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성은 정혁의 가방을 받아
자신의 방에 들여놓고
부엌으로 들어가 약속대로 라면을 끓이기 시작한다.
" 혜성아- 심심해. "
" 티비바. 우리 스카이라이프야- "
" 응. "
정혁은 이리저리 채널을 돌리다가.
갑자기 어느 한 채널에 눈을 주시한다.
라면을 다 끓이고 혜성은 정혁을 부르러
거실로 나온다.
" 야..//// 저런거 보면 안돼.../// "
정혁은 어떤 드라마의 키스장면을 보고있었다.
" 왜 안돼?.... "
" 아.. 몰라.. "
혜성은 얼굴을 손으로 가리고 손가락 사이로
그 장면을 주시한다.
" 라면 먹자. 불겠다. "
정혁의 환기로 혜성은 티비를 꺼버리며
식탁으로 가 앉는다.
라면을 거의 다 먹었을때쯤 나지막히 혜성이
말한다.
" 정혁아. 아까 본거 왜 할까? "
" 사랑하니깐. "
국물을 마시다가
정혁은 그릇을 놓으며 묻는다.
" 왜? 궁금해? "
" 그냥.. 조금..
기분이 어떨까? "
정혁은 갑자기 일어서더니
화장실로 가 가글을 한다.
그러다가 혜성도 같이 불러와 가글을 시킨다.
" 가르가르가르; 왜? "
" 밥먹었잖아. 한번 더해.. "
" 응.. "
가글을 다하고 정혁은 오렌지맛 사탕을 혜성에게 먹인다.
" 고마워. "
그리고 다시 티비를 켠다.
티비에서는 겨울연가 재방송을 하고 있다.
" 나는 겨울 연가 좋더라.
여자주인공도 너무 이뻐.. 헤헤.. "
그리고 브라운관에 잡히는 아름다운 설경.
여자주인공이 남자주인공의 볼에 츄. 한다.
다시 혜성의 양볼은 발그레.
이번엔 남자주인공이 여자주인공의 입에 츄.한다
혜성은 애써 무시하고..
" 혜성아. "
목소리를 낮게 깔며
헤성을 부른다.
" 응? "
" CHU "
혜성의 입술에 살짝 와닿는 보드라운 입술의 감촉.
" 어때? "
" ......// ... 좋아.. "
" 좋아? "
고개만 끄덕인다.
정혁은 아무표정 없이 다른 채널로 돌려버린다.
그러자 혜성의 표정은 딱딱히 굳고..
집에 갈 때까지 혜성은 정혁에게 아무말도 하지 않는다.
" 혜성아. 내가 너한테 뭐 잘못했어?
왜그래- "
" 아니야. "
혜성은 싸해진 표정으로 정혁에게 대꾸한다.
어색한 공기는 그 둘을 에워싸고.
" 나 갈래. "
정혁도 화가 난 듯 말없이 문을 닫고 나간다.
잠시후. 혜성은 울기 시작한다..
.
.
.
.
- 혜성의 일기.
오늘은 좋기도 했지만 싫기도 하다.
짝궁을 바꾸는 데 정혁이가 내 옆에 앉아주었다.
그래서 굉장히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정혁이가 쁘띠젤도 사줬다.
이뿐사람만 먹는 거라서. 또 기분이 좋아졌다.
그런데, 정혁이는 나를 별로 좋아하지 않나보다.
나한테 뽀뽀하고는 아무말도 안하고,
티비만 본다.
그래서 화가났다.
그런데 정혁이도 화가 났나보다.
어떻게 하지...
6.
" 다녀오겠습니다. "
혜성은 힘없이 현관문을 나선다.
" 가자.. "
어제보다는 굳은 표정으로 혜성을 맞는 정혁
싸해진 분위기에 혜성도 덩달아 말이 없어진다.
등교길 내내 둘은 말이 없다.
" 정혁아- 안녕- "
" 어? 정혁아. "
" 안녕. "
역시 정혁은 여자아이들의 인사에 휩싸이고.
혜성은 애써 무시하며 자신의 자리에 말없이 앉는다.
은주는 혜성에게 나눠주지도 않은채 A4 용지를
혼자 들고 혜성을 기다리지도 않은채
올라가 버린다.
혜성은 따라갈 생각도 하지 않은채
아까와 마찬가지로 조용히 혼자 걸어간다.
몇층이나 올라갔을까.
갑자기..
