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봉독: 출애굽기 3:1-10】(새 번역)
1 모세는 미디안 제사장인 그의 장인 이드로의 양 떼를 치는 목자가 되었다. 그가 양 떼를 몰고 광야를 지나서 하나님의 산 호렙으로 갔을 때에,
2 거기에서 주님의 천사가 떨기 가운데서 이는 불꽃으로 그에게 나타났다. 그가 보니, 떨기에 불이 붙는데도, 그 떨기가 타서 없어지지 않았다.
3 모세는, 이 놀라운 광경을 좀 더 자세히 보고, 어째서 그 떨기가 불에 타지 않는지를 알아 보아야 하겠다고 생각하였다.
4 모세가 그것을 보려고 오는 것을 보시고, 하나님이 떨기 가운데서 "모세야, 모세야!" 하고 그를 부르셨다. 모세가 대답하였다. "예, 제가 여기에 있습니다."
5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아라. 네가 서 있는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너는 신을 벗어라."
6 하나님이 또 말씀하셨다. "나는 너의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다." 모세는 하나님을 뵙기가 두려워서, 얼굴을 가렸다.
7 주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나는 이집트에 있는 나의 백성이 고통받는 것을 똑똑히 보았고, 또 억압 때문에 괴로워서 부르짖는 소리를 들었다. 그러므로 나는 그들의 고난을 분명히 안다.
8 이제 내가 내려가서 이집트 사람의 손아귀에서 그들을 구하여, 이 땅으로 부터 저 아름답고 넓은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사람과 헷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이 사는 곳으로 데려 가려고 한다.
9 지금도 이스라엘 자손이 부르짖는 소리가 나에게 들린다. 이집트 사람들이 그들을 학대하는 것도 보인다.
10 이제 나는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나의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이집트 에서 이끌어 내게 하겠다."
【 핵심메시지 】
하나님은 지금도 구원의 역사를 이루기 위해 쓰임 받을 한 사람을 찾으십니다.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께 쓰임 받기 위해 부르심을 받은 사명자들입니다.
【말씀 나눔】
어느 조직이든 리더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리더가 누구냐에 따라서 조직이 달라집니다.
지방자치시대를 맞이한 이후에 시․도지사들에 따라 지방마다 정책의 비중이 달라집니다. 왜냐하면 리더들이 어디에 더 중점을 두느냐에 따라 정책의 우선순위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어떤 리더는 조직의 구성원들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하는 일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반면에 어떤 리더는 자신의 업무실적을 높일 수 있는 SOC사업에 중점을 두고 사업을 진행합니다. 어떤 사람은 이전 리더의 업무실적을 깎아내리면서 자신이 더 능력 있게 보이길 원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욕심 때문에 사업의 연속성이 떨어지고 업무의 효율성도 떨어지게 됩니다. 때로는 사업 진행이 지연됨에 따라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치러야 하는 경우도 발생합니다. 리더가 누구냐에 따라 조직이 번영할 수 있고, 반대로 망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공동체를 이끌어갈 리더를 세우는 일에 많은 시간을 할애 하십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되 집어 보면,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한 사람’의 리더를 통해 역사를 만들어 가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일에 참여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던 리더 들 중에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역사상 존경하는 인물을 꼽으라면 모세가 가장 먼저 손에 꼽힐 것입니다. 그들은 지금도 모세의 율법을 목숨처럼 지켜 행하고 있으며, 한편으로는 예수님보다 모세를 더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모세는 그 출생부터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태어날 당시에 바로가 히브리인들 중에 남자 아이가 태어나면 모두 죽이라 명령하였습니다. 모세는 태어 난지 석 달 만에 부모 품을 떠나 갈대 상자에 담겨서 나일 강에 던져졌습니다.
나일 강은 포악하기로 유명한 나일악어 서식지입니다.
그리고 나일 강은 해상 교통량이 많은 곳입니다.
여러분 세계 최초의 선박이 이집트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아십니까?
선박의 최초 시조가 이집트 돛배입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피라미드를 건축할 때 사용되는 석재를 선박을 이용하여 운송하였습니다. 무게가 700톤가량 나가는 석재를 운반할 정도의 선박 건조 및 항해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기술을 바탕으로 나일 강 해상 운송을 통한 교역이 활발하였기 때문에 수많은 선박들이 나일 강을 운항하였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역청을 바른 갈대상자를 물에 띄워 놓았다는 것은 안전을 보장 할 수 없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모세의 누이 미리암이 갈대상자가 흘러가는 곳을 따라 갔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모세는 그 이름처럼 바로의 공주의 손에 의해 물에서 건짐을 받았고 왕궁에서 공주의 양자로 왕정교육을 받으며 자라게 되었습니다.
