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리재 윤 득 길
Ⅰ
아주 먼 옛날, 호랑이가 담배 피던 시절의 얘기다.
어느 깊은 산중에 갖가지 동물들이 모여 사는 ‘신수제국(神獸帝國, The Empire of Holy animals)’이 있었다. 세상에서는 그냥 ‘짐승 나라’라고 얕잡아 부르지만, 고유명사니 그대로 불러주기로 하자.
전해 오는 말로는 일찍이 그 땅에는 어떤 원시 부족(primitive tribe)과 그곳에서 고유한 생태계를 형성하고 있던 터줏대감 격인 동물들이 함께 살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잦은 외침(外侵)과 괴질(怪疾)의 창궐(猖獗)로 그들 가운데 일부는 이를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강 건너 땅으로 이주(移住)하여 먼 훗날 중원(中原)을 통일했던 한족(漢族)의 뿌리가 되었고, 나머지는 거기에서 그냥 혈거(穴居) 상태로 머물다가 멸종되었다고 한다.
그런 지연(地緣)으로 태곳적에는 강 건너 저쪽과 이쪽 신수제국 수립 이전의 ‘짐승 나라’ 사이에 선진 기술과 문물, 천연자원 등을 주고받는 교역(交易)과 인수간(人獸間) 교류(交流)도 꽤 활발했었다고 한다.
이를테면 짐승 나라에는 원숭이 등 영민한 동물들이 강 건너 마을로 유학하여 갑골문자(甲骨文字) 비스름한 상형문자(象形文字)를 배워와서 전수(傳授)하면서 제법 식자(識字)깨나 있는 짐승들도 많았었고, 또 한때는 사자나 호랑이 등 용맹한 동물들이 저쪽 원시부족 나라에 건너가서 용병(傭兵)으로서 국방(?)(國防)을 맡아주는 등 국교(國交)도 꽤 활발했었다고 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동물들이 살아가는 터전은 한정돼 있는데 개체수가 점차 불어나자 그들 사이에 긴장이 높아지면서 싸움이 그칠 날이 없게 되었다. 이에 공멸(共滅)의 위기를 느낀 그들은 공존(共存) 전략을 모색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를 위해 포유동물(哺乳動物)의 각 종족 대표들이 한자리에 모여 오랜 숙의(熟議) 과정을 거쳐 협약안을 마련하고, 이를 전체 동물 투표에 부친 결과 절대다수로 가결되어 ‘신수제국’을 수립하게 되었다는 얘기가 그들의 건국 신화(?)(建國神話)에 나온다고 한다.
그곳을 멀찍이서 건너다보면 그 입구는 높은 성벽을 깊은 해자(垓子)가 에워싸듯 깎아지른 절벽을 깊은 강물이 띠를 두른 것처럼 감싸고 있고, 뒤쪽으로 펼쳐진 드넓은 삼림 고원(森林高原)의 끝자락은 깊은 협곡(峽谷)으로 둘려 있어 절해고도(絶海孤島)나 다름없는 천험(天險)의 요새(要塞)라고 한다. 절벽 위에는 키가 나지막한 고산(高山) 식물들이 총생(叢生)하고 있어서, 성가퀴에서 병졸들이 적정(敵情)을 살피듯 척후(斥候) 동물들이 매복(埋伏)하여 속계(俗界)를 건너다보며 경계를 서는 데는 안성맞춤이라더라.
그 ‘신수제국’과 속세(?)(俗世) 사이에는 원시 부족이 통나무를 얽어서 만든 조교(釣橋)가 하나 놓여 있는데, 그것은 ‘신수제국’ 쪽에서만 상판(上板)을 올리고 내려 여닫을 수 있는 일엽교(一葉橋)라고 한다. 바깥세상에서 그 다리를 건너면 ‘신수제국’의 국경(國境) 관문(關門) 격인 천연 동굴 입구에 닿게 되는데, 거기에는 ‘싸우면서 협력하자’는 아치형 대형 현판(懸板)이 설치되어 있다. 아주 먼 훗날 속계(俗界)에서 ‘싸우면서 건설하자’는 현판이나 구호(口號)가 흘러넘친 적이 있었는데, 그것은 아마도 이 ‘신수제국’의 현판 내용을 가차(假借)한 것이 아닌가 추정된다.
거기에는 여러 종류의 동물들이 ‘살얼음 밟듯’ 아슬아슬한 평온을 유지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오수부동(五獸不動)이라는 말이 있다. 쥐, 고양이, 개, 범, 코끼리가 한자리에서 만나면 두려워서 가벼이 움직이지 못하게 된다는 뜻이다. 이를테면 고양이는 쥐만 보면 그야말로 ‘쥐 잡듯’ 할 수 있지만, 개 앞에만 서면 오금이 저려 만만한 쥐를 보고도 움직일 수 없게 된다. 개 또한 ‘그대[범] 앞에만 서면 작아지는[김수희의 <애모 참조>]’ 오가리 병이 도져서 고양이를 보고도 잡도리할 마음이 싹 가신다. 그런가 하면 코끼리는 포유류(哺乳類) 중 최상위 포식자(捕食者)인 범은 두렵지 않지만, 몸집이 작고 가벼워 어느 쪽으로 튈지 모르는 쥐가 콧구멍에 들어갈까 봐 걱정이란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 분수를 알아서 신분 질서(?)를 지키는 것이 결국 자기의 생존에 유리하다는 것을 그야말로 ‘동물적인 감각’을 통해서 알고 있다. 그들을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것은 ‘두려움’이다.
그러나 ‘하릅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는 속담처럼, 천방지축(天方地軸)으로 날뛰는 철부지도 있게 마련이다. 그들을 그대로 방치한다면 산중의 질서는 하루아침에 무너지고 말게 된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혹독한 교육과 채찍이 필요하다.
그런가 하면 견원지간(犬猿之間)이라는 말도 있다. ‘장비(張飛)는 만나면 싸움’이라지만 개와 원숭이도 만나기만 하면 으르렁거리고 싸운다. 따라서 산중의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상극(相剋) 관계에 있는 동물들은 격리하여 자기 영역을 벗어나지 못하게 하거나, 활동 시간을 조정하는 등 ‘회피 제도(回避制度)’를 두어 일탈 행동을 강력히 규제해야 한다.
이 밖에도 그곳의 동물들은 살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조건만 충족되면 더 이상 욕심을 부리지 않는 것을 불문율(不文律)로 삼고 있다고 한다. 배가 부르면 먹잇감이 곁에 있어도 손을 대지 않는다. 졸고 있는 사자 곁에서 뛰노는 토끼나 사슴 같은 작은 동물들을 보면 이를 잘 알 수 있다.
처음에는 ‘강요된 질서’가 세월이 가면서 ‘자율적인 절제(節制)’로 점차 바뀌어 가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인간 세상에서는 욕심 많은 사람을 돼지에 빗대어 나무라곤 하지만 막상 돼지는 절대로 과식(過食)하는 법이 없다고 한다. 내일을 위해 창고를 짓고, 저금통장이나 보험증서를 가지고 있어야 직성이 풀리는 탐욕스러운 인간과 달리, 이 산중의 동물 가족은 강력한 질서 유지와 절제가 그들에게 ‘지속 가능한’ 공존을 보장해주는 필수 조건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산중에도 사람 사는 세상과 마찬가지로 각 동물에게는 타고난 능력과 특징에 따라 고유의 역할이 주어져 있다.
이를테면 황제로서 대(代)를 이어 사직(社稷)을 보존하고 억조창생(億兆蒼生)을 기르는 대임(大任)을 맡은 사자는 백수(百獸)를 통솔하며 만기(萬機)를 친재(親裁)한다.
호랑이는 사자와 자웅을 가리기 어려울 만큼 대단한 위세(威勢)를 가지고 있으나, ‘두 마리의 호랑이가 싸우면 반드시 한 쪽은 쓰러지고 만다[兩虎共鬪 其勢不俱生<史記>].’는 사실을 일찍이 가학(?)(家學)으로 익힌지라, 불확실한 승산(勝算)에 멸문지환(滅門之患)의 모험(冒險)을 하기보다는 안전하게 보신(保身)하면서 차선(次善)에 만족하는 ‘제이인자(第二人者)’ 처세술에 정통(精通)했다더라. 그래서 치세(治世)에는 일인지하(一人之下)에 만인지상(萬人之上)인 丞相으로, 난세(亂世)에는 갑주(甲冑)를 걸치고 백만대군을 호령하는 도체찰사(都體察使)로 출장입상(出將入相)하며 안분지족(安分知足)하고 있다더라.
상서성(尙書省) 상서령(尙書令)인 표범은 휘하(麾下)에 육부(六部)를 거느리고, 형부 상서(尙書)인 치타는 범법(犯法) 동물을 징치(懲治)하는 사법(司法)의 총수(總帥)이며, 시랑(侍郞)인 승냥이와 낭중(郎中)인 이리를 실무 부하로 거느리고 있다. 진돗개는 질서 문란행위를 감시하고, 미어캣(meerkat)은 외침(外侵)에 대비해서 경계근무를 하며, 하이에나는 청소 등 위생과 보건을 책임지는 등으로 ---.
그런데 그 산중에는 마소[말과 소]와 더불어 물자를 실어 나르는 일을 전담(專擔)하는 비루먹은 당나귀가 한 마리 있었다. 그는 행색(行色)이 초라하고 하는 일이 천역(賤役)뿐이니 심지어 생쥐 새끼한테도 조롱을 당하는 한심한 처지에 놓여 있었다더라. 늘 허섭스레기 같은 짐이나 실어 나르는 주제니 어느 때 한 번이고 기를 펴볼 계제가 있었겠는가. 늘 주눅이 든 채 그저 ‘국으로’ 지내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Ⅱ
그러던 어느 날, 당나귀는 하계(下界)에 내려가서 ‘소중한’ 짐을 싣고 오라는 윗선의 분부를 받고 당일로 발정(發程)한다. 맨몸으로 내려간 당나귀는 사방에 버려진 깨진 물형(物形)들과 물감 그릇들이 널려 있는 주물(鑄物) 공장 비스름한 허름한 건물 마당에 당도한다. 멍에를 메고 쳇대를 걸며, 뱃대끈을 동여매는 등 달구지를 끌 채비를 한다. 달구지 상틀에는 뚜껑이 없고 벽체 대신 연꽃 무늬가 선연한 가림막이 둘려 있는 사인교(四人轎) 비슷한 짐이 실린다. 그 안에는 끌채 비슷한 멜대에 고정된 등신대(等身大) 황동 좌불(黃銅坐佛)이 안치되어 있으나, 당나귀는 뒤를 돌아볼 수 없어 그 짐의 정체를 알 수 없었던가 보더라.
무거운 짐 때문에 땀을 뻘뻘 흘리던 당나귀는 ‘신수제국’을 눈앞에 둔 조교(釣橋) 앞에서 잠시 발걸음을 멈춘다.
거기에서 이미 대기하고 있던 무리들이 당나귀 일행에 합류하면서 질서정연하게 새로운 대오(隊伍)가 형성된다. 맨 앞에는 키가 껑충한 별감(別監) 기린 녀석이 길잡이를 하고, 뒤를 이어 금채(金彩)로 ‘國刹神獸寺本尊改金佛事’이라고 쓴 비단 현수막을 몸에 뱃대처럼 두른 코끼리 태재(太宰)가 시자(侍者) 사슴을 앞세워 선두에서 일대(一隊)을 인솔하고, 목탁을 두드리고 법성게(法性偈)를 염하는 염소 무리가 행렬을 잇는다. 그리고 맨 뒤에는 향내가 물씬 나는 채색 지화(紙花) 연꽃 목걸이를 두른 당나귀가 본존(本尊)을 실은 수레를 끌고 있다.
조교를 건너 ‘신수제국’에 첫발을 내딛는데, 느닷없이 “○○○ 나가신다. 비켰거라. 비켰거라.” 하며 왜장치는 목소리로 길을 여는 별감(別監) 기린(麒麟) 녀석의 벽제(辟除) 소리가 고요에 잠긴 산중에 찌렁찌렁 울려 퍼진다.
그렇지 않아도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하던 참인데, 이운(移運) 행렬이 산중으로 접어드는 어귀에서 당나귀는 참으로 놀라운 일을 겪는다. ‘도대체 이게 생시인가, 꿈인가!’ 평소 같으면 그 존안(尊顔)을 뵙기는커녕(?) 풍문으로 위명(偉名)만 들어도 무서워 오줌을 지리곤 했던 사자 황제 폐하(陛下)께서 선두에, 호랑이 승상(丞相) 등 온갖 덩치가 큰 고관대작(高官大爵) 동물들이 뒤를 이어 길 양옆에서 도열(堵列)하여 읍(揖)하고 서 있다가 마침 자기[당나귀 지칭]가 나타나니 모두가 부복(俯伏)하며 머리를 조아리는 것이 아닌가! 이에 놀란 당나귀는 이게 일시적인 환영(幻影)이 아닐까 하며 머리를 흔들어 본다. 그런데 산로(山路)를 따라가는 내내 온갖 아관대대(峨冠大帶)의 높은 벼슬아치 동물들이 연도(沿道)에 운집하여 한결같이 최고의 경의를 표한다. ‘이게 일시적인 착각만은 아닌가 보다.’ 하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자, 당나귀는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더욱 난감해진다. 생각해 보라. 폐하께서 국궁(鞠躬)하시는 판에, 모른체 하고 그냥 지나간다면 이는 불경죄(不敬罪)로 극형을 면치 못할 것이다. 그렇다고 험상궂은 고릴라 마부(馬夫)에게 고삐가 잡혀 끌려가느라 옴나위도 할 수 없는 주제에 칭신(稱臣)하여 예를 갖출 수나 있겠는가. 알은체 할 수도, 그렇다고 모른 체 할 수도 없어 전전긍긍(戰戰兢兢)하면서 발걸음을 옮기는데 진땀이 흘러내려 땅을 적신다. 혼비백산(魂飛魄散)하여 마음을 수습하지 못한 채 뚜벅뚜벅 무거운 발걸음을 옮긴다.
그러구러 서너 식경(食頃))이나 지났을까, 발치만 내려다보던 눈길을 들어보니 저 건너 언덕바지 어느 산사(山寺)가 원경(遠景)으로 드러난다. 풍경(風磬) 소리도 은은히 귀에 감긴다.
정신이 좀 들면서, 이젠 살았나 보구나 싶어 조금 안도가 된다. ‘만일, 만일 말이다, 내가 정말로 불경죄(不敬罪)를 저질렀다면 나를 법에 의해 도륙(屠戮)하지 않고 이렇게 멀쩡하게 살려두겠는가? 그런 걸 보면, 아무래도 내 신분이 하룻밤 사이에 천정부지 (天井不知)로 치솟은 것은 아닌가? 아니, 어깨너머로 주워들은 진서(眞書) 토막이기는 하지만 ‘‘하늘에는 헤아릴 수 없는 바람과 구름이 있고, 사람에게는 아침저녁으로 갈마드는 화복(禍福)이 있다.’고 하지 않던가[天有不測風雲 人有朝夕禍福<明心寶鑑 誠心篇>]. 하기는 먼 훗날 저 건너편 세상에서도 ‘어느 날 아침 일어나 보니 유명해져 있었다[I awoke one morning to find myself famous].’는 영국 낭만주의 시인 바이런[George. Gordon ~ (*1788-1824)]의 일화(逸話)도 있다지 않던가[*by the time machine moving forward].’ 당나귀의 생각은 내친김에 한발 더 나아가서 날개 돋친 듯 비약한다. ‘소시(少時)에 글줄이나 읽었다는 족숙(族叔)(?) 노마(老馬) 어른께서도 늘 이르시길, ‘왕후장상의 종자(種子)가 어찌 따로 있으랴[王侯將相 寧有種乎<史記 陳涉世家>]?’라며, ‘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Boys, be ambitious!<William Smith Clark>].’라고 젊은 시절 나를 부추기시지 않았던가!’
그간 겪었던 설움이 한꺼번에 밀려와 복받치자 이를 털어내려는 듯 연신 머리를 흔들어 댄다. 당나귀는 은근히 힘이 솟구치자 “에헴, 에헴” 헛기침을 해대며 이젠 아주 거들먹거리기까지 한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이 헛기침 소리마저 엿들은 귀들이 있었던가 보더라. ‘백수(百獸)의 왕인 사자도 나에게 머리를 조아리는 판국에 거칠 게 무엇이랴!’ 어느 산사(山寺)에 무언지 모르지만 무거운 짐을 부려 놓은 당나귀의 목에는 제법 힘이 많이 들어갔던가 보더라.
사지(死地)를 벗어난 당나귀는 빈 수레를 끌고 제 집구석으로 터덜터덜 발길을 옮기면서 지나온 길을 거듭 복기(復碁)해보며 절로 흥에 겨워 흥얼거린다.
뒷전에 몰래 숨어서, 또는 나뭇가지 틈에서 이 광경을 목도(目睹)한 족제비며 다람쥐, 청설모 따위 잔챙이 동물들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그 이름만 들어도 사시나무 떨듯 두려운 사자나 호랑이까지 당나귀에게 부복(俯伏)하여 머리를 조아렸다는 소문이 이들의 입을 통해서 온 산중에 일파만파(一波萬波)로 짜하게 퍼져나갔다.
이와 엇비슷하게 때를 같이하여 산중에는 이상한 소문이 떠돌기 시작했다. 곧 도참비기(圖讖祕記) 별책(?)(別冊)에 따르면 미구(未久)에 역운(歷運)이 사자[獅子, Leo]에서 천마(天馬, Pegasus)로 바뀌어 ‘천마(天馬) 천년 제국’ 시대가 도래한다는 밑도 끝도 없는 허무맹랑한 풍요(風謠)가 돈다는 것이다. 어느 날인가, 납의(衲衣)를 걸친 미치광이 오랑우탕 걸승(乞僧) 하나가 어느 마을을 지나가고 나서부터 이런 괴소문이 떠돌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에 고무(鼓舞)된 당나귀는 저도 모르는 사이에 보위(?)(寶位)에 오르는 환상을 품게 되었고, 이를 들은 다른 동물들도 처음에는 ‘긴가민가’하다가 “아, 용하다는(?) 신승(神僧)께서 그러시더라는데 ---.” 하면서 점차 거역하기 어려운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눈치가 역연(歷然)하다.
그래서 그랬는지는 알 수는 없어도, 이런 사건과 소문이 나돈 뒤로 눈에 띄게 바뀐 것은 바로 동물 종족 간에 깍듯했던 신분 질서가 무너져내리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공직사회(?)(公職社會)’에서는 상급자에 대한 아랫것들의 태도가 하루가 다르게 싸늘하게 변해간다. 당나귀에게 힘이 쏠리면서부터 지체가 높은 동물들 앞에서도 감히 고개를 꼿꼿이 세우고 어영부영하며 맞먹으러 드는가 하면, 심지어 너나들이를 하려는 방자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신분 질서가 이 지경으로 무너져 내리는 데도, 윗선으로서는 ‘참, 세상 많이 변했구나.’라며 한탄하는 이외에 달리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한편, 전 같았으면 거들떠보지도 않던 그저 그만그만하거나 심지어 중치의 짐승들조차 이운(移運) 행사 이후 어쩌다 당나귀가 외출이라도 하게 되면 가던 걸음을 멈추고 ‘노려(老驢, *당나귀 려) 영감’이니, ‘대려(大驢) 어른’이니 하면서 읍하는가 하면, 경의를 표하고 알은체를 한다. 더욱이 천마(天馬)의 ‘천년 제국’설이 떠돈 뒤로는 ‘개미떼가 누린내에 몰려들고 파리떼가 다투어 피를 빠는 것처럼[如蟻聚羶 如蠅競血<菜根譚 後集72.>] 당나귀의 사저(?)(私邸) 앞은 갖가지 연줄을 들이대며 몰려드는 온갖 동물들로 연일(連日) 문전성시(門前成市)다. 당나귀가 좋아한다는 당근이며, 건초, 옥수수 따위가 실린 우마차가 바리바리 도착하면서 임시로 달아낸 퀀셋트(?)(Quonset) 창고까지도 넘친다. 당나귀는 산더미같이 쌓이는 물선(物膳)을 갈무리하랴, 명자(名刺)[오늘 날의 명함]와 물목(物目), 그리고 원하는 직첩(職帖) 등을 괴발개발 끄적거려두랴 눈코 뜰 새가 없었다.