" 아야! "
은주의 비명과 함께
종이가 '좌르르' 흩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혜성은 깜짝놀라 계단을 뛰어 올라간다.
8.
은주는 이마에 새빨간 피를 흘리며 울고 있다.
" 은주야.. "
" 아파.... "
은주는 계단에서 굴렀는지 여기저기
생채기가 나있다.
" 혜성아... 아파... "
" 어떻게.. "
혜성은 이도저도 못하다가 울음을 터뜨려 버린다..
그러다가 눈물을 닦아내고
자신의 손수건을 가져다 은주의 이마에 갖다댄다.
" 자. 꽉막고 있어. 우선 피는 멈춰야지.
나는 선생님 불러올테니깐 잠깐만 기다려. "
혜성은 계단을 한번도 쉬지않고 뛰어올라
4층 자신의 교실까지 올라간다.
" 선생님!! 은주가.. 은주가 다쳤어요! "
소리는 거의 울먹임에 가까웠다.
" 혜성아, 뭐라구? "
선생님이 잘 알아듣지 못하시자,
혜성은 다짜고짜 선생님의 팔을 잡아 끌며
은주가 있는 곳으로 향한다.
" 어? 은주야. "
" 선생님... "
선생님을 보자 은주는 안심한 마음에
그동안 참았던 울음을 터뜨린다.
" 혜성아, 은주좀 부축하고 선생님 차로 오너라. "
" 네. "
혜성은 은주를 부축하고 조심히 한걸음씩
나간다.
은주는 다리도 다쳤는지 굉장히 고통스러워 한다.
은주의 피가 혜성의 하얀옷에 스며드는지도 모르고
혜성은 땀까지 뻘뻘흘리며, 울먹이며,
선생님의 차로 은주를 부축했다.
" 선생님! 빨리가요! "
은주가 너무나 고통스러워 하자 혜성은
자신도 모르게 선생님을 재촉한다.
병원으로 가는 차 안에서 혜성은 차안의 휴지로
하염없이 흐르는 은주의 피를 닦아주기에
여념이 없다.
은주는 그런 혜성을 가만히 보다가.
다시 울음을 터뜨린다.
" 왜? 아파..? 미안해.. 살살할게.. "
" 아니야... 안아파... "
말은 이렇게 하지만, 은주의 울음은 멈추지 않는다.
곧 가까운 종합병원에 도착하고.
은주는 곧 치료를 받는다.
" 의사선생님, 은주 괜찮아요? "
혜성은 잔뜩 걱정된 표정을 하며
의사선생님께 묻는다.
" 음.. 걱정 안해도 된단다.
이마도 그렇게 많이 찢어진게 아니고,
다리도 그냥 접질렀을 뿐이니깐.
오늘만 잘 쉬면, 내일 학교가는 건 문제 없을거다.
너도 옷에 피묻은거 어쩌냐.. "
" 괜찮아요.. 헤헤.. "
은주가 괜찮다는 말에 혜성은 웃음을 지으며
답한다.
" 혜성아... "
" 어? 은주야. "
은주 어머니가 뒤에서 계속 나가지 말라는 데도 불구하고
은주는 휠체어를 끌고 혜성에게 다가간다.
" 혜성아. 옷이 그게 뭐냐.
그러니깐. 왕따지.. "
자신의 피로 빨개진 혜성의 하얀옷을 물묻은 수건으로
닦아주며 그렇게 핀잔하는 은주이다.
" 은주야. 그만 들어가야 된다니깐.. "
옆에서 은주의 어머니가 재촉하는 소리에
은주는 그만 돌아서려 한다.
그러다.
" 혜성아.. 그동안 미안했고..
고마워..
사과 받아줄꺼지? "
은주는 쑥쓰러운 듯 얼굴을 붉히며
말한다.
" 응... 헤헤.. "
혜성도 겸연쩍은지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한다.
" 그럼.. 내일봐.. "
9.
선생님과 함께 교실로 들어서자
혜성에게 달려드는 정혁.
" 야! 어디 갔다왔어!
너 혼자가면 어떻게!! "
" 미안해.. 은주가 다쳐서. "
" 너는 괜찮고.. "
" 응... "
" 집에 가자. "
정혁은 화가 많이 난 듯 혜성의 소매를 잡아끈다.
정혁의 안좋아보이는 표정에도 불구하고
혜성은 뭐가 그리 좋은지 싱글벙글.
