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르바의 자유, 한국인의 자유
유재원 2023.09.30 10:55
"아무 것도 바라지 않고 두렵지 않을 때, 자유"
일로부터 자유로운 추석 연휴 며칠이었다. 그렇지만 이 기간에 만나는 그 누군가는 ‘나’의 자유를 넘봤다. 그렇지 아니한가? 조르바는 “하기 싫은 일, 듣기 싫은 말을 강요받지 않는 것이 자유”라고 했는데 말이다. 《그리스인 조르바》의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현대인을 ‘조금 긴 끈에 묶인 신세’라고 바라본다. 자유가 있는 것처럼 보이나 실상 그 자유란 미미하고 협소하다.
국내 그리스학의 일인자인 유재원 필자가 소개하는 조르바는 자유를 압박하는 스스로의 손가락을 칼로 끊어낼 정도로 자유에 단호하다. 이렇듯 자유를 추구하는 조르바, 그를 묘사한 카잔차키스에 한국 팬이 많은 건 우리가 가진 자유의 양과 정비례해서인가, 반비례해서인가. 현실은 ‘노동할 수 있는 자유’로 복귀할 때다. 신데렐라의 시간은 끝났다. [편집자 주]
✔ 자유, 강요받지 않으면서 강요하지도 않는 것
✔ 정신은 식품점 주인처럼 모든 걸 장부에 기입한다
✔ 자유롭지 않을 자유로부터 도망치기, 조국! 돈! 관계!
✔ “내 일을 방해하니 나의 손가락을 잘라버리겠다”는 자유의 극치
《그리스인 조르바》의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일곱 살이던 어느 추운 겨울날 아침 아버지에 이끌려 이라클리온의 중심부에 있는 분수대로 가서 그곳 플라타너스에 목매달려 죽은 시신 세 구를 보게 된다.
“우리는 길모퉁이를 돌아 항구 성문을 향해 걸어갔다. 한 집에서 아직도 연기가 피어올랐고, 대문들 상당수가 부서져 있었고 문지방에 피가 묻어 있었다. 우리는 사자상 분수대에 도착했다. 그 옆에는 커다란 플라타너스 고목이 있었다.
”똑바로 봐라!“ 아버지는 멈춰 서서 손으로 가리키며 내게 말했다.
나는 눈을 들어 플라타너스를 보고는 비명을 질렀다. 잠옷 차림에 맨발인 세 사람이 푸르뎅뎅한 혀를 축 늘어뜨리고 나란히 종처럼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나는 견딜 수 없어 고개를 돌리며 아버지 무릎에 매달렸다. 하지만 아버지는 내 머리를 잡아 다시 플라타너스 쪽으로 돌렸다.
”똑바로 봐라!“ 아버지가 다시 명령했다.
매달린 시체들이 내 눈을 가득 채웠다.
”네가 사는 동안“ 아버지가 내게 말했다. ”듣고 있지? 네가 사는 동안 절대로 여기 매달려 있는 사람들에게서 눈을 돌리지 말아라!“
”누가 죽였어요?“
”자유가! 하느님의 축복이 있기를!”1)
자유는 남에게 싫은 것을 강요하지 않는 것! 그런데 우리는?
자유가 무엇이길래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얻으려 하는가? 그날 이후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는 것이 카잔차키스의 삶의 목표가 되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대답을 변변한 교육도 받지 못한 채 거칠게 현실과 맞부딪히며 살아온 조르바에게서 풀어낸다. 《그리스인 조르바》의 첫머리에서 크레타에 가기 위해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는 ‘나’에게 자신도 데려가 달라고 끈질기게 졸라 드디어 허락을 얻어낸 조르바는 그 기념으로 축배를 한잔하자며 이렇게 말한다.
“난 당신이 바라는 대로 당신을 위해 열심히 일하겠소. 노예처럼요. (...) 하지만 이건 분명히 해둡시다. (...) 만약 내게 강요하면 난 떠납니다. 이건 분명히 아쇼. 내가 인간이라는 걸.”
"인간이라고요? 그게 무슨 뜻이오?"
"자유인이라는 거요."2)
조르바가 여기서 말하는 자유는 '강요받지 않을 자유, 즉 하고 싶지 않을 일을 하지 않을 자유'다. 하기 싫은 일을 강요받지 않을 자유야말로 인간이 '사람답게 살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자유다. 그것이 없다면 우리는 사람이 아니라 노예일 뿐이다. 강요받지 않을 자유는 동시에 남에게 싫은 일을 강요해서도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루소 역시 이 점을 일찍이 깨닫고 있었다. 그는 《고독한 산책자의 꿈: 여섯 번째 산책》에서 다음과 같이 담담하게 고백한다.
