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초 계획을 세울 때는 '와룡마을 ↔ 도암재 ↔ 새섬바위 ↔ 민재봉(와룡산) ↔ 기차바위 ↔ 사자바위 ↔ 와룡마을'의 5시간 30분 환종주를 할 생각이었으나 산악회를 따라가는 상황이라 상황에 따라 변동의 여지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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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룡산[臥龍山]
높이: 797.6m
위치: 경남 사천시 사천읍
한려해상국립공원의 중심부에 있는 사천의 상징인 와룡산은 해발 798m로 거대한 용 한 마리가 누워 있는 모습과 흡사하다 하여 와룡산이라고 한다. 남녘 해안가에 자리 잡은 이 산은 높이보다 산세가 웅장하다. 암릉으로 이루어진 새섬바위와 상사바위, 기차바위 등의 빼어난 암벽과 부드러운 억새 능선길, 시원한 소나무 숲길을 품고 있어 여름 산행지로 적격이다.
정상인 민재봉을 비롯한 새섬바위에서 바라보는 다도해의 크고 작은 섬들과 푸른 바다 조망이 일품이다. 와룡사, 백천사, 백룡사 등 암자와 절이 있다.
상사바위
와룡산 중턱에 있는 높이 60m쯤 되는 바위인데 중앙부에 지름 1.8m의 굴이 있고 굴속에는 부엉이가 살고 있어 굴바위라 했으며, 상사병에 걸린 사람을 이곳에서 떠밀어 죽였다 하여 상사바위라 불렀다.
새섬바위
와룡산 정상부에 있는 바위로 옛날 심한 해일로 바닷물이 이 산을 잠기게 하였으나 이 산꼭대기에 있는 바위만은 물에 잠기지 않아서 그곳에 새 한 마리가 앉아 죽음을 면했다는 전설이 있다.
와룡산 철쭉
사천시는 2002년 연륙교, 실안 낙조, 남일대 코끼리바위, 선진리성 벚꽃, 와룡산 철쭉, 봉명산 다솔사, 사천읍성 명월, 비토섬 갯벌 등을 2002년 ‘사천 8경’으로 선정
와룡산(798m)은 높고 낮은 봉우리가 아흔아홉 개로 형성되어 구구연화봉이라 전해지고 있고 기암괴석과 한려수도가 한눈에 들어오는 절경을 보기 위해 많은 등산객이 찾고 있으며, 5월에 철쭉이 만개하면 온산이 진홍색으로 물드는 장관을 연출한다.
철쭉 구간은 새섬바위에서 민재봉, 민재봉에서 민재봉 삼거리, 민재봉에서 기차바위 구간이다. 상사바위에서 안부를 거쳐 새섬바위까지는 다시 1시간이 걸린다. 여기서부터 민둥봉인 민재봉까지 부드러운 능선길. 철쭉은 바로 이 능선 사면에서 붉은 자태를 뽐내고 있다(40분 소요). 철쭉 개화 시기: 5월 5일-15일
정상에서 남쪽으로 뻗어 있는 기차바위까지 하산길은 별로 힘들지 않지만, 기차바위 못 미쳐 왼쪽으로 내려서는 청룡사 코스는 경사가 급하고 바위가 많아 주의하지 않으면 부상할 위험이 있다.
백천사 와불
백천사 와불은 길이 13m, 높이 3m로 중국에서 들여온 2,300년 된 소나무를 부처님 형상으로 조각, 도금했으며 그 안쪽에는 나무를 깎아내 몸속 법당을 만들어 부처님을 모셔놨다. 그래서 각각 목와불(木臥佛) 또는 와불몸속법당이라고 불린다. 근엄한 와불, 몸속에 8명 정도가 들어갈 법당이 있다 한다. - 한국의 산하
삼천포 하면 어린 시절 몇 년을 보냈을 뿐만 아니라 당시만 해도 국민학교인 초등학교를 입학한 곳이기도 하다. 물론 지금은 삼천포가 아니라 사천시다. 나름 어린 시절의 추억이 있는 도시다. 그런데 우연한 기회에 한국의 산하 사이트를 뒤적거리다가 삼천포에 와룡산이라는 꽤 유명한 산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물론 어린 시절 동네 뒷산에서 연을 날리기도 했으나, 그게 와룡산은 아닐 거다. 인터넷 지도를 이용해 당시 살던 집과 와룡산의 위치를 확인해 보면 도저히 초등학교 1~2학년이 걸어서 갈 수 이는 거리가 아니고, 집 뒤에 작은 언덕이 있는 거로 봐도!
