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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 블루환영 (titi77@hanmail.net)
출처 : º··환영(幻影)··º (http://cafe.daum.net/Anill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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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th
그제야 한유가 침대 위로 올라간다.
수울은 뒤늦게 그 위를 오르면서 내심 불안에 젖었다.
(아무리 꼬맹이라지만… -_- 날 너무 남자로 안 보는 거 아냐? -_-;)
하지만 수울은 잔뜩 겁에 질린 한유를 위해 무료서비스까지 베풀었다.
“팔베개 해줄까?”
“응. 미안해.”
“미안하면 베지를 말던가. -_-”
“그럼 안 미안해할래. =_=”
“너… 심하게 쫄았구나?”
“응. =_=;”
수울은 그저 웃었다.
품속에 안긴 한유를 향한 뜨거운 성적욕구를 차디찬 이성으로 억누를 수밖에!
수울은 한쪽 손으로 코를 막고 (여인네의 향을 느끼기 싫어서.) 눈을 질
끈 내리감은 채 입을 열었다.
“내가 재밌는 얘기 해줄까?”
“응. 근데 너 왜 코맹맹이 소리를… 어! 코는 왜 막고 있어?”
“그게… 코가 좀 막혀서 한꺼번에 뚫어보려고. -_-”
“그렇구나.”
수울은 일부러 재미없는 이야기를 꺼내놓았다.
“너… 하루 종일 고개 숙이고 눈물만 뚝뚝 흘리는 게 뭔 줄 아냐?”
“수수께끼야?”
“응.”
“글쎄… 뭐지? 뭐야?”
“역시 맹꽁맹꽁. -_- 수도꼭지잖아.”
“아하, 그렇구나! 잼있다. 또 해봐.”
(씨폴……. 역시 꼬맹이구나. -_-)
수울은 얼른 이야기를 정치 쪽으로 돌려놓았다.
고위 공무원들의 비리와 얄팍한 정책과… 등등 그런 이야기를 늘어놓자,
잠시 후 아기들이 잠을 잘 때처럼 쌔근쌔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휴우.”
한유의 머리를 조심스레 베개로 올려놓은 뒤, 수울은 잠시 테라스 문을
열고 나갔다.
담배를 한 대 피우고 들어와 침대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두 번째 담배… 세 번째 담배… 그리고 양주 몇 잔을 마신 후에야 수울
은 겨우 눈을 붙일 수 있었다.
.
.
은은한 바다 냄새와 눈부시게 방 안을 습격하는 아침 햇살.
수울은 간밤의 피로는 날려버린 듯 밝은 표정으로 창의 커튼을 걷었다.
두 눈을 비비며 몸을 일으키는 한유의 모습이 보인다.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자연광이 한유의 얼굴을 환하게 비춰주었다.
“와아.”
수울이 나지막히 탄성을 내질렀다.
“그래. 이럴 줄 알았어. 이렇게 예쁜 모습일 줄 알았어.”
무슨 영문인지 한유가 고개를 갸우뚱하자, 수울이 가까이 달려왔다.
“널 생각하면 항상 아리다고 했잖아.”
“어? 어.”
“봐. 이렇게 환하고 밝잖아.”
방 안을 가득 채운 햇빛에 의해 한유의 얼굴은 투명하게 반짝거리고 있었다.
헝클어진 머리는 사랑스럽기만 하고, 커다란 눈망울에선 외로운 느낌이
사라지고 천진난만한 순수함이 가득했다.
“수울아. 지금 무슨 소리야?”
“내가 바다로 오자로 한 이유…. 두 가지 이유 중에 하나는, 이렇게 너
보고 싶어서. 동이 트는 햇살 속에서 좀 더 자세히 보고 싶었다고.”
“…….”
“봐. 이렇게… 이렇게 밝은 너잖아.”
어느덧 한유의 입가에도 활짝 미소가 번졌다.
..
한편 그 시간.
세은은 2층 방에서 급한 걸음을 옮겼다.
“오빠. 한숨도 못 자고… 뭘 어떡하려고?”
“권수울 이 자식! 내가 오늘 반쯤 죽여 버리겠어.”
또다시 부엌으로 들어가 프라이팬을 집어 들었다가, 뭔가 맘에 안 드는
듯 세은은 프라이팬을 내려놓고 대신에 우산 통에 꽂힌 우산 하나를 집어
들었다.
이나가 서둘러 뒤따라온다.
