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적 향수를 느낄 수 있는 작은 내 집 같은 공간. 애시스 디자인 최시영의 스토리가 있고 향기가 있어 더욱 아름다운 성북동 사무실.
>> 삼각 지붕의 옛날 주택 구조를 그대로 살려 완성한 애시스 디자인의 성북동 사무실. 시원하게 뚫린 천장과 오랜 세월의 흔적이 묻어있는 빈티지 가구, 아트오브제로 채워진 사무실은 내 집처럼 편안하다.
당대의 쟁쟁한 주거 공간을 탄생시키며 우리나라 주거 문화를 리드해 온 최시영. 그런 그가 사실은 완전한 ‘컴맹’이란 사실을 아는가. 컴퓨터는 전혀 쓰지도않을뿐더러 휴대폰 문자 메시지 하나 보낼 줄 모른다. 디지털 시대를 사는 현대인을 위한 주거 공간을 제안하는 디자이너가 스스로는 아날로그 감성으로 똘똘 뭉쳐 있다니, 쉽게 믿기지 않는 사실이다.
>> 사무실의 메인 홀. 벽난로와 그 주변의 벽돌 벽면은 모두 이전 주택이 가진 구조를 활용한 것.
곰곰이 돌이켜보면 그가 디자인한 수많은 주거 공간들은 하나같이 그 형태는 주상복합이니 타운하우스니 언제나 그 시대를 리드하는 것이었지만, 그 안을 채운 콘텐츠만큼은 물, 돌,나무 같은 자연에서부터 여행, 휴식 등 그동안 우리가 잊고 있었던 숨은 감성을깨우는 테마들로 이루어져 있지 않았던가. 이런 사실은 지난 봄, 새롭게 이전한최시영의 사무실에서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다. 도심 한복판 남산 자락에 있던 사무실에서 성북동의 조용한 주택가로 새 둥지를 옮겼다.
>> 평범한 주택 외관은 중후한 느낌의 대형 철판으로 마감해 사무실다운 느낌을 주고자 했다.
“아침에 출근하는 시간이 하루 일과 중 가장 행복한 시간이 되었다면, 이곳으로사무실을 이전하길 아주 잘한 거겠죠?(웃음) 한남동 집을 출발해서 남산을 넘어, 광화문과 경복궁 거리를 지나, 사간동 갤러리 길을 달리다 보면 기분이 좋아져요. 지금도 점심을 먹고 갤러리 현대에 들러 전시 구경을 하고 왔지요.”(웃음)
물론, 사계절 자연의 변화를 1년 내내 몸으로 느낄 수 있었던 이전의 남산 아래사무실도 좋았다. 그런데 이번 사무실은 깊은 산 속에 있지 않아도 자연에 둘러싸인 기분이 들 만큼 전망이 좋을 뿐 아니라, 근처에 크고 작은 한옥과 주택,갤러리가 함께 자리해 또 다른 여유를 느낄 수 있어 금상첨화이다.
>> 빌딩 내 위치한여느 사무실과 달리 푸른 나무들과 정원을 접하고 있어 한결 정서적으로 안정적인 느낌을 준다.
건물 전체를 중후한 대형 철판으로 에둘러 쌌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직원들이 내 집처럼편안히 일하길 바라지만, 그래도 사무실은 사무실다워야 한다는 생각에 무게감이 느껴지는 철판 소재를 선택했다.
>> 최시영 개인 사무 공간. 늘 손이 닿는 곳이면 어디나 책이 놓여있다. 뒤편의 책장은 aA뮤지엄에서 구입한 빈티지 아이템.
사무실은 평범한 주택을 개조한 것이다. 처음에는 개조도 하지 않고 그냥 원래공간이 생겨먹은 그대로 사용할 작정이었다. 하지만 그 재주를 어디 가만히 감춰둘 수 있었겠는가? 처음엔 계단만 조금 손보자 했던 것이, 대문으로, 다시 외관으로 이렇게 조금씩 조금씩 리노베이션을 하게 되었다고. 외관만 봐서는 이곳이 낡은 주택이었다는 사실을 눈치챌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 영국에서 구입한 빈티지 책상을 두고 창가 쪽에는 그가 좋아하는 프랑스 디자이너 크리스티앙 리에그르의 소파를 두었다.
