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의 열방통치
삼하 8장 1-14절
주요내용 = 그리스도 승리론
오늘은 다윗의 열방통치라는 제목입니다.
본문은 다윗이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열방을 정복하여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강력한 통치자가 된 것을 보여줍니다. 이들은 7:1의 "사방의 모든 대적"으로 이스라엘을 괴롭히던 대적들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본문은 영적으로 그리스도의 통치의 권세를 보여줍니다.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셔서 모든 악의 세력들을 십자가로 못박으시고 부활하심으로 그것을 다 지배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을 깊이 깨닫고 악의 세력들을 모두 다 정복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1.그리스도께서는 마귀의 세력을 정복하셨습니다.
1절 "이 후에 다윗이 블레셋 사람을 쳐서 항복 받고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메덱암마를 빼앗으니라"
제가 블레셋이 마귀를 예표한다고 했지요?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니지만 여기서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여기 블레셋의 메덱암마가 어디일까요? 메덱암마는 '어머니의 굴레'라는 뜻으로 당시 한 나라의 수도를 '어머니'라고 불렀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도 어머니라고 불렀습니다(갈4:26). 그러니까 메덱암마는 블레셋의 다섯 성읍의 주도권을 장악했던 수도 가드를 가리킵니다. 그런데 굴레란 그냥 통치가 아니라 절대적으로 종속되어 있음을 뜻합니다. 그러니까 다윗이 메덱암마를 빼앗았다는 것은 블레셋을 모두 정복한 것과 같습니다.
성경이 무엇을 가르쳐 주려고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보여주실까요? 이것은 창3:15의 성취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마귀를 이기심으로 악령의 모든 세력을 다 정복하셨습니다. 악령의 세력이라 함은 대장은 사단 마귀입니다. 그 아래 무수한 귀신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악령의 세력은 그 머리만 이기면 승패는 이미 판가름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머리에 철저히 종속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마치 우리가 예수 없이는 아무런 능력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
전에 다윗도 블레셋을 쳐부술 때 꼭 하나를 상대했습니다. 그 많은 적군 중에 한 사람인 골리앗, 그리고 그 큰 골리앗의 몸집 중 머리, 그 중에 한 중앙인 이마를 골라서 깨뜨렸습니다. 그러자 그 막강하던 블레셋 군대들은 오합지졸이 되어 이스라엘에 쫓겨 가드와 에그론까지 수십키로미터 길가에 시체더미가 되지 않았습니까? 그러므로 악령의 세력이 앞 길을 막아도 이제는 예수 공로 믿고 말씀의 칼날로 치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므로 예수 안에서 사단을 이겼다고 선언하시고 복음에 견고히 서시기 바랍니다.
2.예수님은 원수된 죄의 옛사람을 정복하셨습니다.
2절 "다윗이 또 모압을 쳐서 저희로 땅에 엎드리게 하고 줄로 재어 그 두 줄 길이의 사람은 죽이고 한 줄 길이의 사람은 살리니 모압 사람이 다윗의 종이 되어 조공을 바치니라"
여기 다윗은 모압을 칠 때 잔인하도록 무서운 방법을 썼습니다. 사람의 키를 줄로 재어서 한 자 이상의 사람은 모두 죽였습니다. 그래서 모압을 어린이의 나라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랬더니 모압이 다윗의 종이 되어 고분고분 조공을 바쳤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을 한 번 상상해 보십시오. 그들이 살겠노라고 한 치라도 작게 보이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겠는가를 말입니다. 어느 부분을 잘라서라도 작게만 만들어 살 수만 있다면 그들은 했을 것입니다. 그들의 몸부림치는 그 아우성이 귓전에 들리는 듯합니다.
우리는 그 간절한 심정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 저를 어린이가 되게 해 주세요. 저를 작게 해 주세요. 낮아지게 해 주세요. 어린이처럼 순종하길 원합니다. 어린이처럼 받들기를 원합니다. 저를 완전한 어린이가 되게 해 주세요" 이러한 몸부림이 있을 때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실까요? 그리고 우리가 얼마나 놀랍게 변화할까요?
