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주행거리 얼마나 줄어들까… 제네시스 5% vs 벤츠 37%↓
[토요기획]혹한기 전기차 방전주의보
겨울 주행 성능 평균 21% 떨어져… 추위에도 히터 끄고 운전할 정도
‘배터리 충전’ 긴급 출동도 늘어… 한파 땐 한 주 만에 380% 급증
본보, 추위에 강한 차 알아보니, 롤스로이스-제네시스 등 꼽혀… 저온 주행 성능 경쟁 치열해질 듯
《‘한파’가 닥칠 때면 전기차 소유주들은 걱정이 커진다. 전기차의 저온 주행거리는 상온 때보다 평균 20% 이상 떨어지기 때문. 하지만 한겨울에도 주행거리가 거의 줄지 않는 전기차도 있다. 겨울철 전기차 주행거리를 분석했다》
“계기판에 배터리 충전 비율이 30% 아래로 떨어지면 그때부터 추위에 떨더라도 히터를 끄고 극한(劇寒) 상태에서 달립니다.”
지난해 11월 생애 첫 전기차를 산 김모 씨(42). 그는 전기차 소유주로서 이번에 처음 겪는 겨울을 무사히 지내기 위해 자칭 ‘전력 자린고비’로 거듭났다고 했다. 가솔린 차라면 연료 부족으로 길 위에 멈춰 서도 근처 주유소로 뛰어가 기름통에 기름을 담아 주유할 수 있지만, 전기차는 그런 최후의 수단조차 없다는 심리적 압박이 커서다.
김 씨는 “전기차 운전대를 잡는 순간부터 전비(kWh당 주행거리)를 통제할 수 있는 건 사실상 난방밖에 없다”며 “안전과 결부돼 있다 보니 일단 배터리가 떨어지면 무서워서라도 히터부터 끈다”고 했다.
최근 자동차 커뮤니티에는 김 씨와 같은 전기차 소유주들의 온갖 애환(?)이 담긴 사연이 쏟아지고 있다. “전비 지키려고 경유 쓰는 ‘무시동 히터’를 달았다”, “자고 일어났더니 배터리가 5%나 방전돼 아침부터 ‘멘붕(멘털붕괴)’에 빠졌다”…. 그만큼 겨울철 주행 성능 감소는 전기차 소유주에겐 걱정을 넘어 공포를 자아내는 중대한 문제로 여겨지고 있다.
● 전기차 오너에게 혹한기는 ‘공포’
5일 2020∼2023년 환경부 신규 인증을 받은 승용차 42개 모델의 1회 충전 주행거리를 ‘자동차 배출가스 및 소음 인증시스템(KENCIS)’에 공개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분석한 결과 상온(영상 25도)과 저온(영하 6.7도) 간 완충 시 평균 주행거리 차이는 82.1km로 확인됐다.
이 격차는 서울 광화문역에서 출발해 경기 평택역까지 차를 타고 이동하는 거리(약 82km)와 맞먹는다. 저온일 때 줄어드는 주행거리를 상온 대비 비율로 나타내면 평균 21%로 나타났다.
추운 날 전비가 악화하는 건 배터리 내부가 액체 전해질로 구성돼 있는 리튬이온 배터리의 특성 때문이다. 전해질은 리튬이온이 양극을 오갈 수 있는 통로 역할을 하는데, 기온이 낮아지면 전해질이 굳으면서 내부 저항이 커진다. 동력 장치에 써야 할 전력을 히터에 배분하는 것도 전비 감소의 또 다른 요인으로 작용한다. 전문가들은 온도가 10도씩 내려갈 때마다 배터리 성능이 통상 10% 가까이 떨어진다고 본다.
지난해 9월 국내 전기차 보급 대수(누적 판매량)가 50만 대를 넘어서는 등 전기차가 늘면서 이런 배터리 성능 감소로 겨울철 운전자가 불편함을 겪는 사례들도 많아졌다.
지난해 12월 셋째 주(18∼22일) 하루 평균 기온이 영하 8.4도인 ‘북극 한파’가 전국을 덮쳤다. 이는 전주(前週) 같은 기간(영상 6.7도)보다 15도 이상 내려간 수치다. 이 시기 배터리 문제로 손해보험사 자동차 긴급출동 서비스를 이용한 건수도 급증했다. 이 서비스는 자동차 운행 중 안전과 연관된 문제가 발생했을 때 현장에 자동차 전문가가 출동해 배터리 충전이나 타이어 교체 등을 지원하는 것이다.
