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의미는 삶의 진실과 정의 꽃을 피우기 위해서이다
“한 착한 사람에게 ‘당신은 어째서 신을 사랑합니까’라고 묻는다면,
이런 대답을 듣게 될 것이다.
‘모르겠는데요. 그가 신이기 때문이죠’”
“왜 진실을 사랑합니까?”
“진실을 위해서!”
“왜 정의를 사랑합니까?”
“정의를 위해서!”
“그러면 왜 삽니까?”
“맹세코, 모르겠는데요. 살고 싶으니까!”
살기를 원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삶의 존재 이유다.
20세기 사상가 에리히 프롬의 ‘존재의 기술’에서 읽었다.
삶을 소유 형식과 존재 형식으로 나누어 분석함으로써 어떻게 살 것인가
고민하는 사람들의 필독서가 된‘소유냐 존재냐’의 속편에 해당하는 책이다.
한 사람의 삶의 방식이 소유 쪽을 지향하면 가졌거나 가지지 못한 것에 마음이 쏠리지만, 존재 쪽으로 방향을 선회하면 무슨 행위를 했는가에 집중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의미 있는 존재의 행위는 자신 밖으로 나아가 다른 사람들에게로,
자연, 사상, 예술, 사회의 세계로 관심을 끌게 한다.
관심(interest)이란 단어는 라틴어‘inter-esse’에서 유래했는데,
자기 안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
‘사이에 있다’ ‘저 너머에 있다’는 뜻을 내포한다.
에리히 프롬은 이 관심의 발전을 수영장에 뛰어든 사람을 예시로 설명했다.
수영장을 바라보는 사람이 묘사하는 것은
수영장에 뛰어들어 젖은 상태가 된 사람과 같을 수 없다.
관심의 발전은 외부인으로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뛰어드는 용기를 내는 데 있다는 것이다.
내가 무언가에 관심을 갖고 발전시켜 뛰어든 행위가 꽃으로 피어난다.
‘살아 있는 존재는 무슨 꽃이든 피울 수 있다.’
살고 싶은 마음이 피우는 꽃이다.
임윤찬 피아니스트의 간절한 말에 빚졌다.
피우고 싶은 꽃을 위해 외로운 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자기’라는 관념에 갇히지 않고 자유로워질 순간을 꿈꾸며 새해를 열어 가자.
존재의 의미는 삶의 진실과 정의 꽃을 피우기 위해서이다
살아 있는 존재는 진실의 곷을 피워야 한다
자유로운 존재로 살아야 한다
마음에 부끄럼 없는 삶을 살아야 한다
하늘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이 살게 하라 仰不愧於天 俯不怍於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