어쨌든 옛 추억이 있는 도시라 2014년 친구와 둘이 1박 2일로 삼천포와 진주를 방문하기도 했었다. 그 추억의 도시에 유명한 산이 있는데 모른 척할 수 없는 건 인지상정! 해서 산행 계획을 세워봤으나, 대중교통을 이용해 서울에서 당일로 와룡산을 다녀온다는 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럼 기댈 곳은 안내 산악회인데, 나름 유명한 산이기는 해도 까만 소 인증 리스트에는 없는 산이라 산악회도 자주 찾는 산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대안이 없어 각 산악회의 산행 계획만 살펴보고 있었다. 물론 꼭 오르겠다면 대중교통을 이용해 1박 2일로 다녀오면 되지만. 삼천포에 있는 와룡산을 인지한 이후 각 안내 산악회에서 세운 몇 번의 산행계획을 확인했으나, 산악회에서 성원 미달로 취소하거나, 본인이 다른 일정 때문에 참여할 수 없어 계속 오르지 못했다.
올 2월 늘 그렇듯이 각 산악회 산행 게시판에 들어가 3월 계획을 살피다 모 산악회가 3월 21일 일요산행으로 와룡산을 진행하고 있는 걸 발견했다. 해서 망설임 없이 자리 하나를 신청했다. 그게 2월 16일이다. 그런데 3월이 다가오자 마침 산행 주에 업무상 중요한 일이 있어 일요일 산행은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체력이 부족해 산행 다음 날 골골거리며 인간 노릇을 못 하는지라 일요일 산행 후 월요일은 업무가 거의 불가능해서다. 그런데 1박 2일 종주 산행은 어떻게 하는 걸까? 거기다가 철쭉으로 유명한 와룡산을 철쭉이 피기 전에 오른다는 것도 산행을 망설이게 하는 이유 중 하나였다. 해서 그 산행을 취소하고 다른 산악회가 3월 20일 토요일에 계획한 영남알프스 하프 종주 산행을 신청했다. 작년 10월 3일 무박 산행으로 영남 알프스 하프 종주[산행기]를 했으니 나머지 반을 도는 게 숙제처럼 남아있었다.
그런데 그 영남알프스 신청상황이 심상치 않아, 대안으로 백두대간 구부시령부터 삼수령(피재)까지 달리는 산행을 주시했다. 그 대간 달리기는 성원은 채웠으나 빈자리가 많아 굳이 서둘러 신청할 이유가 없어 주시만 했다. 예상대로 영남알프스 산행은 성원 미달로 산악회가 취소했고, 구부시령부터 삼수령까지 달리는 산행은 당일 전국적인 비 소식에 취소자가 속출해 역시 성원 미달로 6월로 연기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토요산행이 좋기는 하나, 굳이 지방에까지 가서 우중 산행을 하고 싶지는 않아, 고민 없이 다시 와룡산행을 신청했다.
내가 와룡산을 신청할 때만 해도 빈자리가 꽤 있었으나, 금요일이 되자 토요일 비 소식에 토요 산행을 취소하고 일요 산행으로 변경하는 등산객과 그들이 취소하는 바람에 성원을 채우지 못해 갈 수 없는 산행에 참여했던 산꾼이 일요 산행에 몰리면서 빠르게 빈자리를 채워가고 있었다. 그래서 서너 자리 남았을 때 거의 야유회나 다름없는 산행이라 초보자도 힘들지 않게 갈 수 있고 조망도 최고인 산이라는 판단에 등산방에 산행 계획을 올렸다. 늘 그렇듯이 관심 있는 친구는 동참하라는 뜻으로. 그리고 비 오는 토요일 집에서 빈둥거리고 있는데, 주행이 점심이나 먹자고 전화해 사당까지 진출해 주꾸미로 낮술 한잔하며 주행, 흥수, 나 이렇게 셋이 점심을 먹었다. 그 자리에서 와룡산에 관한 얘기하다가 둘을 설득해 남아 있던 두 자리를 바로 예약했다. 해서 셋이 일요일 사천(삼천포) 와룡산에 간다.