손해보험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셋째 주 삼성화재, 현대해상, DB손해보험, KB손해보험 등 대형 손해보험사 4곳에 ‘배터리 충전’을 이유로 긴급출동 서비스를 신청한 건수는 39만3660회로 그 전주(8만2076회)보다 379.6% 늘었다. 손해보험업계 한 관계자는 “전기차 보급 대수가 늘면서 영하권의 강추위가 올 때면 긴급출동 서비스 이용률이 급격히 늘어나는 추세”라고 했다.
● 겨울철 ‘성능 좋은 차’ 알아보니
저온 주행 성능은 전기차 구매를 고민하는 소비자들에게 중요한 판단 기준으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 2020년부터 지난해까지 3년 동안 국내 자동차 시장에는 연평균 14개의 전기차 신규 모델이 쏟아졌다. 본보는 이들 모델의 평균 저온 및 상온 주행거리를 분석해 저온 주행거리 감소 폭이 작은 ‘톱(Top) 5’를 뽑았다.
1위는 롤스로이스 스펙터(1.6%)가 차지했다. 저온과 상온 주행거리 차이가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 이어 제네시스 G80 일렉트리파이드(5.1%), 기아 EV6(8.2%), 제네시스 GV60(11.2%), 스텔란티스 e-2008 SUV(11.3%) 순이었다.
특히 시작가가 6억2200만 원의 고가에 차체 크기(축거)도 3210mm로 나머지 2∼5위 모델 평균 크기(2854mm)보다 400mm 이상 큰 스펙터가 1위를 차지한 점이 눈길을 끈다. 환경부의 저온 주행거리 인증 시에는 차량의 히터 온도와 세기를 최대치로 틀어놓고 측정한다. 이에 스펙터처럼 출력이 높은 공조 장치가 적용되고 차체가 큰 전기차일수록 통상 수치 집계에서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자동차 전장 부품이 발산하는 열을 회수해 실내 난방에 사용하는 히트펌프 적용 유무나 배터리관리시스템(BMS)의 효율성 등 전비 효율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들이 많다”며 “관련 기술력을 얼마나 확보하느냐가 해당 모델의 경쟁력을 결정지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감소 폭이 가장 큰 1∼4위는 메르세데스벤츠 EQA(36.5%), 아우디 RS 이트론 GT(35.7%), 아우디 이트론 스포트백(30.9%), 메르세데스벤츠 EQE(30.8%) 등으로 겨울엔 30% 이상 주행거리가 줄었다.
● 저온 주행 성능이 전기차 경쟁력 가른다
환경부는 지난해 9월부터 세계 최초로 전기차 1회 충전 주행거리 인증 결과를 KENCIS에서 공개했다. 운전자 안전과 직결된 이 정보를 소비자들에게 알리겠다는 취지에서다. 저온 인증 기준을 마련한 국립환경과학원 교통환경연구소 관계자는 “미국도 전기차 주행가능거리를 측정할 때 저온 실험만 따로 진행하지 않는다”며 “국내 전기차 소비자들에게 전기차 특성에 대한 중요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저온 인증 데이터 공개 등을 선제적으로 실시했다”고 했다.
제조사들도 전기차의 저온 주행 성능 향상에 공력을 기울이는 분위기다. 현대차와 기아가 전기차용 전고체 배터리 관련 특허를 미국에 출원하는 등 완성차 제조사가 직접 겨울철 좋은 성능을 담보하는 전고체 개발에 나섰다. 히트펌프와 같은 첨단 난방 장치 개발에도 매진하고 있다.
