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은 용서의 날입니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있을 것이다."
요한 20,22-23
비가 옵니다. 산에도, 들에도, 시내도 그리고 길에도 비가 옵니다. 비는 흐르며 또 내려갑니다. 시내와 강을 거쳐서 바다로 흘러들어갑니다. 태양의 열과 빛은 물을 하늘 창공으로 오르게 하여 다시금 비가 되어 물이 흐르게 합니다.
물의 흐름과 순환, 그것이 지구에 생명의 샘과 흐름이 되게 합니다. 흐름과 순환. 그것이 용서의 과정이고 순환입니다. 가랑비에 옷젖는다. 는 말이 있습니다. 가랑비가 지속되면 젖고 흐르게 됩니다.
사랑도 마찬가지 사랑의 샘이 멈추지 않고 흐르면 주위를 적시고 주변의 모든 생물들에게 젖어들고 마시게 됩니다. 그렇게 해서 주변을 생명의 자리가 되고, 그 생명이 자라게 됩니다. 흐름과 순환은 그 자체가 생명의 꽃과 열매를 내게 합니다.
예수님은 공생활을 시작하여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제자들 부르시고 더러운 영을 쫓아내시고 열병을 고쳐주시고 온갖 질병을 앓는 이들을 고쳐 주시고 마귀들을 쫓아내셨습니다. 기도하시며 이곳 저곳에 전하시고 그 일을 멈추지 않으셨습니다. 당신의 가르침에 못마땅하게 여기 사람들에 의해서 모함도, 죽일 모의도 그리고 결국은 붙잡히고 사형선고를 받으시고 죽으셨습니다. 죽음에서 삼일 만에 부활하시고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 하느님 나라의 복음 말씀이 멈추지 않고, 성령을 통하여 흐르고 순환되고 있습니다. 하느님 나라의 구원의 길의 순환으로 생명이 되고 구원이 됩니다.
사랑하는 이는 그 사랑을 멈추지 않습니다. 진실을 따른 이는 그 진실을 중단하지 않습니다. 용서하는 이는 용서를 일시적으로만 하지 않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이는 때에 따라서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일은 멈춤이 없고 중단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하여 생명이 흐르고 구원이 흐르게 합니다.
용서를 말할 것 같으면, 단 한 번, 아니 삼세번 그것이 용서을 완성이 아니라 일흔번씩 일흔 일곱번이라도 지속하는 것이 용서. 그것이 완성입니다. 예수님은 그것을 바랬습니다.
용서는 쉬운 일은 아니지만, 기도하면서, 용서의 말씀을 들으며, 용기를 가지고 하는 일입니다. 용서가 되지 않으면 미약한 기도라도 시작합니다. 미약한 기도가 결코 작은 것이 아니요. 풀지 못할 것이 아닙니다. 그 기도은 용서를 향하고 있고, 그 은총을 불러 일으킵니다. 지금은 용서가 되지 않더라도, 믿음과 용기의 미약한 기도를 시작한다면, 그것은 용서의 시작이며, 그 기도의 은총의 놀라움은 용서의 목적을 달성하게 할 것입니다.
우리의 용서를 통하여 하느님의 용서와 그 자비를 깨닫습니다. 그분의 자비의 넘치는 사랑과 용서에 비하면, 우리의 용서의 마음을 한없이 작은 것이고 미흡합니다. 허물과 부족함과 부끄러움과 죄속에서 살아가는 우리가 하느님의 자비와 그 용서를 알아갑니다. 그것을 위해서 기도하며, 미약하지만 용서의 지향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 기도를 멈추지 않고 지속합니다.
목요일은 용서의 날입니다. 작지만 기도를 시작합니다. 용기를 가지고 기도합니다. 어떤 경우는 도전도 될 수 있습니다. 그 도전도 은총입니다. 끊이지 않고 흐르는 샘물이 주위를 적시고 생명수가 되는 것처럼, 우리도 그 용서의 샘물을 흘립니다.
주님, 오늘도 기도하겠습니다. 작고 적은 기도를 시작하겠습니다. 용서의 은총 속에 찬미와 영광의 덕을 입게 하소서.
이재을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