예수님께서도 지금 어린이의 나라로 만드시는 일을 하고 계십니다. 모압을 어린이의 나라로 만들기 위해 모두 눕혀 놓고 줄로 잿듯 예수님께서도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 못박히셨고 성령께서 이를 우리에게 적용하고 계십니다. 롬6:6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하지 아니하려 함이라" 했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완악함을 버리지 않을 때는 줄로 재어 강제로 자르시듯 연단을 통하여 어린이가 되게 하십니다. 마치 야곱의 환도뼈를 치시듯 말입니다.
성경은 갓난아이는 죄를 알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물론 죄와 자아는 구분된다고 봅니다. 그러나 작용면에서는 서로 협력합니다. 즉 어린이가 죄를 알지 못한다는 것은 원죄가 없다는 뜻이 아니라 자기를 주장하여 죄의 길에 행하는 자아적인 면이 없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어린아이와 같은 자아처리가 필요합니다. 천국은 자기 십자가가 필수입니다. 이 자아처리가 되어야 모압이 종이 되듯 하나님께서 자유롭게 쓰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교회에는 어린이만 있고 어른은 없는 교회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러기 위해 죄된 자아를 십자가에 늘 넘기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합니다.
3.예수님께서는 세상도 십자가에 못박으셨습니다.
3-4절 "르홉의 아들 소바 왕 하닷에셀이 자기 권세를 회복하려고 유브라데강으로 갈 때에 다윗이 저를 쳐서 그 마병 일천 칠백과 보병 이만을 사로잡고 병거 일백승의 말만 남기고 그 외의 병거의 말은 다 발의 힘줄을 끊었더니"
여기 르홉은 '넓은 공터, 광장'이라는 뜻인데 공허하고 넓은 곳은 어디일까요? 그것은 세상입니다. 그런데 그의 아들 하닷에셀의 하닷은 수리아의 태양신의 이름입니다. 성경에 우상은 탐욕의 상징입니다. 그러니까 르홉의 아들 하닷에셀은 세상적인 탐욕 즉 세상사랑 세상정욕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이들이 자기의 권세를 회복하려고 유브라데강으로 갔습니다. 유브라데는 에덴동산 천국의 상징입니다. 그런데 세상과 에덴이 만나면 큰 문제가 생깁니다. 이것은 환락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되면 세상은 무서운 권세를 발휘합니다. 그래서 세속의 극치를 이루었던 소돔을 에덴동산 같았다고 했습니다. 그 세력이 얼마나 강했던지 거기서 의인 롯의 가정이 풍지박산났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자기 권세를 회복하려고 유브라데로 가는 그들을 다윗이 어떻게 했습니까? 적군을 다 멸하되 병거 일백승의 말만 남기고 나머지의 말은 발의 힘줄을 잘랐습니다. 이렇게 말을 쓸모 없게 한 이유는 다윗이 하나님만 의지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세상은 우리를 부르고 우리도 세상을 그리워 하지만 세상과 우리는 서로가 쓸모가 없습니다.
