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벳의 자연은 어떻게 보호가 되고 있을까?
나는 과연 이 길을 지나면서 얼마만큼의 자연을 파괴할까? 에 대하여 스치듯이 염려를 해 보았다.
내가 먹은 과자의 비닐봉지는 어떻게 처리를 할까? 묻을까? 아니면 태울까?
내가 먹고 싼 거시기는 어떻게 될까? 거름이 될까? 아니면 오염물질이 될까?
쓰레기는 정해진 장소가 아니면 버리지 않았는데, 거시기는 가다가 들녘에 싸야 거름이 되지 않을까?
씨닝에서 라싸로 이어지는 109도로는 갖가지의 쓰레기들이 널려있었다.
음료를 마신 깡통에서 고산증에 좋다는 약을 먹은 병까지... 사람들이 모여 사는 촌락에는 어김없이 처리하지 않고 마구 방치된 특유의 빨간색 비닐봉지 쓰레기들이 제일 먼저 우리를 반겼다.
하기사, 환경보호 의식이 부족한, 같이 가는 중국인들 교육(?)을 철저히 시켰지만, 역부족이었다.
오면서 여러 곳의 상점에는 비닐봉지가 없는 곳이 많았다.
대신 망[網]으로된 주머니에 담아 주었다. 그 것이 얼마나 자연보호에 이바지를 할지.... 그나마 중국 공산당 정부의 작은 배려에 티벳의 자연은 고마워하고 있지 않을까?
때가 되어 그늘을 찾아 들어 밀가루로 만든 맛 없는 만터우를 목이 메어 꾸역꾸역 먹고 있는데, 고국에 들어 가 있는 아내에게서 좋은 소식이 왔다. 큰 딸아이가 모 환경연합 주관, 환경부 후원으로 한중일 3개국 대학생들이 모여 차기 대통령 후보로 유력한 분을 모시고 일본을 출발 각 나라를 돌면서 환경 보호 활동을 한다는데 지인의 추천을 받고, 몇 백 만원하는 경비를 내지 않고 참가를 하게 되었다는...
골(?)이 좋은 그 아이는 고국에서 소학교를 졸업하고, 자기 말마따나 자기 의사에 반하여 황해를 건넜다.
현지의 초중에 들어갔지만, 현지말을 한마디 못하니 이내 식상하여 졌고... 그래도 애비의 엄명에 그럭저럭 다니더니 어느 날 학교를 않가면 않되냐? 하니... 나는 졸업장이라도 있어야 되지 않겠냐? 고 원론만을 내세웠고.... 급기야는 자퇴.
목표는 고입 검정고시.
고국에 있을 때 "모 선생 영어"를 과외학습으로 하기는 했지만, 본인의 의사를 존중하여 오전에는 영어를 했고, 오후에는 일어를 공부하러 1년 남짓 다녔다.
그 중간에 고입, 대입 검정고시는 우수한 성적으로 통과를 하였고...
남은 것은 현장 학습.
일본 커후[客戶 - Buyer]가 많은 지인을 찾아 월 3백 위엔에 취직(?)을 시켰다.
일본에서 오는 전화나 씬샹[電子信箱 - E-mail]을 받아 중문으로 번역하여 담당에게 넘겨주는 것이 주 임무. 지금은 제 3국으로의 유학을 준비하고 있는 중이었는데....
아뭏튼 잘 되었다.
공짜로 이나라 저나라 구경도하고, 언어 공부도 하며, 3국의 많은 친구들을 만나는 교류도 하는 1석3조의 일이 생겼으니... 이 모두 조상의 은덕이 아닐까? 한다.
++ 요산요수! 오면서 여러차례 물을 받아 마셨다. ++
이번여행에서는 이전에 겪어보지 못한 숱한 사고(?)가 있다.
탄 거리가 꽤 되기도 하지만 겉 바퀴가 터졌고, 짐받이가 부러지는 등의 자잘한 일도 있었고, 오면서 수 없이 많은 물품들을 잃어 버렸다.
