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정맥 제17구간 고헌산(高獻山 1,032.8m)
산행일자 : 2007년 11월 18일(당일산행)
산행장소 : 아래상목골도로~전망바위(535.1m)~윗상목골안부~680m봉페헬기장~700m봉~700.1.m봉(언양303삼각점)~소호고개~철탑no30~638.5m봉~780m봉(쩍바위)~800m봉~855.9m~870m봉(고래등바위)~백운산(892m)방화선시작점~소호령(670m)~동봉(920m 석탑, 산불감시초소)~고헌산(1032.8m)~서봉(1034.8m)~방화선지대끝점~외항재(550m)
산행모임 : 대전한겨레산악회(29명)
산행날씨 : 맑음(청명한 가을 하늘과는 다르게 영하에 날씨속에 살을 에는 듯한 칼바람)
산행거리 및 시간 : 19km, 6시간 33분
봄 날씨 처럼 온화하던 날씨가 갑자가 영하의 날씨를 보이며 차가운 바람까지 분다. 샛노란 빛을 자랑하던 가로수 은행나뭇잎이 살을 에는 듯한 차가운 바람을 못이겨 바닦에 떨어져 온잦 먼지와 차량이 뿜어대는 매연을 뒤집어쓴 채 이리저리 나뒹굴더니샛노란 빛은 어느덧 까칠한 얼굴의 검버섯을 연상케 한다.
볼을 에는 듯한 차가운 바람이 불어오는 용문역에서 승선한 정맥호는 여느 때와 다름 없이 시민회관과 원두막을 경유해 새벽길을 가르며 항해하더니 갑자기 속도를 늦춘다. 고속도로에서 30km 이하로 속도을 늦추는게 이상하게 생각되어 창밖을 내다보니 1톤 화물트럭은 탑이 완전히 손상된 채 갓길에 나뒹굴고 대형 탱크로링은 중앙불리대를 드리받고 사선으로 길게 널브러져 있다.
고속도로에서 아니 모든 도로에서의 졸음운전은 자칫 대형사고를 초래한다는 것을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교통사고를 뒤로하고 항해를 하던 정맥호는 어느덧 경주시 산내면에서 아랫상목골 안부로 이어지는 임도로 접어든다. 작은 마을과 개천 그리고 골짜기를 넘나들며 굽이굽이 이어지는 임도를 따라 위험한 고개를 부리던 정맥호는 08시 50분에 아랫상목골 안부에 안전하게 정박해 닻을 내린다.
08시 53분 아랫상목골 안부
아랫상목골 안부에 묘한 웃음을 지으며 서 있는 장승 머리 위로 눈이 시리도록 푸른 쪽빛 가을 하늘에는 흰 구름이 마치 수채화를 그리기 위해 풀어놓은 물감이 물속에서 퍼져 나가는 모습을 하고 있다. 2주전 단석산 산행을 마치고 이곳에서 졸졸 흐르는 시냇물에 알탕을 한 기역이 지금도 생생한데, 정맥호 안에서 몸을 움추리고 이동하느라 굳었던 몸을 최영구조대장인의 구령에 맞춰 준비운동을 하고 있는 회원님들 얼굴에서는 어느덧 붉은 홍조가 띈다. 고갯마루를 넘는 살을 에는 듯한 차가운 바람이 회원님들 볼에 붉은 복사꽃을 피운 것이다.
09시 02분 기념촬영
천하대장군(天下大將軍)과 지하여장군(地下女將軍) 등 여러 장승들이 내려다보는 고갯마루에서 산행을 하기 전 기념촬영을 해 본다. 요즘은 정맥호 선장 박종구님이 산행전 기념촬영을 대신해 주는 바람에 내 모습도 단체사진에서 찾아 볼 수 있다.