" 선생님 가도 되죠?
얘 옷이나 좀 갈아입혀야죠. "
" 그래. 정혁이는 참 혜성이를 아끼는 구나. "
" 네.!! "
" 허허.. 녀석.
그래, 혜성아. 오늘 수고 많았다.
너도 좀 씻고.. 그래. "
혜성은 고개를 끄덕이며, 씩씩거리고
앞서가는 정혁을 따라간다.
.
.
.
" 그 기집애는 넘어지고 난리야.
우리 혜성이 옷에 피 다 묻었잖아. "
정혁은 엄마가 아기 타박하듯 도리어
화를 내고 있다.
" 괜찮아. 나 오늘 걔랑 화해했거든. "
" 그래서 그렇게 기분이 좋았구나.
내가 뭐랬어.
자기가 알아서 풀릴거라고 했잖아.
혜성이는 이렇게 이뿌고 착한데. "
" 뭐야... "
언제나 자기편인 정혁이 혜성은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오늘 자신이 갑자기 없어져
얼마나 걱정했을지 혜성 자신이
가장 잘 아는데.
정혁은 아무말 없이
혜성과 같이한다.
.
.
현관문 앞에서.
정혁은 혜성에게 자신의 코트를 벗어준다.
" 왜? "
" 니 코트 피묻은거 보면
너희 엄마가 걱정하실꺼 아냐.. "
" 너는? "
" 니가 이따가 우리집으로 갖다주면 되지.. "
" 아.. 맞다..
고마워 정혁아.
그런데 괜찮아. 엄마한테 자랑할 것도 있고.. "
" 그게 무슨 대수라고 자랑까지해.. "
정혁은 혜성을 살짝 건드린다.
" 아니야.
아무튼. 고마워 정혁아. "
" 내가 뭘.. "
혜성은 정혁에게 말 없이 손을 흔들며 인사한다.
그런 혜성에게 정혁은 조심해서 들어가라며;
혜성이 들어갈때까지 들어가지도 않고 있다.
혜성은 들어가자마자 엄마에게 달려간다.
" 엄마! "
" 혜성아! 옷이 그게 뭐니? 어디 다쳤어? "
잔뜩 얼굴을 찡그리시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어보이시는 혜성의 어머니.
" 아니야. 있잖아.
오늘 나를 진짜 싫어했던 애랑
화해했어.
그래서 기분 되게좋아! "
" 그랬구나.. 옷이나 좀 줘라. 빨게. "
" 네.. "
혜성의 어머니는 아무말도 혜성에게 묻지 않으신다.
옷을 엄마에게 넘기고 혜성은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일기를 편다.
- 혜성의 일기.
오늘은 나를 정말 싫어했던 은주와 화해를 했다.
예전에 싸운건 아니였지만.
그 아이는 나를 정말 싫어했다.
그래서 많이 불편했었는데.
아무튼 오늘은 너무 기분이 좋다.
내일 가서 인사해야지..^-^
그리고, 정혁이는 언제나 내 편인거 같다.
오늘 갑자기 사라져서
정혁이가 많이 걱정했을 텐데..
아무말 없이 내 편이 되어준 정혁이가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오늘은 정말 좋은 하루 였다.
.
.
.
.
정혁과 혜성이 아침에 들어선다.
은주 주위에 몰려있던 아이들이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정혁에게 시선을 보낸다.
" 정혁아, 안녕- "
" 정혁아, 춥지? "
" 안녕 "
" 안녕 "
그 때였다.
" 혜성아. 안녕- "
" 어. 은주야. 안녕.. "
혜성은 정말 처음 받아보는 인사에
기쁨에 가득찬 얼굴로 답한다.
여기저기서 평소에 혜성과 정혁의 일로
혜성을 가장 미워했던 은주의 반응에
의아해 한다.
" 야, 이은주! 너 뭐야. "
" 맞아. 너 쟤 진짜 싫어하잖아. "
" 몰라. 혜성이 이제부터 내 친구야.
너희도 혜성이 괴롭히면 죽어! "
은주는 혜성에게 웃음을 지어보인다.
혜성도 은주에게 수줍게 웃어보인다.
옆에서 정혁만이 뚱한 표정을 하고 있을 뿐...
10.
" 혜성아! 같이 영어 학원 가자! "
요즘 정혁은 싱글벙글이다.
