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심과 시심의 융합과 시적 진실
--수담스님 시집 『봉정암』
김 송 배
(시인. 한국문인협회 자문위원)
1. 자아(自我) 인식과 성찰의 발현
현대시의 구조나 형태는 대체로 자아를 인식하면서 시간과 공간의 개념을 설정하고 그 환경에 따라서 변화되는 상황이 시인의 상상력으로 재생되는 형태의 구조로 발전하게 된다. 이러한 예는 흔한 말하는 삶의 궤적(軌跡)에서 추출한 심리적 반응이 성찰(省察)이라는 인간 본연의 성정(性情)을 현현(顯現)하면서 자아 인식의 시적 구도를 명민(明敏)하게 안착하는 경우를 많이 대할 수가 있게 된다.
여기 수담스님이 상재하는 첫시집 『봉정암』을 일별하면서 스님이 인식하는 자아의 범주(範疇)는 수행과 구도의 비범한 사유(思惟)에서 창출된 인간의 진실이라는 대명제를 실현하려는 시적 원류를 확인하게 되는 것도 그가 보편적 인식의 단계를 넘어 스님의 특수한 정서가 발현되고 있음을 알 수 있게 하고 있다.
수담스님(속명 신광식)은 일찍이 범어사에서 자운스님의 계사로 사미계를 수지하고 그후 통도사에서 고산스님의 계사로 구족계를 수지한 원로 스님이다. 스님은 제방선원 6안거 성만 후에 서울 화게사와 강화도 보문사에서 총무를 역임하였으며 울산 대왕암 공원내 등용사에서 천일기도를 원만 회향하고 현재는 등용사 총무로 재임하면서 지난 6월에 시전문 계간지 『시원』에 신인상 모집에 당선하여 우리 시단에 등단한 시인이시다.
스님은 수행 정진을 통해서 실제로 당면한 인간문제들을 성찰하면서 불심(佛心)을 실행하는 다양한 형상들을 시적으로 발현하고 인식의 가치를 주제에 투영하는 시법(詩法)을 구사하면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선승(禪僧)으로서의 모범을 보이는 현대의 지성적인 스님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늘에 방긋달 스쳐지더니
한 눈에 쏙 들어온 일곱별
주인공아 주인공아
이 세상에
단 한 명뿐인 주인공아
내 그대 빈속에
해탈국 한 국자 부우옵나니
설악의 기가찬 몸매를
더듬적거리며
땀방울 굳어진 돌탑 아로새겼던
그대 눈먼 기억에
단풍잎 아로새겼던
그대 귀먼 기억에
폭포수 아로새겼던
그대 숨찬 기억에
깔딱길 아로새겼던
간절함으로 간절함으로
내 님 만나옵소서.
--「봉정암」 전문
수담스님은 이 시집의 주제시인 「봉정암」에서 감지할 수 있는 바와 같이 눈먼 기억과 귀먼 기억들로 충만해 있던 “내 그대 빈속”이나 “설악의 기가찬 몸매”가 상호 융합하면서 창출해내는 그 “간절함으로” 아로새겼던 “내 님”을 만나서 동행하라는 어떤 게시와 같은 기원의식으로 주제를 설정하고 있어서 우리들의 공감을 유로(流露)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수담스님은 작품 「다짐」 에서도 “그여 오르고 말리라/ 님 계신 그곳/ 평생 세 번 오르면/ 업장이 소멸된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설악산 봉정암”이라 하여 봉정암과 “님”에 대한 상관성에 대하여 심도(深度)있는 사유(思惟)에 천착(穿鑿)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수담스님은 “사랑받고 싶어서/ 사랑한다고/ 말 하여도/ 한 말씀/ 단 한 말씀도 않은 채/ 날 보고 있을/ 님인가 보오.(「님」 중에서)”라는 어조(語調)로 거룩하신 부처님을 흠모(欽慕)하는 확고한 의식의 안착을 읽을 수 있게 하고 있는 것이다.
