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전용‧한자배척의 어문정책과 교육정책은 우리말 국어를 황폐화하여 국민의 언어능력과 지성을 저하시키고, 아동과 청소년의 학습능력과 사고능력을 감퇴시키며, 학문의 발전을 저해하고, 문화의 전통을 말살하는 엄청난 폐해를 낳고 있습니다. 이하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살피도록 하겠습니다.
가. 우리말 국어의 황폐화와 국민의 언어능력 저하
(1) 우리의 언어생활에서 한자가 사라져가면서 우리의 생각과 느낌을 정확하게 표현하고 이해하는 국어능력이 심각한 수준으로 약화되어 가고 있습니다.
국립국어원의 “2010년 국민의 언어의식 조사” 결과에 따르면, ‘최근 한국인의 국어능력이 저하되고 있다’는 의견에 대해 응답자 10명 중 4명 정도(42.5%)는 ‘그렇다’(매우: 6.2%, 대체로: 36.3%)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보통이다’는 27.2%, ‘그렇지 않다’는 30.4%(별로: 27.8%, 전혀: 2.6%)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국어능력이 저하되고 있다는 의견(42.5%)이 그렇지 않다는 의견(30.4%)보다 높습니다.(65)
한자어로 된 우리말 국어를 한자로 익히지 않고 한글로만 인식하다 보니 한자어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어휘력이 현저히 떨어지고 있습니다. 대학생들에게 신문의 선거 관련 기사에 자주 등장하는 ‘부동층’의 뜻을 물으면, ‘움직이지 않는 층’이라는 답변이 많이 나옵니다. 지지하는 후보자를 결정하지 못해 ‘떠다니는 것’(浮動)을 ‘움직이지 않는 것’(不動)으로 이해한 답변입니다.(66)
어느 지방의 한 태권도 도장 문에 붙은 광고전단에는 ‘석기회원 모집’이라고 적혀 있었는데, 아침 일찍 일어나서 하는 ‘조기청소’나 ‘조기축구’의 조기(早起)의 뜻을 정확히 모르다보니 늦은 밤 운동하는 회원을 ‘석기회원’으로 엉뚱하게 표기한 것입니다.
어느 음식점의 메뉴표기에 ‘삼계탕’(蔘鷄湯)을 ‘參鷄湯’이라고 적어 놓아, 손님들로 하여금 이 집에서는 닭을 세 마리 넣어주는 것으로 오인하게 하는 사례도 있습니다. 우리말 한국어를 한자로 익히지 않은 결과 우리말의 한글맞춤법도 틀리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초등학생이 ‘재산’(財産)을 ‘제산’으로 쓰거나, 대학생들이 ‘현재’(現在)를 ‘현제’로, ‘게재’(揭載)를 ‘게제’로 쓰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대학의 박사학위까지 취득한 지식인도 ‘풍비박산(風飛 雹散)’을 ‘풍지박산’으로, ‘희한(稀罕)’을 ‘히안’으로, ‘재실(齋室)’을 ‘제실(祭室)’로, ‘(국기)게양’을 ‘(국기)계양’으로 잘못 쓰고 있습니다.
심지어 신문이나 정부의 보도자료에서도 이런 현상이 적잖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예컨대, ‘국민들의 자괴감을 상세[상쇄(相殺)의 오류]시켜 주기 바란다’, ‘서울시 재설[제설(除雪)의 오류] 대책 비상’, ‘벌떼 출연[출현(出現)의 오류] 창문을 열지 마세요’, ‘대북 재제[제재(制裁)의 오류] 조치에 따른 개성공단 입주 기업의 피해’, ‘현금 결재[결제(決濟)의 오류] 비율도 비교적 높다’ 등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2) 우리말 한자어에는 약 25%가 동음이의어(同音異義語)라고 합니다. 한글 전용론자들은 동음이의어를 앞뒤 문맥으로 알 수 있다고 하지만, 이는 이미 한자를 잘 아는 사람들에게 해당하는 이야기입니다. 한자를 모르는 사람들이 동음이의어를 정확하게 구분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설령 한자를 아는 사람이라도 동음이의어를 한글로만 표기하면 언어생활에 꽤 혼란을 초래합니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 ‘다문화’라는 말이 자주 쓰이는데, ‘다문화 가정’, ‘다문화 센터’라는 표현이 그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유명 인사는 ‘다문화 센터’를 ‘우리의 전통 차(茶)를 마시는 곳’, 즉 ‘茶文化’로 알고 있었다고 합니다.
