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로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시니라
(사무엘하 8장 1-18절)
모든 일이 뜻대로 잘 되어간다는 뜻의 성경용어로는 ‘형통하다’ (go well, progress favorably)라고 합니다. ‘형통하다’의 본래 의미는 앞만 보고 돌진하는 것을 말합니다. 아무 거리낌이 없고 거침이 없이 전진해 나가는 상황이 ‘형통’한 상황입니다. ‘형통’의 의미를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수 있는 힘과 능력과 지혜를 가지고 일관되고 끈기 있게 전진해서 하나님의 뜻을 기필코 성취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을 때 반드시 모든 일에 형통합니다. 모세나 여호수아나 다윗은 하나님과 늘 동행하면서, 하나님의 인도하심만을 따랐기 때문에 범사에 형통함을 누리며 살았던 대표적인 인물들입니다.
사무엘하는 전체 24장의 내용이 다윗왕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지금 다윗은 예루살렘 궁궐에서 왕의 자리에 앉아 안정된 통치를 하고 있지만, 그가 왕이 되는 과정은 쉽지 않았습니다. 사울 왕이 죽자 사울의 아들인 이스보셋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습니다. 다윗은 이스보셋과 그의 군대를 피해 예루살렘에서 멀리 떨어진 헤브론 지역에서 유다 지역만 다스리는 왕위에 올랐습니다. 세력도 약하고 다스리는 지역도 제한적이었습니다. 헤브론에서 지낸 기간만 7년 6개월이나 되었습니다. 다윗은 오랜 내란을 종식시키고, 이웃 나라들을 제압한 후에 예루살렘 궁궐로 입성하였습니다. 실로에 있던 법궤도 예루살렘 성으로 옮겨 왔습니다. 이제야 말로 이스라엘 전체를 다스리는 통일국가의 왕으로 다윗의 통치시대가 열린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다윗의 전성기 소위, 가장 잘나가던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오눌 설교 제목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시니라”입니다. 제목 그대로 다윗은 모든 전쟁에서 다 이겼습니다. 동서남북으로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넒은 영토를 차지였습니다. 이웃나라들을 정복하여 속국으로 만들었고 조공무역을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형통’함의 복이 다윗과 이스라엘 전체에 큰 영광으로 나타났습니다. 오늘 말씀을 듣는 우리 모두가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시니라”는 형통함의 말씀을 믿음으로 다 받으시고, 다윗 시대와 같은 번영과 풍요의 복을 그대로 누릴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다윗에게 내려 주신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시니라”는 말씀은 6절과 14절에 두 번이나 반복하여 나옵니다. 반복되는 구절은 하나님께서 책임지고 반드시 그렇게 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담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6장 4절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시면서 하나님 자신을 가리켜 스스로에게 맹세하며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가 반드시 너에게 복 주고 복 주며 너를 번성하게 하고 번성하게 하리라” 복주고 복주며, 번성 하게 번성 하게, 같은 말을 반복함으로 하나님이 하신 약속은 확실하고 분명하다는 사실을 주지시켜 줍니다.