방학이 시작되고 난후, 유일한
혜성과 같이 생활할 수 있었던
학교라는게 사라져버리자 정혁은 울고불고
엄마에게 혜성의 피아노 학원을 보내달라고
떼를 썼다.
하지만, 정혁은 예전에 피아노 학원을 일주일
다니고 때려친 경력 때문에 정혁의 어머니는
쉽사리 허락을 해주시지 않았다.
정혁의 계속되는 공세에 정혁의 어머니도
질려버린 것인지.
혜성의 어머니와
같이 합의한 결과!
같이 영어학원에 다니기로 하였다.
" 정혁아. 숙제는 다 했어? "
" 숙제? ...... 너는? "
" 나야. 했지. "
" 그래? 니꺼좀 보자. 그럼. "
" 아휴. 저번에 그래서 나까지 선생님한테
혼났잖아. "
" 아.. 그랬지.. "
정혁은 혜성과 같이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마냥 좋을 뿐이었다.
숙제를 매일 안해올 뿐이지.
정혁의 영어실력은 가히 수준급이었다.
몇 년전까지 정혁은 미국에서 살다 왔으니.
그리 이상한 것도 아니였지만..
발음이 그다지 좋지 않은 혜성을 가르쳐 준다고
그 핑계로 요즘 매일 혜성의 집에 들락거리고 있는
정혁이다.
" 발음이 중요하다니깐!!
이거 다시 발음 해봐! "
정혁의 윽박에 혜성은 모기만한 소리로
살짝 발음한다.
" ......스....터.... "
" 그게 아니잖아!! stir...;;는 그렇게 발음 안해!
트가 아니라. 뜨같은 억양으로!
그리고 혀 붙이지 말랬지!
안되겠다. 나 오늘 너희집 간다!
맛있는거 사놓고 기다려! "
영어학원을 쭉 다녀온 혜성의 발음은 그리 좋지 않은것도 아니였다.
정혁은 무작정. 자신이 아는 가장
어려운 단어를 불러세운 다음 아무이유나 갖다 붙여
혜성의 집에 찾아가곤 하였다.
" 어? 혜성이형- 정혁이형- "
정혁과 혜성을 불러세우는 선호다.
선호는 그 둘보다 네 살어린.
정혁의 말을 빌자면
젖도 안뗀 꼬맹이었다.
" 꼬맹아, 형아랑 누나랑 공부하니깐
저쪽가서 놀아라- "
" 누가 누나야? "
정혁이 으름장을 놓자
선호는 울어버리고 만다.
" 앙~ 정혁이형 너무 무서워. "
" 선호야. 울지마. 자.. 이리와서 같이하자. "
혜성은 선호를 꼭 안아주며 자신의 옆자리에 앉힌다.
정혁은 그게 참 못마땅 하였다.
영어학원에 처음 오던 날부터
혜성에게 딱 달라붙어있는 선호라는 아이.
예전부터 같이 다녀서 친하다는 이유였지만.
정혁은 그것도 못마땅하였다.
부은 표정으로 선호를 야리고 있었다.
" 저 형아 눈 진짜 웃기다.
그치? 혜성형. "
" 어. 쿡.. 문정혁, 눈에 힘좀 빼.. "
" 칫.. "
안그래도 부은 정혁은 부채질하는 선호의 꼴이란..
정혁은 잔뜩 화가 나서는 고개를 획 돌려버린다.
그와는 대비되게, 선호와 혜성의 이야기는
끊임없이 지줄대고..
" 형아, 춥지 않아? "
" 응.. 조금.. 왜? 선호 추워? "
" 웅... "
부르르 몸을 떠는 선호다.
" 이리와- 형이 따뜻하게 해줄게. "
" 엉. 아.. 따뜻해. 헤헤.. "
선호를 꼬옥 안아주는 혜성이다.
" 나는 형이 이렇게 안아줄때가 제일 좋더라.
나는 형이 세상에서 제일 좋아- "
" 나두 선호야.. "
' 세상에서 가장 좋다라.. '
잠자코 듣고 있던 정혁의 눈썹이 꿈틀거리기 시작한다.
' 뭐? 나도? '
정혁은 갑자기 벌떡일어나 혜성의 품에 묻혀있던
선호를 매정하게 내동댕이친다.
" 야! 문정혁, 너지금 뭐하는거야? "
" 몰라서 물어? 신혜성. 너도 그렇게 사는거 아니야! "
" 내가 뭘-! "
" 형.. 아파.. "
저쪽으로 나가떨어진 선호를 보곤,
화들짝 놀라 일으켜세우는 혜성.