이 뿐만 아니라, 노조 전임자의 ‘전임자’라는 말이 ‘전에 노조에 근무한 적이 있는 전임자(前任者)’인지, ‘지금 노조 업무만 전담하는 전임자(專任者)’인지 몹시 혼동됩니다. 또한 ‘대표팀 5연패’라는 말에서는 ‘연달아 이긴 5연패(連覇)’인지, ‘연달아 진 5연패(連敗)’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 회사에 대한 감사’는 ‘고맙다는 감사(感謝)’인지, ‘조사한다는 감사(監査)’인지 혼란스럽습니다.
(3) 한자를 몰라 동음이의어(同音異義語)를 구분하지 못한 결과, 우리의 문화가 담긴 어휘를 영어나 외국어로 번역할 때 웃지도 못할 오역(誤譯)이 벌어지는 사례가 허다합니다. 어느 지방의 ‘김치축제’를 알리는 유인물에서 는 ‘忠壯祠(Shrine)’라고 해야 할 사당(祠堂)의 영문표기를 ‘충장사(忠壯寺)’라는 절로 알고 ‘Temple’로 표기했으며, ‘향교(鄕校)’는 교량(橋梁)의 뜻인 ‘Bridge’로 표기했다고 합니다.
또 어느 대학에서는 ‘○○○ 絞首 정년퇴임’이라는 플래카드가 내걸린 적도 있습니다. 다른 곳도 아닌 대 학의 영자신문(英字新聞)에서는 ‘주간교수(主幹敎授)’를 ‘Weekly Professor(週刊敎授)’로 표기한 적도 있습니다. 또 어느 대학의 신학선언문에서는 ‘세계선교사(世界宣敎史)에 유례(類例)가 없는’이라는 뜻의 영문을 ‘유래(由來)가 없는’으로 이해하여 ‘unprecedented; unexampled’라고 표기해야 할 것을 ‘without origin’으로 표기했다고 합니다.
(4) 세계의 모든 언어에는 그 언어만이 갖는 독특한 성운(聲韻)이 있습니다. 영어나 독일어에는 악센트가 있고, 중국어에는 고저장단이 있으며, 일본어에는 탁음(濁音)과 반탁음(半濁音)이 있듯이 한국어에도 장단(長短)의 발음 구분이 있습니다. 지역명인 서산(瑞山)은 첫소리가 긴소리여서‘서:산’으로 읽어야 하고, 일반명사인 서산(西山)의 첫소리는 짧은 소리여서 ‘서산’으로 읽어야 합니다.
전라도 광주(光州)와 경기도 광주(廣州), 강원도 영동(嶺東)과 충청도 영동(永東)도 마찬가지로 한자로 써야 경기도 ‘광:주’와 충청도 ‘영: 동’이 긴소리라는 것을 알 수 있고 발음으로도 구분할 수 있습니다. 한글만으로는 우리말의 장단을 표기할 수 없는 것입니다. 도덕(道德), 도봉구(道峰區), 부자(富者), 부평(富平), 부천(富川), 화재(火災) 등은 첫소리가 모두 긴소리인데, 한글전용교육으로 발음교육을 무시하다보니 오늘날의 젊은이들은 우리말의 중요한 요소인 장단을 구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일 이 삼 사 오 육 칠 팔 구 십’ 중 ‘이 사 오’는 긴소리요,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아홉 열’ 중 ‘둘 셋 넷 열’은 긴소리입니다. 국민의 표준언어생활을 선도해야 할 아나운서들조차 한글전용교육으로 인해 영어의 악센트나 발음은 중시하면서 정작 우리말의 장단은 구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67)
(5) 한글전용‧한자배척으로 인한 언어생활의 혼란과 국어능력의 저하는 여러 자료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2003년에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文解能力)에 관한 국제비교를 행한 한 연구에 의하면, 한국 성인의 문해능력은 높은 고학력의 성인 비율에도 불구하고 낮은 수준이며, 특히 문서문해 영역에서는 최저 수준이라고 합니다.(68)
이에 따르면, 한국 성인의 약 4분의 3(75.8%)은 문해력이 1~2단계로서일상생 활에서 지장을 받을 수 있을 정도라는 것입니다.(69) 문해력이 4~5단계라야 여러 갈래의 정보를 종합해서 복잡한 문제를 파악하고 해결할 수있는사람, 즉 지도층이 될 수 있다는 것인데, 이 단계에 속한 한국 성인은 2.4%로서 23개 조사대상(나라 및 언어권) 중 22등입니다. 칠레가 1.5%로서 꼴찌입니다. 한국 성인의 고급문서 해독력(4~5단계)은 선두그룹인 스칸디나비아 국가의 10분의1 수준입니다(스웨덴 35.5%, 노르웨이 29.4%, 덴마크 25.4%, 핀란드 25.1%).