이런 사정을 짹짹거리는 참새들의 요설(饒舌)로 어림하게 된 너구리에게 번개처럼 스치는 한 생각이 있었다. 너구리가 속으로는 당나귀를 ‘제까짓 근본도 없는 하천배(下賤輩) 주제에 ....’ 하면서도 아무려면 ‘도둑고양이에게 상(床) 받쳐주랴.’ 싶어, 달구지 업계(業界)에서는 그래도 이왈저왈 힘깨나 쓴다는 노마(老馬)에게 회계학(會計學)에 대한 자신의 스펙(?)을 내세워 스카웃을 청질한 것은 나름대로의 심산(心算)이 있었기 때문이다. ‘자벌레가 몸을 구부리는 것은 나중에 다시 펴서 더 나아가기 위해서이며, 용이나 뱀이 몸을 숨기는 것은 몸을 잘 보존하기 위해서이다[(尺蠖之屈 以求信也 龍蛇之蟄 以存身也<繫辭 下篇)>.]라는 말처럼 다 생각이 있어서 앞을 내다본 짓이렸다.
당나귀는 할 수 없이 들어온 것 가운데 반 몫을 나눠주기로 하고, 대략 적발이는 해 두도록 당부하면서 아전(衙前) 퇴물 너구리를 전담 집사(執事)로 들여앉혔다. 이골난 너구리가 거리낌 없이 매관매작(賣官賣爵)을 하니 복마전(伏魔殿)이 따로 없었던가 보더라.
Ⅲ
그러던 어느 날 산중에는 폐하(陛下)께서 대회장 명의로 소집하는 ‘신수제국 제2차 비상총회’를 연다는 공고가 여기저기에 나붙었다. 대서특필(大書特筆)한 호외(號外)가 뿌려지는가 하면, ’신수통신(神獸通信)발 기사를 받은 산중 TV와 라디오에서는 시시각각으로 이를 알리는 보도가 빗발쳤다. 비상총회의 의제(議題)는 ‘동물 가족 질서 확립에 관한 건’이었다.
각각 제 처소에서 은신(隱身)하던 동물들이 영문도 모르고 하나둘씩 몰려들더니 어느새 임시 회의장인 ‘만수전당(萬獸殿堂)’ 메인홀은 발 디딜 틈조차 없을 정도로 만원이 되었다. 이날 비상총회를 개최하게 된 사유는 얼마 전에 적발된 ‘역모 미수죄(逆謀未遂罪) 등’ 사건에 기인하지만, 몇몇 기간(基幹) 참모 동물들을 제외한 거개(擧皆)의 동물들은 그저 나오라니 거역할 수 없어서 마지못해 발걸음을 옮겼을 뿐, 정작 왜 이런 비상사태가 벌어졌는지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협시(脇侍)를 받으며 사자 황제 폐하께서 친림(親臨)하시어, 남면(南面)하여 옥좌(玉座)에 좌정(坐定)하시자 대소 신료(臣僚)들도 동서반(東西班)과 품계(品階石)으로 구분된 자리에 가서 도포(道袍) 자락을 살포시 들어 올리며 앉는다.
법복(法服)으로 위의(威儀)를 갖춘 상서성(尙書省) 표범 상서령(尙書令)이 만조백관(滿朝百官)이 정좌(正坐)한 가운데서 출반주(出班奏)하되,
“잘 아시다시피 우리 ‘신수제국’은 성조(聖祖)께서 개국하시면서 호국불교(護國佛敎) 이념으로 국찰(國刹) ‘신수사(神獸寺)’를 개창(開創)하시고, 부처님의 가피(加被)로 종묘사직(宗廟社稷)의 보존과 억조 창맹(億兆蒼氓)의 덕화(德化)[君子之德風 小人之德草 草上之風 必偃<論語(顔淵)篇>]를 기원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궁중에는 원찰(願刹)을 두고, 명산대천(名山大川)에는 명당(明堂)을 가려 가람(伽藍)을 창건하는 풍조가 크게 일었습니다. 그리하여 해마다 풍순우조(風順雨調)하고 국풍순화(國風醇化)하여 국태민안(國泰民安)을 구가(謳歌)하였습니다.
*원시불교는 기원 전 3세기 경, 인도의 고타마 붓다가 당시 갖가지 형이상학적 명제(命題)를 놓고 벌리던 공리공담을 배척하고 자신에 대한 철저한 내관(內觀)을 통해 깨달은 바를 제자들이 집대성한 신념체계이다. 이 ‘신수제국’의 표범 상서령이 ‘호국 불교’ 운운한 것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무모한 일이다. 왜냐하면, 고타마 붓다가 깨달은 바를 설법한 원시불교가 현대 불교의 뿌리인데, 신수제국에 어떻게 불교가 있었을 수 있느냐고 논리적으로 따지려 든다면 그 자체가 어리석은 일이다. 여기에서는 새와 나무가 대화하고,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와 미래를 오가며, 번개처럼 공간 이동이 가능한 우화(寓話)의 세계임을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이다.
어언 천년 고찰(古刹)에도 풍마우세(風磨雨洗)하야(?) 중수(重修)를 거듭했으나 또다시 세월의 풍화(風化)를 견디지 못하여 퇴락(頹落)이 우심(尤甚)한지라, 성하(聖下)께서 누만금(累萬金)의 내탕금(內帑金)을 쾌척(快擲)하시고 황명(皇命)으로 다시 중수(重修)를 명하셨습니다. 이에 퇴색(褪色)한 단청(丹靑)을 새로 하고, 개금불사(改金佛事)하여 국찰로서의 면모를 일신(一新)한 후에 폐하께서 친림(親臨)하신 가운데 사부대중(四部大衆)을 비롯한 온 신민이 함께하여 가원국사(嘉猿國師)(?)[카프친 원숭이를 높여 부르는 말]를 신임(新任) 주지(住持)로 모시는 진산식(晉山式)을 성대히 치르고자 하는 과정에서 이번 ‘역모 미수죄’ 등 옥사(獄事)가 일어났습니다.”
상서령이 목을 가다듬은 후, “오늘 저희 대소 신료들은 폐하를 모신 가운데, 역모 미수죄, 불경죄 등 국가의 기강(紀綱)을 흔든 대역부도(大逆不道) 사건의 전모(全貌)를 밝혀 엄벌에 처함으로써 국법의 준엄함을 대내외에 다시 한번 천명(闡明)하는 한편, 다시는 여사(如斯)한 역도(逆徒)의 무리가 준동(蠢動)하지 못하도록 경계하고자 합니다.”라며 장중한 모두 발언(?)(冒頭發言)을 마치고, 이어서 본안에 대한 설명에 들어간다.
Ⅳ
“우리는 건국하기 전 까마득한 옛날에도 이 땅에서 이번 사건과 유사한 선행(先行) 사례를 겪은 바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호가호위(狐假虎威)’ 사건입니다. 이번 역모 미수죄 및 불경죄 등 사건을 요해(了解)하는 데 이해를 돕고자 이 사건의 개요를 먼저 간략히 환기(喚起)시키고자 합니다.”
“우리 ‘신수제국’ 건국의 아버지인 국부(國父)께서도 ‘호랑이 담배 피던 옛날’이라고 회고(回顧)하셨다던 당시 이곳의 동물 가족들에게 통용되는 유일한 법은 힘이었습니다. 즉 약육강식(弱肉强食)이라는 ‘정글의 법칙’이 적나라하게 적용되는 세상인지라, 동물 종족 간에 서열이니 질서니 하는 말 자체가 없던 때였습니다. 만나면 싸우고, 승자는 패자를 가차없이 먹이로 삼는 그런 세상이었습니다.
함께 살던 원시부족이 멸종되자, 천하(?)는 우리 동물들의 천국이 되었던 것입니다. 사자, 호랑이, 표범 등 군웅(群雄)이 중원(?)(中原)에서 제위(帝位)를 놓고 축록(逐鹿)[*영웅들이 천하를 차지하기 위하여 다투는 일]하였으나, 결국 일통천하(一統天下)를 이루지 못한 채, 각기 일정 지역을 할거(割據)하여 영지(領地)로 삼고, 패자(霸者)는 제위를 참칭(僭稱)하고, 혹자(或者)는 멋대로 칭왕(稱王)하는 등 난세(亂世)였습니다. 꼭 먼 훗날 인세(人世)의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를 방불(彷佛)케 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입니다.”
어느 날, 그 고원(高原)의 일우(一隅)를 할거하여 국호(國號)를 ‘성호왕국(聖虎王國)(?)’이라고 칭하고 스스로 칭왕(稱王)하던 호랑이가 미복(微服) 차림으로 잠행(潛行)하며 민정(民情)을 시찰하던 중에 한 마리의 여우를 만났다. 호랑이는 구중궁궐(九重宮闕)에 깊숙이 유하시느라(?) 여태껏 여우와 한 번도 상면(相面)한 적이 없었다. 이때 ‘도마에 오른 고기[俎上肉]’ 신세가 된 여우가 이판사판에 잔꾀를 낸다.
여우가 호랑이에게 말하기를, “그대는 나를 감히 잡아먹을 수 없다. 천제(天帝)께서 나를 백 수(百獸)의 장(長)[우두머리]으로 삼으셨다. 그러므로 그대가 만일 나를 잡아먹는다면 이는 천제님의 명을 거스르는 것이다. 내 말이 믿기지 않거든 내가 그대를 앞서서 갈 테니 그대는 내 뒤를 따르거라. 뒤를 따라오면서 백수(百獸)들이 나를 보고 감히 달아나지 않는 놈이 있나 보거라.”라고 하였다. 호랑이는 그럴싸하게 여기고는 드디어 함께 가는데, 만나는 짐승마다 그들을 보고는 모두 달아났다. 호랑이는 짐승들이 자기를 보고 두려워서 달아난다는 것을 모르고 여우를 두려워하여 달아나는 줄만 알았다.
[虎求百獸而食之,得狐。狐曰:『子無敢食我也。天帝使我長百獸,今子食我,是逆天帝命也。子以我為不信,吾為子先行,子隨我後,觀百獸之見我而敢不走乎?』虎以為然,故遂與之行。獸見之皆走。虎不知獸畏己而走也,以為畏狐也<戰國책(策)楚策>] *바깥세상을 몰랐던 혼주(昏主)호랑이와 약삭빠른 여우 사이에 일어났을 법한 그럴싸한 얘기다. ‘원님보다 아전 (衙前)이 더 무섭다.’느니, ‘문고리 권력’이 어떻다느니 하며 남의 권력이나 위세를 빌려 거들먹거리는 인간들을 놓고 회자(膾炙) 되는 고사성어 (故事成語)다.
‘천천히 걸어서 어른보다 뒤에 가는 것을 ‘공경스럽다.’고 하고, ‘빨리 걸어서 어른보다 앞서 가는 것을 공경스럽지 않다[徐行後長者 謂之弟 疾行先長者 謂之不弟<孟子 告子下>].’고 하는 것이 저 아래 세상의 법도인데, 힘만이 유일한 법인 이 야생(野生)의 세계에서 여우가 감히 호랑이를 앞서가는 것은 자연스럽지 못한 일이다. 방자(放恣)한 여우를 엄히 다스려달라는 고발이 형부(刑部)에 빗발쳤다.
수사(搜査)를 맡은 승냥이 시랑(侍郎)은 그 피고수(?)[被告獸] 여우를 잡아들여 초달(楚撻)한다. 고발자 조사와 목격자 증언을 통해 범행에 고의성이 없는 단순 과실이며, 다른 배후(背後)가 없다는 것을 확인한다. 죄수[罪獸]를 치죄(治罪)하는 일은 사법(司法)의 수장인 형부상서(刑部尙書)의 전결(專決) 사항이지만 죄상이 엄중한 국사범(國事犯)인 경우에는 친국(親鞫)하는 관례가 있다더라. 그래서 이 사건은 상서성(尙書省)의 상서령(尙書令)인 표범이 주상 전하께 상주(上奏)하고 비답(批答)을 기다리는 중이었다더라.
상주(上奏)를 통해 자신이 여우에게 기망(欺罔) 당한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호랑이 왕은 미물(微物)에 불과한 여우 나부랭이한테 농락당한 사실에 분노하여 펄펄 뛰며, “과인(寡人)이 친국(親鞫)할 것이니 채비를 하라.”고 불호령을 내린다.
포박(捕縛)되어 친국장에 끌려 나온 여우는 경위를 이실직고(以實直告)하라는 주상 전하의 추상(秋霜)같은 호령에 덜덜 떨면서 아뢴다.
“천생(賤生)이 지은 죄는 만 번 죽어 마땅하오나[罪當萬死] 위급한 상황에서 잔명(殘命)을 보전하려는 본능적인 임기응변(臨機應變)이었을 뿐, 결단코 감히 금상(今上) 전하(殿下)인 줄 알고서도 기망(欺罔)할 의도는 추호(秋毫)도 없었사옵니다. 견문이 비루(鄙陋)한 천생이 하필 ‘그때 그곳’에서 전하(殿下)를 뵙게 될 줄 어찌 알고 언감생심(焉敢生心) 그런 불경한 흉계(凶計)를 획책할 수 있었겠습니까? 기군망상(欺君罔上)이라니 천부당만부당(千不當萬不當)한 누명(陋名)이오니 영명(英明)하신 전하께서는 통촉(洞燭)하소서. 감히 주청(奏請)하오니, 천한 목숨만은 살려주시어 천하에 성은(聖恩)이 미만(彌滿)하다는 것을 만백성에게 두루 알려지게 하소서.” 하며 발이 닳도록 빈다.
가만히 듣자 하니, 여우의 발명(發明[*죄나 잘못이 없음을 말하여 밝힘]에도 일리(一理)는 있어 보이는지라 호랑이 왕의 마음이 잠시 흔들린다. 그리하여 기군망상의 죄를 물어 참형(斬刑)에 처하려던 당초의 격노(激怒)를 가라앉힌다.
“네 이놈, 듣거라. 천한 미물(微物)인 너의 소행(所行)을 볼작시면 기군망상의 죄를 물어 참(斬)하는 것이 마땅하다만, 어리석어 신분의 존비(尊卑)조차 분별하지 못하는 것을 나무라서 무엇하겠느냐. 게다가 뒤늦게나마 제 잘못을 뉘우치는 개전(改悛)의 정을 보이며 목숨을 애걸하니 과인(寡人)이 ‘어린 백성을 측은히 여겨’(?) 감일등(減一等)하여 천한 목숨만은 살려주마.” 하니, 여우가 연신 “성은(聖恩)이 망극하오이다.”를 되뇌며 감루(感淚)를 흘린다.
“형부(刑部)에서는 이 죄수[罪獸]에게 장(杖) 삼십도(三十度)에 가산(家産)을 적몰(籍沒)하고, 그 호씨(狐氏) 일족(一族)을 조교(釣橋)를 통해 전원 인세(人世)로 추방토록 하라. ‘풀을 베는데 뿌리를 남겨두면 봄이 되면 다시 돋아나게 되느니라[斬草留根 逢春再發<馮夢龍>].’ 하며, 친국을 마친다.
간물(奸物) 여우가 집장사령(執杖使令)의 매에 ‘거의 죽을 지경이 되어[幾至死境)]’이 되어 쫓겨난 이후로 ‘신수제국’에는 여우의 그림자조차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더라.
Ⅴ
이어서 상서령(尙書令) 표범은 형부(刑部) 중간 간부인 이리 낭중(郎中)을 통해 미리 준비시킨 영상물을 스크린에 올리도록 지시한다. 당나귀의 달구지에 가림막으로 가린 본존불상이 안치되는 장면에서부터 ‘신수사’ 대웅전 마당에서 하역(荷役)되는 장면까지 전 과정이 약여(躍如)하게 펼쳐지더니, 마침내 코끼리 태재(太宰)의 배에 둘렸던 ‘國刹神獸寺本尊改金佛事’ 현수막이 신수사 문 앞에 세워진 당간(幢竿)에 높이 걸려 바람에 펄럭이는 것으로 빔프로젝터[beam projector]가 꺼진다. 이를 처음 본 대소(大小) 동물들은 ‘세상 참 좋아졌네!’라며 마음속으로 찬탄해 마지않는다.
이어서 형부 담당자 승냥이 시랑(侍郞)이 올린 의율(擬律)과 과형(科刑)에 관한 문서를 넘겨받은 상서령 표범이 또다시 나서서 피고수(被告獸) 당나귀에 대한 죄목을 조목조목 밝히면서 서슬 푸른 논고(論告)를 한다.
“우선 피고수 당나귀의 불경죄 부분에 대해서 죄상(罪狀)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동영상에서 보았다시피, 피고수(被告獸) 당나귀는 본존불상(本尊佛像)이 달구지 상틀에 실리는 것과, 코끼리 태재(太宰)의 배에 둘려진 ‘國刹神獸寺本尊改金佛事’이라고 쓴 비단 현수막을 제 눈으로 목도(目睹)했을 것이며, 이운 행렬 가운데서 염소 무리가 목탁을 두드리며 법성게(法性偈)를 염하는 소리와 ‘○○○ 나가신다. 비켰거라. 비켰거라.’ 하며 왜장치는 별감의 벽제 소리를 제 귀로 들었을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향내가 물씬 나는 채색 연꽃 紙花 목걸이가 제 목에 걸렸다는 것과, 그리고 국찰 대웅전 앞마당에서 귀한 짐이 하역(荷役)됐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못할 것입니다. 도처에 설치된 CCTV의 영상 자료와 이 광경을 숨어서 지켜본 족제비, 다람쥐, 청설모 따위의 증언들로 드러나게 된 직접 증거와 정황 증거를 종합해서 판단해 볼 때, 이 피고수(被告獸) 당나귀가 제 달구지에 모신 짐은 다름 아닌 바로 국찰 신수사의 본존불상임을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결코 부인하지 못할 것입니다.
피고수 자신이 지금 본존불을 이운(移運)하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지실(知悉)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강계(疆界)까지 출영(出迎)하여 부복 배알(拜謁)하시는 폐하를 비롯한 당상관급(?) 이상 고관대작들에게 고개를 빳빳이 쳐들고, 마치 제가 휘하(麾下)들을 사열(査閱)이나 하는 듯이 오만을 떨었을 뿐만 아니라, 급기야는 ‘에헴, 에헴!’ 헛기침까지 하며 거드름까지 피웠습니다. 이는 정승(政丞) 이하 고위 공직자(?)들을 모독하고 공직사회의 기강과 신분계급의 질서를 문란케 한 국기(國紀)문란죄에 해당하는 것이며, 더 나아가서 폐하를 능멸한 심각한 불경죄뿐만 아니라, 국가모독죄에까지 연루(連累), 저촉(抵觸)될 소지(素地)가 있으므로 폐하께서는 이 점을 각별히 통촉(洞燭)해 주시기를 아울러 주청(奏請)하는 바입니다.
왜냐하면, 먼 훗날 우리의 국법(國法) 전문(?)(前文) 내용을 벤치마킹한 듯한 프랑스의 태양왕 루이14세의 명언(名言), 즉 ‘짐(朕)은 곧 국가다.’라는 말도 있습니다만, 제국과 그 제국의 주인인 황제 사이에는 추호의 간극(間隙)도 존재할 수 없는 것이므로 제국의 황제에 대한 모독은 곧 국가에 대한 모독으로 동일하게 해석될 소지가 다분하며, 이는 곧 극형(極刑) 이외의 다른 처벌 규정이 없는 역모죄나 내란죄, 그리고 여적죄와 더불어 죄질(罪質)이 극히 불량한 범죄라 할 것입니다.”
