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일을 마치고 '충무아트홀'에 갔다.
거기서 '올레회' 회원들 6부부 12명과 세계 4대 뮤지컬 중의 하나인 '미스 사이공'을 관람했다.
1989년 영국에서 초연한 이후로 전 세계를 격하게 감동시킨 대작이었다.
<캣츠>, <오페라의 유령>, <레 미제라블>과 함께 세계 4대 뮤지컬로 손꼽히는 '미스 사이공'.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베트남 전쟁'이 이 공연의 배경이었다.
전쟁에 참전했던 병사들과 베트남 여성의 애절한 사랑과 운명적인 이별,
그리고 끝내 죽음으로 막을 내리는 비극적인 스토리가 공연장을 눈물로 물들였다.
한국에서도 재공연 돌입 후 7월 말에 누적으로 15만명을 넘어섰고 더 큰 기록을 향해 쾌속질주를 하고 있는 불후의 명작이다.
늘 그랬듯이 전쟁은 수많은 비극을 낳았다.
전쟁으로 부모를 잃고 끝내 사창가로 내몰린 청순한 베트남 처녀 '킴'과 미군으로 참전했던 건장하고 신실했던 병사 '크리스'는 서로에게 끌리며 이내 깊은 사랑에 빠져들었다.
언제나 생과 사의 변곡점에서 위태롭게 살아가는 그들이었지만 그래도 인간의 원초적인 본성과 진실된 사랑 앞에서 그들은 서로를 향해 영혼의 문을 열었고, 미래를 꿈꿨으며 서로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걸기로 마음 먹었다.
전쟁이 끝나면 함께 미국으로 가서 행복한 삶을 엮어가기로 맹세했다.
'American Dream'은 '킴'과 '크리스' 뿐만 아니라 전쟁을 겪고 있던 수많은 베트남 사람들의 로망이었다.
그러나 치열하고 살벌한 전쟁통,
감미로운 사랑의 시간이 어찌 오래 지속될 수 있겠는가?
전세는 점점 더 불리해졌고 끝내 미군은 베트남에서의 철수를 결정하게 되었다.
최후의 보루였던 미국 대사관.
헬리콥터를 타려는 베트남 사람들과 이를 강하게 저지하는 미군병사들, 그 현장은 그야말로 아비규환이었다.
그러는 사이에 사랑하는 '킴'과 '크리스'는 그야말로 운명적인 이별을 맞게 되었다.
둘은 죽는 날까지 함께 하고 싶었다.
그러나 극한의 상황 속에서 악화일로에 빠진 막바지 전쟁양태는 그들의 바람이나 의지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그게 바로 인생이 아니겠는가?
불가항력적인 상황에서 타의에 의해 마지막 헬기에 몸을 싣고 베트남을 떠나버린 '크리스',
비참하고 가슴아픈 상처를 안은 채 공산치하의 땅에 남겨진 불쌍하고 가여린 여인 '킴'.
가슴이 미어졌다.
민주와 자유를 구가했던 베트남은 끝내 공산주의를 내건 호치민의 권력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온갖 협박과 처형 그리고 전쟁 후유증으로 심각한 몸살을 앓았다.
그러는 사이에 '킴'은 '크리스'의 아들을 낳았다.
그녀는 출산 후에도 오매불망 '크리스'만을 기다리며 살았다.
혼자서 갓난 아들을 키우며 힘겹게 살고 있던 킴에게, 어려서부터 추파를 던지며 접근하곤 했던 공산군 장교가 있었다.
그녀는 그를 권총으로 사살했다.
예기치 않던 엄청난 사건이 발생하자 '킴'은 아들을 데리고 '방콕'으로 피신했다.
낯선 땅, 그곳에서도 여전히 힘겹고 두렵고 막막한 삶을 계속 이어갈 수밖에 없었다.
사랑 앞에선 한없이 여리고 가냘픈 크리스의 여자 '킴',
그러나 아들 'TOM' 앞에서는 당차고 강인한 엄마로 살았다.
한편, '크리스'는 미국으로 건너가 힘든 적응기간을 거친 다음 새로운 사람 '엘렌'을 만나 그녀와 결혼했다.
평탄한 생활을 영위하던 '크리스' 부부 앞에 어느 날 갑자기 날아든 '킴'과 'TOM'의 소식으로 이 가정은 또 다시 격랑에 휘말려들었다.
하지만 끝내 평정을 되찾고 크리스 부부는 사랑했던 여인 '킴'과 아들을 찾아서 방콕까지 날아갔다.
한 남자를 놓고 두 여인이 부르던 애잔한 사랑의 맹세.
그 가슴을 후비파는 먹먹한 노래를 듣노라니 호흡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이윽고 내 눈에서도 하염 없이 닭똥 같은 눈물이 흘렀다.
어느 누구도 미워할 수 없는 운명의 굴곡 앞에서 누가 누구를 원망하거나 탓할 수 있을까?
그렇게도 애타게 기다렸던 '크리스'가 막상 '킴'의 눈 앞에 나타났지만 '크리스'는 이미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있었다.
부부의 모습으로 온 그들에게 자신의 분신같은 아들을 맡기고 비운의 여인 '킴'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전쟁은 시종일관 비극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었다.
'크리스'와 '킴'의 뜨거웠던 사랑, 행복했던 기억들, 헤어짐, 오랜 기다림, 재회 그리고 가여린 여인의 죽음.
굵직굵직한 스토리와 장면 장면들이 치밀한 구성과 탄탄한 전개를 타고 감동의 비등점을 향해 빠르게 상승했다.
놀라웠다.
그리고 일거에 수 많은 관객들을 깊은 감동의 바다에 빠트렸다.
공연 중간 중간에 관객들의 뜨거운 박수갈채가 터졌고 여기저기서 소리없이 흐르던 눈물이 아트홀을 흥건하게 적셨다.
뮤지컬 '미스 사이공'의 무대세트는 정말로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특히 마지막으로 미국 대사관을 떠나던 장면에서 미군 헬리콥터의 사실적인 비행은 '3D 입체영상'으로 구현했는데, 웅장한 설정과 구체적인 디테일, 음향에 모두들 입을 다물지 못했다.
배우들의 농익은 연기도 백미였다.
특히 여주인공 '킴'의 눈부신 열연에 뜨거운 박수와 환호성을 쏟아냈다.
발군이었다.
시골처녀의 순수함, 크리스와의 뜨겁고 순수했던 사랑, 아들 앞에서의 강인한 모성애가 조화롭게 버무려진 '다중적 캐릭터'를 완벽하게 넘나들며 열연했다.
각각의 상황과 장면에 따라 목소리, 눈빛, 표정, 몸짓 하나까지 여러 장르를 함께 아우르며 섬세하게 그려냈던 완벽한 '프리마돈나'였다.
우리의 자리가 무대로부터 6번째 정 중앙이어서 배우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세밀하게 볼 수 있었다.
흐르는 땀 한 방울까지.
사랑은 눈물이고 행복이다.
사랑은 음악이고 소설이며 영화이자 예술이다.
사랑은 세상의 시종이다.
사랑은 영원히 지지 않는 세상의 꽃이며 향기다.
장기간 공연에도 불구하고 매 순간 동일하게 정열을 불태웠던 훌륭한 연기자들과 관계자들 모두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내고 싶다.
공연이 끝났어도 그 감동의 여운이 계속해서 가슴을 먹먹하게 짓눌렀다.
진정으로 아름다운 밤이었다.
2010년 8월 27일.
심야에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