위 연구에서는 국가별 학력별 문해력을 조사하였는데, 이 부문에서도 한국은 23개국 중 최저 수준입니다. 중졸자(中卒者)의 문해력은 23개국 중 18등, 고졸자(高卒者)는 23개국 중 22등, 대졸자(大卒者)는 23개국 중 23등으로 나타났습니다. 또한 서울대 국어교육과 민현식(閔賢植) 교수는 2009년에 발표한 한 논문 에서 ‘한글 덕분에 단순 문맹률은 낮으나, 실질 문맹률의 지표인 문식성(文 識性, literacy)이 낮고, 고학력자일수록낮게 나타났다'는 요지의발표를 하였습니다.
고학력자일수록 실질 문맹률(文盲率)이 높다는 놀라운 현상을 지적하였습니다. 그는 “1990년부터 중학교에서 한자가 선택 교과로 격하(格下)되어 한국인의 한자 및 한자어 이해력이 급감하고 있다”며 “한글전용으로 인해 한자어의 어원의식(語源意識) 상실로 한글세대에게는 한자어의 동음이의어 (同音異義語)가 다의어(多義語)로 인식되는 다의어화(多義語化) 현상이 생기고 있다”고 진단하고 있습니다.(70)
그 예로 그는 ‘진통’(陣痛: 산모가 해산 할 때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통증)과 ‘진통’(鎭痛: 통증을 가라앉혀 진정시킴)을 들었습니다. 의대의 산부인과 학생들이 ‘산모가 진통을 시작하자 진통 주사를 놓았다’라고 한글체로만 익히다 보니 어원(語源)의식이 없어 동음이의어로 별개인 이 두 단어를 한 단어의 다의어인 것으로 착각하는 의식이 형성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다 보니 미묘한 차이의 전문 개념의 한자어들에 대해정확한 개념 변별이 이루어지지 못하여 어휘력도 줄게 된다고 합니다. 가령 인재(人才)와 인재(人材), 배치(配置)와 배치(排置)의 경우에도 ‘人才’는 재주가 뛰어나게 놀라운 사람이란 뜻이고, ‘人材’는 학식이나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란 뜻입니다. 그리고 ‘配置’는 사람이나 물자 따위를 일정한 자리에 알맞게 나누어 둠이란 뜻이고, ‘排置’는 일정한 차례나 간격에 따라 벌여 놓음이란 뜻인데, 이런 변별력이 사라져 버리니 그만큼 어휘력과 문해력이 약해지는 것입니다. 즉, 문해력의 약화는 어휘력의 약화가 불러온 결과이고 어휘력의 약화는 한자말살로 한자어를 정확하게알지 못하게 된때문이라고 할 것입니 다.(71)
나. 초 ‧ 중등교육에서 학습능력의 저하와 인성교육의 부실
국가의 장래는 교육에 의한 인재(人材) 양성에 달려 있고, 그 교육의 핵심은 언어교육입니다. 교양어(敎養語)를 구사하고 분별력을 갖춘 민주시민은 올바른 국어교육을 통하여 양성됩니다. 그런데 초등학교에서 한자를 가르치지 않고 중등학교에서도 중시되지 않는 선택과목(한문)에 편성되어 한자교육이 실질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다보니, 학생들의 학습능력이 현저히 저하되어 가고 있습니다.