“다음은 ‘역모(逆謀) 미수죄’와 관련된 혐의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피고수 당나귀는 반상(班常)의 신분 차별이 엄격한 인세(人世)라면 사람 축에도 끼지 못했을 소위 팔천(八賤)에나 들 법한 천출(賤出)로서, 폐하를 뵙기는커녕 그 위명(威名)조차 제대로 듣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반(去般) 본존 이운(移運) 행사에서 점차 고개를 쳐들고 헛기침을 해대며 거드름을 피워도 이를 문제 삼는 자가 없었다는 사실에서 크게 고무된 듯합니다.
거기에 덧붙여서 이운 행사 때에 폐하를 비롯한 고위직 신료(臣僚)들이 본존께 표하는 국궁 (鞠躬) 등 최고의 경의(敬意) 표시를 천골(賤骨)인 당나귀에게 한 줄로 착각한 무지몽매(無知蒙昧)한 일부 하천배(下賤輩)들이 당나귀에게 아유구용(阿諛苟容)하는 것을 기화(奇貨)로 하여 기고만장(氣高萬丈)해졌을 것입니다.
또한 이제 폐하의 역운(歷運)이 쇠하고 천마(天馬)가 통치하는 ‘새천년’이 온다는 미치광이 돌중놈의 허무맹랑한 유언비어(流言蜚語)에 현혹되어 헛된 망상에 사로잡혔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저 피고수 당나귀가 역모(逆謀)를 꾀하게 된 결정적인 동기는, 제 말로 저희 족숙(族叔)이라는 늙은 말[노마(老馬)를 지칭] 녀석의 허무맹랑한 충동질일 것으로 짐작됩니다. 즉 ‘왕후장상의 종자(種子)가 어찌 따로 있으랴? [王侯將相 寧有種乎<史記 陳涉世家>]’라며 불경스럽기 짝이 없는 패설(悖說)로 부추겼다는 이 늙은 말 역시 이 역모(逆謀) 미수사건의 ’공동정범(共同正犯)‘으로 엄히 다스려 국법의 엄중함을 밝혀야 할 것으로 사료됩니다. 역모 미수사건의 결정적인 단서는, 피고수 당나귀의 원촌(遠寸) 족질(族姪)이라는 모(某) 노새의 ‘애국 충정(衷情)에서 우러난 고변(告變)’인 바, 유언비어(流言蜚語)로 떠돌던 첩보(諜報)를 더 정밀 추적하여 ‘빼박’(?) 거증력을 확보함으로써 ‘과학수사 신수제국(科學搜査神獸帝國)’으로서의 성가(聲價)를 높일 쾌거(快擧)를 이루겠습니다.
이에 덧붙여 요즘 피고수의 집 앞에 뇌물을 들고 청탁하는 무리들이 문전성시(門前成市)라는 지라시(?) 내용이 사실로 확인된 바, 이는 역적 행위를 위한 자금으로 활용할 의도가 있을 것으로 보아 앞 역모 실행을 위한 준비 행위로 추정됩니다. 그뿐만 아니라 근간에는 피고수의 나들이가 부쩍 늘었다는 정보원들의 보고가 빗발치고 있는데, 이는 역모(逆謀)의 분위기 조성과 실행의 시기를 가늠하기 위한 사전 정찰(偵察)의 성격이 있지 않나 하는 추정도 가능해서, 정황 증거로서 좀더 조사를 해보아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상으로 피고수 당나귀의 ‘역모 미수 사건’의 전모(全貌)를 밝혔습니다.”
“다음은 피고수 당나귀의 변호사법(辯護士法) 위반, 알선수재(斡旋受財) 혐의에 대한 문제입니다. 정보원들을 시켜 정탐해본 바에 의하면, 피고수 당나귀는 산더미처럼 쌓이는 뇌물을 주체하지 못하여, 최근에는 아예 뇌물을 쌓아 놓을 대형 퀀셋트(?)(Quonset) 창고를 짓고, 아전(衙前) 퇴물 너구리를 집사(執事)로 들여 앉히고 적발[*memo쯤에 해당]한다고 합니다. 이와 관련해서는 앞으로 압수 수색을 통해서 증뢰자(贈賂者) 명단과 희망 직첩(職帖)이 적혀 있을 물증을 확보하여 알선(斡旋) 수재(受財)나 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입건하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도록 하겠습니다.”
“이상으로 피고수 당나귀의 피의 사실을 열거하고, 기수집된 거증력(擧證力) 있는 물증과 증언을 확보하여 공소(公訴)하오며, 필요시 보완, 제출코자 하오니 폐하께서는 통촉(洞燭)해 주소서. 국가모독죄가 인정되면 사형이며, 불경죄는 사형 또는 무기징역에 해당합니다. 역모 미수죄 역시 사형 또는 무기징역형에 해당됩니다. 알선수재나 변호사법 위반은 경합범(競合犯)일 수 있으므로 별도의 양형(量刑)을 하여야 할 것으로 보이나, 가장 중대하고도 확실한 역모 미수죄가 적용된다면 기타 범죄의 처벌은 양형(量刑) 자체가 무의미하게 됩니다.
이상으로 피고수 당나귀의 피의사실(被疑事實)에 대하여 소직(小職)이 ‘국가 형벌권’을 전행(專行)하는 상서성(尙書省) 형부를 대신하여 논고(論告)와 구형(求刑)을 마치고자 합니다.”
이어서 형부 시랑(侍郞) 승냥이가 나와서 사자 황제 폐하를 향하여 부복하며 머리를 조아린 다음, 피고수(被告獸) 당나귀에게는 방어권 보장을 위하여 ‘불구속 수사의 원칙’을 지킬 것이며, 법정대리수(?)(法定代理獸)의 조력(助力)을 받을 권리’도 최대한 보장한다는 내용을 고지함과 아울러 보름 후로 변론기일을 내정했으나 이의 신청이 있으면 검토하여 조정하겠다는 내용을 통보한다. 곧 이어 후 폐정(閉廷)이 선언된다.
Ⅵ
이날 뒷전에서 표범 상서령의 논고와 구형 등 공판(公判)을 방청하던 소위 피고수 당나귀의 족숙(族叔)이라는 모(某) 노마(老馬)는 자칫하면 역모 미수죄에 공동정범(共同正犯)으로 처벌될지도 모른다는 위기의식을 느낀다. 피고수석에서 멍청하게 졸고 있던 당나귀에게 몰래 기별(奇別)을 넣어 모시(某時)에 모처(某處)에서 급히 만날 것을 알린다.
노마가 통기(通奇)를 받고 헐레벌떡 달려온 당나귀에게 변호수 선임 문제를 물으니, 당나귀는 법조계(法曹界)에서 악명 높은 늑대 변호수에게 선을 댔더니 일만금의 수가(酬價)를 일시불 선불로 요구하는지라 ‘차라리 몸으로 때우는 게 낫지!’라는 생각이 들어서 이를 포기하였다는 것과, 관(官)에서 추천해주는 국선변호수(國選辯護獸) 노루라도 선임코자 했으나 그마저 칭병(稱病)하며 수임(受任)에 난색을 표하더란다.
비명횡사(非命橫死)의 위기에 빠진 노마가 족질(族姪) 당나귀를 심하게 힐책하며, 횡액(橫厄)에서 목숨을 구하기 위해서는 뇌물로 들어온 재물을 다 풀어서라도 유명 변호수를 아웃소싱(?)[outsoursing]하라고 강권(强勸)하며 진서(眞書) 한 구절을 들어 당나귀의 귀에 대고 아주 경(經)을 읽는다.
“어떤 사람이 덫을 놓았는데, 호랑이가 걸려들었다. 호랑이는 노하여, 덫에 걸린 자신의 발을 끊고 도망갔다. 호랑이의 사정으로 보면 결코 그 발을 아끼고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한 치의 가락지에 끼인 발 때문에 일곱 자나 되는 온몸을 해칠 수는 없다는 것을 헤아려 본 결과이니라.”
[人有置係蹄者 而得虎 虎怒 決蹯而去 虎之情非不愛其蹯也 然而不以環寸之蹯 害七尺之軀者 權也<戰國策 趙策>]
그렇지 않아도 궁지에 몰린 당나귀에게, 노마는 또 ‘어리석은 자야, 오늘 밤에 네 목숨을 되찾아 갈 것이다. 그러면 네가 마련해 둔 것은 누구 차지가 되겠느냐?[루가12,20]’는 성경 구절을 들먹이며 ‘하느님의 말씀(?)’도 거역할 것이냐고 종주먹을 들이대며 몰아세우니, 할 수 없이 족숙 어른 뜻대로 유능한 변호수를 알선해 달라며 선임 문제를 일임한다. 물론 여기에는 ‘이익이 있는 곳에 천하가 따라간다[利之所在 天下趨之<蘇洵 上皇帝書>].’고 역모 미수죄의 공동정범으로 같이 죽게 된 노마가 저도 살고 보자는 심산이야 왜 없겠는가.
이리하여 멀리 아프리카 콩고강 유역에 본사를 두고 있는 그 유명한 보노보 법률회사 [Bonobo Wiseman & partners Law firm, Inc.]의 와이즈먼 대표 변호수[辯護獸]와 접촉을 시도한다. 피그미 침팬지라고도 불리며, 지능[*IQ 120쯤 된다는 설도 있음]이 인간을 빼고는 가장 높다는 보노보족이 설립한 이 법률회사는 수임료가 엄청나게 높아서 국제 법조계에서는 ‘그림의 떡’[畵中之餠]이라는 풍문이 나돈다. 그러나 설립 목적에 부합하면 무료변론도 마다않는 최고의 명성을 지닌 반 자선기관 역할도 하는 국제법무법인이라더라.
먼저 동 사건 수사기록과 공판 내용 등 증빙자료 사본을 ‘보노보로펌’에 보내어 검토케 한 후, 수임료의 견적(見積)을 보내달라고 한다. 제반 자료를 검토한 ‘보노보로펌’에서는 세 건 혐의 모두 논고한 내용을 논파(論破)하여 무죄를 이끌어내기에는 반박(反駁) 논리 개발이 너무 옹색하고 반증(反證) 확보가 어렵다며 수임(受任)에 난색을 표한다. 이에 노마는 1심에서 무죄 승소(勝訴)만 보장해준다면 수가(酬價)의 다과(多寡)를 불문하고 ‘보노보로펌’에서 원하는 수임료를 일시불로 선불하겠다며 계약을 체결하자고 조른다. 로펌에서는 계약서 서명 즉시 일시불로 하되, 당나귀가 받은 뇌물을 처분한 전액[사실은 ‘범죄수익금’]을 끝전까지 근처 은행 현금 자동 입출금기[ATM]에서 당나귀가 사용 중인 계좌에 입금시킬 것을 역제의(逆提議)하여 합의를 본다. 보노보로펌에서는 ‘수권보호(獸權保護)’ 차원에서 표준 수가(酬價) 부족분은 희사(喜捨)로 회계처리하겠다면서 계약서에 서명한다. 피고수 당나귀는 ‘보노보로펌’의 와이즈먼을 법정대리 변호수(辯護獸)로 하는 선임계(選任屆)를 제출하는 한편, ‘보노보로펌 측의 조언(助言)’에 따라 피고수의 방어권(防禦權) 보장 차원에서 두 달 후로 변론기일을 연기 신청하여 형부(刑部)의 승인을 받는다.
*변론 개념설계 및 정보 조작(conceptual design & manuplation of information)을 위한 시간 벌기?
이후 노마와 피고수 당나귀, 그리고 와이즈먼 대리자는 연일 화상(畫像) 회의를 통해 대책을 수립해 가고 있으며, 변론기일에 임박해서는 아예 인도네시아지사(印尼支社)의 엘리트 변호수를 ‘신수제국’으로 파견하여 시나리오에 따른 역할연기[role playing]와 ‘모의재판 (模擬裁判)’ 등을 포함하는 웍샵[workshop]을 개최하여 완벽하게 대처키로 하였다더라.
Ⅶ
마침내 변론기일이 다가왔다. 지난번 ‘신수제국 제2차 비상총회’의 일환(一環)으로 첫날 열렸던 논고 및 구형(求刑) 공판에서는 국기문란에 관한 중대 사항이라 폐하께서 친국(親鞫)하겠다는 황명(皇命)이 있어서 상서성의 표범 상서령이 나서서 국사범(國事犯)을 치죄(治罪)하기 위하여 검사로 참여하여 구형(求刑)하는 형식을 밟았었다. 그러나 이런 일은 대명률(?)(大明律)에서도 극히 예외적으로 군주에게 유보(留保)된 권도(權道)일 뿐, 당시에도 일반적인 일은 아니었다. 먼 훗날 저 인세(人世)에서 확립된 삼권분립이니, 삼심제(三審制)니, 형사소송법이니 하는 관점과는 거리가 먼 원시 동물나라에서 있었던 행태(行態)라는 점을 이해해야 할 것이다.
먼저 논고 및 구형 공판에서 검사 역할을 했던 표범 상서령이 이번 변론 공판에서는 재판장을 한다니 무슨 사법 체계가 이렇게 ‘개판(?)’이냐고 볼멘소리도 나올 법하기는 하다. 하지만 여기가 바로 태곳적 ‘개나 소가 살던 세상’인 걸 어찌하랴!
폐일언(蔽一言)하고, 세퍼드 정리(廷吏)가 정내(廷內)를 정리할 때, ‘만수전당(萬獸殿堂)’ 옥상 헬리포트 쪽에서 잠시 소음이 나는가 싶더니, 침팬지 비스름한 한 녀석이 올백 머리에 캐주얼 차림으로 백팩 하나 달랑 멘 채 당당하게 걸어 들어와서 검사석(檢事席)과 나란히 배치된 변호수석(辯護獸席) 곁에 선다. 잠시 후 재판장인 표범 상서령이 입정(入廷)하여 좌정하자 법정을 가득 채운 방청수[傍聽獸]들이 착석한다. 재판장의 개정(開廷) 선언에 이어 형부의 이리 낭중(郎中)이 지난 공판 기록 요지를 낭독한다.
재판장이 당나귀 피고수의 법률대리자 와이즈먼 변호수에게 변론 개시를 명한다. 와이즈먼은 재판장에게 목례(目禮)로 예를 표한 후, 곁에 앉은 당나귀 피고수와도 초대면에 악수를 한다. 그리고 자기가 속한 보노보법률회사는 ‘만국수권보호(萬國獸權保護)’라는 가치와 ‘지구촌 자연생태 보전(自然生態保全)’이라는 생존을 위한 국제투쟁연대 회원사로서, 도움이 필요한 곳이라면 시공을 가리지 않고 뛰어가서 이번처럼 무료변론한다는 요지의 소개를 마치고, 바로 변론에 들어간다.
“본 대리자는 선행(先行) 공판에서, 피고수에 대한 논고에서 드러난 거증력(擧證力)이 의심되는 증거 채택과 심리 미진(審理未盡), 사실에 기초하지 않은 무리한 추정과 이에 따른 법 적용 오류의 문제까지 죄목별로 조목조목 적시(摘示)하여 피고수가 무죄함을 입증하고자 합니다.
본 사건을 다룸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물론 드러난 혐의를 정확한 팩트 체크를 통해서 입증하고, 그다음에는 적확(的確)한 법률 적용, 그리고 범행의 동기와 사건의 인과 관계, 그 동기를 형성하게 된 피고수의 성장 및 생활 환경 등 영향인자(影響因子)를 세밀하게 살펴서 양형(量刑)에 참작하는 등 ‘서릿발 같은 칼날과 따뜻한 체온이 녹아 있는 조화로운’ 판결을 빚어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본 대리자가 피고수와의 교신(交信)을 통해서 알아낸 바로는, 피고수는 사회계급적으로도 가장 낮은 신분인 ‘달구지족(?)’ 출신으로, 천대받는 태생적인 천출(賤出)입니다. 조실부모하고 혈혈단신(孑孑單身)으로 ‘고삐 풀린 망아지’가 되어 거친 세파에 떠밀리면서 오직 몸 하나를 도구로 구명도생(苟命圖生)하느라 견문이 전무(全無)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낫 놓고 기역 자도 모르는’ 목불식정(目不識丁) 상태입니다. 바로 이것이 이번 사건의 피고수처럼 수권(獸權) 사각지대(死角地帶)에서 핍박받고 있는 동물 가족을 위해서 저희가 ‘무료변론’에 나서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다윗왕이 우리야의 아내인 미모(美貌)의 ‘바 세바’를 범한 후, 그녀가 임신하게 되자 전장(戰場)에 나가 있던 그녀의 남편을 불러들여 부부를 합방(合房)시킴으로써 이 간통사건을 은폐(隱蔽)시키려는 계략을 썼으나 여의치 않자, ‘우리야를 전투가 가장 심한 곳 정면에 배치했다가, 그만 남겨두고 후퇴하여 그가 칼에 맞아 죽게 하여라.’라는 편지를 써서 우리야의 손에 들려 상관인 요압에게 보내어 우리야를 죽인 고사(故事)가 있습니다[2사무엘11,1-17 참조]. 우리야는 주군(主君)에 대한 신뢰 때문에 밀지(密旨)가 담긴 겉봉을 뜯어보지 않아서 죽었지만, 피고수 당나귀라면 ‘이 서찰(書札)을 제시하는 자를 참(斬)하라.’고 겉봉 없이 백지에 써주어도 그대로 전달할 위인(?)(爲人)입니다. 이런 ‘까막눈’이라는 사정을 감안한다면, 피고수에 대한 논고의 대부분은 사실과는 거리가 먼 추정일 뿐이므로 당연히 배척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아래에서 논고의 내용상 오류를 조목별로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피고수의 불경죄(不敬罪) 부분이라면서 적시(摘示)한 내용인즉, 당나귀가 달구지에 실린 짐이 본존불상(本尊佛像)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것을 논증(論證)하기 위하여 잡다한 사례들을 들고 있습니다. 피고수가 본존불상이 달구지 상틀에 실리는 것을 보았다고 단정했는데, 피고수가 쳇대를 건 후에 짐이 실렸으므로 뒤를 돌아볼 수도 없었고, 설사 보았다고 하여도 가림막으로 둘려 있어서 짐의 실체를 어림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또 코끼리 태재(太宰)의 배에 뱃대처럼 둘려진 현수막을 보았을 것이라고 하는데, 이는 마치 ‘봉사 단청(丹靑) 구경’하는 격이지 어떻게 그 뱃대에서 본존(本尊)의 뜻을 터득(攄得)하겠습니까? 또 염소들이 법성게를 염하는 소리와 별감의 벽제(辟除) 소리를 들었을 것이라고 하지만, 들은들 ‘쇠귀에 경 읽기’ 아닐까요? 그 밖에도 제 목에 걸린 연꽃 목걸이가 어떠네, 대웅전이 어떠네 하지만,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처럼 실체(實體) 자체를 모르는데, 어떻게 실체의 그림자일 뿐인 상징(象徵)을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지루한 허구적인 논증을 통해서 피고수가 달구지에 실린 짐이 본존불상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을 주장하려고 했지만 모두가 헛수고로 드러났습니다.
그러나 백보 양보하여 피고수가 상틀에 실린 짐이 본존불상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한들, 그것이 피고수의 불경죄와 어떤 연관이 있다는 것입니까?
