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동거 / 진영숙
사람들은 편리함을 위해 불편함에서 ‘불’ 자를 없애려고 무척이나 노력한다. 그에 대한 시간과 돈을 투자하는데도 아끼지 않는 것 같다. 반대로, 불편함을 즐기는 사람들도 있다. 장작불로 밥을 짓고 바깥 바닥에서 잠을 자는, 불편 체험을 통해 편리함을 알고 감사함을 배워보는 소중한 경험을 얻는 기회가 되었다고들 한다. 어쨌거나 내 경우는 생활의 불편은 생각의 불편을 낳는다. 그 불편함 때문에 일상이 제대로 굴러가지 않을 때도 있으니 말이다.
안경
옛날 사람들은 오복을 건강한 치아, 고운 살결, 튼튼한 위장, 좋은 눈, 풍성한 머리카락을 가리켰다. 나는 오복 중에 눈은 자신하고 있었다. ‘몸이 천 냥이면 눈이 구백 냥이다.’라는 말을 실감하고 있다. 핸드폰을 꺼내 들어도 책을 펼쳐도 도통 글자가 머릿속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오후가 되면 상태가 더욱 심해져 생각마저 막혀버렸다. 다초점 안경을 맞췄다.
“시력이 더 나빠지지 않으려면 안경을 꼭 쓰고 다녀야 합니다.”
안경을 껴도 불편함은 마찬가지였다. 바닥에 굴러다니는 머리카락, 마루 틈에 낀 먼지가 너무나도 선명하게 드러나 보였다. 싱크대 구석구석을 닦아내느라 날마다 고역이다. 책상에 앉아 책을 펼치면 눈에 보이는 먼지 때문에 도무지 집중할 수가 없다.
토리
며칠째 재채기와 콧물로 새벽녘이면 잠이 깼다. 대여섯 번의 재채기 뒤에 이어지는 콧물을 주체할 수 없어 연신 화장지를 뽑아 콧물을 닦아내야 했다. 이번 겨울은 어쩐지 그냥 잘 지나가나 했다.
계절의 변화는 몸이 기억하였다가 반응하는 것일까. 늦가을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어느새 코끝이 간지러워 코를 실룩거리기 시작한다. 냉장고에서 나오는 찬 바람에도 반응하곤 한다.
며칠을 견디다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자, 집 근처 이비인후과를 찾았다. 의사는 막힌 코의 심각한 상태를 보고 원인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마스트알레르기mast allergy 검사를 해보기를 권했다. 며칠 후 결과가 나왔다. 나를 힘들게 한 원인은 ‘고양이 털’이었다.
아침, 저녁으로 청소기를 돌렸다. 끈끈이 롤을 이용하여 소파와 카펫, 이불을 문지르고 털과의 전쟁을 치르는 중이다. 무엇보다 급한 것은 토리가 침대로 올라오는 것을 차단하는 것이었다. 어느 날부터 잠을 잘 때, 내가 베고 있는 베개 끝에 똬리를 틀어 잠을 자기 시작했다. 침실 문을 닫았다. 처음에는 문 앞에서 처량하게 울다가 문이 부서지라고 자신의 몸을 던지는 것이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한일一자로 된 손잡이를 점프하여 뛰어올라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어쩌다 요행히 열렸겠지.’라고 생각하고 문을 닫았지만 단번에 문을 열고 들어오는 녀석을 보고 아연실색하였다.
하는 수 없었다. 막대기를 옆에 두었다가 “올라오면 맴매, 맴매할 거야!”라고 때리는 시늉을 하며 으름장을 놓았다. 날마다 침대로 올라오는 녀석을 쫓느라 매일 잠을 설쳤다. 될 수 있으면 토리와의 접촉을 피했다.
잠을 자려 침실로 들어갈 때는 슬금슬금 내 눈치를 보며 주위를 빙빙 돈다. 마치 내가 콩쥐의 계모가 된 듯 마음이 편하지 않다. 토리의 침대 오르기 도전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자동차
지난겨울에 어느 모임에 오렌지색 코트를 입고 간 적이 있다. 차에서 내리는 나를 보며 지인이 “차랑 코트랑 정말 잘 어울립니다.”라고 말했다. 뒤이어지는 말은 나를 더욱 불편하게 했다.
“오렌지색을 참 좋아하나 봅니다.”
“아-, 예….”
사실은 그렇지 않다. 오렌지색은 별로 좋아하는 색이 아니다. 그런데 삼 년 전에 마련한 나의 자동차 색이 하필 오렌지색이다. 내가 차를 몰고 다닐 때면 차에다 커다랗게 내 이름을 붙이고 다닌다는 착각이 들 정도이다. 차를 고를 때 나는 눈에 잘 띄지 않는 그레이색을 원했다.
“내가 오고 가는 것은 아무도 몰라야 해요.”
“당신은 주목받아도 괜찮아.”
결국 남편이 이겼다. 어디를 가나 튀는 오렌지. 그이가 오렌지색을 고집한 가장 큰 이유는 그 색이 오십만 원이 싸다는 이유였다.
세상살이가 언제 내 생각과 마음처럼 호락호락했던가. 내가 선택했건 안 했건 이 불편한 동거는 피할 수 없는 것이리라. 어쩌면 내가 불편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나를 더 불편해하고 있을지 모를 일이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