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2월 7일(화)
* 시작 기도
주님...
밤새 한숨을 자지 못하고 까만 밤을 하얗게 새웠습니다.
아마도 어젯밤에 마신 커피 때문인 듯합니다.
그래도 새벽에 일찍 정신을 가다듬고 주님을 만날 수 있음이 기쁨입니다.
나를 얽매이게 하는 옛 사람의 소욕들은 주의 보혈로 씻어주시고 이 시간 주님이 달리신 십자가에 못 박사오니 나를 드러내는 자기주장의지는 죽여주소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살아나는 그것으로 인하여 또 넘어질지라도 나의 힘이 아니라 오직 우리 주님의 십자가의 그 은혜로 나를 일으켜 주옵소서.
나는 할 수 없음을 압니다.
내 안에 계시는 성령께서 나를 장악하여 주소서.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날 구원하신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삼상 9:1-14
제목 :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섭리를 내 맘대로 좌지우지 하려던 죄인 중에 괴수.
1 베냐민 지파에 기스라 이름하는 유력한 사람이 있으니 그는 아비엘의 아들이요 스롤의 손자요 베고랏의 증손이요 아비아의 현손이며 베냐민 사람이더라.
2 기스에게 아들이 있으니 그의 이름은 사울이요 준수한 소년이라. 이스라엘 자손 중에 그보다 더 준수한 자가 없고 키는 모든 백성보다 어깨 위만큼 더 컸더라.
3 사울의 아버지 기스가 암나귀들을 잃고 그의 아들 사울에게 이르되 너는 일어나 한 사환을 데리고 가서 암나귀들을 찾으라 하매
4 그가 에브라임 산지와 살리사 땅으로 두루 다녀 보았으나 찾지 못하고 사알림 땅으로 두루 다녀 보았으나 그곳에는 없었고 베냐민 사람의 땅으로 두루 다녀 보았으나 찾지 못하니라.
5 그들이 숩 땅에 이른 때에 사울이 함께 가던 사환에게 이르되 돌아가자. 내 아버지께서 암나귀 생각은 고사하고 우리를 위하여 걱정하실까 두려워하노라 하니
6 그가 대답하되 보소서 이 성읍에 하나님의 사람이 있는데 종경을 받는 사람이라. 그가 말한 것은 반드시 다 응하나니 그리로 가사이다. 그가 혹 우리가 갈 길을 가르쳐 줄까 하나이다 하는지라.
7 사울이 그의 사환에게 이르되 우리가 가면 그 사람에게 무엇을 드리겠느냐? 우리 주머니에 먹을 것이 다하였으니 하나님의 사람에게 드릴 예물이 없도다. 무엇이 있느냐 하니
8 사환이 사울에게 다시 대답하여 이르되 보소서 내 손에 은 한 세겔의 1/4이 있으니 하나님의 사람에게 드려 우리 길을 가르쳐 달라 하겠나이다 하더라.
9 (옛적 이스라엘에 사람이 하나님께 가서 물으려 하면 말하기를 선견자에게로 가자 하였으니 지금 선지자라 하는 자를 옛적에는 선견자라 일컬었더라.)
10 사울이 그의 사환에게 이르되 네 말이 옳다 가자 하고 그들이 하나님의 사람이 있는 성읍으로 가니라.
11 그들이 성읍을 향한 비탈길로 올라가다가 물 길으러 나오는 소녀들을 만나 그들에게 묻되 선견자가 여기 있느냐 하니
12 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있나이다. 보소서 그가 당신보다 앞서 갔으니 빨리 가소서. 백성이 오늘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므로 그가 오늘 성읍에 들어오셨나이다.
13 당신들이 성읍으로 들어가면 그가 먹으러 산당에 올라가기 전에 곧 만나리이다. 그가 오기 전에는 백성이 먹지 아니히나니 이는 그가 제물을 축사한 후에야 청함을 받은 자가 먹음이니이다. 그러므로 지금 올라가소서. 곧 그를 만나리이다 하는지라.
14 그들이 성읍으로 올라가서 그리로 들어갈 때에 사무엘이 마침 산당으로 올라가려고 마주 나오더라.
* 나의 묵상
이스라엘 백성들의 대표인 장로들이 사무엘에게 와서 인간 왕을 구하자 사무엘은 이를 기쁘게 여기지 않아서 근심하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라고 하신다.
이에 그들에게 왕을 세웠을 때 그들에게 돌아가는 여러 가지 고난과 억울함 그리고 폐단들을 설명하였다.
그럼에도 백성들은 이를 다 받아들일 수 있으니 자기들에게 인간 왕을 세워서 그 왕이 자기들을 위하여 싸울 수 있도록 해달라고 극구 요청하는 것 아닌가?
이에 사무엘은 마음에 들지 않지만, 일단 그들에게 일단 집으로 돌아가 있으라고 하였다.
한편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의 인간 왕을 세우기 위한 밑그림이다.
이스라엘의 베냐민 지파에 유력한 자 기스의 가문이 나온다.
기스는 암나귀들을 잃었다.