“오빠. 그렇게 급하게 그러지 마. 응? 애들 잠이나 좀 깨고 나면… =_=”
“날이 환하게 밝았는데 무슨.”
“오빠. 그럼 문 벌컥 열지 마. 사살 열어. 응? 애들 놀라잖아.”
“…….”
“혹시… 혹시 모르잖아.”
세은은 결국 이나의 말대로 1층 방문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그것도 눈으로 안을 볼 수 있을 정도… 그 정도로만 작게 열었다.
한유는 침대에 앉아 뒷모습을 보이고…
수울은 창가에 가까이 서서 옆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그들의 말소리가 분명하게 들려왔다.
한유가 말했다.
“그럼 두 번째 이유는 뭔데? 니가 나 바다로 데려온 이유. 응?”
“첫 번째 이유도 두 번째 이유도, 바다 자체가 중요한 건 아니고… 이렇
게 멀리 집을 떠나와야만 가능한 거니까.”
“…….”
“음…. 솔직히 말하면 이번에 너 보면서 좀 많이 놀랐다.”
“왜?”
“넌 말야. 나 따라올 때부터 지금까지… 단 한번도 날 의심하지 않으니
까. 정말… 손끝만큼도 날 의심하지 않잖아. 사실… 우리 부모님이라고
해도 나 100% 못 믿어. 그리고 아저씨도 마찬가지야. 근데 넌… 나한테
완전한 믿음을 주잖아.”
“…….”
“대신에 나도… 담배를 태우고 술을 마시고… 그렇게 해서라도 너 완전
하게 지켜주잖아.”
“너 술도 마셨어? =_=”
“꼬맹아. 중요한 건 그게 아니잖아. 사랑은… 지금 내가 너한테 줄 수
있는 사랑은 믿음이야. 키스와 스킨십과 같은 육체적 사랑도 사랑이지
만… 지금 내가 너한테 줄 수 있는 사랑은 믿음이라고. 나… 그 사랑 주
고 싶어서, 그래서 너 데려왔어.”
“…….”
“야. 그런 행복한 표정 말고 -_- 미안한 표정도 좀 지어봐라. 나 밤새
힘들었어.”
“수울아….”
참지 못하고 한유가 수울의 몸을 와락 끌어안는다.
“난 그런 줄도 모르고…. 너 정말 감동이야. 너 나한테 항상 이런 모습
보여줄 거지?”
“아니.”
“…….”
“신혼여행가서도 이런 모습을 기대하진 마라. 존나 피곤해진다. -_-”
“치이.”
“우리 바다 보러 나가자.”
“그래.”
세은과 이나는 후다닥 방문을 닫고 2층으로 튀어갔다.
방 안에서 헉헉 숨을 몰아쉬는 그들의 얼굴에 부끄러운 기색이 역력하다.
이나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우리 아들 정말 감동이다. 그치, 오빠?”
“새끼가 누굴 닮아 저리 성숙한 건지. -_-”
“저기 오빠. 그러고 보니…”
“…….”
“수울이 혹시…”
“…….”
“우리 아들 아닌 거 아냐? =_=a 병원에서 애가 뒤바뀐 거 아니냐고!”
“씨발. 아무리 봐도 수울이는 날 닮았어. -_-”
“에씹. 그나저나 우리 도대체 뭐 한거야? 밤새도록 이 무슨 생쇼냐고!”
“애들 오기 전에 얼른 튀자. -_-”
“근데 오빠.”
“…….”
“갑자기 우리가 너무 타락한 것 같은 느낌이 들어. =_=”
“넌 왜 우리의 사랑을 그딴 식으로 표현하냐?”
“응?”
“사람들은 각자 자기 나이에 맞는 사랑법이 있는 거야. 아까 수울이 말
못 들었냐? 지금 수울이가 한유한테 줄 수 있는 사랑은 믿음이지만, 내가
너한테 줄 수 있는 사랑은… 믿음을 포함하여 너무 많구나. -_-”
“예를 들면?”
“이런 거.”
능숙한 솜씨로 세은의 입술이 이나의 입술을 부드럽게 훑었다.
뜨거운 키스….
깊고 강렬한 자극에 붉어진 이나의 얼굴을 보며 세은이 말했다.
“너랑 나랑 서로 좋아하잖아. 미칠 듯이 좋아하잖아. 그럼 이렇게 미칠
듯이 표현하면 되는 거야. 우린… 나이도 많고 이미 결혼한 사이잖아.”
“그렇구나. =_=”
세은이 이나의 볼을 툭 건드리며 한 마디 덧붙였다.