오래동안 잊혀지지 않을 라싸에서 잃은, 3 번째 새로 장만한 수마샹지[數碼相機 - Digital camera], 꾸향의 숙소에 두고 온 충전기와 배터리, 짐 덮개로 가져온 비닐, 기름통은 탄쓰로를 덜덜대며 달릴 때 떨어진 듯하고, 이어 4차 우루무치 갈 때 비싼 값을 치르고 산 장갑이 떨어져 없어졌다.
오호 통재라!
후에 박물관은 못 짓더라도 고이 간직하고 싶었던 기념물품들인데...
우리는 그 들을 "왜놈"이나 "쪽발이"라고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미친 서구 열강을 막아 보호해 주었고, 기찻길을 놔주고 백성을 깨우쳐 주었다고 개소리를 치는 것을 서슴지 않는 그들... 5백년 전통의 조선 왕조를 짓뭉개고, 강제징용, 창씨개명, 정신대 등등으로 역사를 난도질한 장본인들... 뭘 잘못한지 알고 용서를 빌면 될 일. 그러나 뭘 잘못한지도 모르는 미개한 인종들...
많은 한족 젊은이들을 만나며 오다가 티벳, 파키스탄 거쳐 인도까지 간다는 젊은 일본 학생을 만났다.
마침 같이 가는 안 사장은 일본어를 유창하게 했고.... 그 친구 왈 자기도 국기를 걸고 타고 싶다고 했다나? 얼어 죽을.... 그런 정부 그런 지도자를 가진 것이 당신들의 책임이오. 아시겠소. 그들이 대우를 받으려면 철저한 반성이 따라야 할 것이다.
얄미운 일본인을 보내고 잠시 후.
중국인 같이 보이는 2명이 땀을 뻘뻘 흘리며 낑낑대는 우리 옆을 쏜살같이 스치고 지나간다.
이름을 알 수 없는 나즈막(?)한 고개는 계속 이어지고...
오르다가 샹하이에서 온다는 한족 청년을 만났다.
허허... 그런데 그 친구 자전거는 일반 자전거 일명 "신사용"이다.
뭐가 다른가? 가장 큰 차이는 변속기가 없다.
아이고! 이 자전거로 그 많은 언덕을 어떻게 오르겠는가? 고 물으니 밀고 올라가면 된단다.
오잉! 시간이 무지하게 걸릴텐데...하니 중국인 특유의 메이쓰얼[沒事兒-괜찮다.]로 대답을 한다.
이 친구 밴드식 뒷브래이크는 줄 길이 조절이 되 있지 않아서, 앞 브래이크만으로 내려왔단다. - 목숨을 내 놓았나? 아님 서너 개가 되는지...?
오면서 만난 많은 현지인들은 용감했다.
두껍고 뻣뻣한 청바지를 입고 타는 것은 기본으로, 얇은 밑 바닥의 퉈씨에[拖鞋 - Slipper]를 신고 타는 이. 머리가 낮아 장거리는 부적합하고, 변속기의 기어비가 커서 속도가 빠르기에 평지에서 타야 할 꽁루처[公路車 - Raching bike]]를 타고 오는 이. 튼튼한 다리 자랑을 하려는지? 기어비[比]를 무시하고 높게 놓고 힘들게 타는 이. 이사를 가는지 짐이 한 트럭분은 되게 싣고 가는 이.
어휴! 답답!!! 힘들겠다! 다리가 아플터인데... 걱정이 되지만, 잠깐 스치는 시간에 일러주기도 그렇고....
[[죽이는 구나 죽여!! ]]
나 역시 정보부재. 큰 고개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고개에 막 들어서자 만난 일본 학생의 말씀이 10 몇 km 쯤 될거 라는 말도 전해 들었다.
지나온 경험자의 귀중한 말씀이니 꿀떡 같이 믿었는데... 아이고! 일본늠 말을 믿은 내가 잘 모시여...!!!
그 뿐인가! 지금도 생생하다. 16시. 떠나서 62.62km 지점.
아스팔트 위로 뻗어 나온 찔레나무를 밟았다.