예수님도 말씀 도중에,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 3:3)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요3:5) 등과 같이 “진실로, 진실로” 라는 말씀을 반복하여 사용합니다. “진실로”를 두 번 반복해서 사용한 곳은 신약에서 25번 나오는데, 출처는 모두 요한복음입니다. 요한복음의 저자인 사도요한이 반복되는 단어를 즐겨 사용하였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그만큼 요한복음이 우리에게 주는 영적인 교훈들이 가득하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진실로, 진실로”가 붙은 구절 내용만 읽어보아도 그 중요도를 짐작할 수 있지만, 예수님이 이렇게 반복하여 말씀하신 내용들은 아무리 강조하여도 지나침이 없을 정도로 중요하고 또 중요한 말씀이라는 것을 독자들에게 각인시켜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시니라” 약속하신 것처럼 다윗은 승승장구 했습니다. 그가 정복한 나라들은 블레셋, 모압, 암몬, 아람, 에돔, 아말렉, 소바 등 이스라엘의 모든 주변 국가들이었습니다. 더 이상 이스라엘을 공격할 적대세력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다윗은 정복한 국가들을 종으로 삼았습니다. 정기적으로 조공도 바치게 했습니다. 이른바 다윗시대가 활짝 열렸습니다. 다윗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정의(공평)와 공의(의로운 법으로)로 다스렸습니다. 백성들은 다윗왕의 승전과 치세를 칭송했고, 하나님도 다윗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종이라고 인정을 해주셨습니다. 다윗은 군의 지휘관들과, 제사장들과, 각 대신들을 새로이 임명하여 나라 안 밖으로 정비를 튼튼히 했습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이 함께 해주셨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고, 다윗이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고 끝까지 믿음으로 행동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다윗이 어떻게 해서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시니라”는 약속의 말씀을 받을 수 있었고, 모두가 부러워하는 부유하고 융성한 국가를 이루게 되었는지 그 이유를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첫째 이유는, 다윗이 순수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쓰시기에 합당하게 준비된 사람)
다윗은 이새의 8명의 아들 중 막내였습니다. 그는 자신이 이스라엘을 다스릴 왕으로 하나님께서 선택하셨음을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물론 그의 아버지 이새와 그의 형들도 막내 다윗이 기름부음을 받을 줄은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위대한 사사요 선지자인 사무엘조차도 이새의 집을 방문 했을 때 집안의 장남인 엘리압을 보고 “과연 하나님께서 기름부음을 받을 사람이 주님 앞에 섰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사무엘은 엘리압의 준수한 외모와 큰 키만 보고 그렇게 쉽게 판단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사무엘에게 말씀하시기를 “엘리압은 내가 세운 사람이 아니다.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고 하셨습니다.
마음 중심이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한 사람이겠습니까? 다윗이 선택 받을 수 있었던 것은 특별한 것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제가 누누이 말씀드렸던 것처럼 그냥 기본에 충실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목동 일을 열심히 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여 맹수들도 돌팔매로 물리쳤습니다. 들판에 누워 하나님을 찬양하며 노래했습니다. 다윗은 주어진 일에 전혀 불평하지 않았고, 하나님만을 믿고, 하나님만을 사랑하고, 하나님만을 찬양했습니다. 삶의 예배자가 다윗의 모습일 것입니다. 다윗과 같이 마음과 시선이 온전히 하나님께로 향한 사람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한 사람입니다.
사람들의 성장과정은 비슷합니다. 고등학교 과정까지는 분초도 아끼면서 정말 치열하게 공부합니다. 오직 목표는 좋은 대학을 진학하는 것입니다. 대학에 가서도 학점관리다, 취직 준비다 정신없이 지내다 보면 금방 졸업입니다. 어렵게 직장에 들어가면 이제부터 진짜 생존 경쟁입니다. 사회라는 곳은 성공하기 위해서, 승진하기 위해서, 돈 많이 벌기 위해서 일벌레가 되지 않고는 살아남을 수 없는 구조입니다. 한 주간 정신없이 살다보면 몸도 마음도 지칩니다. 그러니 언제 신앙생활에 힘쓰고, 언제 기도하고, 언제 예배하는데 집중할 수 있겠습니까? 정말 우리 삶의 시간은 빡빡합니다. 몸도 마음도 항상 피곤한 상태입니다. 계산적으로는 다윗과 같이 여유롭게 하나님을 바라보며 찬양시를 지으며 지내는 시간을 도저히 낼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그 시간들을 쪼개고, 버려지는 시간들을 모으고 모아서 하나님께 집중하는데 투자해야 합니다. 안 될 것 같은 시간도 구분해서 하나님께 드리다보면 어느새 시간에 여유가 생깁니다. 거짓말 같이 오히려 시간이 남습니다. 실제로 시간이 남아서 그렇게 느끼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면 갈수록 우리가 마음의 평안을 얻고 참 안식을 취하기 때문입니다. 마음의 여유가 생기면 쌓였던 모든 질병의 원인이라는 스트레스도 해소 됩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하게 인정받으려면, 내 시간을, 내 몸을, 내가 가진 재능을 하나님께 드리면 됩니다. 하나님은, 내가 가진 것들을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드리려고 작정하면 그 마음을 그대로 받으시는 분입니다.
