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8월 27일 성령강림절 후 열셋째 주일예배를 드리겠습니다.
찬송 38장입니다.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을 하겠습니다.
찬송 34장입니다.
광고, 헌금, 기도입니다.
성경 계22:6-21절(신411)입니다.
성가대 찬양입니다.
제목: 요한계시록 이란? (2)
요한계시록은 서문(1:1-8)과 오늘 본문인 종결문(22:6-21)에 의해 보자기처럼 쌓인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1:1)입니다. ‘계시’가 단수이기에 요한계시록은 예수 그리스도의 여러 환상이지만, 그에 대한 하나(문학작품)의 메시지입니다.
성도 여러분, 요한계시록의 성격과 내용을 소개하는 서문과 마찬가지로 오늘 본문인 종결문도 요한계시록의 중요한 내용을 다시 반복하여 강조합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요한계시록을 읽기 전에 이것이 어떤 책이며, 어떻게(어떤 목적과 관점에서) 읽어야 하는지를 다시 알아보기를 원합니다.
오늘 본문(6-21)은 각각 ‘내가 속히 온다’(7, 12, 20)라는 예수님 약속을 중심으로 천사의 증거(6-11), 주 예수의 증거(12-16), 요한의 증거(17-21)로 되어 있습니다.
1. 요한에게 네 번째(마지막)의 환상을 안내한 천사의 증거입니다(6-11)
천사는 요한에게 표제(1:1-3)와 같이 요한계시록을 요약하며 믿고 지키기를 권합니다. 6-7절입니다. “또 그가 내게 말하기를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된지라. 주 곧 선지자들의 영(들)의 하나님이 그의 종들에게 ‘반드시 속히 되어질 일’(1:1)을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보내셨도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으리라 하더라.” ‘주 곧 선지자들의 영들의 하나님’(6)은 ‘전능하신 이와 어린양’(21:22)을 가리키며, ‘선지자들’은 ‘성도들’을 의미합니다(9).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믿어야 할 이유는 ‘신실하고 참되기’ 때문이며(6, 21:5), ‘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1:2)이기 때문입니다(6). 그러므로 그것을 믿고 끝까지 지켜는 자는 복이 있습니다(7, 1:3).
요한계시록은 하나님이 그의 종들(우리)에게 보이시려는 ‘반드시 속히 되어질 일들’(1:1)입니다(6). 이것에 대하여 주 예수가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1:8)라고 약속하십니다(7). 천사는 ‘반드시 속히 되어질 일들’(6)의 ‘그의 긴급한 성취(속히)’를 강조합니다. 1:3절과 같이 ‘때(카이로스)가 가까우니라’(10b)이 사용되었고,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1:7)라는 그의 약속이 3번이나 반복되고 있습니다(7, 12, 20).
성도 여러분, 이것은 주 예수의 마지막 오심(재림)을 의미한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그의 오심의 긴급함(속히)을 조급함으로 오해하면 위험합니다. 즉 충동적으로 재산을 팔고 일도 안 하며 어디에 모여서 그를 단지 기다리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요한계시록은 그의 긴급한 오심을 현재 우리가 그것을 준비해야 하는 일들에 대한 이유로 제시합니다.
그러면, 그의 긴급한 오심에 대하여 무엇을 하여야 할까요? 첫째는 이 예언의 말씀을 잘 듣고 자신의 것으로 소화하여 모든 환란과 핍박 가운데서도 끝까지 믿음을 지키는 것입니다(7, 1:3). 둘째는 이것을 비밀로 봉인하지 않고 모든 사람에게 알려(증거)주어야 합니다(10, 17, 11:3). 우리는 주 예수의 선지자들입니다(6, 9).
