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여행이 재산이야
카페 가입하기
 
 
 
 

회원 알림

 

회원 알림

다음
 
  • 방문
  • 가입
    1. 눈부추
    2. 지옥주
    3. 이찬우
    4. 차현
    5. 후광
    1. 아쎈스
    2. 박대철
    3. 눈나무
    4. 솜사탕
    5. 송파나루
 
카페 게시글
검색이 허용된 게시물입니다.
─‥우리들이야기 스크랩 HOARDING, 쇼핑 중독, 수집 중독
green 추천 0 조회 72 10.05.05 17:57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얼마 전 '세상에 이런 일이'란 티브이 프로에서 쓰레기를 주워다가

집 안팎을 온통 쓰레기장으로 만든 여인을 본 적이 있습니다.

가난에 대한 불안과 염려, 정신적 충격으로 인해 생겨난

쓰레기에 대한 병적인 집착이라 했습니다.

그녀를 달래서 실어낸 쓰레기 분량이 하도 어마어마해서 다들 놀랐지요.

심리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병들어가던 아이들은 그런 집구석에서 벗어나는 것이 소원이었을 것입니다.

 

오랜만에 미국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가 눈에 띈 'hoard'라는 단어가 낯설어서

채널을 고정했는데, 맙소사~~ 쓰레기 모으던 한국의 여인 닮은 미국 여인들을

계속해서 소개하는 거였습니다. 10년 동안 쓰리프트 스토어에서 중고품을 사들인 여자,

20년간 장식품만 사들인 할머니, 몇 가지 품목에 특히 집착하는 여인, 쓰레기를 버리지 않아서

집안을 쓰레기장으로 만든 여인 등 어제 소개한 여섯 명의 여인들 집을 보여 주는데

심장이 후들거렸습니다. 등골이 서늘했습니다. 그저 탓하거나 연민을 품을 수만은 없었습니다.

 

집의 풍경이 집주인의 마음 풍경을 반영한다는 것을 새삼 느꼈습니다.

법정 스님의 방에는 여백이 많았지요. 무언가가 생기기 무섭게 이웃들에게 주신 것도

그 여백을 지켜내기 위함이었을지 모릅니다.

'예쁘게' 꾸며놓은 방도 있지요. 마음도 예쁘게 꾸미는 사람일까요?

마음이 예쁜 거와 마음을 예쁘게 꾸미는 것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고 여러 성인들이 가르쳐 줍니다.

마구 어질러진 방도 있지요. 질서에 대한 거부 내지 저항인가요?

 

아무려나 내 마음의 풍경도 내 집에 반영되어 있을 텐데요. 만약 마음의 보이지 않는 구석구석을 뒤져서

물건들로 표현한다면 내 집 혹은 내 방은 어떤 모습일까 생각하는데 한숨이 나옵니다.

한순간이었다 해도 마음 어느 구석에 새겨져 있을 욕심, 집착 그리고 중독적인 면면들.

마음에 새겨진 그것들은 절대로 사라지지 않는다고 심리학자들이 말하던데...

 

티브이에선 그들이 Buried Alive(생매장)되었다고 표현했습니다.

그들의 병명은  Hoarding(정신병적인 수집), 취미 수준의 collection과는 다르다고 했지요.

이런 정신 질환을 전문적으로 치료하는 의사가 있었고,

그들이 물건을 정리하고 버리도록 도와주는 사회복지사 같은 사람들도 출연했습니다.

 

남미에서 온 이민자인 듯한 흑인 모자는 둘 다 물건을 정리할 줄 모르고 사방 쌓아두기만 하다가

결국 발 들일 틈도 없이 되고 말았습니다. 물건의 노예가 된 그들의 집에는 친구나 이웃들이 찾아올 수 없고

당연히 그들은 고립되어 버립니다. 물건들을 어찌 해야 할지 그 방법도 모릅니다.

마음의 공허, 집착, 외로움 등을 아파할 줄만 알았지 벗어날 생각을 해본 일이 없으니 말입니다.

그러다가 어느날 물건들이 집안을 장악하고 이웃이나 가족, 심지어 자신까지 스스로 몰아냈음을 발견합니다.

 

다행히 모자가 물건들을 치우기로 결심했습니다.

여러 명이 도와서 며칠만에 버릴 것과 기증할 것과 간직할 것을 정리해 냈습니다.

그나마 조그마한 아파트여서 며칠만에 끝낼 수 있었던 것이지요.

 

그러나 개인 주택의 경우는 사정이 달랐습니다.

물건을 모은 세월도 다들 10년이 넘었습니다. 20년도 있습니다.

이러니 치우는 일이 만만치 않습니다. 한 달 걸릴 수도 있고 그 이상일 수도 있는가 봅니다.

 

집안을 온통 여인 자신만을 위한 물건으로 채워 남편과 아들을 불행하게 만든 여인도 있습니다.

그녀는 성격도 예민하여 물건에 대한 타박을 자신을 향한 공격으로 받아들입니다.

남편이 수집벽을 포기하지 않으면 이혼하겠다 하고, 아이들은 부모가 이혼하는 걸 바라지 않는다는 바람에

그제서야 그녀가 달라지겠다는 의지를 표명합니다. 지상은 가족의 공간, 지하는 그녀의 공간으로 타협을 봅니다.

남편은 절반의 변화라고 말합니다. 그에게는 물건이 스트레스 그 자체입니다.