장남이라고 해서, 나이가 많다고 해서, 지식이 풍부하다고 해서, 큰돈을 벌어 재력가가 되었다고 해서, 여러 가지 사회적 성공기준이나 평가기준은 결코 하나님의 선택 기준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 쓰시기에 적합한 준비된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쓰임 받으려고 앞서가지 말고 자리를 지키며 준비하고 기다리면 때가 되었을 때 불러 주십니다. 준비된 사람은 다윗과 같이 마음이 하나님께로만 온전히 향해 있는 사람입니다. 누가 나를 인정해 주기 바라는 마음으로, 눈치 보여서 어쩔 수 없는 의무감으로, 이 일을 함으로 내게 어떤 보상이 주어지는 것을 기대하는 계산적인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면, 하나님은 기뻐하시지도 않고 결코 받으시지도 않습니다.
내가 무엇을 해서 하나님의 일을 이루려고 과욕을 부리지도 말아야 합니다. 오직 우리가 할 것은 다윗과 같이 기본에 충실하면 됩니다. 예배의 자리 잘 지키고, 기도의 자리에 나아오기를 힘쓰고, 봉사하고 헌신하는데 자발적으로 움직이면 됩니다. 뜻 밖에 다윗을 찾아와 기름 부어 주신 것처럼, 순전하게 하나님만을 사랑하는 사람은 언젠가 하나님이 크게 들어 쓰실 것입니다. 00교회와 우리 모두가 하나님을 향해서만 나아가는, 하나님 중심, 하나님 우선의 삶을 살아가심으로, 하나님 마음에 합당하게 인정받고 크게 쓰임 받기를 축복합니다.
둘째 이유는, 다윗이 하나님을 뜻을 거스르지 않고 때를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순종하는 사람)
다윗이 사울왕의 사위 였던 시절에 장인인 사울 왕이 자신을 죽이려고 하자 기나긴 도피생활을 시작합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죽였을 때 나이를 추정해 보고, 다윗이 30세에 왕위에 오른 것을 감안해 볼 때 도피 기간은 최소한으로 잡아도 10년 이상이 됩니다. 광야에서 떠돌이 생활을 10년 이상 하는 것은 굶어 죽지 않는 것만으로 기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피난 기간에 사울왕은 끊임없이 군사를 보내 다윗을 죽이려 했습니다. 다윗이 오죽 급하고 피할 길이 막혔으면 이스라엘과 가장 적대적인 블레셋으로 도망가는 일까지 있었습니다. 블레셋 왕 앞에서 미친 사람 흉내를 내서 사지에서 벗어나기도 했습니다. 이런 힘든 도피 기간이었지만 다윗은 자신을 죽이려고 하는 사울 왕을 원망하거나, 그를 죽여야 하겠다거나, 힘을 모아서 반란을 일으킬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기름 부은 사울 왕을 건드리는 것은 곧 하나님을 대적하는 행위로 굳게 믿었습니다. 