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빈.
이른 아침부터 밥을 먹다가 호흡곤란을 일으킴.
이 상황을 오전 7시 즈음 소희누나로부터 전해 들었다.
지금 당장 내원 해야겠다는데
휴일의 이른 시간에 강제로 기상 당하여
어제 마신 술도 미처 깨지 못하고 비몽사몽한 채로 들은 얘기라,
아린 뒷골을 부여잡으면서 귀찮아 했다.
이 상태로 어떻게 차를 끌라는 거야?
이런 안일한 생각에 속으로 툴툴대면서
옷을 갈아입으려다 말고 다시 침대에 드러누웠는데
혹시나 하는 본능적 불안이 날 다시 일으켰다.
이것도 법대로라면 음주운전이지만 다음부터는 안 하면 되지.
소희누나는 집에 남았고 소진이누나와 캐빈, 나 이렇게 셋이서 출발을 했다.
여기까지 걸린 시간 5분 내외
법에 저촉되는 다른 상황까지 유발하지 않기 위해
한산했던 도로와 안 어울리게 평소보다도 더 사리면서 운전을 했다.
며칠 전에도 봤던 증상이다.
겉으로는 그렇게 힘겨워 보이진 않지만
평소와 다른 호흡 주기로 가쁘게 숨을 마시는 캐빈의 낯선 모습을 보는 게 이로써 두 번째다.
그때도 썩 응급 상황이 아니라 여겼으니
당시 아직 문을 닫지 않았던 옆동네 동물 병원에 느지막이 데려가
가벼운 진료 후 가루약을 처방 받아 돌아왔었다.
지금 응급 동물 병원으로 가는 이유는 단순히 다른 동물 병원들이 문을 열기 한참 전이니까 가는 것뿐이다.
진료 받고 하루 뒤 멀쩡하게 뽈뽈댔으니 이번에도 그러겠지.
신호 따위 무시해도 될 것 같은 상황들이 있었지만 내 차가 구급차도 아닌데 그럴 권한도 없고, 그만큼 급한 상황도 아닌 것 같다.
그냥 얼른 돌아오자는 마음으로 작은누나 품에 안긴 캐빈의 손을 잡아본다.
24시 응급 동물병원에 15분 걸려서 도착
금방 끝날 거라는 당연한 믿음에 주차장으로 들어갈 생각도 안 들어서
한적한 도로변에 불법 주차를 해 둔다.
소진 누나는 캐빈을 데리고 곧장 병원으로 들어갔고
몇 분 후 나도 따라 들어가려는데
어제 마신 술 때문인지 배가 아파서 급하게 건물 1층에 있던 화장실에 들렀다. 윽 더러워라..
화장실 상태는 또 왜 이래?
우리 집 화장실보다 더러운 곳에선 볼 일을 보고 싶지 않다.
근데 급하니까.. 빨리 해결해야지
그렇게 10분 후 누나한테 온 전화를 받고 병원에 따라 올라감.
캐빈 없이 대기석에 앉아있던 소진 누나에게 급성 폐수종이란 질환으로 입원 조치를 받았다는 얘길 들었다.
폐수종.. 그런 병도 있었나?
작은누나의 표정은 차디 찼고, 앉은 자세를 지탱하는 데 말고는 힘이 들어가지 않은 모양으로 앉아 있다.
누가 봐도 썩 좋은 상황은 아닌 것 같다.
아님 그냥 누나도 아직 술이 덜 깬 건가
경과를 지켜보던 도중 포대기에 강아지를 싸안고 흐느끼며 찾아온 여자.
그는 의료진에게 말 대신 울음소리만으로 위급한 상황을 설명하며 강아지를 넘겨준다.
사랑과 불안, 걱정
그의 품에 실려온 강아지를 향한 온갖 생각과 감정으로 뭉쳐진 흐느끼는 소리가
병원에서 흘러 나오던 피아노 버전 가요곡들을 덮는다.
그냥 아픈 애들이 오는 데가 아니었구나
그저 남의 일인가.. 뭐가 어쨌든 빨리 집에 돌아가서 쉬고 싶다.
몇 시간 더 자서 당기는 뒷골을 완화 시켜야지.
잠시 후 면회 시간에 수액 주사가 꽂힌 채로 케이지 안에 갇혀서 빠르고 힘겹게 헐떡거리는 캐빈을 봄.
그 위아래 양옆에 갇혀서 새차게 짖어대던 다른 강아지들
이들은 평상시 병원에 가면 벌벌 떨던 캐빈처럼 두려워 하고 있었지만
손이나 다리에 붕대를 조금 감고 있는 걸 봐선 다른 문제는 없어 보였다.
목청들이 우렁찬 게 예쁘기도 하네
다들 좀만 참으렴 곧 집에 갈 수 있을 거야.
캐빈. 너도 집에 가면 또 이렇게 짖어댈 거지?