갈6:14에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했습니다. 이것이 기독교 복음의 입장입니다. 그러므로 세상과 우리의 운명은 어떤 운명인가? 영원히 결별할 운명입니다. 혹시 아직도 세상으로 달려가는 발목 있으시면 이 시간에 끊어 버리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세상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 줄 것 같습니까? 천만의 말씀입니다. 하와도 그것이 그토록 달콤하고 좋게 보여 먹었다가 영원히 돌이킬 수 없는 쓴 잔을 마시지 않았습니까? 탕자를 보세요? 얼마나 고생했습니까?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애굽을 믿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하닷에셀은 그 이름의 뜻이 '도움은 하닷이시다' 로 돕겠다고 거짓말을 합니다. 속지 마시기 바랍니다. 죽도록 고생합니다. 그런데 그 영혼의 독약을 먹고 후회하고 먹고 후회하기를 반복하면서도 아직도 못 버렸다면 속히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이처럼 우리도 세상으로 가면 세상도 이익이 없습니다. 요나가 세상으로 가자 그 배에 탄 사람들이 얼마나 고생했습니까? 우리 나라가 잘 되려면 예수 믿는 사람들이 세상과 짝하지 않아야 합니다. 신자가 속화되면 하나님께서 그들의 회개를 위해 세상의 환경으로 치시기에 온갖 고통이 옵니다. 요나의 교훈이 그것입니다. 어떤 분이 목회는 안하고 취직했더니 그 회사가 망하더랍니다. 그래서 돈 한 푼 받지 못하고 손해보고 나왔는데 나오고 나니까 그 회사가 다시 되더랍니다. 이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우리가 세속에 나가서는 우리도 아무 득 없고 세상도 우리와 상관해서는 아무 득이 없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일백승의 말만 남겼습니다. 백은 열 손가락처럼 필요의 수인 십에 십을 곱한 수입니다. 즉 성도는 이 세상의 임무에도 충실해야 합니다. 그러나 다윗이 나머지는 다 죽였듯이 세상과는 짝하고 속화되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속을 버리면 큰 선물을 주십니다. 7-8절에 다윗이 하닷에셀을 쳤더니 금방패며 금그릇 은그릇 놋그릇이며 엄청난 보물이 나왔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세상을 버리면 하나님께서 귀하게 써주십니다. 딤후2:20에 "큰 집에는 금과 은의 그릇이 있을 뿐 아니요 나무와 질그릇도 있어 귀히 쓰는 것도 있고 천히 쓰는 것도 있나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리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이 놀라운 축복의 주인공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4.예수님은 우리의 육신도 지배하십니다.
5-6절 "다메섹 아람 사람들이 소바 왕 하닷에셀을 도우러 온지라 다윗이 아람 사람 이만 이천을 죽이고 다메섹 아람에 수비대를 두매 아람 사람이 다윗의 종이 되어 조공을 바치니라"
그런데 다메섹이라는 나라가 하닷에셀을 도우려고 왔다가 그들 역시 다윗에게 굴복 당하고 맙니다. 혹 떼려 왔다가 혹을 붙인 격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처럼 우리 안에도 세상과 놀아나는 세력이 있습니다. 바로 육신의 세력입니다.
인간의 육신은 분명히 하나님의 창조물이요, 성령의 전이고, 하나님의 도구이며, 부활하여 영원히 영생에 들어갈 존재이지만 육신에게 물으면 하나님이 아니라 세상이 더 가깝다고 대답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육신을 세상적이요 정욕적이요 마귀적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다메섹에 강력한 수비대를 둡니다. 이 다윗의 수비대는 바로 성령의 은사입니다. 그래서 성령의 은사는 특히 육신을 깨우치기 위한 선물입니다. 마치 육신을 입고 육신을 가진 사람들에게 오신 예수님과 같이 보혜사 성령께서는 예수님을 대신하여 사람들에게 체험적으로 다가오셔서 깨우쳐 주시고 계십니다.
이 수비대가 있는 한 육신은 반란을 일으키지 못합니다. 예를 들면 나쁜 일을 저지르려고 하면 꿈에 '하지 말라' 경고하십니다. 혹은 잘못하지 않았다고 돌아앉아 있으면 '네가 먼저 사과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역사하심이 얼마나 강력한지 우리를 잠시도 육신에 머물러 있지 못하도록 하십니다.
5.예수님은 사망을 지배하셨습니다.
9-10절 "하맛 왕 도이가 다윗이 하닷에셀의 온 군대를 쳐서 파하였다 함을 듣고 그 아들 요람을 보내어 다윗 왕에게 문안하고 축복하게 하니"
여기 하맛 왕 도이는 열방을 정복한 다윗의 소식을 듣고 싸우지 않고 많은 보물을 가지고 화친했습니다. 하맛은 이스라엘의 최북단 경계입니다. 이 경계를 지나면 유브라데스 강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최북단 경계는 천국을 갈 때 반드시 거쳐가야 할 육신의 사망을 의미합니다. 하맛 왕 도이는 그 이름의 뜻이 '방황하다'입니다. 그래서 인생은 일생 사망의 공포에 매여 방황합니다.