다윗은 광야에서 사울 왕을 죽일 수 있는 기회가 두 번이나 있었지만 죽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그토록 죽이고자 했던 사울 왕이 싸움에서 전사하자 통곡하며 깊은 애도의 뜻을 담아 애절한 조가(죽음을 슬퍼하는 노래) 만들어 부르기도 하였습니다. 죽이려는 대적자 에게까지 이런 관용과 용서를 베풀 수 있는 원천이 무엇이겠습니까? 다윗은 자신이 기름부음을 받은 것은 이상 더 이상 자유의 몸이 아니고 하나님께 매여 있는 종이라는 사실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너를 쓸 때 까지 기다리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끝까지 순종하였습니다. 무려 10년이 넘게 죽음과의 사투 속에서도 하나님이 정해놓으신 때를 기다렸기 때문에 다윗이 위대한 왕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대부분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조급함 때문입니다. 한국인처럼 성질 급한 민족도 없을 겁니다. 한국 사람들의 몇 가지 급한 성격을 예로 들면, 버스, 택시를 잡으려 할 때 도로에 내려와 있다가 차들과 추격전을 벌입니다. 횡단보도를 건너기 전에도 도로에서 몇 발자국 앞에 나와서 기다리다가 녹색등이 들어오기 전에 씩씩하게 건넙니다. 영화가 끝나면 엔딩크레딧 올라가고 OST를 느긋하게 감상하는 모습은 없고, 스포츠 경기가 끝나기 전에 미리 경기장을 빠져 나갑니다. 누가 무엇을 설명하려면 말을 자르고, “아 됐고, 그래서 끝이 먼데, 결론이 머냐고?” 묻습니다. 이런 몇 가지 상황이, “꼭 내 모습이네”라고 생각하시는 분은 분명하게 의심의 여지없는 한국 사람입니다.
예수님도 때를 기다리셨습니다. “아직 내 때가 이르지 아니하였다, 아직 내 때가 차지 아니하였다”고 종종 말씀 하셨습니다. 다윗이나 예수님의 경우처럼, 죽음이라는 큰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데도 인내하고 때를 기다리는 것이 진정한 순종의 마음입니다. 죽음의 위험이 아닐지라도 우리에게는 크고 작은 넘어야 할 현실의 장벽이 있습니다. 내가 인생의 전성기를 구가하려면 무언가 빨리 이루어 내야 한다는 조급함을 접어두고 먼저 마음의 여유를 찾아야 합니다. “돈을 모아야 돼! 돈만 있으면 뭐라도 할 수 있을 거야! 돈, 돈, 돈 만 생각하다가는 정말 헤어날 수 없는 돈의 노예가 되어 버립니다. 돈으로 우리의 인생이 행복해 진다면 하나님께서 지금 당장 우리 각자에게 100억쯤 나누어 주면 금방 해결됩니다. 100억으로 흥청망청 인생 살다가 망하는 것보다, 100만원으로 한 달 빠듯하게 살아가지만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갈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기다리고 순종하면 돈도 주시고 평안도 주시고 영생도 주심을 믿어야 합니다.