09시 23분 전망바위(535.1m)에서
아랫상목골 안부에서 시작된 정맥 마루금은 잡목과 떡갈나무 특히 회원님들의 바지 가랑이를 잡아끄는 산딸기 나무가 우거진 능선을 따라 이어지는데 청우농산 관광단지개발을 위해 닦아 놓은 임도는 능선 서쪽에서 정맥 마루금과 나란히 잇따른다. 완만하게 이어지던 능선이 535.1m봉을 만나 높이를 더하는가 싶더니 암릉이 어어지고 이내 전망바위가 나온다. 그 전망바위에 올라 700.1m봉을 조망하다 보니 위 사진에서 처럼 700.1m봉 뒤로 쩍바위 고래등바위를 지나 백운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아스라이 바라다 보인다.
09시 28분 윗상목골 안부
청우농산 관광단지개발지구가 다하는 안부에는 윗상목골로 이어지는 임도가 서쪽으로 나있고 방화선인지 임도인지 분간하기 힘든 임도가 마루금을 따라 이어진다. 임도를 따라 이어지던 정맥 마루금은 페힐기장이 있는 봉우리 중턱에서 좌측(동쪽) 숲길로 이어지는 산행로를 따라 봉우리까지 잇따른다.
09시 53분 두 번째 페헬기장(680m)
아랫상목골 안부에서 숲길로 접어드니 가파르게 고도를 높이는 비탈에는 차갑게 불어오는 서풍에 날린 가랑잎이 정맥 마루금에 수북이 쌓여 가파른 비탈을 힘들게 오르는 회원님들을 더욱 힘들게 만든다. 기온이 영하로 떨어진 탓에 살짝 얼어있는 지표면에 수북이 쌓인 가랑잎을 무심코 밟으면 자칫 미끄러지기 쉽기 때문에 비탈길을 따라 걸음을 옮길 때는 주위를 기울려야만 한다.
30여분 가량의 가파른 오름이 다하는 지점에 있는 페헬기장을 지나면 이내 두 번째 페힐기장이 나온다. 두 번째 헬기장도 첫 번째 헬기장과 마찬가지로 위 사진에서 처럼 잡목과 덤불로 우거져 있어 그 흔적을 찾으려면 주의를 기울어야만 한다.
10시 15분 다리 쉼
680m봉을 지나 제법 가파른 내리막 능선을 따라 한 차례 발품을 팔면 얼굴을 에는 듯한 서풍이 소나무숲을 만나 잠시 기세가 한 풀 꺽이는 소나무숲 안부가 나온다. 소나무숲 안부에 모인 회원님들은 선 채로 잠시 다리 쉼을 하고는 이내 700.1m봉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10시 20분 700.1.m봉
소호고개를 10여 분 거리에 둔 700.1m봉에 서니 '언양 303, 1982 재설'이라 씌어진 삼각점이 반기는데 봉우리 정수리에는 떡갈나무와 잡풀만 무성하고 정수리 다운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한편 이 봉우리는 경북 경주시 내남면과 경남 울주군 두서면 남 북으로 가르는 경계에 솟아 있는 봉우리이다.
10시 30분 소호고개(태종고개)
경북 경주를 뒤로하고 경남 두서면 소호고개(태종고개)로 가파르게 이어지는 내리막 비탈을 따라 내려서니 서쪽으로 임도가 시원하게 뚫려 있다. 위 사진에 보이는 임도는 정맥 마루금 우측(서쪽)을 따라 백운산 기슭으로 이어져 소호리를 북에서 남으로 가르며 소호령까지 이어진다. 한편 동쪽으로 나있는 임도는 두서면 내와리 '경주납석광산'으로 이어진다.
납석(蠟石)은 기름 같은 광택이 있고 만지면 양초처럼 매끈매끈한 암석과 광물을 통틀어 이르는 말로 치밀한 비결정질로서 내
화물이나 도자기 따위를 만드는 데 쓰이는 돌을 말하며 흔히 '곱돌'로 알려져 있다. 김유신 묘역에서는 납석(蠟石·곱돌)으로 제작된 돼지상이 출토되었는데, 김유신 무덤 둘레의 땅에 묻혀 있던 십이지신상 중 하나로 엄니가 있는 돼지가 갑옷을 입고 오른손으로 칼을 들고 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 옛날에는 돼지가 사악한 기운을 물리친다는 의미에서 이런 부장품을 넣었다고 한다.
