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자 주]
아래 글은 지난 2009. 3. 29. 화정동성당 가정주일 행사시 미사에서
조규석(돈보스코) / 박민경(로사리아) 부부님께서 발표하신 내용입니다.
편의상 당시 발표대로 단락의 전반부에 [돈보스코] 또는 [로사리아]로 표기하여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하였습니다. 본문은 원문 그대로임을 알려드립니다.
내용이 너무 좋아 그 감동을 모든 식구들에게 전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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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미예수님!
[돈보스코]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저는 조규석 돈보스코 입니다.
[로사리오] < 저는 그의 거들짝 박민경 로사리아 입니다 >
[돈보스코]『화정동 성당의 8,000여명의 신자 중에서 가장 작고 미흡한 저희가 감히 이 자리에 섰습니다. 가정주일 강론 권유를 받고는 손을 절레 절레 저으며 우리는 아직 자격이 없다고 거절을 했는데 옆에 있는 아내가 그러는 것이 아니라며 같이 기도하고 묵상해 보자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저희 삶을 돌아보니 발자욱 발자욱마다 주님의 은총이 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저희는 인간적인 판단으로 자격이 없게 살아왔습니다.. 그런 보잘것 없는 저희의 삶을 하느님께서 쓰시려고 하실때는 거기에 분명히 하느님의 뜻이 있다고 믿기에 용기를 내어 이 자리에 섰습니다』
[로사리아]『저희 부부는 이제 결혼 20년을 향해 살아가고 있습니다.
7남매의 막내인 남편과 결혼하여 시어머니를 모시고 13평 작은 아파트지만, 늦게 시작한 결혼인만큼 예쁘게 살아가려고 노력했습니다. 무척 어렵고 힘들게 큰아들 도현이를 낳았습니다.
남편은 보수적인 집안에서 막내로 자라다 보니 매사 떠 받들어 주기를 기대했고 거들어 주거나 아내를 배려하고 존중해 주는 일에는 서툴렀습니다. 또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다 보니 서로 불만을 터놓고 이야기를 하거나 부부싸움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더구나 남편은 가족사에서도 결정권이 없었으며, 누나들의 결정에 따라야만 했습니다. 제가 둘째아이를 임신한 중에 막내 시누가 이혼하여 집으로 들어왔고, 아이를 낳자 우리 네 식구만 어머니를 모시고 5년여를 살던 그 집에서 쫒겨나다시피 나와야 했습니다』
[돈보스코]『그 때문에 친가와는 담을 쌓고 남남이 되어 살아 갔습니다. 그때 제가 조금만 현명했더라면 로사리아가 어머니와 누나 사이에서 그렇게 힘들어 하지 않았을텐데......
그 당시 어머니께서는 고혈압이 있어서 잘못해서 쓰러지시면, 그 책임이 나에게 쏟아질까 두려워 로사리아를 설득하여 이사를 결정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 곁을 떠나와 보니, 어찌 되었든 우리 식구들을 보지 않으려는 로사리아가 야속했고 서운했습니다. 그래서 장모님께 버릇없이 굴기도 하고, 백일도 안된 둘째 아들의 울음소리에도 짜증이 났습니다. 이런 저런 이유로 싸움은 갈수록 잦아 졌고 냉전은 한달 두달씩 이어졌습니다』
[로사리아]『시댁식구를 등지고, 하느님을 등지고, 남편과는 점점 거리를 느끼며 아들 둘을 맨 윗자리에 놓고 살아 왔습니다. 남편은 주말이면 침대나 소파에 누워 TV를 보며 밥 먹을때와 화장실 갈 때 외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새 두 아들은 엄마와 함께 커 나갔습니다. 자전거 타는 법도, 인라인스케이트 타는 법도, 로보트 조립도, 목욕도, 공부도, 반장선거 원고 쓸 때나 학교생활의 어려움을 토로하며 괴로움을 나눌때도 아버지는 부재중 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남편은 아버지의 권위만을 내세웠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남편은 사랑하시어 기적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돈보스코]『고혈압 가족력이 있던 저는 몸에 이상을 느껴 병원에 가게 되었습니다. 가는 길에 마음이 불안하여 아내에게 묵주기도를 청했습니다. 환희의 신비, 고통의 신비, 영광의 신비를 서로 계, 응으로 바치면서 병원에 도착했는데 의사가 제 혈압을 재 보더니 깜짝 놀라시는 것이었습니다.
아니 어떻게 이 혈압으로 여기까지 오셨습니까그때 제 혈압 수치는 매우 높아 230에 170이었습니다. 이 수치는 일반환자 같으면 중환자실에 아무 의식없이 누워 있어야 하는 수치입니다. 곧바로 입원하여 처치를 하였고 그후 보름만에 무사히 퇴원할 수 있었습니다.
