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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도의 시사토론 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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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토론 ●자유게시판 서울 서대문 갑 지역구
제3의사나이 추천 0 조회 263 07.12.29 09:44 댓글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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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7.12.29 10:18

    첫댓글 아주 중요한 질문입니다. 그리고 그 질문은 우상호와 518광주폭동과의 관계에서 실마리를 찾아야 합니다. 우상호가 518광주폭동 유공자로서 해마다 518광주폭동 행사에 참여한다기에 저는 그가 광주 출신인지 무척 궁금했었습니다. 서대문 갑 지역구 춣신이었군요. 그럼 중요한 실마리가 발견됩니다. 먼저 우상호가 518시민군이었느냐를 물어야 합니다. 아마, 518시민군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광주사태와 우상호의 관계는 도대체 무엇이었느냐에서 찾아야 합니다. 혹시 김대중 정부 첫해에 이해찬 등 전대협 출신 정치인들이 광주민주화운동 유공자 포상을 받은 사실을 기억하시는지요?

  • 작성자 07.12.29 13:17

    헉.... 우상호가 518 광주 유공자입니까?? 이럴수가.. 그럴리가 없을텐데.. 정말 이상하군요. 우상호는 62년생 12월 12일생으로 80년당시에는 고등학생였고 서울 용문고 출신인디...

  • 07.12.30 00:36

    바람이하는말/ 제가 광범위하게 시민군 증언을 수집하여 읽었고, 또 386정치인들과의 관련성 단서가 있는지 각별히 유의하며 읽었지만 그 어디에도 우상호라는 이름은 없었습니다. 그리고, 광주사태 당시 우상호가 서울에 거주하였었든 철원에 거주하였었든 시민군 입대 목적으로 공부를 중단하고 광주로 달려갔을 것이라는 상상은 하기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님은 우상호가 518시민군이었다는 추측을 하고 싶으신 것인지요?

  • 07.12.30 13:56

    바람이하는말/ 개연성을 따지는 것은 단순 추측과는 틀립니다. 예를 들어 수원에서 서울 방향으로 한시간 차를 타고 달린 사람이 그 시간에 부산에 있었을 개연성은 없다고 말할 때 이것은 개연성을 따져 판단하고 말한 것입니다.

  • 07.12.29 10:24

    이해찬 역시 광주사태 때 광주 곁에도 갔었던 일이 없었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김대중은 무슨 논리로 이해찬 등 전대협 출신 정치인들에게 광주민주화운동 유공자 포상을 주었을까요? 광주민주화운동 유공자 포상은 노태우 대통령의 광주민주화운동 유공자 보상보다 훨씬 우대한 포상이었으며, 광주에도 가지 않았고 손가락 하나 다치지 않았던 인물들 수십 명에게 포상하고 정부 최고위 감투들을 나누어 준 사건입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었는가요? 국민이 당연히 물어야 함에도 언론은 아주 짤막하게 보도하여 국민은 이해찬이 김대중 정부 첫해에 광주민주화운동 유공자 포상을 받았다는 사실조차 까맣게 모르고 있습니다.

  • 07.12.29 10:40

    법정에서는 김대중 내란 음모를 부인하던 김대중이 어떻게 파렴치하게 김대중 내란 음모 주동자들에게 광주민주화운동 유공자 포상을 해 줄 수 있었는지 도저히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공적으로 김대중 내란 음모를 부인하는 김대중이 김대중 내란 음모 주동자들에게 광주민주화운동 유공자 포상을 해 주었다는 것은 김대중 내란 음모의 실체를 조용하게 공식적으로 인정한 셈입니다. 그렇다면 우상호가 간직하고 있을 광주사태의 비밀에 대하여 제가 궁금히 여기는 점은 이것입니다. 십중 팔구 우상호는 광주사태에 대하여는 잘 몰랐을 것입니다. 오히려 그가 알고 있는 것은 김대중 내란 음모일 것입니다.

  • 07.12.29 10:51

    당시 대자보들을 보면 광주사태의 시작은 김대중 내란 음모를 진행시킬 목적으로 1980년 5월 16일 이화여대 대강당에서 소집되었던 <전국대학교 총학생회장 연석회의>였습니다. 5월 19일부터 시위 분위기를 전국적으로 띄워 5월 22일 최규하 대통령 정부를 전복시키고, 김대중이 새 내각을 임명하면서 스스로 대통령되려 했던 것이 최규하 대통령 정부 편에서 <김대중 내란 음모>라 불렀던 사건입니다. 그 음모를 진행시켰던 5월 16일의 <전국대학교 총학생회장 연석회의>에 우상호가 참석했었는지가 저의 관심의 초점입니다. 1980년대 초반 연세대 총학생회장이라고 말하셨을 때 1980년을 말하는 것이지요?