의료진을 향한 작은누나의 말투는 기운이 없었으나 다소 날이 서 있었다.
굳이 저렇게까지 말해야 하나? 저분들도 힘드시겠다
속으로 이런 한가한 소리를 하고는
하루에서 이틀 동안 입원 시켜보자며 특이사항 발생 시 연락 주겠다는 수의사의 말을 듣고
캐빈의 병원비 수납을 하려고 대기실로 돌아나갔는데
수납이 채 끝나기 직전
수납을 도와주던 간호사를 찾는 의사의 긴박한 고함 소리에
달리 판단할 여유도 없이 재빠르게 진료실로 따라 들어감.
캐빈은 선분홍색 피를 토하며 심폐소생술을 받고 있었다.
의사의 설명을 듣고 불과 5분도 안 된 상황에
작은누나가 갑자기 왜 이렇게 됐냐며 전보다 격앙된 말투로 묻자
억울하다는 투로 대꾸하는 의사가 갑작스레 일어난 일이라고 높아지려는 언성을 겨우 절제하며 설명한다.
상황이 나아지지 않는지 작은누나에게
계속 해볼 것이냐, 여기서 멈출 것이냐를 몇 번씩이나 묻는 수의사
다른 선택지가 있나? 계속 해 봐야지
캐빈을 옆의 수술실로 데리고 들어가서 본격적으로 심폐소생술을 잇는 수의사.
앵두 만할 캐빈의 목구멍에 굵직한 인공 호흡기가 꾸역꾸역 박힌 채로 심폐소생술이 계속된다.
하지만 그의 고통은 호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몇 분간의 끊임없는 심폐소생술 중 곧 사망할 것 같다는 수의사의 말이 떨어진다.
작은누나가 서럽게 운다.
마지못해 이거라도 계속 해 달라 요청한다.
뜬금없이 웬 사망?
중간중간 캐빈이 숨을 고르듯 내뱉는데
의사는 자꾸 가망이 없다고 하네
아직도 살아 있다고 껄떡대는데
왜 죽을 거라고 하지
나는 뒤에서 이 모든 상황을 티비 보듯이 지켜보고 있었다.
이건 내 일이 아니다.
갑자기 이런 일이 왜 일어나겠나?
영양가없는 마음속 독백 중 점점 식어가던 캐빈은 더 이상 껄떡대지 않았다.
곧바로 사후 절차를 안내해주는 수의사
안타까워하는 듯한 말투로 얘기하는 의사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난 아무렇지 않게 대기실로 나가서 엄마에게 걸려온 전화를 받고 캐빈의 죽음을 알린다.
곧 오겠다는 엄마를 기다리던 중
옷에 묻은 캐빈의 묽은 핏자국 따위에는 신경쓸 겨를도 없던 작은누나가 숨 쉬듯이 흐느꼈다.
전에 들어온 여성에 이어 이번엔 작은누나의 울음소리가 공간을 채운다.
곧 간호사가 관에 눕혀진 캐빈을 들고 나온다.
미리 준비되어 있던 반려동물용 관은 응급 동물 병원에서 반려 동물 치료 중 죽는 일이 흔하다는 걸 보여준다.
관의 무게가 더해져서였나 평소보다도 캐빈이가 무겁다.
그래도 그렇지 이건 그냥 두꺼운 종이 박스로 만들어진 느낌인데
내가 평소에 그를 안을 땐 자기도 나름 몸에 힘을 줘서 무게를 덜어준 것이었나?
자는 것 같았지만 캐빈의 감지 못한 눈과 벌어진 입이 그 때의 얼굴과는 너무 달랐다.
그 입으로 새어나와있는 분비물
입은 못다물겠다더라도 눈은 감고 자야지
눈 좀 감아봐라. 왜 눈을 못감냐?
눈꺼풀을 아래로 내려줘도 자꾸만 떠진다.
원래 눈꺼풀이 이렇게 안 닫히는 건가?
얘가 진짜 죽었나 보네
얼마 후 아빠, 엄마, 소희 누나가 옴.
모두 관에 담긴 캐빈을 티비 보듯 쳐다본다.
관을 향해 각자 몇 마디를 하긴 했지만 무미건조했다.
티비 속 장면에 말을 얹듯이.
엄마는 전날 술자리를 함께한 우리 집에 있는 막내이모 가족에게 먼저 아침 먹고 들어가라고 전화를 한다.
병원에서 추천해준 반려 동물 장례 업체 팜플랫을 받아들고
의료진의 안내를 듣고서 약간의 설전이 일어난다.
캐빈을 다른 반려 동물들의 사체들과 합쳐서 폐기물로 처리할 것이냐
권해준 전문 업체에 장례를 맡겨서 보내줄 것이냐
아니면 자주 가던 동물 병원에 데려가 자문을 구해볼 것이냐
최악의 셋 중 가장 이상적인 것은 장례식이었다.
