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천주교회의 교회사 살펴보기 5. 강화도조약, 한-프수교통상조약, 신나무골본당, 부산본당, 명례공소, 진주본당, 제주민란, 서울ㆍ대구대목구, 산청공소, 부산대목구, 한국교계제도확립, 산청성당 승격, 마산교구설립, 순교자24명 시복, 103위 시성식, 세계성체대회, 순교자 124위 시복식, 가경자......]
☞ 본 자료는 교리공부를 하면서 김대건신부의 편지 모음(이 빈 들에 당신의 영광이 : 바오로딸) 등의 종교서적, 국내 성지순례 메모자료, 한국천주교회주교회의 홈페이지, 마산교구홈페이지, 산청성당 등의 성당사 책자들을 참고하여 정리하였습니다.
1. 1876년(고종 13년) 병자수호조약 체결(강화도 조약)
☞ 1873년 민씨 일파에 의해 흥선 대원군이 실각하여 물러나고, 1876년(고종 13년) 조선과 일본 사이에 수호 조약이 체결되어 부산•인천•원산의 항구를 개항하였음
* 이로써 쇄국정책이 끝나고 문호를 개방하기 시작하였음
* 그 후 미국, 영국, 독일과 조약 체결을 하였지만, 프랑스는 종교적인 문제로 조약체결이 미루어졌음
2. 1886년(고종 23년) 한-프수교통상조약
☞ 한-프수교통상조약으로 천주교도 신앙의 자유를 얻음
* 천주교 금지령을 폐지하고 프랑스 선교사의 선교 자유가 허용됨
* 본당이 창설되고 경상도에도 포교 활동이 활발해짐
☞ 1886년 경상도 전담 로베르 김신부 임명
* 1877년 24세로 입국하여 숨어서 포교활동을 하던 로베르 김신부(김보록 1853 ~ 1922)를 경상도 전담신부로 임명.
* 로베르 김신부는 경상도 첫 본당인 경북 왜관 신나무골 본당에 부임하여 경상도 모든 공소를 관장함
* 신나무골 본당은 → 대구본당으로 → 대구 계산동 본당으로 성장하게 된다.
☞ 신나무골 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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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82년 6월에서 1883년 5월 사이에 단성의 능구지 신자촌( 현, 산청군 생비량면 제보리)을 로베르 김신부가 방문하여 판공성사를 주었다고 한다.(산청성당 50년사 p.46)
☞ 1887년에는 로베르 김신부가 거제 옥포공소까지 가서 순교복자 윤봉문 요셉의 처가 식구들에게 세례성사를 베품
* 공식적인 박해는 끝이 났지만, 지방에서는 일부 사사로운 박해가 계속 되었음.
* 1888년 통영 포졸들이 개인적 탐욕을 채울려고 박해. 윤봉문 요셉 순교복자 등이 순교(진주옥 →장재실 안장 →거제 옥포 → 거제 지세포 윤봉문 성지)
☞ 순교 복자 윤봉문 요셉 성지(거제 지세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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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1890년 경상도 남부지역 대표 부산본당 설립
☞ 1890년 경상도 남부 지방의 선교를 위해 왜관 신나무골 본당에 이어서 경상도 두 번째 본당 설립
* 부산 영도(현 청학성당 부근)에 부산본당이 설립됨
* 이듬해에 섬이라는 한계 때문에 초량으로 부산본당을 이전함.
4. 1897년 명례공소를 임시 본당으로 / 강성삼신부 사목 / 경남 밀양
☞ 밀양 명례공소
* 용산신학교 1회 졸업생 방인 사제 강성삼 신부가 1897년 휴양차 밀양 명례공소에 거주하면서 임시 본당 사제로 사목활동을 하였음 . 강성삼 신부는 1903년 명례에서 선종하였음.
☞ 경남의 첫 임시 본당 명례성지
https://m.cafe.daum.net/sancheong-church/B9RR/11?svc=cafeapp
※ 1898년 서울 명동성당 성전이 봉헌되었다.
명동성당 성전은 1892년에 착공해 1898년에 준공했다. 사적 제258호로 지정되었으며 종현성당, 명동천주교당이라고도 한다. 명동성당이 세워진 곳은 원래 역관 김범우의 집이 있던 명례방의 자리로 이벽, 이승훈, 정약전의 3형제, 권일신 형제 등이 모여 조선 천주교회를 탄생시킨 곳이다.
