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에 관한 시모음 23)
오월의 숲은 /강순옥
산빛 푸르게
여린 잎새들 선연함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
한 폭의 수채 화가
내 마음 홀리는 듯
상처 난 구멍에
초록빛 녹음 우거져라
햇살 자늑자늑 퍼붓는다
지천에 치유 심지 돋우며
호연지기까지 길러주는
청향째 맑은 빛 쪼아 대며
빨랫줄에 옷가지 거린 것처럼
누더기 벗어 던지듯이
꽃향기 수액 마시며 오른다
아카시아 꽃향기
때 죽나무 꽃길에도
재넘이길 솔바람 일렁이며
흙내음 가득한 자드락 길에
새소리 맑음 물같이 또르르
눈빛 맑게 설레게 합니다
오월 푸른 숲에서
꽃잎 생을 마친다 해도
여린잎에 햇살 반지르르
신록의 꿈 키워 가는 산달
오월의 숲은 참 아름답습니다.
오월의 비 /임인규
오월의 비가
수양버들 개울가 그늘에
옹기종기 모여들어
물 뻐끔 질하는
작은 송사리 떼처럼
쫑알거리며 내립니다.
황사의 묵은 먼지
듬뿍 뒤집어쓴
허연 잎 파리들이
파란 바람을 타고
빗속에 샤워하며
너울너울 춤을 추며
초록 여름을 유혹합니다.
“쌔 액 쌕”
자동차 바퀴가
송사리 떼를 몰고 갑니다.
“까르르르”
놀란 송사리 떼
푸른 바람 발바닥을
간지럼 때우면
초록 이파리 놀라
바르르 떨고
“때그르르”
미끄럼 타며
떨어지는 진주구슬들
오월의 비는
청 보리 고랑 사이를
해 짚어 오며
숨바꼭질하다가
플라타너스 그늘에
숨어서 기다립니다.
“까르르 까르르”
자지러질듯 웃어대는
쌍갈래 머리 열여섯
그 푸른 여름을. .
5월의 나무 /곽문환
흥얼거리며
땅에 뿌리 박고 수평적이고 싶다
솟아오르고 있지만
과묵한 푸른 혓바닥
고집센 삶
준엄한 부동성
쉼 없는 움직임
생명을 일으키는 강처럼
한마디 말로 표현할 수 없으리라
이제 순한 언어로
이슬 속에 솟아오르는 물방울
푸른 나무 잎파리
사람들이여 한번쯤 그 속에 기댈 수 있는 시간을 가져라
오월이 오면 /김정호
하늘은 뽀얀 살결을
황사에 살짝 감추고
산은 물 오른 젖가슴을
옷깃 사이로 슬며시 내 보인다
오월의 꽃 철쭉을 보고
환희라 하는데
정열이라 하는데
내가 너에게
빼앗긴 마음도 그랬을까
오월은
토라져서 멀어져 간 소쩍새 소리
밤마다 그 소리
청청한 들판에 지천으로 깔리고
빈 가슴 가득하게 채워져
꿈같이 뜨겁게 가슴 적셔줄
그 사랑 다시 온다면
너에 향한 그리움 못 이긴 체
내 마음 허물 수 있을까
오월 아침 /권경업
햇살이 막 동족 능선에 올라
밤새 젖은 숲머리
얼근 빗질을 해댈 때
짝짓기 늦잠에 놀란
찌르레기 한 쌍이
푸른 행복을 꿈꾸던
오월 위로 자지러든다
오월의 노래 /박종영
입하 지나고 초여름 기운 얻어
영롱한 이슬 내리는 아침이면
문득 오래 지워진 그대의 이름 위에
낮은 음계로 그리운 얼굴을 그립니다
계절은 푸른 잎으로 착한 시간의 그늘을 드리우고
무성한 나무 한 아름 안고 크게 흔들리는 산,
산의 핏줄처럼 나 있는 호젓한 산길
한가한 길 위에 어머니 즐겨 부르던 찔레꽃 가사를 적습니다.
강산의 틈새마다 풍요하게 새겨듣는 시간
별들이 알몸으로 내려와 빛을 두고 사라지면
어둠의 덕으로 초승달이 몸 사리는 저녁입니다
덧없이 살아온 날의 부끄러운 고백들
봄날에 쓰고 여름이면 지워버릴 푸른 노래,
작고 예쁘게 싸서 강물에 던지며 달아나는
그대 웃음이 추억입니다.
낡은 담장에 붉은 장미가 활기찬 하루를 셈하는
오늘은 누구의 이름으로
신록의 푸른 얼굴을 그릴까 궁금합니다.