그래서 그의 아들 사울과 종 한 사람을 시켜서 잃어버린 암나귀들을 찾아보라고 한다.
이에 사울은 종 한 명과 함께 에브라임 산지의 살리사 땅을 먼저 찾아보았지만 찾지 못하였다.
그들은 단 지파에 속한 사알림 땅을 찾았으나 역시 찾지 못하였다.
아무리 찾아도 없기에 그들은 자기들의 집이 있는 근처 베냐민 땅을 샅샅이 찾았지만 찾지 못하였다.
이들은 이렇게 헤매다가 사무엘이 사는 숩 땅에까지 이른다.
그곳에서 사울이 종에게 말하기를 아버지가 암나귀는 고사하고 우리 때문에 걱정하실 것이 염려되니 그만 돌아가자고 하였다.
그 때 종이 사울에게 말하기를 이곳에 존경받는 하나님의 사람이 살고 있는데 그에게 가서 우리가 어떻게 할 것인지 물어보자고 하였다.
이에 사울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사람에게 드릴 예물이 없는데 어떡하면 좋냐고 하자 그 종은 자기에세 은 1/4세겔이 있으니 그것을 드리면 된다고 하였다.
당시의 예언자 곧 선견자는 보수를 받고 일하는 자였다.
하지만 후대에는 개인적인 보수를 받고 예언하는 일이 불법으로 간주되었다(미 3:11).
오늘 본문 9절은 후대에 삽입된 내용으로 당시의 관례를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괄호 처리가 되어 있다.
한편 사울은 그 종의 말대로 하나님의 사람이 있는 곳으로 간다.
그들이 성읍을 향하여 올라가다가 물을 길러 오는 소녀들을 만나 그들에게 선견자가 어디 있는지 묻는다.
그들은 선견자가 당신들보다 앞서 갔으니 빨리 가보라고 한다.
그 날 백성들이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므로 선견자가 오늘 성읍에 들어왔다는 것이다.
선견자는 제사의식을 행하기 위하여 성읍에 와 있다.
청함을 받은 자들은 그가 오기 전에는 먹지 않으며 그가 제물을 축사한 후에야 먹는다.
따라서 사울 일행이 지금 올라가면 선견자를 만날 것이다.
그들이 성읍으로 올라가서 거기로 들어갈 때에 사무엘이 산당으로 올라가려고 마주나온다.
오늘 본문은 사울의 아버지 기스가 암나귀를 잃어버린 후에 그의 아들을 보내서 잃어버린 암나귀들을 찾아오라는 명령에서부터 시작된다.
이 작은 일로부터 시작되어 결국 사울이 왕으로 세움을 받는 일까지 하나씩 이루어지지만 결국 이 모든 일들은 하나님의 섭리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역사이다.
자칫 우리가 실수하는 것은 어떤 사람에 대한 선입견으로 그에 대한 모습을 고착화시켜 버리는 것이다.
사울은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세움을 받았지만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지 못하여 결국 그 왕의 자리에서 폐위가 되어 그의 말로가 비참하게 되었다는 것을 선입견으로 가지고 있기에 사울 하면 별로 좋은 인상을 주지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오늘 본문에 나오는 사울은 자기 아버지의 잃은 나귀를 찾아오라는 그 작은 명에 최선을 다하여 순종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무엇이든지 큰 일의 결과는 큰 일부터 시작되지 않는다.
지극히 작은 일부터 시작된다.
사울이 아버지의 암나귀를 찾아보라는 그 명에 순종하여 그 찾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울을 볼 수 있다.
다윗도 마찬가지다.
그가 처음부터 이스라엘의 두 번째 왕이 될 것이라고 생각지 않았다.
다만 그가 어렸을 때 그의 형들이 블레셋과의 전쟁터에 나갔는데 그 전쟁이 어떻게 되어가는지 궁금했던 아버지 이새가 막내아들 다윗에게 형들이 잘 있는지 보고 오라는 심부름 시킬 때 다윗이 순종한 데서부터 시작이 되었다(삼상 17:17-20).
요셉도 마찬가지다.
그가 애굽의 총리가 되게 된 데는 어느날 갑자기 된 것이 아니다.
그가 아버지 야곱의 심부름을 기꺼이 순종하는 데서부터 시작되었다.
(창 37:13) 이스라엘이 요셉에게 이르되 네 형들이 세겜에서 양을 치지 아니하느냐? 너를 그들에게로 보내리라. 요셉이 아버지에게 대답하되 내가 그리하겠나이다.
사울을 비롯하여 다윗과 요셉은 그런 아버지의 명령에 순종하였지만 그 순종의 과정이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갖은 어려움과 난관에 봉착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난관을 뚫고 그 명령을 달성하기 위하여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사울은 암나귀를 찾기 위하여 결코 좁지 않은, 그것도 산악지대인 에브라임 산지를 비롯하여 단 지파의 땅과 집 근처까지 내려가 보지만 어디서도 찾을 수 없었다.
그러다가 포기하려고 돌아가고자 할 때에 사환의 한 마디로 선견자 사무엘을 찾아가게 되고 하나님의 계획하신 일을 이루게 된다.