비록 예보에 의하면 산행 날인 일요일 전국적으로 흐려 시야가 좁을 거 같으나, 그래도 혹시나 하는 생각에 줌렌즈의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 가기로 했다. 그리고 11km가 조금 넘는 거리에 5시간 30분의 시간이 주어진 만큼 오랜만에 산에서 라면을 끓이기로 했다. 그래 봐야 실패한 점봉산행 이후 처음이지만[산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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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 당일 새벽에 기상해 누룽지를 끓여 해장하고 미리 준비해둔 배낭을 둘러메고 5시 50분경 집을 나섰다. 그런데 오랜만에 라면을 끓이기 위해 버너, 코펠, 라면, 등에 물만 3ℓ(라면용 1ℓ, 갈증 해소용 얼린 물 1ℓ, 커피 내림용 뜨거운 물 1ℓ), 3kg가량이라 묵직한 배낭이 내리눌러 발걸음이 무거웠다. 6시가 다 되어 도착한 마을버스는 불광역을 코앞에 두고 의도적으로 신호에 걸려 대기하는 바람에 6시 6분 지하철을 탈 수 있을지 아슬아슬했다. 신호가 바뀌기 전에 통과할 수 있음에도 의도적으로 속도를 늦춰 천천히 교차로로 다가가는 마을버스 기사를 향해 속으로 욕을 한 바가지 할 수밖에는 없었다.
6시 5분이 다되어 마을버스가 불광역 정류장에 도착해 별수 없이 계단을 뛰어내려가 지하철 도착 상황을 알려주는 전광판을 보니 어떤 열차도 보이지 않았다. 분명 6시 6분 차가 있어야 함에도 전역인 연신내역에도 지하철은 없어, 이게 어떻게 된 건가 하며 뛰기를 멈추고 고민하고 있는데 아래에서 지하철 도착하는 소리가 들렸다. 급하게 개찰구를 통과해 계단을 날아내려가 닫히기 직전의 문을 통과해 간신히 6시 6분차를 탈 수 있었다. 의도적으로 신호에 걸리는 마을버스 기사, 제대로 된 정보를 제공하지 못하는 지하철 전광판, 덕에 새벽부터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날아다녔다. 어쨌든 무사히 6시 6분 차를 타고 6시 48분경 양재역에 도착해 12번 출구로 나갔다.
12번 출구로 나가자 토요일 비로 산행하지 못했던 등산객이 몰려서 그런지 코로나 시대 평소 일요일보다 많은 등산객이 각 산악회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7시 10분에 출발하는 산악회도 있는 만큼 아직 도착하지 않은 등산객을 고려한다면, 오늘 출발하는 인원은 더 많을 거라 생각하고, 추위에 벌벌 떨며 버스를 기다렸다. 전날 일기예보에 의하면 우리가 가려는 사천은 영상 16도라, 가벼운 여름용 등산복과 바람막이만 입고 있었기 때문이다. 평소 배낭에 넣어서 다니던 패딩은 짐이 많아 빼놓은 게 실착이다. 잠글 수 있는 건 모두 잠그고 벌벌 떨면서 버스를 기다리는데, 시간을 꽉 채운 6시 59분에 사천 와룡산행 버스가 도착했다. 그런데 이 산악회의 트레이드 마크라고 할 수 있는 빨간 버스가 아니라 회색 버스다!
늘 그렇듯이 카메라와 패드만 들고 체온 확인하고 버스에 타 이미 사당에서 탑승해 앞자리에 있던 흥수와 인사 후 제일 뒤의 내 자리로 갔다. 그 옆자리에는 역시 사당에서 탄 주행이 자고 있었다. 인원 확인을 마치 버스는 7시 1분경 양재역을 출발해 죽전과 신갈에서 나머지 등산객을 태워 빈자리 하나 없는 만원으로 사천을 향해 달렸다. 그리고 대전을 지나 9시 가까운 시각에 금산 인삼랜드 휴게소에 정차했다. 작년 11월 수도산[산행기]에 갈 때 들린 게 마지막 방문이었으니, 오랜만이다. 버스에서 내려 스트레칭으로 몸을 푼 후 볼일을 보고 추워 바로 버스에 탔다. 그런데 제일 뒤 내 자리에 흥수가 앉아 있었다. 나중에 흥수가 해 준 얘기에 의하면, 버스 탈 때 내 옆자리에 누군가 앉으며 인사해, 같은 버스를 탄 등산객의 의례적 인사라고 생각해 나도 건성으로 답례를 했는데 알고 보기 작년 2월 태화산에서 우연히 만났던[산행기] 흥수 친구라고. 마스크로 얼굴을 가려 알아보지 못했다. 그래서 흥수가 내 자리에 앉았던 거였다.