두 번째 기적은 2년전 본당 연도대회때 였습니다. 우리집 네 식구는 구역식구들과 함께 열심히 연도 연습을 했고, 당일 오전에 사우나를 갔는데 몸이 이상했습니다. 그 전날 술을 많이 먹고 반신욕을 한 것이 잘못되었나 싶어 집으로 가서 쉴까 했는데 자꾸만 발 걸음이 성당으로 향했습니다.
그 시간에 로사리아가 제대봉사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로사리아]『제의방에서 일하고 있는 저를 누가 찾는다 하여 나가보니, 남편이 성당 정문 근처 벤치에 앉아 있었습니다. 옷은 운동복 차림에 맨발에 슬리퍼만 신고 있었습니다. 남편은로사리아! 내가 몸이 이상해 집에 가서 좀 자고 일어나면 괜찮을 것 같아하면서 집으로 가자고 하는데 남편의 몸이 자꾸 오른쪽으로 기울어 지는 것이었습니다. 순간 올것이 왔다는 생각에 일산병원 응급실로 달렸습니다. 증상이 일어난 후 20분을 넘기지 않고 병원에 도착하여 빠른 처치를 할 수 있었습니다. 10여일 병원에 입원하여 검사가 진행되는 동안 성당에서는 연도대회가 있었고 듬직한 두 아들은 부모가 불참한 가운데도 의젓하게 교복을 입고 구역형제님들 사이에서 몫을 해 냈습니다. 아마도 두 아들의 기도와 구역 형제 자매님들 기도가 연도를 타고 하늘로 향하였는지 MRI사진에 이미 뇌경색 점들이 점점히 찍혀 있었지만 사지 어느 곳 하나 마비된 곳 없이 남편은 집으로 돌아 올 수 있었습니다.』
[돈보스코]『그후 막내누나와 같이 사시던 어머니께 치매가 찾아 왔습니다. 여섯 자식집을 한두달씩 전전하셨고 마침내 둘째누나 손에 이끌려 어머니가 저희 집으로 오시게 되자, 사실 저는 아들이었지만 어머니 모시기를 반대하였습니다. 제 건강상의 이유도 있었지만 더 이상 아내 로사리아에게 복잡하고 보편적이지 않은 저희 집안의 역사에 상처받게 하고 싶지 않아서 였습니다.
조카가 목사인 큰 형님도 계시고, 형수님이 개신교 권사이신 둘째 형님, 불교신자이신 셋째 형님, 원불교에서 알아 주는 집안인 큰 누나, 간증하고 다니시는 둘째 누나 등 모두 저희 집 보다 형편이나 상황이 좋은 분들이셨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어머니를 당신께서 수년전, 추운 겨울날에 내치신 막내 아들 곁으로 다시 돌아오게 만드셨습니다』
[로사리아]『제게는 이 세상에 단 하나 뿐인 어머니의 유물이 있습니다. 그것은 물질적인 재산도 아니고 값비싼 보석도 아닙니다. 중증치매이신 어머니께서는 저를성님이라고 부르셨습니다. 당신의 기억 연령은 막 시집오신 새색시였으니까요 그때 저는 원당성당에서 레지오구세주의 어머니단장직을 맡고 있었는데 어머니를 옆에 모시고 회의진행을 했습니다. 어머니는 기도문을 한구절씩 뒤따라 하셨고아멘아멘하며 두 손을 비비며 절을 하였습니다. 그러다 방황이 시작되면 단원 중 한명이 어머니를 보호하며 그렇게 배회를 하셨습니다. 중증치매는 암보다 더 무서운 병입니다. 환자 본인은 물론이지만, 가족 모두의 인간성을 상실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더욱 괴로운 것은 하느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양심 때문에 내면의 자신과
치열한 싸움을 벌이기도 합니다. 현관에 대소변을 보시고 발로 밟고 온 집안을 헤매시다 집안 곳곳에 묻혀 놓는 그 일은 어떤 일보다 제 정신을 피폐하게 만들었고 저는 어머니의 발바닥을 아기처럼 때려 주었습니다. 아주 많이 때려 주었습니다. 그러다 저는 짐승처럼 울부짖으며, 머리를 방바닥에 수 없이 찧고 하느님을 원망하고 현실을 저주하였습니다. 그렇게 악몽같은 긴 밤이 지나고 다음날 변함없는 아침이었지만 저는 어제밤의 제가 아니었습니다. 주님께서 저를 구하시어 지난 밤의 통곡소리를 아침에 환희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주무시는 어머니의 모습이 사랑스럽게 보이고, 빛나는 은빛 머리카락이 비단실처럼 부드러웠습니다. 저는 그 자리에 무너져 내려 엉엉 울며 어머니께 잘못을 빌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께서 이제껏 어느 누구도 알아보지 못 하시던 분이 나의 등을 두드리며괜찮다, 괜찮다 울지마라, 너무 많이 울면 몸이 쳐저서 못쓴다저를 며느리로 알아보신 처음이자 마지막 모습이었습니다. 저는 제가 끼고 있던 묵주반지를 어머니 손에 끼워드리며 하늘나라에 가실때까지 꼭 끼고 계시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밥상을 들고 들어가니 그새 목으로 넘겨 버리셨습니다. 너무 깜짝 놀라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어머니의 변이 나오기만을 기다렸습니다. 일회용 장갑을 끼고 보름이 넘게 찾다 드디어 반지를 찾아 냈습니다. 묵주반지는 어머니의 구곡간장을 오래 오래 돌고 돌아 하느님과 화해시키신 듯 하였고 어머니는마리아라는 세례명으로 하느님의 사랑받는 딸로 다시 태어 나셨습니다.
