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는 자녀 교육을 위해 기러기 생활을 감수하는 한국형 신종 별거 가정을 종종 볼 수 있다. 1년에 한두 번 그것도 기껏 1-2주만을 만나고 헤어지는 가족을 볼 때면 새삼 한국 교육열을 실감하게 된다. 부모가 못 먹는 한이 있더라도 자식 교육만은 시키는 부모들의 심정을 어찌 다 헤아릴 수 있을까?
중고생을 둔 40대 한 가장은 이렇게 토로한다. 자식 교육은 때가 있기 때문에 지금 놓치면 부모와 같은 인생을 살게 된다고. 때문에 허리띠를 졸라매서라도 자식만큼은 외국에서 공부시켜야 한다고. 그리고 그는 홀로 오피스텔에서 외로움을 달래며 생활하고 있었다.
자녀 교육을 ‘투자 1순위’로 생각하는 현실을 비난만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교육비에 대한 발상은 지금부터라도 바꿀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다. 영어권 나라에서 조기 유학의 교육 효과는 논외에 두더라도, 가족 생이별을 감수하면서 막대한 유학 경비를 대체 어떻게 감당하는지, 더구나 재테크는 고사하고 수입의 대부분을 교육비로만 지출한다면 노후 준비는 어떻게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여전히 한국의 부모들은 자식 교육만 제대로 하면 노후는 어떻게든 나중에 해결될 것이라는 막연한 환상을 갖고 있다. 과연 그럴까?
영어권 나라에서 선진 교육을 받기만 하면 자녀가 금의환향할 수 있거나, 성공할 확률이 높다는 기대에는 과장이 많은 듯 하다. 빠듯한 예산에서 떠난 유학은 운신의 폭을 제한하기 때문에 자녀가 경험하고 배울 수 있는 환경에도 한계가 있을 뿐더러, 금전적으로 열위에 놓인 자녀는 상대적 열등감을 느끼면서 아버지의 희생을 이해하기 보다는 본인이 누리지 못하는 것에 대한 박탈감을 더 강하게 느낄 수 있다.
한편, 가족 행복의 균형이 자칫 깨질 수도 있다. 설령 풍요로운 환경에서 교육 받는 자녀의 만족도는 높을지라도 그만큼 경제적 희생과 외로움을 감수해야 하는 가장의 고충은 크고, 생활 만족도는 떨어지기가 쉽상이다. 가족의 몇몇의 구성원만이 특별한 사치를 누리는 것보다 가족 모두가 골고루 행복함을 느끼는 것이 보다 가정의 균형 잡힌 행복이 아닐까?
때문에 분수에 넘치는 교육비 지출은 삼가야 한다. 그 대신 노후 대비를 위해 필요한 자금을 계산하고, 그 자금을 모으기 위한 월평균 저축액을 제외한 후, 남은 예산 범위 내에서 교육비 지출을 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가족의 행복을 지키는 길이다. 일반적으로 40대에는 소득이 올라가지만 고정지출 늘어나기 때문에 여유자금은 과거보다 훨씬 줄어든다. 더구나 막대한 유학경비는 지속적으로 발생하기 때문에 빡빡한 삶을 살아가다가 실업, 급여감소, 질병 등 변동요인만 발생하면 쉽게 파산상태에 이를 수 있다.
여기서, 교육의 다른 면도 고려해 보자. 부모의 막대한 희생을 언젠가 자식이 모두 알아주리라는 주리라는 기대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 무리를 해서라도 유학을 보낸 부모는 자식이라면 무조건 들어주는 환경을 통해 자녀가 독립하는 기회를 주지 않았고, 평생 부모가 자식을 책임 질 수 밖에 없는 구조를 부모가 스스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런 환경을 통해 키워진 자녀는 부모의 계속적이고 전폭적인 지원을 기대하기가 쉽다. 설령 질 좋은 교육은 받을 수 있을지 몰라도 언제까지나 부모의 뒷받침만을 기대하는 자녀로 키운다면 결국 부모가 설 곳은 좁아지지 않을까?
인제대 서울백병원 신경정신과 우종민(禹鍾敏) 교수는 “심리적으로 가장과 자식이 상호의존적인 상태에서 가장의 재정적 뒷바라지를 서로가 ‘애정의 증표’로 착각하곤 한다”며 “이런 관계가 지속되면 자식이 성장한 뒤에도 아버지에게 의존하는 걸 당연시하게 된다”고 말한다.
여기서 현실적인 결과를 예상해 보자. 최근 유학생의 취업 현실은 미국에서 유학하고 돌아 오더라도 다수가 대기업에 취업을 한다. 많은 유학생과 교포들이 돌아오는 현실에서 유학생의 메리트가 크게 감소한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자녀가 취업은 했지만 경제적으로 안정되지 않았을 때, 자신의 교육비로 인해 노후 준비가 전혀 안 된 부모를 보면서 경제적, 심리적 부담을 느끼지는 않을까? 반면, 경제적 정신적 희생을 감수하고 무리한 유학투자를 감행한 부모가 자녀에게 기대치가 높아지는 것이 인지상정인 것을 감안한다면, 부모의 고된 삶을 보상 받지 못하는 노후에는 서글픈 생각일 들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때문에 설령 지금 당장은 수치상으로는 매월 유학 경비를 감당할 수 있을지라도, 장기적인 유학 경비와 부부의 노후 자금을 동시에 준비할 수 없다면 유학을 결정하기 전 반드시 재고해 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가족의 희생을 감수하고 투자한 자녀의 조기유학이 가족의 행복을 가져오는 유일한 길은 아닐 것이다.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