경주에는 납석(蠟石)도 유명하지만 남산에서 생산된 수정(水晶)을 가공해 만든 경주남석(慶州南石) 또한 유명하다고 하겠다. 경주남석으로는 만든 안경을 바탕으로 한국사(史)에 기록된 글을 찾아보면, 黃株錫(황주석)의 '臣齊全書'(신제전서)에 기록된 '東京水晶眼鏡銘(동경수정안경명)'을 상고하면 임진왜란 직후에 국내에서 안경이 제작되고 있었음이 증명된다.즉 慶州府尹 閔機(경주부윤 민기)가 1630년경에 경주에서 만들어진 南石眼鏡(남석안경)을 착용했다는 것이다.'臣齊全書'(신제전서)는 金誠一(김성일) 의 안경과 함께 우리나라의 안경 기원 시기를 소급해 잡는 데 결정적인 자료가 된다.
1880년경에는 牛角(우각)으로 안경테를 만들어 섰는데 牛角(우각) 안경테의 제작에는 암소뿔이 주로 사용되었고 뿔 하나로는 보통 한 쌍의 테를 만들수 있다. 뿔을 오랫동안 물에 담궈 편 후에 황줄이라는 기구를 사용해서 표면을 고르게 만들어 평평해진 표면위에 안경본을 얹어 오려내고 활비비,실톱,끌,칼 등의 도구로 안경테를 만든다. 형이 완성된 것은 보드라운 페이퍼로 문지르고 숫돌가루나 재를 물에 축여 발라서 광을 냈다.
南石眼鏡(남석안경)의 가격은 엄청나게 비쌌다. 미국인 선교사 제이스 게일이 '코리언 스케치'에 수록한 일화에 의하면 南石眼鏡(남석안경)은 미국돈으로 15달러나 주어야 구입할 수 있었다고 한다. 게일은 또 이같은 거금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양반들은 이를 구입 못해 안달이었다고 기록하면서 동양인들의 허세에 찬 불합리한 생활태도를 꼬집었다. 그런데 안경의 제작 기술이 발전하면서 南石眼鏡(남석안경)이 대량 생산되자 가격도 하락했는데, 1930년대 매우 번창했던 慶州 保眼堂(경주 보안당)의경우 1939년도에 최고 80원에서 최저 2원짜리까지 다양한 제품이 구비되어 있었다고 한다.
10시 33분 700.1m봉을 바라보며
소호고개를 지나 638.5m봉으로 오르는 길은 넓은 방화선으로 중간중간에 석축이 쌓여 있는게 인상적이다. 위 사진은 638.5m봉으로 오르는 길에 소호고개 너머 700.1m봉을 돌아보며 담은 사진으로 부드러운 정수리와 간간이 눈에 띄는 낙엽송(落葉松 일본잎갈나무)이 가을을 지내며 아기 똥처럼 누런 빛을 띠는 잎으로 옷을 갈아 입은 모습이 아름답게 다가선다.
10시 40분 쩍바위
685m봉에 있는 NO,30번 철탑을 근처를 지나는데 바람이 지나는 소리인지 아니면 송전선에 전기가 흐르는 소리인지는 모르지만 마치 휘파람을 부는 것 같은 소리가 연신 들려 온다. 송전철탑을 뒤로하니 이내 바위군락이 나타나고 바위 중앙이 '쩍'하고 갈라진 '쩍바위'가 나온다.
11시 04분 780m봉
완만하게 이어지던 능선이 780m봉을 만나 가파르게 고도를 높이는 비탈에는 억새와 철쭉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마지막 억새꽃이 바람에 날리는 모습을 바라보며 힘든 발품을 팔아 정수리에 오르면 800m봉~855.9m(전망바위)~870m봉(고래등바위)~백운산으로 이어지는 암장과 암릉 한 눈에 들어온다.