초‧중등교육에서 어휘(語彙)에 대한 이해는 가장 기본입니다. 그런데 우리말 어휘는 약 70% 이상이 한자어로 되어 있는데, 이것을 한글로만 표기하여 가르치면 학생들은 그 정확한 의미에 접근하지 못한 채 그 뜻을 외우거나 대충 짐작으로만 이해하게 됩니다. 어휘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없으면, 그 어휘가 들어간 문장을 이해하는 것은 더욱 어려워집니다. 이해하기 어려운 문장을 읽는 것은 누구에게나 고통입니다. 동기 유발이 되지 않는 어린 학생들에게는 더 큰 고통이며 쉽게 흥미를 잃어버리게 되고, 학습능력은 저하될 수밖에 없습니다.(72)
더 나아가, 어휘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없으면, 그 어휘를 적절하게 구사하여 말과 글에서 활용하는 것은 더욱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국민의 기본교육을 12년 동안 배우고서도 자기 모국어에 대한 정확한 구사능력을 갖추지 못하는 어처구니없는 현실은 결코 학생 개인의 책임으로 돌릴 수 없는 문제입니다.
또한 한자는 5,000년 동양문화의 지혜가 녹아 있는 보고(寶庫)입니다. 한자로된 고전(古典)을 통해 선조들의 교양과 예절, 윤리와 도덕, 삶의 지혜를 배울 수 없는 오늘의 학생들과 젊은이들이 논리부재, 철학부재, 사상부재, 도덕부재의 나락으로 빠져 들고 있다는 탄식(歎息)의 소리가 결코 가볍지 않습 니다.
다. 대학교육에서 학문의 지체(遲滯)와 퇴보
(1) 한자능력은 인문학(人文學)뿐만 아니라 사회과학이나 자연과학 분야에서도 필수적인 도구(道具)입니다. 서울대학교 수학과(數學科)에서는 전공강좌 두 개와 일반강좌 한 개를 영어로 들어야 졸업을 할 수 있는데, 고급강좌는 영어로 진행하고 영어로 시험을 출제하며, 다른 강좌는 한국어로 강의는 하지만 전공용어(專攻用語)는 영어를 쓰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합니다.
일본에서도 고급 전공용어는 일본어로 번역하지 못한 것이 있지만 상당수(相當數)의 전공용어를 번역해 쓰는데, 우리는 영어로 된 전공용어를 한국어로 제대로 설명할 수 있을 만큼의 수준이 되지 못한다고 합니다. 수많은 수학용어를 한글로 써서는 교수와 학생 사이에 의미 전달이 불가능하고, 교수와 학생이 영어로는 뜻을 알아듣고 의사를 주고받으며 소통이 되지만 그것을 한국어의 어떤 한자어로 축약해서 표현해야 하는지 알지 못하므로 영어를 쓰는 것이 편하기 때문입니다. 서울대 수학과의 사례는 한자를 버린 미래의 한국어가 어떻게 될 것인가를 보여주는 예고편(豫告篇)과 같다고 할 것입니다.
(2) 서울대학교 송철의(宋喆儀) 교수는 2004년도 서울대 신입생을 대상으로 사전(事前)에 시험 유형과 시험일을 예고한 후 한자능력을 조사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결과는 응시생 중 60%가 1백점 만점에 50점 미만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고, 80점 이상은 15%였다고 합니다. 학생들은 ‘人爲的 ․ 遺産 ․ 主導的 ․ 學科’ 등을 읽지 못했고, ‘科目 ․ 文化 ․ 統一 ․ 靑春’ 등의 한자를 제대로 쓰지 못했다고 합니다.
1998년도에도 서울대학교 신입생을 대상으로 한자능력을 조사한 적이 있었는데, 학생들은 ‘韓國 ․ 哲學 ․ 美術 ․ 憲法 ․ 北韓 ․ 商品’과 같은 기초한자조차 읽지 못하는 ‘반국어문맹(半國語文盲)’ 이 되어 있습니다. 지금의 대학생들은 지식인의 요람인 대학을 다녀도 한자를 쓰는 것은 고사하고 읽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대학의 도서관을 가득 채우고 있는 한글‧한자 병용으로 쓰인 수십, 수백만 권의 지식의 보고(寶庫)들이 그야말로 무용지물(無用之物)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십 수 년 전에 한자 혼용으로 쓰인 선배들의 지식과 지혜조차도 습득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입니다. 실로 참담한 대학의 현실입니다.
