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오염, 특히 살충제라는 화학제품이 생태계, 그리고 마침내 인간에게 미치는 해악의 심각성을 고발함으로써 무분별한 과학기술의 오만과 자본의 탐욕에 대항해 투쟁해야 한다는 깃발을 들어 올린 책. 이 책에 언급된 화학제품의 구체적 해악을 다시 인용할 필요는 없다. 이제는 상식이 되어버렸으니...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의식의 수면에 떠오른 기억이 있다. 어렸을 때 TV를 통해 방영된, 성우가 더빙한 70년대 미국을 배경으로 한 영화. “엄마가 작아졌어요” 였다. 유명한 영화도 아니고 명배우가 등장한 영화도 아닌데 나는 묘하게 그 영화가 인상적이었다. 전업주부인 엄마가 아주 평범한 일상을 살다가 어느 날부터 서서히 작아지다 쥐만큼 작아지는 이야기다. 그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영화의 디테일을 모두 기억하지도 못하고 결말도 기억나지 않지만 부엌에 가득했던 온갖 세척제가 담긴 플라스틱병들이 있었다. 설거지를 할 때 개수대에 가득한 거품, 바닥 청소에 사용되는 세척제, 빨래할 때 또 거품들...
그땐 그 영화가 무얼 말하고 싶었는지 몰랐는데 환경오염의 심각성을 알게 되면서부터 그 영화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저자인 레이첼 카슨의 이력에서 눈이 동그래졌다. 해양생물학자였던 것이다. 그래서 해양생태에 대한 많은 책을 썼고 지금 우리나라에도 레이첼 카슨 전집으로 출판되었다고 한다. <바닷바람을 맞으며>, <우리를 둘러싼 바다>, <바다의 가장자리>가 해양생물학 관련 저서이다.
아... 해양생물학자였구나. 너무 반가웠다. 내 어릴적 꿈 중 하나가 해양생물학자였다. 파도 소리를 들으며 잠이 들고 갈매기 울음소리에 잠이 깨며 자랐던 나는 걸음마를 시작하면서부터 바다에서 놀았다. 혼자 헤엄치기를 배웠고, 여름이면 밥 먹고 잠자는 시간 말고는 늘 바다에 떠 있었다. 아버지는 머구리였다. 나는 지금도 바다에 떠서 해를 바라보며 웅웅거리는 파도소리를 들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 스킨 스쿠버도 배웠고, 가장 즐거운 여행은 스노클링을 하는 여행이다. 나는 바다가 궁금했고 깊은 바다에 사는 생명들이 궁금했다. 언젠가 산소통을 매고 동료들과 함께 바다 깊이 들어가 고래와 만나는 꿈도 꾸었다. 내 버켓리스트 중 하나는 고래와 눈을 맞추는 것이다.
그런데 레이첼 카슨이 해양생물학자였다니... 이제부터 카슨의 전집을 틈나는 대로 읽어보고 싶다. 더구나 <침묵의 봄>을 집필할 정도로 자연의 생명체에 대한 경외심을 품고 있는 여성이라면 해양생물들에 대해서 어떻게 저술했을지...
<한국과 그 이웃나라들>을 통해 알게된 이사벨라 비숍 여사에 이어 레이첼 카슨과의 만남은 또 하나의 이정표가 되리라. 카슨 전집에는 <침묵의 봄>의 서문을 쓴 전기작가 린다 리어가 카슨의 유고 중에서 엄선하여 엮은 <잃어버린 숲>이 있다 한다.
어떤 책을 읽고 나서는 책의 내용을 통해 그 책을 쓴 작가를 알고 싶어질 때가 있다. 레이첼 카슨이 너무 궁금하다. 약간의 두근거림도 있다.
린다 리어가 쓴 이 책의 서문에서 옮겨본다.
인체를 생태학적으로 바라본 카슨의 시각은 인간과 자연환경의 관계를 보여주는 사고의 중요 출발점이라고 볼 수 있다. 그녀는 인간의 건강뿐 아니라 환경 위험에 대한 이해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침묵의 봄>은 우리 몸이 예외가 아님을 확인해주었다. 화학물질 오염은 죽음에 이르게 할 만큼 심각한 영향을 줄 수 있다. 자연계의 다른 생물체와 마친가지로, 인간 역시 살충제에 취약하고 외부 물질의 침투에도 약하다. 모든 형태의 생명체는 서로 비슷하다.
인간의 건강은 환경 상태의 궁극적인 반영이라고 카슨은 믿었다. 이런 생각은 자연과 과학, 오염을 초래한 기술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바꿔 놓았다. 과학계가 카슨의 이런 주장을 조금씩 인정하는 가운데, 우리 몸을 생태계로 인식하게 된 것은 그녀가 끼친 매우 중요한 영향 중 하나다.
1962년 수백만 달러를 움직이는 화학 산업계는 이전 정부 간행물의 편집자이자 박사 학위도 없고 학회의 보호도 받지 못하는 여성 과학자, 바다에 관한 아름다운 책을 쓴 이 여성이 화학제품의 신뢰성을 뒤흔들고 그 신뢰에 의문을 던지도록 내버려두지 않았다. 업계에서 볼 때 카슨은 대수롭지 않은 현실에 문제를 제기하는 히스테릭한 여성에 지나지 않았다. 그녀는 ‘새와 토끼를 좋아하고’, 고양이를 키우며 사는 여성이었다. 그들이 보기에 카슨은 유전학에 지나치게 관심이 많은 낭만적 경향의 독신녀에 불과했다. 한마디로 통제 불능의 여성, 본문을 망각하고 과학 분야에서 도를 넘어선 존재였다. 하지만 그녀의 주장이 대중의 호응을 얻을 경우를 대비해 화학업계는 25만 달러를 들여 연구의 신빙성을 훼손하고 그녀를 이상한 사람으로 몰아가려 시도했다. 그들은 카슨이 문제의 한쪽 면에만 치우쳤고 믿을 수 없는 현장조사에 근거해 주장을 편다고 공격했다
<침묵의 봄>과 관련해 카슨은 또 다른 개인적 도전에 직면하게 되었다. 정부와 기업의 폄하와는 별도로 훨씬 더 강력한 적은 바로 급속도로 번져가는 유방암이었다. 그녀는 스스로 ‘온갖 병의 카탈로그’라 일컬은 고통을 참아내며 책을 마칠 때까지 버텨냈다. 자신에 대한 확학업계의 비난에는 면역이 되어 있었으므로 자신이 목격한 진실을 전하기 위해 살아남아야 하는 도전에 모든 에너지를 집중했다. 그녀는 소란을 일으키고 혼돈을 불어오기 위해 노력했다. 물론 위엄과 신중함을 갖추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