11시 24분 고헌산(高獻山 1,032.8m)을 조망하며
780m봉을 지나 전망바위에 서니 부드러운 능선을 자랑하는 고헌산이 소호마을 너머로 병풍을 펼쳐 놓은 듯이 다가선다. 고헌산 능선에서 우측 제일 높은 봉우리가 서봉(西峰 1,034.8m)이고 소호마을에서 시작된 능선이 가파르게 고도를 높이다 좌측 능선 끝에서 만나는 봉우리가 삼불감시초소와 석탑이 있는 동봉(東峰 920m)이다. 고헌산 주봉(主峰 1,032.8m)은 서봉과 동봉 사이 능선에 솟아 있으나 사진으로는 잘 보여지지 않는다.
아래 사진은 경상북도 월성군과 청도군 사이에 운문면과 경주시 산내면의 경계에 우뚝 솟은 문복산(文福山 1,013.5m)을 담은 사진으로 두 번째 산그리메 우측에 우뚝 솟은 봉우리가 문복산 정수리이다. 문복산은 낙동두류산(속칭 영남알프스)의 1,000m 이상되는 8개의 봉우리중에서는 가장 낮은 봉우리으로 가지산 귀바위에서 북쪽으로 뻗은 능선의 마지막에 지룡산(地龍山 664m)이 솟아 있고, 동쪽으로 뻗은 능선에는 고헌산(1,032.8m)이 솟아 있으며, 그 중간 능선에 문복산(1,013.5m)이 솟아 있다. 한편 문복산 정수리 바로 아래에서는 일명 '코끼리바위'가 웅장한 암장을 과시하며 그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문복산 능선 앞 첫 번째 산그리메 기슭에는 낙엽송(落葉松 일본입갈나무)이 황금빛 옷으로 갈아 입고 늦가을의 옷자락을 부여잡고 있는 듯하고, 그 아래 골짜기에는 소호마을이 고즈넉히 자리잡고 있다. 한편 소호마을 좌측에서 골짜기를 따라 이어지는 도로는 외항재를 넘고 있다.
11시 29분 삼강봉(三江峰 845m)
조망바위에서 고헌산과 문복산을 조망하고 떡갈나무와 진달래 터널을 지나니 호미기맥이 분기하는 삼강봉(三江峰)이 나온다. 삼강봉에서 분기하는 호미기맥(虎尾岐脈) 은 천마산, 치술령, 토함산, 함월산, 묘봉산, 삼봉산, 조항산, 금오산, 공개산, 고금산을 거쳐 호미곶까지 도상거리 약98.3km에 이르는 우리나라 동쪽끝 산줄기 이다.
'삼강봉(三江峰)' 이란 이름은 삼강봉 봉우리 정수리에 떨어지는 빗물이 지세를 따라 울산 태화강, 경주 형산강, 그리고 낙동강으로 각각 갈라져 흐르는 분수령이기에 붙여진 이름으로 삼강봉(三江峰)의 세 강(江)은 대부분의 산행 관련 온라인 사이트에는 호미기맥의 분기점이 백운산이라 표기돼 있다. 삼강봉을 백운산의 한 봉우리로 간주한 것이다. 이에 따르면 백운산에는 4개의 봉우리가 있다. 소호고개 방향의 우뚝 솟은 855봉이 첫 번째, 이정표가 서 있는 지점이 845봉으로 두 번째, 정상석이 위치한 주봉이 네 번째, 그 사이의 암봉이 세 번째 봉우리다.
아래 사진은 한겨레산악회 어르신들을 담은 사진으로 좌측에서부터 김일석님, 손중호님, 송영래님 이시다.
11시 36분 870m봉(고래등바위)
백운산 정수리 아래 고래등바위에서 고헌한을 조망하며 앞으로 걸어야할 능선과 지세를 살피며 담소를 나누는 회원님들을 담아 보았다.