이런 결론이 내려진 과정은 짧았지만 기억이 뚜렷하게 안 난다.
내 귀에 별로 흥미로운 얘기가 아니었다.
여기까지 9시 30분
11시쯤으로 장례 일정을 잡아준 장례식장으로 향한다.
도착 예정 시간은 10시.
아빠 차에는 아빠, 엄마, 소희누나와
내 차엔 소진누나, 나, 캐빈 이렇게 셋씩 나뉘어서 간다.
새 차로 바꾸면서 구해온 방석 두 개
캐빈이가 시트를 자꾸 긁어서 캐빈을 그 위에 앉힘으로써 그걸 막고자 산 것인데
관에 담긴 캐빈을 그 방석 두 개가 깔린 뒷좌석에 태워준다.
가는 중에도 계속 우는 작은누나
그와 마찬가지로 내 머리가 시키지도 않은 울음이 몸 밖으로 끌려나온다.
오전 10시. 들어갈수록 좁아지는 길을 따라 외진 터에 자리한 반려 동물 장례식장에 다다랐다.
장례식장 안에는 다른 일행들이 더 있었다.
저 사람들도 우리랑 같은 처지인가
아늑하면서도 엄숙한 분위기의 조명, 아기자기한 장식들, 나른하고 따스한 배경 음악이 깔려 있는 장소
내가 지금 왜 여기에 있지?
나는 이전 기억을 삭제 당한 것처럼 내게 계속해서 되물어봤다.
대기석에 있던 몇 개의 탁자 위에는 각각 모형 강아지가 껴안은 사탕바구니 안에 사탕이 가득했다.
뒤에는 정수기와 커피, 그 옆엔 음료 자판기
몇 시간 전인 새벽에 봤으면 몇 개는 꺼내 마셨을 음료들이 가득 즐비해 있었다.
사탕 바구니를 안고 있던 모형 퍼그의 머리를 검지로 쓰다듬는다.
캐빈은 이제 만질 수 없으니 모형 강아지라도 만져야지
왜 이렇게 답답하지. 잠깐 나가 볼까
나가서 하늘로 시선이 가기 무섭게 울음이 반사적으로 튀어나온다.
건물 안에 있는 사람들이 혹여나 쳐다볼까
그냥 바람 쐬러 나간 사람처럼 터덜터덜 걸으며 울었다.
그런데 사람을 피하지 않는 고양이 셋이 있다.
내가 어느 정도 거리를 좁혀도 특유의 경계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자기들끼리 부르면서 휴식 중인 고양이들
방해를 끼칠까 멀찍이 떨어져 캐빈을 부르듯 조용하게 "야!" 불러보며 그들을 감상한다.
11시가 되기 30여분 전, 장례 절차가 시작된다.
상담실의 티비를 통해 무한 반복으로 재생되는
신속하게 제작된 캐빈의 추모 영상
그리고 안내문에 따라 장례 비용부터 안내해 주는 장년층의 장례 지도사.
황토 유골함은 몇만 원, 호두나무 유골함은 몇십만 원입니다.
차분하고 나긋한 말투와 태도 속에 왠지 모를 장사꾼의 느낌이 엿보인다.
물론 우리의 기분을 진심으로 공감했을 수도 있었겠지만
죽음에 돈이 엮여 있으니 자연스레 그런 생각이 들더라.
이윽고 캐빈의 손과 발에 난 털을 조금씩 다듬고서
손바닥 만한 종이에 발도장 두 개를 찍어 액자에 넣어주는 장례 지도사.
이러나 저러나 꼭 필요한 사람들 중 한 사람이다.
사람도 죽으면 큰 돈이 들지 않나. 괜히 안 좋게 보지 말자
중간 대기 시간을 이용해 죽은 캐빈을 만진다.
미지근한 앞다리를 만져보고
아직도 감기지 않은 눈꺼풀을 내려 보지만 역시 쉽지 않다.
힘을 더 주면 혹여나 여린 눈동자가 다칠 것 같아 그만둔다.
몸은 부드럽고 말랑한데 완전히 굳었다.
이제 팔도 구부려지지 않는다.
이번엔 젊은 장례 지도사가 캐빈을 염습실로 데려가서
시신을 가볍게 닦아준 후 하얀 천으로 덮어준다.
그 후 수의를 입혀주기 전 마지막으로 인사할 시간을 준다.
볼록하게 나온 캐빈의 옆구리를 만져보고
생전에 자고 있던 캐빈을 살포시 안듯이 안아보는데
느낌은 비슷하나 쌔근거리던 숨소리는 들리지 않고
너무나도 차갑고
오르락내리락 하던 배도 멈춰 있다.
