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박 정 란
창문을 활짝 열어젖힌다. 묵은 공기가 빠져나가고 신선한 공기가 들어온다. 아침을 먹은 뒤, 직장에서 밀려난 짝지를 또다시 별채로 쫓아내고는 청소를 시작한다. 에너지 교환을 이루기 위해서다. 살림이 전업인 나는 모두 밖으로 내보내고 상쾌한 기분으로 차 한잔 마시는 것이 소소한 행복이다. 하지만 이제껏 혼자였던 적이 없다. 김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차를 옆에 두고 글고랑을 살필 때, 시어머니의 책 읽는 까랑까랑한 소리가 글밭에서 나를 밀어낸다.
시어머니는 백 세를 코앞에 두고 있다. 모두가 어렵던 지난 시절, 당신께서는 배움도 없이 어른 모시고 자식 뒷바라지하는 것이 삶의 전부인 줄 알고 살았을 터였다. 세상이 좋아지면서 노인정에서는 문맹 탈출을 위한 한글 교실이 열렸다. 못 배운 설움의 한을 지닌 어르신들의 가슴에 꿈이 생겨났다. 읽고 쓸 수 있다는 기쁨에 모두가 내 것 같았으리라. 하지만 온 세상을 다 얻은 듯했으나 그 누구도 알아주지 않았다. 할 수 있는 것은 단지 읽을 줄 안다는 기쁨뿐이었다. 그래도 희망을 품고 치매 예방이라는 이름을 달아 날마다 소리 높여 동화책 속 동심의 나라로 향한다.
친정어머니는 내 혼기가 차자 성정이 장남하고는 함께할 그릇이 못 된다며, 고르고 골라 차남과 짝을 맺어주었다. 팔자 도망은 못 간다고 했던가. 신혼여행지에서 돌아오니 시어머니가 빈집을 지킨다는 명분으로 먼저 와 살고 있었다. 그것이 말뚝 박기가 된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친정어머니는, 육십 넘은 어른이 살면 얼마나 오래 사시겠냐며 잘하라는 일침 놓기에 바빴다. 길고 짧은 것을 어찌 사람의 능력으로 헤아릴 수 있으랴. 감나무의 감이 땡감이 되어 떨어질지 홍시가 되어 떨어질지 그것은 아무도 모른다며 입바른 소리를 내었다가, 새파랗게 젊은 애가 못 하는 말이 없다며 눈물이 쏙 빠지게 혼만 났다. 친정어머니의 저항할 수 없는 ‘잘’에 끌려다니느라, 내 가슴에는 무게를 알 수 없는 돌덩이가 근수를 키워갔다.
사람들은 어느 때 가장 괴로울까? 아마도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이지 싶다. 받지도 않았는데 주었다 하고, 하지도 않았건만 한 것이 사실이 된다. 나만 아니면 된다는 긍정의 생각은 남의 일일 때이다. 속상함에 바로 잡고 싶어도 해일처럼 밀려올 커다란 태풍이 기다리고 있을 게 뻔하다. 당신만 잘 참으면 잔잔한 바다가 된다는 옆지기의 말에, 가슴에는 뜨거운 화로가 불을 지폈다. 이것이 세계적으로 우리나라에만 있는 울화병의 원인이 되었다. 옆지기는 가끔 불을 끄려고 책을 소방수로 주었다. 시원한 감로수 같은 선지자의 이야기는, 온갖 생각들로 불타는 마음에는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다.
현수막이 바람에 펄럭이며 유혹의 손길을 내밀었다. 시어머니는 늦게 세상눈이 트여 노인대학과 장수대학원을 넘어, 가요학원까지 다니며 생기 넘치는 노년을 잘 보내고 계셨다. 반면 소금에 절여 놓은 배추처럼 시들시들 풀 죽어 있는 나의 모습에, 현수막이 이 무슨 꼴이냐며 나에게 오라 손짓하는 듯 다가왔다. 지금 네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두 어머니 말에 매여 사는가, 하고 손사래를 치는 것처럼 보였다. 딸로 이십 대 중반까지 잘 살았고, 며느리로 그보다 많은 세월을 잘 살았으니, 이제 너도 노년의 네 삶을 잘 살아보라 이끄는 것도 같았다.
