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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기시대·마왕퇴 한묘 马王堆汉墓
출처: 중국 고고학 중국 고고학 소스 : 동북아역사문물연구원
▲ 1970년대 마왕퇴 한묘 발굴 현장인 서한 초기 창사국 정승, 轪 후리창과 그 가족들의 묘역.후난성 창사시 동쪽 교외에 위치하고 있습니다.창사는 한창사국의 수도 린샹현이 위치한 곳입니다.
오대십국시대 초왕 마은의 묘소로 와전되어 마왕퇴(馬王堆)라 불렸으며, 장사왕 유발이 모정(母程)과 당이희(唐二姬)를 묻었던 쌍녀총(雙女冢)으로도 부설되기도 했습니다.
후난성 박물관과 중국과학원 고고학연구소는 1972년 1호분을 발굴했습니다.1973년부터 1974년 초까지 2, 3호분이 발굴되었습니다.1973년 『장사 마왕퇴 1호 한묘』를 출간했습니다.
▲ 마왕퇴한묘 금동인
▲ 마왕퇴한묘 '轪후가승' 봉니 《사기》와 《한서》에 따르면 장사상이창은 한 혜제 2년(기원전 193)에 죽었다고 합니다.2호 무덤에서 '창사정승', '轪후의 인장', '리창'의 3개의 인장이 발견되었으며, 이는 무덤의 주인이 1세대 轪후리창임을 나타냅니다.
1호분에서는 50세 전후의 여성 시신이 발견됐고, 묘에는 첩 신추(?)가 나왔다.명장, 묘주는 이창의 아내여야 합니다.3호분 주인의 유해는 30대 남성으로 이창의 아들 것으로 추정됩니다.3호분에서 출토된 목독 1점에는 '12년 12월 을사삭무진(乙巳朔戊辰")' 등의 글자가 있어 무덤의 하장 연대가 한문제(漢文帝) 12년(전 168)임을 나타냅니다.
1호분이 각각 2호분과 3호분을 깨뜨린다면 그 연대는 더 늦춰야 합니다.마왕퇴한묘의 발굴은 초기 서한의 수공업과 과학기술의 발전과 당시의 역사, 문화, 사회생활을 연구하는 데 매우 중요한 물리적 자료를 제공했습니다.
▲ 마왕퇴한묘 3호분 발굴현장의 무덤형식인 제마왕퇴한묘의 바닥에는 원래 크기가 비슷한 두 개의 흙무덤이 동서로 나란히 있고 바닥 지름은 각각 약 40m, 꼭대기는 둥글고 평평하며 높이는 약 16m입니다.
원래 땅은 4~5m 높이의 언덕이었는데, 무덤을 만들 때 먼저 흙구덩이의 하반부를 파낸 다음 판축법으로 구덩이의 상반부와 무덤길을 다지고, 묻힌 후에는 흙을 채우고 다져 높은 봉분을 쌓았습니다.3기의 무덤구덩이는 기본적으로 형태가 동일하며 모두 북쪽에 묘도가 있는 직사각형 수직혈입니다.
1호분은 구덩이가 가장 크고 깊습니다.묘역은 남북으로 길이 19.5m, 동서 너비 17.8m로 그 아래에는 4층 계단이 있고, 그 아래에는 두레박 모양의 구덩이 벽이 있어 묘의 밑바닥까지 닿아 있습니다.묘지의 바닥은 길이 7.6m, 폭 6.7m, 깊이 16m입니다.
나머지 2기의 무덤은 규모가 약간 작고 구덩이가 얕으며, 묘벽은 3층 계단밖에 되지 않습니다.2호 묘의 밑바닥은 길이 7.25m, 폭 5.95m이고, 3호 묘의 밑바닥은 길이 5.8m, 폭 5.05m입니다.
▲ 등비례로 복원된 마왕퇴 1호분묘 3기의 무덤 밑과 덧널실 주변은 숯과 백고니로 가득 채운 후 흙을 겹겹이 채워 단단히 봉인하였습니다.1호 무덤에 채워진 숯은 두께 0.4~0.5m, 총 중량 약 10,000근 이상이며 숯층 외부에 분포하는 흰 페이스트 진흙은 두께 1~1.3m로 점도가 매우 높고 투과성이 매우 낮아 밀봉에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1호분의 백고니 퇴적물은 두껍고 균일하며 단단히 봉인되어 지하 10여m 깊이의 덧널실을 높은 수준의 항온, 항습, 저산소증, 무균 환경을 조성하고 물리적, 화학적, 생물학적 요인에 의한 각종 물질의 훼손을 거의 배제하여 무덤 안의 다층관곽, 묘주사체 및 부장기물이 잘 보존되어 있습니다.