내 님의 고독은
가신 님 미소
내 님의 사랑은
물담근 찻잔
내 님의 뚝심은
나를 보는 눈
아무 말 없이
나를 보는 눈.
--「큰 스님」 전문
수담스님의 수행정진에서 간과(看過)할 수 없는 부분이 “님”에 대한 숭앙(崇仰)의 심중을 배제하지 못한다. 여기 “큰 스님”이 적시하는 것과 같이 님의 고독과 님의 사랑 그리고 님의 뚝심은 바로 “아무 말 없이/ 나를 보는 눈”이라는 혜안(慧眼)의 숭고함을 상징적으로 적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님”에 대한 연민의 정감적 어조는 작품 「님 가시는 길」 「파불 1-오신 님」 「파불 2-이별」 「파불 3-달력」 「파불 4-백의자모」 등에서 스님의 내면 의식에서 침잠(沈潛)된 지향적인 불심의 근원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수담스님이 전국 각 사찰을 순회하면서 획득한 영감적인 면면들은 다음과 같이 들려주고 있는 것이다.
-복대사 : 산신각 선당삼아 수좌님들 앉았거늘/ 흠모했던 수좌님들 직심대로 하셨는지/ 나옹대에 삼배하고 앞산을 바라보니/ 푸르렀던 숲마저도 구름 속에 숨어지네
-광덕사 : 저 속이 텅빈 느티나무마저도/ 금새 님의 화현인 듯/ 호두나무 광덕사에 / 목탁이 눈떠 구른다.
-화계사 : 그때에 나는/ 하늘을 솟구쳐 올라/ 덩실 덩실 춤을 출거요/ 보란 듯이 춤을 출거요.
-보문사 : 까만 비바람 몸서리 치는 날/ 샘터를 넘나들며 물긷는 사람들/ 꽃장화 색장화 앞치마/ 빨간 고무장갑은/ 모두 주인을 찾았나 보다
-각원사 : 저만큼 청동불이 계시온 곳에/ 앞서가는 둘이는 부부라더냐/ 뒤따르는 하나는 새끼라더냐/ 경이로운/ 햇님에 조화라더냐.
-화계사 : 거센 환호는 까아만 하늘에/ 밝은 불꽃을 뿌리며/ 새로운 다짐으로/ 어제의 회한을 물어버렸다
-광수사 : 광수사 앞 배 밭은/ 앞서가신 근친이 팔았다 그래/ 배나무는 많은데 배는 다 어디로 갔나
-등용사 : 오늘은/ 저 연분홍꽃잎/ 대왕암 등용사/ 섬돌 아래에/ 소복이소복이/ 쌓여서
2. 자성의 인식과 비움의 미학
수담스님의 시적인 지향점은 대체로 부처님이 간구(懇求)하는 인본주의(humanism)의 개념에서 출발하고 있다. 스님의 사유에는 언제나 상구보리(上求菩提) 하화중생(下化衆生)으로 이 세상에서 항상 넓게 메아리지기를 염원하는 인성의 자성적(自省的)의 신심(信心)을 적시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본다
적멸보궁에 들어 임자없는
텅-빈 연화좌를
눈 앞에 펼쳐진 신령한 풍광을
해동설산 봉정 영봉위에
창연히 곧추 서 있는
저 불뇌사리탑을
나는 본다
내가 누구였노라
화창한 빛만을 반겼으랴
천부당 만부당
밤낮없이 찾아드는 모진인연
낱낱이 반겨 천 년을 비우고
다시금 천 년을 향하여
오늘도 비웠으리라
반겨 비웠으리라
그 줄줄이 이어지는
간절한 인연에 안김을 나는 본다
저 불뇌사리탑을
나를 내가 누구인가를.
--「불뇌사리탑」 전문
수단스님은 이와 같이 설악산 가장 높은 곳에 세워진 봉정암에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불뇌사리탑 앞에서 “나를 본다”는 화두로 풀어나간 스님은 “나를 내가 누구인가를” 항상 자숙하거나 자성하는 “간절한 인연에 안김”을 설법하고 있는 것이다.