옆자리에는 젊은 여성 산꾼이 앉아 있었다. 휴게소에서 버스가 출발하기 전 인솔 대장과 그 산꾼이 나를 사이에 두고 나누는 대화를 듣고 깜짝 놀랐다. 이 여성 산꾼은 토요일, 어제 비 내리는 '큰넓고개'부터 '다름고개'에 이르는 한북정맥 구간을 달리고, 오늘 사천 와룡산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는 거다.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돌려 흠모의 눈으로 한번 훑어보고, 패드를 들고 다시 책을 읽었다. 그리고 버스가 출발하자 늘 그렇듯이 인솔 대장이 마이크를 잡고 이번 산행의 코스와 주의 사항에 관해 설명을 시작했다. 이정표가 잘 만들어져 있고, 등산로가 좋아 특별히 길을 잃거나 주의할 점이 없어, 빠른 등산객은 4시간 만에 주파하는 코스라고 했다. 하긴 산악회 기준 11km가 조금 안 되는 거리라 4시간이면 충분하다. 들머리 도착 예정 시각이 11시라 마감은 4시 30분이다. 날머리 식당이 영업을 안 한다니 굳이 달릴 이유가 없어 마감 시각 10분 전 도착을 목표로 삼았다. 책을 보다 잠깐 졸기도 하며 달리는 버스에 몸을 맡겨 11시 55분경 들머리인 탑서리휴게소 입구에 도착했다. 그런데, 입구에서 휴게소에 이르는 도로에 주차한 근처 아파트 차량 때문에 버스 진입이 불가능해 별수 없이 입구에서 내려 산행을 시작해야 했다. 기사 말에 의하면 입구에서 휴게소까지는 400여 미터라고. 고로 산행 거리가 400m 늘었다. 물론 마감 시각은 변동이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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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시 59분 산악회 예정 들머리인 탑서리휴게소가 아닌 마을 입구에서 산행을 시작했다. 말하자면 마을을 통과해 탑서리까지 가는 길이 추가된 거다. 그런데 남도의 해안 도시답게 우리가 온 서울보다 봄이 빨라 마을 입구에서부터 활짝 핀 동백, 개나리, 진달래 등의 봄꽃이 반겨줬다. 다른 등산객이 앞을 보며 가는 동안 우리는 뒤에 처져 꽃을 사진으로 남기며 유유자적 와룡산을 향해 가 11시 8분에 계획상의 들머리인 탑서리 휴게소에 도착했다. 휴게소 주변에 있는 와룡산 지도와 주변을 둘러보고 저수지 옆길로 들어서는 거로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했다. 그래 봐야 와룡산 주변에 늘려 있는 절이나, 암자로 접근하기 쉽게 포장된 도로지만.
후미 그룹에 섞여 포장도로를 따라가고 있는데 위에서 큰 목소리가 들리더니 길을 잘못 들었다며 선두 그룹이 다시 내려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우리끼리 농담으로 ‘갈림길에서 지도를 확인하지 않는 산꾼이 어딨느냐?’, ‘뒤에서 따라가니 알바하지 않아서 좋다!’ 등의 헛소리를 하며 갈림길에서 제대로 된 등산로 접어들자, 졸지에 우리가 선두를 차지하는 불상사가 생겼다. 그래 봐야 선두 그룹 후미지만. 그런 식의 헛소리를 해가며 시시덕거리며 올라가니 다시 후미 그룹의 선두가 됐다. 어쨌든 선두 그룹에 뒤에 바짝 붙어 올라가는데, 이번에는 뒤에서 우리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뒤에서 따라오던 인솔 대장이 길을 잘못 들었다는 거다. 갈림길에서 위가 아니라 아래로 가야 한다는 거. 그나마 나는 뒤 10여 미터만 돌아가면 되는데 주행과 흥수는 꽤 많은 거리를 돌아와야 했다.