자는 것을 내가 만지면 화들짝 놀라서 깨어났다가 이내 안심하고 배를 뒤집어 까거나
자는 것을 불러 보자 눈을 살짝 뜨길래 손을 달라 하니 누운 채로 손을 삐죽 내밀어주던 캐빈이의 형체인데
다른 물체를 만지는 것 같은 상당한 이질감이 캐빈에 대한 상실을 직시하게 했다.
이제는 캐빈이가 아닌 물체를 더 만지고 싶지 않아졌다.
팔뚝 안쪽에 옅게 문신이 새겨진 젊은 장례 지도사.
그는 수의가 입혀진 모형 강아지의 견본을 보여주며
또아리 장식은 인연이 돌고 돌아 언젠가 꼭 다시 만날 것을 의미하고
옆구리에 큰 리본처럼 달린 분홍색 날개 장식은
무지개 동산에서 천사가 되어 뛰어놀라는 바람을 뜻한다고
전의 지도사와 다른 톤이지만 그와 같은 말투로 염습 과정에 대해 간단히 설명 후
삼베 질감의 뻣뻣한 천으로 캐빈을 조심스럽고 예쁘게 포장하기 시작한다.
그러는 동안 대여섯 겹으로 된 한지 뭉치에 캐빈에게 마지막으로 전할 말을 적어 주라고 안내한다.
소진 누나, 소희 누나, 엄마, 나 순으로 검은 매직으로 글귀를 적어낸다.
아빠는 아무 말이 없었다.
얼핏 보면 캐빈의 죽음에 큰 동요가 없어 보인다.
가벼운 헛웃음까지 내비친다.
아빠는 병원에서부터 침착하게 사무적인 얘기만을 해왔다.
무조건적인 슬픔을 티내지 않는 아빠가 원망스럽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겉으로 슬퍼하는 모습을 보여줘야만 하는 게 정답은 아니니까.
아니 잘 보면 이것은 지극히 보수적인 가장이라는 타이틀에 끼워 맞춘 허세에 가깝다.
안 슬픈 척. 덤덤한 척.
그러면서 감정을 면사포로 가리듯 자꾸 쓸데없는 소릴 한다.
이제까지 들었던 캐빈 의료 비용의 대부분도 아빠가 내줬다.
우리 집 생활비를 맡아주는 것처럼.
캐빈 의식주 비용도 아빠한테 받은 생활비로 낸 것이고
장례비까지 다 아빠가 내주잖아
혼자만 아닌 척 하던 그런 부분들이 이런 식으로 드러난다.
무리엔 이런 사람이 있어야 한다.
특히 지금 같은 상황에선 여느 때보다도 훨씬 더 필요한 사람일 것이다.
모두가 슬픔에만 잠겨 있느라 현실적인 대처를 하는 데 지체가 생긴다면 그건 또다른 문제를 야기할 것이다.
추모실로 이동 후 30분 간의 추모 시간이 주어진다.
이곳에서도 상담실에서 틀어줬던 추모 영상이 무한정으로 반복 중이다.
그 앞에 가만히 앉아서 멍때리고 있으니 졸음이 쏟아졌다.
그렇게 앉은 채로 자다 깨기를 반복했다.
장식된 캐빈을 화장하여 떠나보내줄 시간이다.
관에는 캐빈과 꽃들, 언젠가부터 한 조각도 주지 않았던 간식을 조금씩 덜어 담은 두 개의 작은 통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적은 간결한 편지를 담았다.
캐빈과 함께 이것들이 불타 눈앞에서 사라지면
정말 따뜻한 천국에 무사히 도착해서 평안한 사후세계를 맞이할 수 있을까?
이런 믿음과 소망으로 진행되는 화장이
단지 물리적인 사체 처리에 헛된 망상을 덧붙인 것일까봐 두렵다.
뼈만 남기고 모든 게 사라지는 시간까지 40여분 전
안에 있으면 답답하니까 다시 밖으로 나간다.
건물 입구 앞에 아까는 못 봤던 고양이 집이 두 개 있고
두 개가 하나로 이어 붙여진 밥그릇에 사료가 채워져 있다.
그 집 두 개 중 한 곳에 나이 들어 보이는 고양이 한 마리가 자고 있다.
가까이 다가가자 나를 의식하긴 했는데, 이 고양이도 사람을 경계하지 않는 것 같다.
사진도 찍고 구경 좀 하고 있으니
캐빈을 염습해 주던 젊은 장례 지도사가 나와서 고양이를 부른다.
이름이 이지라 하네
몇 살이냐 물었다.
길냥이 출신이라 정확히 몇 살인지 모르겠다더라.
다른 고양이들도 있던데 전부 여기서 관리해 주는 애들이냐 물었다.
걔넨 잠깐 찾아온 길냥이들이고
입소문 탔는지 종종 다른 길냥이들이 여기 들렀다 간다고
지도사는 전처럼 사근하지만 전과는 조금 다른 사적인 말투로 들떠서 얘기한다.
이곳이 동물들을 위한 장소라는 건 확실해 보인다.