“이럴 줄 알았으면 어제 너랑 뜨겁게 키스하는 건데. 현재 우리의 사랑
은 뭔 줄 아냐?”
“뭐, 뭔데?”
“열정.”
세은이 무표정한 얼굴에 가벼운 미소를 담는다.
그렇게 해서 두 사람은 쥐도 새도 수울도 모르게, 짐을 들고 조용히 별
장을 빠져나왔다.
과연 수울과 한유는…
그 날 밤을 귀신도 아닌, 세은과 이나 부부와 함께 별장에서 묵었다는
그 엄청나고도 황당한 사실을 알 수 있을까? -_- -_-
..
바닷가 모래사장.
밀려왔다 다시 멀어지는 파도의 흐름을 보며 수울과 한유는 한동안 침묵
을 지켰다.
갑자기 한유가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든다.
“수울아. 이 반지 진짜 신기해. 진짜로 소원 이루어주잖아. 진짜로 사랑
이루어주잖아.”
한유의 손에 들린 건 행운의 반지였다.
“그치만 난, 울 엄마처럼 일찍 죽진 않을 거야. 왜냐하면… 옛날에 나
너한테 거북이 목걸이 선물하면서… 니 목숨이랑 내 목숨이랑 똑같이 반
반으로 나눴거든.”
너무나 환한 모습으로 수울이 말했다.
“니가 일찍 죽을까봐 걱정 같은 거 안 해. 꼬맹아. 내가 우리 아버진 줄
아냐? 너 일찍 죽어도 나 하나도 안 무서워.”
“전혀 안 슬퍼?”
“응. 하나도 안 슬퍼.”
“치이. 나쁜 술!”
“니가 죽으면 나도 따라죽을까?”
“정말?”
“바보. 내가 미쳤냐? 그깟 사랑 때문에 부모님을 배신하고 먼저 떠나게.”
“그래. 난 그깟 사랑이다, 뭐.”
“나… 너 보면서 웃으며 살 거야. 내가 꼭 무덤은 만들어줄게. -_- 그래
서 너 보고 싶으면 니가 있는 그 곳에 찾아갈 거야. 가서 꽃도 선물하고
환하게 웃어 보여야지.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곁에서 끊임없이 니
얘기해줘야지. 참 맹한 녀석인데, 그래도 웃는 모습 하나는 그럭저럭 봐
줄만 했다고. -_-”
“너 이런 식으로 나올래? =_=”
결국 웃음을 터트리며 수울이 한유의 손을 꼭 붙잡았다.
“그러니까 많이 웃으라고….”
“…….”
“니가 죽어도, 사람들이 너 평생 잊지 않게 그렇게 해줄 자신은 있어.”
“그렇게 말하니까 나 꼭 시한부 인생 같잖아. 열라 우울해. =_=”
수울은 여전히 장난기 어린 모습이다.
“니 목숨이랑 내 목숨이랑 반반으로 나누는 덕분에… 정말로 니 목숨 더
줄었으면 어떡할래?”
“거꾸로 니 목숨이 더 줄었으면 어떡할 건데! 원래 너 되게 장수할 팔잔
데 내가 그거 빼앗아간 거면 어떡할 건데! -_-”
“꼬맹아. 니 생각엔… 남자가 먼저 죽는 게 좋을 것 같아? 여자가 먼저
죽는 게 좋을 것 같아?”
“둘 다 싫어. 똑같이 죽는 게 좋아.”
“그럼 둘 다 비명횡사하라고? -_-”
“그래도 혼자 남겨지는 건 슬프잖아.”
“시끄럽고… -_- 우리 세상 사람들한테 선물이나 하나 남겨주고 떠날까?”
“무슨 선물?”
“정말로 그 반지가 사랑을 불러다주는 거라면… 그 반지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많을 것 같지 않아? 여기다 묻어두면…”
연신 밝은 표정으로 말을 하던 수울의 얼굴이 잠시 어두워졌다.
“참…. 너 그 반지, 엄마 유품인 셈이지?”
하지만 고개를 갸우뚱하던 한유의 얼굴은 그다지 어두워 보이지 않았다.
“전설주야….”
“…….”
“하나… 둘… 셋….”
한유는 의미를 알 수 없는 호령이 끝남과 동시에, 작은 손으로 열심히
땅굴을 파기 시작했다.
간밤의 비로 인해 젖은 모래가 수울의 얼굴을 향해 무작위로 날아갔다.
“아야! 너 죽었어. 눈에 들어갔잖아.”