그래서 주 예수의 약속인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7, 12, 20)에서 ‘오리니’ 동사가 다 미래형이 아니라 현재형입니다. 이는 우리에게 익숙한 과거, 현재, 미래의 시간개념(크로노스)의 미래가 아니라, 미래를 포함하고 있는 ‘현재 즉 하나님의 정하신 때나 기회(카이로스)’로 표현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에 대하여 ‘보만(Thorlief Boman)’은 “현재라는 말은 문자 그대로 현존을 의미한다. 이는 행사가 진행하는 현장에 우리가 있다는 뜻이다”라고 설명합니다.
요한계시록에서 하나님은 과거와 미래를 포함하는 현재의 하나님(출3:14, the one who is)이신 데(1:4), 사단은 과거와 미래만 있고 현재는 없는 자로 설명됩니다(17:8). “이전에 있었다가 지금은 없으나 장차 나올 짐승을 보고 놀랍게 여기리라.”
그렇습니다. ‘반드시 속히 될 일’(6, 1:1)이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죽음과 부활)으로 이미 성취되었고, 그를 통하여 계속 성취되고 있으며, 완전한 성취를 위하여 현재 그가 속히 오고 계십니다. 성도 여러분, 그가 오실 미래 시간을 계산하거나 그 날을 정확하게 예언하는 것에 관심을 두지 말고, 오늘 현재 그 말씀을 지키며(7) 사람들에게 증거 함(10-11)으로 그의 긴급한 오심에 참여(준비)하시기를 바랍니다.
천사는 그의 긴급한 오심(7)에 근거하여 요한에게 두 가지 명령을 줍니다(10-11).
첫째는 ‘이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는 명령입니다(10). “또 내게 말하되,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 때가 가까우니라.”
이 명령의 배경은 5:5절입니다. “장로 중의 한 사람이 내게 말하되 울지 말라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겼으니 그 두루마리와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 이 명령의 이유는 ‘때(카이로스)가 가까우니라’(10, 1:3)입니다.
‘이 예언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10)는 어린양에 의해서 계시 되고, 성취된 그 말씀을 전파하라는 의미입니다(17). 마24:14절입니다.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이것이 종말에 주 예수의 선지자인 우리의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우리는 왕이요, 제사장입니다(1:6).
그래서 둘째 명령입니다(11). “불의를 행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행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하게 하라.” 그러면, 어떻게 이 명령을 수행할 수 있을까요? 이 예언 말씀의 증거를 통하여 상반되는 결과가 나타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도 여러분, 요한은 자신의 잘못된 경험을 통하여 이 예언의 말씀 그 자체보다 그것을 전하는 자를 경배할 위험에 대하여 경고합니다(8-9). “이것들을 보고 들은 자는 나 요한이니, 내가 듣고 볼 때에 이 일을 내게 보이던 천사의 발 앞에 경배하려고 엎드렸더니, 그가 내게 말하기를 나는 너와 네 형제 선지자들과 또 이 두루마리의 말을 지키는 자들과 함께 된 종이니 그리하지 말고 하나님께 경배하라 하더라.” 여기서 ‘선지자들’)9)은 ‘이 말을 지키는 자들’인 성도들입니다.
이처럼 요한이 이 말씀이 계시하는 하나님(주 예수) 대신 그것을 보여준 천사에게 두 번이나 경배하려 했습니다(19:10). 왜 그랬을까요? 이 말씀의 내용보다 전하는 천사가 그에게 더 가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요한과 같이 우리도 목사가 전한 하나님 말씀보다 전하는 목사에게 더 관심을 두려고 합니다.
천사는 요한에게 ‘그리하지 말고 하나님께 경배하라’(9)라고 하면서, 그 이유는 천사나 요한이나 그의 형제인 선지자들과 이 말씀을 지키는 자들이 함께 된 하나님의 종이기 때문입니다(9). 오늘날 복음의 능력이 그 복음 자체보다 전하는 자에 따라 다르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복음이 계시하는 하나님보다 그것을 전하는 목사에게 더 큰 관심과 권위를 두는 것은 우상숭배입니다. 성도 여러분, 목사를 존경하시되, 그가 전하는 이 예언 말씀 자체에 더욱 관심을 두시기 바랍니다.