다른 두 묘, 특히 2호 묘는 흰 페이스트 진흙이 얇게 쌓여 분포가 고르지 않고 밀봉이 좋지 않아 묘의 보존 상태가 좋지 않습니다. 관곽구조는 1호분과 3호분의 관곽이 모두 상당히 온전하게 보존되어 있고 구조는 대체로 일치하지만 규모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1호분은 거대한 덧널방과 4층 덧널을 덧대어 당김, 장부를 덧대고 못을 박아 접합하는 방법으로 제작되었으며, 약 52㎥의 목재를 사용하였습니다.덧널방은 두툼한 소나무 대판으로 만들어 길이 6.73m, 폭 4.9m, 높이 2.8m로, 밑받침과 2단의 바닥판을 깔고 4개의 벽판과 4개의 칸막이를 만들어 가운데의 관과 사방의 테두리를 만들고, 윗부분은 상판과 2단의 덮개를 덮었습니다.
4층 관은 재속 목재로 만들어지며 내벽은 모두 붉은 칠을 하고 외관은 다릅니다.외부 층의 블랙페리신 관은 길이 2.95m, 폭 1.5m, 높이 1.44m로 가장 큰 부피를 가지고 있으며 다른 장식이 없습니다.두 번째 층은 복잡하고 변화무쌍한 구름무늬와 다양한 형태의 신과 짐승으로 장식된 검은 땅 채색 관입니다.
▲ 마왕퇴의 한 무덤 주지의 채색관 3층은 주지의 채색관으로 용, 호랑이, 주작, 선인 등의 상서로운 문양을 장식하고 있습니다.네 번째 층은 시체를 직접 염습하는 비단 내부 관으로, 관을 덮은 후 두 가닥의 비단 묶음을 가로로 붙인 다음 융단 수놓은 테두리로 장식된 깃털 아플리케를 채웁니다.3호분의 덧널방 남쪽 상자에는 종량이 하나 더 있습니다.
3겹의 관을 씌우고, 외부관과 중간관의 외관은 별도의 장식 없이 갈색-멜라닌 색소로 칠해져 있으며, 내부관은 비단 묶음 후 테두리로 융단을 장식한 자수로 채워져 있습니다.2호분은 남아있는 흔적들로 보아 1, 3호분과 구조가 다르고 덧널에 2단의 관이 내장되어 있습니다.
▲ 마왕퇴한묘 검은땅에 채색한 관여시체와 의금1호분의 여시체를 병리해부한 결과, 2100년이 지났지만 신체 각 부위와 내장기관의 외형이 여전히 완전하고 결합조직, 근육조직, 연골 등의 미세구조도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세계 시체보존기록에서 매우 드문 일입니다.
임상 의학 검사에서 고인은 생전에 관상 동맥 심장 질환, 다발성 담석증, 전신 죽상 동맥 경화증, 주혈흡충증 및 기타 질병을 앓았음이 밝혀져 시체 보존 및 고생물학, 고대 병리학, 고대 질병 역사 및 중국 의학 발전에 중요한 과학적 데이터를 제공했습니다.
▲ 마왕퇴 한묘의 주홍 능문 로사 면포 여시체는 견포와 삼베 홑옷을 입고 푸른 실크 신발을 신고 면포를 덮고 두 팔과 발을 리본으로 묶었습니다.그런 다음 18겹의 실크와 마의를 싸서 9개의 띠를 묶고 두 개의 실크 가운을 덮습니다.
여자 시신은 출토될 때 약 80리터의 무색 투명한 관액(출토 직후 갈색으로 변)에 담가집니다.이러한 종류의 관액은 다양한 과학적 분석을 통해 방부제가 아니라 흙의 수분이 흰 진흙과 숯층을 통해 묘실로 침투하여 장기간 응고되어 관에 축적되어 항균 및 살균 효과가 약한 것으로 판명되었지만 시신 보존의 근본 원인은 아닙니다.