부인에겐 그 물건이 자신의 분신입니다. 팽팽한 대결에선 벗어났지만 회복되려면 시간이 걸릴 듯합니다.

이들 가족에겐 교통사고로 정신지체 장애를 가지게 된 큰아들이란 큰 아픔이 있습니다.

 

자식들이 독립하여 떠난 후 텅 빈 집을 감당치 못해 살아 있어도 살기를 포기한 여인이 있습니다.

그녀는 쓰레기를 집 밖에 버리지 않았습니다. 냉장고 안까지 쓰레기가 가득합니다.

발 디딜 틈 없이 각종 쓰레기와 집안 기물들이 뒤섞여 있습니다. 벌레가 기어다닙니다.

일 년에 몇 번 가졌던 가족 모임도 자식들의 집에서 할 수밖에 없답니다.

 

또 다른 할머니 역시 식구들과 같이 살고 있지 않습니다. 벽은 온통 사진이요.

바닥은 어디나 예쁜 물건들입니다. 그것들이 천정 가까이까지 쌓이니 더 이상 예쁘지도 않습니다.

집안이 창고보다 더 한심합니다. 쓰레기장보다 더 무가치합니다.

 

그 속에 생매장되어 여인들이 울고 있습니다. 외로워하고 있습니다. 길을 찾지 못합니다.

오만 가지 상품들이 지천으로 널려 있는데다

쇼핑을 미덕으로 여기도록 징려되어 온 미국의 소비문화도 여인들이 병드는 데 주된 역할을 했을 것입니다.

 

이들에 대한 치료가 시작되자, 물건을 치우는 도우미는

그들이 받을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하여 쓰레기부터 찾자고 권유합니다.

그 다음에는 아주 작은 물건이라도 일일이 물어봅니다. 필요한 것인지, 기증할 것인지 버릴 것인지를...

앨범을 같이 보면서 사람들에 대한 그리움을 환기시켜 주기도 합니다.

꼭 지니고 있어야 할 물건인지, 없어도 상관없는 물건인지 일일이 결정하게 도와 줍니다.

그리고 바겐세일에서의 충동 구매, 가지고픈 물건에 대한 병적인 집착을 줄이도록 돕습니다.

물건에서 사람으로 시선을 옮기도록 돕습니다.

수집벽을 가진 여인들이 도우미에게 마음을 열면서 집이 집다운 모습을 찾아가기 시작합니다.

 

그걸 보면서 핸드백에 대한 예전의 집착이 떠올랐습니다.

젊었을 적 구두나 옷에 강한 집착을 보인 친구도 있었지만

저는 핸드백이나 지갑을 보면 그곳이 시장이든 백화점이든 떠날 줄을 몰랐습니다.

미국 와서도 그 버릇은 사라지지 않아서, 내 맘에 꼭 드는 무엇을 찾곤 했습니다.

핸드백이 없어서가 아니라 내 맘에 드는 핸드백을 아직 찾지 못했다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충동 구매를 한 적도 있지만, 집착이 힘을 발휘하면 결국에는 무언가를 사곤 했지요.

티브이에 출연한 여인들의 행태를 보면서 내게도 머물다간 중독의 징후들을 따져 보았습니다.

 

중독이란 말은 어디에도 붙일 수 있는 접미사 같습니다.

쇼핑 중독, 일 중독, 종교 중독, 교제 중독, 수다 중독, 전화 걸기 중독,

운동 중독, 알콜 중독, 마약 중독...

중독은 불건강한 의존을 의미하지요.

홀로 있음을 두려워하는 것이지요.

혼자 있어도 물건이나 그 무엇에 의존하고 집착하고 있기에

진정한 고독도 아닐 뿐더러, 자유를 누릴 수 없고 절대자와 만날 수도 없지요.

  

환자가 아니고서야

일상에서 반복되는 건강한 행동이나 훈련, 일, 수집 등과  중독 증상을 두부 자르듯이 구별해내기 어렵지만

다른 이들을 속일 수는 있어도 스스로를 속일 수는 없는 것들이 내 안에 있습니다.

 

지금도 서점에 가면 책을 삽니다. 그래서 책 사는 버릇에 조금 다른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사긴 사되, 신문에 소개할 책들을 사고, 필요한 이들에게 주자.

여전히 매장에서 핸드백을 보면 발길이 멎습니다. 하지만 지나쳐 버리는 일이 쉬워졌습니다.

사들인 백들도 얼마 안 가 남들에게 다 주어 버렸기 때문에, 가진 것 몇 개 없지만

핸드백 하나 정해지면 바꾸지 않고 계속 들고 다닙니다. 관심을 꺼버렸습니다.

 

일중독, 인터넷 중독, 드라마 중독... 어느 것에든 쉽게 기울어 버리는 기질도

무조건 없애려 들기보다 인정하면서 그때마다 그런 나를 가만히 바라봅니다.

스스로에게 속지 않기 위해서

아니 나 자신을 속이지 않기 위해서...

 

무엇보다 사람 중독... 일단 좋았다 하면 좋은 사람에 대해 앞뒤 안 가리고 기울어 버리던 나를

잡아당겨 세워놓고 내 감정 내 행동, 내 생각을 바라볼 수 있게 된 것을 감사합니다.

나이 덕도 있지만 믿음 덕입니다.

 
다음검색
댓글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