어머님과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을 할 수 있게 만들어 준 그 묵주반지를 저는 지금도 손가락에 끼고 있습니다』
[돈보스코]『M․E 전 대표이신 김기세 미카엘 형제님께서 M․E주말을 십여년을 권한 끝에 로사리아에게 선물하나 한다는 생각으로 별 생각없이 가방을 챙겼습니다. 그러나 2박 3일간의 ME주말은 잃어버린 신혼의 꿈들을 상기시켜 주었고 무지했던 결혼생활의 터닝포인트가 되었습니다. 삶의 구비 구비가 기적이었던 저희 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부부는 하나가 되지 못하고 서로의 흠집만 바라보며 서로 네탓이라고 비난하며 살아왔습니다.
사랑하는 로사리아!
지금껏 살아오면서 나는 당신에게 늘 마음에 상처만 주고 오직 내 자신만을 위한 이기적인 삶을 살아왔던 것 같아 미안하다는 말한마디로 대신하기에는 내 가슴에 바윗돌을 얹어 놓은 것처럼 마음이 너무나 무겁습니다.
작년에 창세기 성서공부에서 “아담과 하와에게 주님은 가죽옷을 입히셨는데 나에게 있어 가죽옷은 과연 무엇인가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성당 입교를 권유하면서 회사일로 바쁜 나를 위해 당신이 직접 통신교리를 신청하여 매주 날라오는 숙제를 곁에서 도와 무사히 세레를 받게 해주었고 성당내 독서단 활동을 통해서 주님에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고 그리고 아버지학교와 ME주말을 통해서 가족의 소중함과 부부의 사랑하는 방법을 알게 해준 당신이 나의 훌륭한 가죽옷이라고 생각합니다』
[로사리아]『사랑하는 보스꼬! M․E주말이 없었더라면 제 영혼은 아직도 반쪽자리 였을거라 생각이 듭니다. 늘 당신탓하며 불평만 늘어 놓았습니다. 삶의 구비 구비에서 기적을 통해 은혜를 베풀어 주셨는데도 알지 못하고, 교만하고 뻣뻣한 마음을 하느님께서는 M․E 주말을 통해 산산조각 내 주셨습니다. 모든게 내탓이라는 통회의 눈물과 함게,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우리들의 소중한 시간이 덧없는 싸움으로 흘러가 버린 듯 하여 후회스럽습니다. 우리 부부의 모습은 바로 우리 아이들 미래의 모습입니다.
시간이 나는대로 아버지학교 조장으로, 또는 관리팀 봉사로, 화정동성당 청소년발전위원회 아버지 회원으로 우리가 받은 배움과 사랑을 이웃 가정으로 나누어 주려고 노력하는 당신의 모습이 자랑스럽고 비록 서툴지만 미안하다, 고맙다, 사랑한다 더듬 더듬 표현해 주는 당신이 너무나 사랑스럽습니다.
우리에게 허락된 남은 삶은 참으로 하느님 보시기에 좋은 성가정의 모습으로 살아가리라 다짐해 봅니다. 감사합니다』
첫댓글 하느님보시기에 참좋은 성가정이 되리라 믿어집니다.^0^
우리가 M.E가족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주님께서는 불쌍한 우리를 위해 십자가의 고통으로 용서하시는데~~ 우리에게 아름다운 모습을 돌아 보시게 하시고 사랑을 베풀어 주십니다. 주님 사순시기에 저의 마음이 주님을 닮게하소서. 주님 영광과 찬미를 영원히 받으소서.
가슴이 찡해지네요.. 전 이제 결혼생활 13년쨰하고 있지만 참 가슴이 막막해 오네요.. 용서란 말이 참어려운데 항상 좋은 성가정끝까지 이어가시길 기도하겠습니다... 이런 좋은글 읽게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너무 감동적입니다. 주님의 모습대로 만든 인간이기에 주님 모습으로 돌아갈수 있다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