설사 피고수가 어떤 경로를 통해서였건 간에 자기가 싣고 가는 짐이 ‘본존 불상’이라는 것을 알아차렸고, 황제 폐하를 비롯하여 연도(?)(沿道)에 도열한 고관대작(高官大爵)이 ‘자기[당나귀 지칭]가 아니라 ‘본존 불상’에게 머리를 조아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황공(惶恐)스러운 마음을 몸짓으로라도 표하고 싶어도 옴치고 뛸 수 없는 당나귀 피고수가 어떻게 했어야 ‘불경죄’의 올가미를 벗어날 수 있었겠습니까? 오히려 그럴 의향만 있다면 돈수(頓首)로 신례(臣禮)를 표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을 정도로 운신(運身)의 폭이 넓고, 그래도 지체(?)가 높아 모범을 보였어야 할 고릴라 마부에 대해서는 불경죄 혐의(嫌疑)로 기소(起訴)는커녕 입건(立件)도 하지 않은 채 만만한 당나귀 피고수만 잡도리하는 것은, ‘만수(?)(萬獸는 법앞에 평등하다’는 세계수권선언(?)(世界獸權宣言) 정신에도 정면 배치(背馳)될 뿐만 아니라 신분 차등제로 회귀하자는 퇴행적(退行的) 행태가 아닙니까? 설혹 어리석은 피고수가 우쭐하는 마음에 속으로 ‘나도 본존불 비스름한 지위(?)’에 오른 것은 아닐까 하는 착각을 했다고 하더라도, 행동이나 말로 드러나지 않은 단순한 ‘감정’이나 ‘생각’ 자체를 처벌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전차(前次) 구형공판에서 논고를 하셨던 상서령(尙書令)께서는 당시 피고수 당나귀가 ‘고개를 빳빳이 쳐들고, 마치 제가 휘하(麾下)들을 사열이나 하는 듯이 오만을 떨었을 뿐만 아니라, 급기야는 ‘에헴, 에헴!’ 헛기침까지 하고 거드름을 피웠다.’며 당시 피고수의 몸짓에까지 주관적 해석을 덧붙여 불경죄의 근거로 제시했습니다.
오늘 변론공판에서는 재판장으로 나서신 상서령께 사실적 근거에 입각해서 논고의 허구성을 논박(論駁)하겠습니다. 지금도 보시다시피 이 피고수 당나귀는 체고(體高) 1m 남짓에 체중은 겨우 100kg 정도인 반면, 고릴라 마부(馬夫)는 키가 2m 가까이 되고 체중은 300kg에 육박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키와 몸무게에서 피고수를 압도(壓倒)하는 고릴라 마부(馬夫)가, 비좁고 비탈진 산길에서 혹여나 헛발을 디뎌 ‘본존불상’이 훼손될까 염려하여 고삐를 바짝 움켜쥐고 앞에서 피고수를 끌고 가는데, 어떻게 왜소한 피고수가 멋대로 고개를 쳐들고 ‘에헴, 에헴!’ 하며 거들먹거릴 수가 있겠습니까? 재판장님께서 허락하신다면 당시 피고수의 심정과 상황을 들어보기로 하겠습니다.”
이에 재판장이 와이즈먼 대리자의 현하지변(懸河之辯)에 그만 혼이 빠져서 매우 그럴싸하게 들리는지라 엉겁결에 이를 허락한다. 이에 와이즈먼 대리자는 피고수에게 당시의 상황과 심정을 기탄(忌憚)없이 개진(開陳)해보라고 한다.
당나귀 피고수는 그날 뜻밖에 황제 폐하와 승상님 등을 조우(遭遇)하게 된 당혹감, 게다가 자기에게 부복(俯伏)하며 머리를 조아릴 때 무릎을 꿇고 칭신(稱臣)하며 신례(臣禮)를 하여야 할지, 아니면 그렇게 하는 게 오히려 주제넘어 보일지 모르니 모른체하고 고개를 숙여야 할지, 도무지 어찌할 바를 몰라[罔知所措)] 거의 정신이 나갔던 일, 그러면서도 마부의 억센 손에 고삐가 잡혀 옴나위도 할 수 없었던 낭패감 등을 미리 준비라도 한 듯(?) 물 흐르듯이 설명한다.
무식하다던 피고수 입에서는, 그때의 심정을 피력한다면서 ‘전전긍긍(戰戰兢兢)’이니 ‘혼비백산(魂飛魄散)’이니 하는 유식한(?) 말도 자주 튀어나왔던가 보더라. 방청석에서는 ‘어허, 그 새 무식한 당나귀가 공부를 많이 했나 보네.’ 하고 야유(揶揄)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더라.
“극(極)에 이르면 바뀌게 되고, 바뀌면 통하게 된다고 하였다던가[窮則變, 變則通<周易(繫辭傳)>]. 그때 달구지 업계에서는 전설이 된 현우공의 일화(逸話)가 당나귀의 뇌리를 번개처럼 스치더란다. 불에 달궈진 슴베에 가슴을 덴 호밋자루처럼 못 배워 천대받던 한(恨)이 늘 불도장으로 화끈거리던 한 중송아지는 붓 한 자루, 종이 한 장 구할 수 없는 빈궁 속에서 어깨 너머로 ‘들은 풍월’을 귀에 새기고 땅바닥에 그리며 익히기를 10여 성상(星霜) 불철주야로 한풀이처럼 독습(獨習)을 했더라더라. 이제는 그래도 ‘달구지 업계[운수업계]’에서 글 줄이나 읽었다는 웬만한 식자(識者)가 발 벗고 뛰어도 따라갈 수 없는[足脫不及] 경지에 이르러 현우공(賢牛公)이라는 별호(別號)를 받고, 지금 ‘전국달구지노조’의 고문이신 그 어른께서 ‘고장 난 레코드’처럼 늘 입에 달고 살던 ‘잔소리’가 떠오르더라는 것이다.
그는 늘 이렇게 말했다는 것이다. ‘스이서 질을 나스먼 꼭 그 중에 나한티 슨상님이 있게 마련이니라. 그 가운데서 젤 잘난 이를 골라서 따르면 되느니라[三人行必有我師 擇其善者而從之, 其不善者而改之<論語 述而>]’
먼 훗날 후학(?)(後學) 공자(孔子)가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다[不恥下問<論語 公冶長>]’는 가르침을 남긴 것도 아마 이 현우공의 호학(好學) 정신에 바탕을 둔 것이 아닌가 유추(類推)된다.
그래서 자기는 그 절체절명의 순간에 마부 고릴라를 바라보게 되었다는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황당무계(荒唐無稽)하기는 마찬가질일 텐데, 고릴라 마부는 행동거지(行動擧止)에 미동(微動)도 보이지 않기에 자신도 눈 딱 감고 모르는 체하며 뚜벅뚜벅 길을 줄여나갔다는 것이다. 이 말은 듣기에 따라서는, 내가[당나귀 자신] 불경죄에 걸리면 마부도 걸려야 하고, 마부가 무죄면 나도 따라서 무죄 아니냐는, ‘걸고넘어지기 전략’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더라. 글쎄 어찌 들으면 ‘누군가 살짝 옆구리를 찔러 분칠을 한 듯’싶기도 하고 ---.’
피고수의 핍진(逼眞)한 상황 설명과 의견 개진(開陳)이 끝나자 검사 격인 승냥이 형부시랑이 재판장에게 발언권을 신청한다. 재판장의 허락이 떨어지자 형부시랑은 “신수사에 거의 당도(當到)할 무렵, 피고수가 ‘에헴, 에헴!’ 헛기침을 하고, 곤댓짓을 하며 거드름을 피웠다는 많은 증언과 영상 자료가 있는데, 이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며 와이즈먼 대리자에게 기습하듯 허를 찌른다.
와이즈먼 대리자는 기다렸다는 듯이 곁에 벗어놓았던 백팩에서 무언가 꺼내서 버튼을 누르니, 갑자기 모든 조명이 블랙아웃[blackout] 되면서 허공에서 동영상과 문자가 눈앞에 시현(示現)된다. 먼 훗날 인세(人世)에서 초음파 3D 홀로그램인가 뭔가 하는 것의 원천 기술(源泉 技術)이 이미 상용화(商用化)되었나 싶더라.
거기에서 말인즉슨 “국제적으로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인세의 모대학교 수의과대학 동물행태학 연구소 모 박사의 연구 논문에 의하면 ----.” 포인터로 지적하면서 자세한 설명을 한다. 당나귀가 ‘힝힝’하고 코를 벌룸거리며 앞발을 쳐들 때에는 대체로 성적(性的)으로 흥분했을 때이며, ‘에헴, 에헴’ 할 때에는 아닌 게 아니라 거드름을 피우거나 기관지 쪽에 가래가 찰 때에 드러나는 현상인데, 현재까지의 동물 행태 및 음성 분석 연구 성과로는 이 양자(兩者)를 명확히 변별(辨別)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와이즈먼 대리자는 모 동물종합병원에서 발급한 피고수의 코비드[CORVID-19] PCR[중합효소연쇄반응]검사 양성 판정 결과와 진단서, 입원 치료 기록을 도면과 문자로 올린다. 거기에 따르면, 피고수 당나귀는 평소 기저(基底) 질환으로 기관지염 증상이 있는데, 기온이 변화하거나 긴장하게 되면 코로나 감염 후유증으로 ‘에헴, 에헴.’ 하며 기침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과학적인(?) 논증으로 전차(前次) 논고를 논파(論破)해 나가는 와이즈먼 대리자를 지겨보고 있던 검사 격인 승냥이 시랑(侍郞)이 다소 아니꼬운 표정으로 발언권을 신청하여 허가를 득한다.
“와이즈먼 대리자께서 주장하는 대로, 동물행태학 권위자 모 교수의 말을 수용(受容)하더라도, 피고수 당나귀가 ’에헴, 에험’ 하면서 헛기침을 해댄 것은 그 교수 말마따나 그것이 물론 코로나 감염 때문에 일어나는 기침일 수도 있지만, 반면에 ‘거드름’에서 해본 ‘헛기침’이 아니라는 증거, 즉 반증(反證)도 될 수 없지 않겠소?” 하며 와이즈먼의 주장을 반박한다.
뒤이어 와이즈먼이 다시 되받아친다.
‘무죄는 죄가 없음을 증명한 것이 아니라, 유죄의 증거가 불분명하다[unclear].’ 것을 의미하고, ‘형사소송에서 유죄 입증(立證)의 책임은 전적으로 검사에게 있고, 피고수는 무죄라고 방어할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거듭 상기시키며 검찰측을 압박한다. 본건에서, 피고수가 ‘에헴, 에헴’ 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그 행태의 의미가 ‘코로나 감염의 후유증인지, 검찰 즉 주장대로 불경죄로 해석할 소지가 있는 ‘거드름’의 표현인지‘는 아직까지의 연구 성과로는 변별할 수 없다고 연구 논문에서 언급했는데, 이 경우, 연구 성과의 미진에 따른 책임을 피고수에게 전가(轉嫁)시키는 것은 언어도단(言語道斷)이라며, ‘의심스러울 때에는 피고수에게 유리하게’ 라는 법언(法諺)을 인용(引用)하여 ‘재판장의 현명한 판단에 기대를 건다는 요지로 은근히 부담을 안겨준다.
대리자 와이즈먼은 피고수 당나귀의 ‘불경죄’ 혐의에 대한 형부(刑部)의 부실한(?) 논고를 아래와 같은 논지(論旨)로 명쾌하게 논파(論破)한다. 즉 피고수가 운반한 ‘정체불명’의 짐이 ‘신수사 본존불’이라는 사실을 피고수가 알고 있었느냐, 또는 몰랐느냐 하는 문제는 불경죄의 저촉 여부에 아무 연관성이 없는데도, 불필요한 여러 가지 직접적 또는 정황적 증거를 들어 피고수가 그 사실을 알았을 것이라는 무리한 가정(假定)을 전제했다. 그리고서 피고수의 실제 행태와는 무관하게 환치(換置)한 ‘당위(當爲)’에 견강부회(牽强附會)로 불합리한 법조문을 의율(擬律)함으로써 형부(刑部)의 사법 운용이 선진 사회에 비해서 얼마나 후진적이고 퇴행적(退行的)인가 하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밝혀 사법기관인 형부(刑部)의 권위를 재기불능(再起不能)의 상태로 일패도지(一敗塗地)시켰다. 말하자면 ‘과학수사 신수제국(科學搜査 神獸帝國)’으로서의 성가(聲價) 운운하며 우쭐대던 표범의 코를 납작하게 눌러 놓은 셈이 되었다.
승냥이 시랑(侍郞)과 와이즈먼 대리자 사이에 벌어진 불꽃 튀는 논변(論辨)을 경청하던 재판장 상서령 표범은 한 시진(時辰 : 2시간) 뒤에 속개(續開)하겠다며, 서둘러 휴정(休廷)을 선언한다.
Ⅷ
미시정(未時正, 14시)에 이르자 변론공판이 재개되었다. 이번에도 와이즈먼 대리자가 먼저 발언권을 얻었다.
“역모 미수죄에 대한 논고 역시 부화(浮華)한 서사(敍事)를 삼제(芟除)하고 요체(要諦)만 들여다보면, 앞의 ‘불경죄’ 논조와 조금도 다름없는 엉터리 명제(命題)를 전제(前提)하고, 이를 합리화하기 위하여 근거 없는 정황 증거를 견강부회(牽强附會)함으로써 앞선 불경죄 혐의 입증 방법의 데칼코마니(decalcomanie)에 지나지 않아 이의 논파(論破)를 위해 긴 시간을 허비할 까닭이 없다고 사료됩니다. 따라서 만연(蔓延)한 곁가지는 과감히 척결(剔抉)하고, 핵심적인 논지(論旨)만 분석하여 역모 미수죄 주장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논거에 기반한 억지 주장인지를 밝히고자 합니다.
먼저 본존불상 이운(移運) 시에 피고수가 ‘고개를 쳐들고 헛기침을 해대며 거드름을 피워도 이를 문제 삼는 자가 없었다는 사실에서 크게 고무(鼓舞)된 듯’하다느니, ‘무지몽매(無知蒙昧)한 일부 하천배(下賤輩)들이 피고수에게 아유구용(阿諛苟容)하거나, 심지어는 ‘종기를 빨고 치질을 핥는[吮癰舐痔<莊子 列御寇篇>]’ 무리가 많아지는 것을 기화(奇貨)로 하여 기고만장(氣高萬丈)해졌을 것’이라느니, ‘천마(天馬)의 천년 통치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는 유언비어에 현혹됐을 것’이라느니, 피고수의 집 앞에 쌓인 뇌물이 역적 행위를 위한 거사 자금으로 활용할 의도가 있을 것’이라느니 하는 논고에서의 모든 추정은 피고수가 ‘역심(逆心)’을 품었을 것이라는 가정(假定)하에 이를 보강하기 위한 허구(虛構)의 도구에 지나지 않습니다. 증거 없는 자백(自白)도 증거로 채택할 수 없는 ‘증거 중심주의’, 피고수가 검찰에서 한 진술(陳述)을 법정에서 번복(飜覆)해도 그만인 ‘재판 중심주의’로 나아가는 국제적인 사법 발전 추세에 역행한다는 지탄(指彈)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이러한 지엽적인 문제를 제거하고 나면, 본질은 피고수의 소위 족숙이라는 모(某) 노마(老馬)가 피고수에게 역모(逆謀)를 교사(敎唆)하며 부추겼다는 이른바 ‘왕후장상(王侯將相)’설의 진의(眞義), 전달 의도와 경위, 전달 과정에서의 왜곡 여부, 피고수의 역모 결심(?)에 미친 정도 등을 정밀 분석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와이즈먼 대리자가 재판장에게 증1호[노새 참고수의 비밀 녹음 자료]의 공개를 요구하며, 후속(後續) 증언에 미칠 ‘영향력 시비(是非)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하여’ 당나귀 피고수를 잠시 격리, 법정 밖에서 대기시켜 달라고 요청하여 승낙을 받는다.
노새 참고수(?)(參考獸)가 제출한 녹음이 물 흐르듯 재생된다.
“천변지이(天變地異)가 나타나 하늘에선 형혹수심(熒惑守心)의 조짐이 있고, 따에서는 구년 홍수에 칠년 대한(大旱)이 갈마들며, 역병(疫病)과 괴질(怪疾)이 창궐(猖獗)하니 굶어 죽거나[餓莩] 얼어 죽은 시신[殭屍]이 들판에 가득하고, 민심은 흉흉하다. 제위(帝威)는 토붕와해(土崩瓦解)하고 흉한 도적 떼가 구름처럼 일며 만백성은 도탄에 빠졌도다. 너도 알다시피,‘세상은 쇠퇴하고 도리는 미약해져서 신하로서 그 임금을 죽이는 자가 있는가 하면, 자식으로서 그 아비를 죽이는 자도 생기는[世衰道微, 邪說暴行有作, 臣弑其君者有之 子弑其父者有之<孟子滕文公下>.] 난세(亂世)가 되었느니라. 오죽하면 초개(草芥) 같은 백성들은 ’이 해[태양]가 언제나 없어질꼬! 내가(백성) 너(夏의 暴君 桀王)와 함께 망하리라.’며 저주(咀呪)를 퍼붓는 세상이 되었겠느냐? 이런 난세를 당하여 영웅호걸로 태어나 한칼로 난신적자(亂臣賊子)와 간흉(奸凶)을 삼제(芟除)하고 세상을 평정하지 못한다면 무슨 보람이 있겠느냐? 네 비록 천출(賤出)이나 너에게는 ‘그날’이후 이미 부처님의 가피(加被)가 너를 감싸고, 천명(天命)이 너에게 도래했음을 신승(神僧)의 화신(化身)이 나타나 풍유(諷諭)로 세상에 알리지 않았느냐? 중원(中原)에서 쇠귀를 잡은[제위(帝位)를 차지한] 자들의 뿌리를 보라. 성공하면 임금이 될 뿐[成卽君] 왕후장상(王侯將相)의 씨가 따로 있다더냐. 보라, 만일 왕후장상의 종자가 따로 있다면 저 밤하늘에 명멸(明滅)하는 별 같은 제국(帝國)의 흥망사(興亡史)는 어떻게 쓰여졌겠느냐?”
이러한 천운(天運)을 외면(外面)하고 일신(一身)의 안일(安逸)만 찾는다면 오히려 그 화(禍)가 너에게 미칠 것이다. 옛말에 이르기를,‘하늘이 주는데도 받지 아니하면 도리어 그 재앙을 받을 것이다[天與不取 反受其殃. <史記 淮陰侯列傳>].’라고 하였다. 또한 한명(限命)을 다한 허울뿐인 제국(帝國)을 두고,‘(전략) 임금이 치욕을 당하면 신하 된 자는 목숨을 버릴 각오를 해야 한다[爲人臣者 君憂臣勞 君辱臣死<國語 越語>].’느니,‘하늘에는 해가 둘이 있을 수 없고, 땅에는 두 임금이 있을 수 없다[天無二日 土無二王<禮記>].’느니 하면서 머뭇거린다면, 이는 ‘끊어야 할 데에서 끊지 않으면 도리어 그 난(亂)을 당하게 된다[當斷不斷 反受其亂<史記 春申君列傳>],’는 가르침을 외면하는 것이니라.
물론‘우주에 변하지 않는 유일한 것은 '변한다'는 사실 뿐<헤라클레이토스>.’이라는 명언에는 눈 감은 채, 변화의 조짐을 보지 못하고, ‘하늘이 임금의 자리를 순(舜)에게 준 것이다[曰天與之 <孟子 萬章上>]’라느니, ‘왕권은 신으로부터 받은 것’이라느니 하면서 구체제[ancien regime]를 지키려는 저항 세력의 반발도 만만치는 않을 것이다. ‘사나운 새가 공격하려고 할 때에는 날개를 움츠리고 나직이 날며, 맹수가 다른 짐승을 노릴 때에는 귀를 눕히고 엎드리는 법이다(後略)[鷙鳥將擊卑飛斂翼 猛獸將搏 弭耳俯伏 聖人將動 必有愚色<六韜 武韜篇>].’라고 했느니라. 부디 심모원려(深謀遠慮)하되, ‘군사를 움직일 때는 질풍처럼 날쌔게 하고, --- 적을 치고 빼앗을 때는 불이 번지듯이 맹렬하게 하라[故其疾如風 --- 侵掠如火<孫子兵法 軍爭篇>]고 했다. ’쟁기에 손을 대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느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루카9,62].‘고 하느님께서 이르셨느니라. 무운(武運)을 빈다.”