"나는 인간의 자유란 자기가 원하는 것을 행함에 있다고 생각한 적은 결코 없고, 다만 자기가 하고 싶어하지 않는 것을 행하지 않는 데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내가 항상 추구한 자유이며 언제나 지켜온 자유다."3)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나에 관해 결정할 수 있는 자유
크레타로 가는 배 위에서 주인공 '나'가 조르바의 왼손 집게손가락이 거의 절반이 잘린 것을 보고 물었을 때 조르바는 이렇게 대답한다.
"한 번은 도자기 빚는 일을 했죠. 그 일을 정말 미친 듯이 좋아했죠. 진흙 한 덩어리를 집어서 바라는 걸 만드는 게 어떤 건지 아쇼? 물레 위에서 진흙덩이가 신나게 돌기 시작하면 생각을 하죠. 그릇을 항아리를 만들자, 접시를 만들자, 등잔을 만들자, 악마 새끼를 만들자! 그럼 그게 만들어져요! 보쇼, 이게 바로 인간이라는 거요. 자유란 말이요!"
"그래서요 손가락은요?" 내가 물었다.
"자 보쇼. 이게 내 물레질을 방해했단 말이오. 중간에 끼어들어 내 계획을 망쳤어요. 그래서 어느 날 도끼를 집어 들어…"
"안 아팠어요?"
"어떻게 안 아파요? 내가 목석이오? 나도 사람이오. 아팠죠. 하지만 내 일을 자꾸 방해하니까... 잘라 버렸죠." (그리스인 조르바: 41쪽)
조르바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행복 추구의 자유'를 위해서는 신체의 일부를 훼손할 수 있다고 말한다. 아니, 인간에게는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 자유 의지로 선택할 자유가 있기에 그래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사르트르의 말대로 '자유롭지 않을 자유4)'는, 즉 '선택하지 않을 자유'는 없다.
목숨을 걸고 쟁취해야 하는 자유
크레타에 거의 다 도착했을 때 해안을 바라보던 조르바가 하나만 묻자고 하면서 크레타가 해방되는 순간에 자신이 겪었던 경험을 털어놓는다.
"대장, 기적이 하나 일어났죠. 정말 이상한 기적이 일어나서 나는 아직도 혼란스러워요. 우리 남자들이 도둑질, 살인 등, 온갖 못된 죄를 다 저질렀는데, 그 결과로 요르기오스 왕자가 크레타 섬에 오게 된 거죠. 자유가 말이오! (…) 알 수 없는 일이죠. 정말 알 수 없는 일이죠. 이 세상에 자유가 오기 위해 그렇게 많은 살인과 그런 끔찍한 짓거리가 필요하다니 말이오. 내가 저지른 못된 짓거리와 수많은 살인을 이야기한다면 소름이 끼칠 거요. 그런데 그 결과가 뭔지 아쇼? 자유였단 말이오. 하느님이 우리를 벼락을 쳐 죽이기는커녕 우리에게 자유를 줬단 말이오. 난 도무지 아무것도 이해가 안 돼요."(그리스인 조르바: 48-49쪽)
여기서 조르바는 왜 자유는 피와 더러운 짓거리들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것이냐고 묻고 있다.
언젠가 한번 1911년생인 선생님께서 내게 물으셨다.
"유 선생, 나라 없는 슬픔이 무언지 알아요?"
그리고는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말을 이으셨다.
"사람이 아니라는 거예요. 조선인이라는 내 자신의 정체성을 내세우지 못하고, 평생 멸시당하면서 일본인이라고 생각하고 행세하도록 강요받았어요. 정말 사는 맛이라고 조금도 없는 지옥 같은 세월이었죠."
자신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줄 나라가 없는 식민지 민중에게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지 않을 자유'나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자유'가 있을 리 없다. 그런 삶을 견딜 수 없었던 자유인들은 자유를 얻기 위해 피를 흘리고 온갖 악행도 마다하지 않고 목숨을 걸고 싸웠다. 오스만투르크의 지배를 받던 크레타인들이 그랬고 일제에 맞선 우리 선조들도 그랬다. 자유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주권 회복도 자유를 보장해주지 않았다. 젊은 시절 독재자들에게 자유를 유린당한 기억이 아직도 고통스럽다. 나라 독립을 위해 평생을 바쳤다고 주장하던 부패한 늙은 정객은 권력욕에 눈이 어두워 부정선거를 저지르다 꽃다운 젊은이들의 피를 보고 나서야 물러났다. 곧이어 총칼로 권력을 강탈한 군인들이 나라와 민족을 구한다며 계엄령과 위수령을 마구 휘두르다가 끝내는 일본을 본받겠다는 정신으로 '유신'까지 하고는 친구들을 잡아갔고, 시도 때도 없이 길거리에서 경찰이 신분증 제시를 강요하며 함부로 소지품을 뒤졌다. 사회 안정을 위해서는 국민을 수백 명 희생시키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주장하던 그 독재자가 죽임을 당한 뒤, 뒤를 이은 또 다른 군 출신 독재자는 실제로 권력을 잡기 위해 국민에게 총을 겨누었다. 그는 '정의사회 구현'을 부르짖으며 그 목적을 위해서 자유는 억압될 수도, 아니 제한되어야만 한다는 궤변을 늘어놓았다. 그가 말하는 정의가 무엇인지는 아직도 오리무중이다.