5. 1899년 진주본당 설립
☞ 1899년 당시 경상도에는 대구 본당, 낙산본당, 부산본당 등 3개의 본당이 있었음( 현 밀양 하남읍 명례리에 1897년 부터 1903년 선종할 때까지 강성삼신부가 사목하던 임시본당도 있었음)
* 당시 경남 인근에는 100개 이상의 공소가 있었다고 함
☞ 1899년 6월 3일(성령강림축일) 부산본당 따께 신부(엄택기 1873 ~ 1952)가 진주본당 신부로 부임함.
* 여러 사정으로 1년만에 본당을 진주에서 마산으로 옮김(진주본당 → 마산본당)
※ 참고 : 본당 신설 ☞ 완월(1900), 문산(1905), 함양(1913), 옥봉,옥포(1926), 태평(1929), 남성동(1930), 합천(1932), 함안(1933), 거제,진영(1935).장재동(1938), 거창(1940)......산청(1965)......
6. 1901년(광무 5년) 제주 민란이 일어남
☞ 제주도에서 민란이 일어나 신자들이 순교함
7, 1905년 진주 소촌(召村)공소가 본당으로 승격함
☞ 서부 경남 중심 역할을 하게 되었음(현, 문산성당)
* 1905년 설립, 문산성당은 1937년 5월 성당과 사제관 · 수녀원을 건립하고 기존의 한옥 성당은 유치원 강당으로 이용하며, 2005년 5월 5일 김수환 추기경 집전 100주년 기념 미사를 봉헌한다.
* 산청공소가 소속되었던 1913년에 설립한 함양본당 100주년 기념식(2013.05.11.)
8. 1911년 서울대목구와 대구대목구로 분할
☞ 제 8대 조선대목구장 뮈텔 민주교(1890년~1933년) 때 조선대목구가 서울대목구와 대구대목구로 분할됨
9. 1925년 7월 5일 순교자 79위가 복자로 시복됨
☞ 1857년 9월 23일 교황청에서 한국 교회의 시복조사를 공식으로 접수하는 법령을 반포하고(82위 가경자), 1859년 9월 24일 기해 및 병오박해 순교자 중에서 김대건 신부 등 82명을 비오 9세 교황이 우리나라 가경자로 선포하였음.
☞ 가경자로 선포되었던 82명 순교자 중에서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등 79명이 1925년 7월 5일 로마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교황 비오 11세에 의해 복자로 시복되었음
☞ [79위 복자화 / 1926년 캔버스에 유채, 이탈리아, 쥬스타니안 작 / 명동성당]
10. 1920년대에 원산, 평양, 광주, 전주, 춘천, 부산, 대전, 청주, 인천의 대목구들이 설정됨
* 평양, 광주, 전주, 춘천은 지목구를 거쳐서 대목구로 승격하였음
* 원산 대목구는 함흥 대목구와 덕원 수도원구로 분할되었음
★ 참고 : [대목구] / 한국 천주교 사상 교황청이 직접 관할하던 교구.
☞ 정식 명칭은 교황대리감목구이다. 이 교구의 장(長)은 대목 또는 대목구장으로 불렸다. 이 제도는 17세기 이후 정식교구로 설정되기 어려웠던 지역이나 새로운 선교지였던 동양에서 시행되었다. 1784년 처음 창설된 우리나라 교회는 베이징[北京] 교구에 속했으나 이후 많은 발전을 거듭하자 1831년 베이징 교구에서 독립하여 조선대목구가 되었다. 이때 초대 대목으로는 러시아 출신의 브뤼기에르 신부가 임명되었다.
☞ 조선대목구는 1911년 서울대목구와 대구대목구로 분리되었고, 이후 1920년 원산대목구, 1937년 연길대목구, 1939년 평양대목구, 1940년 함흥대목구가 신설되었다.
* 8·15해방 후에는 1955년 춘천대목구, 1957년 부산대목구·광주대목구·전주대목구, 1958년 청주대목구·대전대목구, 1961년 인천대목구가 신설되었다.
☞ 1962년 3월 10일에는 이상의 13개 대목구가 정식 교구로 승격되게 된다.
* 동시에 서울·광주·대구는 대교구가 된다
* 이에 따라 한국 천주교회는 전체가 3개 대주교 관구가 됨으로써 교계제도가 정식으로 확립되게 된다.
11. 산청공소(1953 -1965) 설립 ★
☞ 1953년 산청공소(대구대목구, 함양본당 소속)가 설립되어 운영되다가 1965년 본당(부산교구 소속)으로 승격하게 된다.
※ 산청공소 설립(1953년) 이전에 산청지방에 1882년 산청 생비량면 제보리에 능구지 신자촌이 형성되었고, 1951년에는 실매공소가 설립되었다.
