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인물도서관 5 - 백석 이야기
흰 바람벽이 있어
[서지 사항]
강영준 글
초판 발행일 2024년 2월 16일 | 145×210㎜(무선) | 304쪽 | 값 18,000원
ISBN 978-89-6319-565-0 03990
[분류]
국내도서 > 청소년 > 청소년 인물
국내도서 > 역사/문화 > 청소년 역사
국내도서 > 한국사 > 한국 역사 인물
국내도서 > 역사 > 인물사
[주제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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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흰 바람벽이 있어》는 영어덜트를 위한 인물 이야기 ‘역사인물도서관’의 다섯 번째 책입니다. 모던 보이라는 별명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시인 백석. 그는 일제 강점기와 한국 전쟁이라는 거대한 역사적 소용돌이에 휘말린 채 고단한 삶을 살았지만 늘 시와 함께 숨 쉬며 살았습니다. 토속적인 민족 정서를 세련된 방식으로 노래했지만, 격동의 시대 앞에서 백석은 여러 제약에 막혀 몇 번이나 시를 발표할 기회를 잃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굴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발자취를 따라가다 보면 그가 맘껏 시를 쓰고, 맘껏 사랑하며 살았던 것은 결코 변할 수 없는 진실이라는 점을 알게 됩니다. 《흰 바람벽이 있어》는 백석 시인의 삶의 궤적을 따라가며 무엇이 백석에게 끊임없이 시를 쓰게 만들었는지, 이런 백석 시인이 맘껏 사랑했던 것은 정녕 무엇인지 가슴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백석 시인의 시와 사랑과 삶이 궁금하다면 《흰 바람벽이 있어》를 통해 그의 삶 속으로 들어와 보세요.
출판사 서평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시처럼 살고, 시처럼 사랑한 모던 보이
백석 시인을 떠올리면 한국인들은 일제 강점기 경성의 한복판에서 괴로워하며 시를 썼던 로맨티스트를 떠올립니다. 그런 그의 이미지가 너무 멋져서, 어느 영화의 주인공은 아예 백석을 모델로 했다는 말도 있었습니다. 또한 그의 시는 전 국민의 사랑을 받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모두가 좋아하며, 교과서에도 실려 있어 이미 우리 민족의 대표 시인으로 공인받았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입니다.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인 윤동주 역시도 백석 시인의 열렬한 팬이어서 그의 시집을 구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니 백석 시인이 얼마나 우리 민족에게 사랑받는 시인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됩니다.
백석 시인의 어떤 점이 이토록 세상의 사랑을 독차지하게 만든 것일까요? 그는 일제 강점기 당시에 유행의 최첨단을 걸었던 모던 보이로 살면서도 자신의 시에는 한 톨의 외래어도 허용하지 않는 독특한 시인이었습니다. 그 결과 토속적 소재를 세련된 형식으로 표현해 내는 그의 시는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백석 시인만의 전유물이 되었지요. 더 나아가 주제의 측면에서는, 늘 고향을 그리워하는 정서를 배경에 깔고 있어 한국인의 영혼을 그야말로 흔들어 놓는 것이 특징입니다.
《흰 바람벽이 있어》는 백석의 삶의 궤적을 조용히 따라가며, 그가 어떻게 해서 그런 아름다운 시들을 지을 수 있었는지, 과연 시란 백석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담담히 이야기해 줍니다. 과연 백석 시인은 시를 통해 무엇을 하고 싶었던 것일까요? 《흰 바람벽이 있어》를 통해, 백석의 시와 꿈과 사랑 이야기를 들어 보세요.
시인들이 가장 사랑한 시인 백석
그의 삶과 사랑을 소설의 형식으로 조명하다
《흰 바람벽이 있어》는 백석 시인의 삶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는 것처럼 생생하게 재현한 소설입니다. <조선일보> 교정부에 입사해 여러 문인과 교류하며 시를 발표하던 시절부터, 함흥으로 가서 교사로 근무하던 시절, 우리 말을 잃어버린 세상과 불화해 만주로 이주했던 시절, 북한 정권 아래에서의 절박한 시절까지 백석 시인의 인생 전체를 따라가며 백석 시인의 시와 사랑에 주목합니다. 이 책이 이렇게 백석 시인의 시와 사랑에 주목하는 것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시인들의 시인, 시인들이 가장 사랑한 시인으로 부리는 백석에게 시와 사랑은 ‘고향’ 그 자체였습니다. 백석 시에는 유독 ‘산골’과 같은 이상향으로서의 고향이 자주 등장하는데, 격동의 세월을 지식인의 여린 마음으로 이겨 내야만 했던 백석에게 고향은 다른 곳이 아니었습니다. ‘사랑하는 여인’이 바로 가고 싶은 고향이었고, ‘아름다운 시’가 바로 그리운 고향이었고, ‘지켜야 할 민족의 얼’이 가고 싶은 고향이었던 것은 그의 인생을 들여다보면 아주 분명하게 알 수 있지요.