다윗은 아버지가 싸준 음식들을 형들에게 가져다 준다.
그런데 그 형들은 다윗을 오해하여 그가 자기를 드러내고자 하는 교만으로 인함이라고 다그친다.
하지만 그 자리에서 그는 사울의 부름을 받고 결국 블레셋의 장수 골리앗과의 일전을 벌여 그 전쟁을 승리로 이끈다.
그렇게 하여 그는 사울의 온갖 술수와 공격에도 하나님의 인도와 섭리로 결국 이스라엘의 2대 왕이 된다.
요셉은 아버지의 심부름 명령에 내가 그리하겠나이다 하고 형들이 있는 세겜으로 간다.
그런데 형들이 세겜에 있지 않고 거기서 더 북쪽으로 올라갔다.
어린 요셉은 세겜에서 형들을 만나지 못하였기에 그냥 거기에서 헤브론으로 돌아와도 될 터였다.
하지만 그는 아버지의 명령에 끝까지 최선을 다하였다.
그는 안 가도 되는데 굳이 물어물어 도단까지 가서 형들을 만난다.
그런데 그 도단에서 형들에 의해 상인들에게 팔려서 결국 애굽에까지 들어가는 것이다.
이런 모든 일은 육신의 아버지 곧 상위권위에 대한 복종의 결과 말로 다할 수 없는 고난과 어려움 등 난관에 처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런 고난과 난관으로 이끄신 분이 바로 하나님이셨음을 믿기에 그 분의 섭리를 인정하고 힘들지만 기꺼이 복종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두 말할 필요도 없이 우리 주님이 그렇게 하셨다.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육신을 입고 오시기 전, 곧 창세전부터 이미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시기로 작정되었다(벧전 1:20).
그런데 때가 되어 이 땅에 오실 때에는 그냥 육신을 입고 오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아담의 범죄를 해결하기 위하여 십자가를 지러 오셔야만 되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로서 감당하기 너무나 힘든 고난의 잔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주님은 그 고난의 쓴 잔을 기꺼이 받으셨다.
나는 본성적으로 심약한 자이다.
그래서 내가 당하는 여러 가지 고난을 견디지 못하는 자였다.
그것도 예수를 믿으면 뭐든지 잘 되어야 한다는 아주 잘못된 신앙을 가지고 있었기에 조금만 힘든 일이 닥치면 이것을 해결하고자 얼마나 많이 부르짖으며 기도했는지 모른다.
때로는 ‘긍정의 힘’이라든지, 적극적 사고방식의 책들을 섭렵하면서 나에게 임한 고난과 난관들을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믿지 않고 그저 해결해야 할 그 무엇으로 생각하여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실 것이라 믿고 기도했던 것이다.
이런 나의 모습은 하나님의 섭리를 전혀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한 자의 처사였던 것이다.
그렇게 문제를 해결받는 것이 목회의 주축을 이루던 시기에 내가 감당할 수 없는 큰 고난이 닥쳤다.
그 때도 여전히 해결을 위하여 기도하였다.
그런데 그 때 하나님께서 나를 복음으로 초청하셨다.
그리고 진짜 복음이 무엇인지를 알게 하셨다.
나는 목회의 패러다임이 완전히 바뀔 수밖에 없었다.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 내가 당한 고난과 난관이 하나님이 주신 것임을 믿음으로 고백하는 것이다.
그리고 오히려 그 고난의 무덤에서 날 위하여 십자가를 지신 주님과 함께 연합하여 성전을 지어가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그것이 바로 무덤이 복음인 장사복음이다.
이 장사복음으로 나는 목회의 출구를 찾게 되었고 그 후로는 내게 닥치는 여러 가지 고난과 난관들을 해결하고자 기도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어려움을 주님이 주신 은혜로 알고 그 무덤 안에서 주님과 더 깊은 영적 교제를 가진다.
그것이 날 향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뜻임을 알기에 만물 안에서 내가 당하는 고난은 오히려 그 영원하신 나라를 소망 가운데 바라볼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되는 것이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사울에 대한 선입견으로 그를 참 많이도 무시했었음을 고백합니다.
그의 나중이 어떠했든지 그가 처음에는 얼마나 상위권위인 아버지의 명령에 충성스러웠는지를 보게 되며 이를 통하여 이스라엘의 초대 왕의 자리까지 오르게 됨도 봅니다.
다윗 요셉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께서도 상위권위인 아버지께 얼마나 충성스런 복종을 했는지요.
그런데 나는 하나님의 섭리로 주신 여러 가지 환난과 곤고 등 고난을 어떻게든 해결하려고 소나무 뿌리를 뽑는 기도에 매진만 하였습니다.
그것은 모두 나의 의를 드러내는 자기주장의지였음을 고백합니다.
이것이 잘못된 신앙이었음을 복음을 통하여 깨닫게 하시고 이제 복음으로 하나님의 섭리를 인정하며 늘 주님과 함께 그 무덤 안에서 영생의 교제를 할 수 있음이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내게 주신 은혜가 너무 큽니다.
날 구원하신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