12. 1957년 부산대목구, 광주대목구, 전주대목구가 신설 되었다.
☞ 6.25전쟁 이후에 부산은 피난 교회의 중심지로 교세가 확장되어 교구설정의 필요성이 생김
* 1957년 1월 21일 부산대목구 설정(초대교구장 최재선(요한)주교 임명)
13. 1962년 3월 10일 한국 교계제도 확립
☞ 1962년 3월 10일에는 13개 대목구가 정식 교구로 승격되었다
* 1962년 교황의 감목대리구였던 각 교구들이 정식 교계제도 아래 교구로 승격되었음.
* 교구제도의 설립으로 한국 천주교회는 자립교회가 될 수 있었고, 포교지의 성격에서 벗어남
* 이와 동시에 서울·광주·대구는 대교구가 되었고 교구장이 대주교로 승품되었음
* 이에 따라 한국 천주교회는 전체가 3개 대주교 관구가 됨으로써 교계제도가 정식으로 확립되었다.
14. 1965년 산청성당 / 산청공소에서 산청본당으로 승격 ★
☞ 산청공소(1953년 – 1965년)에서 산청본당으로 승격
* 1965년 12월 20일 공소에서 본당으로 승격 (산청성당, 진주 칠암성당, 진해 경화성당, 하동성당)
* 1966년 1월 31일 산청본당 초대 허성식(마태오)신부 부임(예비신자 포함 700명 신자, 실매공소 등 12개 공소)
* 1966년 9월 20일 마산교구 김수환 스테파노 초대 교구장의 주례로 성전 봉헌식이 거행.
* 2020년 1월 17일 ~ 현재 제23대 최태준(필립보) 주임신부
★ 참고 : 순교정신으로 선교한 산청성당
* 본당 주보성인 성 김대건 안드레아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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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1966년 부산교구에서 마산교구를 분리 설립함
☞ 1966년 2월 15일 부산교구에서 마산교구 분리 설립
* 1966년 5월 31일 마산교구장 김수환(스테파노) 주교 착좌식
* 현재 제5대 교구장 배기현(콘스탄틴) 주교
* 마산교구 소속 본당 74개 (준본당 성심원(1959년) 포함)
16. 1968년 순교자 24명 시복식
☞ 1968년 10월 7일 교황 바오로6세는 로마에서 1866년 순교한 분 중에서 24명을 복자로 선포하는 시복식을 집전
17. 1984년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등 103위 시성식
☞ 1984년 5월 6일 교황 요한 바오로2세는 여의도 광장에서 한국교회 창설 200주년을 기념하여 103위 한국 순교 복자를 성인으로 시성하였음.(아래 돌판의 5월 5일의 날짜는 오기로 생각됨)
☞ 1984년 5월 6일 교황 요한 바오로2세는 한국교회 창설 200주년을 기념하여 103위 한국 순교 복자를 성인으로 선포하는 시성식을 여의도 광장에서 집전
* 103위 성인은 김대건 신부(성인이 된 유일한 한국인 성직자)와 평신도 92명, 파리외방전교회소속 선교사 10명(주교 3명, 신부 7명)으로 이루어져 있다.
* 로마 이외의 지역에서 시성식을 행한 것도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이로써 한국의 천주교회는 천주교 성인의 10%를 차지하게 되었으며, 프랑스·이탈리아·스페인에 뒤이은 성인교회로 급성장하게 되었다.
★ 성 김대건 안드레아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은 산청성당 주보성인들이시다.
