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외곽으로 화훼단지가 펼쳐져 있다 견고한 비닐하우스 아방궁 속에서 천적도 없이 비대해진 꽃들이 사철 피어 있는 그곳
얼마나 신나는 일인가 외곽에서 총이나 대포가 아닌 꽃들이 쳐들어온다는 것, 트럭을 타고 꿀과 향기로 중무장한 그들이 아침마다 톨게이트에 진을 치고 기다린다는 것은,
꽃집마다 비장하게 피어 있는 저 프리지아들 그 빛깔과 향기가 필사적이란 것을 가까이 사는 벌 나비들은 안다
매연 속에서 암수술을 꼿꼿이 세워 꽃잎을 펼치고 있는 것이 치열한 전투가 아닌 쓰레기 더미에 저리도 비참하게 말라비틀어진 꽃들을 어찌 설명해야 하나
매일 수만톤의 꽃들이 도시에서 학살되어도 내일이면 또 수많은 꽃들이 태어나는 외곽, 꽃들은 아직 젊고 혈기왕성하다
도시를 삥 둘러싸고 핵실험실이 아닌 꽃들이 진을 치고 있다는 것은 대체로 희망적이다
그들은 매일 핵폭발하듯 꽃을 피운다
경북 문경 출생 영남대 국문과 졸업 199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 2003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시<귀로 듣는 눈>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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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 희망이 있다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쓰레기더미와 공해물질과 온갖 전투적인 것들로 넘쳐나는 세상에서 화안한 꽃들이 진을 치고 있다는 것은 얼마나 마음 든든한 일인가. 비록 도시의 외곽에서 인간의 손에 의해 심어지고, 길러지는 수동적인 운명을 벗어날 수는 없지만, 그리고 다시 인간의 호사스러운 감상을 위하여 잘려지고, 이리저리 묶이고, 끝내는 쓰레기 더미에 섞이는 비애를 털어버릴 수는 없지만 말이다. 그렇기에 꽃집마다 프리지어는 짧은 기다림의 순간을 비장하게 피어 있고, 날아다니는 벌나비들도 그 향기가 꽃의 모든 것을 걸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는 것은 아닐까. 어두움 속에서도 밝은 희망을 끄집어내는 시인의 눈썰미가 외곽의 힘을 야무지게 응시하고 있다.[양현근]
첫댓글 인간에 의해 학살, 소모되는 꽃들이 마치 전쟁처럼 살아가는 현대인의 삶과도 일맥상통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 꽃들을 보고도 희망을 얘기하는 시인의 마음에서 이왕이면 허허로움보다는 희망을 품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
거사님 생각에 공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