일각에선 제조사별 경쟁 과열 조짐이 일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기아가 EV6의 최대 히터 온도를 27도로 제한하는 것을 두고 ‘저온 주행거리를 늘리려는 꼼수’라는 비판이 일었던 것이 대표적이다. 히터 온도를 최대 30도까지 높일 수 있는 폭스바겐 전기차 ID.4만 해도 상온 대비 저온 주행거리 감소 비율이 EV6(8.2%) 대비 22%포인트 높은 30.2%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학과 교수는 “겨울철 성능 저하로 인한 전기차 주행거리 착시 현상은 운전자 안전과 결부된 사회 문제가 됐다”며 “덩달아 높아진 제조사들의 관심은 히팅(난방) 기술의 첨단화와 배터리 관리 효율성 제고 등으로 이어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재형 기자
“출발 전 배터리 잔량 꼭 확인하세요”… 중간 지점 충전소도 미리 찾아봐야
[토요기획]혹한기 전기차 방전주의보
추위 타는 전기차 관리 ‘꿀팁’
히터 많이 쓰면 배터리 금방 닳아… 예약 난방하면 전비 감소 최소화
실내에 주차하고 충전은 완속으로… 1회 충전 주행거리도 미리 확인을
지난해 말 황모 씨(34)는 현대자동차 ‘아이오닉 6’를 대여업체에서 빌려 직장이 있는 서울에서 고향인 경남 진주까지 약 400km를 운행했다. 하지만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견인차를 불러 충전소로 이동하는 황당한 경험을 하게 됐다. 처음 운전해보는 전기차의 배터리 용량이 애초에 예상했던 것보다 너무 빨리 15% 미만으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황 씨는 “원래 진주에 도착하면 인근 충전소에서 충전하려 했지만, 배터리가 방전될 것 같아 급히 대전 근처의 휴게소에 들어갔다”며 “하지만 충전소가 모두 수리 중이어서 할 수 없이 충전소가 있는 다음 휴게소까지 견인차를 불렀다”고 말했다.
겨울철 전기차 주행 성능 악화는 안전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운전자들이 추운 날씨엔 주행 가능 거리가 더 빨리 줄어든다는 전기차의 특성을 숙지해야 한다고 4일 지적했다.
우선 겨울철엔 수시로 배터리 잔량을 확인하는 게 필수다.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는 겨울에는 다른 계절에 비해 전비(kWh당 주행거리)가 20% 이상 떨어진다는 점을 고려해 목적지까지 주행할 수 있을지를 따져야 한다. 중간에 충전을 한다면 어디서 할지까지 미리 계획을 짜놔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했다.
히터는 배터리 소모율이 높다. 이 때문에 출발 전 충전을 할 때 ‘예약 난방’을 이용하는 걸 추천했다. 열선 시트와 같은 난방 기능은 실내 온도가 25도 정도로 높아질 때까지만 작동하는 방식으로 전비 감소를 최소화할 수 있다. 가능하면 실내에 주차하고, 급속보단 완속 충전기를 사용하는 게 배터리 수명을 늘리는 방법이다.
충전 시 출발 30분 전에 충전이 완료되도록 ‘충전 타이머’를 설정해 놓으면 배터리가 예열된 채로 주행할 수 있어 전비를 좀 더 높일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장거리 운행을 해야 하면 전기차 전용, 겨울 타이어를 장착하는 것도 효과적이다. 영상 7도 이하 노면에서 제 성능을 발휘하는 겨울 타이어는 눈길과 빙판길에서 접지력을 높여 주행 성능뿐만 아니라 전비까지 동시에 높일 수 있다.
차종별로 배터리 관리 기능이 다른 만큼 이를 숙지해 놓는 것도 필요하다. 예컨대 기아 ‘EV6’에는 배터리 외부에 있는 승온 히터(배터리 온도를 높이는 장치)로 냉각부동액을 데워 배터리 온도를 높여주는 ‘배터리 히팅 시스템’이 있다. 배터리 온도가 내려가면 액체 전해질이 얼어 배터리 잔량이 급속히 떨어지고 충전에는 더 많은 시간이 걸리는 만큼, 이를 방지하는 기능이다. 이를 사용하려면 ‘윈터 모드’를 활성화해야 한다.
환경부 자동차 배출가스 및 소음 인증시스템(KENCIS)이나 무공해차 통합누리집을 통해 자신이 보유한 전기차의 ‘1회 충전 주행거리’가 얼마인지 미리 확인해 놓는 것도 유용하다.
이호근 대덕대 미래자동차학과 교수는 “구간별로 전비 효율이 극대화되는 속도에 맞춰 최대한 정속 주행을 하는 등 다른 계절에 비해 겨울철에 전비를 높일 수 있는 부분을 찾기 위한 노력이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재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