▲ 마왕퇴한묘소사 襌의(직선자락) 부장 기물이 비교적 잘 보존된 1호분과 3호분, 부장품은 모두 관실 주변의 4개의 변상자에 놓여 있으며, 주로 의복, 식품, 약재 등이 가득 담긴 대나무 통나무, 칠기, 목용, 악기, 대나무 목기 및 토기 및 '견책' 죽간은 모두 1,000여 점에 달합니다.두 무덤의 비단 장식 내관에는 모두 비단 그림이 덮여 있습니다.3호분에는 백서와 병기도 부장되어 있습니다.
▲ 마왕퇴한묘에 연근편이 들어있는 칠정
▲마왕퇴한묘백서 '소력'의 '견책' 죽간은 1호와 3호 두 무덤의 부장품 정황을 상세히 기록하고 있으며, 현재 발견된 죽간 중 가장 완벽한 두 묶음입니다.1호분에서는 312기가 출토되었고, 3호분에서는 410기가 출토되었으며, 모두 부장품의 명칭과 수량, 각종 물품을 하나씩 기록한 분류소계입니다.1호분인 견책 죽간(遣策)에 실린 기물 리스트의 대략적인 순서는 옻나무로 만든 구정(九鼎)·칠정(七鼎)·삼정(三鼎)·이정(二鼎)의 각종 수프, 대나무 통에 담은 육식(肉食), 토기에 담은 장과 술, 포낭에 담은 식량, 옻나무 기구, 화장용품, 견직의류, 악기, 부채, 석과 토질(土質), 목질의 명기(明器)였으나 시신의금이나 목용 상당수는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 1973년 삼호한묘칠기병기틀 출토순간
▲ 마왕퇴한묘병기틀간문에 실린 것과 묘에서 출토된 실물이 다소 차이가 있으나 양상에 부합하는 자가 많아 간문에 따라 특정 기물의 명칭을 정할 수 있습니다.3호분에서 '견책(遣策)'이 나온 죽간(竹简)은 대부분 1호분과 같은 내용을 담고 있는 것 외에 차기(車骑)·악무(樂舞)·동복(童仆) 등의 시종(時從)이 소지하고 있는 의장(儀仗)·병기(兵器)·악기 등을 담고 있어 출토된 목용 및 관방 양벽의 비단 그림과 대체로 대조적입니다.
▲ 마왕퇴한 묘비화 '도인도' 채색 비단화 1호 묘와 3호 묘의 내관에 채색된 비단화는 완전하게 보존되고 색채가 선명하여 희귀한 예술 보물입니다.두 비단 그림의 구성은 기본적으로 동일하며 총 길이는 약 2미터이고 모두 'T'자 모양이며 처진 모서리에 이삭이 있고 위로 들어올릴 수 있도록 띠를 매어 당시 장례식에 반드시 필요한 깃발이어야 합니다.
화면 상단에는 일·월·승룡·사신신인 등의 도형이 그려져 천상의 경지를 상징하고, 하단에는 교룡천벽(交龍穿壁) 문양, 그리고 묘주(墓主)의 행차, 연향(宴鄕) 등의 장면이 그려져 있습니다.전체 주제 사상은 '인혼승천'입니다.어떤 사람들은 '견책(遣策)' 간문에 있는 '비의일장(非衣一長)이척(非衣一長二尺)'이 이런 비단 그림을 가리킨다고 생각합니다.두 묘백화의 주요 차이점은 묘주의 형상인데, 1호분은 여성, 3호분은 남성입니다.
▲ 마왕퇴한묘 1호한묘 T형 비단화 3호분 관방에 걸려 있는 비단화는 서벽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으며 길이 2.12m, 폭 0.94m로 수레와 말의장상을 그리고 있으며 화면에는 아직 100여 명의 상, 수백 마리의 말, 수십 대의 수레가 남아 있습니다. 동벽의 비단화는 심하게 파손되어 묘의 주요 생활 장면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 마왕퇴한묘 3호한묘 T형 비단화 직물과 의류 마왕퇴한묘에서 출토된 각종 견직물과 의복은 연대가 빠르고 수량이 많으며 품종이 많고 보존이 잘되어 고대 중국 방직 기술의 사료를 크게 풍부하게 합니다.1호 무덤의 가장자리에서 출토된 직물은 대부분 여러 대나무 대나무에 놓여 있으며, 15개의 완전한 단일, 겹겹이 덮인 두루마기 및 치마, 양말, 장갑, 향낭 및 수건, 보자기 외에도 46개의 단일 폭 비단, 비단, 비단 및 자수가 있으며 모두 디기 줄기를 근간으로 하여 가지런히 말아서 하나의 비단 조각을 상징합니다.