벌써 두 번이나 길을 잘못 든 상황에 큰 소리로 "산에서가 아니라 동네에서 길을 잃어버리면 앞으로 산행은 어떡할 거냐?"라고 농담하자, "그래서, 선두는 무조건 갈림길에서 등산 앱의 지도를 확인해야 한다!"라고 흥수가 받았다. 야유회 산행이자 봄꽃 산행, 추억 산행으로 생각하고 사천까지 내려왔으니 급할 게 없어 유유자적 시시덕거리며 주변의 절을 위한 포장도로를 따라 위로 올라갔다. 정말 좁은 지역에 원불교를 포함한 절이 이렇게 많은 동네는 처음 볼 정도로 절이나 암자가 많았다. 원불교 수련원 마당의 활짝 핀 동백을 감상하고, 위로 오르자 백팔탑이 있다는 돌탑사가 나타났다. 백팔탑이라 해서 108층 탑이라 생각했는데, 108개의 돌탑이 있는 절이라 얘기였다. 마이산탑사 수준으로 돌탑이 많았다. 끝으로 벚꽃이 만개한 등룡사를 지나자 정규 등산로 갈림길이 나타났다. 그 시각이 11시 44분이다.
지금까지 봐왔던 동백과 다른 동백꽃 색깔에 그 앞에 멈춰 사진을 찍고 둘이 그 꽃에 관한 얘기를 하는 동안 작년 가을 지리산 반야봉, 피아골 단풍산행[산행기] 이후 거의 6개월 만에 산에 올라 힘들어하는 주행은 앞만 보고 계속 올라갔다. 대한민국 어느 산이나 마찬가지듯이 아무리 낮은 산이라도 깔딱은 있게 마련이라, 힘들지 않을 수 없다. 매주 산에 다니는 흥수와 나도 깔딱에는 대책이 없는데 6개월 만에 산을 오르는 주행은 두말할 필요도 없을 거다. 그나마 숲 사이로 보이는 진달래에 위안을 받으며 헉헉대며 첫 번째 깔딱을 올라 12시 9분에 도암재에 도착했다. 도암재에는 지자체에서 평상과 의자를 여기저기 설치해 등산객이 쉴 수 있는 공간이 많았다. 물론 우리에 앞선 등산객이 그 의자와 평상에 자리를 잡고 앉아 이른 점심을 먹는 팀과 휴식을 취하는 팀으로 나뉘어 있었다. 와중에 숲에서 삼겹살을 굽고 있는 팀이 나를 놀라게 했다. 이왕 굽는 거 평상에서 하지, 숨는 것도 아니고 안 숨는 것도 아닌 다 보이는 숲에서 구울 필요가?
힘들어서 쉬겠다는 주행을 와룡산에 온 목적이 사량도와 지리망산을 보기 위함인데, 천왕봉에 오르지 않으면 볼 수 없다고 설득해서 의자에 배낭을 벗어 두고 500m 떨어진 상사바위(천왕봉)에 올랐다. 이번 산행 두 번째 깔딱으로 첫 번째 깔딱보다 경사가 심했으나 그나마 500m밖에 되지 않는다는 걸 위안 삼아 주변의 진달래를 구경하며 올랐다. 그리고 암릉에 놓인 데크 계단에 이르자 고개를 뒤로 돌리면 주 능선에 우리가 올라야 할 암봉의 모습이 보였다. 그 모습에 암담한 심정이었다. 천왕봉도 오르기 힘들어 죽겠는데 이 구간보다 더 높고 경사가 심해 보이는 봉우리를 올라야 한다는 거 때문이다. 그럼에도 위안이 되는 건 당연한 얘기지만, 계단을 올라 위로 갈수록 보이는 게 많아져 삼천포(사천) 시가지와 포구와 바다의 조망이 흐린 날씨 속에서도 보인다는 거.