추모실로 다시 돌아가 본다.
작은누나 혼자 눈을 감고 앉아 있다.
눈꺼풀과 코는 새빨갛게 부었다.
지쳐 잠든 것 같으니 다시 밖으로 나간다.
건물 주변을 산책한다.
바로 옆에 있던 공장에 들어서자 목줄이 채워진 우람한 개 두 마리가 큰 소리로 짖어온다.
문도 잠겨 있고 사람 없이 개들끼리 그곳을 지키고 있었다.
진정하라고 시선을 피한 채 천천히 그곳을 벗어났다.
구경하고 싶었는데 그럼 더 불안해 할 것 같아서...
몇십 미터를 걷자 위로 올라가는 언덕이 산처럼 드러났고
그곳을 오르자 또다른 공장들이 하나둘 이어져 나왔다.
멀리서부터 보이는 얇은 베이지색 패딩을 입은 폼피츠라는 견종의 개가 앙칼지게 짖는다.
가까이서 보려고 다가가자 그 안쪽 뒤에서 목줄 없는 크고 작은 백구 두 마리가 소리 없이 성큼성큼 다가온다.
그리고 날 제일 먼저 발견했으면서 열의 마지막으로 그들의 뒤를 잇는 폼피츠
셋 다 목줄이 없었다.
행동 범위에 제한이 없는 그들에게 잠깐 쫄았지만
다가오는 속도, 폭력성과 거리가 먼 눈빛을 보고 금방 안심을 했다.
그 와중에 내가 쳐다보기만 하면 깜짝 놀라서 짖어대는 폼피츠
너도 안심하라는 뜻에서 양쪽 주머니에 두 손을 넣고 산책을 이어간다.
자꾸만 졸졸 쫓아오는 세 마리의 개들
만져보고 싶은데 남의 개들이고
혹시 돌발적으로 물기라도 할까봐 무서워서 터치는 삼갔다.
좀 더 안으로 들어가려다 어느 문 열린 공장 건물 앞에 개인 승용차가 몇 대 세워진 걸 보고 뒤돌아선다.
저 사람들은 아직 휴일인데도 출근을 한 건가?
빠져나오는데 폼피츠와 처음 마주쳤던 컨테이너 안에서
개 짖는 소리를 듣고 나온 듯한 어떤 남자와 순간적으로 뻘쭘하게 눈을 마주쳤다.
어서 내려가야겠구만.
개들은 마중나오듯 따라오더니 언덕의 끝부분에서 걸음을 멈추고
떠나는 날 잠시간 바라보다 다시 안으로 돌아갔다.
난 그들을 사진으로 몇 장 찍어 가벼운 산책 중 만난 양 사족을 붙여서 여자친구에게 보내줬다.
잘 지내라.
또다른 개들과 고양이를 구경하며 장례식장으로 돌아갔다.
막 돌아오자 화장이 끝나 있었고 내가 없는 동안 캐빈의 뼈도 보여 줬다 한다.
그의 유골은 내가 산책하고 돌아왔을 때 이미 고운 가루로 빻아지는 중이었다.
뼛가루라는 흔적이 된 캐빈은 작고 동그란 원통형 호두나무 유골함에 담겨져 나왔다.
뚜껑을 완전히 닫기 전 마지막으로 가루를 보게 해주고
강제로 무리해서 열지 않으면 다시는 열지 못하도록 강력 스티커를 이용해 봉인을 한다.
그냥 언제든 열어볼 수 있게 뒀으면 좋겠지만
살아 있을 때도 제대로 못 살핀 걸 뼈만 남은 캐빈을 관리해 줄 자신마저 없으니
권하는 대로 따를 수밖에
귀갓길에도 아빠 차엔 아빠, 엄마, 큰누나
내 차엔 작은누나, 나, 캐빈 이렇게 나뉘어서 돌아간다.
아빠랑 엄마는 큰누나를 큰누나네 집에 데려다 주고 오겠단다.
소진 누나는 눈을 반쯤 뜬 채 고개를 바닥 쪽으로 향하고 있으나 그 넋나간 시선의 목적지가 어디인지는 모르겠다.
나와 비슷한 감정으로 비슷한 생각 중이겠지만 그 정도는 가늠할 수 없으니 말을 걸 수가 없다.
그럴 마음도 안 나고..
침묵 속에서 집을 향해 무감각적으로 페달을 밟는다.
집으로 들어오기 전 문 앞에서부터 캐빈의 부재를 느끼고 또다시 울음이 밀려나온다.
우릴 반겨주는 발톱 소리와 살랑거리는 꼬리가 없다.
앞으로 더는 볼 수 없는 네가 없다.
그러나 네가 남긴 물건들이 아직도 네가 있는 것처럼 착각하게 한다.
