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기시대·광저우 한묘 铁器时代 · 广州汉墓
출처: 중국 고고학 소스 : 동북아역사문물연구원
▲ 서한 남월 왕 묘의 '제인' 옥인은 광저우 교외의 진나라 말기부터 동한까지 매장되어 있습니다.1953~1978년 광저우시 문화재관리위원회는 600여 기를 발굴했습니다.1981년 『광저우 한묘(廣州漢墓)』를 출간했습니다.무덤은 전한, 중후기, 후한, 후기의 5기로 나눌 수 있습니다.서한 전기 무덤의 연대는 남베트남 왕국의 전체 시기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사기(史記)와 한서(漢書)에 따르면 진시황은 33년(기원전 214) 영남 지방을 통일하고 계림(桂林), 남해(南海) 등 3군을 두었다.진 2세 때 남해위(南海尉)를 이어받은 조타는 3군에 의해 남월(南越)나라를 건국하고 남월무왕(南越武王)으로 자립했습니다.남해군 치와 남베트남의 도읍지는 번우, 즉 지금의 광저우에 있습니다.
▲ 광저우 한묘 오금명 문호절 남월왕전 5대, 후한 무제 원정 6년(전 111) 남월나라를 멸망시키고 9군으로 분할하여 광저우는 여전히 남해군으로 남아있습니다.전한조기의 묘지는 북쪽과 동쪽 교외에 조밀하게 분포되어 있으며 묘군의 연대가 일정합니다.
동쪽 교외의 화교 신촌 서한묘, 동북 교외의 도금갱 서한묘에는 양분, 신분, 조망지, 신망지 등의 양면 동인이 찍혀 있고 관서 도장이 찍힌 도문이 있어 한초 남월왕국 관리들의 묘역임을 알 수 있습니다.서한 중기 남월나라의 멸망을 상한선으로 하고, 하한은 원제와 성제 사이에 두었습니다.
이 무덤은 주로 동쪽과 서쪽 교외에 분포하며 남쪽 교외에서는 거의 발견되지 않습니다.
전한 후기(왕망신조 포함)의 묘는 대부분 남쪽 교외에 있으며 일부는 묘군으로 집중되어 있습니다.동한의 무덤은 건초 원년(기원년 76)을 경계로 앞과 뒤의 2기로 나뉘어져 있습니다.이 기간 동안 묘지는 교외에 흩어져 있었고 도시와 더 멀었습니다.
이 무덤은 완전하고 체계적이며 자체 시퀀스가 있으며 강한 지역 특성을 가지고 있으며 한나라 광저우 지역 사회의 역사적 발전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재료입니다.
▲ 서한 남월왕묘의 주관실 발굴묘장형제묘실은 모두 수혈식으로 토갱묘, 목곽묘, 전실묘의 3가지 종류가 있습니다.토갱묘의 수는 많지 않고 모두 작은 무덤으로 전한 초기 및 중기에만 볼 수 있으며 묘의 형태는 단순하고 장방형의 수직혈이며 묘도가 없습니다.
덧널무덤은 서한 전기부터 동한 말기까지 그 수가 많고 유행이 길었습니다.묘형의 변천이 비교적 큽니다.전한 전기에는 중·소형의 덧널무덤이 주를 이루었고, 묘실도 직사각형의 수혈이었으며 대부분 묘도가 없었습니다.
몇몇 무덤은 덧널 아래에 작은 돌을 깔거나 허리 구덩이를 팠습니다.그리고 몇 안 되는 분실인 목곽묘는 규모가 조금 크며, 묘는 전실과 관실로 나뉘어져 있고, 묘도는 대부분 경사식으로 되어 있고, 일부는 계단식으로 되어 있습니다.서한 중기의 덧널무덤은 모두 직사각형의 수직혈로 비탈진 묘도를 갖추고 있습니다.