2. 주 예수의 증거입니다(12-16).
주 예수는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라는 자신의 약속으로 시작하십니다. 12-13절입니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요 시작과 마침이라.” 여기서 ‘상’은 선악 간의 행위에 대한 그의 보상(심판과 구원)에 대한 비유입니다.
주 예수는 요한계시록의 내용인 ‘반드시 속히 될 일’(6, 1:1), 즉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7, 10, 18, 19)을 ‘종말에 그의 속히 오심과 각 사람의 행위대로 그의 심판과 구원’(12)으로 요약하십니다.
이것(12)을 강조하시기 위해 주 예수는 하나님(21:6)과 동등하다는 삼중적인 자기 증언(13)으로 자신이 ‘사람의 행위대로 상(구원과 심판)을 주시기’(12)에 합당하다고 선언하십니다.
그러면 이것(12)은 행위 구원을 지지하나요? 이것은 창조(율법) 언약에 따라 행위 심판을 지지하지만(20:12, 13), 행위 구원을 절대 지지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주 예수는 이것을 구체적으로 설명하십니다(14-15). 먼저 7개 복의 선언 중에 마지막인 14절입니다.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그들이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받으려 함이로다.”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성에 들어갈 권세를 받을 복’이 있는 자들은 ‘자기 옷을 빠는(현재분사) 자들’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자기 옷을 계속 빨 수 있을까요? 자기 힘이나 노력이 아니라 오직 ‘어린양의 피’로입니다. 7:14절입니다. “어린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부정과거) 희게 하였느니라.” 이것은 복음을 듣고 회개와 믿음으로 의롭다 함(칭의)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21:6-7절입니다.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을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상속으로 받으리라.” 이것은 종말론적인 생명수를 ‘값없이 그리고 이기는(끝까지 믿음을 지키는) 자’에게 주신다는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 주리라’(2:23)라는 주 예수의 약속도 ‘두아디라 교회’에게 회개를 촉구하는 문맥(2:21-22)에서 주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 옷을 계속 빠는 것’(14)은 복음을 믿음으로 칭의를 받은 자가 그 복음으로 계속 회개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요일1:9절입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이처럼 복음을 믿음으로 죄를 자백(회개)하며 끝까지 믿음을 지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오직 어린양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또한, ‘성 밖에 있을 자들’의 죄의 목록은 15절입니다. “개들과 점술가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는 다 성 밖에 있으리라.” 이것은 21:8절과 거의 같습니다.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그러므로 ‘개들’(15)은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21:8)을 의미합니다(빌3:2-3). 이들은 그 행위대로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요한계시록에서 구약의 종말 예언이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 성취되었는 사실을 무시하고 바로 그의 재림으로 성취된다고 하면 잘못입니다. 이는 어린양의 피가 그의 재림에서도 우리 구원의 근거이기 때문입니다. 요한계시록은 끝까지 ‘주 하나님 즉 전능하신 이와 어린양’(21:22), ‘어린양’(21:23), ‘어린양의 생명책’(21:27), ‘하나님과 그 어린양의 보좌’(22:3)로 표현하여 이것을 강조합니다.
끝으로 주 예수는 요한계시록이 교회들을 위한 그 자신의 증거(1:2)라는 것을 다시 강조합니다(16a).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언하게 하였노라.”
이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 주 예수는 자신에 대하여 증거 하십니다(16b).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 별이라 하시더라.” 이것은 주 예수가 다윗 언약대로 이스라엘과 인류를 대표하신 다윗의 후손이시며, 어둠을 이기고 새벽을 증거(선포) 하는 ‘광명한 새벽 별’ 즉 ‘충성된 증인’(1:5)이시라는 것입니다.
3. 요한의 증거입니다(17-21).
요한은 말씀을 증거 하는 성령과 교회로 시작합니다(17절).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신부’는 어린양의 교회입니다.
