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의 사람시리즈-바울㊷
같은 마음을 품으세요!
참고말씀: 창32:24-30; 33:3,4,10; 민12:1; 대상12:16-18; 잠16:7; 요11:41,42; 17:21; 행15:39; 고전1:10; 16:13; 빌2:2,3; 골2:7
읽을말씀: 빌4:1-3
주제말씀: 빌4:2
“내가 유오디아를 권하고 순두게를 구하노니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첫째, 같은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내가 유오디아를 권하고 순두게를 구하노니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빌4:2)
비전의 사람들도 때로는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의견충돌이나 다툼입니다. 모세와 미리암, 아론 등이 그러 했고, “모세가 구스 여자를 취하였더니 그 구스 여자를 취하였으므로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를 비방하니라.”(민12:1) 바울과 바나바가 그리 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서니...”(행15:39 상)
어째서입니까? 저마다 개별 사안에 대해 생각이나 방법이 얼마든지 다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성경은 끊임없이 무엇을 강조하고 있습니까? 같은 마음을 품을 것입니다.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권하노니 모두가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고전1:10) / “마음을 같이 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여 한 마음을 품어.”(빌2:2) /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빌4:2 하)
그러므로 비전의 사람들도 어찌 해야 합니까? 같은 마음을 품도록 힘써야 합니다. 비전의 사람 바울이 빌립보 교회의 기둥과 같은 두 여인에게 권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내가 유오디아를 권하고 순두게를 구하노니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2절)
참고로, 본문에 언급된 두 여인, 곧 유오디아와 순두게는 누구입니까? 바울의 총애를 받던 동역자들로서 빌립보 교회의 초기부터 복음사역에 힘썼던 이들입니다.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여인들을 돕고...”(3절 중) 이들은 왜 다투었습니까? 구체적인 언급이 없으나 추측컨대 교회에 대한 지나친 열성이 원인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이를 통해 무엇을 깨닫게 됩니까? 교회에 대한 지나친 열정이 때로는 갈등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사실 무관심한 사람은 다툴 일이 없습니다. 관심이 있고 열정이 있기 때문에 갈등이 생기고 다툼도 하게 마련입니다.
우리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누구보다도 교회를 사랑하고 있습니까? 누구보다도 하나님 나라에 대한 열정이 대단합니까? 그렇다면 더더욱 옆에 있는 형제들과 마음을 같이 하기 바랍니다.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김으로써 더욱 그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빌2:3)
둘째, ‘주 안에 있어야’ 마음을 같이할 수 있습니다!
“내가 유오디아를 권하고 순두게를 구하노니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빌4:2)
같은 마음을 품으려면 구체적으로 어찌 해야 합니까? 무엇보다도 먼저 주 안에 있어야 합니다. “내가 유오디아를 권하고 순두게를 구하노니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2절)
어째서입니까? 주 안에 있으면, 언제나 같은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나의 마음이 주님의 마음이고, 상대방의 마음도 주님의 마음인데, 어찌 우리가 서로 다른 마음을 품을 수 있단 말입니까? 그러니 서로 상대방에게 자기의 마음에 맞춰달라고 요구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모두 먼저 주님의 마음에 맞출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경우를 보십시오. 한 번이라도 누구와 다투셨습니까? 한 번이라도 누구와 갈등을 겪으신 적이 있습니까? 없으셨습니다. 어떻게 그러실 수 있었습니까? 그분은 항상 하나님 안에 계셨으며 하나님과 늘 교통하셨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요17:21 상) /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요11:41,42)
우리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날마다 주 안에 있습니까? 우리의 말과 행실로써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있습니까? 명심하십시오. 이와 같이 범사에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하나님께서도 우리의 풀리지 않는 관계를 해결해주신다는 점을 말입니다. “사람의 행위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 그 사람의 원수라도 그와 더불어 화목하게 하시느니라.”(잠16:7)
지금 우리는 어떻습니까? ‘주 안에 있어야’ 같은 마음을 품을 수 있음을 깨닫고, 내가 먼저 주 안에 거하기를 힘쓰고 있습니까? 원컨대 바울이 왜 ‘주 안에서’라는 말을 자주 반복하고 있는지를 깨닫기 원합니다.
셋째, ‘주 안에 서있어야’ 마음을 같이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빌4:1)
같은 마음을 품으려면 또 어찌 해야 합니까? 주 안에 서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1절) 어째서입니까? 신앙적으로 바로 설 때, 갈등을 극복할 수 있고 다툼을 피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주 안에 서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어떠한 환난과 역경에도 하나님을 믿는 신앙에서 떠나지 말고 굳게 서 있는 것입니다. 마치 군인이 맹렬한 공격 중에서도 끝까지 진지를 사수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참고로, ‘서라’(헬, 스테케테)의 기본형 ‘스테코’(굳게 서다)는 적의 맹렬한 공격 중에서도 끝까지 진지를 사수하는 것을 가리키는 군사용어입니다.
그런데 만일 갈등 상황에서 주 안에 서 있지 않으면 어찌 됩니까? 갈등이 해결되기는커녕 오히려 공동체를 이탈할 수 있으며, 다툼이 중단되기는커녕 오히려 아예 신앙생활을 등질 수도 있습니다.
이를 막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어찌 해야 합니까? 주 안에 서있어야, 곧 신앙적으로 바로 서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1절 하) 이 같이 신앙적으로 바로 서 있기만 하면, 언젠가는 반드시 지금의 갈등도 해결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야곱이 얍복강에서 신앙적으로 바로 섰을 때(창32:24-30) 그의 형 에서와 극적으로 화해할 수 있었으며, “자기는 그들 앞에서 나아가되 몸을 일곱 번 땅에 굽히며 그의 형 에서에게 가까이 가니 에서가 달려와서 그를 맞이하여 안고 목을 어긋맞추어 그와 입 맞추고 서로 우니라.”(창33:3,4) / “...내가 형님의 얼굴을 뵈온즉 하나님의 얼굴을 본 것 같사오며 형님도 나를 기뻐하심이니이다.”(창33:10 하)
다윗도 신앙적으로 바로 서 있을 때 그의 원수들까지도 자기편으로 만들 수 있었던 것입니다. “베냐민과 유다 자손 중에서 요새에 이르러 다윗에게 나오매 다윗이 나가서 맞아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만일 너희가 평화로이 내게 와서 나를 돕고자 하면 내 마음이 너희 마음과 하나가 되려니와 만일 너희가 나를 속여 내 대적에게 넘기고자 하면 내 손에 불의함이 없으니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이 감찰하시고 책망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매 그 때에 성령이 삼십 명의 우두머리 아마새를 감싸시니 이르되 다윗이여 우리가 당신에게 속하겠고 이새의 아들이여 우리가 당신과 함께 있으리니 원하건대 평안하소서 당신도 평안하고 당신을 돕는 자에게도 평안이 있을지니 이는 당신의 하나님이 당신을 도우심이니이다 한지라 다윗이 그들을 받아들여 군대 지휘관을 삼았더라.”(대상12:16-18)
지금 우리는 어떻습니까? ‘주 안에 서있어야’ 마음을 같이할 수 있음을 깨닫고, 날마다 주 안에 서있도록 힘쓰고 있습니까? 원컨대 깨어서 믿음에 굳게 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라.”(고전16:13) / “그 안에 뿌리를 받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골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