말끝마다 ‘-느니라’라는 어눌(語訥)한 어투(語套)(?)와 거친 숨소리까지 족숙 모(某) 노마의 말을 복사한 듯한데, 목소리는 피고수 당나귀의 것이 틀림없다.
이때 와이즈먼 대리자가 재판장인 표범 상서령에게 당나귀 피고수의 관련 진술을 들어본 후 필요하면 노새 참고수와 대질신문(對質訊問)도 시켜보자고 청하여 허락을 득한다. 별도 대기실에 격리되어 있던 피고수가 정리(廷吏)의 손에 끌려 나온다. 재판장은 피고수에게 일점일획도 가감 없이 진술하라며 발언을 촉구한다.
“제가 ‘본존불상(本尊佛像)’이라는 짐(?)을 옮긴 뒤에, 저희 하천배(下賤輩)들 사이에서는 ‘세상에 떠도는 풍요(風謠)에 따르면’, 저 녀석이 부처님의 가피(加被)로 보위(寶位)에 오를 천운(天運)을 타고난 듯하다며 부추기는 축들도 있었고, 또 ‘노려(老驢) 영감’이니, ‘대려(大驢) 어른’이니 어쩌구 하며 께껴대는데, 과히 듣기 싫지는 않은지라 들은 둥 마는 둥하고 지내는 중이었지요. 그런데 한 번은 달구지 업계에서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어린 저를 불쌍하다며 자식처럼 보듬어주시던 어른인 노마 족숙께서 사람을 넣어 부르시는지라 가서 뵈었지요. 그때에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에 대해서 들리는 말들이 있더라. 지난번 국찰신수사본존불 이운(移運) 과정에서 금상 폐하(陛下)를 비롯하여 만조백관(滿朝百官)이 봉영(奉迎)할 때 너에게 쏠린 선망(羨望), 소위 ‘천마 천년제국설’ 풍요(風謠)가 떠돈 이후 세상이 너를 바라보는 촉망(屬望), 네 한 몸에 기우는 엄청난 민심으로 대변(代辯)되는 천심(天心) 등을 들먹이며 너에게 접근하여 아래와 같이 역심(逆心)을 부추기는 자가 있을 것이니, 목숨을 부지(扶持)하고 싶거든 경거망동(輕擧妄動)하지 말고 은인자중(隱忍自重)하라.‘고 엄중히 경고를 하셨습니다.
그분께서 시생(侍生)에게 엄계(嚴戒)하시되,
’천변지이(天變地異)가 나타나 하늘에선 형혹수심(熒惑守心)의 조짐이 있고, 따에서는 구년 홍수에 칠년 대한(大旱)이 갈마들며, 역병(疫病)과 괴질(怪疾)이 창궐(猖獗)하니 굶어 죽거나[餓莩] 얼어 죽은 시신[殭屍]이 들판에 가득하고, 민심은 흉흉하다.
(중략)
‘쟁기에 손을 대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느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루카9,62].’고 하느님께서 이르셨다. 무운(武運)을 빈다.‘
라며, 거듭 신신당부하시기를, ’혹세무민(惑世誣民)을 부추기는 자들이 반드시 나올 것이니 자중(自重)하거라. 경동(輕動)하면 거기가 바로 네가 비명횡사(非命橫死)할 데이니라.’하고 타이르셨습니다.
덧붙여 말씀하시기를, ‘왕후장상(王侯將相)이 어찌 본래 종자(種子)야 따로 있겠느냐? 난세(亂世)에는 ‘성공하면 군왕이요, 실패하면 역적[成卽君王 敗卽逆賊]’이라는 말도 있기는 하다만, 그것도 천시(天時)와 지리(地利)와 인화(人和)가 맞을 때에, 그 정당성이 인정되는 수가 더러 있기는 하느니라.
그러나 이 왕후장상의 출전(出典)이 되는 진말(秦末)의 진승.오광(陳勝.吳廣)은 때가 안 맞고 그릇이 전혀 안 되는데도, 주위의 만류(挽留)를 무릅쓰고 ‘제비나 참새 따위가 큰 기러기와 고니의 뜻을 어찌 알겠느냐[燕雀安知鴻鵠之志哉<史記 陳涉世家>]?’고 큰소리치고, 급기야 장초(張楚)를 건국하고 칭왕(稱王)했으나 쫓고 쫓기다가 비명횡사(非命橫死)하고 말았느니라.
너도 눈과 귀가 있다면 현 시국을 잘 살펴보거라.
성조(聖祖)께서 어지럽던 천하를 평정하시어 만승지국(萬乘之國)을 개국하시고, 열성조(列聖朝)를 거치면서 그 기틀 위에 문물제도(文物制度)를 확립하고 교화(敎化)에 힘쓰시니 안으로는 교목세신(喬木世臣)과 충신열사가 조정에 그득하고, 우맹(愚氓)이 어리석음에서 벗어나 도리(道理)에 나아가며, 밖으로는 덕화(德化)로 사이(四夷, *南蠻, 北狄, 東夷, 西戎 등 사방의 오랑캐)를 다스리니 ‘바람 앞의 풀’처럼[君子之德風 小人之德草 草上之風必偃<論語 顏淵篇>] 만절필동(萬折必東)으로 복속(服屬)하는도다.
이에 더하여 연연세세(年年歲歲)에 풍순우조(風順雨調)하고 시화연풍(時和年豐)하여 창름(倉廩)이 넘치니 억조창생(億兆蒼生)이 함포고복(含哺鼓腹)하고 격양가(擊壤歌)를 높이 부르는도다.
‘영웅이 시대를 만든다.’는 호사가(好事家)의 호변(好辯)도 더러 만나기는 한다마는, 이는 대체로 역리요 억설(臆說)이다. 그래서 ‘하늘에 순종하는 자는 살고, 하늘을 거스르는 자는 망하느니라[順天者存 逆天者亡<明心寶鑑>고 하지 않았느냐.
‘난신적자(亂臣賊子)들의 비참한 말로(末路)를 보라’[孔子成春秋而亂臣賊子懼<孟子滕文公下> 참조]며, 다시는 함부로 입을 놀리지 말고’ 입 지키기를 병과 같이 하라[守口如甁<朱文公>]’고 엄히 타이르셨습니다.
이런 말씀이 계시고 난 후에 얼마 안 있다가, 전에 형부(刑部)에서 잔챙이로 일하다가 비리 혐의로 쫓겨난 후 그곳의 끄나플 노릇으로 생계를 이어가던 족질(族姪) 노새 녀석이 갑자기 윗선에 청(請)질하여 한번 만나자는 기별이 와서 ‘산양네 주막집’까지 동행하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눈 적은 있지요. 여러 얘기 끝에 혹 노마 어른께서 하시는 말씀이 없더냐며, 은근히 ‘왕후장상’설을 들먹이면서 충동질을 하려고 하기에 그 어른의 가르침을 그대로 전했지요. 그랬더니 오히려 ‘물이 차오르면 배는 저절로 뜨게 마련[水到船浮<朱子語類>]’이라며, 천운(天運)을 타고 났으니, 제때가 이를 때까지 조심하고 기다리라는[韜光養晦] 뜻이라고 제멋대로 거꾸로 해석하여 입을 놀리는 바람에 이런 얘기가 시중에 유포된 것 같습니다.”
*방청석에서 숨죽여 듣고 있던 ‘달구지족’들은 한때 큰 혼란에 빠진다. ‘우리가 알고 있기로는 일자무식에 건망증까지 심해서 늘 조롱거리가 되곤 했던 녀석이, 어떻게 전에 제 목소리로 녹음된 노마어른의 장광설(長廣舌)을 오늘 이 자리에서 일점일획도 천와(舛訛)없이 복사기(複寫機)처럼 재현할 수 있단 말인가!’ 하며 믿기지 않아 하는 눈치다.
*또 한편으로는 방청석의 누군가는 고개를 약간 갸우뚱하게 흔드는 듯했다. ‘용종(龍種)이 따로 있다면 제국(帝國)의 흥망사(興亡사史)는 어떻게 쓰여졌겠느냐?’며, ‘소년이여, 대망(大望)을 품으라[Boys, be ambitious!<William Smith Clark>]’를 외쳐댔다던 노마가, 진승.오광의 횡사(橫死)를 들먹이며 ‘난신적자(亂臣賊子)의 말로(末路)를 보라!’고 했다니 ---. 와이즈먼의 개념설계[conceptual design]에 따라 피고수 당나귀의 기억이 유전자 가위로 삭제 또는 패칭[patching]되는 등 소위 ‘악마의 편집(編輯)’이 된 것인가, 아니면 가스라이팅(gas lighting)된 것인가? 하지만 이를 어떻게 입증할 수 있겠는가?
이때 검사(檢事) 격인 승냥이 시랑(侍郞)이 녹음 자료 재생으로 확인된 ‘역모 미수죄’의 유죄 증거에 한껏 의기양양(意氣揚揚)하였는데, 피고수의 진술 때문에 무언가 ‘물 탄 듯한’ 뒤틀린 감정이 일어난다. 달구지족들이 뒤에서 수군대던 소리를 귀 여겨 듣던 시랑이 무식한 피고수를 기롱(譏弄)해서 기를 꺾어 흠집을 내볼 요량으로 피고수에게 추가 신문(訊問) 한 가지 할 게 있다고 재판장에게 청하여 승낙을 받는다.
시랑(侍郞)이 피고수에게, “그대가 과연 ‘앙샹레짐(ancien regime)의 뜻이나 알고 말했느냐?”고 따져 물으니, 피고수는 기다렸다는 듯이 ‘참대 가르듯’ 경위를 밝힌다. “시랑 나으리, 노마 어른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는 뜻이지, 제가 그런 말을 ‘아네, 모르네.’ 하는 것은 지엽말절(枝葉末節)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처음으로 제기(提起)한 노마 어른의 ‘왕후장상’설에 역모를 선동할 뜻이 있었는지, 또는 없었는지와, 그리고 제가 그대로 전달했는지, 어떤 의도를 가지고 가감(加減) 변조했는지에 따라 노마 어른의 역모 선동죄 여부와 소직(小職)의 역모 방조 또는 불고지죄, 증거인멸죄, 명예훼손죄의 유무가 결정된다고 생각합니다. ‘경우(境遇)의 수’가 네 갈래로 갈리는데도 한사코 소직과 노마 어른을 ‘역모미수죄’의 공동정범으로 엮어 넣기 위하여, 형부(刑部) 프락지 노새 녀석에게 비밀녹음을 시키고 이를 유죄의 증거로 제시하는 것은 그 자체가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毒樹]에 의하여 발견된 제2차 증거[毒果]의 증거 능력은 인정할 수 없다’는 ‘독수독과(毒樹毒果) 이론’에 저촉될 소지가 매우 크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합니다.”하고 되받아친다.
시랑(侍郞)과 피고수 사이에 벌어진 뜻밖의 대거리를 지켜보면서, 어쩌면 대리자 와이즈먼이 의뢰자(依賴者)인 피고수의 역성을 들어 독수독과 이론의 논리적 전개로 상대방을 궁지에 몰아넣어야 할 법한 일인데, 오히려 시치미를 딱 떼고서, ‘달이 밝아오니 별빛이 성글어지고, 까막까치는 남으로 날아가는구나[月明星稀 烏鵲南飛<曹操 短歌行>]!’라며 ‘염화시중(拈花示衆)의 미소(微笑)’만 지을 뿐, 둘 사이의 실랑이에는 오불관언(吾不關焉)하는 것을 보면 어딘가에 ‘믿는 구석(?)’이 있지 않나 하는 의심이 들기도 한다. 방청석에서는 당나귀에게 괄목상대(刮目相對)해야겠다며 혀를 끌끌 찬다.
녹음의 재생으로 잠시나마 승기(勝機)를 잡았던 승냥이 시랑은 피고수 당나귀가 진술한 전후 부분은 역모 미수죄를 빠져나가기 위해서 ‘덧붙인 것 같다’고 반박하는 반면, 와이즈먼 대리자는 노새* 참고수가 처음에는 있던 앞부분과 뒷부분을 무단 삭제한 듯하다고 슬쩍 지적만 하고 지나간다.
*‘사마귀가 매미를 잡아먹으려고 엿보고 있고, 그 사마귀를 먹으려고 참새가 노리고 있다[螳瑯捕蟬黃雀在後<說苑 正諫>]’ 라는 말이 있다. ‘사마귀가 앞에 있는 매미를 잡으려 하나 참새가 뒤에 있음을 모르고, 참새가 앞에 있는 사마귀를 잡으려 하나 총 가진 자가 뒤에 있음을 알지 못하네[螳螂捕蟬于前 不知黃雀 在其後 黃雀 捕螳螂于前 不知挾彈者 在其後<韓詩外傳>]. 눈앞의 이익에 눈이 어두워 뒤에 닥치는 위험을 깨닫지 못한다는 뜻이다.
방청석에 패거리(?)로 나와 있던 달구지족, 먼 훗날 인간 세상의 말로 하면 ‘전국 운수노조원들’ 격인 말, 당나귀, 노새 따위는 뜨악한 느낌을 받는다. ‘와이즈먼 역시 저 형부(刑部) 것들하고 ‘짜고 치는 고스톱판’을 벌이는 게 아닌가 의심하는 축이 있는가 하면, ‘가장 높이 나는 새가 가장 멀리 본다[갈매기의 꿈<리처드 버크>].’는 말처럼 두고 보자는 축으로 갈렸던가 보더라.
검사와 대리자 간에 이견이 좀처럼 좁혀질 태세가 보이지 않자, 재판장이 직접 나선다. 재판장은 피고수 당나귀를 별도 대기실에 격리시켜 놓으라고 정리(廷吏)에게 지시한 후, 노새 참고수에게 묻는다. “그대는 피고수 당나귀를 언제, 어디에서 만나서 어디에서 헤어졌으며, 헤어진 이유는 무엇인가.” 답하라고 명령한다. 잠시 머뭇거리던 노새 참고수가 주위의 눈치를 보며, 피고수 당나귀를 아무날 사시초[오전 9시]에 당나귀네 집 앞 삼거리에서 만나서 ‘물레방아’ 터쯤 갔을 때 마침 소나기가 한줄기 하는지라 당나귀와 헤어져서 제가 사는 동네인 ‘참새골[雀洞]’로 갔습니다.” 라고 답변한다.
이번에는 피고수 당나귀를 대기실에서 불러내어 노새 참고수에게 던진 것과 똑같은 질문을 한다. 피고수 당나귀도 역시 모일 모시에 자기 집 앞 삼거리에서 노새를 만나서 걸으면서 얘기를 하다가 ‘물레방아’ 터를 지나 일마장쯤 더 가는 ‘산양네 주막집’에 이르렀을 무렵에, 노새가 배가 아프다며 ‘의낭무저(衣囊無底) 한의원’에 들러서 꽃사슴 원장한테 진맥(診脈)이라도 받아 보아야겠다.’며 오던 길로 되돌아갔다고 진술한다.
상서령 재판장이 잠시 눈을 지그시 감고 무언가를 생각하는 것 같은데, ‘삼거리에서 물레방아터’까지, 그리고 ‘삼거리에서 산양네 주막’까지 보행으로 걸리는 시간, 그리고 녹음 재생과 진술 시간의 길이를 가늠해 보는 듯싶더라. 고개를 좌우로 흔든다. 재생된 녹음의 길이와 피고수의 얘기의 시간을 견줘보면, 노새의 말에도, 당나귀 피고수의 말에도 일리는 있어 보이는데, 누구의 말이 옳고 그른지 도무지 가늠이 가지 않는 눈치다.
목격자나 CCTV가 없어서 두 진술 사이에 진위(眞僞)를 가릴 수도 없는 형편이라, 궁리 끝에 상서령이 관상감(觀象監) 영사(領事) *청개구리에게 당시의 기상 자료를 조회하니, 관련 기록상 그날의 일기는 흐리나, 국지적(局地的)인 지리정보가 상세하지 않아서 모월 모시에 모처에 소나기가 내렸는지 여부는 확인할 수 없다는 조회 결과가 나온다.
*청개구리는 포유동물(哺乳動物)이 아니므로 국적(國籍)이 없어서 공무 담임권은 없으나, 대기(大氣) 중 습도 등 기상(氣象)에 대한 특출한 스펙[Specification] 때문에 예외로 특채(特採)된 영주권자인가 보더라.
재판장이 다시 잠시 휴정을 선언하고, 좌배심판사 스라소니(갑) 좌복야(左僕射)와 우배심판사 스라소니(을) 우복야와 함께, 노새 참고수의 녹음 자료와 당나귀 피고수의 진술 가운데 어느 것을 선택해야 할 것인가를 두고 숙의(熟議)했으나 설왕설래(說往說來)할 뿐, ‘솔로몬의 지혜’ 같은 묘안(妙案)이 나오지 않아서 전전긍긍(戰戰兢兢)할 때였다.
*아마 이쯤에서 와이즈먼은 ‘아이큐 60짜리 셋이 모인 ‘집단 지성[集團知性]이 그렇지 뭘!’ 하며 속으로 조롱했을지도 모른다.
와이즈먼이 재판장에게 발언 기회를 달라고 청하니, ‘구원 투수’를 만난 듯 얼른 허락한다. 와이즈먼이 아까 그 신기(?)(神器)에 다시 버튼을 누르니, 노새와 당나귀 피고수가 대화를 나누며 물레방아터를 지나 ‘산양네 주막’이라고 쓰인 지등이 대문에 내걸린 곳에 이르자 노새가 갑자기 배가 아프다며 되돌아서는 장면까지 3D 동영상으로 재현된다. 드론의 힘을 빌린 것인지, 첨단 광학기술로 줌인[zoom in]해서 촬영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노새가 거짓말한 것은 판명(判明)난 셈이다.
*그래서 전해 오는 옛말에 ‘인간의 사사로운 말이라도 하늘의 들음은 우레와 같고, 어두운 방에서 마음을 속일지라도 신의 눈은 번개와 같다[玄帝垂訓 人間私語 天聽若雷 暗室欺心 神目如電<明心寶鑑 天命篇>]라고 하지 않았던가. 남을 속인다는 것은 결국 자기를 속이는 것이라는 것을 모르는 노새의 맹목(盲目)이 딱하기는 하구나.
재판장이 노새에게 왜 거짓말을 했느냐고 캐묻자, 노새는 잘못을 자인(自認)은 하면서도, 자신이 녹음한 증1호의 재생 시간이 당나귀 피고수의 진술 시간보다 상대적으로 너무 짧아서 근거리인 물레방아터에서 헤어졌다고 하는 게 유리할 듯하여 순간적으로 저지른 과실(過失)일 뿐, 다른 저의(底意)는 없다고 극구 변명한다.
검찰 또한 노새 참고수와 당나귀 피고수가 동행 후 헤어진 거리의 차이가 증1호가 앞뒤 부분을 일부러 삭제, 편집된 위조 증거물이냐, 아니면 피고수의 진술이 역모 미수죄를 벗어나기 위해서 덧붙인 위증이냐에 대한 판단 기준이 될 수는 없는 것이라고 강변(强辯)한다. 무언가 시원한 해결의 실마리를 잡은 듯했던 재판부는 또다시 미궁(迷宮)에 빠지고 만다.
와이즈먼 대리자가 이 교착상태를 돌파하기 위해서는 증거물 정밀 분석이 필요하다며, 증1호 노새 참고수의 녹음 자료를 건네주기를 청하니, 상서령은 ‘신의 한 수’가 나오나 보다 해서 얼른 허락한다.