후한 말기에는 평면이 십(十)자 모양인 다실목곽묘가 나타나는데, 밑부분은 높낮이 2단으로 되어 있고, 주실 앞쪽의 횡당은 높게 솟아 있고, 한 단계 아래로 떨어져 있는 형태도 동한 후기에 이어집니다.전실묘는 늦게 출현하여 동한 전기에 시작되었으며, 초기에는 직권정(直券顶)의 소형 전돌묘가 주를 이루었고, 후기에는 규모가 비교적 커서 횡직권정(横直權顶)과 궁공정(穹空顶)의 합권정(合券顶)의 두 종류가 있으며, 후자는 흔히 볼 수 있으며, 건초 원년(建寧)과 건녕(建寧) 3년(建寧) 등 연대의 벽돌문이 있어 연대가 명확합니다.
묘실의 평면은 T자형, 중자형, 십자형, 廾자형 등이며 복도, 전실(또는 횡전당), 이실, 관실, 후감 등으로 나뉩니다.어떤 무덤은 쌍관실이나 삼관실이 있고 여러 사람이 합장하는 현상이 나타나기도 합니다.묘벽돌은 주로 평면이며 기하학적 무늬나 연호는 몇 개 인쇄되어 있습니다.
▲ 서한 남월왕 묘, 서이실 발굴 관곽은 대부분 썩어 없어졌습니다.전한전기의 덧널방 구조는 우물덧널식, 봉문식, 상하복층, 전후분실의 4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북쪽 교외의 마붕강 1호분은 목곽 구조가 특이한데, 외곽은 우물곽식으로 짜여져 있고, 덧곽 안 한가운데에는 사면이 벽문인 목조 '관방'이 있고, '관방'과 덧곽 벽 사이에는 횡방과 널빤지로 위아래 2단의 회랑을 만들고, 그 양쪽에 계단식 계단식으로 오르내리기를 하였습니다.
전한 중기와 후기의 덧널무덤은 사람의 거처를 본떠 만든 것으로, 앞쪽 끝은 전실, 뒤쪽 끝은 관실, 아래쪽은 기물실이라는 2층 분실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덧널실 입구는 일반적으로 수직 나무 기둥으로 닫혀 있습니다.동한의 목곽은 가짜 2층 분실로 간소화되었습니다.
목관은 대부분 장부와 장부로 접합되고 관못은 덜 사용되며 일반적인 반카누 목관, 즉 관 본체는 큰 나무 조각으로 파냅니다.관 내부에는 붉은 칠이 있고 외부에는 검은 칠이 있습니다.
▲ 서한 남월왕묘의 주인인 관곽 모형 부장품은 부장품 중 토기가 가장 많고, 동기가 그 뒤를 잇고 있으며, 옻칠과 목기는 잘 보존된 목곽묘 몇 기에 불과합니다.전한조 도기의 조합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는데, 첫 번째 범주는 항아리, 캔, 삼족조, 합조, 삼족조, 제관 등 지역 특색의 기물만 있고, 묘의 30%가 이러한 조합에 속하며, 묘주는 지역의 소수 민족일 수 있으며 두 번째 범주는 딩(丁), 합(盒), 호(壶), 프랑슘(Frang)으로 구성된 한문학적 기물이며 묘의 70%는 이러한 조합의 도기 또는 첫 번째 및 두 번째 범주의 조합이 공존합니다.한족 외에도 묘주에는 소수의 현지 민족이 있어야 합니다.
▲ 광저우 한묘 금동슬 장부
▲ 광저우 한묘 판유리 동메달 서한 전기 도자기는 대부분 고화질의 회백태 경도이며, 일부는 남방 초기의 청유 계통에 속합니다.무늬는 스크래치 무늬와 두드리는 기하학적 스탬프 무늬가 주를 이룹니다.전한 중기까지 주요 지역 특색의 첫 번째 유형의 기형은 사라지고 두 번째 유형의 기형도 크게 감소했으며 묘지, 창고, 囷, 우물, 스토브 및 기타 모형 기물의 절반이 묻혔습니다.
전한 후기와 전한 시대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유형의 모형 명기는 더 일반적이며 돼지, 개, 소, 양, 닭, 거위 및 기타 가금류 및 도자기의 가금류 및 가축이 점점 더 많아졌습니다.이러한 변화는 한나라 무제 이후 날로 발전하는 장원 경제의 반영이어야 합니다.