3호분에서 출토된 견직물과 의복은 대부분 파손되어 형태가 없으며 품종은 1호분과 거의 동일하지만 금색 꽃과 색상이 더 많습니다.한나라 방직 기술의 발전을 가장 잘 반영할 수 있는 것은 소사와 융단입니다.무게가 1냥 미만인 매미의 날개처럼 얇은 홑겹의 옷은 당시 제방 기술의 발전 정도를 나타냅니다.
옷 가장자리로 사용되는 융털은 문양이 입체효과가 있어 이중경축 기구의 복잡한 자카드 직조가 필요하며, 융털 직물이 중국에서 최초로 발명되고 만들어졌다는 것을 증명하여 과거 당나라 이후에나 있었거나 해외에서 유입되었다는 오해를 부정합니다.프린트 코팅의 발견은 당시 인쇄 및 염색 기술이 높은 수준에 도달했음을 나타냅니다.잘 보존된 삼베는 1호 무덤의 사체에 싸여 있으며 모시나 대마로 짜여져 있어 여전히 상당히 질깁니다.
▲ 마왕퇴 한묘 황갈색 대 새 마왕퇴의 아름다운 무늬 "구름 타고 수놓기"
백서와 의간 마왕퇴한묘에서 발견된 백서와 의간 2권은 모두 3호분 동쪽 상자의 직사각형 칠함에서 나온 것입니다.백서는 대부분 가로 48㎝의 전체 비단 위에 직사각형으로 접혀 있고, 일부는 가로 24㎝의 반폭 비단 위에 나뭇가지로 말아 올려져 있습니다.
출토 당시 모두 심하게 파손되었으며, 정리 결과 총 28점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 중 오늘날 전해지는 '주역'과 '노자'의 두 책을 제외하고 대부분은 고일서이며, 그 외에 두 폭의 고지도도 있습니다.이것은 중국 고고학에서 고대 전적 자료의 중대한 발견으로 의서는 약 2권 200개이며, 한 권의 내용은 '황제내경'과 유사하며, 건강을 지키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고 다른 한 권은 방중술입니다.
▲ 마왕퇴한묘 의서 태산서 악기인 마왕퇴한묘의 악기는 1호분에서 25현슬이 출토되어 현재 발견된 유일한 완전한 서한 초기슬이며, 22개의 머리글자와 머리글자율 세트가 출토되었습니다.3호분에는 출토슬, 머리채 외에 칠현금, 육공소도 있습니다.이것들은 모두 처음 발견된 서한의 실물입니다.한나라 초기의 율법을 논의하기 위한 물증을 추가한 12개의 머리글자형 율관.
▲ 마왕퇴한묘 주악용 칠기와 목용 마왕퇴한묘 출토 칠기는 모두 약 500점, 1호분 184점, 3호분 316점.이것은 여러 곳에서 발견된 한나라 칠기 중 가장 많고 보존된 칠기 배치입니다.그릇에는 주로 솥, 비수, 상자, 포트, 프랑슘, 잔, 귀컵, 접시, 匜, 혼수품, 탁자 및 병풍 등이 포함됩니다.옻칠한 귀 컵은 전체 칠기의 절반 이상을 차지합니다.칠기는 대부분 목태이고 소수의 혼수와 잔만 纻 타이어입니다.장식 패턴은 대부분 빨간색, 검은색 및 회록색으로 칠해져 있습니다.문양은 주로 기하학적 문양을 기반으로 하며 용, 봉황 및 풀 문양을 보완합니다.
▲ 마왕퇴의 한 무덤에 있는 이중층 구자 칠기의 일부 책에는 '轪후가', '군행주', '군행식'이라는 문구와 함께 기물의 용량이 표시됩니다.많은 칠기에는 '청두□' 스탬프가 찍혀 있어 청두 정부 작업장에서 제조되었음을 나타냅니다.
▲ 마왕퇴한묘 '군행주' 운문칠이배
▲ 마왕퇴한묘 '군행식' 소칠반 외에도 1·3호 두 무덤에서 각각 100여 점의 목용과 30여 점의 고기·곡물·과일·향료가 담긴 대나무 통나무가 출토되었습니다.
▲ 마왕퇴한묘 '달인토끼대통' 대나무대통
분류:고고 표제어
본문 라벨: 마왕퇴한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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