우는 채로 옷을 갈아입다가 주저앉고
다시 울면서 일어나 클리너로 핸드폰을 닦고 이어폰을 닦고 차키를 닦는다.
아이고 마우스는 왜 안 닦아. 의자도 닦자.
그치나 했건만 집에 오자마자 곧장 방으로 들어간 소진 누나의 흐릿한 울음소리를 듣고 또 운다.
할 수 있는 게 우는 것 말고 없다.
아직 엄마 아빠는 집에 돌아오지 않은 상황
누가 볼세라 갈아입을 새 잠옷과 속옷을 챙겨 화장실로 들어가 샤워를 한다.
샤워 중 돌아온 엄마 아빠는 캐빈을 위한 물건이란 물건은 마구잡이로 치워내셨다.
다 씻고 나오니까 방금 전까지 화장실 앞에 있던 패딩과 목줄, 하네스, 캐빈 출입 방지용 울타리가 모조리 사라졌다.
샤워할 때도 있던 캐빈용 바디 샴푸는 내가 잠깐 방에 들렀다 화장실에 돌아와서 보니 없어져 있었다.
작은누나 방문 위쪽에 걸어둔
한 달 전에 사놓고 몇 번 입혀 보지도 못한 베이지색 전신 패딩 하나만 최후의 보루마냥 남았다.
내일 아빠 회사에서 대형 폐기물로 버려야 하는 캐빈 용품들에 붙일 폐기물 딱지를 인쇄해 오라고 하는 엄마
우리집에도 프린터는 있지만, 잘 안 쓰는지라 전원 코드를 뽑아둔 상태다.
다시 쓰기 위해선 내 방 뒤에 숨겨진 듯 놓여있는 프린터의 전원 플러그를
책상과 침대와 옷장으로 형성된 틈새를 비집고 기어들어가서 꺼낸 후
만석인 멀티콘센트에 양해를 구하고 개중 아무 플러그나 잠시 뽑은 뒤 그 자리에 꽂아 써야 한다.
이 과정이 귀찮고 번거로우니 더욱 잘 안 쓰게 되었는데
내가 폐기물 딱지를 인쇄해 오지 않으면
내 방에 있는 캐빈 계단과 마약 방석,
그리고 복도에 내다 둔 캐빈용 유모차 등 다른 몇 개의 대형 물건들은 버릴 수 없다.
며칠 동안만이라도 엄마의 지시를 까먹을까.
엄마도 이 모든 걸 반드시 당장 버려야 한다는 절실함에 하신 얘기는 아닐 테니
얼마큼은 이렇게나마 미룰 수 있을 것 같다.
엄빠가 사온 콩나물국밥을 늦은 아점으로 먹는다.
김치콩나물국밥 냄새에 식욕이 돋는 걸 보니 아주 괴롭진 않은 것 같다.
배부르게 먹고 설거지를 하니까 잠이 온다.
이대로 자면 캐빈 꿈을 꿀 것 같다. 자지 말까?
아닌가? 꿈에서라도 다시 만날 수 있으면 차라리 좋은 건가
그런데 꿈에서 깨어난 뒤에는 어떻게 하지?
이제부터 드는 생각은 엄마 마중갈 때마다 유골함에 든 캐빈을 데리고 나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는 생각이다.
차 타러 나가려 하면 언제나 지도 같이 가자고 졸라댔는데
몸짓으로 표현은 못하게 됐어도 여전히 같은 마음이지 않을까?
잠깐 컴퓨터 좀 하자
스타2도 하고 이것저것 아무거나 하고 놀아야지
흠.. 근데 막상 앞에 앉으니 오늘따라 맛이 없을 것 같다
제쳐두고 PC톡을 켜서 여친한테만큼은 말 안 하려던 소식을 전한다.
갑작스러움에 놀라는구나. 나도 그래
아니 실은 놀랍지도 않아
내가 느끼는 이 감정이 뭔지 잘 모르겠어
이게 뭘까 정말
너한텐 이 복잡한 우울함을 옮기기 싫었는데
뜬금없이 이런 안 좋은 얘기나 해서 미안해
졸리네. 늦은 낮잠이라도 자야겠다
두세 시간가량 수면 후 밤 열 시 무렵 깨어났는데
캐빈 꿈을 꾼 건지 설잠을 자다가 캐빈 생각을 했던 건지
지나간 기억 중 하나를 무의식적으로 꺼내 보듯
캐빈의 형상이 어렴풋이 허공에 일순간 보였다 사라진다.
다시 자려 했으나 잠이 안 온다.
아빠가 내 방의 문을 열고 같이 저녁 먹자 했지만 거절했다.
자느라 저녁도 못 먹은 탓에 배는 허기를 외치고 있었는데
의욕적으로 무언가를 먹고 싶은 마음이 안 들었다.
그대로 누워서 유튜브를 보고
캐빈 사진과 영상을 죽 훑고
오늘 하루의 감상을 핸드폰 메모장에 적어내려가다
새벽 한두 시경에 반강제적으로 잠에 빠져들었다.