스님은 비움의 철학에 지대한 관심을 표출하고 있는데 바로 “밤낮없이 찾아드는 모진인연/ 낱낱이 반겨 천 년을 비우고/ 다시금 천 년을 향하여/ 오늘도 비웠으리라/ 반겨 비웠으리라”는 어조로 보리(菩提)의 거룩한 정신세계를 구현하려는 구도적(求道的)인 자세로 “나”에 대한 성찰이 정진의 구심점이 되고 있는 것이다.
한 마리 극락조
바위가 되었나 보다
길게 늘어뜨린 날개 앞에는
서슬 시퍼런 신장이
비우거라
속 시원히 비우거라
가피를 내려주건만
나는 날마다 접하는
해우소에 안온함마저
까마득 잊고 있었던 거지
언젠가는 꼭
소멸하고야 말
화려한 문명의 알음알이에 취해
시물을 녹이는 죄인이 되어
저 바위가 되어버린 화엄신장의
나를 향한 끔찍한 연민을
까마득 잊고 있었던거지.
--「봉정의 가피」 전문
다시 스님은 “서슬 시퍼런 신장이/ 비우거라/ 속 시원히 비우거라/ 가피를 내려주건만/ 나는 날마다 접하는/ 해우소에 안온함마저/ 까마득 잊고 있었던 거지”라는 스님의 지조(志操)와 같이 비움에 대한 신념이 수행정진의 최상의 도달점임을 명징(明澄)하게 들려주고 있어서 우리들 중생의 공감을 불러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한편 수담스님이 실천하려는 비움의 미학은 부처님의 가피정신에 원류를 두고 자비(慈悲)의 원대한 불심으로 “언젠가는 꼭/ 소멸하고야 말/ 화려한 문명의 알음알이에 취해/ 시물을 녹이는 죄인이 되어/ 저 바위가 되어버린 화엄신장의/ 나를 향한 끔찍한 연민을/ 까마득 잊고 있었”다는 속죄의 미학으로 발전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속죄와 성찰의 흐름은 작품 「합장」 중에서 “여린 가슴에 파고드는건/ 아직도 그 애끓는 기운이/ 미움이라서/ 아픔이라서/ 그리움이라서/ 피할 수 없었던/ 인연이라서/ 다 내가 쌓은 빚이라서/ 나는 허공에 두 손을 모은다”는 심정의 내면 중심에는 스님의 합장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짐작할 수 있게 하고 있는 것이다.
이 밖에도 작품 「윤회」 「용서」 「햇님」 「선지자」 등에서 “나”와 상관성이 교통(交通)하는 시법을 읽을 수 있어서 스님의 신앙의 심도(深度)를 살펴볼 수가 있는 것이다.
3. 산자수명한 자연과 서정성
수담스님은 산중에서 정진 중에서도 주변의 자연 풍광에 심취(深醉)해 있음을 알 수 있다. 스님은 백담계곡이나 수렴동 계곡 등 자연 정취에서 교감한 서정적으로 내재된 서정성은 배제할 수 없다. 그러므로 스님은 서정시인일 수밖에 없다. 더구나 산사(山寺)의 생활을 통해서 접하게 되는 자연 서정에 투영된 생명성의 발현에 시정(詩情)은 넘쳐나고 있기 때문이다.
스님은 우선 작품 「백담」 전문에서 “백담계곡 물물들은/ 숲이 들어 초록하고/ 구름 들어 하얀데/ 황홀한 단풍이면 어떻고/ 뽀얀 눈송이면 어떻고/ 또한 어떠리/ 오면 오는 대로/ 가면 가는 대로/ 파란 하늘 햇볕이/ 따갑다고 마다할까/ 저만이 적적한 것을.”이라는 어조로 자연 서정에서 심정적인 온유(溫柔)를 토로하고 있는 것이다.
먼 산은 먹구름 뒤에 숨어
그 자취 오간데 없고
비 맞은 돌탑은 윤을 내며
성난 물살을 봅니다
이제 내 앞에는
풀벌레의 자릿거리는 속삭임도
새들의 정겨운 지저귐도
길을 재촉하는 숨결마저도
벗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압니다
그대 수렴동 계곡이여!
