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방진굴항掘港 / 김희숙
보초를 선지 이백 년이 넘었다. 느티나무 몸통은 뒤틀려 굽었고 어깻죽지 양쪽으로 목발을 짚었다. 울룩불룩 불거진 옹이는 지나온 세월이 결코 쉽지 않았음을 알려준다. 둑 위로 늘어선 팽나무의 등도 구불구불 고부라지긴 마찬가지다. 가지들이 서로의 상처를 보듬느라 허공에서 엉켜있다. 자신의 땅을 지키려면 기꺼이 몸뚱이마저 내어놓아야 한다.
사천 대방진굴항은 물음표 형상이다. 마을 안으로 쑥 들어가 물길이 휘었다. 마치 왜구에게 왜 남의 땅에 도적질하러 오느냐고 묻는 것 같다. 나라 도둑을 감시하라며 백성들이 돌둑을 쌓아 올렸다. 왜적을 막기 위해 만들어진 항구는 안을 숨기고 바깥을 살피기에 제격이다. 밖에선 속이 보이지 않는다. 비밀 요새다. 들어오려는 자는 좁은 어귀에서 제일 큰어른인 느티나무의 검문을 받아야 한다. 깝죽대는 파도 따윈 감히 들이치지 못한다. 밀물의 꼬리를 물고 은근슬쩍 들어서려는 물결이 새파란 쪽빛이다.
임진왜란 때, 사천 앞바다에서 이순신 장군은 첫 거북선을 출격시켰고 해전이 끝난 뒤 이곳에 깊숙이 감춰두었다며 사람들은 오랜 시간 입으로 전한다. 심지어 배 밑 판자에 굴이 달라붙지 않도록 민물로 채우기까지 했단다. 그 뒤로도 병선을 숨기고 쳐들어오는 적을 기습공격하기에 적당한 조선 수군의 주요한 군항이었다. 병사들의 땀방울이 둑 위로 켜켜이 쌓였으리라. 백척간두의 나라 운명 앞에서 장수도 졸병도 노심초사 피눈물 흘리는 시간이었다. 적의 정세를 살피는 염탐꾼처럼 지나는 바람마저 숨죽이는지 사위가 고요하다.
가끔씩 여행객 한두 명이 계단을 올라온다. 둑에 올라서면 활처럼 구부러진 굴항의 곡선과 오래 된 노거수들이 어울려 빚어낸 풍광에 누구라도 감탄사를 내지른다. 다음으로 하는 말은 사천에 이런 곳이 있는 줄 몰랐다며 ‘이순신 장군께서 거북선을 숨겨놓았다더라.’까지 이어진다. 그리고 한 바퀴 설렁설렁 걸어보고 언제 왔었냐는 듯 순식간에 사라진다. 눈과 귀를 자극하는 곳도 아니고 주변에 늘어선 맛집도 없어서일까. 머무는 시간은 불과 몇 분 안짝이다.
나 또한 사진 몇 컷을 찍고 돌아서려는데 문득, 이순신과 거북선 아니 우리 역사에 대해 과연 얼마나 알고 있었나 의문이 든다. 한적한 바닷가 마을에 특이한 장소도 있구나 하는 정도이고 우리나라 사람이면 너무나 잘 안다고 자부하는 충무공과 관련된 곳이니 식상하다 여기진 않았는지 마음 한구석이 석연치 않다. 대방진굴항이 오히려 내게 물음표를 던져왔다.
문헌에서 답을 구한다. 거북선을 건조한 곳으로는 여수 본영선소와 시전동선소, 그리고 방답진굴강이 나온다. 진해 안골포굴강에서는 전쟁 중 파손된 거북선을 수리했다고 적혀있다. 그런데 아무리 뒤져봐도 대방진굴항에 대해 적어 놓은 자료를 찾을 수가 없다. 사람들이 거북선과의 인연을 풍문처럼 전할 뿐이다. 기록에 없는 삶이다.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사진 한 장이 생각난다. 의병들의 행색은 허름한 차림이었고 그들이 들고 있는 무기는 무척이나 낡았었다. 지친 듯 보이나 총을 든 품새는 결연하였다. 금방이라도 적을 향해 뛰어나갈 듯한 눈빛은 날카롭게 살아있었다. 재현 장면과 영국의 종군 기자가 남긴 실제 의병 사진이 화면으로 겹쳐질 때는 눈가로 손수건을 가져갔었다. “듣고 잊어라, 그들은 그저 아무개다. 그 아무개들 모두의 이름이 의병이다. 이름도 얼굴도 없이 살겠지만… 역사에 그 이름 한 줄이면 된다.”던 어느 장수의 말은 드라마가 끝난 지 오래 되었는데도 마음속에 새겨졌다. 국난을 당해 스스로 무기를 들고 싸웠던 의병들은 자신의 이름자 남기는 것조차 무관심했다. 그들의 희생이 기록되지 않았다고 후대가 기억하지 못할까.