모세의 갈대상자는 노아의 방주와 같은 단어(tebah(תֵּבָה))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구약에는 이 단어가 28번 등장하는데, 노아의 방주에 26번, 갈대상자에 2번 사용됩니다. 노아의 방주가 스스로 움직일 수 없는 동력이나 방향을 바꿀 수 있는 장치가 없었던 것처럼 갈대상자도 동력도 방향을 바꿀 수 있는 키도 없었습니다. 그저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전적으로 의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는 것입니다.
모세가 이집트 왕궁에서 성장하여 40세의 나이가 되었을 때입니다.
히브리인이 이집트인에게 매를 맞고 있는 것을 본 모세는, 혈기를 참지 못하고 아무도 없을 때 그 이집트 사람을 쳐서 죽이고 모래 속에 묻었습니다. 아무도 모를 줄 알았지만 히브리인들이 그 것을 보았고 결국은 바로의 귀까지 들리게 되었습니다.
모세는 바로의 칼을 피해 미디안 광야로 도망쳐서 그곳에서 머물렀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딸 십보라와 결혼하여 게르솜과 엘리에셀 두 아들을 낳고 살았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모세를 미디안 광야로 보내셔서 양을 치게 하신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공동체의 리더를 세울 때 여러 가지 고려 요소가 있는데 그중에는 나이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교회 목회자를 청빙할 때도 목회 경력과 향후 시무 기간을 고려하여 40세 내외의 목회자를 선호합니다.
세상적인 관점으로 볼 때 모세가 민족의 지도자로 세움을 받을 가장 좋은 시기는 왕정교육을 통해 리더로 양육 받은 40세의 모세일 것입니다. 이때는 힘도 있고 카리스마 있는 리더십을 보여 줄 수 있는 시기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이후로 40년이나 지난 80세에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태어 난지 석 달 만에 목숨을 잃을 위험에 처하게 되었다가 40세에 바로의 칼을 피하여 광야로 도망쳐야 했던 모세는 40년 동안 미디안에서 양을 치는 목동으로 살았습니다.
화려한 왕궁 생활을 하는 중에는 자신이 광야에서 생활 할 것이라고 상상도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모세는 40년 동안 광야 생활을 하는 동안 늙고 자신감도 없으며, 무기력에 가까운 상태로 변하였습니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사명자로 부르심에도 이런 저런 핑계로 그 사명을 거부하였고 심지어 말이 둔한 자라 할 수 없다고 했을 정도입니다.
하나님이 모세를 광야로 부르신 이유는 그의 힘을 빼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부르시고, 가까이 나아온 모세에게 네가 서 있는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너는 신을 벗어라고 하십니다(5절).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바라시는 것은 모세가 그동안 해 왔던 방식이나 모세의 고집을 버리고 하나님의 방법대로 행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힘 있고 유능한 지도자를 원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겸손하고 온유한 사람을 원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는 일은 사람의 능력으로 행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권능으로 행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집트에 내리신 10가지 재앙은 모세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내리셨습니다. 겉으로는 모세와 아론의 힘과 재능으로 행한 것처럼 보일지라도 실제는 하나님이 하셨으며 모세와 아론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그 역할을 담당하였을 뿐입니다. 하나님은 신을 벗고 겸손히 엎드려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모세에게 사명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일하시기 위해서 모세를 광야로 부르셨고, 모세가 힘을 빼도록 하셨습니다.
왜 내 힘을 빼야 할까요?
내 힘을 빼야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하나님의 일을 행하시기 때문입니다.
내 능력으로 주의 일을 해야 한다고 착각 말아야 합니다.
골프나 테니스 어떤 운동을 하든지 초보에서 고수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힘을 빼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축구공을 차더라도 힘을 빼지 않으면 멀리 나가지 않습니다. 내 몸에 힘이 빠지지 않으면 엉터리가 되는 것입니다. 진정한 고수는 힘을 빼고 중요한 임팩트 시점에 힘을 집중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힘이 가득 차 있으면 하나님의 일을 제대로 할 수 없습니다.
지금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인생의 광야로 부르신 이유도 같습니다.
내가 죽어야 합니다. 내가 죽고 예수로 살아야 합니다.
내 힘을 빼면 하나님이 나를 사용하셔서 하나님의 일을 하십니다.