나는 오늘 그대가 입혀놓은
이 귀가 찢어질 것 같은
신령스러운 함성에 옷을
송두리 채 벗어 던질 겁니다
그대가 내 침울한 두 눈에
죽어가는 잎새에
빨간 순결의 눈물을 각인시켜
날 벅찬 감동에 사로잡혀 놓았던 것도
그대의 함성에 모두 떠내려 보낼겁니다.
--「수렴동 계곡」 전문
이 “수렴동 계곡”에서 스님은 먼 산, 먹구름, 비맞은 돌탑, 성난 물살 등 자연의 형상들이 스님의 시야에 착목(着目)하면서 다채로운 정감의 이미지가 생성하고 있는데 스님은 시각뿐만 아니라, “풀벌레의 자릿거리는 속삭임도/ 새들의 정겨운 지저귐도/ 길을 재촉하는 숨결마저도/ 벗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압니다”라는 청각적인 이미지로 복합적인 시적 환경을 도입하여 서정성을 창출하고 있는 것이다.
수담스님은 이 「수렴동 계곡」에서 도출하려는 주제는 바로 결론으로 적시한 “그대가 내 침울한 두 눈에/ 죽어가는 잎새에/ 빨간 순결의 눈물을 각인시켜/ 날 벅찬 감동에 사로잡혀 놓았던 것도/ 그대의 함성에 모두 떠내려 보낼겁니다.”라고 의미심장한 심적인 고뇌요소를 표출하고 있어서 그 계곡에서 감응(感應)한 휴머니즘적인 비움의 미학이 다시 생성하고 있는 것이다.
구곡담 황홀경에
단풍잎 빠져드니
폭포는 서러움 내려
잎새를 떠 내리고
가던 발 멈추어서
뉘 이룬 돌탑위에
잔 돌 하나 얹는 것은
꿈에나 볼라는가
다시는 못 볼 정취
황혼에 눈물겨운
이별에 정표여라
--「구곡담」 전문
여기 “구곡담”에서도 황홀경이나 단풍잎, 폭포, 잎새, 잔 돌, 황혼 등등 스님의 시야에 펼쳐진 경관들이 서정적인 정취에서 감응하는 정서의 향방은 바로 자연과 인성이 융합하는 어조는 꿈에서나 볼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다시는 못 볼 정취/ 황혼에 눈물겨운/ 이별에 정표”라는 순수한 정감을 이해하게 하는 것이다.
다시 작품 「해탈고개(깔딱고개)」 중에서도 “가벼운 등짐마저/ 이제는 돌이 된 것을/ 오 시지프스여/ 내 그대를 위안삼노라/ 내 업의 무게가/ 그대만큼은/ 좀 덜 한 것 같아서.”라고 “물소리 잦아든/ 해탈고개/ 가파른 돌길을” 오르면서 봉정암 오르는 깔딱고개에서의 참회와 성찰의 신심을 서정성으로 표출하고 있는 것이다.
4. 친자연적인 현상과의 대화
수담스님의 서정적인 감성을 자연 풍관에서 뿐만 아니라, 친자연적인 사물에서도 미감(美感)이 넘치는 작품을 구사하고 있어서 불법에서와 같이 시법을 공유하고 있음을 이해하게 한다.
일찍이 철학자 파스칼은 그의 유명한 「팡세」에서 “자연이 모든 것을 말할 수 있고 신학까지도 말할 수 있다는 것을 그로부터 배우는 사람이야말로 자연을 깊이 존중하는 사람들이다”라는 명언으로 자연과 우리 인간들과의 교감을 통해서 친자연적인 인간 생활을 강조하고 있는 것을 보면 자고(自古)로 우리들 인간은 자연 친화의 생활을 묵시(黙示)하고 있는 것이다.
