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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키스 Kite Flying 연날리기
폴 자클레_세 명의 한국인들_목판화_30×39.5cm_1935
우리 옛 모습을 담아내고자 했던 외국인 화가들도 처음부처 한국에 관심을 가지고 있어서 온 작가들은 아니다. 미국이나 유럽에서 동양의 신비라고 여기며 동경하던 나라는 일본이나 중국이었다. 자포니즘이나 중국풍의 그림이 동양을 다녀온 화가들에 의해서 유행을 하기도 했기 때문에 알려진 아시아. 하지만 그 안에 한국은 없었다.
엘리자베스 키스, 폴 자클레, 릴리안 메이 밀러, 윌리 세일러라는 네 명의 작가는 모두 일본을 먼저 배운 사람들이다. 일본 목판화를 정식으로 배우기도 했던 이들은 마침 기회가 되었기에 한국을 여행했을 뿐이다. 그들의 편견으로는 중국도 아니고 일본도 아닌 한국이라는 나라를 처음부터 찾을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옛 한국의 풍경은 이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고 그 인상은 그림이 되었다. 비록 일본 목판화의 기법으로 그린 그림도 많지만 한국에 대한 인식이 어떻게 변했는지 보여주고 있다, 담고 싶은 한국에 대한 인상은 어려운 시대상황을 이겨내려고 하는 서민들의 모습에 잘 드러나 있다.
엘리자베스 키스_평양 강가_목판화_38×25.7cm
드레스덴 출신의 독일화가 윌리 세일러는 동판화로 한국을 그렸다. 어렸을 때 철판에 못으로 낙서를 해 본 기억이 있는 사람은 세밀한 선을 긋는 표현이 가능하다는 점을 알 것이다. 동판도 마찬가지여서 섬세한 표현이 가능하다. 윌리 세일러가 당시 인물의 주름이나 손, 눈매 등을 사실적으로 표현해 낼 수 있었던 것은 동판화를 제작했기 때문이다. 억척스럽던 여인네와 삶의 한 자락을 놓지 않으려는 서민들의 모습이 잘 담겨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릴리안 메이 밀러_달빛 속의 한국농가_목판화_20.6×31.8cm_1928
엘리자베스 키스는 영국 출신의 작가인데 일본에 살면서 그들의 전통 목판화를 정식으로 배우기도 했다, 그녀가 한국을 3개월 정도 여행하면서 기록한 그림에는 일본과 다른 한국의 모습이 담겨 있다. '결혼식 하객(1919)'이란 그림에서는 양반다리를 하고 있는 여자가 그려져 있다. 항상 무릎꿇고 앉아 있는 일본 여인들만 보던 작가는 당당한 한국여인의 모습이 인상적이었을 것이다. 그림 속의 여인은 결혼식의 손님으로 온 여인이 사랑방에서 양반다리 자세로 앉아 식이 시작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다.
또 설날 광화문 앞을 그린 '정월초하루 나들이(1921)'에서는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풍경을 상상하게 한다. 설빔을 입고 놀러 나온 가족들에게 암울한 상황은 느껴지지 않는다. 서민들에게 삶이란 계속 흘러가야 하는 풍경과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단지 지금과 다른 광화문 앞의 해태상이 눈에 띈다.
엘리자베스 키스_정월 초하루 나들이_목판화_38×26cm_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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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키스의 그림 속에서는 지금은 볼 수 없는 평양의 동대문과 그 주변의 풍경도 만날 수 있다.
외국 화가들에게 인상 깊었던 모습 중에는 젖가슴을 드러낸 여인들이 있다. 당시 부인들은 사내아이를 낳으면 가슴을 드러내 놓음으로써 자랑하는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 여자로서의 할 일을 다했다는 의미가 아니었을까.
일본인에 의해 기록된 옛 한국은 왠지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좋지 않은 의도가 곳곳에 숨어 있음을 발견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서양인의 시선은 새삼스럽다. 비록 일본을 거쳐 한국에 왔지만 그 당시 상황을 보면 이상하지 않다. 오히려 그들이 그렇게 마주하게 된 한국 안에서 발견한 매력들은 우리 스스로 잘 몰랐던 모습이다. 우리에게 당연한 것들이 그들의 시선에서는 새로울 수 있었고 그 인상이 지금 우리에게 깊게 다가올 수 있다. 중국과 일본의 모습과 전혀 다른 '한국'을 자신의 나라에 알렸을 네 명의 서양화가. 세심한 관찰이 직업인 화가의 인상 속에 옛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 들이 살아 있다.
윌리 세일러_휴식_동판화_29×21.5cm_1960
약간 통통하게 표현된 '한국의 미인'이란 그림에서는 당시 이상형이 어떤 모습이었는지 짐작하게 한다. 혼란하고 삶이 어려울수록 가녀린 여인보다 '복스럽게' 생겨야 하지 않았을까. 결혼행렬을 그린 그림에서는 액운을 쫓는다는 호랑이 가죽이 신부 가마 위에 놓여 있는 모습까지 세밀하게 표현되어 있어 인상적이다.
자료출처: SBS 취재파일 | 생활·문화
엘리자베스 키스의 작품들
<null>Marriage Procession, Seoul_1921 혼례 행렬
East Gate, Seoul, Moonlight_1919
달빛 아래 서울 동대문
푸른 달빛 아래의 동대문(興仁之門).
이 그림에 보이는 돌담 표현은
목판화로는 난이도가 높은 기법이다.
키스의 작품 중 가장 뛰어난 그림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1923년 도쿄 대지진 때 목판 원본이 소실되었고,이 그림은 키스의 저서 <동양의 창>에
실린 것인데,
현재 누가 실물을 소장하고 있는지는 모른다.
