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證言) - [28] 임규문(林奎汶) - 나의 지주되신 하나님 2. 통일교회와의 묘한 인연 - 1 1 얼마 후 매스컴을 통하여 통일교회 ‘이화여대 사건’이 보도되자 교계에서는 비판의 소리가 빗발치듯 하였다. 교회를 통해 나의 고민 문제를 해결하려던 나로서는 큰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2 나도 그 소식을 듣고는 통일교회에 대하여 분개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우연히 원주시 원동산 5번지의 산 모퉁이를 지나가다가 통일교회의 간판을 보고 찾아가게 되었다.
3 40대의 아주머니가 반갑게 인사를 하며 맞아 주었다. 그분이 통일교회 출현의 필연성을 얘기하며 “교계의 반발로 많은 물의를 일으키게 되었다”라고 눈물을 글썽이며 말을 하는데 진실이 넘치는 것 같아서 내 마음에 뭉클한 감정이 와닿았다. 그분이 원주교회를 개척한 최정순(崔貞順) 선생이셨다.
4 이튿날 오후에 또 통일교회를 찾아갔다. 조용한 집 안에 최 선생이 혼자 있다가 반가이 맞아 주었다. 잠시 후 젊은 청년이 뛰어 들어오면서 “최 선생님” 하고 부르고는 서로 악수를 한 채 눈물을 흘리며 기뻐하였다.
5 그런 장면을 옆에서 보고 있노라니 서로 헤어져 있던 부모와 자식이 다시 상봉한 것 같았다. 그 청년과 인사를 하였는데 서울 본부교회에서 내려온 최창림(崔昌林) 씨라고 하였다. 그는 특별히 볼 일이 있어서 온 것이 아니라 갑자기 원주에 오고 싶어서 왔다고 했다.
6 최정순(崔貞順) 선생의 부탁으로 최창림(崔昌林) 씨는 내게 원리 강의를 해줬다. 나 한 사람을 놓고 젊은 강사는 정열적으로 희망차게 말씀을 하였다. 오후 3시부터 시작해서 오후 8시까지 무려 5시간 동안을 물 한 모금 마시지 않고 강의를 하는 것이었다.
7 나는 그동안 무언가를 해결하기 위해 불교, 천주교, 기독교 등을 더듬어 왔었지만 마음에 흡족한 충족을 얻지 못하고 살아왔는데 원리 강의를 듣고 보니 쌓이고 쌓인 문제들이 하나하나 벗겨 나가 속이 시원하였다.
8 특히 창조 원리의 신비와 선악과에 대한 해명은 나를 놀라게 하였다. 기도할 때는 눈물의 바다를 이루었다. 저녁이 되어서 밥상이 들어왔는데 감자를 넣은 수제비와 간장뿐이었다. 그것을 먹은 후에 밥은 따로 들어오는 줄 알았는데 안 들어오고 그것으로 저녁을 때우는 모양이었다.
9 서울에서 오신 강사 대접이 이럴까 생각했는데 개척 교회 사정이 그렇게 어려웠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그 후 원리해설을 구입해서 부대에서 몇 번 읽고 1957년 10월 9일 입회원서를 제출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