다만, 한 가지, 공간 곳곳을 채우고 있는 빈티지 가구들과 아트 작품들에서 뿜어져 나오는 고즈넉한 분위기가 이곳이 여느 집이나 사무실과는 사뭇 달라 보이게 한다. 지하 2층, 지상 2층 구조의 사무실은 한 층 안에 전 직원이 모여있던이전 사무실과 달리 계단을 오르내리는 불편을 감수해야 하지만, 누구 하나 그것을 불편으로 느끼지 않는다.
>> 계단 위에 마련한 라이브러리 공간.
“여기에 있는 가구며 소품들은 다 오래전부터 하나씩 둘씩 모아온 빈티지 아이템들이에요. 워낙 제가 디지털 기계들을 싫어해요. 우리집 애들만 해도 컴퓨터앞에 앉아서 게임 삼매경에 빠져있는 경우가 많은데 그 모습이 참 보기 싫더라고요. 디지털 기계가 주인 노릇을 할수록 가족은 해체돼 버리지요.”
>> 각종 건축 및 디자인 관련서적들이 빼곡하게 채워진 라이브러리는 직원들이 자주 다니는 계단위 오픈 공간에 마련, 책을 접할 기회를 좀 더 자주 제공하고자 했다.
그는 최근 이런 자신의 철학을 담아 책을 테마로 한 아파트 단지 디자인을 선보인 바 있다. 건설사의 이름을 앞세운 아파트 대신 ‘북시티(Book City)’라는 아파트 이름을 달고, 101동, 102동 대신 101페이지, 102페이지로 불리는 아파트이다. 이곳엔 1만 권 이상의 책을 소장한 도서관을 비롯해 북카페로 꾸며진 주민커뮤니티 센터가 생긴다.
>> 정겨운 빈티지 가구와 자연으로의 회귀 본능을 자극하는 제리율스만의 사진 작품이 여유로운 분위기를 선사한다. 좋아하는 그림한 점, 가구 한 점이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세월이 빚은 와인, 손으로 넘기며 읽는 책, 세심한 손질이 필요한 담배 시가…. 제가 디자인하는 공간도 이런 빈티지처럼 이야기가 있는 공간이라면 좋겠어요.”
컴퓨터 워드를 쓸 줄 몰라서 그의 몸은 조금 불편할 수 있겠지만 사각사각 펜촉으로 글씨를 써내려 가는 동안 그의 마음은 조금 더따뜻해졌을 것이다. 사람을 향하고, 감성을 향한 그의 온기로 가득한 이곳이 내 집처럼 편하게 느껴지는이유가 여기에 있다.
§ 최시영의 favorite things
인테리어 디자이너 최시영의 건축 디자인에 영감을 주는 것들, 그의 사무실을 채운 그가 사랑하는 것들.
1 아날로그 감성의 최시영은 디자인 작업을할 때도 컴퓨터 대신 손으로 그린 스케치로시작한다. 그의 책상에는 스케치를 위한종이가 아예 롤째로 올려져 있다.
2 아프리카 여행길에서 구한핸드메이드 오브제. 모든 걸 손으로만드는 아프리카에선 아빠가 아이를 위해 만든 공작 작품도 아트작품처럼 신선하게 다가온다.
3 그가 좋아하는 책과 아트가한데 어우러져 더욱 애착이가는 대리석 오브제. 독일의부부 조각가 쿠바흐&뷜름젠의작품으로 여행길에 그들의아틀리에를 방문한 추억까지더해져 더욱 아끼는 작품.
4 그가 가장 좋아하는 프랑스 디자이너 크리스티앙리에그르. 본인의 작품이 앞뒤, 옆집에 획일적으로진열되는 걸 원치 않는다고 말할 정도로 격이 있는디자인을 추구하는 그의 제품은 동양의 곡선과 서양의절제미가 잘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점에서 동경한다.
5 세계의 건축 작품들에 관한 정보도 그는 인터넷 대신 책을 통해 접한다.책 속엔 엄청난 정보가 있다고 믿는 그는 지난 잡지조차도 쉽게 버리지못한다고. 요즘 나온 책들은 디자인까지 예뻐서 장식 요소로 활용해도좋다며, 그의 책에 대한 예찬은 그칠 줄 모른다.
6 빈티지 안에는 이야기가 있고 향기가 있다. 한 번에 불을 붙일 수 있는 요즘 담배보다는일일이 사람의 손으로 손질하고 다듬어 피는 시가 쪽에 훨씬 정이 간다고. 가구 역시마찬가지다. 잘 빠진 고가의 명품 브랜드보다 투박하고 사람 냄새 가득한 빈티지가 더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