11시 49분 백운산 전망바위
진달래 터널을 만들며 가파르게 고도를 높이는 마루금을 따라 한 차례 발품을 팔아 백운산 조망바위에 오르니 사위로 펼쳐지는 풍광이 눈을 사로잡는다. 특히 지금까지 지나온 능선과 봉우리들이 직선으로 혹은 갈지(之)자를 그리며 다가선다. 영하로 뚝 떨어진 수은주 때문인지 잘 작동되지 않는 카메라를 달래가며 조망바위에 모여 있는 회원님들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백운산 정수리 빗돌로 발길을 옮긴다.
11시 50분 백운산(白雲山 892m)
백운산 정수리에 오르니 빗돌 두 개와 푯말 하나가 남북으로 나란히 세워져 있는데 빗돌 하나와 푯말에는 해발고도를 901m로 나머지 빗돌 하나에는 907m로 씌어져 있는게 흥미롭다. 하지만 산행하며 준비한 1/50,000 지형도에는 '892m'라고 씌어져 있어 어느 것을 기준으로 삼아야 할지 모르겠다.
백운산 정수리 빗돌 옆에 앉아있는 회장님의 옷 차림새를 보면 숲재에서 소호고개을 지나 이곳 백운산까지 종주하는 동안 서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얼마나 차가웠는지를 짐작케 한다. 아래 사진은 폭은 그리 넓지 않지만 남북으로 길게 펼쳐진 백운산 정수리 곳곳에서 회원님들이 차가운 바람을 피해 맛있는 점심을 나누는 모습을 담은 사진이다.
12시 45분 후미 일행과 함께
백운산 정수리에서 20여 분을 기다려 똘이장군님이 오늘 산행에 불참하는 바람에 구조임무에다 후미대장 임무까지 떠맡게된 최영구조대장님을 기다려 30여 분 동안 맛있는 점심을 나누고 소호령으로 발길을 옮기려다 정수리 빗돌에서 기념촬영을 해 보았다.
백운산 정수리 빗돌을 잡고 있는 구조대장님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1,988년 국내에 개봉된 '로보캅(Robocop)'이 떠 오르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아마도 머피(피터 웰러)가 범인들을 쫓다 부상을 당해 뇌사상태에 빠지는 바람에 사니보그로 재 탄생하며 머리털을 모두 잃은 모습이 닮아서가 아닐까....ㅎㅎㅎ! 한편 고바우님은 나보다 높은 곳에 위치해 사진을 찍고는 "윗쪽 공기가 시원하더라" 라는 농담을 던지셨다.
13시 03분 방화선
백운산에서 소호령으로 향하는 산행로는 아니 692.7m봉을 넘어 소호령을 지나 고헌산 동봉(920m)에 다달을 때까지 방화선인지 차도인지 분간하기 힘든 임도가 잇따른다. 애당초 이 임도는 산불이 능선을 너머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 닦아 놓은 길 이나, SUV(Sports Utility Vehicle ) 차량을 험준한 산악도로에 맞게 개조해 산악 레이스를 즐기는 사람들이 무분별하게 드나드는 바람에 보기 흉하게 바뀌고 말았다.