계단을 다 오르자 앞이 뻥 뚫리고 왼쪽으로는 암릉이 펼쳐졌다. 물론 좌우는 낭떠러지! 그 암릉 곳곳의 여유 공간에는 우리와 같이 온 등산객뿐만 아니라 주변 도시에서 온 등산객이 자리를 잡고 앉아 점심을 먹고 있었고, 천왕봉 정상석 주변은 인증을 찍는 등산객으로 정신이 없었다. 먼저 흐린 날씨 속에 저 멀리 보이는 ‘사량도와 지리망산’을 사진으로 남기고, 다음엔 삼천포를 시로 만들어준 삼천포 화력을. 그리고 정상석을 지나 더 가자, 의외의 추모비가 나타났다. 그 추모비도 사진으로 남긴 후 암릉 끝에 도착해 아래를 보자 삼천포 시가지가 한눈에 보이고 저 멀리 내가 다녔던 삼천포 국민학교 아니 초등학교도 찾을 수 있었다. 조망하고 사진으로 남긴 후 다시 걸음을 돌려 정상석 방향으로 가자 아래에서 주행이 올라오는 게 보였다. 해서 주행이 도착하기를 기다려 그 친구의 인증을 남겼다. 흥수나 나는 인증에 별 의미를 두지 않으나 6개월 만의 산행으로 힘들게 천왕봉에 오른 주행은 인증을 남겨야!
다시 도암재로 돌아가기 위해 암릉을 지나며 주행 위주로 사진을 남겼다. 올라왔던 그 길을 따라 도암재로 내려가 12시 50분에 도착했다. 점심을 먹기에는 좀 늦은 시각이라 도암재에는 우리를 비롯해 4팀 정도만 점심을 먹거나 쉬고 있었다. 해서 큰 평상 하나를 차지하고 앉아 무겁게 들고 간 버너와 코펠, 라면, 물을 꺼내 점심 준비를 했다. 라면이 끓는 동안 주행이 들고 오다 힘들어 흥수에게 넘겼던 빨갱이 페트와 탕수육으로 한잔했다. 와중에 치과 치료를 받는 흥수는 빨갱이를 마시지 못해 주행과 둘이 4/5 정도를 마시고 나머지는 정상에서 마시기 위해 잘 챙겼다. 그런데 산행 중 취사가 가능한 대피소가 아닌 곳에서 이렇게 당당하게 라면을 끓인 건 취사 금지가 시행된 이후 처음인 거 같은데, 어쨌든 라면으로 배를 채우고 입가심으로 커피를 내려 마신 후 우리가 있었다는 모든 흔적을 인멸하고 평상을 떠난 시각이 1시 40분 즈음이다. 고로 50분 정도 점심을 먹은 거다. 산행 중 점심 먹느라 분을 소모한 것도 정말 오랜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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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과 탕수육에 빨갱이 반주로 점심을 먹고 주 능선으로 올라가는 중에 의외의 비석에 놀랐다. '대통령기 전국 등산대회'라니! 어쨌든 천왕봉에 오를 때 뒤로 보였던 급경사의 암봉을 오르는 건 예상대로 쉽지 않았다. 그나마 간간이 보이는 야생화를 위안으로 삼으며 올라 1시 54분에 돌탑 군이 있는 곳에 도착했다. 천왕봉에서 건너편의 이 봉우리 너덜 지역에 탑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정확히 본 거다. 작고 넓적한 돌로 옥개석까지 만든 돌탑을 사진으로 남기며 봉우리 정상을 오르다 간혹 보이는 생강나무의 노란꽃과 진달래의 분홍꽃이 어울린 모습도 좋았다.
봉우리를 어느 정도 오르자 당연한 얘기지만, 고개를 돌려보면 천왕봉(상사 바위)을 오를 때와는 반대로 뒤로 천왕봉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 모습을 보며 저 봉우리가 발아래 보여야 올라가고 있는 봉우리 정상이 가까워진다는 생각에 언제나 발아래 보일까 초조해하기도 했다. 발걸음을 위로 내딛지 않는 이상 봉우리에 오르지 못하니, 헉헉대며 발을 내딛어 올랐다. 그리고 역시 천왕봉에서 보고 '저기는 데크가 있는 거 같은데?'라고 예상했던 그 위치에 있는 데크 계단에 도착했다. 그런데 그 계단 아래에는 과거 계단을 설치하기 전에 등산객이 위험한 리지를 올랐었는지 "등산로 아님" 경고판이 서 있었다. 그리고 뒤로 보이는 천왕봉이 발아래 있어 정상이 멀지 않음을 알려주었다. 물론 천왕봉에서 봤던 이 봉우리 모습은 정상 부근에서 암봉의 바위가 드러나기 때문에 이미 리지에 도착했을 때 정상이 멀지 않음을 알고 있었다.