설 연휴의 마지막 날이 개연성 없는 사건의 연속으로 느릿느릿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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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아빠 회사에 출근 후
엄마의 지시대로 폐기물 딱지를 찾아 본다.
강아지 계단용 딱지는 없군.
방석용 딱지도 없고
여행갈 때 필요한 이동가방? 이것도 모르겠다.
쓸 만한 게 유모차 딱지뿐이네. 비고란에 반려동물용이라 적어두면 알아서 가져가겠지
유모차에 붙일 딱지 하나만 인쇄해서 집으로 돌아간다.
집에 돌아오니 큰누나가 놀러 와 있다.
둘이 식탁에 앉아 큰누나가 산 피자에 맥주를 곁들여 먹고 있었다.
무슨 얘기를 하고 있었는지 안 봐도 뻔하다.
나한테도 하고 싶은 캐빈 얘기가 있으면 같이 하자는 소진 누나
아.. 나 이런 건 싫은데
일단 캐빈 유모차부터 버리고 오기로 한다.
테이프 세 조각과 인쇄한 폐기물 종이를 들고
현관문 앞 비상계단 구석에 놓인 유모차에 다가간다.
작년 여름쯤 중고로 사들인 유모차.
그 옆 창틀엔 비나 눈이 올 때 유모차에 달아서 씌워주던 망가진 투명 우산이 걸려 있다.
천 부분엔 테이프가 안 드네. 딱딱한 파이프 부분에 붙일까
테이프 한 조각은 어디로 갔나? 분명히 왼손 손가락에 붙어 있었는데
그냥 종이 위쪽 양옆에 한 조각씩 붙이고 말았다.
종이 하나 붙이는 데 5분이 훌쩍 지났다.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쓰레기장에 가서 투명 우산과 접혀진 유모차를 두고 온다.
사흘 전까지만 해도 캐빈이랑 걸었던 집 앞 흙밭에
얘의 발자국이 있나 없나 폰 후레쉬를 켜고 찾아 보다가
정신 나간 인간으로 보일까봐 그만 뒀다.
사실 발자국이 보였으면 누가 보든 말든 하나하나 구경했을 건데
그런 게 남아 있을 리가 있나
술에 빠져 있던 이틀 전에도 산책을 했으면 남아 있었을까?
누나들과 합석해서 피자 두 조각과 알로에 주스를 먹는다.
누나들은 캐빈을 회상하며 울다가도 티비 속 웃긴 장면에 다시 웃는다.
그러다 또 캐빈을 떠올리고 울면서 얘기한다.
이들은 하나의 감정에 매몰되지 않기 위해 만난 것이다.
내가 잊었거나 몰랐던 캐빈의 기억들을 누나들에게 듣기도 했다.
그런 적도 있었다고? 왜 전혀 몰랐지?
거의 갓난아기였을 때도 마지막처럼 피를 토해서 겨우 살려낸 적이 있었다는데...
괜찮다고 여겨졌던 며칠 전에도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보였고
병원에 데려가기 몇 시간 전엔 죽음의 전조를 보였다 한다.
그는 대충 넘겨짚던 내 생각과 달리 하나도 괜찮지 않았다.
내가 이런 사람이다.
겉으로는 캐빈한테 관심 깊은 사람처럼 보였을 수도 있었겠지만
까고 보면 캐빈에 대한 진심이 없는 속이 텅 빈 강정이다.
그래서였는지 난 아무렇지도 않았다.
일단 옆에 사람들이 있으니 슬픈 감정을 떠올릴 틈이 안 생겼다.
후회를 하든 그리워 하든 그걸 입 밖으로 내보일 때만큼은 슬픔을 쏙 빼놓고 말할 수가 있었다.
슬프지 않았으니까
내 가짜 슬픔을 누가 보는 앞에 전시하고 싶지 않았다.
내 눈물은 자격이 없다.
예뻐하기만 할 줄 알았지 그에게 진짜로 필요했던 책임들은 철저하게 회피해왔다.
작은누나는 집에서 일을 하느라 캐빈과 거의 항시 붙어 있었다.
그건 그가 캐빈을 하나부터 백까지 다 챙길 수 있게 해 준 최상의 조건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소진 누나였다면 캐빈을 그렇게까지 돌볼 수는 없었을 거라 자신한다.
캐빈과 같이 있을 수 있었던 시간들 중
실제로 귀찮아서 안 하고 미뤘던 것들이 얼마나 많았나?
퇴근하면 산책 조금 시키고, 가끔 작은누나 대신 목욕이나 시켜주고
항상 가득했던 물 그릇이 비어져 있는 걸 봤을 때만 물을 주거나
엄마와 작은누나가 밥을 못 주는 상황에만 밥을 채워주고
미숙하게 양치 몇 번 시켜준 게 전부인데
내가 캐빈을 떠올리며 눈물을 흘릴 자격이 있는가?