이때 와이즈먼이 백팩에서 꺼낸 손바닥만 한 휴대용 리더(Reader) 위에 노새 참고수의 아이폰을 얹어놓으니 당초 재생됐던 ‘천변지이 — 무운을 빈다’까지는 청색으로, 그리고 삭제된 앞뒤 부분은 적색으로 파형(波形)을 그리며 재생되고, 자막에도 청색과 적색 글자가 선연히 재생된다. 이로써 ‘증1’은 전후가 삭제 편집된 ‘가짜’임이 판명된 것이다.
아주 먼 훗날, 21C 정보통신시대에도 비밀번호를 모르면 ‘판도라의 상자’도 고철(古鐵) 덩어리에 지나지 않는다던데, 와이즈먼에게는 디지털 포렌식[Digital Forensic] 활용쯤이야 아주 ‘식은 죽 먹기’인가 보더라. *이때 와이즈먼이 실제로 생리적 욕구 때문인지, 의도된 포석(布石) 때문인지는 알 수 없으나 화장실에 다녀온다며 자리를 비운 시간에도 계속해서 영상이 돌아가는데 ---.
형부(刑部) 끄나풀 노새가 형부 말단들과 접선하는 현장 등이 약여하게 재생된다, 반대급부(反對給付)에 대한 흥정, 기획 등 전 과정은 물론이고, 불리(不利)한 녹음 부분을 삭제, 편집하는 장면이 타임라인[timeline]으로 정리되어 나오고, 심지어 영국 그리니치 천문대에서 제공된 당시의 극미세(極微細) 지점별 날씨 정보까지 스쳐 지나가더라고 하더라. 그런데도 승냥이 시랑은 와이즈먼 대리인이 이 자료를 근거로 어떤 주장도 하지 않을뿐더러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일어난 일이라 불법 도청, 감청 등을 운위(云謂)하며 ‘통신비밀 보호법’ 위반이라고 물고 늘어질 명분조차 내세우지 못하게 되었나 보더라.
Ⅸ
이어서 남아 있는 알선수재죄(斡旋受財罪), ‘변호사법 위반’에 대해서도 변론과 심리를 할 차례가 되었다.
검사역 승냥이 시랑(侍郞)이 이미 포도청 사령(使令)을 통해 명단과 내역을 압수 수색했으며, 뇌물에 대해서는 보전(保全) 신청을 했으므로 아무리 ‘통발에 미꾸라지 빠지듯’ 빠져나가는 지혜로운 자[wise man]라도 이번에만은 ‘어림도 없지.’ 하는 마지막 자존심으로 달려든다.승냥이 시랑(侍郞)이 피고수 당나귀를 신문하겠다며, 재판장 상서령의 허락을 받아낸다.
“피고수는 신수사 본존불 이운 행사를 거치면서 오래된 법도와 엄격한 의궤(儀軌)에 따라 황제 폐하와 만조백관이 출영(出迎)하여 이운(移運) 중인 본존(本尊)께 배알(拜謁)하는 모습을 보고, 언감생심 저에게 예를 표한 줄로 착각하여 거드름을 피우는가 하면, 다람쥐, 청설모 등 미물(微物) 나부랭이들이 지저귀는 요설(饒舌)과 땡추놈이 퍼뜨렸다는 허무맹랑한 ‘천마(天馬) 천년 제국’설에 현혹되어 제 주제를 모르고 역심(逆心)을 품는 등 허황한 백일몽을 꿔왔습니다. 이러한 가담항설(街談巷說)에 휩쓸려 천한 것들이 혹여나 천지개벽이 일어나서 ‘신세 고치는’ 날이 오지 않을까 해서 보험을 드는 심정으로 뇌물을 가지고 밀려드는 무리가 피고수네 집 앞에 문전성시가 된 것입니다.”
“내 피고수에게 묻겠다. 압수 수색된 물목(物目)과 보전 신청된 재물은 과부족 없이 완전히 일치되었거니와, 이 이외에 숨겨둔 또 다른 뇌물이나 장부는 없는가?”라고 다그치니, “어느 안전(案前)이라고 감히 기망(欺罔)하오리까. 그런 일은 기필코 없사옵니다.”라며 극구 부인한다. 이때 갑자기 곁에 있던 사령(使令)을 시켜 ‘거짓말 탐지기’를 당나귀 피고수에게 채우고 다시 한번 다그친다. 그러나 맥박, 호흡, 땀 등을 표시하는 그래프에는 조금의 변화도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누군가는 알고 있을 것이다. 너구리를 전담 집사로 들여앉히기 전에 이미 접수된 엄청난 뇌물이 일괄 매각되고, 그 대금이 ‘보노보로펌’의 계좌에 흘러 들어갔다는 사실을. 그리고 피고수 당나귀가 괴발개발 끼적거렸던 해진 치부책(置簿冊)을, 그때는 어쩐지 ‘마음이 켕겨서’ 아궁이 불에 집어넣어서 소각시키고 경각[15분] 후에 ‘우연히, 아주 우연히’ 형부(刑部)의 압수수색팀이 들이닥쳐 무언가 찾으려고 들들 뒤지던 기억을. 그리고 피고수의 기억이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서 티 한 점 없이 말끔히 지워져 마침내 거짓말탐지기까지 우롱(愚弄)한 불가사의(不可思議)를.
낭패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던 시랑이 이번에는 뇌물 물목(物目)이 적힌 장부를 뒤적이며, 피고수에게 “여기에 적힌 ‘희망 직첩(職牒)’은 무엇이냐?”고 묻는다. 말하자면, 원하는 벼슬자리를 약속하고 받은 부당한 재물이 아니냐는 뜻이다. 피고수 당나귀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송구스러운 말씀이오나, 지금 ‘직’ 무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직첩(職牒)이라는 말 자체를 전혀 못 알아듣는 눈치다.
이때 와이즈먼 대리인이 나서서, 피고수는 ‘고무래를 보고도 그것이 정자(丁字)인 줄조차 모르는데 [目不識丁], 어떻게 직첩이라는 말을 알아듣겠느냐고 반박하며, 그것은 아전 퇴물 너구리 집사가 작성한 장부라는 것을 알려준다. 이렇게 해서 승냥이 시랑은 검찰 인지(認知)사건으로 너구리를 뇌물수수 혐의로 옭아매는 부산물을 얻기는 했지만, 피고수를 잡는 데는 또 한 번 헛다리를 짚게 되었다더라.
*방청석 뒤쪽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던 너구리는 수령한 뇌물이 이미 형부(刑部)에 보전처리 되고, 적발이 한 장부(?)가 저쪽에 넘어갔어도 사전에 당나귀가 거둬들인 뇌물의 매각대금이 당나귀의 계좌에 들어가 있으니 잠시 입만 다물고 있으면 당나귀 말마따나 ‘우리는 경제공동체’라고 했으니 반 몫은 내 것이라는 생각에 저으기 안도(安堵)한다. 글쎄 그것은 너구리의 ‘희망 사항’이 아닐까?
이로써 당나귀 피고수의 불경죄, 역모 미수죄, 알선수재죄 및 변호사법 위반죄에 대한 변론공판이 모두 끝나자 상서령 표범 재판장은 일주일 뒤에 선공공판(宣告公判)이 있을 것임을 예고하고 폐정을 선언을 한다.
Ⅹ
일주일 뒤에 선고공판이 개정(開廷)됐다.
재판장 표범 상서령은 지난 공판기일에서부터 결심공판에 이르기까지 공판 전과정을 간략히 되돌아 본다.
“모두 발언(冒頭發言)을 시작하기에 앞서 한마디 첨언(添言)코자 합니다. 누천년간(累千年間) 우리 신수제국의 전통과 법정(法廷)의 관행을 묵수(墨守)하여 본관(本官)도 정내(廷內) 발언시 경어(敬語) 사용을 피하고 듣기에 따라서는 다소 위압적인 언사(言辭)를 써왔으나, 만수평등(?)(萬獸平等) 사상과 수권(獸權) 존중이라는 선진 국제 동물사회의 추세(趨勢)에 부응(副應)하고, 특히 멀리 이역(異域) 땅에서 당나귀 피고수(被告獸)의 수권 보호를 위하여 무료변론에 임하시는 보노보의 와이즈먼 법정 대리수(代理獸)의 고귀한 헌신(獻身)을 배려하여 경어(敬語) 사용은 물론이고, 가급적 선진 법정의 매뉴얼과 에티켓을 따르고자 하니 본 공판 관계자와 방청수 제위께서는 이 점을 양지(諒知)해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 성조(聖祖)께서 천명(天命)을 받으샤 중원(中原)에서 축록(逐鹿)하던 사나운 도적의 무리를 평정하고 마침내 일통천하(一統天下)하시어 신수제국을 여시고, 열성조(列聖朝)를 거치면서 안으로는 문물제도를 마련하여 제국으로서의 기틀을 닦아 반석(盤石) 위에 세우고, 까막까치나 다름없던 어린 백성을 교화(敎化)하여 선진 문명사회로 나아가게 하는 한편, 밖으로는 사이(四夷)를 정벌하고 강역(疆域)을 넓히는 평융척지(平戎拓地)로 폐하의 위의(威儀)와 국격(國格)을 만방(萬邦)에 떨치고 덕화(德化)로 창맹(蒼氓)을 복속(服屬)시키니, ‘온 하늘 아래 왕의 영토가 아님이 없으며, 온 땅에 왕의 신하가 아님이 없다[普天之下 莫非王土 率土之濱 莫非王臣<詩經 小雅>]라는 옛 말씀이 이 따에 이루어졌습니다.
이러구러 누천년간(累千年間) 풍순우조(風順雨調)하고 시화연풍(時和年豐)하니 ‘해가 뜨면 일하고 해가 지면 쉬며, 우물 파서 마시고 밭을 갈아 먹으니 임금 덕이 내게 뭣이 있으랴[日出而作 日入而息 鑿井而飮 耕田而食 帝力何有於我<<十八史略 帝堯篇>]라며 고복격양(鼓腹擊壤)하던 태평성대(太平聖代)를 구가(歐歌)하게 되었더라고 합니다.
(中略)
예부터 전해오는 말에 호사다마(好事多魔)라 했던가. 오랜 세월 바람에 갈리고 비에 씻겨 [風磨雨洗] 위에서는 비가 새어 서까래가 썩고, 아래에서는 습기가 차오르고[上漏下濕 參照] 단청(丹靑)이 퇴색(褪色)하는 등 퇴락(頹落)이 날로 우심(尤甚)해지는 국찰 신수사를 이번에 다시 중창(重刱)하고, 본존불(本尊佛) 개금불사(改金佛事)를 마무리하여 낙성식(落成式) 겸 가원국사(嘉猿國師)를 신임 주지(住持)로 모시는 진산식(晉山式)을 성대하게 준비하던 중 차마 입에 올릴 수도 없는 참람(僭濫)한 변괴(變怪)가 일어나서 위로는 폐하께 성려(聖慮)를 끼치고, 아래로는 만백성의 근심을 자아냈습니다.
여기 계신 본 공판 관계자를 비롯하여 방청수(傍聽獸) 제위(諸位)께서도 익히 아시는 바와 같이 본존불 개금불사 후 이운(移運) 과정에 이어 누항(陋巷)에서는 혹세무민(惑世誣民)하는 유언비어(流言蜚語)가 난무하여 신분 질서가 해이(解弛)해지고 국가 기강과 미풍양속(美風良俗)이 토붕와해(土崩瓦解)의 지경에 이른지라, 이를 바로잡아 폐하의 위엄과 국법의 엄정함을 만천하에 밝히어 다시는 여사(如斯)한 참담(慘憺)한 괴변이 재발하지 않도록 엄히 다스려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국난(國難)의 위기를 맞이하게 된 것은 소직(小職)을 비롯한 대소 신료(臣僚)가 종묘사직(宗廟社稷)을 보위하고 폐하를 보필하는 데 신도(臣道)로 신명(身命)을 바치지 못한 소치라 여겨 머리를 조아려 사죄(謝罪)하며, 아래에서 피고수에 대한 죄상(罪狀)을 극명히 밝혀 추호라도 범법 사실이 있으면 엄정(嚴正)히 치죄(治罪)코자 합니다.
우선 피고수의 불경죄에 대해서 먼저 살펴보고자 합니다. 시랑(侍郞) 검찰측 논고를 요약해 보면, 본존불 이운시, 출영(出迎) 나갔던 황제 폐하를 비롯한 고관대작들이 읍(揖)하며 머리를 조아리자, 당나귀 피고수는 달구지에 실린 본존불에게 표하는 경의(敬意)인 줄 번연히 알면서도 무엄하게 자신에게 한 것인 양 우쭐대고, 요두전목(搖頭轉目)하며 심지어는 ’에헴, 에헴‘하고 거드름까지 피워 성하(聖下)께 불경죄(不敬罪)를 범했을 뿐 아니라 더 나아가서 ‘국가모독죄’까지 범했을 소지가 있다는 주장으로 판단됩니다.
이에 대한 논거로 검찰측에서는 피고수가 달구지에 실린 짐이 본존불이라는 사실을 익히 알고서도 고의(故意)로 모르는 체했을 것이라는 것을 규명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정황증거를 들었습니다.
이에 반하여 피고수측에서는 검찰측에서 제시한 정황증거가 모두 거증력(擧證力)이 없다는 것을 과학적인(?)으로 입증했을 뿐만 아니라, 설사 피고수측에서 달구지에 실린 짐이 본존불이라는 것을 알았다 하더라도, 그것이 피고수가 불경죄를 범했으리라는 개연성(蓋然性)과는 무관(無關)하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언명했습니다.
또한 검찰측에서는 피고수가 머리를 흔들며 곤댓짓을 하는 등 불경한 행동을 했다고 여러 증언들을 들어 주장했습니다.
이에 대해서 피고수측에서는 체고(體高)와 체중(體重) 등 물리적인 힘에서 상대적으로 압도하는 고릴라 마부의 손에 고삐가 움켜쥔 왜소한 피고수가 함부로 고개를 흔들기는 어렵다고 보는 것이 상식이라며 곤댓짓 자체를 있을 수 없는 일로 부인했습니다. 그리고 피고수가 ‘에헴, 에헴’ 헛기침을 해대며 거드름을 피웠다는 검찰측 주장에 대해서 피고수측에서는 동물행태학 전공 교수의 논거를 들어, 당나귀가 ‘에헴, 에헴’하는 소리를 낼 때에는 성적으로 흥분했을 때와 ‘거드름’을 피울 때의 두 가지 경우라고 적시(摘示)하면서, 현재까지의 연구 성과로는 그 둘 사이를 변별(辨別)할 수 없다는 소론(所論)을 내세우고, ‘의심스러울 때에는 피고(수)에게 유리하게’ 해석하라는 법언(法諺)까지 인용(引用)하면서 검찰측의 일방적인 주장을 논파했습니다.
이상으로 피고수의 불경죄에 관련된 논고와 변론을 비교, 판단해 볼 때, 검찰측 주장은 ‘피고수가 불경죄를 범했으리라는 예단(豫斷)을 전제한 후에 이를 합리화하기 위하여 잡다한 정황증거를 제시했으나, 본관이 보기에는 제시된 정황증거와 불경죄 사이에 상관관계가 존재한다고 보기 어렵고, 피고수측 주장 말마따나 달구지에 실린 짐이 본존불이라는 것을 알았다고 하더라도 그 사실이 불경죄 구성과는 별무상관일 듯합니다. 이에 피고수측 반론에 대해서 검찰에서 재반론할 용의가 있으면 지금 나와서 발언해 주기 바랍니다.”
승냥이 시랑은 한마디 변박(辨駁)도 못 한 채 발언 기회를 포기한다.
“다음은 피고수의 두 번째 혐의인 역모 미수죄 관련 사항을 살펴보겠습니다. 이에 대한 논고의 형식도 앞선 불경죄 논고 형식과 똑같은 전철(前轍)을 밟고 있습니다. 즉 검찰은 피고수의 역모죄를 전제하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하여 이운 과정에서 황제 폐하를 비롯한 고위 공직자들(?)이 본존불에게 보여준 경의(敬意)가 당나귀 피고수 자신에 대한 것으로 자의적(恣意的)으로 해석하여 스스로 고무되고, 근거 없이 떠도는 ‘천마 천년 제국설’에 현혹되어 헛된 꿈을 꾸던 차에 역모미수 공동정범 혐의를 받고 있는 소위 족숙 노마의 ‘왕후장상’설에서 자신이 ‘제위(帝位)에 오를 수 있다.’는 헛된 확신을 가지고 역모에 착수하려다가 미수에 그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 피고수측에서는 불경죄가 이미 견강부회된 근거 없는 정황증거로 판명되었고, 세상에 떠도는 혹세무민하는 유언비어를 방증(傍證)으로 끌어들인 것은 넌센스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백보 양보하여 거증력이 전혀 없는 방증들은 차치(且置)하더라도, 역모 미수죄의 ‘빼박증거’라는 ‘왕후장상’설이 아이폰의 디지털포렌식을 통해서 조작, 편집된 가짜 증거라는 사실이 밝혀졌으므로 ‘역모 미수죄’는 완전한 허구라고 주장하며, 오히려 증1호를 제출한 참고자 노새는 증거 조작에 의한 공무방해죄로 고발하는 한편, 피고수에 대한 모해(謀害)에 따른 손해배상청구까지 하겠다는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검찰에서 이 역모 미수죄 혐의에 대한 피고수측 변론에 재반박하여 혐의를 추가로 입증할 용의가 있으면 나와서 주장을 펼쳐주기 바랍니다.”
승냥이 시랑은 와이즈먼 녀석이 꺼내 든 장난감 같은 기계에 증1호가 노새 놈의 조작에 의한 가짜 증거라는 사실이 탄로나서 망신만 당한 터라, 피고수에 대한 유죄 추가 입증이나 증거력 보강은커녕 ‘어떻게 하면 내 자리를 보전할까?’에만 신경이 쓰이는지라 얼굴이 홍당무가 되어 손을 내졌는다.
“마지막 피고수의 변호사법 위반, 알선수재죄에 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검찰측은 논고에서, 전술(前述)된 피고수의 불경죄 논거(論據)와 세상에 훤전(喧傳)된 피고수의 족숙이라는 소위 노마가 발설(發說)했다는 ‘왕후장상’설, 그리고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소위 ‘천마 천년 제국설’ 등에 현혹된 어리석은 백성들이 혹시나 해서 향후 역모가 성공할 경우에 대비, 직첩(職牒)을 예약하는 조건으로 뇌물을 바쳤고, 피고수는 이를 기화(奇貨)로 ‘자리’를 보장하는 조건으로 스스럼없이 재물을 갈취(喝取)했다고 했습니다.
이에 대해서 피고수측에서는, 소위 피고수에 대한 불경죄, 왕후장상설 등이 모두 근거 없는 억지 주장으로 판명된 마당에, 어리석은 백성이 유언비어나 속칭 ‘지라시[散らし]’에 현혹되어 뇌물을 바치려 하는 심리까지 막을 수는 없는 일이고 보면, ‘시체가 있는 곳에 독수들도 모여든다[루카17,37].’는 성경 말씀처럼 뇌물을 바치려고 몰려드는 것이 피고수의 책임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했습니다. 덧붙여 검찰측에서 뇌물 출납기록인 치부책(置簿冊)에 ‘희망 직첩난(希望 職牒欄)’이 있다는 것은 더 이상 변명할 길이 없는 수뢰(受賂)의 증거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피고수는 나중에라도 돌려보낼 주소와 전화번호(?)를 적어놓는 게 좋겠다고 집사 너구리에게 조언했을지는 몰라도 일자무식(一字無識)인 주제에 ‘희망 직첩난’ 운위(云謂)할 계제는 안 되므로, 오해의 소지가 있다면 피고수의 선의(善意)를 집사 너구리가 자의(恣意)로 악용하여 뇌물을 더 거두어 드리려는 술책을 썼을 가능성도 있으므로 너구리 집사를 문책해야 할 것이라는 요지로 변론을 했습니다. 이상의 논고 및 변론 요지에 대해서 보충이나 수정할 부분이 있으면 기탄없이 발언해 달라.”고 했으나 양측 모두 이의가 없다며 추가 발언 기회를 반납한다. 이상으로 심리(審理)를 모두 마치고 잠시 휴정(休廷)에 들어간다. 그동안 주심(主審) 표범 상서령이 좌우배석 판사들과 협의를 마친 후 다시 속개하여 선고공판에 들어간다.