계단으로 바위를 돌자 너덜지대가 나타났고, 위로는 능선이 보였다. 너덜을 따라 위로 올라가니 설악산 봉정암에 오를 때 마지막 너덜 구간의 축소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능선에 도착하자 곳곳에 "추락 위험" 경고판과 돌탑이 서 있었다. 아주 당연히 경고판 뒤로 가 아래를 내려다보니 절벽이나, 최고의 조망지라, 미세 먼지로 시야가 좋지 않은 걸 원망했다. 날씨만 좋다면 한려수도의 장관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전망대에 서 있음에도 볼 수 없다는 건 다음을 기약하게 했다.
그 전망대를 지나자 본격적인 암릉이다. 물론 암릉 밑으로 길이 있었으나, 암릉을 무시하면 산꾼이라 할 수 없어 그 암릉으로 새섬봉을 향해 갔다. 그렇게 흥수와 둘이 암릉을 따라 바위를 기어 오르내리며 전진해 2시 38분에 와룡산 정상인 새섬봉에 도착했다.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와룡산 정상은 민재봉으로 알고 있었다. 해서 주행만 인증을 남기고 단체 인증은 찍지 않았다. 단체 인증이야 정상에서 남기면 되니. 그런데 알고 보니 과거에는 민재봉이 정상이었으나, 봉우리 높이를 다시 측정해본바 새섬봉이 약간 더 높은 거로 판명되어 정상을 새섬봉으로 바궜다고. 그 새섬봉에서 저 앞으로 보이는 민둥의 민재봉을 사진으로 남기고 그 봉우리를 향해 출발했다.
새섬봉 정상을 떠나자 등산로가 지금까지의 암릉에서 전형적인 흙산으로 변했다. 아직 꽃이 피지 않은 철쭉 터너을 지나는 등산로는 철쭉이 만개했을 때 어떤 장관을 보여줄지 기대하게 했다. 흙산에 기복도 거의 없는 길이라 거의 시속 4km의 속도로 갈 수 있어 점심 먹느라 소모한 시간을 많이 보충할 수 있었다. 민재봉을 향해 가는 중에 천왕봉에서 주 능선상의 흰 구조물을 보며 ‘비박꾼의 텐트? 군부대의 막사?’ 등 흥수와 둘이 의견이 분분했던 건물이 산불감시 초소라는 사실도 확인했다. 요즘 보기 힘든 민둥산 민재봉 정상을 바라보며 평지를 걷듯이 나아가다가 뒤로 고개를 돌리면 와룡산에서는 보기 힘든 바위봉우리인 새섬봉의 장관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직 꽃이 피지 않은 철쭉 터널을 지나 3시 9분에 과거 와룡산 정상이었던 민재봉에 도착했다. 정상은 널찍한 평지로 지자체에서 의자 등을 설치해 쉴 수 있도록 만들어 놓았다. 그 곳에는 현지인으로 보이는 예닐곱 명의 노년의 등산객이 쉬고 있었다. 해서 그중 한 등산객에게 부탁해 단체 인증을 찍은 후 주행의 인증도 찍었다. 그리고 그 등산객의 주 대와 대상인 민재봉에서 뻗어 내려간 능선 위의 기차바위를 보며 기회가 되면 타봐야겠다고 결심했다. 문제는 비탐방 구간이라 산악회와 동행해서는 탈 기회가 없다는 거. 이제부터는 내리 하산 길이고 시간의 여유도 있어 좀 쉬었다 가기로 하고 점심때 먹다 남은 빨갱이를 오렌지 안주로 마저 비웠다.