“꺅~ 수울아. 나 옷 다 버려.”
장난을 치며 열심히 땅굴을 판 두 사람의 손은 차가운 바람에 의해 점차
로 얼어붙었다. 한유가 손을 얼굴 앞에다 대고 호호 입김을 불어대자, 수
울도 같이 한유의 손을 붙잡고 호호 입김을 불어주었다.
서로 손을 꼭 맞잡은 채 상당히 밀착된 자세를 유지하는 동안, 한유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끼고 고개를 숙였다.
“이, 이만하면 됐겠지? 너무 깊게 파면 반지 못 찾을 수도 있으니까…
어머!”
수울의 손이 한유의 턱을 살짝 들어올렸다.
흙이 묻은 손이라 약간 까끌까끌한 느낌이 전해져오는데, 수울의 얼굴이
가까이 다가오는 모습에 한유는 정신이 혼란해지는 것을 느끼고 눈을 질
끈 감아버렸다.
그런데 너무 조용하기만 하다.
아무런 말도, 아무런 입술의 느낌도 없다.
한유가 민망함에 한쪽 눈을 가늘게 떠보는데, 수울의 잘생긴 얼굴이 보였다.
빤히 한유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어렴풋이 미소를 짓는 모습에, 두 눈동
자는 반짝반짝 장난기가 가득했다.
한유가 어쩔 줄 몰라 하며 고개를 옆으로 돌리려는 찰나,
수울의 손가락이 한유의 이마를 가볍게 밀었다.
그 바람에 한유는 무게중심을 잃고 그만 모래사장에 철퍼덕 드러눕고 말았다.
깜짝 놀란 한유가 몸을 일으키려는데, 또다시 수울의 얼굴이 다가온다.
너무 잘생기고 사랑스러운 그 얼굴에 심장이 쿵쾅거리며 제 멋대로 뛰기
시작한다.
하지만 한유는 이번에는 눈을 감지 않았다. 또다시 수울의 장난에 말려
들 것 같아 눈에 불끈 힘에 주고 수울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수울이 약간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어 보인다.
“눈 감아!”
“엉?”
“키스하는데 누가 그렇게 눈뜨고 있으래?”
“키, 키스? 그치만 너… =_= 니가 주는 사랑은 믿음이라며?”
“딱 2번(키스)까지만 허락해라. -_- 알았냐?”
“싫어!”
“왜 싫어?!”
“그, 그냥 싫어! 왜… 싫으면 안 되는 거야!”
한유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바보…. 눈 감아! 안 그러면 다시 야광별의 저주가 시작될 거야. -_-”
“치이.”
한유는 불안한 듯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망설이고 있는데 수울의 얼굴
이 가까이 다가오자 순간 겁이 나 두 눈을 감아버렸다.
곧 수울의 차가운 입술이 얼굴에 느껴졌다.
이마와 콧등….
간지러운 듯 한유가 얼굴을 흔드는데, 그 순간 수울의 입술이 입술로 다
가왔다.
첫키스였다.
입술과 입술이 만나고, 그보다 더 깊은 무언가가 느껴졌다.
굉장히 촉촉하고 부드러운….
한유는 부끄러운 마음에 자신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리며 더 깊이 눈을
감았다.
다시는 눈을 뜨지 못할 것만 같다.
하지만 수울이 손등으로 볼을 툭 건드렸기 때문에 어쩔 수없이 눈을 떴다.
수울이 귀엽게 웃었다.
“너무 즐기는 거 아냐?”
“뭐야!”
사실 첫키스는 생각만큼 그렇게 황홀하지 않다고 한다.
왜냐하면 남자와 여자의 사랑 본능이 다르고, 대부분의 남자들이 자신의
성적 본능을 채우기 위해 서투른 솜씨로 키스를 감행하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여자를 배려하지 않고 들이밀기 때문이다. -_-;
하지만 한유는 첫키스에서 다른 느낌을 받았다.
한유가 성적 욕구에 메말라하는 여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감칠맛 나는
느낌을 받았다고나 할까?
수울이 한유의 옆자리에 드러누웠다.
“너 처음이라서 봐준 거야.”
“나쁜 술! 내가 처음인지 니가 어떻게 알아?”
“그냥 찍었는데. -_- 근데 사람들은 내가 무슨 말만 하면 움찔움찔 놀란다.”
“진짜 나쁜 술!”
“아~ 행복하다.”
한유는 곁눈질로 수울의 얼굴을 보았다. 정말로 행복에 겨운 얼굴이다.