내친김에 거북선과 관련된 곳들을 돌아봤다. 안골포굴강은 현재 도로 아래에 파묻혀있다. 바닷물이 밀려들면 그나마 흔적이라도 알 수 있던 돌무더기마저도 물속에 잠기고 철조망 너머 초라한 기념비만이 그곳에서 해전이 벌어졌고 배들의 수리를 하던 선소가 있었다고 알려준다. 방답진굴강은 지금도 유적지 주변으로 집을 지어 산다. 일부는 발굴이 되었다 하나 관리가 안 되어 방죽처럼 내버려졌다. 정자 주변 느티나무만이 수굿이 내려다보며 혀를 찬다. 선소유적지돌강은 잘 빚어놓은 도자기처럼 번듯하게 복원되었다. 바다 밖에선 목숨을 내건 전투가 벌어지는 동안 부락 안에선 부서진 배를 고치느라 숨 가쁘게 오갔을 전장의 자취를 말끔히 지웠다. 여수본영선소는 도시 한복판에서 세월에 묻혔다. 그러나 대방진굴항은 아직도 현역이다. 여전히 어부들의 쪽배는 사나운 물살을 피하거나 잡아온 고기를 부린다. 마을 사람들은 둑을 거닐며 거친 세상과 싸울 힘을 기르고 지친 마음을 가다듬는다. 허튼 종잇조각 하나 뒹굴지 않도록 비질을 해두었다. 이곳에는 왜란과 호란을 겪고 일제강점기를 지나오면서도 그때마다 나라를 구하겠다고 목숨을 내놓은 민초들의 풀꽃 같은 피가 흐른다.
현재 우리 곁에도 전염병 최전방에서 묵묵히 전쟁을 치르는 이들이 있다. 더운 날씨에도 두터운 장갑과 머리카락 한 올까지 감싼 모자, 마스크와 흰 방호복을 갑옷삼아 진료소를 지킨다. 밥을 먹고 화장실 가는 일조차 어렵다. 불편하고 불안할 터인데도 피하지 않고 침략자와 싸운다. 수많은 의료진이 땀을 흘려준 덕분에 한 발씩 무사히 빠져나가고 있으리라. 사명감으로 버티는 그들의 이름 역시 일일이 기록되지 않는 의병처럼 숨은 영웅들이다.
역사에 남는 생이 얼마나 될 것인가. 대부분의 삶도 어딘가에 새겨질 만큼 빼어나게 살아가진 못한다. 평범하게 밥벌이를 하고 나라 살림을 꾸려갈 세금을 낸다. 자식을 길러내 종족을 보존하고, 있는 듯 없는 듯 살다가 죽음을 맞는다. 그렇다고 허깨비 같은 삶이진 않을 터이다. 이곳의 석축을 이루는 돌멩이처럼 한 사람 한 사람 단단하게 버텨낸 삶이 모여 긴 역사를 써가고 있는 건 아닐는지. 개개인의 일상은 기록되지 않으나 꼭 존재해야 할 역사의 한 페이지에 방점을 찍었을 것이다.
며칠 전, 딸과 함께 대방진굴항을 다시 찾았다. 젊은 딸은 항구의 모습이 낮은음자리표처럼 생겼다며 노래를 흥얼거린다. 하늘 덮은 잎사귀는 초록 수면을 거울삼아 매무시를 다듬고 물 위에 그림자를 드리운 쪽배는 처절했던 전장의 함성을 모르는 채 몸체가 좌우로 흔들리며 장단을 맞춘다. 기웃기웃. 선조들의 결기를 느끼려는 듯 찬찬히 둘러보는 발걸음이 웅숭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