내 소견에 옳은 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도록 나를 내려놓게 하십니다.
모세를 광야로 부르신 이유는 두 번째는 모세가 고통 중에 있는 백성들의 아픔을 통감할 수 있는 참된 리더로 훈련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전에 모세는 당시 히브리 민족 사람들의 형편과 아픔을 고려하지 않고 자기의 생각대로 민족의 고통을 해소하고자 이집트 사람을 죽였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실패로 돌아갔고 도망자 신세가 되었습니다.
광야에서 40년 동안 목동 생활하면서 아프고 쓰라린 경험들을 한 모세는 이제 다른 사람의 아픔을 통감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다른 사람과 공감하기 위해 중요한 것은 ‘경험’입니다.
한참 반항하는 중학생 자녀를 둔 부모들이 만나 모임을 가진다면 마치 같은 병으로 고생하는 환자들이 모인 자조 모임처럼 서로의 아픔을 나누고 공감하고 위로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남자들이 만나서 군대 이야기,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를 하면서 끊임없이 열을 내는 이유는 그와 유사한 경험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때로는 나이차이가 나면 공감이 안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지금 군대 전역한 청년들에게 조개탄을 만들어 내무반에 불을 때던 페치카 이야기를 한다면 공감 받을 수 없습니다. 지금 군 생활하는 청년들은 그런 경험을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자신이 군 생활 할 때 페치카 당번병이어서 밤이 새도록 엄청 고생했다는 이런 이야기를 하면 ‘꼰데’라는 오명을 달기 십상입니다.
제 친구들이 육군 현역병으로 입대 할 때는 군 의무 복무기간이 30개월이었습니다. 대학을 다니다 휴학을 하고 3년 만에 복학하여 학업을 이어갔기 때문에 군 생활하는 기간을 ‘썩는다’라고 표현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기간 동안에만 얻어지는 것이 있습니다.
군에서 고생하면서 군이라는 작은 사회 속에서 사회성을 기르고 어엿한 남자가 됩니다. 군에 가서 사람 되었다는 말을 이때 많이 들을 수 있었습니다. 즉, 헛되게 생각되는 시간들이 결코 말처럼 헛된 시간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혹시라도 모세가 생각할 때 40년 목동 생활이 무의미하다 실패했다 판단하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 시간은 모세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리더로 다듬어지는 시간이었습니다. 미디안 광야 40년 시절 동안 모세는 광야에서 살아가는 법을 배웠고, 이때의 경험이 이후 40년 동안 광야 생활하며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어 갈 때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저보고 박학다식하다고 말합니다.
그렇게 보여 지는 이유는 초등학교 4학년 아버지께서 소천하시고 생계를 위해 이런저런 일들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학생부터 남들이 경험하지 못한 일들을 경험하면서 왜 나는 이렇게 힘들에 살아야 하나 불평도 했지만 군대 가서 저의 이 경험들은 훌륭한 자신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집트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통 받는 것을 보셨다고 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의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셨다고 하시며, 그들이 받는 고난을 분명히 아신다고 말씀하십니다(7절).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기도에 응답하셔서 모세를 미디안 광야로 부르셨고 충성된 자로, 내 자신을 죽이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아가는 자로, 백성들의 아픔을 통감하는 리더로 양육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내가 고통 받는 것을 보시고,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내가 처한 고난을 아십니다. 하나님은 고통 중에 부르짖는 성도들의 기도를 들으시는 분이십니다. 또한 이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사명자로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사명자로 그 임무를 수행하도록 훈련시키시고 필요한 권능을 주셨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일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때는 우리들이 생각하는 때와 다르기 때문에 지금 내 생각과 다르게 일하실 수 있습니다.
모세를 40세 혈기 왕성할 때 사용하신 것이 아니라 힘이 다 빠진 노인이 되었을 때 부르셔서 하나님의 권능으로 사역하도록 힘을 주신 것처럼, 우리의 때가 아니라 하나님의 때에 우리들은 귀하게 사용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부르심에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지금은 희미하여 보이지 않고, 끝없이 펼쳐진 광야에 던져져 있다 할지라도 우리들을 부르심이 빛을 발하는 때가 반드시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생각하기에 불가능한 일이라도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기 때문에 불가능한 일은 없습니다. 우리들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로서 하나님의 권능을 드러내 만인 앞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은 ‘충성’입니다(고전4:2).
