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리스도인인 당신에게 당신이 정말로 무엇을 원하는지, 마음속 깊이 무엇을 갈망하는지, 무엇을 궁극적으로 사랑하는지를 말해 보라고 한다면 당신은 정답을 알고 있을 것이다.
당신이 마음속 가장 깊이 간직한 욕망은 당신의 일상과 습관에서 드러나는 욕망이다. 우리의 사랑은 우리가 몰입하고 있는 실천을 통해 습득한 습관이다.
기독교 예배에서 행하는 실천은 이 긴장과 간격을 해결하려는 실질적이며 실천적인 재형성 수단이다.
사랑은 습관이다. 우리의 사랑이 두번째 천성과 같다는 것이다. 사랑은 숨을 쉬거나 눈을 깜빡이는 것처럼 많은 경우 의식적 자각이라는 레이더에 탐지되지 않은 채 우리에게 방향을 지시하고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제자도에 대한 접근방식은 우리가 인간의 본질을 어떻게 이해하는지 달려있다. 인간이 언제나 "켜져" 있어 모든 행동을 하기 전에 충분히 생각하고 무슨일을 하든지 먼저 의식적인 결정을 내리는, 생각하는 사물이라고 가정한다면 사고방식을 바꾸는데 제자도의 초점을 맞출 것이다.
사실, 우리는 우리 뼛속에 새겨진 일종의 노하우로 세상에서 길을 헤쳐 나간다.
버지니아대학교 심리학자 티모시 윌슨은 중요한 저서 < 내 안의 낯선나 > (대단히 아우구스티누스주의적인 제목이다) 에서 이 개념을 설명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우리가 생각을 통해 새로운 습관으로 나아갈 수 없다고 이해했다.
(원래 그런 행동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은 올바른 행동을 함으로써 올바르게 되고 절제 있는 행동을 함으로써 절제있게 된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행위를 하지는 않고 이론으로 도피하여 자기들은 철합자이니 철학을 통해 훌륭한 사람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사람들은 오히려 의사의 말을 주의 깊게 들으면서도 의사의 지시대로 하지 않는 환자들과도 같다.
심리학자 티모시 윌슨은 우리가 하루에 하는일의
약5%만이 빙산의 일각위에 있는 그 눈덩이, 즉
인간 의식으로 처리된 의식적, 의도적 선택의 결과라고 주장한다. 우리가 하는 나머지 행동과 행위는 습득되었지만 이제는 세상을 헤쳐 나가는 온갖 무의식적 방식으로 수면 아래 관리된다.
심리학자들은 이러한 습득된 무의식적 습관을 " 자동성" 이라 부른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이를 " 제 2의 천성" 이라고 부른것이다.
즉 우리는 그에 관해 생각하지 않은 채 세상을 살아 나가는 방식으로 산다.
(이것은 운전을 배울 때는 의식을 하며 배우지만 일단 운전이 익숙해 지면 무의식에 자리잡아 겉으로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어도 습관적으로 운전하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요약)
이것을 윌슨은 "무의식에 위임된다" 고 표현한다.
우리가 습득한 습관은 우리가 세상을 지각하는 방식을 규정하며, 이는 또 행동하게 한다.
때문에 성품은 당신이 습득한 성향의 그물망이다. 당신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규정하는 동시에 당신을 움직이고 당신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좋은 삶에 대한 전망을 겨냥하는 당신의 사랑이나 욕망은 대체로 비의식적 차원에서 작동한다.
따라서 사랑도 이것을 어떻게 습득하는지 잘 알고 있어야 한다
우리가 어떤 자동성을 습득하고 실천하기로 작정할 때 그것이 무의식에 새겨진다. 피아노치기,운전연습의 리듬이 습관의 일부가 되도록 반복하는 것이 그것이다.
또 일상에서 고정관념처럼 의도와 무관하게 자동적으로 습득하는 것이 있다.
당신은 당사이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다른 신들을 예배하고 있을 수도 있다. 이것은 무의식적으로 당신의 마음이 시온의 노래가 아닌 바빌로니아 노래를 향하게 만든다. 우리는 경쟁하는 예전에 참여하고 있다고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경쟁하는 왕국을 (쇼핑문화,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들어오는 예전형식을) 사랑하는 법을 무의식적으로 배운다.
따라서 의도적이며 형성적인 그리스도의 제사도를 실천하려면 첫째, 우리 행동을 통제하는 적응 무의식의 중요성인식해야 한다. 둘째, 문화적 영향(예전)으로 (신앙)을 변형시키는 중립적이고 무해하다고 여겼던 것을 다시 바라봐야 한다.
이런 식으로 세계와. 우리 문화를 바라보려면
우리가 느끼는 단조로움과 익숙함과 편안함에서 벗어나도록 우리를 흔들어 깨울 전략이 필요하다. 성경에서 "묵시" 문학에서 이 전략을 찾을 수 있다. 묵시 문학은 기존 우리가 알고 있는 예측이 아니라 폭로 즉 주변 현실의 참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