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의 허리
서정택
통증을 그러안고 날이 족족 기울도록
이끼 낀 돌담장에 몸 기대고 앉은 사내
벌어진 돌 틈 사이에 국화꽃은 피는데
온종일 돌에 앉아 마른 풀만 뒤적이다
인기척 하나 없는 돌담길 서성일 때
깎아도 자꾸 자라는 돌의 뼈가 시리다
물 먹이지 않아도 물 먹은 듯 무거운
이제는 삭은 낙엽 밟고 선 침몰인 양
지금도 바스러지며 돌덩이를 쏟는 허리
실폐를 계획하다
서숙희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했지만
실패를 실패하여 성공을 낳지 못하고
으깨진 유전자들만 남아있는 오늘은
막다른 절망을 으스러져라 안고서
금간 유리병을 차곡차곡 채우고서
살 오른 실패 하나를 다시 계획하려네
심장이 살아 펄떡이는 싱싱한 실패를
붉고 푸른 독이 번진 알몸의 실패를
깨져서 경전처럼 눈먼, 백주 대낮의 실패를
상강霜降
서연정
엄마를 생각하고
울지 않는 딸은 없다
그 딸 같은 꽃들이 쪼그려 피고 있다
홑겹의 그림자들이 흔들리는 장승 옆
가을 선암사
서석조
1.
버스킹 막걸리 한 잔 산문을 울려대고
단풍잎 불콰하여 선들바람 감아채자
불우를 떨쳐내어라 성금함이 두둑하다
2.
좌 은행 우 감나무 노랗거나 붉거나
탑 돌아 서천 만 리 풍경을 귀에 걸고
대웅전 본존 부처님 눈도 깜빡 않으신다
* 선암사: 전남 순천시 승주읍 소재.
서재
서일옥
책들이 방울 점령군처럼 차지했다
그들이 던져놓은 시끄러운 지식이
자꾸만 쌓이고 있다
부채負債처럼 쌓인다
날마다 어둠 속에서 책들끼리 다툰다
문을 닫아걸어도 귀를 막아보아도
그들의 격한 논쟁이
문틈으로 새어 나온다
이제 버러야 하나?
아직 두어야 하나?
몇 번을 들었다가 도로 놓곤 하지만
글자의 바늘에 찔려
발목을 접질렸다
-《가람시학 》2022. 제13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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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調의맛과˚˚˚멋
서정택 시인의 <돌의 허리> 외
안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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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1.06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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