다윗이 오랫동안 하나님의 때를 기다렸던 순종함이 곧 우리의 순종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계산해 놓은 인생의 스케줄을 지워버리고 하나님이 나를 인도해 가시는 데로 맡겨야 합니다. 몸과 마음에서 힘을 빼시고 하나님의 이끌어 가심을 느껴보십시오. 하나님은, 기다리라고 하면 기다리는지, 멈추라고 하면 멈추는지, 가라고 하면 앞으로 나가는지 우리 마음을 테스트하십니다. 순종하는 자에게는 다윗과 같은 왕권도 주시고, 물권도 주시고, 번영의 복을 주실 것입니다. 때를 기다리며 하나님의 명령을 듣고 순종하여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 받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셋째 이유는, 다윗이 하나님을 마음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 무엇인지 분별할 줄 아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사람)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깨닫고, 그 뜻을 이루어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사람을 가장 크게 칭찬 하십니다. 다윗은 오랜 시간 고난을 통해 어렵게 왕위에 올라 있었지만,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아가는 것이 우선이 아니었습니다. 다윗은 자신은 화려한 궁궐에서 진수성찬을 먹으며 평안하게 지내는 것이 오히려 불편했습니다. 자신과 비교했을 때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성전이 너무나 초라한 것을 생각하고 마음 아파했습니다. 다윗은 선지자 나단을 불러 자신의 속내를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백향목 왕궁에 사는데, 하나님의 궤는 아직도 휘장 안에 있습니다” 다윗의 고백은 하나님은 뜻을 정확하게 분별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말을 듣고 너무나 감동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감격하여 이렇게 표현 하십니다. “네가 나를 위해 내가 있을 집을 지어 주겠다는 말이냐? 정말이냐? 어느 누구도 이런 말을 한 적이 없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구나!”(표준새번역, 우리말 성경 인용) 다윗의 이 진실한 고백 한 마디가 하나님의 마음을 크게 감동시켰고, 다윗과 그 후손에게 영원한 왕위가 주어지게 됩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고백을 받으시고 이른바 ‘다윗언약’을 맺습니다. 아마도 구약에서 가장 중요한 언약일 수 있습니다. 그 내용은 사무엘하 7장 4-16절이며, 요약하면 이런 내용입니다. (표준새번역 인용) “나 만군의 주가 말한다. 너를 이스라엘 통치자로 삼은 것은 나다. 나는, 네가 어디로 가든지, 언제나 너와 함께 있을 것이며, 나는 이제 네 이름을, 세상에서 위대한 사람들의 이름과 같이, 빛나게 해주겠다. 너의 집안을 한 왕조로 만들어 네 몸에서 나올 자식을 후계자로 세워서, 그의 나라를 튼튼하게 하겠다.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이어 갈 것이며, 네 왕위가 영원히 튼튼하게 서 있을 것이다”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어마 어마한 언약입니다. 한 사람이 하나님의 마음을 분별하여 그 뜻을 이루어 드린다고 고백 했더니, 영원한 나라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 나라는 다윗의 후손인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성취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진실한 고백들을 들으시고 감동대로 큰 복을 내리시는 분임을 증명해 보이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인간적인 욕심과 성취를 위해 하나님의 이름으로 포장하는 고백은 겉이 아무리 화려하여도 하나님은 기뻐하시지도 않고 응답하시지도 않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상 그렇게 수많은 은혜를 받고도, 단 한명도 하나님의 마음을 이렇게 감동 시킨 적은 없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하나님의 뜻을 받아서, 그 뜻을 이루어 드리겠다고 고백하고 행동하려는 사람을 찾고 계시고, 기다리고 계십니다.
저와 여러분 중에 단 한 사람 이라도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알고 고백한다면, 교회와 가정에는 상상하지 못하는 복이 임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진실한 고백을 듣기를 원하는 분입니다.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헤아리는데 우리 모두가 힘써야 할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가 다윗과 같이 내 안위와 평안보다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것이 무엇인가, 늘 집중하고, 늘 깨어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다윗 언약과 같은 큰 복을 받아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00교회와 성도 분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넷째 이유는, 다윗이 모든 감사와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는 기도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나단 선지자를 통해서 하나님이 말씀하신 언약을 다 들었습니다. 다윗의 반응은 가장 먼저 성막 앞에 나아가 무릎 꿇고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다윗은 이렇게 기도하였습니다. (사무엘하 7장 18-29절 요약, 우리말성경) “주 여호와여, 제가 누구며 제 집안이 무엇이길래 저를 이 자리까지 오르게 하셨습니까? 주께서는 얼마나 위대하신지요. 주 같은 분이 없고 주 외에는 하나님이 없습니다. 이제 주의 종과 종의 집에 대해 약속하신 말씀이 영원히 변하지 않게 해 주십시오. 주 여호와여, 주는 하나님이십니다. 주의 말씀은 진실하십니다. 주의 종의 집이 주께서 내리시는 복으로 영원히 복을 받게 해 주십시오” 아멘.
