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슬기로운 지금을 위해
연중 32주일(가) - 마태 25,1-13
청소년 담당 신부로
효성여고에서 수업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수업을 들어가면 꼭 묻는 질문이 있습니다...
“신부님 첫사랑 얘기해주세요”
제가 조금 곤란해하면...이렇게 질문을 바꿉니다..
“신부님 왜 신부님이 되셨나요”
사실 이 질문은 저에게 오는 18번 질문입니다...
특히나 사석에서 많이 받는 질문인데...관심이 있으실진 모르겠지만...
오늘 제가 신부가 된 동기에 대해서 한 번 말씀드리겠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 여름에 신부가 꼭 되어야 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꾸준히 준비는 했었지만...
꼭 신부가 되어야겠다는 결심은 없었습니다...
오히려 예쁜 학교 후배들을 보면
멋지게 연애하고 싶은 생각이 마음을 흔들기도 했고,
좋은 대학에 가서 넉넉하게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목표를 새로 잡게 했습니다..
그러다가 고3여름...
사제 성소자 피정이 한티에서 있었습니다...
거기에서 좋은 프로그램을 접할 수 있었고,
다른 성소자들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고,
또 미래에 대해 깊이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그 피정을 마치면서...
저에겐 이런 생각이 확고히 자리잡아 있었습니다...
‘내가 죽을 때 웃으면서 죽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그러기 위해서는 나는 지금 신부가 되어야 한다’라는 생각을 말입니다...
고3인 저의 생각으로는
웃으면서 죽기위해 신부의 길이 전부라는 생각이었습니다...
물론 신학교에 입학하고서 조금씩 눈이 넓어지면서
신부로 사는 것만이
웃으면서 죽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만은 아니라는 걸 깨닫고
그 선택에 후회하기도 했고 뛰쳐나가려고도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하느님께서 불러주신 이 삶 안에서 꼭 웃으면서 마칠 수 있도록...
순간순간을 최선을 다하려고 합니다...
왜 제가 신부가 된 동기를 말씀드리는가하면...
이번달은 11월, 위령성월이기 때문입니다...
특히나 이번 달엔, 일년 중 이번 한달만큼은...우리가..
죽음 앞에 떳떳한 모습으로 살아가길 바래서입니다...
오늘 복음말씀도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그 날을 깨어 잘 준비하라는 말씀 아닙니까
기름이 떨어져 바닥나서 기름불이 들어온 차를 모는 것과...
기름이 넉넉한 ‘만땅’인 차를 모는 것...무슨 차이가 있겠습니까...
기름이 바닥난 차를 몰 때는
기름이 다 떨어져서 멈춰버리지 않을지 불안해 해야 합니다..
그렇게 많았던 주유소가 잘 나타나지 않는 것에 안타까워 해야 합니다..
기름을 미리 넣지 않은 자신의 준비성을 탓해야 합니다...
그런 것들이 먼저입니다... 마음이 온통 그곳에 쏠려있습니다..
어디 가는지는 뒷전입니다..
그런데 기름이 넉넉한 차를 몰 때는
목적지를 향하는 최적의 운행을 마련합니다..
목적지를 위한 것들이 무엇보다 먼저입니다..
마음은 목적지에 이미 가 있습니다..
우리가 오늘 복음말씀 속의 슬기로운 다섯처녀처럼 산다는 것은..
기름을 꽉 채우고 목적지를 향하는 차를 타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것은....지금을 목적지처럼 사는 것이며...
지금을 늘 마지막인 것처럼 사는 것이며...
지금을 죽음과 연결 지으며 사는 것입니다...
언제올지 모르는 죽음이기 때문에
그 앞에 늘 떳떳하고 충분한 모습을 미리 간직하고 있는 것 말입니다..
우리 이번 한
달은 우리의 목적지가 어디임을 늘 염두해두며 지내봅시다.....
내일 하느님께서 부르신다해도 기꺼이 떠날 수 있도록,
웃으며 따를 수 있도록 말입니다..
죽음을 준비해야한다는 이 말씀은
결코 경고나 위협의 메시지로 듣지는 마십시오..
왜냐하면 죽음은 단지 끝이 아니라, 어둠이 아니라...
새로운 생명의 시작이니 말입니다..
새로운 생명의 시작을 늘 염두해두고
이번 한 달의 하루하루를 희망을 향해 채워봅시다...
누구보다 가장 슬기로운 우리가 되길 잠시 결심합시다..
대구대교구 용성성당
최호 [요한 보스코 ] 신부
첫댓글 일등으로 신부님 글 읽네요~^*^
저희 진량성당은 오늘 주교대리구장 신부님께서 방문하셔서 말씀선물을 주고 가셨답니다.
작은 체구에서 나오는 카리스마와 멋진 목소리에 놀랐습니다.
용성성당에도 꼭 한번 가보고 싶습니다..건강하세요.
기름이 넉넉하여 목적지까지 불안하지 않게 가도록 애쓰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