그걸 보다가 제딴에 열이받아 나가버리는 정혁이었다.
11.
혜성은 정혁의 집 앞에서 쭈뼛쭈뼛 망설이고 있다.
벨에 손을 대봤다가도..
다시 거두고.
손잡이를 움켜쥐었다가도.. 스르르 풀어버리고..
마지막에는 한숨만이 공허한 통로안으로 퍼져갔다.
" 어.. 혜성아.. "
소리소문없이 올라온 엘리베이터안의 정혁.
혜성의 모습은 보고는 놀라다가.
다시 표정을 바꾸어 굳어진 얼굴로 혜성을 대한다.
" 저기.. 정혁아.. 너희집에서.. 놀자... "
정혁은 대답대신 거칠게 혜성의 손을 잡아
그의 집안으로 밀어넣을 뿐이었다.
정혁의 집은 참 조용했다.
예전같았으면. 시끄러운 그들의 재잘거림에
시들렸었겠지만. 지금만큼은
개미걸어 다니는 소리가 들릴정도로
참 조용했다.
특히 혜성에게는 그런 고요가 너무너무
무겁게 느껴지고.
" 야. 정혁아.. 왜그래.. 응? "
혜성은 정혁이 왜그러는지 도통 모르는
표정이었다.
" 니가 그러면 내가 마음이 안 좋잖아..
정혁아. 왜그래... "
고개까지 푹 숙이고..
그런 혜성이 정혁도 불쌍해 보인건지..
굳게 다물고만 있던 입을 열었다.
" 하나만.. 묻자..
너.. 나 좋아 싫어? "
" 어? "
너무나도 유치한 질문에 그만 실소를 터뜨려
버리는 혜성.
정혁의 얼굴이 심각함을 내심 짐작하고
자신도 진지한 표정으로 말한다.
" 음.. 나는. 정혁이가 이 세상에서
제일제일 좋아! 됐어? "
" 거짓말쟁이.. "
자신이 원하던 대답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정혁은 아직도 뭐가그리 부족한지
입만 삐죽거린다.
" 나 거짓말안해!
진짠데... "
" 그럼 선호가 좋아.. 내가 좋아.. "
" 풋.. 그거 때문이었어? "
이제야 알았다는 듯 혜성은 한바탕 웃어재낀다.
나름대로 진지했던 정혁.
다시 정혁의 미간에 인상이 들어가고.
혜성은 호흡을 정리하며
정혁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한다.
" 선호는 어리잖아.
나는 니가 그 정도로 삐질줄은 몰랐는데.
헤헤.. 나는 말이지.
선호랑은 다르게 니가 좋아.. //
알지? 무슨말인지?
나는... 음...///
하여튼 그니깐 오해하지마.. "
" 당연하지- 우리 혜성이가 얼마나 고생해서 만들었겠어..
혜성아.. 너무 고마워... "
정혁은 혜성에게 살며시 입을 맞춘다.
혜성은 정혁에게 안겨
마지막으로 운다며 눈물을 쏟아내고 있다..
" 아.. 혜성아.. 이거 알아? "
어느정도 안정이된 혜성에게 정혁은 말한다.
" 음.. 테디베어는 이름을 지어주잖아.
그런데 얘는 생일도 있다.
직접 테디베어를 만들어서 그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한테 주는 날이 생일이 되는거고.
만약 받은 사람이 준 사람 이름을 그 테디베어에게
붙여주면.. 그 둘의 사랑은 영원하대.. "
정혁의 말에 혜성은 함박웃음을 지으며 정혁에게 다시 안긴다.
" 정혁아.. 고마워.... 그리고.... "
" 아... 혜성아.. 이거 서운해서 어쩌지..
이제 가봐야 할 것같아요.. "
언제왔는지 정혁의 부모님이 정혁과 혜성에게
다가오고 계셨다.
" 네.... "
정혁은 잔뜩 표정이 굳어져서는 혜성을 다시한번 안아본다.
그리고 그의 부모님께 말한다.
" 엄마.. 나 혜성이랑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거든..
잠깐만 갔다 올게.. "
" 응.. 빨리 와야한다.. "
정혁은 혜성의 손을 잡고 아름답게 인공꽃밭이 꾸며진
곳으로 간다.
그리고는 혜성에게 말한다.
