 강물로 둘러싸여 있는 청풍은 본래 자연 경관이 수려하고 많은 문화재를 지닌 곳인데, 충주댐 건설로 인해 청풍면에 위치한 마을들이 수몰될 위기에 놓이자, 충청북도는 이 지역에 있는 문화재들과 옛 모습들을 3년간 복원해 청풍 문화재 단지를 조성했다고 한다. 단지에는 총 43점의 문화재와 민가 4채, 생활유품 1,600여 점이 전시되어 있으며, 고려 때 관아의 연회 장소로 건축된 청풍 한벽루(보물 528)와 석조여래입상(보물 546), 팔영루, 금남루, 음청각 등 건축물이 있다.
1, 2호차에 탑승한 동문들과 함께 고택에 들어가, 쪽마루, 툇마루, 대청마루, 누마루를 구분하고 나는 안계숙, 박영희와 누마루에 올라앉아 관광 해설자의 설명을 들었다. 이곳 충청도의 한옥 구조는 전라도와 조금 다르다. 특히 누마루 밑의 구들장은 전라도엔 없는 구조이다. 뒤란에 가 보니 농기구들이 걸려 있고, 창고가 있으며, 장독대 옆에 과꽃이 만발해 있다. 방 안엔 베틀도 있고……. 우린 모두 50대 이상이므로 우리의 어린 시절을 금방 떠올리고 반가워하지만, 우리 자식 세대들은 떠올릴 추억이 거의 없을 것이다. 대청마루와 평상에 앉아 별자리를 찾고, 마당의 우물에 김치 항아리를 담그고, 장독대엔 온갖 장류와 젓갈이 담긴 항아리가 반짝거리고, 봉숭아꽃과 채송화, 맨드라미, 붓꽃, 함박꽃이 화단을 장식하고, 그 위를 날아다니는 고추잠자리떼와 빨랫줄에 널린 빨래가 가을볕에 뽀송뽀송 말라가는 그 광경이 이제 한낱 옛이야기가 되고 빛바랜 전설이 되다니……. 비록 불편하고 힘들긴 했어도, 자연친화적이고 낭만적이었던 그 시절이 그리워질 때가 있다. 밖으로 나와 남방식 고인돌과 곰, 거북 등 동물 형상의 석상들을 둘러보고, 관아에도 가 보았다.
11시에 버스에서 내린 노년 수학여행단은, 연못 위에 우뚝 솟아있는 기이한 세 개의 봉우리를 마주했다. 이곳이 단양 팔경 중 하나인 도담삼봉(丹陽 島潭三峰)이라고 한다. 도담삼봉은 특이하고 아름다워 단양 팔경 중 으뜸으로 손꼽히며 단양군수를 지낸 이황을 비롯하여 황준량, 홍이상, 김정희, 김홍도, 이방운 등이 많은 시와 그림을 남긴 곳이라고 한다. 이곳에는 조선시대 개국 공신인 정도전 탄생에 관련한 설화가 전해 내려오는데, 정도전은 자신을 삼봉이라 자호할 정도로 이곳을 사랑했다고 전한다. 도담삼봉은 석회암 카르스트 지형이 만들어 낸 원추 모양의 봉우리로, 남한강이 휘돌아 이룬 깊은 못에 크고 높은 장군봉을 중심으로 세 개의 봉우리가 우뚝 솟아 그 형상이 기이하고 아름다우며 남한강과 어우러져 절경을 보여 주고 있다. 왼쪽부터 처봉, 남편봉, 첩봉이라 부른다고 하니 축첩제 사회를 풍자한 것인지, 미화한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어쨌든 이것이 민가와 아주 멀리 떨어져 있으면 분위기가 더 신비로웠을 것이라고 평하며 우리는 삼삼오오 짝을 지어 사진을 찍고, 역시 단양 팔경의 하나인 석문을 보기 위해 산을 오르려 하는데 야외 음악당에서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2천원을 넣으면 음악 분수가 솟아오르며 춤 추는 걸 보고, 우리는 석문 보는 걸 포기하고 야외 음악당에 둘러앉았다. 유필순, 권오덕, 이신자, 김미화, 안숙희가 노래 부르고 고경신이 분수와 함께 춤을 추는 즉흥 야외 쇼가 벌어진 것이다. 우리에게 질세라 선·후배들이 몰려와 마이크를 차지하기도 했다. 30회 선배님이 경신이를 그대로 모방하여 춤추는 모습에 폭소 만발! 다리찢기까지 따라하는 75세 ‘흰 머리 소녀’ 때문에 음악 분수도 폭소하듯 높이 솟아오르고, 우리도 ‘석문 답사하기’ 숙제를 까먹은 채 잠시 정신없이 빠져들었다.