늘 세상에게 부정당하고, 버려지고, 쫓겨나듯 살면서도 백석은 시를 쓰고 사랑을 했습니다. 인생 전체에 걸쳐서 그렇게 살았지요. 심지어 서슬 퍼런 북한의 독재 정치 아래서도 백석 시인은 시다운 시를 쓰려다 양강도까지 쫓겨납니다. 그가 그토록 치열하게 시를 쓰고 사랑을 했던 이유를 이 책 《흰 바람벽이 있어》에서 찾아보길 바랍니다.
왜 백석을 지금 우리가 알아야 할까?
사람이 어떤 것을 꾸준히 추구한다는 것은, 그래서 그 추구하는 것을 위해 삶을 희생한다는 것은 강력한 의지가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첫사랑에 실패하고, 내 나라의 언어를 잃어버리고, 삶의 터전을 잃어버리고, 시마저 빼앗기면서도 백석 시인은 자유로운 ‘삶의 의지’를 불태웠습니다. 비록 인생은 모든 것을 잃고 마지막엔 목숨마저 잃는 잔혹한 진실을 확인해야 했지만, 그러한 진실을 거슬러 의미 있는 삶을 살아 내고자 했던 백석 시인의 그 누구보다 더 강인했던 의지를 되새기며 스스로에게 ‘나는 어떤 삶을 원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살 것인지?’ 그 답을 찾아보는 시간을 가져보게 되길 바랍니다.
현대인들은 모든 것이 너무 빨리 변하고, 깊은 관계를 맺지 못하며, 늘 불안한 채 살아야 하는 환경에 놓여 있습니다. 이런 우리가 백석 시인의 인생에서 무언가를 배운다면 과연 어떤 것을 배울 수 있을까요? 《흰 바람벽이 있어》를 통해 더 많은 독자가 그 해답을 찾을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차례
제1부 몽둥발이가 된 슬픈 역사 속에서 (1912~1939)
1. 다쿠보쿠와 두 친구
2. 치열한 혁명가와 고요한 은둔자
3. 수선화처럼 연약하고 아름다운 슬픔
4. 굴 껍지처럼 말없이 사랑하다 죽는다는 천희
5. 고유한 게 진짜 모던, 시집 《사슴》 출간
6. 엇갈리는 통영의 인연들
7. 함흥으로 떠나는 경성의 모던 보이
8. 남들은 부를 수 없는 이름, 자야
9.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하고
10. 곳곳에 퍼지는 친일의 어두운 그림자
11. 정든 경성과 사랑하는 자야를 남기고
제2부.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한 (1939~1996)
12. 드넓은 만주, 그러나 불안한 자유
13.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한 만주
14. 해방, 자유롭지만 부끄러운
15. 고향으로 가는 길 위에서
16. 정치적 소용돌이가 휘몰아치는 평양
17. 응향! 작가는 사상 검열을 피할 수 없다
18. 예술 총동맹 외국 문학 분과위원, 백석
19. 획일적 이념에 맞서는 개성, 다양성, 예술성
20. 붉은 편지와 갈매나무
21. 시는 모닥불처럼
글쓴이의 말
한국 근현대사와 함께 보는 백석 연보
저자 소개
강영준 글
책 읽기와 생각 나누기를 즐기는 사람으로 상산고에서 10대들을 가르치고 있다. 《칠월의 청포도-이육사 이야기》 《시로 읽자, 우리 역사》 《한중록: 누가 사도세자를 죽였는가?》 등 문학과 역사를 두루 살펴보는 글을 써 왔고, 문학과 심리학을 엮은 《친애하는 내 마음에게》를 출간했다. 《허균 씨 홍길동전은 왜 쓰셨나요?》로 제7회 창비 청소년 도서상을 받았다.
책 속에서
백석이 말을 어떻게 건넬지 머뭇거리자 사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이름이 백석이라고요?”
“네. 백석입니다.”