  • 작성자 07.12.29 12:26

    우상호는 62년생 철원출신입니다. 연세대 총학생회장은 87년에 했습니다. 제가 학번과 총학생회장활동을 구별하지 않았습니다.. 죄송합니다.

  • 07.12.29 10:56

    운동권에서 지금 1980년 5월 16일의 <전국대학교 총학생회장 연석회의>를 숨기고 있지만 만약 우상호가 그 회의에 참석했었던 사실이 밝혀지면 그는 광주사태 발생 원인의 비밀을 간직하고 있는 인물입니다. 우상화가 민주화운동을 주도했다고 하셨는데 그 내용이 무엇인지 말해 주실 수 있으십니까? 제가 시사한 대로 김대중 내란 음모에 기여한 것을 말하는가요?

  • 작성자 07.12.29 13:19

    흠....저도 우상호가 무슨 민주화 운동을 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 6.29당시 시위를 주도했던 연세대 총학생회장였다는 것과 이한열의 사망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었다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80년에 우상호는 고등학생였기 때문에 이화여대의 연석회의에는 참석하지 않았을 것같습니다. 원희룡과 마찬가지로 대학교에 들어가서 사상교육을 받지 않았을까요?(원희룡은 티비에 출현해서 자기는 대학교에 들어가서 5.18광주에 대해 들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광주유공자라니???? 컥

  • 작성자 07.12.29 12:39

    혹시 80년대에 학도호국단의 활동에 대해서 아시는게 있습니까?? 운동권학생에 맞서 학내에서 싸웠던 단체로 알고있습니다. 실제로 제가 다니던 학교에서도 비록 학도호국단의 이름은 아니였지만 주로 체육특기생으로 구성된 학생들이 축제때에 운동권에서 운영하는 주점을 폭력으로 철거하는 일이 비일비재했습니다.. 학생회장 선거에도 개입했었고요.. 학원내에서 반공세력으로써 중요한 임무를 담당하고 있었는데 왜 85년에 폐지했을까요? 서대문 갑 지역구에서 한나라당 의원으로 출마하는 이성헌씨는 학도호국단 출신으로 민주화운동을 했다고 합니다.. 이들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요?? 이들을 잘 이용했으면 학원내의 유언비어는

  • 작성자 07.12.29 12:44

    어느정도 막을수 있었을텐데 말이죠....

  • 작성자 07.12.29 12:50

    참고로...제가 아는 운동권 출신 지인에게 학도호국단에 대해 물어보니까 어용단체라고 하더군요.. 군사정권시절에 학내 학생회를 감시하던 사람들이라고요. 그러면서 무조건 우상호찍으라고 했습니다..

  • 07.12.29 13:39

    귀중한 추가 정보 감사합니다. 그렇다면 우상호가 1980년에 연대 1학년이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임수경의 편지(386의원들의 단란주점추태)를 읽어보신 적이 있으신지요? 저는 임수경이 우상호에게 보내는 공개 절교 편지를 읽고 518 팔아 금뱃지 단 이들이 해마다 광주 518행사에 참석하여 식순을 맡는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임수경이 우상호를 518 장사로 금뱃지 단 386의원들 중 대표적 인물로 묘사하기에 저는 이제껏 우상호가 광주 출신인가 의아해 했었습니다. 제3의사나이님이 올려주신 정보와 추가 정보로 그 궁금증이 많이 해소되었습니다. 우상호가 518행사에 해마다 참석하여 식순을 맡는 것을 보고 저뿐만 아니라

  • 07.12.29 20:09

    우상호 부모 두 사람 다 아니면 두 사람 중 한사람이 절라도 사람일 것입니다. 분명히 2008년부터 호주제가 폐지된다니 마음 것 본적을 속이겠지요.

  • 07.12.29 13:46

    광주시민들 또한 우상호가 518핵심인물인 줄로 여길 것입니다. 아마 대다수의 광주시민들은 우상호가 시민군 간부쯤 되었었는 줄로 여기고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우상호가 광주사태와 무슨 관련이 있었기에 518행사 식순을 맡는다는 것인지 의문을 던질 필요가 있습니다. 만약 우상호가 1980년 연대 1년생이었다면 어떤 단서가 발견되지만 고등학생이었다면 도대체 우상호가 광주사태와 어떻게 관련이 있다는 것인지 그 연결고리를 좀처럼 찾을 수 없습니다. 참고로, 임수경의 편지(386의원들의 단란주점추태) 전문을 제가 그대로 인용한 것을 http://blog.daum.net/sionvoice/6305719 에서 읽으실 수 있습니다.