또한 많은 차량이 왕래하는 동안 파해쳐진 흙이 빗물에 쓸려 내려가는 바람에 산행로에는 크고작은 돌들이 허연 속살을 드러내고 있어 산행하는 이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함과 동시에 자칫 방심하면 미끄러져 넘어지거나 발목을 다치게 만들고 있다. 더구나 허연 속살을 드러낸 가파른 비탈에 폭우가 내릴 경우 산사태가 일어날 우려도 있다고 생각하니 위험하기 짝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백운산과 고헌산 임도 관리책임을 지고 있는 관할 관청은 방화선인지 차도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 임도의 용도를 확실하게 규정한여 용도에 맞게 관리를 해야 할 것이다. '백두대간이나 정맥을 종주하는 종주자들이 자연을 파괴 한다'고 들 하지만 산 허리를 휘감아 돌며 정수리까지 이어지는 임도나 능선을 따라 무분별하게 나 있는 임도를 보고 있노라면 과연 자연 경관과 생태계를 파괴하는 주체가 무엇인지를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13시 17분 692.7m봉에서
너덜을 연상케 하는 가파른 내리막 비탈에서 넘어지지 않기 위해 갈지(之)자를 그려가며 비탈을 내려와 소호령(670m)을 지나 삼각점이 박혀있는 692.7m봉으로 이어지는 오르막 비탈이 나오는데 임도를 걷는게 아니라 마치 가파른 암벽이나 암릉 위를 걷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훼손이 심각하다.
위 사진 두 장은 692.7m봉에서 백운산과 정수리로로 이어지는 능선을 그리고 고헌산과 역시 정수리로 이어지는 능선을 담은 사진으로 심하게 훼손된 임도가 사진에서도 한 눈에 들어올 정도이다.
13시 55분 가파른 자갈길
고헌산 동봉(東峰 920m)으로 이어지는 가파른 오르막 비탈 임도에는 커다란 바위와 돌이 바닦에 깔려 있어 마치 너덜을 오르는 듯 하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도록 힘든 오르막 비탈을 오르다 보면 동봉 바로 아래에 산행객들이 지나며 하나 둘 쌓아 올려 만들어진 석탑을 만날 수 있다. 석탑 옆에 서면 소호령이 까마득하게 내려다 보이고 692.7m봉에서 고헌산 정수리로 이어지는 능선이 한 눈에 들어온다.
아래 사진은 동봉(920m)을 등지고 있는 고바우님을 석탑과 함께 잡은 사진이다.
위 사진은 920m봉에 오르는 길에 울주군과 그 너머 울산을 담은 사진이고 아래 사진은 고헌산 동봉에서 언양읍으로 흘러 내리는 능선과 언양읍 일원을 담은 사진이다.
14시 07분 고헌산 동봉(東峰 920m)
692.7m봉에서 50여 분 동안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허벅지 근육이 피로를 느껴 간간이 뭉처오는 것을 느끼며, 힘들게 오른 고헌산 동봉(東峰 920m)에는 두 개의 커다란 석탑과 산불감시초소가 자리하고 있다. 사람이 없을거라 생각하고 무심코 산불감시초소를 두드리니 초소 안에서 산림청 제복은 갖춰 입은 60대로 보이는한 어르신이 나와 고헌산 주변 산들과 산기슭에 고즈넉히 자리잡은 마을에 관해 소상히 얘기해 주신다.
고헌산 동봉(東峰 920m)에 있는 커다란 석탑 뒤로 울주군과 언양읍 그리고 그 너머로 울산시가 아래 사진에서 처럼 아스라이 바라다 보이는 것으로 봐서 부산시도 얼마 남지 않았을 거라 여겨진다.
14시 13분 고헌산 주봉과 가지산(加智山 1,240m)을 바라보며
고헌산 동봉(東峰 920m)에서 주봉(主峰 1,032.8m)으로 이어지는 능선 안부에서 지나는 산행객들이 저마다 마음속 바람을 기원하며 정성껏 하나씩 쌓아 올렸을 거라 여겨지는 석탑이 자리하고 있는 고헌산 주봉(高獻山 主峰 1,032.8m)을 카메라에 담는데 봉우리 너머로 가지산(加智山 1,240m)이 모습을 드러낸다.