꽃잎이 하얗게 휘날린다
봄바람 타고
그 화사한 미색
눈에 쏙 들어
털신 한 짝 꽁꽁 묶어놓더니
저와의 이별을 즐겨보란 듯
폰에 저와나 이별에 순간을
찰칵 하란 듯
볼에 한껏 기댄 꽃잎
찬스라 싶었다
웬걸 쌩하고 토라진 바람
무슨 수로ㅡ
꽃잎은 바람을 타오르며
가엾은 바람이시여
이 꽃잎은 압니다
그대가 나보다 먼저
가실거란 걸
희롱하듯 파아란 하늘에
꽃잎이 하얗게 휘날린다
봄바람 타고.
--「풍낙화」 전문
이처럼 낙화의 이미지는 한생을 마감하는 형상에서 결실로써 소임을 다하는 지극히 단순한 형태의 삶을 이해하게 되지만 수담스님은 더 나아가서 “저와의 이별을 즐겨보란 듯”이라는 바람과 낙화와 인간의 상호 상응(相應) 관계를 명시하고 있어서 우리들의 공감영역은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스님은 이를 더욱 구체화하는 어조로 “꽃잎은 바람을 타오르며/ 가엾은 바람이시여/ 이 꽃잎은 압니다/ 그대가 나보다 먼저/ 가실거란 걸/ 희롱하듯 파아란 하늘에/ 꽃잎이 하얗게 휘날린다/ 봄바람 타고.”라는 결론은 바람이 휘날리게 하는 꽃잎은 바람dl 꽃잎보다 먼저 사라지는(소멸) 것, 말하자면 “가실거란 걸” 이미 간파하고 있어서 자연과 인간 그리고 만고풍상의 섭리에 대한 경외심(敬畏心)을 작품으로 형상화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작품 「은행나무 길에서」 중에서도 “나의 서러움은 은행닢/ 초록 부채닢/ 생생한 알갱이 수두룩 감싸안고/ 간당이던 알갱이 땅에 떨구어/ 짓밟히는 알갱이 역겹노라며/ 찬바람 부치시던 은행닢”이라는 은행나무의 생태에서 나의 서러움이라는 감성을 합성함으로써 시의 위의(威儀)에 도달하는 시법은 매우 훌륭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밤하늘 별구경
저만 하자고
먹구름 온 하늘을
덮었을지나
부릅 뜬 눈알엔
달도 없고
별도 없고
새도 없고
산도 없어
졸졸대는 심곡이
처량한 것을
그대는 아시는지
--「먹구름」 전문
다시 수담스님은 자연의 생체(生體)뿐만 아니라, 자연 현상에서 지대한 시적인 영감을 투영하여 작품을 완성하는 지적인 시법을 이해하게 되는데 이 “먹구름”은 천체(天體)의 현상을 덮고 인간과의 단절로 깜깜한 형태의 세상의 고뇌를 투영하고 있는 것이다. 스님은 “달도 없고/ 별도 없고/ 새도 없고/ 산도 없”는 암흑의 천지는 바로 우리 인간세에서 눈알을 부릅뜨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는 형상을 안타가워하면서도 “졸졸대는 심곡이/ 처량한 것을/ 그대는 아시는지”라는 결론으로 먹구름을 형상화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자연 현상에서 작품 「달 보며」 중에서도 “가끔씩 스며드는/ 그리움만은/ 되돌려 보내기가/ 힘들었던 걸/ 미움도 저에겐/ 사랑였던 걸/ 저 달은 알려나”, 그리고 작품 「햇님」 중에서도 “오늘도 온 가슴 파고들어/ 경이로운 건/ 나는 죽어서도 그대를/ 벗어날 수 없다는 것” 등의 어조로 자연 섭리와 교감하는 시법은 공rka에서 상당한 설득력을 가지게 된다.
수담스님은 첫 시집 봉정암을 상재하면서 불심괴 시심이 융합하는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는 선승의 모습에서 더욱 존경의 마음을 보태게 한다. 부디 상구보리와 하와중생의 부처님의 설법을 실천하여 이 세상을 밝게 인도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