“그렇게 좋아?”
“어. 이상하게 니가 좋다.”
“…….”
“참! 우리 뭐하다 말지 않았어?”
수울이 몸을 벌떡 일으키자, 한유도 따라서 일어났다.
맞다. 행운의 반지!
두 사람은 행운의 반지를 정성들여 땅속에 묻고, 그 위를 다시 모래로
덮었다.
언젠가 그 반지를 발견한 사람이 진심으로 행복해지기를 기대하며….
.
.
한유를 데려다주고 집 앞에 와서 수울은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이제 아버지한테 맞아죽을 일만 남았구나.”
친구의 딸내미를 데리고 가서 하룻밤을 꼴딱 세고 왔으니… -_- 오로지
죽음뿐이로다.
현관문을 들어서며 수울은 가슴을 한번 쓸어내리고 다리도 쓱싹쓱싹 문
지르며 맞아죽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_-;
“이 인간 (아버지) 잠도 안 자고 거실에서 밤을 샜을지 몰라. -_-”
살짝 눈치를 보며 집 안으로 들어섰다.
역시나 아버지의 모습이 보인다.
1인용 소파에 앉아, 동안(童顔)에 어울리지 않게 신문을 보고 있다.
“아버지. 저 왔어요.”
“…….”
“아버지. 일단… 옷부터 갈아입고 내려오면 안 될까요? 그 다음에 제가
맞아줄게요.”
(일단 내 방에 올라가서 내복을 존나 껴입고 내려와야 돼. -_-)
“뭐, 맞아주겠다고? -_-”
드디어 세은이 어이가 없다는 듯이 입을 연다.
“황송하게도 맞아주겠다고?”
“네. -_-”
“그럴 필요 없고… 너 잠깐 이리 와서…”
세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수울은 재빨리 몸을 움직여 소파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네. 앉았어요.”
모든 사정을 다 알고 있는 세은은 차마 화를 내지도 못하겠고, 그렇다고
그냥 용서해주기에는 왠지 모르게 부아가 치밀었다.
그리하여… -_-
“바다 구경은 잘 하고 왔냐? -_-”
뜨끔했지만 크게 내색하지 않은 채 수울은 세은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네. 잘 하고 왔어요.”
“그래? 내 별장에서 실컷 놀다왔으니까 숙박비나 내라.”
세은은 내심 아들놈이 놀라는 얼굴을 보고 싶었지만, 이 놈은 어떻게 된
게 계속해서 태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숙박비요? 그거 얼마나 드려요? 제가 별장에서 묵어본 건 이번이 첨이
라…. 한달 용돈 까면 되나? -_-”
“씨발. 한유랑 같이 방 쓴 주제에 까불어댈래!”
“숙박비가 비쌀 것 같아 방 하나만 썼죠. 왜, 뭐가 잘못됐어요? 둘 사이
에 아무 일도 없었다는 건 아버지가 더 잘 알고 계신 것 같은데.”
“씨발. -_- 왜 하필이면 1층 방 썼냐?”
이쯤 되자 수울의 표정도 변화를 맞이했다.
“어떻게 알아요?”
“어떻게 알았냐고? -_- 권수울. 니가 아무리 까불어봤자 넌 부처님 손
바닥이야. 한번만 더 그딴 짓 했다간 국물도 없을 줄 알아라.”
수울이 갑자기 기분 나쁜 표정을 지어낸다.
“씨…. 저한테 사람 붙이셨어요?”
세은의 무표정한 얼굴이 약간의 희색 빛을 띠었다.
“쌀도 없는 집에, 너한테 붙일 사람이 어딨냐?”
“그럼…”
“별장의 귀신이 어젯밤 꿈에 나타났다면 믿겠냐?”
세은은 신문을 반으로 접으며 방으로 사라지고, 수울은 내심 깊은 생각
에 빠졌다.
“씨폴. 한유가 들었다던 그 귀신 소리가… 진짜란 말야?! 말도 안돼.”
수울은 2층 계단을 올라가 취안의 이름을 크게 불러댔다.
“설취안!!!!”
일요일 단잠에 빠져있던 취안이 맹한 얼굴로 방문을 열었다.
“뭐야, 전설주?”
“너 빨랑 우리 아버지 정상으로 돌려드려라. 아무래도 상태가 별로 안
좋은 것 같다.”
“상태가 안 좋다니?”