성령과 교회가 이 예언 말씀으로 주 예수에게 ‘오라’고 증거 합니다. 그 말씀을 듣고 주 예수에게 온 자도 ‘오라’고 증거 하여야 합니다. 주 예수가 그(우리)를 그 말씀을 증거 하는 선지자로 삼으셨기 때문입니다(6, 9).
‘목마른 자’도 주 예수에게 올 것이며, ‘원하는 자’도 그에게 와서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사55:1)는 이 말씀은 ‘주 예수의 은혜 복음’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 복음을 증거 하는 것이 주 예수의 긴급한 오심에 참여(준비)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요한계시록은 복음서가 주 예수의 선교 명령으로 마치는 것과 같이 주 예수의 선교에 대한 교회(우리)의 사명으로 마치고 있습니다.
요한은 이 예언 말씀에 가감하지 말 것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경고합니다(18-19). “내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증언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이것은 이 책의 예언 말씀, 즉 주 예수의 복음을 그대로 믿어 지키고, 그대로 증거 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에 어떤 것을 가감하면 다른 복음입니다. 그 결과는 종말론적인 심판입니다. 바울도 이것에 대하여 반복하여 강조합니다(고후2:17, 4:2). 고후2:17절입니다. “우리는 수많은 사람처럼 하나님의 말씀(그리스도의 복음: 고후2:12)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곧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노라.” 성도 여러분, 요한계시록이 전하는 주 예수의 복음을 순전하게 지키며 순전하게 전하시기 바랍니다. 오직 주 예수의 복음입니다.
이제 요한은 요한계시록을 다시 요약하며, 이에 대한 교회의 기도를 기록합니다(20).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요한은 요한계시록이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1:2)임을 다시 강조합니다.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라는 예수님의 약속을 통하여 그의 오심의 진실함(6)과 긴급함을 강조하면서 ‘그의 종말론적 심판과 구원인 요한계시록’을 요약하여 반복합니다.
이 예수님의 약속에 대한 교회의 응답은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20)입니다. 이것은 그가 단지 오시라는 것이 아니라 요한계시록의 계시대로 그의 종말론적 심판과 구원을 위해서 오시라, 즉 새 언약(복음)의 완성을 위해서 오시라는 복음적인 기도입니다. 그러므로 이 기도의 아람어 ‘마라나 타’는 초대 교회의 예배뿐만 아니라, 그들의 신앙의 요약이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그들처럼 우리도 ‘마라나 타’라는 복음적이며 종말론적인 이 기도를 항상 하기를 원합니다.
끝으로 요한은 요한계시록인 편지를 마지막 인사말로 마칩니다(21).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 아멘.” 서문의 인사말인 ‘은혜와 평강’(1:5)과 같이 종결문에서 인사말인 ‘주 예수의 은혜’는 요한계시록의 성격을 나타냅니다. 즉 요한계시록에서 우리에게 주어지는 종말론적인 구원의 복은 다 주 예수의 은혜, 즉 어린양의 피에 근거해서 값없이 우리에게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것이 요한계시록이라는 그림책이 우리에게 전하는 아름다운 소식, 복음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요한계시록의 종결문(에필로그)을 살펴보았습니다. 요한계시록이 어떤 책이며, 어떻게 읽어야 할 것인가를 이해하셨다면, 이제 그것을 읽어가시면서 주 예수의 복음을 계속 들으시고 더욱 큰 믿음과 소망으로 위로와 기쁨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특히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에서 ‘나는 속히(진실로) 오고 있다’(7, 12, 20)라는 주 예수의 약속과 같이 우리는 하루하루의 종말을 살고 있습니다. ‘마라나 타’라고 기도하면서 현재(하나님이 주신 기회)에 충성함으로 주 예수의 신속한 오심에 참여(준비)하시기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주 예수는 속히 그리고 반드시 오실 것입니다. 아니 현재 오고 계십니다. 아멘, 할렐루야!
찬송 259장을 부르시고 다같이 기도하며 축도로 예배를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