" 혜성아.. 나 꼭 돌아올게..
그 때까지 기다려 줄 수 있지? "
" 응... 그런데.. 정혁아.. 나.. "
" 있지.. 그말.. 나중에 갔다 와서 들으면 안될까?
그리.. 오래걸리진 않을거야.. "
혜성은 터져나오는 울음을 참지못하고 고개를 숙이고
그저 흐느낄 뿐이다.
정혁은 그의 손수건으로 혜성의 눈물을 조심스럽게
닦아준후 혜성의 손을 꽉 잡으며 말한다.
" 돌아온다...... 꼭.....
혜성아.... 다시 만나... "
정혁의 부모님 있는 곳으로 가서 우는 혜성이를 어렵사리
달래고 정혁과 그의 부모님은 에스컬레이터 앞에서 이별을 고한다.
" 혜성아.. 혼자 잘갈 수 있겠니? "
" 네... "
" 아줌마가 도착하자마자 꼭 혜성이네로 연락할게.. "
" 감사합니다.. "
" 혜성이 잘 커야해! "
" 네... "
정혁은 혜성에게 미소를 지으며 손을 꽉 잡는다..
그리고 금반지를 만지작거리다 부모님 모르게 살짝
혜성의 볼에 뽀뽀한다.
귀에 나즈막히 속삭이는 정혁의 목소리다.
" 혜성아.. 사랑해... "
부모님의 손에 이끌려 에스컬레이터로 올라서..
에스컬레이터의 움직임에 따라 혜성의 손과 멀어져간다.
혜성도... 정혁도...
그렇게... 작별이었다.....
' 혜성아.. 나.. 돌아올게.... '
15.
화창한 봄날이다.
물론 봄날이라고 하기엔 약간 쌀쌀한 기운과
매서운 꽃샘추위 덕분에
아직 설녹은 하얀 눈이 히끗히끗 여기저기
서려있지만.
겨울의 날카로움을 무디게 만들어 버린.
꽃샘추위의 심술도 잠재워 버릴.
그렇게 포근한 날씨였다.
" 엄마- 나 다녀올게요- "
" 혜성아, 빨리가라,
고등학교 첫 입학식부터 지각일래?.. "
입학식날부터 지각인 혜성이다.
예전과는 다르게..
그 어느때 부터인지는 모르게
혜성의 지각은 눈에 띄게 많아졌다.
예전에는 7시 30분부터 일어나
준비를 서두르던 녀석이..
겨울이 끝나가는 그 어느 시기부터.. 였을 것이다.
조급한 마음에 올라오는 엘리베이터도 기다리지 못하고.
그냥 계단을 한번에 뛰어내려가는 혜성이었다.
꽤 높은 층수라서 그런지 혜성의 숨은 그의 목 바로 밑까지
차 올라와 있다.
거친숨을 몰아내쉬고 있는 아이.
고등학생 남자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외소해보이는 몸매.
하지만. 그리 작지않은 키..
약간 갈색을 띠는 머리.. 살짝 땀에 젖어 그의 얼굴에
밀착해 있는 몇 가닥을 빼곤. 아직도 찰랑 거리는
적당한 길이의 깔끔한 헤어스타일.
그리고... 향(香)..
" 어디선가.. 혜성이.. 향기가 나더라구..
그래서... 와봤더니... "
계단에 앉아있는.. 혜성과 똑같은 교복차림의
사람이..
일어선다..
훤칠하게 큰 키..
탄탄한 몸에.. 매력적으로 검게 그을려 버린 피부..
네 번째 손가락의 금색링을 만지며..
뒤를 돌아보는 아이.
그리고.. 혜성으로 가득차 있는 그의 눈동자.
" ....저..... "
" 음... 변하지 않았구나..
반지도.. 그대로구....
물론.. 마음도..겠지..?... "
" 정혁아.. "
그 검은 아이는 혜성에게로 다가간다.
혜성도.. 한걸음 한걸음 그 검은 아이에게로 다가간다.
" 음.. 우리 혜성이도.. 엄마 많이 보고 싶었대.. "
그 검은 아이는 가방속에서 작고 앙증맞은 테디베어를 꺼내며
혜성의 품에 안긴다.
" 나... 돌아왔어.... "
겹쳐지는 둘의 입술사이로
뜨거운 눈물이 흐른다.
누가 더..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가 서로를.. 애타게 그리워 했던..
그 둘..