“귀신과 대화를 나누는 것 같기도 하고… -_-”
취안이 대답하기도 귀찮다는 듯이 방문을 닫으려고 하자, 수울이 방문을
발로 뻥하고 걷어찼다.
“나 안 미쳤어. 내가 미친 게 아니라 울 아버지가 이상하다니까!”
“내 눈엔…”
“너… 나한테 맞아본 적 없지? -_-”
“그러니까 내 말은… 돌려드린다고. 됐지?”
수울의 그 잘난 머리도, 결국 황당한 별장 사건을 추리하는 데는 무리가
따랐던 모양이다. -_-;
.
.
부산한 월요일 아침의 풍경이다.
“오빠! 지각이야. 지각! 내 가방 어디 갔지? 아, 여깄다!”
“내 가방은? 바보탱아! 그건 내 가방이잖아.”
“그렇구나. 내 가방은 어디 간 거야? =_=”
이나는 부산을 떨어대며 온 방안을 헤집고 다녔다.
침대 밑도 들여다보고, 장롱에 달려있는 문이란 문은 다 열어젖히고, 서
랍이란 서랍도 다 열어보았다.
“꺄아! 여기 있다. 오빠. 양말도 받아.”
몹시 어수선산란한 분위기 속에 조용히 방문이 열렸다.
그리고 취안의 좍 깔린 목소리가 방 안의 시끄러운 소란을 조용히 잠재웠다.
“아저씨. 아줌마. 오늘부터 학교 안 가도 돼요.”
“엉? 그게 무슨 소리야? 우리 학교에서 짤렸어? =_=”
“그게 아니라… 두 분 다 거울 좀 보세요.”
갑자기 가슴이 두근거린다.
그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왠지 알 것 같은 이 느낌….
세은과 이나는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았다.
그렇다.
이제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왔다.
다시 아이들의 아버지, 어머니가 될 수 있다는 사실에 기쁘긴 하지만 왠
지 모르게 가슴이 쓰라리다. 아쉬운 느낌에 이나는 자신도 모르게 눈물
한 방울을 밖으로 흘려보내고 말았다.
“오빠. 아니, 여보! 나 갑자기 너무 늙어 보여. 그래서 괜히… 괜히 슬프
다. 왜 그렇지?”
하지만 세은의 얼굴에는 부드러운 미소가 흘렀다.
“내 마누라가 어디가 늙었다고 그래.”
“그냥… 갑자기 기분이 묘해.”
“젊은 것도 좋지만… 각자 있어야 할 자리에 있는 거… 그게 가장 값지
고 아름다운 거야. 아버지는 아버지로서, 어머니는 어머니로서, 자식은…
또 자식들 그만의 모습으로…. 왜 그걸 몰라?”
“…….”
“내 눈에는… 당신이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여자야.”
“정말?”
“응.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꽤나 로맨틱한 분위기속에, 왠지 자리를 피해줘야 할 것 같아 취안이 걸
음을 옮기는데, 갑자기 세은의 목소리가 그를 붙잡는다.
“야. 설취안! 너 잠깐 서라.”
좀 전에 이나를 향해 달콤하게 구슬리던 목소리하고는 차원이 다르다.
몹시 살벌하다. -_-;
진짜 권세은이란 인간은, 세상에서 자기 마누라가 제일인가 보다.
쯧…. 도른(돌은) 사람! =_=
“왜요, 아저씨? 나 잘못한 거 없는데요. 아저씨가 빨리 돌려달라고 그랬
잖아요.”
“그래도… 이때까지 들은 척 만 척 하더니 왜 갑자기… -_-”
취안이 속눈썹을 살짝 깔았다 다시 올려 뜬다.
“아저씨.”
“뭐냐?”
“이제 전설주 이해하시죠?”
“꼭 그렇다고 말하기는 뭐하지만…”
“전 알아요.”
“…….”
“아저씨가 전설주 정말로 사랑하고, 이제는 정말로 믿음까지 준다는
거…. 아저씨도 아줌마도, 바로 옆에서 전설주 지켜봤잖아요. 전설주가 어
떤 놈인지 충분히 알잖아요.”
그래. 세은도 안다.
수울이란 놈은, 세은의 젊은 시절에 비하면 오히려 양반이란 사실을 알
고 있다.
정말로 수울을 믿는다. 믿게 되었다.
“설취안. 내가 아들놈 야단치는 게 그렇게 못마땅했냐? 그래서 우릴 젊
게 만들어서, 반성 좀 해보라고… 그런 거였냐?”