(3) 또한, 인문과학 못지않게 자연과학 분야의 전문용어에 대한 이해가 한자교육과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음을 간과(看過)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서구 문명을 받아들이기 위해 새롭게 만들어진 우리말 국어 속의 자연과학 용어는 거의 대부분이 한자어입니다. 1998년 물리학 용어와 한자교육의 상관성을 주제로 석사학위논문을 쓴 어느 자연과학도(自然科學徒)의 분석은 한글전용 교육이 얼마나 뿌리 깊게 우리나라 과학 발전을 저해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73)
논문집필자는 자신이 가르치고 있는 고등학교 학생들을 표본 집단으로 하여 ‘상온’ ‘오수’ ‘호소’ 등 지구과학 용어에 대한 인지도(認知度)를 조사했는데, 다음의 통계는 1, 2년 후면 대학생이 될 고등학생들의 경우 자기들이 배운 과목의 용어에 대한 정확한 이해도가 얼마나 낮은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답사례(괄호 안은 誤答率) • 정답(正答率) ◦상온: 높은 온도(30.31) • 常溫 - 年間 평균 온도, 또는 평상의 온도(34.84) ◦하우기후: 아래지방에서 내리는 비(6.96) • 夏雨氣候 - 여름에 비가 집중적으로 내리는 기후(16.03) ◦성도: 별 지도, 별 그림(4.52) • 星道 - 별이 지나가는 길(16.03) ◦하천: 아래 강(18.11), 하수도(14.98) • 河川 - 강과 시내(정답자 없음) ◦호소: 물이 고여 있는 곳 [16.72%는 ‘호수’라고 문제를 고침] • 湖沼 - 호수와 늪(정답자 전혀 없음)74)
논문집필자는 표본집단을 순우리말(A) 한글표기(B) 한자표기(C)로 나누어 조사했는데 그 결과에 따르면 A-8.2%, B-36.2, C-75.8%의 정답률을 보였다고 합니다.(75)
이로써 한글전용으로 표기된 자연과학 용어보다 한자로 표기된 용어의 이해도가 두 배 이상 높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한글로만 전문용어를 배운 학생들이 대학의 자연계열에 진학하여 전공분야의 전문용어를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겪을 것은 명약관화(明若觀火)한 일입니다.
이러한 학문의 어려움은 자연계열뿐만 아니라 사회과학이나 인문학에서도 마찬가지입
니다.
라. 문화적 정체성의 약화
(1) 최근 우리말 국어생활에서 한자가 급속도로 사라져가면서, 자기 자녀나 부모의 한자이름, 심지어 자기 자신의 한자이름도 쓰지 못하는 어처구니없는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한 조사에 따르면, 서울에 사는 30대 이상 성인 가운데 절반이 자녀의 한자 이름을 제대로 쓰지 못하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성균관대학교 이명학 교수는 자녀를 둔 30~80대 서울시민 427명을 대상으로 자녀의 한자 이름을 쓰도록 한 결과, 47.8%인 204명이 틀리거나 어떻게 쓰는지 몰랐다는 조사결과를 발표한 바 있습니다.(76)
또 한국어문회가 2010.5. 전국 23개 대학교 학생 2,11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자기 이름을 한자로 쓸 줄 안다는 학생은 60.2%, 자신과 부모의 이름을 모두 한자로 쓸 수 있다는 학생은 24.7%에 지나지 않았습니다.(77) 대학생 10명 중 4명이 자신의 이름조차 한자로 쓸 줄 모른다는 것입니다.
2007년의 한 조사에서는 대학신입생 10명 중 2명이 자신의 한자이름을 쓰지 못한다는 것이었는데,78) 3년 사이에 두 배로 늘어난 것입니다. 이름의 한자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해 온 우리의 전통문화가 요즘의 젊은 세대에 와서 그 맥이 끊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할 것입니다.
