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다 없다/박효석
나에겐 어머니가
있다
없다
네 살 때 6・25전쟁으로 돌아가셨으니까
기억에 없고
내가 세상에 태어났으니까
있다
평생을 있다 없다를 반복하며
쉴 새 없이 나를 드나드시는 어머니는
때론 신기루 같기도 하고
때론 끝없는 사막 같다
토란나물/박효석
토란나물을 먹으며
토란잎을 폴짝폴짝 뛰어다니던
청개구리처럼
세상을 마냥 뛰어다니던
철부지 시절을 생각하며
해 쨍쨍하기 그지없는 여름 한나절
여우비처럼 토란잎에 내리던
빗소리를 들으며
더운 세상을 뛰어 다니다
한걸음에 달려와
어머니 품에 안겼을 때의 시원함처럼
토란나물을 먹으며
토란잎에 내리던 그때의 빗소리를
다시 음미하는 것은
불후의 명곡을 또 다시 듣는 것 같은
행복이다
어머니 점심 잡수셨습니까/박효석
어머니 점심 잡수셨습니까
이맘때쯤이면 어김없이 나는 보리빵 세 개와 우유 200ml를 먹으면서
어머님이 살아오신 망망대해를 앞에 놓고
혼자 시름에 겨울 어머님을 생각합니다
햇살은 얼마나 비추고 있고
동백꽃은 피었는지요
눈만 뜨면 가족들은 뿔뿔이 제 갈 길을 가고
당뇨병을 앓고 있는 저는 맨 마지막으로
보리빵 세 개와 우유 200ml를 가지고
어머니 곁을 떠나면서
뜰 앞에 동백나무와
추녀 끝에 매달린 메주가 얼마나 곰팡이 피었는지
그 냄새를 맡으면서
어머니의 얼굴을 떠올린답니다
나이를 먹으면 영혼의 부피가
잘 익은 장처럼 맛깔스러워지는지요
세월을 차곡차곡 쌓아서
양지바른 햇살로 잘 쬐어 익혔다가
사는 재미 못 느끼고 헤매일 때 한세월 듬뿍 떠서
맛깔나게 썩썩 비벼주는가 하면
눅진 세월 푹푹 끓여서
주눅 들지 않게 살아오신 세월
아낌없이 따뜻하게 맞아주시는 어머니
펼치면 팔만대장경보다 더 넓고 깊어서
어찌 그 마음을 다 헤아릴 수 있겠는지요
퍼 담아도 퍼 담아도 줄지 않는 그 세월 줄기 곁에서
곁가지로 싹눈 틔고 어머니가 비춰주는 햇살 받아
바라보시기에 좋은 동백꽃으로 피고 싶은
그 소망을,
어머니 점심 잡수셨습니까
홀로 계실 땐 드시는 것도 대충대충 때우고
피붙이가 곁에 있어야 그나마 맛있게 드시는 어머니.
오늘 햇살은 얼마나 비추고 있고
동백꽃은 또 얼마나 피었는지요
― 어머니
거실에서 자라고 있는 화초들 / 박효석
나는 화초들이 가득한 거실에서
밤마다 화초들이 내쉬는
신선한 산소를 마시기 위하여
거실에서 잠을 잔다
낮 동안 세상을 살면서
미세먼지를 비롯하여 온갖 공해와 신선하지 못한 생각에
사로잡혀 사느라
몸속 가득 쌓인 부패한 가스를 내보내고
신선한 산소로 교체해주기 위하여
거실에서 잠을 자곤 하는데
때로는 화초들에게 이래도 되는가싶어
미안한 생각이 들 때가 종종 있다
그럴 때면 동백나무를 비롯하여
파키라, 폴리셔스, 떡갈나무, 산호수, 가지마루나무, 행운목, 행복나무, 스파티필룸, 제라늄 등
거실에서 자라고 있는 화초들이 괜찮다는 듯이
푸른 잎과 향기로운 꽃향을 흔든다
때맞춰 물 주는 것을 비롯하여
분갈이와 병충해약을 뿌려주는 등
자신들을 보살펴주는 내가
오히려 너무너무 고맙다는 듯
거실에서 자라고 있는 화초들이
밤마다 맑고 신선한 산소를 더욱 활발히 내쉬며
푸른 잎과 꽃향을 흔들고 있다
[ 박효석 시인 약력 ]
· 동국대학교 문화예술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졸업
· 1978년 ‘시문학’으로 문단 등단
· 1985년 제2회 수원시 문화상 예술부문 수상
· 월간 문예사조 기획실장 및 신인상 심사위원 역임
· 월간 순수문학 편집위원 및 신인상 심사위원 역임
· 월간 시사문단 회장
· 월간 시사문단 편집고문 및 신인상 심사위원
· 월간 시사문단문학상 심사위원 및 북한강문학상 심사위원, 풀잎문학상 심사위원, 빈여백동인문학상 심사위원
· 2015년 오산문학상 대상 및 신인상 심사위원장
· 경기도 청소년 예술제 추진위원 및 문학부문 심사위원장
· 경기도 예술상 운영위원장 노작 홍사용 문학상, 나혜석 미술상, 홍영후 음악상 운영위원장
· 효석문학상, 청맥문학상, 미석문학상 운영위원장
· 1994년 한국문화예술진흥원 창작기금 수혜자
· 1994년 경기도문화예술진흥원 창작기금 수혜자
· 제12회 문예사조 문학상 대상 수상
· 제1회 북한강문학상 대상 수상
· 제11회 시예술상 본상 수상
· 경찰의 날에 행정자치부장관, 경찰청장, 경찰대학장으로부터 표창장 받음(4회)
· 경찰대학교에서 30년간 문예창작을 지도하였으며 삼성전자에서 20년간 문하생을 배출 함
· 작곡가 ‘변훈’에 의해 시 ‘순이야’와 ‘우리의 수원’이 가곡으로 작곡됨
· 15시집 ‘시인과 농부’가 2016년도 제주도 서귀포 시민의 책 읽기 위원회에서 시민의 책 추천도서목록 80권에 선정됨
· 제24시집 ‘예수가 되는 가로수들’ 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