East Gate, Pyeng Yang, Korea_1925 평양의 동문
“1392년에 지은 평양 성곽 중 동쪽에 있는 문만이 유일하게 남아 있다.서울에 있는 동대문만큼
웅장하지는 못하지만, 평양의 동문은 그 단순한
스타일과 함께 연륜의 은은함이 배어 있는 문이다. 에카르트는 한국의 건축에 대하여 이렇게 논평했다. ‘한국은 그 건축법을 중국에서 들여왔지만, 그것은 한국의 상황에 맞추어 단순하면서도
우아하고 더욱절제된 형태로 발전시켜 한국 특유의 건축문화를 만들어냈다.’
평양의 동문은 바로 이런 한국 건축의 진수를 보여준다.”
Riverside, Pyeng Yang_1925 평양 강변
“대동강변의 이 정자는 약 150년 된 것이라고 하며, 그 주변 환경이 너무 완벽하여 그보다 더 오래 전에 아주 조심스럽게 정자 터로 선택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의 경치는 너무나 아름다워 때때로 여행객은 기이한 감동을 맛보게 된다". 키스가 대동강변이라고 적고 있는 것처럼, 이곳은 모란봉ㆍ을밀대ㆍ부벽루가 있는 근처인듯 싶다.
Wonsan_1919 원산
“내가 아무리 말해도 세상 사람들은 원산이 얼마나 아름다운 곳인지 알지 못할 것이다. 하늘의 별마저 새롭게 보이는 원산 어느 언덕에 올라서서 멀리 초가집 굴뚝에서 올라오는 연기를 보노라면 완전한 평화와 행복을 느낀다.”명사십리로 유명한 원산. 키스의 그림을 보니 과연 원산이 아름다운 곳임을 알겠다.
밤하늘의 별빛과 바다 위 배의 불빛이 기막히다
Korean Domestic Interior 한옥 내부
“비교적 여유 있는 집의 내부 풍경이다.
이 그림을 그린 것은 여름이었는데, 이 집의 가장은사랑방이 아닌 대청에서 식사를 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남녀가 같은 식탁에서 식사를 하지 않으며 부인이 식사를 날라다 준다.남자들이 기거하는 사랑방은 대문 가까이 있다.
여자들이 기거하는 안채는 보이지 않는다. 가난한 사람의 집은 길가에 붙어 있을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집은 마당이 있고부유한 집은 안채 앞마당까지 해서 마당이 둘이다.
한국 사람들은 방안에서는 신발을 벗는다.
방바닥은 노란 장판지로 덮여 있는데 항상 반짝반짝 닦아놓고 있다.사랑방 나무기둥에는 ‘집에 연기가 자욱한 것은 즐거운 일이다’라고써 있는데,
그것은 부엌에서 나는 연기를 가리킨다.”
The Eating House 주막
“맛있는 음식 냄새가 솔솔 밖으로 새어 나온다.
주막은 추운 겨울날 먼 거리를 걸어가거나 무거운 짐을 나르는시골 사람들에게 아주 인기 있는 곳이다.
이 집을 닮은 초라한 주막이 하나 더 있었는데, 그 집 문 위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달을 쳐다보는 데 최고로 좋은 집>”
The Hat Shop 모자 가게
“간판에 ‘높은 모자, 둥근 모자, 리본 달린 것, 세상 모자란 모자는 다 있습니다’라고 써 있다. 이 자그마한 모자 가게의 주인은 덩치가 큰 사람이었다. 하지만 주인은 어떻게든 공간을 만들어서 키가 큰 친구들까지도 가게 안에 다 들어오게 했다.
그들은 거기서 하루종일 담배를 피우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다정하게 나눈다. 한국에서 모자는 중요하다.
학자는 특별한 모자, 그러니까 검은 말총으로 된 모자(갓)를 쓰는데, 오로지 중국 고전을 다 읽은 사람만 쓸 수 있다. 총각은 약혼식에서 노란 짚으로 만든 둥그런 모자를 쓴다.
결혼식 날에는 한 사람이 빨간 모자를 쓰고 손에는 백년해로와 신의의 상징인 기러기를 들고 간다.
이런 옛 풍습은 한국에서 차차 없어져 가고 있다.”
The School - Old Style 서당 풍경
“하늘 천, 따 지, 달 월, 사람 인. 후렴처럼 반복하는 소리가 담장 너머로 들려왔다. 여름 해는 따갑게 비치고 있었는데, 서울 성문에서 멀지 않은 </null>
그 집은 대문을 활짝 열어놓고 있었다. 이것은 내가 서당 안을 슬쩍 들여다본 장면을 스케치한 것이다.
남자아이들이 글을 외면서 그 소리에 맞추어앞뒤로 몸을 흔들어댔다. 나이 많은 훈장은 실내용 모자를 쓰고 앉아서 마치 조각상처럼 미동도 하지 않았는데, 어쩌면 마음속으로 아름다운 한시를 한 수 짓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사실 훈장은 조금도 학생들의 공부를 염려할 필요가 없다.반장쯤 되어 보이는 아이가 긴 대나무 작대기를 들고 감시하고 있다가 학생의 외는 소리가 끊긴다거나 조는 듯한 동작을 보이면 곧바로 등이고 어디고 내려치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린 학생은 퍼뜩 정신을 차리면서 글 읽는 소리가 조금 커졌다.”
White Buddha, Korea_1925 흰 부처
이 그림의 흰 부처는 현재 서울 홍은동 보도각에 있는 백불(白佛)이다. 14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서울시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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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소중한 자료 고맙습니다.
우리의옛모습을 이렇게 볼수있다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