5월사랑 /김덕성
난 너에게
조금도
아낌없이
사랑을 보낸다
날 뜨겁게 사랑해 주는 너
날 그리워하며
아껴
주는 너이기에
햇살처럼
고운 빛으로
사랑을 보낸다
뜨거운 내 가슴으로
곱게 펼쳐
아름다음으로
희망찬 세상
사랑으로 열고 싶다
너와 함께
오월의 어느하루 /최다원
싱그러운 내음이 연기처럼 피어나는
파란 오월 하늘엔
흰 구름 몇 점이 배회한다
제트기한대가 하얀 라인을 그으며 길을 재촉할 때
나뭇잎사이를 빠져나온 소슬바람
나의 볼을 어루만진다
분열한 산소가 폐부 속으로 스며들 때
까만 색 날개에 노란 무늬를 찍은 나비 한 마리
누구를 찾아 왔을까
무심코 따라나선 나의 시선을 뒤로한 채
나폴 대는 날개 짓으로 저만치 멀어져 갔다
고요한 숲 속의 정적을 흔들며
산새 한 마리 목청껏 부르는 노래 소리는
새로 돋아난 녹색 잎들이 무성한 나뭇가지 사이에서 들려온다
햇살 받아 반짝이는 상수리나무 아래
다람쥐의 눈동자가 동공을 키우며
나무등걸 뒤쪽으로 긴 꼬리를 숨긴다
수령이 오래된 아카시아나무 널 부러진 가지마다
막 피워낸 향기에 이끌려온 꿀벌들의 근면함이 산 속을 채운다
지난해 서둘러 지은 듯한 까치집 한 채가
문을 열어둔 채 주인을 기다리고
허리가 잘록한 개미 한 마리 일행을 이탈하고
허둥대는 발걸음은
싱그러운 오월의 하루에 내어준
나의 오늘처럼 비틀댄다
五月 丹楓 /이길원
연두빛 五月의 언덕에
옅은 바람에도
조잘대는 핏빛 연지
빠알간 매니큐어
패디큐어에 타는 열기
겨울은 아직 멀리 있는데
엊저녁 초승달이 서러워도
女人은 제 때 물들어야 했다
연두빛 화사한 언덕에
눈에 타오르는 붉음이
오히려 쓸쓸한
五月의 丹楓
오월 찬가 /오보영
오월
바람이 되어
푸른 숲을 누비고 싶다
쏟아지는 햇살에
부셔
눈 깜박이며 서 있는
나무잎새
살랑
흔들어 주고 싶다
바람이 되어
숲속
가득 넘쳐나는 향기
실어
온 세상에 뿌려주고도 싶다
바람이 되어
오월
들판에 드러눕고 싶다
풀꽃들 모여 펼쳐놓은
초록 융단 위에
누워
아지랑이 결 따라 아른거리는
그리운 얼굴
파-란 하늘 위에다
크게
그려보고 싶다
오월에 내가 죽으면 /최해춘
오월의 품속에서
내가 죽으면
사랑했던 사람의 이름 하나를
꽃잎마다 새기는
장미가 되리.
붉디 붉은 사랑을 꽃잎에 담아
그리움이 짙게 배인
담장에 기대
그대 속 애모(哀慕)의 정 들여다 보리.
오월의 향기에
내가 죽으면
연두잎 익어가는 길섶에 앉아
새하얀 찔레되어
그대 맞으리.
밤이슬 촉촉히 젖어들면은
뽀얀 달빛 받아
길을 밝히며
그대의 발끝에서 밤을 새우리.
오월에 취하여
내가 죽으면
소쩍새 우는 날엔 님 곁에 앉아
살랑이는 바람되어
그대 감싸고
그대의 진가슴을 토닥여 주리.
5월에 부치는 편지 /(宵火)고은영
눈부신 오월의 창문을 열면
벌판 가득 찬란한 햇살
구석구석 작은 풀꽃들
어른대는 빛의 길 따라
철새 쉬던 그 넓은 양어장
새들은 어디로 간 것인지
정지된 눈부신 풍경, 풍경
정작, 여린 잎 보라색 무꽃
눈물겹게 아름답구나
예측할 수 없는 일기가
변덕스럽게
수시로 4월을 먹더니
바람이 사는 마을에
깔깔거리는 바람의 웃음
데이지 꽃
흰 속살 드리운 얼굴 위로
하루종일 넘나들다 지친 바람
5월 장미의 나날
향기 따라 피어 오를 즈음
세상의 모든 사랑아
떠남에 익숙한 발걸음 멈추고
천지 사방에 초록으로
하늘하늘 피어나거라
무럭무럭 피어나거라
새순으로 피어나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