14시 16분 고헌산(高獻山 1,032.8m)
울산광역시 울주군 상북면과 언양읍 두서면 경계에 있는 고헌산(高獻山 1,032.8m)산은 태백산맥의 남단에 솟아 있으며, 주위에는 천황산·능동산·신불산·취서산 등이 있다. 산정수리부는 평탄하며, 산 능선은 경상북도 경주시 산내면 지역까지 길게 뻗어 있다. 북사면에서는 밀양강의 지류인 동창천이, 동사면에서는 태화강의 지류인 삼정천이 발원하며, 남·서쪽은 하천들의 개석으로 곡저분지를 이루고 있다. 산기슭에는 다개·인보 등 소규모 저수지가 있으며, 삼정천 하류에는 울산광역시의 용수공급원인 사연호가 있다.
고헌산 정수리에서 신불산(神佛山 1,209m)을 조망하며....
고헌산 정수리에서 가지산(加智山 1,240m)을 조망하며....
14시 37분 돌무더기를 기념 삼아....
고바우님과 고헌산 정수리에서 최영장군님을 비롯 후미 일행을 기다리고 있으려니 아침부터 살을 엘듯이 불어오던 차가운 바람이 더욱 기세를 부려 배낭에서 고어자켓을 꺼내 걸치니 한결 따스한 느낌이다.
고헌산 남 서쪽으로 가지산(加智山 1,240m)에서부터 신불산(神佛山 1,209m)까지 이어지는 아름다운 산그리메를 조망하며 고바우님과 30여 분 동안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있으려니, 멀리 동봉(東峰 920m)을 넘어오는 최영장군님이 보인다. 최영장군님에게 뛰어 오라고 으름장을 놓고 나서 최영장군님이 천천히 오고 싶어서가 아니라 오늘 한겨레 산행에 오랜만에 함께한 미자님의 컨디션이 좋지 않기 때문이라 생각하니 괜시리 미안한 생각이 든다.
14시 43분 서봉(西峰 1,034.8m)을 향해
고헌산 정수리 돌무더기에 마지막으로 도착한 최영장군님과 미자님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서봉(西峰 1,034.8m)을 향해 발길을 옮기니, 위 사진에서 보듯 주봉에서 동봉으로 이어지는 정맥 마루금 좌 우측 사면에 군락을 이룬 진달래가 마치 휜 눈을 뒤집어 쓰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한편 정맥 마루금은 서봉(西峰 1,034.8m) 정수리로 이어지는 암장을 비켜 동쪽 사면으로 나있는 산행로를 따라 서봉을 우측으로 휘감아 돌아 오른다.
아래 사진은 서봉으로 향하다가 아쉬운 마음에 고헌산 주봉(高獻山 主峰 1,032.8m)을 한 번 더 돌아보며 담은 사진인데, 우측에 우뚝 솟은 봉우리가 주봉이고 좌측 끝 산불감시초소와 석탑이 아스라이 보이는 봉우리가 동봉(東峰 920m)이다.
14시 46분 서봉의 석탑(石塔)
암릉과 암장으로 된 고헌산 서봉(西峰 1,034.8m)을 너머서니 문복산(文福山 1,013.5m)과 코끼리바위가 손에 잡힐듯 한데, 서봉 북쪽 능선에는 크고 작은 석탑이 한 곳에 모여 이색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마치 내가 동경하는 티벳의 산에 오른 착각에 빠지게 한다.
14시 55분 소호마을과 백운산을 조망하며
서봉에서 외항재로 발길을 옮기며 오전에 지나온 소호고개에서 백운산(白雲山 892m) 정수리로 이어지는 능선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소호고개에서 백운산 정수리를 지척으로 생각했으나 막상 정수리를 밟기 까지 1시간 20분이나 소요된 이유를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위 사진에서 보듯 소호고개에서 백운산 정수리까지 이어지는 능선에는 가파른 오르막 비탈과 여러개의 봉우리가 잇따라 있음을 알 수 있다. 암장과 암릉이 잇따르며 굴곡을 보이는 백암산 능선과는 달리 백암산 산기슭에 고즈넉히 자리잡은 소호마을은 평화롭기만 하다.