▲ 광주한묘조옥패
▲ 광주한묘 용봉문중환옥패묘에서 출토된 건축 모형은 영남지방의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전한 중기의 무덤에는 간란식 도기집이 부장되어 있고, 위층은 누각으로 되어 있고, 아래는 가축을 기르는 울타리입니다.이런 건란식 도기집은 동한 전기까지 유행했습니다.
동한 초에는 곡척식과 누각식의 두 가지 새로운 형식이 있었습니다.동한 후기의 대표적인 것은 삼합식 도기집과 성곽 모형입니다.삼합식의 앞쪽은 횡당이고 뒤쪽은 2개의 방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뒤뜰은 울타리로 사용됩니다.
곡자형, 누각형, 삼합형의 도자기 집에는 모두 곡물 가공에 종사하는 도자기 용형이 있으며 일부는 절굿공이를 들고 절구를 찧고 뒤뜰에는 가금류와 가축이 있습니다.이를 통해 당시 농업 및 부업 산업의 번영을 엿볼 수 있습니다.성의 사방은 높은 담으로 둘러싸여 있고, 네 귀퉁이에는 각루가 있고, 앞뒤의 대문에는 문루가 세워져 있고, 입구에는 집병무사가 지키고 있습니다.
성곽에는 보통 택서를 상징하는 두 개의 건물이 배치되어 있는데, 그 가운데는 단좌한 주인을 등에 업고 허리를 굽히거나 무릎을 꿇고 절을 하는 등의 이역들이 있어 당시 광주지역의 호종대성(豪宗大姓)이 사부곡(私部曲)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반영하고 있습니다.무덤에서 출토된 창고와 囷는 모두 습기를 방지하기 위해 여러 기둥에 높이 올려진 건조 난간 구조입니다.
▲ 광저우의 한묘인 번우(蕃宇)의 퉁딩(銅丁)목곽묘는 칠기가 부장되는 경우가 많지만 보존이 쉽지 않습니다.전한 초기의 칠기는 대부분 목태로 귀컵, 접시, 상자가 일반적이며 채색 및 장식은 창사 서한 무덤에서 출토된 칠기와 유사합니다.남베트남의 공식 산업 작업장의 표시인 '번우'라는 글자가 찍힌 긴 원형 페인트 상자가 있습니다.
▲ 광저우 한묘의 구리 프랑슘 광저우 한묘에서는 구리 거울이 자주 나옵니다.서한 전기에는 소경, 사산자경, 용봉문경, 반리문경 등의 초식 거울이 있었고, 서한 중기 이후의 소명경, 규칙경 등은 기본적으로 중원 지역과 동일했습니다.
초기 서한의 대규모 무덤에는 솥, 주전자, 프란슘, 鍪, 접시, 숟가락 등이 있는 청동 용기가 있으며 중원의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또한 꼬임형 쌍귀 鍪, 접시형 솥, 쌍귀걸이 발 펀칭 포트 및 귀걸이 배럴이 있으며 후자의 두 가지 조각은 남서부 지역의 같은 기간 동안 구리 드럼 장식과 일치하며 이러한 유기는 현지에서 주조되어야 합니다.
▲ 광저우한묘 회화동경
▲ 광저우한묘 연호룡문동경묘에서는 총 10여 점의 배 모형이 발견되었으며 2점이 잘 보존되어 있습니다.서촌황제강 1호분에서 출토된 목선 1점은 길이 80.4cm, 중앙에 2개의 선실이 있고, 다른 1점은 동한 말기의 벽돌실 무덤에서 나온 것으로 길이 54cm, 중앙에 2개의 선실이 있으며, 꼬리에는 망루가 있고, 양 현에는 삿대질 통로가 있으며, 뱃머리에는 현당 3개의 노틀이 있습니다.
뱃머리는 닻을 올리고, 선미에는 키를 설치했으며, 선내와 통로에는 10여 개의 용(俑)이 있습니다.여객과 화물을 혼재할 수 있는 비교적 큰 규모의 내륙항선으로서 당시 조선기술의 발달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 동한누각도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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