☞ 혜화동 성당 ‘103위 순교 성인화’(1977년, 285×330㎝) / 문학진(文學晋) 토마스 화백
18. 1989년 10월 세계성체대회 개최
☞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참석한 제 44차 세계성체대회가 서울에서 개최
* ‘그리스도 우리의 평화’라는 주제로 열림
* 평화, 감사, 회심, 일치를 기원하는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기원하는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평화 통일 기원 미사도 봉헌됨
19. 2014년 한국 순교자 윤지충과 동료 순교자 123위의 시복식
☞ 2014년 8월 16일 프란치스코 교황은 광화문 광장에서 '윤지충과 동료 순교자 123위'의 시복식을 집전하고 124위 복자를 선포함
☞ 2014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거행된 '윤지충 바오로와 123위 동료순교자' 시복 미사에서 순교복자 124위 전체 초상화가 공개되었다. / 김영주(이멜다) 화백
* 순교자들의 피로 신앙을 일으켜 세우는 순교 당시의 바람처럼 '새벽 빛을 여는 사람들'
☞ 지금도 교황청 시성성에서 기적 심사가 진행 중인 '가경자 최양업 토마스 사제', '하느님의 종 이벽 요한 세례자와 동료 132위( 이벽 세례자 요한, 김범우 토마스, 권일신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권철신 암브로시오, 이승훈 베드로, 황사영 알렉시오, 이존창 루도비코 등) ', 2022년 초에 예비 심사가 종료될 '하느님의 종 홍용호 프란치스코 보르지아 주교와 동료 80위', 2017년에 예비 심사를 마치고 교황청 시성성에 제출된 성 베네딕도회의 '하느님의 종 신상원 보니파시오 사우어 아빠스와 동료 37위' 의 시복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
☞ " 당신이 천주교인이오?" / 명례성지 마르코 기념성당
☞ " 그렇소 나는 천주교인이오." / 산청성당 순교자 제대
20. 산청본당이 걸어온 길
- 1882년 산청 생비량면 제보리/ 능구지 신자촌 형성
- 1951년 실매공소 설립
- 1953년 산청공소 설립
- 1956년 상중공소 설립
- 1956년 생초공소 설립
- 1956년 신아공소 설립(금서면 /1996. 폐쇄)
- 1958년 야정공소 설립(신안면/ 1967. 폐쇄)
- 1958년 장죽공소 설립
- 1959년 원지공소 설립(신안면/ 1965. 폐쇄)
- 1959년 방목공소 설립(단성면/ 1967. 폐쇄)
- 1961년 단계공소 설립
- 1962년 자양공소 설립(단성면/ 1966. 폐쇄 ?)
- 1962년 생비량공소 설립
- 1962년 송강공소 설립(단성면/ 2015.02.01.폐쇄)
- 1965년 산청본당 승격(12개 공소 관할)
- 1966년 9월 20일 산청성당 성전 봉헌식 / 마산교구장 김수환(스테파노) 주교
- 2011년 덕산공소 설립
- 2015년 예성공소 설립
▷ 2021년 순교자 성월 9월 1일 성전 스테인드 글라스 설치
https://m.cafe.daum.net/sancheong-church/BuNR/9?svc=cafeapp
★ 에필로그
우리 천주교회는 세계 교회사에서 유일하게 선교사 없이 자체 평신도에 의해 자발적으로 세워진 교회이다. 우리 신앙 선조들은 모진 박해에도 죽음조차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배교하겠다는 말 한 마디면 단란한 가정과 잃었던 영예와 재산을 되찾을 수 있었지만, 우리 신앙 선조들은 신앙을 고백하고 보존하는 일에 잠시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들은 예수님의 사랑을 드러내고 그분의 가르침 대로 사랑을 실천하기 위하여, 그리고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 목숨까지 바쳤던 것이다. 이렇게 신앙을 고백했던 신앙 선조들의 정신을 오늘날 우리 천주교회에서는 받들고자 이어가고 있다. 직접적인 선교 활동은 물론이고, 여러 가지 사회 복지 활동, 사회 정의와 경제 정의의 실현, 인권 증진, 그리고 피조물의 생명과 환경 보호를 꾸준히 실현하고 있다. 그리고 남북 화해와 일치를 위해 기도하고 있으며, 하느님께서 주신 인간의 기본권을 지키기 위해 많은 나눔과 노력을 하고 있다.
순교자 성월울 맞이하여 내 신앙을 살펴보며, "깨어 있어라!"라는 말씀을 묵상하고 새기며 다짐도 해 본다.
믿음과 소망과 사랑......
" 믿는 자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하고, 소망을 가진 자에게는 더욱 그러하며, 사랑하는 자에게는 더더욱 그러하다."
(* 부활의 로랑 니콜라 에르망 / 하느님의 현존 연습에서)
(* 갈매못성지에서)
☞ 2021년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탄생 200주년 순교자 성월을 맞이하여 교리공부를 하면서 정리한 내용들과 지난 날 성지순례의 기억을 되살리며 사진들로 엮어서 5부로 나누어 우리성당 카페에 공유를 하였지만,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오류도 많으리라 생각됩니다. 지적하고 보완해 주시면 수정하고 다듬어서 바로 잡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첫댓글 아 티모테오님 감사합니다. 산청성당의 역사를 한국천주교회사 안에서 확연히 밝혀주시는군요. 능구지신자촌 찾아 갈 때의 떨림이 다시 느껴져 기쁩니다.
산청 성당의 뿌리에 역사로서 본당 30년사에 이어서 50년사끼지 정리하신다고 엄청 고생하셨더군요. 순교자 성월을 맞이하여 우리성당사 책자를 보면서 감동이 많았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