차카게 살 자유, 정의사회를 구현할 자유… 저들의 폭력일뿐인 자유
해방되고도 40년 넘도록 그렇게 말도 자유롭게 못하고 이동도 자유롭게 못하고 두려움에 떨며 살았다. 사는 재미가 없던 끔찍한 시대였다.
'차카게살자'는 조직 폭력배의 문신에 오히려 위협을 느끼듯, 독재자가 총칼을 들고 외쳐 대던 '정의사회 구현'이란 구호 앞에서 한없이 주눅이 들었다. 하지만 그때의 우리는 자유를 잃고 산다는 굴욕을 견딜 수 없어 독재 타도를 외치며 민주화를 위해 목숨을 걸고 끈질기게 싸웠다. 그리고 이겼다.
이렇게 자유를 얻었지만 우리는 아직 자유가 무엇인지 잘 알지 못한다. 자유는 '강요받지 않는 것인 동시에 강요하지 않는 것'임을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또 자유란 목숨을 걸고 싸워야만 얻을 수 있고 또 지킬 수 있는 것임을 되뇌며 물러나지 않고 싸울 각오가 되어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의미가 명료하게 정의되지 않은 낱말의 사용은 언제나 위험하기 짝이 없다. 그 낱말이 '자유'일 경우에는 더더욱 위험하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자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이 자유라고 생각한다면 정말로 끔찍하다. 그런 생각으로 '자유'를 수없이 되뇐다면 자유는 위협받고 모든 사람들은 불안에 떨게 된다. 진정한 자유라 무엇일까? 조르바는 말한다.
"우리 무리 가운데 마케도니아에서 나하고 함께 내려온 요르가로스란 악당 한 놈이 있었는데, 온갖 나쁜 짓은 다 하는 더러운 돼지 새끼였죠. 이놈이 우는 거예요. ‘요르가로스, 왜 우냐?’ 그놈에게 물었죠. 내 눈에서도 수도꼭지가 열린 듯 눈물이 쏟아지고 있었구요. ‘이 돼지 새끼야, 왜 울어?’ 그런데 이놈이 나를 포옹하더니 입맞춤을 하면서 어린애처럼 우는 거예요. 그리고는 좀 진정되는 듯하더니, 그 구두쇠 놈이 허리춤에 차고 있던 돈주머니를 꺼내서는 터키놈들을 죽이거나 집에 들어가 강탈한 금화들을 자기 발밑에 쏟더라구요. 그러더니 금화들을 한 움큼씩 집어서는 공중에 뿌리기 시작했죠. 알겠소. 대장? 이게 자유라는 거요."(그리스인 조르바: 51쪽)
조르바는 천하의 잡놈이자 악당도 감동시켜 진정한 인간으로 만드는 기적을 일으키는 것이 자유라고 말한다. 자유는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다. 그렇지 않은 자유는 진정한 자유가 아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조용히 일어나 신선한 공기를 쐬러 선교로 올라가 생각에 빠진다.
자신이 갖고 있는 걸 공중에 뿌릴 자유
그게 자유라는 거군. 나는 생각에 잠겼다. 금화를 탐내는 탐욕과 갑자기 그 탐욕을 버리고 자기가 가지고 있던 모든 걸 공중에 뿌리는 게 자유로군!
자신의 욕망에서 자유로워져서, 더 높은 욕망에 따르는 것… 하지만 하나의 이상을 위해, 민족을 위해, 하느님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것, 이것 역시 노예근성이 아닐까? 아니면 혹시 주인이 높은 곳에 있을수록 우리 노예들의 사슬은 길어지고, 그러면 우리는 더 높이 뛰어야 하고, 훨씬 더 넓은 마당을 뛰어다니다가 끝내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한 채 죽어갈 텐데, 이런 걸 자유라고 하나? (그리스인 조르바: 52쪽)
'나'의 이런 자유에 대한 회의에 대해 조르바는 대답한다. 애국한다는 일념으로 살해한 불가리아 신부의 자식들이 고아가 되어 시장 입구 길바닥에서 구걸을 하는 모습에 충격을 입은 조르바는 가지고 있던 군자금을 그 고아들에게 다 준 뒤 무기도, 부적도 벗어 던지고 '조국으로부터 도망치기' 시작하여 조국으로부터 벗어났다고… 그리고 이어서 애국심을 핑계로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불가리아 여인이 사는 동네를 불태운 이야기를 하며 담담히 말한다.