“다음은 판결 주문을 낭독하겠습니다. 당나귀 피고수에 대한 불경죄, 역모미수죄, 알선수재죄 모두에 대하여 검찰측 주장은 이유 없으므로 무죄를 선언한다.”
전차 수회(數回)에 걸친 논고 및 변론, 결심공판 과정에서 상세히 논급된 바 있어 재론의 여지가 없으나 간략히 판결 요지를 아래에 언급하겠습니다.
피고수에 대한 불경죄 부분에 대하여는 검찰측에서 세세한 정황증거를 들어 혐의 입증을 위해 노력했으나, 피고 측 주장대로 어느 것 하나도 범죄 혐의와의 연관성을 규명하는 데 실패했다고 봅니다. 그리고 직접 증거로 제시한 피고수의 이상한 행동, 즉 ‘에헴, 에험’하며 거드름을 피웠으므로 불경죄에 저촉된다고 주장하였으나, 피고수측에서 동물행태학 전문가의 논문을 인용하여 ‘거드름’과 ‘코로나19’ 감염에 따른 기관지 염증으로 촉발되는 ‘기침’으로 양가적(兩價的, ambivalent) 판단이 가능하고, 이런 경우 ‘피고수에게 유리한 쪽으로 해석’하는 게 맞다는 피고수측의 주장에 검찰측이 이를 논파할 대응 논리를 내세우지 못함으로써 검찰측 주장의 정당성을 입증하지 못했습니다.
역모 미수죄는 검찰측에서 정황증거로 제시한 모든 주장에 일견 타당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핵심(核心) 증거로 제시한 소위 ‘왕후장상’설이, 당사자간 비밀 녹음이므로 ‘통신비밀 보호법’에 저촉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조작된 녹음에 기반을 둔 것이므로, 굳이 독과독수론(毒樹毒果理論, Fruit of the poisonous tree)을 인용(引用)하지 않더라도 증거력을 상실하게 되는 것입니다.
알선수재죄에 관련해서도 검찰측에서는 장황한 정황증거를 들어 알선수재죄의 심증을 굳히고자 노력했으나, 검찰측에서 자인(自認)했듯이 수뢰한 현물 재고(在庫)와 압수된 장부상 재고가 일치함으로써 달리 숨긴 재물이 없고, 피고수가 일자무식이라 ‘희망 직첩난’을 두도록 종용(慫慂)했으리라는 검찰측 주장은 무리한 측면이 있으므로 수용하기 힘들다 할 것입니다.
따라서 피고수에게 씌워졌던 피의사실 모두가 무죄임이 밝혀졌습니다. 피고수는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를 할 수 있음을 알립니다. 소외(訴外) 참고수 노새의 증거조작에 의한 공무집행방해죄, 너구리의 사기죄는 검찰측에서 별도로 다루게 될 것이므로 본 법정에서는 이상으로 당나귀 피고수에 대한 불경죄, 역모미수죄, 알선수재죄의 모든 공판을 본 선고공판으로 마무리합니다.” 하고 폐정(閉廷)을 선언했다.
법정을 나가려는 와이즈먼 변호수에게 ‘대기실에서 차나 한 잔 하자.’며 표범 상서령의 전갈(傳喝)이 왔다. 상서령은 “본 사건 공판을 마치면서, 사적(私的)으로 먼 이국땅 콩고에서 오로지 국제 수권(獸權) 보호와 생태 환경보존을 위하야 궁벽한 우리 신수제국까지 불원천리(不遠千里)하고 내방하여 무료변론(無料辯論)까지 해주신 보노보국제법률회사 와이즈먼 변호수님께 본 법정을 대표하여 거듭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하며 치하한다. 이에 와이즈먼 변호수는 ‘비영리 공익법인 보노보법률회사로서는 설립 목적에 부응(副應)하기 위해서 필요하다면 땅의 극변까지도 찾아가서 무료변론을 하는 것이 당연한 의무’라며 겸사(謙辭)한다.
상서령이 와이즈먼 변호수께서 허락만 해주신다면, 국제관계 담당 ‘국가변호수’로 제수(除授)토록 폐하께 주청(奏請)해 보겠다고 제안하자, 와이즈먼 변호수는, ‘불편부당(不偏不黨)’이라는 사시(社是) 때문에 과람(過濫)한 호의를 받아들일 수 없음을 밝히고, 거듭 사의(謝意)를 표한다. 이에 무척 아쉬운 마음을 감추지 못하면서, 상서령은 ‘우리나라의 영재(英材)를 가려 귀사(貴社)에 위탁 교육(委託 敎育)을 시킬 수 없겠느냐.’고 타진(打診)한다. 이 제안에 대해서도 와이즈먼은 ‘비인부전[*非人不傳 不才勝德<王羲之>]이라며 난색(難色)을 표하니, 식자(識者) 계급에 속한 그도 ’아-, 사람이라야 가르쳐 줄 수 있다는 말인가 보구나!’ 하며 제 나름대로 해석하면서 애석해한다.
*‘인격에 문제 있는 자에게는 비장(秘藏)의 기술을 전수하지 말며, 재주나 지식이 덕을 앞서게 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와이즈먼이 속으로 ‘지능[IQ] 차이가 너무 커서’라는 생각을 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Ⅺ
티타임을 마치고 와이즈먼이 빠져나가려는데 신수통신 판다 기자가 와이즈먼의 소맷귀를 잡아끌며 기자실에 가서 대기 중인 언론과 기자회견을 하잔다.
기자회견은 참여한 내외신 기자들의 질문을 미리 취합하여 신수통신 판다 기자가 대표로 질문을 하기로 되어 있었던가 보더라.
첫 번째 질문의 요지는, 어리석고 건망증이 심해서 얼간이라고 조롱을 당하던 당나귀가 어떻게 상당한 시차(時差, time lag)를 극복하고, 녹음 내용을 오차(誤差) 하나 차이 없이 육성(肉聲)으로 완벽하게 반복할 수 있느냐는 의문이었다. 이것은 강력한 학습효과 때문인가? 아니면 뇌도 복사, 디자인, 편집이 가능한 것인가? 그게 가능하다면, 본디의 피고수 당나귀와 편집(編輯)된 당나귀의 정체성(正體性, Identity) 혼란은 어떻게 해석되어야 하는가?
이 질문에 대해서 와이즈먼은 ‘영업 비밀’이라며 ‘NCND’로 일관하고, 그저 희미한 미소만 보일 뿐이다. ‘학습효과와 두뇌 편집 가운데 어느 한쪽이 아닌가?’라는 거듭되는 질문에, 와이즈먼은 이를테면 고단위 뇌 기능 항진제(亢進劑)를 처방하거나, 특수 연료를 주입(注入)하듯 물리적인 방법을 통해서 뇌 기능을 고도로 활성화시키면 가능한 영역이 아닐까요?’라며, 뇌의 복사, 편집 문제에 대해서는 슬쩍 가리면서[shield] 자기로서는 ‘Untouchable’이라며 매끄럽게 빠져나간다.
두 번째 질문이 이어진다. 본 사건 공판 전체 과정에서 와이즈먼 변호수께서는 단 두 번만 무료변론이라는 말을 했는데, 재판장을 비롯한 관계자들이 이 말을 반복적으로 따라서 하는 것을 보면 이 말이 ‘주변에 있는 전자기기(電子器機)를 일시에 파괴하는 EMP(Electro- Magnetic Pulse)탄(彈)’처럼 피암시자의 어떤 사고 영역을 폭파 또는 일시적으로 무력화시키 는 강력한 염력(念力)을 가진 암시 언어가 아닌가 하는 의심이 간다. 이미 재판은 피고수측 승소로 끝났으니, ‘비법에 대해서 공개할 용의는 없는가?’라며 유도성 질문을 던진다. 이에 와이즈먼은 질문자의 ‘고도의 추리력’에 경의(敬意)를 표한다며 또다시 희미한 미소만 지을 뿐이다.
*이 대목에서 기획자 와이즈먼 이외에는, 즉 검찰도, 재판장도 ‘무료변론’이라는 암시 언어에 휘말려서 너구리 집사가 취임(?)(就任)하기 전에 이미 당나귀 피고수가 받아들였던 산더미 같은 뇌물에 대해서는 파고들 수 없도록 추리력에 장애가 발생했는지 진실을 아는 자는 없을 것이다.
세 번째 질문의 요지는 이렇다. ‘타임머신의 설계가 향후 고도화되면 과거 및 미래로 나아가는 것이 완전히 자유로워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질문이다.
와이즈먼은 아래와 같은 취지로 답한다.
재미있는 상상이다. 물리학 이론상으로 우리는 130여억 광년(光年) 전의 일까지 알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다만 접근이 불가능한 비밀영역이 있을 수도 있다는 개연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봉인(封印)된 ‘판도라의 상자’처럼 창조주가 ‘개봉되기를 원치 않는 영역’이 있다면 말이다.
미래에 대해서는 지금까지의 모든 경험칙(經驗則)을 종합하여 어느 정도 추정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래서 먼 훗날 인세(人世)에서는 ‘구리로 거울을 만들면 의관(衣冠)을 단정히 할 수 있고, 역사를 거울삼으면 흥망(興亡)을 내다볼 수 있다[以銅爲鑑 可正衣冠 以古爲鑑 可知興替<貞觀精要 魏徵傳>].’고 하지 않았겠는가.
그러나 우리는 기술 발전에 대한 자부심보다는 우주와 자연, 그리고 생명 등, 더 나아가서 그것의 창조주인 신(神)의 존재 앞에 겸손해야 한다고 본다. 왜냐하면 우리가 자연계에서 ‘원리(原理)’를 찾아내는 방법인 귀납법(歸納法)이, 은연중 천지 만물에는 ‘불변의 법칙이 존재한다.’는 개연성(蓋然性)을 전제하는 것이고, 그 끝에는 일정한 법칙에 의하여 자연을 창조한 창조주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자연계에 존재하는 어떤 ‘법칙’의 존재를 전제하면서도 그 ‘법칙’이 저절로 존재한다고 믿는 것은 ‘천지창조(天地創造)’를 보면서도 미켈란젤로를 부인하는 것처럼 인과율(因果律)을 부정하는 것이다. 제일 원인[uncaused cause, nmoved mover]인 창조주 이외의 모든 존재 자체와 자연계의 모든 현상은 이 인과율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다고 하는 것은 어떤 특정 종교나 신념을 떠나 보편적인 이로(理路)의 당연이라 할 것이다. 거듭 말하지만, 어떤 존재를 보면서도 그것이 말미암은 근원[所從來]을 생각하지 않으며, 자연의 운행과 변화를 보면서도 그 까닭[所以然]을 묻지 않는 것은 눈이 있으면서도 보지 못하는 ‘청맹과니’에 지나지 않는다고 해도 결코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창조주인 신(神)은 자신이 만든 법칙에조차 매이지 않는 초월자(超越者)임을 인정해야 한다. ‘자기 원리’에라도 구속(拘束)되는 존재라면 그는 이미 초월자일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금까지의 원리로 보아서 미래에도 그럴 것이다.’라고 하는 추정은 단지 개연성에 바탕을 둔 추리일 뿐, ‘반드시(necessarily)’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즉 얼마든지 예외(例外)가 있을 수 있다는 말이다. 그 예외를 인간 세상에서는 ‘기적(miracle)’이라고 부른다. 이를테면, 유다 임금 히즈키야가 이사야에게, “주님께서 나를 치유해 주시어 내가 사흘 안에 주님의 집에 올라갈 수 있으리라고 하셨는데, 그 표징(標徵)이 무엇이오?”라며 표징을 구하자, 신(神)은 ‘아하즈의 해시계에 드리운 그림자를 열 칸 뒤로 돌아가게 하셨다[2열왕20,7-11 참조].’는 대목에서 볼 수 있는 바처럼, ‘자기 원리’에 반(反)하여 ‘권도(權道)’를 쓸 수도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 ‘그것은 원리(原理)에 대한 위반’이라고 ’그분‘에게 항의할 권한은 누구에게도 유보(留保)돼 있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아무리 지혜(知慧)가 발달해도 미래는 ‘신의 영역’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왕 말이 나온 김에 췌언(贅言) 한마디 덧붙이겠다. 먼 훗날 인간세계에는 ‘인간은 기도(祈禱)로 강해지고, 하느님은 인간의 기도로 약해진다.’는 신앙적 통찰(洞察)을 값진 교훈으로 끌어안으며, 창조주의 ‘초월성’보다는 인간과의 ‘위격적 친교(親交)’를 더 강조하는 경향도 있다는 점을 첨언(添言)해 두고 싶다.
이러한 맥락 안에서, 신은 인간의 죄를 징치(懲治)하려던 결심을 바꾸기도 하고, 당신의 외통수 ‘장군!’에 대국자(對局者)인 인간이 ‘한 수만 물러달라.’면 얼른 그러마고 들어주시는 마음씨 좋은 동네 영감님(?) 같은 분이시기도 하다. 그런가 하면, 소돔의 진멸(殄滅)을 작정했던(?) 하느님은 의인(義人)의 숫자를 깎아달라고(?) 흥정(?)을 벌이는 아브라함에게 개평(?) 주듯 들어주시는 헐거운 분이시기도 하다. 신과 인간 사이의 위격적(位格的)인 관계가 소위 싱크로(Synchro)율(率) 100%에 이른다면, 이론상으로 ‘신의 뜻이 인간의 뜻이 되고, 인간의 뜻이 신의 뜻이 되는.’ 경지에까지 다다를 수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질문의 요지에서 많이 일탈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아무리 타임 머신이 첨단기술로 고도화되더라도 미래에 대한 예측은 비유컨대 지금 ‘신수제국’의 관상감(觀象監) 청개구리 영사(領事)의 수준을 크게 앞설 수는 없다고 본다. 왜냐하면, 어떤 일[Event]은 대체로 선행(先行) 원인군[原因群]으로 작용할 수많은 ‘경우(境遇)의 수’의 조합(組合)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유추할 수는 있지만, ‘반드시’라고 주장하면 ‘권도’를 쓸 수 있는 신의 능력을 제한하는 외람된 독단(獨斷)이 되기 때문에 역시 ‘신의 영역’으로 유보되어야 한다고 본다.
뒤이어 한 외신기자가 중간에 뛰어들어 돌발 질문을 한다. 국제법률회사의 조직원으로서 직업윤리 뒤에 숨는 것을 비판할 생각은 없다며, 선후진국간에 엄존(儼存)하는 과도한 기술 격차[disparity in technique]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던진다.
와이즈먼이 잠시 머리를 긁적거리더니, “극복하기 어려운 격차가 개재(介在)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피조세계(被造世界)에 내재(內在)하는 근본 원리는 어차피 알파(α)에서 오메가(Ω)로 향해 나아가는 진화(進化)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옳다고 봅니다. 다시 말해서 격차 극복을 위해서 내재 원리를 거슬러 하향 평준화(下向 平準化)로 역행(逆行)할 수는 없는 일이지요. 비유가 다소 부적절한지는 모르겠지만, 원시국가와 첨단 선진국 간에 전쟁이 벌어졌는데, ‘원시국가인 우리는 원시 무기인 새총밖에 없으니, 너희도 ICBM을 버리고 새총만으로 싸우자고 주장한다면 설득력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 격차를 방치하여 더욱 크게 벌어지게 하는 것은 ‘지속적인 공존[sustainable coexistence]’을 위해서 바람직한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원론적인 얘기지만, 기술 후진국의 자구(自救) 노력과 기술 선진국의 ‘시혜적(施惠的)이 아닌 공존적 차원에서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바꿔 말하면, 기술과 과학에는 반드시 ’윤리’라는 옷을 입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때 Bhuddist Daily의 캥거루 신수사 출입기자가 나서서 “사람이 아니라 우리 동물 가족의 ‘죄와 벌’에 대해서도 견해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라며 답변을 요구한다.
이에 대해 와이즈먼은 명쾌한 답변이 쉽지 않은 문제라고 운을 떼며 아래와 같은 요지로 말한다.
결론을 앞당겨 말하겠다. 창조주께서는 무릇 생명체에게 내․외부적인 자극에 대해서 생존과 번식 등에 합목적적으로 반응하도록 설계된, 말하자면 기성품(旣成品, ready made) ‘본능’을 탑재(搭載)해 주셨다. 그러면서도 일부 동물, 즉 인간에게는 예외적으로 본능까지도 거슬러 행동할 수 있는, 즉 자율적 판단에 유보(留保)된 ‘도덕, 윤리’라는 ‘가치(價値)영역을 허락하고, 동시에 이 가치적 판단의 준거(準據)로 ‘양심’이라는 고유한 기능을 함께 주면서 선택에 따른 ’책임‘을 부하(負荷)토록 하였다.
그러나 우리 동물 가족에게는 약육강식이라는 정글의 법칙과, 일정 부분의 ‘공존을 위한 질서와 절제’만 필요로 할 뿐, 도덕이니 윤리니 하는 굴레에는 기속(羈屬)되지 않게 예정되었다. 이것이야말로 인간과 달리 우리 동물 가족에게만 허여(許與)된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와이즈먼 변호수가 이렇게 우리 동물 가족과 인간 사이에 개재하는 ‘선택과 책임’의 문제를 놓고 그 차이를 설명하자, 캥가루 기자는 창조주의 공정하지 못한 처사를 납득하기 어렵다며 보충설명을 요구한다.
와이즈먼은 있을 수 있는 질문이라며 아래와 같은 요지로 설명한다. 동물 가족과 인간은 같은 창조주에 의해서 창조된 피조물인데도, 부여하신 능력과 요구하시는 책임 등에서 천양지차(天壤之差)를 보이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얼핏 보면 불공정해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인간을 제외한 같은 동물 가족간, 더 나아가서 같은 종족 내의 개체 간에도, 이를데면 시력, 청각, 후각, 체중과 체력 등 모든 능력이나 자질 면에서 엄청난 차이가 엄존(儼存)한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우리 동물 가족과 인간 사이에 신이 주신 능력과 요구하시는 책임 사이에도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당연스러운 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고, 모든 존재 사이에 다양성(多樣性)을 무시하고 획일성(劃一性)만 요구한다면 오히려 우리의 그러한 사고방식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날카로운 이가 있는 놈에게는 뿔이 없고, 날개가 있는 놈에게는 다리가 두 개뿐[予之齒者去其角 傅其翼者兩其足<董仲舒(漢書)>]이라는 사실을 통찰해본다면, 자연계에 존재하는 차이(差異)는 옳고 그름이라는 가치나, 진위(眞僞)라는 사실의 문제가 아니라 단순한 ‘다름’의 문제라는 시점에서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답변을 마치려 한다.