  • 작성자 07.12.29 15:22

    우상호 81학번 맞습니다. 우상호가 책을 한권냈는데 제목이 촌놈입니다. 여기게 81학번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 07.12.29 17:07

    그렇다면, 우상호는 광주사태에 참여하지도 않았고, 광주사태에 대하여 전혀 아는 바도 없었다는 사실이 분명해집니다. 그럼에도 518행사에서 식순을 맡았다는 것은 그가 소속한 전대협이 518단체들과 한 통속이라는 사실을 말해 줍니다. 여기서 궁금한 점은 81학번이 '87년에 총학생회장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운동권이 '88서울올림픽을 방해하려 하였던 때에 그가 총학생회장이었다는 것인데, 그 사이에 군대 갔다 온 것일까요? 그리고 군대 갔다 와서도 여전히 운동권이었을까요? 제 기억으로는 전대협은 그 뿌리를 광주사태에 두려 합니다. 즉, 전대협이란 광주사태에 대한 유언비어가 무성한 곳인데 우상호는 그 유언비어들을

  • 07.12.29 17:10

    통해서만 광주사태에 대하여 알고 있을 뿐임이 분명해집니다. 결국, 광주사태를 경험하기는커녕 광주사태의 진실에 대하여 가장 모르며 가장 잘못 알고 있는 놈이 518 장사를 금뱃지다는데 이용하였다는 이야기입니다.

  • 07.12.30 19:39

    역사학도->,무슨 말같지도 않는 소리를 또 하시는지요. 누가 우상호를 시민군이란 한단 말이요..거 오늘 주일인데 목사님의 거짓말 또 듣는군요

  • 07.12.30 19:53

    늑대자슥/ 저는 광주사태의 격동기를 그 격동의 심장부에서 거쳤던 이들 중에 속하지만 아마 518 단체에서 저에게 518행사 순서를 맡겨줄 가능성은 거의 없을 듯싶습니다. 그렇다면 우상호는 도대체 광주사태와 무슨 관계가 있기에 518행사 순서를 맡을 뿐만 아니라, 518공금으로 술집 여자 희롱할 비용까지 지급받는다는 말입니까?

  • 07.12.30 19:43

    한나라당의 이성헌은 학도호국단 출신이고 통합민주신당의 우상호는 전대협 출신이고..이상한 분류를 하십니다.386세대들이 고교때 전부 교련수업을 받았고,대학교에서도 1985년까지는 학도호국단이 잇었으니,고교생,대학생이면 학도호국단으로 조직되어지는것입니다.. 학도호국단 출신이 세상이 어디있고,전대협 출신이 또 어디있소? 좀 토론적인 발상으로 게시판에 올리시길 바랍니다.

  • 작성자 07.12.30 20:40

    늑대자슥...당신은 답변을 잘 하시다가 마지막에 나를 매우 실망시키는 구려. 난 한번도 토론하겠다고 한적 없고 몇년전에 광주에 사는 운동권출신 지인에게 이성헌과 우상호를 그렇게 분류한 것을 들었는데 그 내용을 질문한것이오..글 다시 읽어보시오. 질문하는 글인지 토론하기 위해 올린 글인지..왜 내 글에 토론적인 발상이 필요한 것이오??

  • 작성자 07.12.30 20:48

    당신이 역사학도님과 토론하는거 쭈욱 지켜봤소. 나는 역사학도님은 물론이고 당신하고도 토론할 만큼의 지식이 없소이다. 당신이 나를 무식하다고 욕해도 사실이니까 어쩔수 없긴한데, 나도 당신한테 질문안할테니 당신도 답변 안해주길 바라오.. 어차피 당신이나 나나 여기 손님아니겠소?? 역사학도님의 답변이 틀릴때만 지적하기 바라오..

  • 07.12.30 21:07

    사실, 학도호국단원 전체가 운동권이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전교생이 일주일에 한번씩 교련수업을 받았으니, 모두 학도호국단 소속이었습니다. 그러나 교련 수업을 받는다는 것만 생각하였지 학도호국단에 소속되어 있다는 것조차 모르고 있었으니 소속감이 있었을 리 만무하며, 따라서 학원 내에 어용단체가 존재하는 것이 불가능했습니다. 김신조 일당이 청와대 내부까지 침투했었을 때 학생들도 언제 다시 제2의 한국전쟁이 발발할지 모르는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고, 그런 분위기 속에서 교련수업이 생겼으며, 자연스럽게 진행되었습니다. 고등학생들은 교련수업에 순응하였는데, 대학교에서는 교련 반대 시위가 있었지요.