어떤 일에 충성을 다해야 할까요?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신 사명에 충성을 다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주신 사명은 같지만, 그 사명을 이루기 위해 우리 각자가 행하는 역할을 다를 수 있습니다. 목자․목녀(부)로 섬기는 일도 교회가 받은 사명의 일부입니다. 목장 예배에 참여하여 서로의 삶을 나누며 믿음의 성장을 이루는 것도 사명을 이루는 과정입니다.
우리들에게 주신 작은 일 하나하나가 사명자로 세워지는 과정에서 만나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내게 이런 시련을 주실까? 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절대로 실수하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다 이유가 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시련이 나에게 꼭 필요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기 싫은 일들을 해야 할 경우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사명을 위해 하는 것은 그 일로 인해서 내가 얻는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왕궁에서 생활하던 모세가 미디안 광야에서 양을 치는 일을 하고 싶었을까요?
창세기 46:33-34에 보면,
33 바로가 당신들을 불러서 너희의 직업이 무엇이냐 묻거든
34 당신들은 이르기를 주의 종들은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목축하는 자들이온데 우리와 우리 선조가 다 그러하니이다 하소서 애굽 사람은 다 목축을 가증히 여기나니 당신들이 고센 땅에 살게 되리이다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집트 왕궁에서 교육을 받은 모세 또한 목축을 가증히 여기는 그들의 인식이 자리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인식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거나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얼굴과 피부가 하얀 것을 선호합니다.
왜냐하면 얼굴과 피부가 하얀 것은 그만큼 사회적인 지위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생각은 농경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이해할 수 있습니다. 논․밭에서 일을 하는 농민들이 하얀 피부를 유지할 수 없습니다. 하얀 피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밖에서 일을 하지 않는 고위층 양반들과 그 가족들이나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피부가 사회적인 지위를 말하는 증표 같은 것이 되었고 이러한 인식이 지금까지 자리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 목동에 대한 인식 또한 하루아침에 달라질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모세는 그렇게 가증히 여기는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힘들고 하기 싫은 일들을 하면서 다듬어지고, 부름 받아서 바로의 압제에서 신음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약속의 땅으로 이끌어 내는 사명을 수행하게 되었습니다.
바로의 압제 아래에서 신음하는 백성들을 이끌어 내시기 위해 세우신 한 사람을 세우셨다면, 이 시대 사망의 그늘에 앉아 고통 받고 죽어가는 이들을 빛의 나라로 이끌어 내는 사명을 위해서도 한 사람을 세우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집트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시고 모세를 훈련시켜서 그들에게 보내신 것처럼, 사망의 그늘에서 죽어가는 이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그들을 죽음 가운데서 이끌어 낼 사명자를 훈련시키시고 부르셔서 이 땅의 사명자로 세우셨습니다. 그 사명자들이 바로 저와 여러분입니다. 주님은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 사역에 참여하도록 저와 여러분을 부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사명을 수행 할 수 있도록 저와 여러분을 훈련 시키시고 있습니다. 미다안 광야에서 40년 동안 하나님께서 모세가 가지고 있던 힘과 혈기를 벗어내도록 하셨다면, 하나님은 여러분이 벗어야 할 것들을 내려놓게 하기 위해서 훈련시키십니다.
여러분이 생각하기에 여러분이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해 벗어야 할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우리가 벗어야 할 공통적인 요인들은 내 고집대로, 내 방식대로 일하는 것입니다. 내 소견에 옳은대로 일하는 것이 아니라 늦더라도 오직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귀를 열어 듣고 하나님의 뜻대로 일해야 할 것입니다.
비록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나아가는 지금 이 수간 우리의 삶이 광야와 같을 지라도, 아무도 몰라주고 혼자 외로운 길을 가는 것 같아도 믿음으로 하나님 부르심에 순종하여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다 보면, 어느새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께서는 나의 삶의 자리를 통해 하나님의 마음의 소원을 이루시기를 원하셔서 우리들을 선택하시고 사명자로 부르셨습니다. 이 시대에 각자의 땅 끝으로 보냄을 받은 ‘한 사람’으로 이 부르심에 순종하고 충성함으로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의의 도구로 온전히 쓰임 받는 복을 다 받아 누리는 저와 여러분 다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찬양】
주를 위한 이 곳에, 주가 일하시네, 시선. 광야를 지나며. 큰 길을 만드시는 주, 소원, 주 선한 능력으로, 주가 보이신 생명의 길, 주님 내 안에, 내 삶은 주의 것, 크신 내 주님,
나는 주님께 속한 자, 예배찬양:
214장 나 주의 도움받고자 425장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452장 내 모든 소원 기도의 제목
【설교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