하지만 취안은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요. 부러워서 그랬어요. 야단칠 부모가 있다는 게 존나 부러워서
장난 한번 쳐봤어요. 왜요? 기분 나빠요?!”
약간의 침묵….
취안이 곧 몸을 돌려 방을 나가는데, 어느새 세은의 손바닥이 날아와 취
안의 대갈통을 정확하게 휘갈겼다.
빠악_! 하고 돌 깨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씨발. 너 왜 학교 안 가? 지금 시간이 몇 신데 개기고 있어!”
취안은 아픈 머리를 감싸 쥐며 뻔뻔스럽게 대답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오늘 하루 쉬죠. -_-”
세은의 손바닥이 또다시 날아와 후려칠 듯하자 취안은 옆으로 몸을 비켰다.
“아씨. 아저씨. 왜 이래요?”
“학생이 왜 학교를 안 가?!”
“그럴 수도 있죠. 아저씨가 무슨 상관…”
이번에는 세은이 골프채를 들어 취안의 옆구리를 후려쳤다.
“아야! 아저씨 왜 그래요?! =_=”
“누가 니 아저씨야?!!!! 내가 동네 아저씨야?!!!!!”
“그럼 아줌마라 불러요? =_=a”
세은이 새까만 눈망울을 들어 취안의 눈을 지그시 바라본다.
“너 이제 내 자식이야. 수형! 다이! 수울! 이 놈들 말고도, 설취안 너도
이제 내 자식이라고! 그러니까 얼른 아버지 말 들어! -_-”
“네에?!”
“학교 갈 거야?! 말 거야?!”
세은이 골프채로 취안의 다리를 무작위로 공격하자, 취안은 맞기 싫은
일념 하나로 요리조리 팔딱팔딱 잘도 도망 다녔다.
“아저씨. 살려줘요. 나 학교 간다구요. 학교 가!”
“씨바. 아직도 아저씨?! -_-”
취안은 순간 동작을 멈췄다.
“저… 저… 지, 진짜로… 아버지라고 부르…”
“이 놈이 미쳤나!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그럼 뭐라고 부를 건데? 엉?!”
세은의 골프채가 머리를 향해 날아왔다. =_=;
“아버지!!!! 잘못했어요. 저 학교 갈게요.”
그제야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세은이 골프채를 내려놓는다.
“얼른 가라.”
“네. =_=”
취안은 후다닥 2층으로 올라가 가방을 챙겼다.
다시 아래로 내려오니, 세은과 이나는 현관 앞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들아. 내일도 지각하면 죽음인 거 알지? -_-”
“네. 아, 아버지…. =_=”
부끄러운 듯 취안은 발바닥에 불이 나게 집을 뛰쳐나갔다.
그러다 갑자기 무언가 생각난 듯 취안이 다시 집 안으로 들어왔다.
의아한 표정의 세은과 이나를 향해 취안은 정말 엉뚱한 말을 남겼다.
“두 분 다 다시 정상으로 돌려드린 거, 사실은 주부습진 때문이에요. 제
손 좀 보시라구요. 나 혼자 빨래하고 청소하고 했더니…. -_-; 아줌마. 이
제 일 좀 하세요.”
그 말만 남기고 휘리릭~ 사라지려는데, 누군가 취안의 옷자락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돌아보니 몹시 미간을 찌푸리고 있는 세은의 모습이 보
인다.
“왜, 왜요?”
“너 방금 뭐라고 그랬냐? -_-”
“제 손에 주부습진 생겼다고요. 왜요?”
“그거 말고.”
“잘 모르겠는데요.”
“왜 엄마가 아니라 아줌마냐? -_-”
“아하~ =_=; 그렇죠. 이제 엄마죠. 저… 학교 많이 늦었는데….”
취안이 손목시계도 안 달린 손목을 내려다본다. 헐리웃액션? -_-a
“설취안. 그러니까 인사 똑바로 하고 다녀와야지.”
“아, 아버지. 어머니… 저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취안은 고개도 들지 못하고 그대로 문밖으로 사라졌다.
학교를 향해 달려가는 그의 얼굴에는 감동의 눈물이 반짝하고 빛을 발했다.
이제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부모님에게 애써 돌아가지 않아도 된다.
서로에게 스트레스를 주면서 더 이상 힘들어할 이유가 사라졌다.
그렇다고 혼자 외롭게 살지 않아도 된다.
여기 진짜 부모님이 계시지 않은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건 똑같지만, 완전한 자식으로 인정하는 부모님
이 계시지 않은가!