지나가는 순간 아차! 제대로 밟으면 뚫어질 텐데... 그리고는 이내 잊었다.
다리가 무겁다. 이렇게 해발이 높아졌나? 하면서 아닌데... 하다가 보니 바람이 빠졌다.
바로 전까지 화창하여 너무도 따가웠고, 옷을 벗고 벗어 한 꺼플만 남겨 놓았을 정도로 좋은 날씨였는데... 엎친데 덮친다고 하였던가? 마침 비도 내리기 시작.
큰 나무 아래 자전거를 세우고 속 바퀴를 갈았다. 바퀴를 달고 났을 때 옷은 이미 다 젖고 말았다.
이 때만 하여도 다와 가겠지. 조금만 더 가면 되겠지 하는 희망이 있었는데....
동네가 나타났지만 비가 쏟아지니 사람이 없다.
어렵게 만난 청년에게 묻기를... 오르막이 얼마나 남았냐? 하니... 못 알아듣는 말로 ?X라[說了] 된다. 만국 공통어인 손짓 발짓을 써서 알아낸 답은 내리막도 있고 오르막도 있단다. 응! 또 오르막이 있다고 ? 이쯤이면 다 올라 온 것 아니야? 대답이 필요 없는 혼자의 물음이었다.
그 청년의 말대로 오르고 내리기를 몇 번.
샹그리라는 어딘지도 얼마나 남았는지도 모르겠는데, 추적추적 비가 내리면서 날이 저물었다.
이때 하늘님이 보우하사 구호천사가 나타났으니....
군용 지프차에 옆에는 예쁜 여자를 태운 샹그리라에 사는 쨩췐쫑[張泉忠] 선생이다.
상투적인 대화가 오고간다.
어디서 오냐?
칭다오.
어디까지 가냐?
샹그리라.
그리고 그냥 갔다면 당연 욕이 나왔겠지.
이번에는 내가 물었다.
꼭대기까지 얼마나 남았나? 멈칫멈칫... 오잉! 잘 모르는 구만?
아직 멀었단다.
그러더니 지프차에 매달려 고개 꼭대기까지 오르잔다.
나는 "혹" 했다. 그러나 안 사장이 위험하다는 이유로 동의를 하지 않는다.
자기들은 그렇게 많이 해 보았다면서 문제없으니 그렇게 하자는데... - 특수(?)부대 출신인 나는 메이원티인데... 안 사장 혹시 카츄샤 출신 아니우?
결국, 그들은 티벳 특유의 휘발유 냄새를 남기고 부웅 떠나갔다.
수쏭에서 65.68 km 지점 해발 3,030 m.
깜깜절벽. 야간주행이 또 시작되었다.
젊은 안 사장은 앞에... 쬐끔 늙은 나는 뒤에....
50십을 바라보는 낡은 내가, 빤쓰 줄 맬 틈이 없을 20대 열혈청년을 따라 가자니 죽을 맛이다.
그 때 지나가던 차가서더니 뭐라고 한다.
그 차가 돌아온 것이다.
그 "선생님"께서 돌아오신 것이었다.
꼭대기까지 10 꽁리(公里 - km) 쯤 된단다.
딴쓰[但是-그러나]! 차로 10꽁리면 자전거로는 20 꽁리 ?
밤이니 곱하기 하면 40 꽁리....
아니다. 비까지 내렸으니 "따따블" 아닌가?
드디어 꼭대기.
해발 3,310(3,500)m. 지프차가 불을 밝혀주고 서 있지만, 바람이 세차게 불고 비까지 쏟아져 고도만 확인하고 내리막으로 들어섰는데 장맛비 쏟아지듯 한다.
비록 낮으막 하지만 또 오르막이 나타났고, 기진맥진한 나에게는 힘에 부쳤다. - 아이구 엄니! 저 죽어유~~우! 정신이 흐릿해 지는 것을 느끼면서... 허우적 댔다. 내려서 걸어야지 이러다 기절 하겠다 는 느낌이 온몸을 엄습하였다.