이 눈물이 캐빈을 잃었다는 슬픔에서 오는 눈물은 맞는가?
그냥 남들 슬퍼하듯 슬픔을 따라하고 있는 게 아닌가?
난 그저 슬픈 척을 하고 있는 것인가?
지금 이 슬픔에 취해 있는 것이 아닌가?
내가 정말로 슬픔을 맞닥뜨린 게 맞나?
이게 슬픈 상황이 맞는 건가?
이 현실을 언제쯤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을까
내 눈물도 지금 현실도 의심스럽다.
지난 주에 있던 비슷한 일을 교훈 삼아서
미리 근처의 응급 동물 병원들을 파악해 두고 있었으면 어땠을까?
늦장 부릴 시간에 조금만 더 일찍 출발했으면 달랐을까
캐빈을 혼자 케이지에 남겨두고 나오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계속 그 옆을 지키고 있었으면
병원에 가지 않았으면 죽지 않을 수도 있었을까
나름 맛있는 저녁을 먹고 손에 묻은 피자 양념을 씻으러 화장실에 가려다가
화장실 바로 옆의 작은누나 방 앞에서 잠시 멈춰 서 있었는데
작은누나가 그의 방에 안치돼 있는 캐빈 유골함을 보고 싶어서 그런 건 줄 알았나 보다.
들어가서 봐도 된다며 적당한 밝기의 식물등을 켜준다.
손 씻고 작은누나 방에 있는 캐빈을 보러 갔다.
캐빈은 청록색 보자기에 싸여 있다.
벌써 두세 번은 풀어봤는데 다 보고 나서는 꼭 이중으로 다시 묶어 뒀다.
이번에도 이중으로 묶인 보자기를 풀어 주고
캐빈한테 인사를 하고 누나 침대에 눕자며 같이 눕는다.
움직이지도 않고 소리도 안 내는 캐빈이랑 누워서
전부터 이름 대신 부르던 별명으로 에베베베 하면서 불러본다.
그래도 대답없는 캐빈을 쓰다듬고 안아주다가 다시 청록색 이불을 덮어준다.
캐빈 잘 자ㅎ
또 머리가 시키지 않은 눈물이 흘러 나온다면
일부러 어느 작품들 속 우스꽝스럽게 울어 제끼던 불특정 등장인물의 모습과 나를 일치 시킨다.
잠깐 사그라드는 줄 알았는데 그닥 효과는 없다.
급하게 휴지를 뜯어 눈가를 막아준다.
이러면 지혈이 되듯 울음이 금세 멎는다.
이 정도로도 조금 진정이 되는 걸 보면 일부 마음 정리는 된 것 같다.
엄마는 슬픔을 빨리 잊기 위해 눈에 보이는 물건들부터 버려야 된다고 한다.
그 얘기도 맞긴 한데
어차피 머리와 마음엔 계속 남아 있는데 손에 잡히는 흔적을 억지로 지운다고 도움이 되나
차라리 몇 개라도 원래의 그대로 남겨두고 그 상태에서 익숙해지고 무뎌지는 게 더 좋을 것 같은데
슬픔에서 비롯된 아픔은 머지않아 휘발될 감각이다.
인간은 망각이라는 차가운 저주이자 자비로운 축복을 지니고 있다.
내가 망각하고 싶은 건 상실에 대한 아픔뿐이다.
그런데 지금 바로 이 아픔을 피하고 싶진 않다.
슬픔이 무조건 부정적인 감정이라고 나는 생각 안 한다.
이 슬픔도 캐빈의 일부분이라고 믿는다.
캐빈을 조금이라도 지울 시기라기엔 아직은 때가 한참 아니다.
아프다고 하루 온종일 아픈 것도 아니고
멀쩡하게 있다가 혼자 있는 특정 순간들에만 잠깐씩 괴롭고 마는 거니까
하루 중 몇 번쯤은 캐빈을 향해 울 수 있는 지금이 도리어 내겐 위로가 된다.
그러다 다시 괜찮아지고, 일상 생활에 큰 지장은 없는 지금이 나쁘지 않다.
캐빈은 처음부터 끝까지 내게 상처를 준 적이 없다.
영원할 것 같은 소소한 기쁨만을 줬다.
그러니 마음에 남은 캐빈을 아직은 놓고 싶지 않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딱 지금처럼 무덤덤함과 허전함만이 쭉 지속되었으면 좋겠다.
그러면서 웃긴 걸 보면 웃고, 맛있는 걸 먹고 싶어지고
또 기억을 하고.. 전과 비슷하지만 너 없는 또다른 삶을 살아가길
이내 허전함까지 사라지길.
그 날은 우리가 다시 만나는 날이 되겠지만..
우리가 다시 만나는 날이 정말 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