“아버지… 어머니…”
취안의 붉은 입술은 계속해서 그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
취안이 사라지자마자, 이나는 환한 웃음을 터트리며 세은에게 말했다.
“여보. 당신 진짜 최고야. 최고!”
“내가 원래 좀… -_-”
“어쩌면 애들 나이차가… 봐봐! 수형이가 대학교 1학년. 다이가 고3. 취
안이가 고2. 수울이가 고1…. 진짜 환상적이지 않어?”
“나이 때문에 그런 거였어? -_-”
“멋지잖아!”
“그나저나 새아들은 맘에 들어?”
“당연하지. 그나저나 몇년만 지나면 대학생이 줄줄이… 안 되겠다. 여보.
앞으론 돈 좀 부지런히 벌어.”
“그래야지. -_-;”
2004. 11. 18....... by. ill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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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쉿비밀이야
소설
▣ 환상 SERIES Ⅱ ▣ ─ 술. 이. 땡. 기. 다. ─ 71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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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오예~~ ㅠ_ㅠ 이런 운이.. ㅠ_ㅠ 지금 올리시는 중이신가봐요.. ㅎㅎ
새벽 1시넘어서 올리시다니 ㅠ_ㅜ열정 대단해요 ~
>ㅁ<꺄꺄 넘넘재밌어요!!
oh~~yes 너무 베리 굿ㅋㅋ
취안이~인생에도 드디어 꽃이 피는군요~ 크흑!!!감동이에요..ㅜㅜ
아아ㅠ 보면서 웃음이 실실;;; 지금 학교인데ㅠㅠ 허헛;;; 환영님 감동이에요 -0-!! 취안아~ 축하해!! ^-^
꺄아 나도 양녀로 받아줘요.. 흠.. -_-.. 안됨 가정부라도 ㅠ_ㅜ
어~`이젠~~` 한편만보면~` 술이두~``못보네``` 담에더 좋은글써주세요,,,꼭바야디
역시 환영님은 내맘을 잘아신다니깐.....가람이 맘에 행복이 가득이네요.....^^
역시 환영님 소설은 무언가 감동을 주는 소설 같아요 ...^^
대학생이 줄줄이+ㅅ+!!
으아~ 환영님 짱>_< 이나귀여워요!헤헤
진짜네...-_-대4,대3,대2,대1 순서대로~.~
세은아 돈 많이 벌어ㅠㅠ 취안이는 좋겟네.세은이같은 아빠 있어서ㅠㅠ
쌀도없는집에....=_= 하하 많이 가난해졌나?!ㅠㅋㅋ 이번편에는 어찌 세은이가 더 멋져 보이네요 ♥ㅎ
ㅋㅋㅋㅋㅋ 진짜 재미썽요 ㅋㅋ
주부습진 ㅋ.. 부지런히 돈좀 벌어 >_ 아아 너무 웃겨요
ㅋㅋ 이나정말 귀엽네요 ㅋㅋㅋ
까아>_< 역시, 세은이야..
또 폭소해버렸습니다. ㅋㅋ 이나와세은이가 정상적인얼굴(??)로 돌아온게 주부습진이라니.ㅎㅎ
환영님 진짜 수고하셨어요...
ㅎ 진짜 잼써요... >ㅇ<// 짱!
엄청난 연연생들~~ㅋㅋㅋㅋㅋ
정말 재미있었어요'ㅁ'//
20살,19살,18살,17살,,,ㅋㅋㅋ
너무너무 잘됐고 재밌다!!
ㅋㅋ 세은이 넘 능력좋다~~^^;
세은,당신의 능력은.......쫌 줄이세요...(원본 : 당신의 능력을 보여주세요 )하하....줄이셈!않그러면 7공주베이비가탄생할수도...하하....=ㅁ=;;;
ㅎㅎㅎㅎ 진짜 쿨하다~ 멋이따~
너무 멋있다>_ <ㅎ
세은님 능력 좋으신데요// 아이들을.. 줄줄이..ㅋ
ㅎㅎ오늘 학교셤 끝났는데요~집에 오자마자 수울이 보러왔어요,..ㅋㅋㅋ역시 넘 재미있어요,,
꺅~세은씌 짱~>ㅁ <이나씌도 짱짱짱!
꼬리말 달아주신 모든 분들 정말 감사드립니다. ^ ^
아~ 정말 감동감동~ 재미재미~ 빠지는게 업네요~ 환영님 ,짱입니당~
세은과 이나한테 감동 이빠이 먹었어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