15시 12분 외항재(550m)
고헌산 서봉에서 방화선에 넓게 깔려 있는 가파른 자갈길은 한동안 잇따른다. 자갈에 미끄러져 넘어지지 않기 위해 조심조심 걸음을 옮겨 방화선이 끝나는 지점이 이르니 산행로 주변으로는 신갈나무와 소나무 군락지나 나타난다. 백운산에서부터 연이어 방화선을 따르다가 오랜만에 소나무숲을 걸으니 차갑게 불어오던 바람도 잦아들고 딱딱 하기만 하던 산행로에 가랑잎과 솔잎이 수북이 쌓여 발과 다리의 피곤함을 덜어준다.
외항재에 다달아 마지막으로 낙엽송(落葉松 일본입갈나무) 군락지를 벗어나니 소호마을에서 외항재를 넘어 외항마을 가르는 921번 지방도와 만나는 도로가 고갯마루를 넘는다.
정맥 마루금은 외항재에서 서쪽 외항마을로 이어지는 도로를 따르지 않고 위 사진에서 보이는 좌측 석축 위로 이어져 719.3m봉 8부 능선 삼거리까지 오르막 능선을 한 차례 오른 다음 삼거리에서 좌측으로 나있는 마루금을 따라 급하게 외항마을로 고도를 낮추며 이어진다.
15시 38분 산행 날머리
719.3m봉 삼거리에서 가파른 내리막 비탈 오솔길과 묘지를 지나면 위 사진에서 처럼 조경공사가 한창인 산행 날머리가 나온다.
15시 38분 고헌산 서봉(西峰 1,034.8m)을 돌아보며
산행을 마치고 정맥호가 정박해 있는 외항마을 921번 지방도로 들어서기전 고헌산 서봉 서쪽 사면을 돌아보며 오늘 산행을 마친다.
오늘 산행은 비록 살을 에는 듯한 차가운 바람이 불어오는 바람에 힘은 들었지만 여러 회원님들과 함께 할 수 있어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또한 고헌산에서 12월 2일에 산행할 가지산도립공원 일원의 멋진 풍광을 조망 할 수 있어 즐거웠습니다. 다음 산행하는 날까지 모든 회원님들께 즐겁고 행복한 일만 가득하길 기원합니다.
*** 글을 읽으시며 혹시 다른 의견이나 오류가 있으면 꼬~옥 댓글을 남겨 주세요. 감사합니다. ^*^ ***
2007년 11월 28일
강일구
첫댓글 이번 구간에는 우리나라에 제일 많이 있다는 백운산(901m)이라는 이름의 산이 있군요, 높이가 포천에 있는 백운산(904m)과 거의 비슷하네요. 고헌산에 올랐으니 이제부터 운문령, 가지산, 능동산, 간월산, 신불산, 영축산으로 이어지는 꿈의 영남알프스에 들어서나 봅니다. 작은악마님이 동경하는 산이 티벳의 산이군요^^ 그곳의 산은 어떤 모습인지 궁금하네요~ 다음 구간이 기대가 됩니다, 점점 추워지는 날, 늘 안전하게 즐산하시길...
티벳을 여행한 한 여행객이 쓴 책을 읽고 티벳을 동경하게 되었는데 아직 가보지는 못 하였답니다. 기회가 주어지면 꼭 한 번은 가보고 싶은 곳이랍니다. 저녁노을님 차가운 날씨에 늘 건안하시고 즐거운 산행 이어가세요.^*^
날이 조금씩 쌀쌀해 지니 정맥길이 쉽지 많은 안겠습니다..칼바람,추위속 에서도 무사히 정맥길 이어 가시길 바랍니다.
그 날 따라 차가운 바람이 몹시 불어와 고생은 조금 했지만 그래도 멋진 풍광과 쪽빛 가을 하늘을 만끽 할 수 있어 즐거운 산행이었습니다. 앞으로 남은 여섯 구간 겨울산님의 격려에 힘을 얻어 무사히 종주하겠습니다. 겨울산님 늘 즐거운 산행 이어가시고 감기 조심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