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정원 / 김경자
신선한 공기가 가득 퍼진다. 사방을 둘러싼 벽에서 녹색 생기를 뿜는다. 여러 개 기둥 위에 촘촘하게 엮은 듯 즐비하게 늘어선 식물이 푸른 카펫을 깔아 놓은 듯 기특하다. 감성 없는 시멘트벽에서 파릇한 생명이 영글어 싱그러운 기운이 가득하다. 갖가지 생각으로 분잡한 머릿속으로 산소가 한 겹 두 겹 스며든다. 풋풋하다
월요일 아침은 언제나 피곤하다. 늘 갈 길이 바빠 곁눈질 없이 지나치다가 어느 날 문득 옆을 보니 환승 연결통로로 가는 길에 수많은 식물이 숲속인 듯 펼쳐져 시선을 끈다. 지하철 역사가 아닌 쉬어가는 곳, 도심 속 지하 공간의 녹색 실내정원이다. 이런 곳이 있었던가. 어느 틈에 발걸음이 그곳으로 향한다. 재바른 걸음을 멈추고 주위를 한 바퀴 돌아본다.
부산 중심지이자 지하철 1.2호선이 지나는 서면역은 언제나 승객들이 붐빈다. 열차 도착과 동시에 많은 승객이 승하차하여 때로는 어깨가 부딪힌다. 더군다나 유동인구가 가장 많은 곳이기도 하다. 이렇게 복잡한 지하 공간에서 가슴을 여는 공기로 시야까지 맑아진다. 푸른 식물들이 실내정원을 지나가는 승객에게 때아닌 피톤치드를 퍼붓는다. 머릿속이 복잡한 사람, 스트레스가 머리끝까지 쌓여 있는 사람, 수험생, 학생, 시민 등 이곳을 지나가는 이들에게 잠시나마 힐링이 될 것 같다. 서면역을 자주 이용하는 내게 즐거움이 한 가지 늘었다.
두 해 전쯤 실내 녹색공원이 조성될 때 언뜻 보긴 했다. 생각지 않다가 최근에 지나면서 보니 이렇게 푸른 공원이 되어 있는 게 아닌가. 일주일에 두어 번 2호선에서 1호선으로 환승할 때는 다른 쪽 계단을 이용하고, 또 시간에 쫓기다 보니 이곳에는 전혀 눈길을 주지 않았다. 환승역이라 스쳐 가는 공간이지만 녹색식물이 주는 정서가 매우 클 것 같다. 잠깐 지나가는 짧은 시간인데 마치 산속에 들어온 느낌이다.
요즈음 부산을 알리는 콘텐츠가 부쩍 다양하게 선보인다. 상상 이상의 것들이 오감을 자극한다. 눈으로 보면서 즐기는 것들이 곳곳에 넘쳐난다. 마린 버스, 블루베리 버스, 그리고 엑스포를 유치하기 위하여 부산을 알리는 광고 문구와 그림으로 도배한 버스가 부산 시내를 내달린다. 또 지하철 차량 내에 메트로 마린이라는 부산을 상징하는 그림을 차량 바닥에까지 그려 놓았다. 지하철을 탔는지, 유람선을 탔는지 착각할 정도다. 배경은 거의 해양 관련 그림이다. 전국에 부산을 알리는 광고 대행 역할을 톡톡히 한다. 해양관광과 엑스포 유치를 위한 홍보 효과가 상당할 것 같다. 눈에 쏙 들어온다. 서면역의 푸른 정원 역시 두루두루 시민과 여행객의 관심과 흥미를 끈다.
환승하려다 생각을 바꿔 모처럼 숲속 공간 의자에 앉았다. 엄청난 양의 식물과 눈을 맞춘다. 테이블야자, 호야, 스파트필름…, 그 옆에 포토스팟까지 설치되어 있다. 연인들이 깜찍한 포즈를 취하며 셀카 놀이 중이다. 잿빛 콘크리트 건물, 햇빛 한 점 들지 않는 지하 한복판에 뿌리내린 식물이 대견하다. 천천히 벽면을 둘러보니 겹칠 만큼 빼곡히 들어선 테이블야자 사이 곳곳에 ‘감싸는 사랑’이라는 꽃말을 가진 스파트필룸이 하얀 꽃대를 올려 시선을 잡는다. 유기화합물 정화에 이어 꽃까지 피어 쉼터가 되기에 족하다. 누구의 아이디어로 시작됐는지 참신한 발상이고, 모범사례로 추천하고 싶다.
하루의 시작을 새뜻하게 열어주는 도심역 숲이 그저 고맙다. 삼만 본이 넘는 생물이 숨 쉬는 이곳은 살아있는 문화 공간으로 자리매김했다. 시민들이 아끼고 보호하는 공간으로 거듭난 도시 중심부 서면역 숲에서 잠깐 행복을 누린다.
오늘은 조금 일찍 집을 나선다. 녹색 정원을 잠시라도 걸어보려는 생각이다. 도심 속 친환경 이색 문화 공간이 여기보다 쾌적하고 편안한 곳이 또 있겠나 싶다. 발걸음을 떼는 순간 어느새 다대포행 열차가 선로에 들어선다. 푸른 정원이 내 발목을 잡는다. 월요일마다 만나는 푸른 정원이 있어 한 주가 거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