  • 07.12.30 21:24

    학도호국단이란 명칭 자체가 저에게도 생소합니다. 학도호국단 임원을 학교에서 선출했던 적도 전혀 없었으며, 학도호국단 임원을 학교에서 임명한 적도 없습니다. 아마 학도호국단은 유사시를 대비한 조직이었을 것입니다. 언제 북한의 남침이 있을지 모르는 나라에서 학도호국단의 존폐에 대한 학생들간의 찬반 의견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이성헌씨가 학도호국단 출신이라는 것은 의외입니다. 마지 못해 군대 입대한 저 역시 교련 수업의 필요성에는 적극 찬성이었습니다. 안보불감증 운동권에 저는 불만이었으니까요. 그렇다고 누가 저를 학도호국단 출신이라고 부르면 어폐가 있겠지요.

  • 07.12.30 21:33

    당시 학생들은 모두 운동권에 쉽게 선동되었습니다. 우익보수와 좌익의 대결구도같은 것이 학생 사회에 전혀 없었어요. 당시 대학가는 완전 운동권에 장악되어 있었습니다. 오로지 운동권의 소리밖에 없었기 때문에 운동권의 소리가 곧 학생의 소리라는 공식 개념을 모두가 가지고 있었습니다. 어용 단체가 조직되는 것은 불가능했으며, 학도호국단이든 뭐든 그런 어용 단체는 전혀 없었습니다. 저는 거대한 운동권에 외로운 소수로서 대항하였지만 당시 저는 저 홀로였으며, 저와 같은 생각을 하는 다른 학생이 존재하는지를 까맣게 모르고 있었습니다.

  • 07.12.30 21:37

    이 경우 누가 저에게 어용단체 소속이라는 누명을 씌우면 타당한 누명이 아니겠지요. 저는 이성헌씨가 누구인지 전혀 모릅니다. 그러나 그가 어용단체 소속이었다는 주장은 말도 안되는 주장이었다는 것을 분명히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박정희 대통령과 전두환 장군을 존경하게 된 기회가 있었기에 분명한 소신을 가지고 그 지도자들을 존경했던 것이니, 이성헌씨도 역사적으로, 정치경제학적으로 멀리 내다보고 깊게 들여다 보는 안목으로 5공을 지지하였는지 모르지만, 그것은 본인 소신의 문제였지, 결코 어용단체 소속의 문제가 아니었을 것입니다.

  • 08.01.02 17:56

    제3의 사나이님, 지인에게 들었던지 작의적으로 이성헌과 우상호를 그렇게 분류했던간에 별 내용도 없는데 야단법석이네요..이카페글을 읽는이라고는 12.12반란 5.18학살을 미화하고 수천억원국고수탈을 흠모하는 자들과 전사모 회원들이 대부분이고 몇몇 분개하는 이만 있는 곳에 무슨 토론이 되겠소.그저 잘못 알고있는 생각 고쳐나가면 되실겁니다.

  • 08.01.01 17:36

    생물학에 문외한인 자가 의사 면허를 자랑한다면 꼴불견이겠지요. 생물학적 지식이 선행되어야 의학적 판단이 가능하니까요. 12.12사태에 대하여 언제 처음 들으셨는지 대답 못하시는 이유가 도대체 무엇인가요? 광주사태 당시 혹은 그 이전에 12.12사태에 대하여 들어본 적이 있으신가요? 12.12사태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었는데, 그런 시국관을 가졌다는 것을 말이 안되기에 님에게 재차 묻는 것입니다.

  • 08.01.02 18:03

    님이 대한예수교장로회 목회신분일텐데, 어디서 신학 공부를 하셨는지 모르지만 평범한 목사는 아닌것으로 소문이 나더군요.저는 님의 인격 존중을 위해 글쓰기에 조심하고 있을뿐더러 님의 흉은 보지 않을겁니다.제가 이렇게나오는것은 제 지인 한사람이 님의 교회와 목사님을 잘 알고있다하여 그런것도 있음을 미리 알립니다.

  • 08.01.03 11:48

    제가 드는 비유는 비유일 뿐 님을 흉보려는 의도는 전혀 없습니다. 단지, 광주사태에 대한 진실을 객관적 사실에서 출발하는 객관적 사유를 요하며, 사회과학도 자연과학 못지 않게 객관적 사유를 요함을 님에게 상기시켜 드리는 것뿐입니다. 님도 자연과학 분야에서 객관적 사유 능력을 훈련받으셨을진대, 객관적 사실에서 출발하여 주시고, 객관적으로 확인된 사실을 주장해 달라고 도전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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