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 잡으러 왔다가 술고래가 된 프랑스 선원 이야기
목포항에서 흑산도까지 배로 가다보면 도초도 비금도를 연결하는 서남문대교를 지나야 한다. 다리를 지나 오른쪽 비금도 해안가에 프랑스 국기와 샴페인병 그리고 1851년 이 그려진 울타리가 보인다.
‘저것이 무엇인고?’
이 외딴섬 비금도와 프랑스와는 어떤 관계가 있길래
지금부터 173년 전인 1851년 프랑스 포경선인 나르발호는 고래를 잡으러 조선해역에 들어섰다. 아 그러고 보니 지금 흑산도에 고래공원이 있을 정도로 일제강점기 때만 해도 서해는 고래의 천국이었다. 군산 여청도 역시 마찬가지
이렇게 고래를 쫓다가 안타깝게도 나르발호는 서해에서 난파되어 비금도 앞바다까지 밀려오게 된다. 당시 선원은 29명. 그러나 섬에 닿은 곳이 신유박해 때 프랑스 신부를 박해하고 살해까지 자행한 조선이라니....선원들은 겁에 질릴 수밖에 없었다.
29명 중에 9명은 구조를 요청하게 위해 작은 보트에 올라타 중국 상해로 떠났다. 일엽편주에 의지한 채 서해를 건너 천신만고 끝에 프랑스영사관에 도착해 프랑스 몽티니영사에게 다급함을 알렸다.
이에 몽티니는 큰 배를 꾸려 구조선원을 모집해 조선으로 향했다. 그러나 워낙 급하게 표류하는 바람에 그 섬이 어딘지 찾을 길이 막막했다. 또 서해에는 섬이 어찌나 많은지. 할 수 없이 남쪽 제주도부터 저인망식으로 섬을 뒤졌다.
드디어 비금도에서 나르발호 선원 20명을 찾아냈다. 갖은 핍박에 심신이 찌든 모습일 줄 알았는데 오히려 그 반대. 표정에는 행복이 묻어 있으며 토실토실 살까지 붙어 있었다. 표류한 선원들에게 관리들과 비금도 사람들이 음식과 잠자리를 제공해 정성껏 돌봐주었기 때문이다.
1851년 5월 2일 드디어 송환협상에 성공했고 이를 기념하게 위해 나주목사 이정현과 비금도 주민들은 별회까지 열어 술과 푸짐한 음식까지 내주었다. 몽티니영사는 고마운 나머지 배에 싣고 온 샴페인과 와인을 꺼내 한불 최초로 술파티를 열었다. 선원과 섬사람들은 한마음이 되었고 샴페인과 막걸리가 어우러진 일종의 축제였다.
한편 비금도 사람들은 폭죽처럼 터지는 샴페인과 깊은 풍미의 와인의 맛을 보고 얼마나 놀라고 행복했을까?
이에 몽티니 영사가 나폴레옹 3세에게 보내는 문서에는
‘50여 명이 선원들이 소반 앞에 앉아 있으면 수많은 조선인들이 항아리 단지와 잔을 들고 다니며 술을 따라 주었다’
이 장면은 우리네 잔치 풍경이 아닌가?
선원들은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기쁨에 밤새 막걸리와 청주를 즐겼고 술에 취해 손짓 발짓으로 섬사람과 대화를 나눴을 것이다. 고래 잡으러 왔다가 술고래가 되어 조선의 풍류를 제대로 만끽한 것이다.
이 뜨거운 환송을 받고 표류선원과 구조대 일행들은 조선을 떠났다. 이 아름다운 동화는 이렇게 끝을 맺었다.
그들이 표류했던 장소는 예미포(현 이미해변). 본선이 난파되어 작은 보트 3척을 타고 해안가에 닿은 곳이 세상포(현 월포해변)이며 비금도 하트해변에서 가깝다. 하트는 프랑스 선원에 대한 사랑^^
선원들이 한달을 머물렀던 곳은 내촌마을. 돌담이 예쁘기로 소문난 곳. 푸른 눈의 청년들이 고샅길을 거닐며 심신의 위로를 받았을 것이다. 그걸 음미하며 걸어보라. 다르게 보인다.
2015년 프랑스 세브로 국립도자기 박물관에서
‘19세기 말 한국, 비밀의 나라’ 전시회가 열렸는데 이때 조선의 갈색 옹기 호리병이 세상에 첫선을 보였다. 당시 신안의 바닷가에서 흔히 볼수 았는 투박한 술병이란다. 이걸 한국에 소개한 이가 프랑스 파리시테대학의 에마누엘 후 한국어과 교수.
몽티니 영사가 한국의 막걸리가 맛나서 가져갔는지 아니며 비금도 사람이 우정의 선물인지 모른다. 이역만리 먼 프랑스에 한국의 옹기막걸리병이 있다는 것이 놀라운 따름이다. 이것보다 더 멋진 한국과 프랑스의 평화 상징물이 어디 있단 말인가?
이 아름다운 만남이 있고 나서 15년 후 1866년 프랑스는 강화도를 침범해 양민을 학살하고 국가유물을 약탈해 갔으니 너희들은 참 양심도 없다.
신안군에서는 신남문대교 옆에 샴페인 박물관을 조성할 예정이다. 내가 본 것이 바로 그곳
거기다 2024년 5월 11일, 12일에 이세돌 바둑박물관 일대에서 ‘2024년 신안 샴막축제’가 열린다. 샴페인과 막걸리의 환성적인 만남.
샴막폭탄주가 먹고 싶은 충동이 인다.^^
프랑스인의 판소리공연, 한국인의 샹송공연까지 의미 있는 행사가 가득하니 기대가 된다.
2026년에는 한불수교 100주년.
신안군은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할 예정
이렇게 조선의 섬사람은 순수하고 평화롭고 낭만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