충분히 휴식을 취한 후 민재봉을 떠나 날머리인 백천사 주차장으로 향했다. 간혹 나타나는 급경사의 하산길을 따라 갈림길인 백천제에 도착한 시각이 3시 37분이고 날머리인 백천사까지는 3km가 넘게 남았다. 애초 목표 4시까지 도착은 틀렸으나 마감 시각 이전 도착은 가능했다. 그렇다고 우리가 꼴찌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지만. 어쨌든 너덜지대를 통과하고 임도 수준의 길을 따라 내려가 4시 정각에 백운마을에 도착했다. 위에는 저수지가 아래에는 바다가 보이는 경치를 사진으로 남기며 아스팔트 도로를 따라가 4시 12분에 버스가 기다리는 백천사 주차장에 도착했다. 꼴찌로 산행을 마친 시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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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장에 서 있는 버스를 향해 가며 식당을 보니 아예 자물쇠로 채워 문이 잠긴 상태라 안심했다. 만약 식당이 영업 중이었다면 하산주할 시간 없이 유유자적했다고 후회했을 테니까. 처음에는 백천사는 관심밖이었으나, 흥수의 갔다 오자는 제의에 따라 배낭을 멘 채 백천사로 올라갔다. 주변의 벚꽃과 목련을 사진으로 찍으며 유유자적 와불을 보러 가고 있는데 흥수 친구가 내려오며 "15분 남았어요!"라고 외치는 말에 "10분이면 충분합니다!"라고 답하고 대웅전으로 갔다. 그리고 절 여기저기 거의 사이비 수준의 부처와 보살 상을 보자 종파가 어딘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분명 어렸을 때 와불에 관한 얘기를 듣지 못했는데, 한국에는 흔하지 않은 와불이라는 것도 의심스러웠고.
와불을 다양한 각도에서 사진으로 남기고, 종파가 어디든 우는 소리가 목탁 소리와 비슷해 목우(木牛)라 불리는 소가 있는 곳으로 갔다. 그 소를 보자 갑자기 "전생에 얼마나 큰 죄를 지었으면, 소로 태어나 목탁 소리로 울까?" 궁금해졌다. 그리고 그 생각을 말로 표현했다. 이후 시간에 늦지 않게 서둘러 버스가 기다리는 주차장으로 갔다. 주차장에 도착해 배낭을 버스 짐칸에 넣고 버스에 타고 시계를 보니 4시 26분으로 마감까지 4분 남았다. 내가 타자 주위에 서성이던 등산객이 하나둘 타더니, 모두 다 탄 시각이 4시 29분이다. 즉 버스가 서울을 향해 출발한 시각이다. 출발하며 기사가 "아직, 1분 남았는데…."라는 말 때문에 기억하고 있다
백천사 주차장을 떠난 버스는 6시 55분경 신탄진 휴게소에서 10분가 휴식했다. 볼일을 보러 버스에서 내렸다가 추위에 벌벌 떨었다. 해서 서둘러 일을 보고 버스에 타고 폰으로 각지의 기온을 확인했다. 날씨가 감기 걸리기 딱 좋아 서울에 도착해서 집으로 갈 때까지가 은근히 걱정됐다. 다시 출발한 버스에서 이후 일정에 관한 얘기가 나왔다. 난 바로 집으로 가기를 원했는데, 사당에서 저녁을 먹고 가자는 주행의 제안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8시 52분 오랜만에 사당에서 내려 문을 연 식당을 찾아 들어갔다. 추위에 떨며 자리에 앉아 배낭 옆 주머니에 있던 산에서는 한 모금도 마시지 않은 물병을 꺼내 마셨다. 아쉽지만, 술을 마실 충분한 시간도 없고, 내일 출근하는데 지장을 받지 않기 위해 소주 대신 막걸리를 해물파전 안주로 간단히 3병만 마시고 헤어지는 거로 이번 사천 와룡산행을 마쳤다.
탑서리휴게소 → 도암재 → 천왕봉(상사 바위) → 도암재 → 새섬봉(인증) → 민재봉 → 백천재 → 백천사 → 백천사 주차장'의 11.52km(트랭글 기준), 5시간 15분 코스의 봄을 만끽한 와룡산행이었다. 이동 4시간 24분, 휴식 51분!
날이 흐려 뚜렷이 볼 수는 없었으나, 그렇지 않았다면 한려수도의 절경을 만끽했을 산이다.
천왕봉과 새섬봉의 암릉 구간은 마치 북한 의상 능선을 옮겨 놓은 거 같았고, 새섬봉부터 민재봉에 이르는 철쭉이 피지 않은 철쭉능선은 너무 이른 산행이라는 아쉬움을 주었다.
조망이나 재미나, 반드시 올라봐야 할 산이다.
첫댓글 산행과정이나 올랐던 봉우리들에 대한 얘기는 나중에 추가할 생각이신가?
추가 작성 중
아, 백천사는 조계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