(2) 우리 민족문화의 일부인 성명(姓名)은 한자문화를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성(姓) 중에는 한글발음으로는 같지만 한자가 다른 성들이 여럿 있습니다. 이를 한글로만 표기한다면, ‘兪, 柳, 劉, 庾’, ‘鄭, 丁, 程’, ‘曺, 趙’, ‘申, 愼, 辛’, ‘呂, 余’, ‘盧, 魯’, ‘張, 莊, 將’, ‘姜, 康, 江’, ‘全, 田’, ‘林, 任’씨는 모두 같은 성씨가 됩니다.
또한 예컨대 ‘柳東烈’이라는 이름의 경우, 이를 한글맞춤법에 따라 한글로 쓰면 ‘유동 렬’이 되는데, 그의 동생의 이름이 ‘柳信烈’이라고 할 때 이를 한글로 표기하면 ‘유신열’이 됩니다.(79) 두 사람은 친형제 간으로 항렬자(行列字)에 따라 이름이 지어진 것이지만 한글 표기에서는 항렬자가 서로 다른 사람이 되어버립니다.
(3) 한글로만 기록된 각종 문화재의 안내문은 마치 암호문으로 되어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글을 읽고 안다고 착각하고서는 그 정확한 뜻을 알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 문화재의 정확한 뜻을 알기 위해서는 일본어 안내문이나 중국어 안내문을 읽어보거나 아니면 영문 안내문을 읽어야 합니다. 한자를 버린 한국어는 우리 문화재 설명에서조차 부끄러운 자화상 (自畵像)을 만들고 있습니다.
다음의 안내문은 수원시에서 발행한 성곽의 꽃 화성(華城)과 축제라는 안내 책자에 담긴 한글 설명문입니다.
“각루는 정찰, 군량운반통로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었는데 원거리 전망이 좋은 성곽 모퉁이 요소에 자리하고 있다. 화성의 각루는 4개소가 있으며 동북각루는 성의 동북요새지에 위치하고 있다. 또한 방화수류정으로 더 잘 알려져 있는 동북각루는 건축미가 화려하면서도 우아하여 화성의 아름다움이 절정에 이르는 곳이다. 방화수 류정에서 바라보는 용연위에 비친 달빛과 어우러진 버들가지는 용지대월이라 하여 수원팔경 가운데 으뜸이다.”
화성, 각루, 요소, 동북각루, 동북요새지, 방화수류정, 용연, 용지대월, 수원 팔경 등 한글로 표기된 어휘는 한자를 모르는 한국인에게는 외국어나 암호와 같이 그 뜻을 정확히 알 수 없고 심지어 한자를 잘 아는 한국인이라도 쉽게 알기 어렵습니다. 일본어 안내문(80)의 한자를 보고서야 어휘의 뜻을 그나마 파악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문화재를 우리는 잘 알지 못하고, 오히려 일본인이 더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66) 또한 남기탁 강원대 국어국문학과 교수에 의하면, 천안함 폭침 사건 때 학생들에게 점수를 주려고 ‘초계함’의 뜻을 물었더니 제대로 답변하는 학생이 아무도 없었다고 합니다. 망볼 초(哨)와 경계할 계 (戒)를 알면 쉽게 알 수 있는 말인데도, 오히려 학생들은 ‘패트롤 십’(patrol ship)이라고 하면 쉽게 안다고 합니다. 세계일보 2011. 7. 1.자 「한자 외면 속 멍드는 우리말」 참조
67) 이 부분은 평생을 우리말 어문연구에 헌신했던 고 남광우(南廣祐) 교수가 1997년에 죽음을 앞두고 의식이 희미해져 가는 가운데서도 혼신의 기력으로 국무총리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의 탄원서에서 인용하였습니다. 난정(蘭汀) 선생은 이 마지막 유고(遺稿)를 병상에서 집필하고 국무총리에게 보낸 지 19시간이 되는 1997. 12. 6. 오전 11시 40분에 77세의 일기(一期)로 별세하였습니다.