그러자 갱거루 기자는 미진한 듯 고개를 갸우뚱하며 불만스러운 눈치다. 와이즈먼은 속으로 ‘하루살이 버섯은 그믐과 초하루를 알지 못하고, 쓰르라미는 봄과 가을을 알지 못한다朝菌不知晦朔 蟪蛄不知春秋 <逍遙遊(莊子)>].’더니, ‘캥거루 주제에 그렇지 뭘’ 하는 조소를 지그시 누르며 몇 마디를 덧붙인다. 이것은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차별이 아니라 ‘다름’의 차원에서 수용해야 한다는 것을 거듭 강조하면서, 비유컨대 품종개량을 목표로 하는 육종(育種)업자가 다양한 시험포(試驗圃)를 운영하는 것과 같고, 원정(園丁)이 정원에 모란(牡丹)과 바이올렛[violet]을 함께 가꿔서 다양성을 지향하는 것과 같은 것이지, 이를 두고 종자 사이에 ‘차별’이나 ‘불공정’이 있는 것처럼 말하는 것은 지나친 단견(短見)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동물이 되고 싶은 인간과, 인간이 되고 싶은 동물에게 ‘자유’랍시고 제멋대로 선택하라고 내버려 둔다거나, 화중왕(花中王)이라는 모란만으로 정원을 채운다면 다양성 속에서 조화를 추구하는 ‘창조주의 창조 의지’는 어디에서 찾아볼 수 있겠는가?
물고 늘어지는 캥거루 기자가 또 한마디 툭 던진다. “같은 동물 가족이라도 바이러스나 아메바와 같은 미물(微物)과 와이즈먼 변호수님 같은 고등동물 사이에는 지능의 격차가 엄청나게 큰데, 이를 무시하고 일률적으로 같은 범주(範疇)로 보는 데는 문제가 있는 게 아닙니까?.”하고 물고 늘어진다.
다시 붙잡힌 와이즈먼은 다소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응답한다.
“지능(知能)이란 주어진 자극에 대해서 ‘얼마나 더 합리적이고 효율적으로 반응할 수 있느냐.’ 하는 원초적인 문제에서부터 더 나아가서는 고급 기능인 ‘사유(思惟)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능력으로, 단순하게 정의(定義)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이 능력의 차이 정도를 가늠하기 위해서 ‘지능지수’라는 용어를 사용합니다만, 기자께서 말씀하신 대로 거기에는 동물 종족간에 많은 격차가 있습니다. 또한 지능은 교육과 계발을 위한 개체의 노력에 따라서 더 높일 수도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질적인 차이가 아니라 양적인 차이라고 봅니다. 왜냐하면, 동물 종족간 지능 격차는 이미 창조주로부터 소여(所與)된 것이며, 개체의 노력이나 교육에 따라서 다소 고양(高揚)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 바탕이 되는 자질(資質) 또한 소여의 결과이기 때문에 정도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양적인 차이로 수렴(收斂)된다고 보고 싶습니다. 그래서 동물가족간 지능의 격차에도 불구하고 우리 동물가족에게는 행위에 ‘선택의 자유’가 없기 때문에 책임 부하 또한 있을 수 없다는 말로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하며 자리를 떨치고 나오려 하는데, 캥가루 기자가 ‘한 가지 질문만 더’ 하며 “진화(進化)의 문제에 대한 고견을 피력해 달라며 다시 앞을 막는다.
와이즈먼이 엉거주춤한 채로 다시 답변에 나선다.
“진화(進化)의 문제는 나올 수 있는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변화되는 환경에 적응하는 것은 개체의 자유로운 선택이 아니냐고 말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고 단호히 말하고 싶습니다. 변화된 환경에 적응하는 것도 외부적인 도전(挑戰)에 생존과 번식에 합목적적(合目的的)으로 응전(應戰)하는 것으로서, 이는 개체의 자유로운 선택의 결과가 아니라. 변화에도 탄력적[flexibly]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본능 내에 유보(留保)된 자율성(自律性)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변화가 지속적이어서 고착화될 때 개체에서는 ‘돌연변이’가 일어나고, 이것이 번식을 통해 유전되어 ‘진화’가 이루어지는 바탕이 되는 것이라고 봅니다.”라며 간결하게 대답한다. 이에 대해서는 캥거루 기자도 더 이상 끝동을 대려 들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와이즈먼이 마무리 발언을 덧붙인다.
“이처럼 장황하게 소론(所論)을 끌고 온 이유는 딱 한 가지입니다. 그것은 ‘자유 없는 곳에 책임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 동물 가족에게는, 자기가 행한 어떤 행위가 자유로운 선택같이 보이지만 사실은 본능의 추동(推動)에 의한 타율(他律)이므로 그 행위에 따른 책임이 – 물론 공(功)도 없기는 하지만 –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자유로운 선택’에 따른 ‘책임 부하’라는 멍에를 짊어진 인간과 달리, 우리 동물 가족에게만 허여(許與)하신 ‘축복’이라는 것을 거듭 말씀드리며, 여러분의 행운을 빕니다.”
이상으로 예정에 없던 기자회견이 끝났다. 와이즈먼은 서둘러 ‘’만수전당‘ 옥상 헬리포트로 발걸음을 재촉한다. 뒤이어 엔진에 시동이 걸리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이내 허공에 빨려들고 말더라.
Ⅻ
지루한 재판으로 심한 스트레스를 받던 당나귀의 머리에 번쩍하는 번개가 스쳤다. 그는 거래하던 은행 ATM에 가서 잔고(殘高)를 확인해 봤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 통장 잔고를 찍어보고 나서 망치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다. ‘분명히 산더미 같이 쌓였던 뇌물을 처분한 대금을 내 통장에 넣었는데 ---.’ 이상한 일이었다. 변호수 선임료로 빠져나갔을 개연성 (蓋然性)도 아주 없지는 않지만, 내가 비밀번호를 노출시킨 적은 없지 않은가. 보노보측에서 요구한 적도 없었지만, 나도 줄 때는 주더라도 내 손으로 주겠다는 생각으로 비밀번호만은 꼭 틀켜쥐고 있었는데, 이게 도대체 어찌 된 일인가? 은행 창구에 가서 ‘시치미’를 딱 떼고, 잔고 확인을 해봐 달라고 요청한다. 그런데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모월 모일에 분명히 ATM에서 나름대로 거금(巨金)을 입금시켰는데, 입금된 사실 자체가 없다니! 혹시 해킹(?)당한 것은 아닐까? 보이스 피싱이 아니라 해킹을 당했다면 보안을 소홀히 한 은행측에 귀책(歸責) 사유가 돌아간다는 주워들은 상식으로 호통을 쳐본다. 그때 창구 직원들은 물론이고, 고객들의 눈길도 일제히 당나귀에게 쏠린다. 처음에는 서비스 정신으로 ‘혹시 손님께서 착각하신 건 아닐까요?’라며 나긋나긋하게 나가던 직원의 태도가 ‘이게 어디 와서 행패냐.’는 투로 표변(豹變)하더니, 당장 경찰 지구대 리트리버 대장(隊長)에게 연락하라고 경비원에게 호통친다. 내가 착각한 모양이라며 극구 사죄하고 돌아서서 나오는데, 아무래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게 어찌 된 일인가!
*선임(選任) 계약이 거론될 당시, 보노보측에서는 ‘논고한 내용을 논파(論破)하여 무죄를 이끌어내기에는 반박(反駁) 논리 개발이 너무 옹색하고 반증(反證) 확보가 어렵다며 수임(受任)에 난색을 표했던 적’이 있다는 것을 당나귀는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입금시 뇌물 매각대금을 ‘끝전까지’ 다 넣으라는 지시에는 후탈(後頉)이 없도록 증거를 말끔히 인멸하려는 보노보측의 의도가 있었음을 당나귀가 어찌 짐작할 수 있었겠는가. 그리고 당나귀의 ‘범죄 수익금’은 모두 빼앗아 만국 수권(獸權) 보호를 위한 기금에 보태는 게 사회정의(社會正義)의 원칙에 부합한다는 고도의 윤리적 판단에서 취한 결과라는 것을 당나귀가 어떻게 내다볼 수 있었겠는가? 입출금의 흔적조차 남기지 않은 신기(神技)는 불가사의(不可思議)의 영역에 속할 듯하다.
그래도 그건 남아 있겠지 했던 한 가닥 희망, 즉 ‘비밀번호를 내가 틀어쥐고 있는데 설마’ 했던 그 희망이 물거품이 된 마당에 뒤틀린 속을 달랠 길 없던 당나귀는 단골 ‘산양네 주막’에 들러 ‘마른갈이 물 대듯’ 탁배기[*막걸리의 방언(方言)] 몇 대접을 연거푸 들이켰다.
ⅩⅢ
어느 제국(帝國)의 명운(命運)이 낙조(落照)에 물들던 무렵이었다. 중원에서 축록(逐鹿)하던 효웅(梟雄)들을 제압하고 일통천하(一統天下)하야 패업(霸業)을 이뤘던 선제(先帝)께서 거년(去年)에 순행(巡幸) 중 돌연 훙서(薨逝)하셨다. 이에 국상(國喪) 중 불곰 환관(宦官)과 살쾡이 간신의 농간(弄奸)으로 유조(遺詔)를 변조하여 적장제(嫡長制)를 어기고 정통성 없는 천출(賤出) 이세(二世)를 제위(帝位)에 앉히니, 허울뿐인 금상황제(今上皇帝)는 ‘괴뢰(傀儡)’를 지나 아예 폐정(廢政)하고 황음무도(荒淫無道)한 혼주(昏主)가 되었다더라.
그렇지 않아도 가렴주구(苛斂誅求)와 날로 더해 가는 폭정(暴政)에 숨이 막히던 터에 나라에서 과도하게 신민들을 변방(邊方)의 수(戌)자리에 징발하는가 하면, 변새(邊塞)에 장성(長城)을 축조한답시고 토목공사 부역(賦役)에 내몰으니 민생은 피폐하고, ‘군주가 신하를 진흙이나 지푸라기와 같이 여기면 신하는 군주를 원수같이 여길 것이다[君之視臣如土芥 則臣視君如寇讐<孟子 離婁章句下>]라는 말처럼 민심은 이반(離叛)한 지가 오래되었다더라. 어쩌다 젊은 촌것들을 수자리에 끌고 가는 말단 징모책(徵募責)이 된 나[당나귀 자칭]는 수십 명을 인솔하고 변방으로 가던 중 뜻밖에 홍수(洪水)를 만나 길이 끊기는 바람에 지정된 일정에 목적지에 당도하는 게 어렵게 되었다. 기피자나 탈영자가 워낙 많아서 제날짜를 어기는 자에게는 무조건 참(斬)하는 엄한 군율(軍律)이 시행되는 터라,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어차피 죽기는 마찬가지의 처지가 되었다.
그때 내 머리를 한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왕후장상이 어찌 종자가 따로 있을까 보냐’ 하는. 그렇다. ‘대장부로 태어나서 개죽음을 당할 바에야 죽을 때는 죽더라도 한번 큰소리라도 쳐봐야 할 것 아닌가.’
나는 같은 운명에 놓인 ‘농(農)투성이’ 젊은이들에게 일장(一場) 연설을 했다. ‘길게 목을 늘이고 칼을 받느니 차라리 우리가 칼을 들어보자.’며 ‘왕후장상이 어찌 종자가 따로 있으랴[王侯將相寧有種乎]’를 구호(口號)로 외치니 함성(喊聲)으로 환호하며 박수가 뒤따랐다. 미리 계획한 일은 아니지만, 이렇게 뜻밖에 우리들은 서로 의기투합(意氣投合)하게 되었고, 나와, 이를테면 부장(副將) 격인 얼룩말이 관에서 나온 인솔 책임자 두 녀석의 목을 베면서 거사(擧事)에 불이 댕겨지게 되었다. 우리는 구름같이 따르는 무리를 규합하여 노선을 나누어 사방에서 황궁이 있는 함양(咸陽)을 향하여 짓쳐들어가니 성문이 절로 열리고 관아에서는 민관(民官)이 일체로 단사호장(簞食壺漿)[*백성이 군대를 환영하기 위하여 내놓는 보잘것없는 음식]으로 환영 일색이었다. 어느덧 포획한 전차가 천승(千乘)이요 기병대와 보졸(步卒)이 십만에 이르렀다. 황군(皇軍)의 저항이 다소 있기는 했으나 파죽지세(破竹之勢)로 진격하여 황궁 오십리 허에 진을 치니 함락이 눈에 보이는 듯했다.
나는 내친김에 ‘민생을 도탄에서 구한다’는 기치(旗幟)를 내세워 막료(幕僚)들의 추대로[물론 ‘옆구리 찔러 절 받는 격’이기는 하지만] 국호(國號)를 ‘성수왕국(聖獸王國)으로 정하고, 대려대왕(大驢大王)으로 칭왕(稱王)하게 되었다. 내가 칭왕하게 된 것은 물론 사욕(?)(私慾) 때문이 아니라, ‘비유하자면 북극성이 자기 위치에 자리 잡고 있으면 뭇별들이 그것을 에워싸는 것과 같다[譬如北辰, 居其所而衆星共之<爲政(論語)>]’는 말처럼 하늘에는 해가, 땅에는 임금이 ‘중심’에 있어야 하겠기에 부득이(?) 취한 전략적 판단이 아니겠는가.
*여기까지는 와이즈먼 대리자를 만나기 전에 족숙 노마에게서 들었던 ‘왕후장상’설[진승.오광이 농민군을 이끌고 반란을 일으킨 ‘대택향(大澤鄕)의 기의(起義)’에서 명분으로 내걸었던 구호(口號)] 중에서 승승장구하던 전반부 이야기가 성글은 어레미 같은 당나귀의 부실한 기억력에 붙어 있다가 반군 수괴(首魁) 진승이 당나귀 자신으로 현몽(現夢)했던가 보더라.
하기는 선제께서 패업(霸業)을 이루실 때 병탄(倂呑)한 육국[六國]의 원한(怨恨)이 아직도 사그라지지 않고 내연(內燃)하고 있으니 패망한 나라를 복원하여 종묘사직을 재건하고 왕통(王統)을 계승시키겠다는 명분을 내세워 그 유민(遺民)들의 도움을 받아 대업(大業)을 이룬 뒤에 칭왕해도 늦지 않다는 간언(?)(諫言)도 없지는 않았었지. 하지만 ‘제비나 참새만도 못한 것들이 감히 --’하는 생각에 그것들의 용훼(容喙)를 배척했는데, 아닌 게 아니라 패망한 육국(六國)을 장악하라고 출진(出陣)시킨 제장(諸將)이 제멋대로 칭왕하거나, 아니면 무너진 왕통(王統)을 복원한다는 명분으로 반기(叛旗)를 드니 충천(衝天)하던 사기가 점차 꺾이는 기세가 완연(宛然)해지더라. 이에 승기(勝機)를 탄 듯, 황군의 반격(反擊)이 날카로워 그 예봉(銳鋒)을 피하기가 어렵게 되더라. 이와 때를 같이하여 함께 거병(?)(擧兵)했던, 뒤에는 도원수(都元帥) 격인 얼룩말마저 휘하(麾下) 막료에게 참살(慘殺)당하니 일조(一朝)에 패색(敗色)이 짙게 되었더라.
그러던 어느 날 밤, 명색은 행궁(行宮)이라 했지만 왕호(王號) 깃발만 하나 덩그마니 내걸린 일개 군막(軍幕)에 지나지 않는 처소에 막료(幕僚) 하나가 들어오더니, “전하, 하늘이 장차 그 사람에게 큰일을 맡기려고 하면, - 중략 - 지금까지 할 수 없었던 일을 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天將降大任於斯人也 必先苦其心志 勞其筋骨 餓其體膚 窮乏其身 行拂亂其所爲 所以動心忍性 增益基所不能<孟子 告子章>]” 어쩌고 하며 위로한답시고 되잖은 일장연설을 하고서 “부디 성지(聖志)를 굳건히 하시고 옥체(玉體)를 보중(保重)하소서.” 하더니 물러간다.
어줍잖은 잔소리가 목에 걸린 가시처럼 마음에 켕겨서 그럴까, 전전반측(輾轉反側) 하며 잠을 이루지 못하다가 간신이 눈을 붙였는가 싶은데, 변괴(變怪)를 알리는 벼락 치는 소리가 귀청을 찢는다. 황급히 기침(起寢)하는데, 옆 막료들의 군막에 불이 붙어 대낮을 방불케 한다. 놀라서 의관을 정제(整齊)할 틈도 없이 마부(馬夫)를 불러 길을 잡으라 하고 필마단기(匹馬單騎)로 황궁(?)을 벗어나는데, 검광(劍光)이 번뜩이고 병장기(兵仗器) 부딪는 소리가 쟁쟁(錚錚)한 가운데 거화(炬火)를 든 수십 명의 기병(騎兵)이 ‘저기 도적놈 잡아라.’, ‘역적 당나귀 잡아라.” 하고 왜장치는데, 말발굽 소리 또한 점차 세차진다. ‘오금아, 날 살려라.’ 하고 ‘눈먼 말 워낭소리 듣고 따라간다[瞽馬聞鈴].’고 향방 없이 앞선 마부만 따라가는데 ---. 산궁수진(山窮水盡) 막다른 골목에서 돌연 뒤돌아선 마부의 창끝이 월광(月光)에 번쩍하는가 싶더라.
*한낱 제비와 참새 무리에 지나지 않는 당나귀 주제에 점쟁이의 말만 믿고 허황한 꿈을 품고 풍찬노숙(風餐露宿)한 지 반년 만에 비명횡사(非命橫死)를 만났으니, 과객(過客)이 불쌍타 하여 옛 시조 한 수를 읊었다더라.
五百年 都邑地를 匹馬로 도라드니
山川은 依舊되
人傑은 간 듸 업다
어즈버 太平烟月이 꿈이런가 하노라 <麗末 吉再>
얼굴에 무언가 스멀거리는 게 있어서 비몽사몽간(非夢似夢間)에 손바닥으로 탁 치고 눈을 떠보니 같잖은 쉬파리 녀석이 실없는 소리 한마디를 남기고 윙하고 날아간다.
“바보야, 문제는 너 자신을 아는 지혜니라. [It’s wisdom to know youself, stupid!]”
“아니 조 녀석이! 팔랑거리며 날아다녀 신민(臣民) 축에도 끼지 못하는 쉬파리 녀석이!”
그러나 쉬파리 또한 지지 않고 대거리한다.
“그래도 나는 천리마 꼬리에 붙어서 천리를 갈 수 있단다[蒼蠅附驥尾而致千里<前漢末 張敞>].”
*쉬파리는 혼자서는 먼 길을 갈 수는 없지만 천리마(千里馬)의 꼬리에 붙으면 천릿길도 갈 수 있다, 범인(凡人)이 현자(賢者)에게 달라붙어 공명(功名)을 이룰 수 있음을 말한다. 여기에서 부기미(附驥尾)라는 말이 유래했다.
*적을 모르고 나도 모른다면 싸울 때마다 위태로워질 것이다[知彼知己, 百戰不殆, 不知彼而知己, 一勝一負, 不知彼不知己, 每戰必殆<孫子兵法 謀攻篇>]
쉬파리와 객쩍은 농찌거리를 하다가 주위를 살펴보니 ‘산양네 주막’ 마굿간에서 졸고 있는 비루먹은 당나귀 한 마리가 눈에 띄더라. (끝)
追而 : ‘당나귀의 백일몽(白日夢)’, 자신의 분수를 모르고 야망으로 허황한 꿈을 꿔왔던 당나귀의 초라한 말로(末路)를 통해서 분수에 만족[安分知足)]할 줄 모르는 우리네 삶을 경계(警戒)하고, ‘그쳐야 할 데서 그칠 줄 아는[知止止之] 지혜의 소중함을 환기(喚起)시키고자 시도한 이 희필(戲筆)의 끝을 여기에서 맺고자 한다.
시공을 초월하고 동물과 사람의 분계를 넘어서서 고삐 풀린 말처럼 날뛴 천방지축의 희필이니, 옳고 그름의 시비나 바르고 틀림의 당부(當否)를 만날 때마다, ‘태곳적 짐승나라’에서 일어난 일이라니 ‘그렇지 뭘!’ 하고 너그럽게 접어주시기 바랄 뿐이다. - 필자 사리재 윤득길 적음
2022. 7. 25.
첫댓글 반갑습니다. 늘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