점심 식사는 단양 장다리 식당에서, 제천의 특산물인 다양한 마늘 요리를 맛본 것으로 만족했다. 이번 여행의 마지막 행선지인 고수동굴은 식당에서 가까운 곳에 있었다.
단양 고수리 동굴은 남한강 상류 충주호반의 단양읍 금곡천 냇가에 있다. 총길이는 1,200m이나 현재 공개하여 관광코스로 이용하고 있는 구간은 600m이며, 안쪽의 나머지 지역은 동굴 환경을 보존하기 위하여 출입통제 구역으로 설정되어 있다. 4억 5천만 년 전부터 생성된 석회암 동굴로, 내부에는 동굴의 수호신이라고 할 수 있는 사자바위를 비롯하여, 웅장한 폭포를 이루는 종유석, 선녀탕이라 불리는 물 웅덩이, 7m 길이의 고드름처럼 생긴 종유석, 땅에서 돌출되어 올라온 석순, 석순과 종유석이 만나 기둥을 이룬 석주 등이 많다.
통로가 좁고 계단 경사가 가파른 편인데, 물기 때문에 미끄럽기까지 하여 코스를 도는 동안 안전에 엄청 신경을 써야 했다. 박옥주, 김진숙, 임미화 뒤에 달라붙어 종종걸음을 옮기면서도, 헛발을 딛지 않을까 불안했다. 하지만 동굴 형태는 외국의 유명 동굴과 비교해도 손색 없을 만큼 기기묘묘하고 볼거리가 많았다. 우리는 자연이 빚어 놓은 도담삼봉과 천당못, 마리아상 등을 발견하고 거북이, 곰, 독수리, 문어, 외계 생물 같은 희귀한 암석들을 찾아 내며 지하 세계의 신비를 느껴 보았다.
어두운 동굴에서 환한 밖으로 나오니 살 것 같다. 석회 동굴을 한 바퀴 돌면서 상당히 운동이 되었는지 옷에 땀이 배고 다리도 뻐근하다. 80대 선배님들은 험한 동굴 탐색은 안 하는 게 좋을 듯싶다. 오후 3시 30분! 이젠 서울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다들 피곤해서 귀경 버스 안에서 잠들겠지.
재경 전주여고 총동창회 가을 야유회는 정말 성공적이었다. 중고생들과 수학 여행을 가도 한두 명 부상자는 생긴다. 어머니처럼 연로하신 대선배님들이 대거 참가했는데도 단 한 건의 사고도 없이 깔끔하게 마무리되다니……. 1박 2일 여행 코스도 좋았고, 숙박 시설과 음식도 좋은 수준이었다. 무엇보다 주최측 임원들의 친절하고 예의바르며 적극적이고 활달한 태도가 40대를 능가할 정도로 젊고 싱싱해서 좋았다. 선배님들이 우리 43회를 대하는 태도를 보면 무척 우호적이다. “수고했어요.” “다들 재주꾼이네요.” “고마워요.” 라고 치하하신다.
우리는 이제 마음을 열고 타인을 받아들이며, 물질이든 시간이든 재능이든 남을 위해 기부하며 살아야 할 나이이다. 하늘이 43회 친구들의 근본을 알고, 총동창회를 이끌어 갈 기회를 주지 않았을까? 책임감과 사명감으로 동문들을 위해 일하다 보면, 자연스레 인간에 대한 사랑이 생기고 이타적인 사람으로 변해 갈 것이다. 정길자와 임미화의 조건 없이 헌신적인 자세를 보고, 그 누가 이기적으로 행동할 수 있으랴! 이번 여행을 통해 우리는 친구들의 성실성과 인간미에 감동하고, 한 사람 한 사람의 가치를 깨달으며 더욱 소중하게 여기게 되었다. 내 자신도 누구에겐가 빛이 되기 위해 노력하며, ‘사랑은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 모두를 치료한다.’는 명언을 되새겼으면 싶다. 그리고 지금처럼, 홀로 떨어져 잘난 체하지 않고, 언제까지나 유대하면서 함께 손 잡고 나란히 걸어갔으면 싶다.
“때로 우리의 불이 깜박거리며 꺼져가도 그것은 다른 인간 존재에 의해서 다시 지펴진다. 우리들 각자의 불은 그것을 다시 지펴 주는 사람들에게 큰 빚을 지고 있다.”
- 알버트 슈바이처 -
첫댓글 43회 선배님의 글이야. 총동창회에서 스크랩해왔어.
선배님들 정말 리더 잘하셨어
지금도고마울뿐...
너무도 훌륭한 기행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