잘의 영역은 어디까지일까? 잘하면 그것이 당연한 것이 되어 더 잘하기를 바라는 것이 사람들의 욕망인가 보다. 잘하지도 못하면서 이 ‘잘’에 끌려다니며 잘근잘근 씹어, 너덜너덜하게 된 ‘잘’을 뚝 떼어 버리기로 생각을 다졌다. 그냥 하면 되는 것을 거기에 왜 ‘잘’을 붙여 그렇게 힘들게 살았는지 모를 일이다. 이제 안으로 향해 있던 마음의 눈을 밖으로 돌려, 생각의 그릇을 키우기로 의욕을 불러일으켜 세웠다. 옛 여인들이 지난했던 자신의 삶을 책으로 쓰면 열두 권도 넘는다고 넋두리하지 않았던가. 열두 권은 차지하고 한 권만이라도 나의 억울한 심사를 늘어놓고 싶은 충동에 도서관 생활글 쓰기에 발을 들여놓았다.
도서관을 하나 세우는 것보다 책을 한 권 쓰는 것이 더 의미 있다는 말이 용기를 주었다. 자신의 체험에 살을 붙이고 옷을 입히려면 몸에 맞는 소재가 있어야 균형을 이룰 수 있는 법이다. 문학성과 예술성까지 갖추기 위해서는 독서가 필수로 따라붙었다.
눈에 들어오지 않던 책이 마음에 먼저 들어왔다. 목적의식이 생긴 것이다. 마음으로 들어온 책을 눈에 붙들어 매기 위해 독서 토론 모임에도 들어갔다. 같은 글을 읽고 다른 느낌을 이야기하는 다양성을 익히며, 소통의 재미가 책 읽는 기쁨을 더해 주었다.
주지 않는 남의 것을 가져오는 것이 도둑질이다. 도둑질도 아는 것이 있어야 잘 가져올 수 있다. 창조는 모방에서 비롯된다고 하지 않던가. 아름다운 글을 필사하며 문장의 리듬을 익히고, 마음에 드는 글을 내 사색에 따라 가지치기도 하며, 살을 붙여 새로운 문구도 만들어 본다. 남의 생각과 글귀를 그대로 베끼는 표절이 아닌, 모방은 허가 난 도둑질이 아니던가. 책 속에 길이 있다고 했다. ‘잘’에 끌려다니느라 방향을 잃은 내 영혼에, 길 안내자가 되어 줄 든든한 친구를 만난 듯하다.
주변 사람들의 인사가 달라졌다. 어디 아프냐며 걱정스레 물어오던 것이, “요즘 좋은 일 있어요? 얼굴이 달라졌네.” 하는 말로 바뀌었다. 마음속 일도 몸으로 나타나 숨길 수가 없는 모양이다. 무말랭이처럼 삐쩍 골아있던 사람에게 생기가 돌자, 지인들이 달라진 모습을 먼저 알아보고 좋은 일 있으면 같이 알자며 반가움을 표현해 준다. 꽉 막혀 답답함을 주던 체증이 뚫려 소통이 잘 이루어지면, 모든 일이 순조롭게 풀려 얼굴부터 달라지는가 보다. 집 밖으로 나돌며 도서관을 드나든다고 트집 잡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책을 읽고 토론을 하게 되면서, 갇혀있던 내 사고가 문을 열고 나와 조금씩 발전하는 느낌이다.
인생은 보험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가슴에 머문다. 지금은 어떤 불편함도 없이 평화롭고 행복하지만, 앞으로의 삶에 닥칠지도 모를 위급한 상황을 잘 대비하기 위해 사람들은 보험을 든다. 다가올 인생에 힘겨운 일이 발생하지 않으면 그것으로 즐겁고, 어려움에 처한 다른 사람을 도와줄 수 있어 더욱더 좋은 것이 보험인 것 같다. 현재의 삶이 조금 힘들더라도 알 수 없는 미래 생을 위해 좋은 일 하려고 노력을 기울이게 되는 까닭이다. 다음 생이 존재한다면 잘 준비되어 있어 좋고, 없다 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미래 생을 준비하며 익힌 좋은 습관들이 지금을 행복으로 채워주기 때문이다.
나도 미래 생에 보험을 드는 든든한 마음으로 지금을 살아간다. 어쩌면 미지의 다음 생이 지금의 나를 만드는지도 모르겠다. 현재가 좋고 나중까지 좋다면 그보다 좋은 것이 어디 있겠는가. 시어머니도 적적한 시간 보내기로 하릴없이 책을 읽는 것은 결코 아닐 것이다. 매일 시간을 정해 놓고 기도하는 자세로 읽는 모습을 보면, 다음 생은 배움과 함께하길 바라는 간절한 소망이 묻어 있는 듯하다.
시어머니의 글 읽는 음성이 집 안에 울려 퍼진다. 소리가 창밖의 바람을 타고 하늘로 오른다. 내 마음도 덩달아 시공간을 넘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