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루는(嶺南樓) 신라 경덕왕 때 이자리에 있던 영남사의 부속누각에서 유래되었으며 고려 공민왕 때 김주가 밀양 부사로 부임새로이 다락을 높게 신축하여 영남루라 하였다. 현재 건물은 1844년 이인재 부사가 중건한 것으로 조선시대 때부터 진주 촉석루 평양 부벽루와 함께 우리나라 3대 명루로 일컬어 왔다 .보물 제147호
영남제일루1843년 초여름 11세의 이종석 어린 소년이 썼다는 이 글씨는 지금도 보는 이들이 탄성을 자아내게 하며 서예가들도 불가사의한 필역으로 희자되어 왔다.
嶺南樓 편액 귤난 조윤형이 1788년 (정조12)에 쓴 것이다.
"이색의 시 영남루 아래 큰 강물 비껴 흐르고 가을 달과 봄바람이 태평스럽네 문득 은빛 물고기가 눈앞에 가득하고 선비들 웃음소리 드리는 듯하네.
영남루 시 편액 이황,이색,문익점,귄근,김종직,하륜,이종석
너무 늦게 도착 아쉬움만 가득~~
의성 문소루(신라 경덕16년 757년) 부터이고 창건한 연대는 고려중엽으로 추정 된다. 공민왕 때 현령 이원재가 중건하였으나 1675 정유 화재로 소실 1694년 (숙종20년) 중건하였다. 문소루 누상에는 학사 김지대 포은 정몽주 상촌 김자수 등의 시판이 (제명)과 화산 이지원 선생의 문소루 중건기문이 있었는데 6,25 전란으로 누와 함께 소실되었다.
포은 정몽주 시 편액 단심가
영호루
수많은 시 편액 "삼봉 정도전 시편액 나는용 하늘에서 희롱턴 구슬 먼리 영가 고을 영호루에 떨어졌네 밤에 구경할 때 촛불 켤 일 없네, 신기한 광채가 물가를 쏘니, "퇴계 이황 시 편액 나그네 시름이 비 만나 더한데 더구나 가을 바람에 더욱 심란하구나 홀로 누에 올랐다 해 져야 돌아옴이여 다만 술잔 들어 집 그리운 잊는다. 은근히 벗을 불러 돌아가는 제비는 쓸쓸히 정을 품고 늦은 꽃을 향하구나 한 곡조 맑은 노래 숲 속을 울리는데 이 마음 어쪄다 마른 삭정이 같이 되었나.
"映湖樓(영호루) 공민왕의 친필 1361년
"영호루 한글 현판 박정희 대통령 글씨
삼봉 전도전 시편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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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계서원 보백당 김계행의 덕과 정신을 추모하기 위해 1684년 묵계서원을 짓고 제향한다.
미스터 썬샤인 촬영지
만휴정 (晩休亭) 보백당 김계행 안동김씨 10대손 가문 최초로 문과급제를이뤘다.선생의 생애를 관통하는 정신은 오가무보물 보물유청백으로 삶의 유일한 보물은 청렴과 결백뿐임을 강조하셨고 '늦은 나이에 쉰다' 는 만휴정을 건립하여 마음을 보살폈다. 훗날 자손들이 선생의 덕과 정신을 추모하기 위해 1684년 묵계서원을 짓고 1706년 제향하였다.
미스터 썬샤인 촬영지
만휴정(晩休亭) 미스터 션샤인 촬영지
만휴정 보백당 김계행 1431~1517 조선 전기문신 20년간 관직생활 무려 8명의 임금을 모셨다.연산군 생모 윤씨 폐비 당시 승지를 지낸 것을 이유로 무오사화와(1498년)와 갑자사화 (1504년) 에 연루돼 투옥됐으나 큰 화를 면하고 무오사화 이후 고향에 정착 만휴정에서 후학을 가르쳤다. ★오가무보물 보물유청백 이라는 글귀 ''우리집에는 보물이라고는 없다 오직 청백만이 보물이다",라는 뜻이다. 보백당이 남긴 유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