그 때 마침! 샹그리라에 이미 버스로 닿은 로인에게서 전화가 왔고, 전화를 받아 통화를 하는 중에 젊은 안 사장은 쏜 살 같이 치고 나갔다.
애라산과 라오산을 넘을 때 밤눈이 어두워 잘 보이지 않는다고 하더니... 잘도 쏜다.
따라 잡지는 못하겠고, 뒤에 차는 바짝 따라 오고... 그 때 그냥 길바닥에 눕고 싶었다.
갑자기 하강을 해서 기압차이 때문에 그런지 ?
아니면, 날씨가 추워 혈액순환이 않 되어 그런지?
그도 아니면 힘에 부쳐서 그랬는지? 어지럽고 맥이 빠져 지옥으로 빠져들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22시 수쏭에서 105.1km. 18.4 ℃. 해발 3,105(3,200)m. 샹그리라[香格里拉 - Shangri-la]
늦은 밤. 비어 젖어 춥고 배고플 때.
비와 함께 짙은 어둠이 내렸고, 안개도 적막과 함께 내려와 샹그릴라의 밤을 즐기고 있었다.
밤 안개 속에 가로등은 벌써 졸고 있고, 비가 많이 내려 길에는 물이 고인모습으로...
뼈 속까지 스민 차가운 빗물에 몸을 오들오들 떨며 식당 앞에서 로인을 만났을 때가 22시 정각.
젖은 옷은 벗지도 못하고 먼저 주린 배를 채웠다.
온 몸으로 비를 맞아 추위에 떨며 밤이 깊어서야 자전거 여행자는 꿈의 낙원이라는 샹그리라에 닿았지만, 샹그리라는 이름뿐. 우리가 찾아 온 샹그리라가 아니었다.
영국의 작가 J. Hilton의 Lost Horizon에 나오는 신비의 샹그릴라는 눈을 까 뒤집고 둘러보아도 머리카락조차 보이지 않았다.
첫댓글 무척 고생을 하셨군요 , 비에 젖은채로 야간 이동,추위와 배고픔 실전을 방불케하시는 심정을 누가알꼬....읽으면서 가슴 뭉클하지만,샹그릴라는 마음속에서 아름다움을 내내 추고 있었을 겁니다...^^
그 샹꺼리라는 인정하지 않고 마음속으로 그리기로 하였읍니다. 다시 한 번 찾아 가면 찾을수 있을까....요?
샹그릴라. 저도 부푼꿈을안고 갔다가 큰실망했었지요. 이름부터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티벳의 깊은 산속 어딘가에 있을 겁니다. 또 가서 찾아 보세요. 나만의 샹그리라를 찾아서...
전 2004년 8월에 다녀왔어요. 이름이 너무 아름답고, 유명해서 갔었어요. 야크바에 들러서 한국음식 먹고, 산책하고 좋았어요. 아담하고, 평화롭고, 순박한 사람들이 많은 곳이었어요. 계속 그런 풍경으로 남아 있었으면 좋겠어요. 시간 아낀다고, 두루두루 못 보고 온 것이 너무 아쉬워요. 향수를 불러 일으키네요....
들어가는 날에 고생(?)이 심했고... 거기까지 가면서 쬐금보았기에 그랬을까요... 제 눈에는 창산과 너른 들판에 얼하이 호수가 어우러지는 따리가 아름답더군요
와! 대단한 여행기입니다. 더구나 자전거로 달리고 그래프까지 그리고... 나도 언제 자전거로 달려보고 싶은데 짐들과 카메라를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네. 몇년 후 같이들 갑시다.
2005년1월에가봤는데요 빵차에서 내린순간 3발짝정도걸어가니까 머리가 어질어질하더군요^^그래두 내가좋아하는담배를한대피워봤지요. 담배처음배우던기억이납디다요. 여행동반자들이 술담배 절대하지말라는말 무시하구 술두한병사서(치콰이짜리)마셨지요.다음날은 고산적응이되였는지 조금 살만하더이다.중디엔은 습지라서 곡식을 말리는 방어책?같은것두있구요. 벽탑해라는 호수가~~~이곳은 해발3750미터라는 간판이있었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