"나는 조국으로부터 벗어나고, 신부들로부터도 벗어나고, 돈으로부터도 벗어나고, 탈탈 먼지를 털었죠. 세월이 흐를수록 난 먼지를 털어냅니다. 그리고 가벼워집니다. 뭐라고 말씀드려야 할까요? 난 자유로워지고, 사람이 돼갑니다." (393쪽)
"조국이란 게 있는 한, 사람들은 야수로 남아 있게 마련이죠. 길들여지지 않는 야수로요. 하지만 난, 하느님께 영광이 있을지어다! 난 벗어났어요. 벗어났다구요, 끝났다구요! 하지만 대장은요?" (396쪽)
조르바는 인간이 진정으로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모든 집착(執着)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을 일찍이 깨달았다. 조르바는 죽음의 공포에서부터도, 허무의 공포에서부터도 벗어났다고 말한다.
그의 묘비명, ‘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 나는 자유다’
"저는요, 매 순간 죽음을 생각하면서 행동하죠." (70쪽)
"죽는다는 건 아무것도 아닙니다. (…) 그러나 늙는다는 건 치욕입니다." (258쪽)
"많은 사람이 허무를 두려워합니다. 저는 그것을 극복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생각을 합니다. 나는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좋은 일이 있다고 기뻐하지도, 나쁜 일이 있다고 섭섭해하지도 않습니다." (257쪽)
조르바는 매 순간 죽음을 응시하면서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다만 죽음으로부터도 벗어나고픈 마지막 자유를 누릴 수 없음에 항의한다.
"난 죽는 게 조금도 좋지 않아요! 난 자유로운 존재가 아닙니까? 그렇다면 난 절대로 죽는 것에 동의하지 않을 겁니다." (469쪽)
그에게 죽음이 다가왔을 때 그가 외친 마지막 절규는 억울함이었다.
"나 같은 인간은 천 년을 살아야 마땅한데..." (538쪽)
마지막 이별을 앞두고 조르바는 '나'에게 말한다.
"대장은 자유롭지 않수다. 대장이 매여 있는 줄은 다른 사람들 것보다 조금 길기는 하지만 그뿐이오. 대장은 조금 긴 끈을 가지고 있어 왔다 갔다 하면서 자유롭다고 생각하지만 그 끈을 잘라내지는 못했수다. (…) 그 끈을 잘라내려면 미쳐야 해요. 모든 걸 걸어야 해요! 하지만 대장, 당신은 머리가 있어 그게 대장을 갉아 먹고 있죠. 정신이란 식품점 주인 같은 거요. 장부를 팔에 끼고서는 얼마 들어왔고 얼마 나갔고, 이건 이득이고 저건 손해고, 일일이 기입하죠. 정신은 알뜰한 주부 같아서 모든 걸 포기하지 못해요. 뭔가 하나는 꼭 숨겨놓죠. 정신이라는 놈은 결코 끈을 놓지 않아요. 절대로! 그 악당은 손아귀에 그 끈을 꽉 쥐고 있답니다. 그 끈을 놓으면 그놈은 망하는 거니까요. 불쌍하게도 사라지는 거죠! 하지만 그 끈을 자르지 않으면, 대장, 인생에 뭐가 있겠수?" (520-521쪽)
이 말은 민중을 계몽해야 한다는 우월감을 버리지 못하는 한 그 누구도 자유를 영원히 얻지 못하리란 조르바의 예언이요, 가르침이다. 카잔차키스는 자신의 무덤에 이렇게 적어 놓았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
나는 자유다.
Δέν θέλω τίιποτα,
Δέ φοβᾶμαι τίποτα,
Είμαι λεύτερος.
1) 《영혼의 자서전》, 제10장 중(유재원 번역)
2) 여기에 인용되는 부분은 모두 《그리스인 조르바》(2018년, 유재원 번역, 문학과지성사)에서 가져온 것이다.
3) 《고독한 산보자의 꿈》, 110쪽 중(1962년, 구자운, 박규순 번역, 을류문화사)
4) 우리는 자유로움을 중지할 자유가 없다. (Nous ne sommes pas libres de cesser d’être libre.)
글쓴이 유재원은
서울대학교 언어학과를 졸업하고 그리스 아테네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양대학교와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수를 역임했으며, ‘한국-그리스 협회’ 회장, ‘한국 그리스학 연구소’ 고문, ‘한국 카잔차키스 친구들의 모임’ 명예회장 등을 맡고 있다. 《데모크라티아》 《유재원의 그리스 신화 1, 2》 《터키, 1만 년의 시간 여행 1, 2》 등 많은 책을 쓰고 번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