그런데 감사한 것은 하맛 왕이 자발적으로 다윗에게 무릎을 꿇었습니다. 이처럼 성도들이 이상과 같이 영적으로 장성하여 이기면 사망의 공포는 싸우지 않아도 사라집니다. 하맛 왕이 자기 대신 보낸 화친의 사람 요람이 누굽니까? 바로 '여호와께서 높여주신다'는 뜻입니다. 또 그는 왕자입니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망의 권세를 이기셨고 또 자기 백성들을 하늘에 속한 자로 높여 주셨을 뿐 아니라 성도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왕노릇하는 하나님의 왕자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몸은 지상을 살아도 영혼은 천상의 영역에 거하며 왕처럼 사망과 저주와 자아와 악의 세력들을 다스립니다. 그런데 정확히 말하면 다스릴 정도가 정도가 아니라 천국 가기를 소원하는 넘치는 소망 속에 살아갑니다.
6.예수님께서는 성도를 끝까지 책임지십니다.
13-14절 다윗이 염곡(鹽谷)에서 에돔 사람 일만 팔천을 쳐 죽이고 돌아와서 명예를 얻으니라 다윗이 에돔에 수비대를 두되 온 에돔에 수비대를 두니 에돔 사람이 다 다윗의 종이 되니라 다윗이 어디를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셨더라"
여기 에돔은 과연 무엇을 뜻할까요? 에돔은 붉음과 관계가 많습니다. 에서는 날 때부터 몸이 붉었고 장자의 명분을 팔 때도 붉은 죽을 먹었고 부모를 떠나서 살 때도 붉은 에돔 땅에 가서 살았습니다. 그래서 에돔은 '붉다'는 뜻입니다. 이 붉음은 악한 사상이나 타락을 상징합니다. 이것을 이기는 방법은 멀리하는 것이 가장 상책입니다.
그 근거로 에서의 결혼을 한 번 연구해 봅시다. 그가 이방인인 두 헷 여인들과 결혼한 원인을 푸는 중요한 열쇠는 그의 두 장인들의 이름에 있습니다. 한 장인은 '브에리'로 '우물의 주인'이라는 뜻이요, 또 한 장인은 '엘론'으로 '참나무'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추측이 가능합니다. 에서는 광야의 사냥군으로 물과 그늘을 찾았는데 그 일이 반복되다 보니 그는 그들과 친해졌고 결국은 그들의 딸들과 결혼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세상을 가까이 하면 물들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단도 가까이하면 물 들게 됩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에돔의 중심부를 남북으로 통과하는 왕의 대로입니다. 이 길은 애굽으로 통하는 길로서 이는 성도의 끊임없는 타락의 유혹을 잘 묘사해 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출애굽할 때 이 도로를 사용하려고 했으나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천국 가는 길은 십자가 길이지 그런 넓은 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했듯 성도에게는 교만 안일 욕심 세속 등 타락의 위험이 언제나 도사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망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바로 본문을 보면 다윗이 염곡 즉 소금의 골짜기에서 에돔을 쳤습니다. 이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은 견인의 은총으로 지켜주시기 때문에 결코 타락할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그 견인의 은총은 다윗이 에돔에 주둔시킨 다메섹보다 더 강한 수비대에서 나타납니다. 사실 다메섹 수비대인 은사는 거역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에돔의 수비대는 거역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강한 징계의 손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이 사랑의 손길을 통해서 우리의 잘못된 사상과 관념과 교만과 안일과 세속적인 타락의 붉은 물을 제거하시고 더 온전하고 구비된 길로 인도하고 계십니다. 이 손길이 있는 한 우리는 영원히 안전할 것입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과 우리의 원수된 마귀와 죄와 세상과 육신과 사망의 권세를 다 이기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공로를 믿고 언제나 감사하며 그 말씀에 굳게 서서 이 모든 것을 다 지배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과 끊임 없는 도우심과 보호가 있는 한 우리는 영원히 안전할 것을 확실히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