“그럼 혹시 흰 백에, 돌 석?”
사내는 입가에 능글맞은 웃음을 띠며 다시 물었다.
“그런 셈이죠.”
“하하하. 그럼 흰 돌이군. 그럼 나는 앞으로 흑석, 검은 돌로 불러 주시오. 하하! 교정부라고 해서 틀린 글자나 찾아내는 따분한 곳인 줄 알았는데 지루하지는 않겠네요. 옷차림도 예사롭지 않고. 하하하! 나는 통영 사람 신현중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현중은 호탕하게 웃으며 석에게 악수를 청했다. -15P
“그런데 다쿠보쿠도 일본인인데 어째서 그 사람은 좋아하나요?”
“다쿠보쿠야 다르지 않소? 그가 쓴 시를 보시오. 일본인이지만 양심적이잖아요. 조선 침략을 반성하는 시도 쓰고 말이오.”
“〈9월 밤의 불평九月の夜の不平〉 말씀이시군요. 침략자 이토 히로부미처럼 자신도 차라리 총에 맞아 죽는 게 낫다는…….”
“오, 그 시를 알다니. 맞아요. 다쿠보쿠는 일본인이지만 제국주의를 정면으로 비판하니 참 대단하죠. 그렇지 않소? 그런 사람이 일본의 주류가 되었다면 조선을 식민지로 삼는 일도 없었을 텐데.”
“그렇지요.”
“다쿠보쿠 중에 어떤 시가 마음에 듭니까?”
석은 잠시 망설이더니 이내 시를 읊었다. -21P
석은 바지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냈다. 주변에서는 한심하다는 듯이 바라봤다. 멀찌감치 떨어진 직원이 답답해하다가 전화를 대신 받으려고 일어서자 과장이 가만히 있으라는 손짓을 한다. 석이 어떻게 하는지 두고 보자는 심사였다.
석은 울리는 전화를 받는 대신 손수건을 꺼내 수화기를 닦기 시작했다.
“정말 재수 없네. 뭘 믿고 저러는 건지. 사장 믿고 저러겠지.”
석은 수화기를 다 닦고 난 뒤 엄지와 검지, 중지 끝으로 잡힐 듯 떨어질 듯 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결국 전화는 끊어졌고, 석은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어이, 백석! 중요한 전화면 어쩌려고 그러는 거야?”
참다못한 과장이 결국 한마디 했다.
“중요하면 다시 전화하겠지요.”
“또 한심한 소리한다. 나 원 참!”
과장은 답답했지만 한두 번도 아니어서 그냥 참을 수밖에 없었다. -38p
석은 박경련을 바라보며 어쩐지 낯익은 슬픔을 느꼈다.
그녀의 표정은 어느 바닷가 외딴 마을, 이름 모를 여인의 초상과 자연스럽게 겹쳐졌다. 일본 유학 시절, 졸업을 앞두고 바닷가를 여행하다 가키사키라는 작고 외딴 마을에 들른 적이 있었다. 그곳 낡은 여관에는 새벽달처럼 얼굴이 하얀 한 젊은 여인이 장기 투숙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저녁상에 오른 참치회조차 넘기지 못할 만큼 병이 깊었는데, 그녀의 병든 눈빛이 서럽도록 고와서 오랫동안 잊히지 않았었다. 그때 그 가키사키에서 보던 슬프고 하얗던 여인의 인상이 묘하게 박경련에게서 보였다. 그늘 속에 자라나는 풀처럼 은밀한 슬픔을 감추고, 고귀한 사랑마저 남몰래 숨긴 듯한 얼굴빛, 그것이 박경련의 첫인상이었다. -49p
“좋아, 좋아. 역시 백석이야. 난 이 시를 보고 어쩐지 못다 한 조선의 꿈이 느껴지더라. 버려지고 보잘것없는 것들이 모여 모닥불을 이루는 게 꼭 식민지 조선 같단 말이지. 외면받던 민중이 스스로 생활을 이어 간다는 생각도 들고. 솔직히 깜짝 놀랐어. 석이 넌 민족주의자도 아니고, 사회주의자는 더더욱 아닌데 어떻게 이런 시를 쓰는 거냐?”
현중은 전에 없이 진지한 얼굴로 석을 향해 말했다.
“현중이 네가 이렇게 진심일 때도 있구나! 역시 사회 운동가답게 시를 읽는 것도 사회적인 데가 있어. 석아! 안 그래?” -63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