그는 “늙은이가 마음이 혼미한 중에 타들어 가는 입술을 적시며 한 말씀 드린다.”고 하면서, “과학적이고 우수한 한글과, 뛰어난 조어 기능에 축약력-함축성을 함께 지닌 한자의 조화는 우리 국어를 빛내주는 두 날개로서 우리 민족만이 누릴 수 있는 문화적 혜택”이라고 강조하고, 그 동안 한글전용의 어문정책이 우리 젊은이들의 사고를 망가뜨려 왔음을 지적하면서, 마지막으로 “세종시대 저술들이 한자와 훈민정음을 병용한데서 한글‧한자 혼용을 염두에 두어 훈민정음을 창제한 세종의 정신을 헤아려 볼 수 있습니다. 세종시대의 전통국어 회복으로 국가위기 극복에 진력해 주시기를 당부드리며 펜을 놓습니다.”고 끝을 맺고 있습니다.
69) 이 연구에서는 문해력 1단계를 ‘의약품의 설명에서 나타난 정보로부터 아이에게 투약할 약의 양을 정확하게 결정하지 못하는 수준’으로 규정하고, 2단계는 ‘일상적인 문해능력이 요구되는 일에 가까스로 기술을 적용하여 사용할 수 있으나 새로운 요구에 부딪쳤을 때는 문해능력이 부족한 수준’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3단계는 ‘복잡한 일과 일상에서 요구되는 것에 대처하기 위한 최소한의 수 준, 높은 문해 수준에서 요구되는 여러 정보를 통합해 복잡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음’으로 규정하고, 4·5단계는 ‘고도의 정보처리 및 기술 능력 구사’로 규정하였습니다.
70) 민현식, “국어 능력 실태와 문법 교육의 문제점”, 국어교육연구 제44집, 국어교육학회, 2009. 2.
71) 조갑제, “漢字말살의 산물: 공동체를 허무는 大卒文盲者와 배운 無識者”, 조갑제닷컴.
72) 과거 1951년 9월에 문교부가 선정해 발표한 상용한자(常用漢字) 1,000자와 1957년 11월에 300자를 더 추가하여 ‘임시 허용 한자’라는 이름으로 공포한 1,300자가 상호 결합되어 이루어진 한자어 개수는 약 6만개나 된다고 합니다. 한글전용의 교육에서는 이 수 만개 한자어의 뜻을 어원(語源)도 모른 채 하나 하나 기억해야 하는데, 그 학습부담은 2,000자 이내의 한자를 학습하는 것보다 몇 십 몇 백 배에 달할 것입니다.
73) 高銀珠. “공통과학 교과서의 한글표기, 한자표기 및 순우리말 과학용어에 대한 이해도 연구”, 숙명 여자대학교 교육대학원 物理敎育專攻 석사학위논문, 1998. 74) 위의 논문, 50-53면. 75) 위의 논문, 40면.
76) 응답자의 30.2%인 129명은 아예 쓰지를 못했고 17.6%인 75명은 썼으나 틀렸다고 합니다. 이 같은 경향은 연령대가 낮을수록 더 심했는데, 자녀의 이름을 정확히 쓴 응답자의 연령대는 60대 이상이 64.6%, 50대가 56.0%, 40대가 54.6%, 30대가 37.2%였습니다. 더구나 서·최·정·류·국·오 등의 성조차 틀린 사람 도 많았다고 합니다. 서울신문 2011. 10. 25.자 「서울사는 부모 48% 자녀 한자이름 못써」 참조.
77) 한국어문회, 語文生活, 2010년 5월호, 20면.
78) 이명학 성균관대 교수가 2007년에 성균관대에 입학한 신입생의 한자실력을 점검한 결과, 자신의 이름을 틀리거나 쓰지 못한 학생이 20%, 아버지 이름을 틀리거나 쓰지 못한 학생이 77%, 어머니 이름을 틀리거사 쓰지 못한 학생이 83%, 대학교(大學校)를 틀리거나 쓰지 못한 학생이 60%, 抱負(포부)를 읽지 못한 학생이 93%였다고 발표하였습니다. 한국일보 2007. 3. 12.자 「성대 신입생 80% 부모 한자이름 못 써 … 漢盲 대학생」 참조.
79) 「한글맞춤법」 제11항은 “모음이나 ‘ㄴ’ 받침 뒤에 이어지는 ‘렬, 률’은 ‘열, 율’로 적는다.”고 규정하 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