하나님이 내리신 언약과 다윗이 올려드린 기도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릅니다. 정말로 사랑하는 부자지간에 가장 좋은 것을 선물로 주고, 주신 것에 진정으로 감사하는 모습이 담겨져 있습니다. 다윗은 신실하게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의 이러한 평소 기도하는 습관이 하나님의 마음을 까지 읽을 수가 있었고 결국 큰 복을 받는데 까지 이른 것입니다.
처음 말씀으로 되돌아가 봅니다.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시니라”이 형통의 말씀이 단시간에 그냥 주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다윗의 일생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하게 행동한 네 가지를 다시 한 번 복습합니다. ①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아가면서 하나님이 마음대로 쓰시기에 합당한 사람으로 준비되어 있고, ②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지 않고 하나님의 때를 순종함으로 기다리고, ③ 하나님의 나음을 기쁘시게 하는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여 고백으로, 실천으로 하나님께 드리고, ④ 되어진 일에 대해서는 모든 감사와 영광을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가 우선이 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은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시니라” 형통의 말씀을 내려 주십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게 되면 무엇이든지 얻고 무엇이든지 누리게 된다는 것을 다윗을 통해서 깨닫게 됩니다.
우리 현실을 보십시오. 잘된 사람, 돈 많이 번 사람들을 보면 솔직히 부럽습니다. 시기심도 납니다. 그것 때문에 집에서 남편한테 괜히 이유도 없이 짜증도 부려 봅니다. 결국은 낙심하면서 말합니다. “나의 전성기는 이미 지났어, 나에게 무슨 낙이 있겠어, 내 팔자가 여기까지지, 난 그냥 이대로 살래” 여러분, 여러분의 전성기는 언제였습니까? 지나갔습니까? 아직 오지 않았습니까? 전성기 자체가 있을 기회조차 없지는 않았습니까? 만약에 돈의 가치로 인생의 전성기를 따진다면 우리에게는 영원히 전성기가 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돈이 아니라 하나님의 가치 기준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포기하지 마시고 낙담하지 마십시오. 우리의 전성기는 끝난 것도 아니고, 멈추어진 것도 아닙니다. 언제나 우리의 전성기는 열려 있습니다. 각자의 마음에 대고 선포하십시오. “나의 전성기는 아직 오지 않았다! 나의 전성기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는 시간이 나의 전성기입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힘을 주시는 시간이 내가 잘 나가는 전성기의 시간입니다. 하나님이 나의 백그라운드가 되어 주시는 시간이 내가모든 것을 차지하고 정복할 수 있는 시간입니다. 하나님은 오늘 00교회와 우리에게 새롭게 전성기를 시작할 수 있는 확실한 약속의 말씀, 말씀을 주십니다.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시니라” 할렐루야! 아멘.
말씀을 붙들어야 합니다. 우리교회의 전성기, 우리 가정의 전성기, 나의 전성기는 오늘 이 시간 이후로 계속 된다는 사실을 믿으십시오. 지금의 삶이 힘들고 어려우시다면 하나님께 부르짖고 매달려 기도하십시오. 지금의 삶이 평안하시다면 경계를 늦추지 말고 계속 기도에 힘쓰십시오. 다윗에게 주셨던 형통함의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복으로 임하고,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시니라” 이 말씀이 곤고한 우리의 삶을 희망과 소망으로 바꾸는 살아있고 능력 있는 말씀으로 함께하기를 축복합니다.
----------------------------------------------------------------
하나님 아버지! 우리교회와 가정과 각자에게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시니라” 말씀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말씀 붙들고 전성기를 열어주시는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고,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심을 늘 감사하면서 살아가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준비하고, 순종하고, 뜻을 이루어 드리고, 기도로 영광 돌리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어디로 가든지 항상 승리하게 이끌어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 나이다. 아멘.
출처: 창골산 봉서방 글쓴이: 김민호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